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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봄기운이 완연한 이 계절에, 부족한 글을 세심하게 살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월간 한국수필 그리고 고동주기념사업회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평생 강단에서 제자들과 마주하며 보낸 시간은 제게 ‘사람과 사랑’을 배워가는 고귀한 여정이었습니다. 정년퇴임 후 수필이라는 넓은 바다를 항해하며 인생의 후반전을 일궈가고 있는 저에게, 고동주 선생님의 수필집 『사랑바라기』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선 경이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주한 선생님의 문장들은, 제가 교정에서 건넸던 사랑이 혹여 조급함은 아니었는지,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해 왔는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했습니다.
이번 수필을 쓰며 저는 독서가 곧 ‘삶을 비추는 거울’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노래하신 ‘원추리의 고운 미소’와 ‘함부로 날뛰지 않는 끈기’는, 이제 막 문학이라는 너른 바다에 배를 띄운 저에게 흔들리지 않는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일관된 태도로서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담백하게 길어 올리는 수필의 정수를 배우며 저 또한 성찰의 깊이를 한 뼘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 상은 저의 문장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욱 정직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조하라는 격려의 채찍으로 받들겠습니다. 고동주 선생님께서 일상의 소박한 조각들에서 삶의 진리를 찾아내셨듯, 저 또한 누군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따뜻한 글을 쓰기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제게 보내주었던 그 다정한 편지들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듯, 이 귀한 상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품격 있는 수필가의 길을 겸허히 걸어가겠습니다.
오랜 세월 수필문학의 길을 묵묵히 이끌어 오신 선배님들과 부족한 글에 과분한 정점을 찍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이 귀한 상의 무게를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삶
— 고동주 에세이 『사랑바라기』를 읽고 —
세상의 모든 존재는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 끝에서 비로소 제 이름을 찾고 생기를 얻게 된다. 강단에서 제자들의 가능성을 보듬으며 그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 온 나에게, 고동주 작가의 수필집 『사랑바라기』는 교육의 본질이 결국 ‘사랑의 발견’이었음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오랜 시간 글을 써오며 수필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최근에 마주하게 된 이 책의 제목은 해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해바라기처럼 내 마음을 ‘사랑’이라는 본원적 가치로 새롭게 이끌었다.
이 수필집은 50여 편의 글을 통해 사랑을 단순한 감정의 파동이 아닌 ‘세상을 대하는 일관된 태도’로 격상시킨다. 작가는 「책을 내며」에서 “나무 이파리도 사랑스러운 눈빛을 만나면 윤기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대상의 진면목을 알아봐 주는 시선이 닿을 때 비로소 평범한 일상이 새로운 의미로 거듭난다는 수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풍경 속에서 나는 사랑의 속성을 다시 배운다. 그 사랑의 눈빛은 「아침 산책길」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그는 자연의 질서를 관조하며 빠르게 쏟아지는 물길보다, 서두르지 않고 굽이쳐 흐르는 흐름을 긍정한다. 특히 “함부로 날뛰지 않는 끈기”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대목에서 나는 깊은 사유에 잠겼다.
사랑이란 요동치는 격정이 아니라, 대상이 제 길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인내였다. 지난 세월 강단에서 제자들을 독려하며 건넸던 말들이 혹여 그들의 속도를 배려하지 못한 ‘조급한 사랑’은 아니었는지 조용히 되짚어보게 한다.
작가의 삶과 문학이 맞닿은 지점은 「고향 바다」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는 고향 바다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존재의 봉헌으로 확장한다. 공직 생활과 문학의 길을 병행하며 그가 보여 준 책임감은, 사랑이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 삶의 확고한 방향이 되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자신을 낮추어 세상을 비추는 겸허한 등불, 그것이 작가가 평생 일구어온 수필의 정수였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나의 교단 일기를 반추하게 했다. 그동안 제자들에게 충분한 사랑의 눈빛을 나누었는가 자문해 보지만, 실은 제자들이 나에게 더 많은 사랑을 건네주고 있었음을 뒤늦게 고백한다.
정년을 맞이하던 종강일에 ‘스승의 은혜’를 합창하던 학생들, 졸업 후에도 손으로 눌러 쓴 편지들은 이제 나의 가장 귀한 보물이 되었다. 작가가 일상의 작은 조각들에서 삶의 소중한 의미를 찾아냈듯, 나 또한 제자들이 건넨 진심을 가슴에 품고 다시 글을 쓰는 용기를 얻는다.
작가의 시선은 「홀로 우는 소리」에 이르러 한층 깊고 낮게 가라앉는다. “괴괴한 달빛의 소리는 외로워 잠 못 이루고 배회하는 사람에게만 들린다”는 문장은 사랑이 닿지 못한 자리의 고독을 아프게 응시한다. 전신주 우는 소리와 밤바다의 바람 소리로 치환된 기다림과 불안의 정서는, 복지와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는 것은 결국 사람의 온기뿐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이러한 고독의 그림자 속에서도 작가는 결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은 만혼의 소감을 담은 편지에 대한 답신 형식을 빌려 사랑의 실천적 가치를 역설한다. 그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끈기만 있어도 행복은 불꽃처럼 저절로 피어난다”고 말하며,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행복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강조한다.
사랑은 요란한 격정이 아니라 일상의 소박한 습관이며, 서로 다투어 건네는 진심 속에서 비로소 자라난다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림이 아니라 먼저 내미는 손길임을 이 글은 나에게 가슴 깊이 새겨주었다.
“그대 사랑의 눈빛이 머무는 동안 원추리의 고운 미소이고 싶다”는 표지의 문구는 평생 사랑으로 일관했던 한 문인의 가장 정직한 기도였다. 긴 세월 머물던 강단을 내려와 문학이라는 너른 바다에 다시 배를 띄운 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선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이제는 받는 사랑에 익숙했던 시간을 지나, 세상을 향해 먼저 다정한 눈빛을 건네는 수필가로서의 삶을 정성껏 일구어 가고 싶다. 작가가 그러했듯, 나 또한 누군가의 가슴 속에 고운 원추리 꽃 한 송이 피워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약 력-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백록수필작가회, 리더스에세이 회원. 전)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저서: 『다문화의 이해 및 건강』외 다수. 수필집: 『아름다운 도전』 『아름다운 날들』. 수상: 교육부총리표창(2017) 외 다수, 황조근정훈장(2020).
돌아보고 비춰보는 거울처럼
-고동주의 ≪사랑바라기≫를 읽고-
책의 뒷표지 추천사에서 낮 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존경해 온 수필가의 짧은 글이었다. ‘고동주의 수필에서 눈물은 슬픔이나 아픔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걸 새로운 소망의 빛으로 만들어낸다.’
길을 가다 멈춰 선 사람처럼 나도 ≪사랑바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글 마당은 돌아설 때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깊은 산의 풍광 같았다. 가슴에 깊이 박힌 옹이 같은 아픔과 그리움이 끝내는 감사로 수렴되며, 인생의 파노라마를 따스한 정서로 어루만진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시인의 눈으로 빚어낸 문장들이 한 편의 시로 다가와 자주 멈춰 세우며 소리 내어 읽게 한다. 그 따스함 사이사이에 놓인 서릿발 같은 자기 성찰은 나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한 사람 삶이 깊은 깨달음과 위로로 이 책에 넘쳐나게 담겨있음이 놀라웠다.
특히 <군불>은 내 기억의 한 자락을 펼쳐내게 했다. 작가는 도시의 달동네 셋방에서 군불은 언감생심, 새우잠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 보호자인 작은 아버지가 얼어붙은 밤바다를 노 저어 가져다준 장작개비로 하루 밤 몸을 녹이고는 쌓아 두었다. 숙부의 눈물겨운 사랑은 장작을 그냥 쳐다만 봐도 흐뭇하고 따스했단다. 그 고백엔 내 가슴도 뭉클해져 왔다.
내게도 친정 남자 조카가 있었다. 가정 사정으로 온기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자란 그 아이가 늘 내 기도 속에 있었다. 어릴 적엔 방학을 하자마자 우리 집으로 와서는 개학 전날에야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대학은 서울로 왔고 취직할 때까지 눈보라 속을 걷듯 견뎠다. 분기별 성적순인 기숙사 입주에는 늘 절박함으로 떨었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는 그의 형편 때문이다. 대학의 낭만은 사치였던 그 아이는 드디어 언론고시, 그 목표를 이루었다. 그 즈음에야 우리가 내 집을 마련한 기쁨이 배가 된 것도 그 애를 집으로불러 들일 수 있어서였다. 박스 두어 개 뿐인 이삿짐은 그간의 버텨온 시간이 보이는 듯 했다.
그해 추석에 사과 한 박스가 배달되어 왔다. 새내기 기자에게 격려로 보낸 선물이었다. 사과 한 개를 깎아 먹으려다가 목이 메어왔다. 그 아이의 눈물 어린 애씀이, 버텨 준 의지가 대견하고 감사해서였다. 난 더 이상 그것을 먹기 아까워 “저 사과 코팅해서 걸어두고 싶다”라고 말했다. 숙부가 보낸 장작이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흐뭇했다는 고동주 작가의 그 심정이 바로 나였다. 난 그 애를 지켜보던 고모였고 결혼으로 제 가정을 이루어 떠날 때까지 5년을 함께했다. 사람 간의 진심 어린 사랑은 마음을 움직이고 군불처럼 온기를 지펴내는 것 아닐까.
<동백의 씨>는 고동주 작가에게 영광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숙모님 마음에는 두고두고 서운한 그늘로 불효했다고 고백한 글이 <배은의 열매>였다. 또 한 번 나의 모습이 겹쳐왔다. 두 아이가 서너 살쯤이었을 때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생업으로 허덕이고 있었다. 이웃에는 남편과는 큰 누나쯤의 연배인 시()고모댁과 왕래하고 있었다. 언젠가 남편은 출장길에 시고모부의 여름 정장을 한 번 빌려 입었다. 우리는 겨울 양복 한 벌이 모두였고 부엌엔 급수 배수도 없어 마당 수돗가를 오가던 우리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늦게 퇴근한 남편이 또 정장이 필요하다며 심부름을 시켰다. 난색을 드러냈지만 할 수 없었다. 시 고모댁 마당에 서서 쭈뼛쭈뼛거리다 말꼬리를 흐리며 부탁했다.
“안 된다. 너희는 둘이 벌면서 정장 한 벌도 못 사냐.” 정색을 한 그분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우리가 통장의 잔고를 쌓느라고 허덕이는 게 아니라 정말 없어서였다. 그 당시 난 마음 곳곳에 상처가 가득했고 자존감이 퍼렇게 멍들어 있던 때였다. 아픈 발 같았던 내 마음이 밟힌 것이다. 옷이 세탁소에 있다는 등의 핑계라도 댔더라면 그 일은 일상으로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 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시고모와 관련된 모든 관계를 외면하며 살았다.
작가는 조카를 향한 그 숙모의 모습을 ‘차가운 시선, 외면의 설움’이라고 표현한 것이 회한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 때 작가는 ‘조실부모한 어릴 적 마음은 서러운 넋두리가 항상 출렁이고 있었던 자신의 어린 마음’이라고 했다. 내가 바로 그랬다. 작가가 숙모를 그런 눈으로 본 것은 자신의 상처 난 마음 밭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얼룩진 내 마음의 자격지심이었지 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겉과는 다르게 우리 가정을 향한 그분의 감춰진 인정 어린 모습을 돌아보게 되면 서다. 이 글에 기대어 바라보니 더욱 한때의 내가 부끄럽게 다가온다. 한편 나 자신도 누군가의 아픈 발을 밟지 않았을까도 돌아보게 했다.
삶은 스치고 다시 만나는 관계들의 연속이다. 떨어진 물방울의 흔적을 생각해 본다. 똑같은 물방울이라도 말끔한 유리판에 떨어지면 보통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먼지 낀 유리판 위에서는 얼룩으로 남는다. 상대의 마음 밭은 어떤지 잠깐이라도 살펴보는 배려가 필요함은 다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순간 자기감정을 먼저 앞자리에 앉히는 부족함으로 치닫곤 한다. 생각 없이 물방울을 떨어뜨리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누군가에겐 오래 남는 자국이 되었을지도모른다. 자기 성찰에는 칼날 같으나 사랑의 눈빛과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으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고동주 작가를 보았다. 《사랑바라기》는 ‘사람이 바로 글이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곳곳마다 감동의 파문으로 일렁이게 했지 싶다. ‘가슴으로 쓰는 글’은 어떤 글인지 좋은 작가를 꿈꾸고 있는 내게 그 푯대로 다가오기에도 충분했다.
‘저 푸른 하늘 아래서 잘 익은 감 하나를 데려다 내 심혼 깊숙이 매달아 두고 내실의 다짐을 되풀이하고 싶구나’는 문장이 오래 남는다. 《사랑바라기》를 읽는 동안 거울에 비춰보듯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나도 내실의 다짐으로 나아가면 사랑으로 익어가는 삶을 지어 갈 수 있을까. 또 그런 글도 쓸 수 있을까.
-약 력-
월간문학 등단(2021). 월간문학 신인작품상(2021).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원.
솔샘문학회 회원. 「스승의 초상」「일상의 품격」「맛, 그리움이 되다」등 공저.
황환택
-당선소감-
요즘 며칠 봄볕이 따스하더니만 세상의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그런 중에 당선되었다는 한 통의 문자를 받고 제 가슴에도 봄꽃처럼 꽃망울이 터졌습니다.
우선 부족한 글에 과분한 영광을 안겨주신 고동주 독서 수필 문학상 심사위원님들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번에 제가 마주한 『동백 씨』는 단순한 독서의 경험을 넘어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한겨울 찬 바람보다 더 시렸던 어느 청년의 고독과 그 고독을 녹여준 열세 살 어린 누이의 따스한 손길을 만났습니다. 뱃머리에서 눈물로 건네받은 그 동백 씨의 무게가 제 가슴에도 묵직한 울림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저 또한 이 글을 읽으며 지난날 나의 삶 속에는 어떤 '동백의 씨'가 있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토록 따뜻한 정의 씨앗이 되어준 적이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어린 시절 방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 남매의 차비를 빌리러 다니시던 큰어머니가 생각나 가슴이 멍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꽃이 져도 열매로 남아 다시 꽃을 피우듯이 고동주 작가님이 남긴 글들은 세상에서 다시 꽃을 피울 것입니다. 이번 당선이 제가 가는 문학의 길에서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더욱 단단하고 깊이 있는 문학의 세계를 일궈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동백의 씨’가 되겠습니다.
다시 필 동백과 ‘동백의 씨’를 위한 동화
3월 어느 날,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일행들과 함께 찾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언덕에는 붉은 동백이 지고 있었다. 스스로 목을 베고 붉게 진 동백은 메마른 땅에 온몸을 누인 채로 다시 붉게 피고 있었다. 절정의 순간 몸을 던진 동백이 다시 동백으로 핀 꽃, 동백은 그런 꽃이다. 그 풍경의 끝에서 고동주 수필가의 ‘동백의 씨’를 만났다. ‘동백’, 우와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동백이었다. 길지 않은 글에 깊이 빠져 정신없이 읽었다. 짧은 글이었으나 여운은 길었고, 감동의 파고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렇지, 이게 바로 문학이고 수필이지.
수필 ‘동백의 씨’는 내가 어느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보았던 그 동백만큼이나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고대 그리스의 어느 시인은 남긴 ‘그림은 말 없는 시(詩)요,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좋은 시를 읽으면 마치 그림으로 보이고 좋은 그림은 시가 된다는 말이다.
좋은 시가 한 폭의 그림이라면, 좋은 수필은 한 편의 영화이자 드라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피어난 붉은 마음을 담은 이 수필은, 고난과 결핍의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수채화요 아름다운 동화 같은 영화며 감동이 있는 드라마다. 이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아마도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온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세대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시렸던 시절이 있었다. 작가의 회상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나 또한 그 시대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어느 가을날 고향 섬을 찾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을이 오붓하게 익어가는 어느 날 동백의 섬 고향 마을을 찾았다." 이 담담한 첫 문장은 작가의 가장 아프고도 절박했던 청춘의 한복판으로 이끈다.
작가는 다시 찾은 고향에서 ‘동백의 씨’를 본다. 이 동백의 씨는 단지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작가의 가장 아프고 절박했던 청춘의 한 장면이었다. 동백의 씨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가난과 고독이라는 시련 속에서 피어났던 정(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을 지탱하게 하는 ‘따스한 정(情)이 무엇인지를 각박해진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작가가 20대 초반의 군 휴가로 회상하는 어린 시절, ’영하 30도의 추위‘ 만큼이나 가혹했던 그 시절을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보여준다. 이 장면에 공감하는 것은 그 시절의 세상과 군대와 휴가를 같은 상황에서 겪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부푼 마음으로 군용열차를 타고 달려간 고향은 이미 서러운 외톨이의 차가운 타향이 되었다. 숙모의 차가운 시선과 숙부의 부재는 다시 부대로 돌아갈 차비조차 없는 20대 청년을 더 시리게 만들었다. 시퍼런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조차 생겼을 만큼 작가는 냉혹한 현실 앞에 떨어야 했다.
모든 영화가 그렇고 드라마가 그러하듯 이 영화에도 반전이 있다. 이 비극적인 서사를 반전시키는 것은 마을 어른도, 나이든 친척도 아닌 열세 살 사촌 여동생이다. 이 사촌 여동생 또한 조실부모하고 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아이였다. 이 아이는 오빠의 어려움을 알고는 이웃을 돌아다니며 오빠의 여비를 구해온 것이다. ‘동백의 씨를 주워 팔아 갚겠다’는 눈물겹고 애처로운 약속으로 빌려온 돈, 이 돈은 단지 돈이 아니라 군대에서 휴가 온 사촌오빠를 향한 눈물과 생존 의지가 응축된 정(情)의 결정체다.
작가에게 고향은 포근한 안식처가 아닌, 부모의 부재와 친척들의 냉대를 확인하는 아픈 공간이었지만 그 차가운 겨울 바다 위에서 작가를 다시 살게 한 것은 동백꽃보다 더 붉고 뜨거웠던 어린 여동생의 마음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 큰댁에 방학 때면 가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먹을 입을 덜어야 했던 가난한 어머니의 지혜였음을 안 것은 나중의 일이다. 문제는 동생들과 함께 큰집에 가서 방학을 보내고 돌아올 때다. 집에 돌아갈 버스비가 없는 것이다. 그때 큰어머니가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우리 남매가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구하셨다. 차비를 구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여러 집을 돌던 큰어머니 생각에 지금도 눈물이 난다. 고인이 된 큰어머니의 영전에 인사를 드려야겠다.
나룻배를 되돌려 온 오빠에게 차비를 쥐여주고 사촌 동생은 바위에 앉아 흐느낀다. 이 동화 같은 영화의 백미이자 절정이다. 작가는 그 순간을 ‘갸륵한 정(情)의 전율’이라 표현했다. 세상이 내뿜는 냉기 속에서 오직 어린 여동생만이 동백기름 같은 따스한 온기로 작가의 얼어붙은 영혼을 어루만져 준 것이다.
숙모로 대표되는 세상의 냉대로 얼어버린 작가의 마음을 녹인 것은 화려한 동백꽃이 아니라 꽃이 지고 난 뒤 남겨진 검고 단단한 ‘동백의 씨’ 같은 동생의 마음이었다. 동백의 기름은 여인네의 머리칼에 윤기를 내어주었고, 동생의 눈물 어린 헌신은 작가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윤기를 더해주었다.
무상한 세월이 흘렀고 작가는 다시 동백의 섬 고향마을을 찾는다. 과거의 아픔을 넘어서 작가는 동백나무에서 새로운 삶과 교훈을 얻는다. 동백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붉은 꽃을 피워낸다. 그리고 그 꽃은 다시 절정의 순간에 붉은 낙화로 지고 꽃진 자리에 야무진 결실인 열매를 맺는다.
‘동백의 씨’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 20대에 군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 사촌 여동생이 눈물로 작가의 여비를 만들어 주기 위해 주워서 팔겠다던 동백의 씨, 나룻배의 다른 일행들도 함께 눈시울을 적신 그 동백의 씨를 다시 보면서 작가는 동생을 따스한 정을 만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이 동백처럼 살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이제부터라도 마음 밭에 동백의 씨를 다시 심고 정(情)의 꽃을 피우겠다고 다짐을 한다.
시(詩)가 누군가의 허세가 되고, 신변잡기(身邊雜記)로 소비되는 수필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 작품은 진정한 문학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은 화려함 속에 있지 않고 절박한 순간에 내미는 따스한 손길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무심코 지나친 친절 하나가 평생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난로가 될 수 있음도 알게 한다.
‘동백의 씨’를 다 읽고 나니 내 마음속에도 작지만 단단한 씨앗 하나가 뿌려졌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하게 꽃 핀 삶도 좋으나 동백의 씨처럼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순히 동백기름을 짜는 열매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숭고한 사랑의 상징, 동백의 씨 하나가 오늘 내 가슴에 심어졌다.
다시 필 동백과 동백의 씨를 위한 동화, ‘동백의 씨’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올해에는 다시 그 바람 부는 언덕에 가서 다시 필 동백을 만나야겠다. 그리고 큰어머니 영전에도 꼭 들려 동백 한 송이 올려야겠다.
-약 력-
2019년 <문예사조> 시 등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부회장, 충남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전국연금법개악저지투쟁위원장,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뉴스더원 대기자 및 논설위원, 충청남도지사직인수위원회 교육발전특별위원장, 시창작 인문학 아카데미 지도교수 역
임. 현 충남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심사평-
최원현 /수필가 · 사)한국수필가협회명예이사장
이번 제3회 고동주수필문학상 독후감 부문 수상작들은 단순한 독서 소감의 차원을 넘어 작품과 자신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내는 ‘확장된 읽기’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대상 텍스트인 사랑바라기를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받아들인 세 편의 글은, 독서가 개인의 기억과 성찰을 통해 어떻게 또 하나의 문학으로 재탄생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 최우수상 김성혁의 「사랑으로 바라보는 삶」은 사랑바라기가 제시하는 ‘사랑의 시선’을 교육 현장과 자신의 생애 경험 속에 깊이 이식하며, 독서와 삶의 통합이라는 독후감상의 본령을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다. 글은 사랑을 감정이 아닌 ‘태도’로 재정의한 원작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하고, 이를 교단에서의 경험—제자들과의 관계, 정년의 순간—과 자연스럽게 접목시킨다. 특히 제자들이 건네준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대목은 읽기의 결과가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모범적 사례라 할 만하다. 또한「아침 산책길」, 「고향 바다」, 「홀로 우는 소리」 등 개별 작품을 적절히 호출하며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입체적으로 확장한 점도 돋보인다. 인용과 해석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문장은 안정되고 품위 있으며, 전체적으로 사유의 흐름이 매끄럽게 이어진다. 다만 일부 문장에서 개념적
언어가 다소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나 글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진 않는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자기 삶 속에서 해석하고, 다시 글로 환원해낸 점에서 독후감의 이상적 수준을 보여준 수작이다.
■ 우수상1 손효선의 「돌아보고 비춰보는 거울처럼」은 사랑바라기를 ‘거울’로 삼아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텍스트와 개인적 기억이 촘촘히 교차하는 공감형 독후감의 미덕을 잘 보여준다. 특히 「군불」과 「동백의 씨」를 매개로 풀어낸 가족 서사는 매우 진솔하고 구체적이다. 조카와의 관계, 시고모와의 갈등 경험 등은 단순한 사례 제시를 넘어 사랑과 상처, 그리고 뒤늦은 이해로 이어지는 인
간 관계의 복합성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 글의 강점은 감정의 진폭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반성적 사유로 수렴해 나가는 데 있다. ‘먼지 낀 유리판’이라는 비유로 귀결되는 결말부는 독자의 공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다만 서술 과정에서 개인적 경험이 다소 길게 확장되며 중심 텍스트와의 긴장이 느슨해지는 지점이 일부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진정성 있는 고백과 성찰이 균형을 이루며 독후감으로서 충분한 문학적 울림을 확보하고 있다.
■ 우수상2 황환택의 「다시 필 동백과 ‘동백의 씨’를 위한 동화」는 사랑바라기 중「동백의 씨」를 중심으로 서사적 재구성과 개인적 체험을 결합한 이야기형 독후감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글은 원작의 장면을 영화적 이미지로 재현하며 독서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사촌 여동생의 헌신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감정의 밀도가 높고 독자가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인 큰어머니와의 기억을 병치시키며 타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기억이 공명하는 지점을 효과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이는 독후감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기억의 서술’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문장이 다소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으나 오히려 그 진폭이 작품의 생동감을 살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일부 표현에서 수사가 반복되거나 장면 설명이 장황해지는 부분은 절제될 필요가 있다. 이 작
품은 문학적 감동을 자신의 서사로 확장시키며 ‘읽기’가 또 하나의 ‘이야기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이번 독후감상 수상작들은 공통적으로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하며, 그 경험을 다시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독서가 곧 또 하나의 창작 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랑바라기라는 한 권의 책이 누군가에게는 교육의 본질을, 누
군가에게는 관계의 상처와 화해를, 또 다른 이에게는 기억과 서사의 복원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문학의 확장성과 독자의 창조적 역할을 다시금 확인하게 했다.
심사위원 : 권남희(위원장). 장호병. 최원현(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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