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으로 행복해지는 글, 박화목(朴和穆, 1924~2005) 선생 과수원길
6월이다. 방터골을 나와 요양원 앞을 지난다. 이미 산수유 꽃은 지고 잎이 무성해졌다. 요양원을 지나니 펜션 옆길부터는 내리막이다. 손수레에 거대한 쓰레기 봉지를 싣고 갈 때면 제일 편한 곳이다. 마음 속으로 열 한 번을 세고나면 길옆 어느 분의 세칸하우스 앞 길을 걷는다. 그때다. 향긋한 향기가 나를 뒤돌아보게 하였다.
"벌써!"
아카시아 꽃 향기가 주렁주렁 따라왔다. '여름이구나!' 기후 변화를 실감하는 날이었다. 허나 아카시아 꽃 향기는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박화목 선생의 과수원길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콧노래를 부르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내 의식은 어느새 40대의 젊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남선생, 나 좀 봐아 ∼.”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화목 선생이셨다.
한국아동문학회 여름 세미나 때인 1980년대 초였던 것 같다. 전국 8도에서 올라온 문인들은 점심을 먹은 후 한가한 시간이다. 이곳저곳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한가하게 계시던 박화목 선생께서 나를 부른 것이다. 선생은 가방에서 두툼한 책을 꺼내더니 ‘남진원님’이란 사인을 하여 내게 건네주셨다. 선생께서 발표한 연구 논문과 대학 강단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 신 아동문학론』이란 도서였다. 나는 그 책을 받고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기뻤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1974년과 1975년 『교육자료』와 『새교실』등에서 만나던 분을 이렇게 뵙고 책까지 받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고 한국아동문학의 원로로부터 직접 사인을 받은 책은 그 책이 처음이었다. 전에 모임에서 몇 번 만나 인사를 드린 것이 고작이었다.
이 무렵 박화목 선생은 한창 당신의 노래가 전국에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애창할 때였다. 가곡 ‘보리밭’을 작사하였고 어린이와 어른들의 사랑을 받던 ‘과수원길’ 동요는 국민가요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1982년 동시집 [싸리울]을 처음으로 발간할 때 서문을 박화목 선생께 부탁하였다. 박화목 선생은 흔쾌히 서문을 써 주셨다. 책이 나오자, 정선읍에서 하는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하였다.
박화목 선생이 내려온 날.
저녁 무렵, 박화목 선생을 모시고 정선 읍내의 한 맥주집으로 갔다. 미모의 아가씨들 두어 명이 좌석에 함께 하였다.
한참 맥주 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너희들 이 멋진 신사분이 누구인 줄 아니?”
나는 아가씨들에게 호기롭게 물었다.
“누군데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물었다.
“자, 나중에 알려줄 테니 요즘 잘 부르는 ‘과수원길’ 노래 한 번 불러보자.”
곧, 노랫소리가 누구랄 것도 없이 울려퍼졌다.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 ’
언제 들어도, 언제 불러도 아카시아꽃 같이 향기로운 노래였다.
나는 노래가 끝난 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 분이 ‘과수원길’ 노래를 지은 박화목 선생님이시다!”
“설마요?”
아가씨들응 처음에는 반산반의 하였지만 곧 옆에 계시는 분이 박화목 선생이란 것을 믿게 되었다.
박화목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래 가사 중에서 가장 멋지고 좋은 구절이 어디인 줄 아니?”
그러자 모두들 노래의 한 구절씩을 주어섬겼다.
박화목 선생은 한참 듣다가 말씀하셨다.
“바로 이 대목이지. 내가 좋아하는 구절, 맨 끝자락에 있는 ‘먼 옛날의 과수원길’이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게 참말로 멋진 구절 같았다. 어릴 때 ‘고향길을 오가며 보고 듣던 먼 옛날의 과수원길’이라고 말씀하시니 새삼 그 구절이 정겹고 따뜻하였다.
벌써 그 분이 세상을 떠난지 30여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30대 초반의 혈기 왕성하던 나도 벌써 고희를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방터골에도 늦은 봄이면 아카시아꽃이 피어난다. 그 꽃을 보면 늘상 박화목 선생과의 아름답고 정겨웠던 일들이 한 장의 동화처럼 다가온다. 박화목 선생이 그리웁기에 그 가사를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았다.
[과수원길 노래 가사]
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아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한국아동문학회에서는 [박화목 아동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행하고 있다. 동시와 동화, 아동문학 이론 등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신 선생님의 이름을 딴 << 박화목 문학상 >>이 제정된 것은 그 어느 문학상 보다 가치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