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충신 조상치( 曺尙治 ) 이야기 – 단종과의 관계, 그리고 최근 영화 속 역사 이야기
역사를 보면 어떤 사람은 권력을 잡고 이름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권력을 버리고 이름을 남깁니다. 오늘 이야기할 인물은 후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바로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조상치(曺尙治)"입니다.
조상치는 조선 전기 영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으로, 과거 시험에서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세종·문종·단종 세 임금을 섬겼고, 학문과 정치의 중심 기관이었던 집현전 부제학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집현전은 조선 최고의 학문 기관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부제학이라는 직책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 그룹에 속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조상치의 이름이 역사에 더 크게 남게 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단종과의 관계입니다.
1455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큰 권력 사건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어린 왕 단종의 왕위를 삼촌이었던 세조가 빼앗은 사건입니다. 이후 많은 신하들이 세조를 섬기게 되었지만, 일부 신하들은 끝까지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조상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조가 즉위하자 조상치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영천으로 내려갑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후 평생을 단종을 그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항상 동쪽을 향해 앉아 단종을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또한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새기게 합니다.
“魯山朝遺人 曺尙治之墓”
(노산군의 옛 신하 조상치의 묘)
여기서 노산군은 폐위된 단종의 이름입니다. 즉 끝까지 자신을 “단종의 신하”라고 밝힌 것입니다. 권력보다 명분을 선택한 조선 선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충절 때문에 조상치는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단종의 장릉에 배향되었고, 여러 서원에서도 제향을 받게 됩니다. 시호 역시 충절을 뜻하는 "충정(忠貞)"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단종 시대의 이야기가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다뤄진다는 것입니다. 단종과 세조, 그리고 사육신과 생육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권력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잡은 세조,
목숨을 바친 사육신,
그리고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사람들.
조상치는 바로 그 시대에 살았던 또 하나의 인물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결국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름을 남깁니다. 권력을 통해 남기도 하고, 원칙을 통해 남기도 합니다. 조상치라는 이름은 후자에 가까운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요즘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1,395만명을 돌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속의 단종을 배경으로 최근 영화 속 역사 이야기를 빗대어 글을 올려 주신 불꽃사자님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그 당시의 절개와 임금에 대한 충절을 지키신 조상님의 후손으로서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게 합니다.
[출처] 조선의 충신, 창녕 조씨 부제학파 시조 조상치(曹尙治) 이야기 – 단종과의 관계, 그리고 최근 영화 속 역사 이야기|
작성자 불꽃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