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쁨이 가득한 우리교회
2023. 12. 31(송구영신예배) 요한복음 15:11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하는 인사를 받으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10년 전 김동호 목사님 설교 영상을 보니 김동호 목사님은 즐겁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3가지로 이야기 하였는데, 경제적, 가정적, 사역적으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경제적으로 목사님은 양복은 10년째 입고 있고, 구두는 20년째 신고 있지만 한 달에 헌금과 구제와 선교 헌금을 1천만원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정적으로는 아내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아들 3명은 매일 한번씩 통화를 하는데 왜 전화했냐? 하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답을 한다. 아버지와 다 큰 아들이 매일 아무 이유없이 그냥 생각나면 전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역적으로 목사님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열매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즐겁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러면 나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저희 가정에 피자사건을 알 것이다. 만삭의 아내와 새벽기도를 다녀 오면서 소영아 뭐 먹고싶노? 하고 물었을 때 아내가 피자라고 하였다. 쌀독에 쌀이 떨어지던 때에 3만원 정도하는 피자를 사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 오빠가 돈 많이 벌면 사줄께! 하고 말했더니 아내는 길거리에 앉아서 울었다. 이것이 신혼초 저의 경제적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피자를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사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아니 주위에 힘든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이 있으면 이제는 섬길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가정적으로 저도 아내와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되어 있고, 아이들과도 정말 관계가 좋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이 철철 넘친다.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저의 집안에 저를 가르치고 인도해 줄 목사님은 한 분도 없다. 그래서 저가 고신대학에 진학한 것은 신학교가 고신대학 밖에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뢰한이었던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고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열매를 맺게 하였다. 그래서 북서울교회에서 청년회가 배가되고, 창원한빛교회에서 전도축제를 하였는데 1천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모이는 기적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자여교회 부임하였는데, 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줄은 저도 몰랐다.
그런데 숫적 성장만 가졌겠는가? 제가 사역을 할 때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이전 교회 성도님들을 만나면 매우 반가와 한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기쁨이겠는가?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기록하면서 기쁨을 말한다.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빌립보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바울을 시기하는 자가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녀석이 감히 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바울은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빌 2:17)고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서 바울은 이와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 2:18)고 말한다.
여기서 전제는 제사를 드리는 방법이다. 화제는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라면, 전제는 기름을 부어서 드리는 제사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가 온전히 받아드려질 수 있도록 부어지는 기름이 된다 하여도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바울은 지금 내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은 완전히 불타 사라진다 하여도 빌립보교회만 온전히 세워져 갈 수 있다면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바울이 이러한 기쁨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이전에 바울은 율법에 얽매인 자였다. 그랬던 바울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열심으로는 바리새인이라는 자랑을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또 가말리엘 문하생이라는 세상적으로는 자랑거리가 많았다.
그런데 실상 바울에게 기쁨이 있었겠는가? 그렇게 자랑할 것이 많았던 바울은 스데반이 순교하는 것을 보고도 마땅히 여기는 잔인함을 가졌고, 또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향하였던 사람이다. 율법에 열심을 가진 바울은 자랑할 것은 많았지만, 실제 자기 안에는 참된 기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적으로 아무 것도 가지지 않게 된 바울은 기뻐하고 또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인가?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다.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기를 비워,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하셨으니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는 nothing 을 말한다.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 자기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하여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신을 낮추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비움, 낮춤, 복종인 것이다.
왜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복종하였겠는가? 집에 반려견을 키우는 분이 있을 것이다. 반려견을 키우는 분은 밥을 챙겨 먹여야 하고, 또 운동도 시켜야 한다. 제가 길을 걷다가 반려견과 산책 나온 분들을 종종 본다. 그 분들은 모두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고, 또 어떤 분은 반려견과 산책 나와서 개가 걷기를 힘들어 해서 안고 가는 분도 있다. 참 주인을 힘들게 하는 반려견인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로봇산업이 발달할 것이다. 그래서 약먹을 시간이 되면 로봇이 주인님 약 먹을 시간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약고 물을 가지고 올 것이다. 그리고 운동도 시켜주고, 집 청소해 줄 것이다. 아니 내가 옷을 입을 때 옷패션에 대하여서도 조언하여 주고, 심심할 때 말동무도 해 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로봇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살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집에 불이 나서 강아지와 로봇 중 하나를 구출한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구출할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이해할 수 없은 행동을 우리는 일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만약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시간적, 경제적으로 많은 여유를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기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수고를 했다. 또 경제적으로도 늘 긴장하며 살았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아니었는가? 이런 분들에게 제가 질문을 한가지 하겠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돈이 모아져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였는데, 아들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돈을 누구를 위하여 쓰겠는가? 저는 아들을 줄 것이다.
바보 같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키운 아이가 대학에 입학했다는 합격증을 받아온다. 그러면 내가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그 아들이 취업을 했다고 하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마치 연봉 1억을 받는 회사에 입사한 것처럼 자랑을 한다.
이렇게 자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복종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여서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복종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감옥에 갇힌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교회가 더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빌립보교회가 교회다와진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을 이제 읽어보기 바란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떠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3년동안 함께한 댓가로 연봉 3억으로 계산하여 10억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제자들을 존경하여서 극진히 대접을 받게 해 주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안에 기쁨을 충만케 하겠다고 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을 지키게 하여서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죄인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바울이 예수님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여서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을 가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참된 기쁨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물질적 복을 받고 기뻐할 수 있다. 아니 가족이 화평을 누리고, 또 사역의 형통을 통하여 기뻐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가져야 하는 기쁨은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복종하는 수고를 행할 때 세상이 알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기쁨이 있는가? 2024년 연간표어는 예수님의 기쁨이 가득한 우리교회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여 섬김과 헌신으로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충만한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