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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입문禪學入門
선학입문 서
『선바라밀禪波羅蜜1)은 천태 지자天台智者2) 선사께서 설하신 것이다.
1)『선바라밀禪波羅蜜』 : 천태 지자 대사가 설하고 그의 제자 법신法愼이 기록한 『釋禪波羅蜜次第法門』을 말한다. 줄여서 『禪波羅蜜』 또는 『次第法門』이라 하며, 『禪門修證』이라고도 한다.(T46, 475~548).
2)천태 지자天台智者 : 법명은 지의智顗(538~597)이며, 지자 대사는 진왕陳王 양광楊廣이 하사한 호이다. 속성은 진陳씨이고 자는 덕안德安이며 형주 화용현 사람이다. 18세에 과원사에서 법서法緖에게 출가하고, 혜광惠曠에게 율학과 대승교를 배웠으며, 진陳 천가天嘉 1년(560) 광주 대소산의 혜사慧思를 찾아가 심관心觀을 전수받았다. 30세에 혜사의 명으로 금릉에서 전도를 시작하고, 32세에 와관사에서 『법화경』을 강하였으며,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를 창건하였다. 이후 『법화경』을 중심으로 교학의 체계를 세워 천태종을 수립하고 널리 교화를 펴다가 수隋 개황開皇 17년 천태산 석성사에서 60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 『法華玄義』·『法華文句』·『摩訶止觀』·『觀音玄義』·『觀音義疏』·『金光明玄義』·『金光明文句』·『觀無量壽經䟽』 등 30여 부가 있다.
그 제자 법신法愼이 이를 기록해 10권으로 만들었는데, 그 법은 지관止觀3)으로 종지를 삼고 호흡(息)과 색色으로 문을 삼아 유위有爲4)로부터 무위無爲5)에 이르고 범부에서 최고 성인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다.
3)지관止觀 : 지止(ⓢśamatha)는 정지停止의 뜻으로 망념을 쉬고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는 것이며, 관觀(ⓢvipaśyanā)은 달관觀達의 뜻으로 지혜로 관조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은 선정(定)과 지혜(慧)를 닦는 방법으로서 한 쌍을 이루며,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불교의 주요한 수행법이다.
4)유위有爲 : 위爲는 위작爲作·조작造作의 뜻.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이런 현상에는 반드시 생生·주住·이異·멸滅의 과정이 있다. 구사俱舍의 칠십오법 중 72법, 유식唯識의 백법 중 94법이 유위법이다. 생멸하는 온갖 법의 총칭이다.
5)무위無爲 : 인연인 위작·조작을 여의고, 생·주·이·멸 사상四相의 변천이 없는 진리를 말한다. 열반涅槃·법성法性·실상實相 등은 무위의 다른 이름이다. 구사에서는 3무위를 세우고, 유식에서는 6무위를 세운다.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차제에 순서가 있고, 명칭을 조사하고 뜻을 탐구해 그 이치가 허황되지 않았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천태종天台宗이라 하였다.
당唐·송宋 이래로 교외별전敎外別傳6)이 세상에 성행하자 근기가 수승해 경절문徑截門을 좋아하는 자들은 이것을 상相에 집착한 것이라 여겨 깊이 궁구하지 않았고, 근기가 하열해 염불과 독송을 배우는 자들은 이것을 깊고 넓은 것이라 여겨 감히 엿보려 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천태종은 외로운 처지가 되어 전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6)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다는 달마선達磨禪을 가리킨다.
나는 여러 책에서 종종 천태지관天台止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자못 희열을 느껴 그 책을 구한 지 오래였으나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금년 여름 혜월慧月 거사 유劉 군이 그 책을 가지고 와서 내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책은 글의 짜임새가 광대하게 얽혀 있고 과목이 번쇄하게 중복되어 있어 읽어도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생각해 보아도 아찔하기만 합니다. 이런 탓에 이것을 보는 자들이 적고, 보는 자들이 적기 때문에 널리 전파되지 않으며, 널리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얻기가 어렵고, 이 책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그 교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습니다. 만일 이 가운데서 중요한 것만 추려 내어, 글은 간결하게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하고 뜻은 요점만 취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면, 읽기 쉽기 때문에 익히는 자가 많아질 것이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좋아하는 자가 많아질 것입니다. 좋아하고 익히는 자가 많으면 널리 전파될 것이고, 널리 전파되면 이를 따라서 도에 들어가는 자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후학들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장차 이 종宗에도 보탬이 될 것입니다. 옛날 천태 선사께서 여러 경전을 종합하여 이 종을 세우고 널리 후학들에게 베푸셨으니 그 공덕이 크다 할 것입니다. 지금 만약 그 종지에 입각해 그 문을 가리키고 막힌 곳을 뚫어 그 길을 넓힌다면, 천태의 공덕은 나날이 더욱 빛날 것이며 문을 열고 길을 가리킨 사람 역시 이 인연으로 올바른 견해를 얻어 영원히 물러서지 않게 될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에 그의 뜻에 감동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읽어 보니, 법문이 해박하며 명칭과 뜻이 종합적이고 정확한 것이 이 책만큼 잘 갖춰진 것도 없었다. 이 도에 뜻을 둔 자라면 몰라서는 안 될 책이었다.
그리하여 장章에 따라 내용을 발췌하고, 그 순서에 따라 요점을 취하여 번쇄한 곳을 잘라 내 요약하고는 한 질의 책으로 만들어 『선학입문禪學入門』이라 제목을 붙였으니, 선바라밀을 익히려는 자는 이 책을 따라 들어가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원컨대 여러 동지들은 먼저 이 책을 읽어 그 대강大綱을 알고 조목條目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런 뒤에 본서本書7)를 읽으면 계곡의 작은 길도 분명히 드러나고 드나드는 문을 착각하지 않을 것이니,
마치 길을 가는데 길잡이가 있고 문에 들어가 나침반을 든 것과 같을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 글의 풍부함을 기뻐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고, 그 뜻의 상세하고 정확함을 좋아하여,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따르는 것은 그 문門에 들어가는 것이고 본서7)로 나아가는 것은 그 당堂에 오르는 것이니, 그때 비로소 천태종문天台宗門을 몰라서는 절대 안 되고 이 한 권의 입문서 또한 읽지 않아서는 안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책을 만들어 계몽에 도움을 주고자 할 따름이다.
7)본서本書 : 천태 지자 대사가 설하고 그의 제자 법신法愼이 기록한 『禪波羅蜜』, 즉 『釋禪波羅蜜次第法門』을 말한다.
을묘년(1855) 가을 8월 일 월창月窓 거사8) 만월滿月 화남和南9)
8)월창月窓 거사 : 조선 말기 거사인 김대현金大鉉(?~1870)의 호. 한성漢城 사람으로 공리貢吏를 지냈으며 유가·도가에 능통하였고, 40세를 넘어 『능엄경』을 열람한 뒤에는 그때까지의 학문을 모두 버리고 불교연구에 전념하였다. 철종 11년(1860) 안동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고종 7년에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禪學入門』 2권·『述夢瑣言』 1권·『字學正典』 1부가 있다.
9)화남和南(ⓢvandana) : 반담伴談·반제伴題·번담煩淡·반담槃淡·반다미盤茶味·반나매槃那寐·반탄남畔彈南·파남婆南으로도 음역하고, 아례我禮·계수稽首라고 의역한다. 공경히 예배드린다(敬禮)는 뜻이다.
[禪學入門]
1)禪學入門序 [1] [1]
禪波羅蜜。天台智者禪師所說也。弟子
法愼。記之爲十卷。其法以止觀爲宗。
以息色爲門。自有爲至無爲。從凡夫
躋極聖。從淺入深。則次第有序。尋名
求義。則其理不虛。世人指爲天台宗。
唐宋以來。敎外別傳。盛行於世。根勝
而樂徑截者。以此爲著相。而不深究焉。
機劣而學念誦者。以此爲深廣。而不敢
窺焉。由是此宗。孑然少傳矣。余於諸
書。往往見說天台止觀。而心頗悅之。
求其書久未得。今夏慧月居士劉君。持
其書來語余。曰是書。文勢浩蔓。科目
繁重。讀之則支離。考之則眩怳。坐是
而覽之者少。以覽之者少故。傳播不廣。
傳播不廣故。其書難得。其書難得故。
其敎莫由得聞。若就其中。取其要略。
文從簡而令人易讀。義取要而令人易
曉。以易讀故。習之者衆。以易曉故。好
之者多。好習者多。則傳播廣。傳播廣
則因是入道者衆。非惟有益於後學。亦
將有助於此宗。昔天台禪師。收諸佛藏。
而立此宗。普施後學。其功德大矣。今
若即其宗而指其門。通其塞而廣其路。
則天台功德。日益彰大。而開門指路者。
亦當以此因緣。得獲正見。永不退轉。
豈不爲美事乎。余於是感其意。潜心閱
覽。法門之該博。名義之綜覈。無如此
書之備。有志斯道者。不可不知也。因
隨章抄出。循其序而取要。删其繁而從
畧。成出一帙。名之曰禪學入門。言欲
習禪波羅蜜者。當從此入。願諸同志。
先讀此書。知其大綱。解其條目。然後
取覽本書。則谿逕分明。門戶不錯。如
行路之有前導。入門而秉指南。始乃喜
其文之富贍。而無支離想。悅其義之詳
悉。而無眩亂想。然則從是書入其門。
就本書升其堂。方知天台宗門。不可不
知。入門一書。亦不可不覽。是故存之。
以爲啓蒙之助云爾。
上之乙卯秋。八月日。月窓居士。滿
月和南。
{底}新文館刊鉛印本。
선학입문 후기
선에는 두 종이 있으니, 천태와 달마이다. 달마선達磨禪은 마음이 곧 부처라는 종지를 가리켜 상근기의 돈오를 인가한다. 따라서 이름과 형상을 쓸어 없애고 자취를 남기지 않으니,
書禪學入門後
禪有兩宗。曰天台。曰達磨。達磨指即心
即佛之旨。印上根之頓悟。故掃除名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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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그런 사람이 아니면 계합하기가 어렵다. 천태선天台禪은 불성에 악이 갖춰져 있다는 의리를 세워 중생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문을 열고 길을 넓혀 그 방향을 정해 주니, 인식능력만 있다면 반드시 귀결처를 알 수 있다. 이로써 살펴본다면 달마선의 종지는 준엄하다 할 수 있고 천태선의 의리는 원만하다 할 수 있으니, 불법을 천명함에 있어 어느 하나를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세간에서 달마선을 위주로 하는 자는 형상에 집착한다며 천태를 배척하고, 천태선을 위주로 하는 자는 악법을 모른다며 달마를 배척해 양쪽 종도가 서로 다툼을 그치지 않았고, 결국은 모두 본래의 종지와 본래의 의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참된 불자가 있다는 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무릇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큰 깨달음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긴 분별이요, 언설만 있을 뿐 본래 공적한 것이니, 이를 집착해 불성이라 여겨서도 안 되고 이를 집착해 불성이 아니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만약 불성이라 여긴다면 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허망을 오인해 진실이라 여기게 하는 것이니, 끝내 본래의 면목을 알지 못한 채 미혹에 빠질 것이다. 만일 불성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구하게 하는 것이니, 부처는 분별이 없는 자라 하며 수행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모두 부처의 종자를 단절시키고 소멸시킬 우려가 있다. 그래서 달마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종지를 가리켜 진실은 허망이 아님을 드러내고, 천태는 불성에 악이 갖춰져 있다는 의리를 세워 허망이 곧 진실임을 밝혔던 것이다. 과연 그 종도들이 이것을 본다면 어찌 용렬하게 싸움을 일삼겠는가.
천태에서 수행하는 방편은 지관止觀으로 종을 삼고 호흡(息)과 색色으로 문을 삼으니, 사선·팔정이 그 안에 포섭된다. 이는 임시로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지, 이것으로 궁극의 법칙을 삼는 것은 아니다. 깊이 연구한 자는 그렇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이다. 달마는 벽관壁觀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쳤으니, 그 의도가 천태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달마도 적임자가 없을 땐 자신의 뜻을 오로지 주장하지 않고 병에 따라 치료하는 약을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의 학자들은 어느 종인지 따질 필요 없이 그저 양종의 근본 바탕을 궁구해 도달해야 옳다.
월창 거사가 찬술한 이 『선학입문』은 천태 대사의 『선바라밀』을 요약하여 초학자들의 지침서로 만든 것이다. 김병룡 군이 이 책을 보고서 기뻐하고는 자타에게 모두 이롭게 하고자 인쇄하고 장차 이를 배포하려고 하면서 나 역시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라 여겨 굳이 한마디 해 달라고 청하였다.
而不留迹。苟非其人。難乎契矣。天台立
佛性具惡之義。示衆生之可修。故開廣門
路。而定其方。若含識者。必知歸矣。此以
觀之。達磨之旨。可謂峻絕矣。天台之義。
可謂圓滿矣。在闡佛法中。不可闕一。世
之主達磨者。斥天台以着相。主天台者。
斥達磨以不知惡法。兩宗之徒。相諍不已。
終皆失本旨本義。以至今日。不復聞有眞
佛子。惡乎可也。夫曰善曰惡。大覺中妄
生分別。但有言說。本來空寂。不可執以
爲佛性。亦不可執以爲非佛性。若以爲佛
性。是使衆生。認妄爲眞。終不知本來面
目而沉迷。若以爲非佛性。是使衆生。捨
妄求眞。必以佛爲無分而不修。幷有斷滅
佛種之慮矣。故達磨指即佛之旨。顯眞非
妄。天台立具惡之義。明妄即眞也。果其
宗徒。有見乎此。何庸諍爲。天台所修方
便。以止觀爲宗。息色爲門。四禪八定。收
在其中。是假之調心。非以此爲極則也。
深究者。可知其然。達磨以壁觀。敎人安
心。意趣與天台無殊。然則達磨。不得其
人。不專主其旨。用隨病對治之藥明矣。
今之學者。不必問宗之彼此。但當究到兩
宗之本地可也。此月窓居士所撰禪學入
門。删略天台之禪波羅蜜。以作初學之指
南也。金君秉龍。見而悅之。欲自他俱利。
印而將施之。以余亦隨喜者。固請述一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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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를 사양할 수 없어 외람됨을 잊고 일찍이 스승들에게 들었던 것을 책 끝머리에 적는다.
무오년(1918) 오월(榴月) 하순(下浣)에 학인 오철호吳徹浩 삼가 쓰다.
余辭之不得。忘其僭越。以曾聞之師者
書之後。
戊午榴月下浣。學人吳徹浩。謹書。
발문
모든 수행은 육바라밀을 벗어나지 않으니, 선문禪門은 이 여섯 가지 중 하나의 문일 뿐이다. 삼지三止55)·삼관三觀56)을 핵심 종지로 삼는 것은 천태선天台禪이요,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경전의 가르침 밖 종지로 삼는 것은 달마선達磨禪이라 한다.
무릇 설산 높은 곳에 있는 근원의 샘을 살핀다면 어찌 두 가지라 하겠는가. 하지만 나날이 아래로 흐르다 보면 성난 물결로 또 고요한 못으로 갈래가 나뉘고 달라지기도 한다. 저 후대의 학자들이 뿔뿔이 갈라진 것을 당연하다 한다면, 심지어 서로 질시하면서 창을 들기에 이른다 한들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 그러니 그 문을 얻으면 천태와 달마가 똑같이 한 시대의 바른 종사로서 봄 난초와 가을 국화처럼 제각기 그윽한 향기를 풍길 것이요,
跋
萬行不出六波羅蜜。禪門但是六中之一。
以三止三觀。爲頂門宗旨者。是謂天台禪。
不立文字。以直指人心。見性成佛。爲敎
外宗旨者。是謂逹磨禪。觀夫雪山之高源。
曷云携貳。及其日日流下也。怒潮平潭。
分派或異。宜彼末學支離。甚至相疾視操
戈。何足怪焉。然得其門也。天台逹磨。俱
爲一代正宗。猶如春蘭秋菊。各自幽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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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을 잃어버리면 천태도 달마도 집안을 망치는 머리 깎은 도적을 면치 못해 성안의 여우나 사당의 쥐57)처럼 보기만 해도 미울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선禪이라는 것은 과연 문과 길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학이 둥지를 튼 소나무가 가장 늙고, 독룡이 서린 자리가 유독 맑다.”고 하겠다. 아니면 과연 문과 길이 없는 것일까? 없다면 “유월에 눈이 내려도 무방하고, 쇠로 된 나무에서도 꽃이 핀다.”고 하겠다.
저 달마 문하에 이를 것 같으면 허황된 ‘할’과 장님의 ‘방’이 어찌 그리도 많은가? 어리석음을 익히는 것이 가풍이 되어 이른바 미치광이나 백치가 엄숙한 표정에 눈을 부릅뜨고서 불자를 세우고는 큰 선지식이라고들 하고 있으니, 도리어 천태 문하만 못하다. 문자로 뜻을 온전히 표현하고 뜻으로 이치를 밝혀 오히려 뜻과 이치를 잃지 않으니, 선을 닦는 제자들에게는 (천태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천태선의 방편은 말세의 학인들을 굽어살펴 간곡하게 난관을 뚫어 주고 있으니, 하류의 학인들을 완전히 매몰시키는 달마선보다 뛰어난 점이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 동방에서는 신라 중엽에 고승 법융法融·이응理應·순영純英58)이 석장을 나란히 하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함께 천태 대사의 3세인 좌계 동양左谿東陽 대사59)의 묘법을 얻었고, 그 꽃과 향으로 우리 근역槿域60)의 창생들에게 공양한 세월이 무려 수백 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로는 꽃도 시들고 향기도 사라져 사방을 둘러봐도 텅 빈 산뿐이니, 그 누가 좇아 치자꽃 향기를 맡을 수 있겠는가.
청신사 김병룡金秉龍은 선학을 매우 좋아하였지만 그 들어가는 문이 없음을 심히 개탄하였었다. 그러던 중 월창月窓 거사가 요점을 편찬한 『선학입문』을 얻고는 보시용으로 간행하여 세상에 널리 유포하고자 하였다. 하루는 나에게 발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기에 내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천태선학이 오늘날 되살아난 것이 너무도 기뻐 굳이 사양치 않았다. 그러나 두 선(二禪)의 득실만 서술했을 뿐이니, 그 입문의 차례가 본래의 서문에 다 실려 있어 어쩔 수 없이 생략하였다.
무오년(1918) 오월(榴花月) 상순(上浣)에 우산㝢山 사문沙門 정호鼎鎬61) 삼가 쓰다.
失其路也。天台逹磨。未免破家秃賊。猶
如城狐社鼠。徒見可憎。如是則所謂禪之
爲物。果有門路乎。有則。野鶴巢邊松最老。
毒龍潜處水偏淸。果無門路乎。無則。六月
不妨降雪。鐵樹亦見開花。至若達磨門下。
虛喝盲棒。何其多耶。呆習成風。所謂風
癲白痴者。儼爾怒目竪拂。號爲大善知識。
反不如天台門下。因字以詮義。因義以明
理。尙不失義理。禪弟子之爲愈。於是可見。
其天台禪之方便。俯爲末學。殷勤徹困。
越諸逹磨禪之了沒下學。徑庭已。我東之
新羅中葉。高僧法融理應英純。聯錫游唐。
俱得天台下三世。左谿東陽大師之妙法。
以華以香。供養我槿域蒼生。無慮數百年
之久。洎夫漢陽定鼎之後。華亦萎而香亦
消。四顧空山。其孰從而。能聞夫薝葍華香
者哉。信士金秉龍。篤好禪學。深慨無門。
得月窓居士纂要之禪學入門。思欲公施
將刊布天下。一日屬鎬跋其事。鎬雖不文。
驚喜天台禪學。復活今日。故不敢膠讓。
然但叙二禪之得失而已。及其入門之倫
序。蓋載本序。姑略焉。
戊午榴花月上浣。㝢山沙門鼎鎬謹書。
55)
삼지三止 : 천태종의 교설이다. 첫째 체진지體眞止는 일체만상이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이므로 그 체體가 공空함을 체달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 둘째 방편수연지方便隨緣止는 공하다고 알면서도 가유假有의 존재를 긍정하여 기류機類에 응하여 설법하는 것, 셋째 식이변분별지息二邊分別止는 체진지가 공空에 치우치고 방편수연지가 가假에 치우치므로 중도中道의 이치를 체달하여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56)
삼관三觀 :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중도제일의제관中道第一義諦觀을 말한다. 천태종의 교설이다. 『보살영락본업경』에 설해진 내용에 따른 것으로 흔히 공관空觀·가관假觀·중관中觀이라 부른다.
57)
성안의 여우나 사당의 쥐(城狐社鼠) : 몸을 안전한 곳에 숨기고 나쁜 짓만 일삼는 사람을 비유한다.
58)
원문은 “法融理應英純”이지만, 『佛祖統紀』 권7(T49, 188b)과 같은 책 권50(T49, 444c)에 따르면 형계 담연荊溪湛然의 법을 이어받아 천태학을 신라에 전한 세 분은 법융法融·이응理應·순영純英이라 하였다. 따라서 순영으로 교정하였다.
59)
좌계 동양左溪東陽 : 천태종 제8조인 현랑玄朗(673~754)을 가리킨다. 무주婺州 오상현烏傷縣 사람으로 호는 좌계左溪, 자는 혜명慧明, 속성은 부傅씨이다. 7세에 출가하여 20세에 동양東陽의 청태사에서 율의를 배우고 경론을 널리 연구하였으며, 또 동양 청궁사의 혜위慧威에게 『법화경』·『유마경』·『지도론』·『지관』 등을 배우고 관법을 닦았으며, 아울러 유교와 도교도 연구하였다. 천성이 산림을 좋아하고 세속을 싫어하여 30여 년을 무주 좌계산에 머물며 지관止觀을 닦았다. 저서로 『法華經科文』 2권이 있으며, 그의 제자 형계 담연荊溪湛然(711~782)이 천태종을 부흥시켰다.
60)
근역槿域 : 우리나라의 별칭이다.
61)
정호鼎鎬 : 조선 말기 스님으로 속명은 박한영朴漢永(1870~1948), 법명은 정호鼎鎬, 법호는 영호映湖·석전石顚이다. 전주全州 출신으로 19세에 전주 태조암太祖庵에서 승려가 되어 구암사·백양사·법주사·화엄사·범어사 등지에서 경론을 강하였다. 불교전문학교 교장직을 역임하였고,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조선불교 교정敎正을 지냈으며, 내장사에서 말년을 보냈다. 저서로 『石顚詩鈔』·『石林隨筆』·『石林抄』가 있다.
『선학입문』 跋(ABC, H0254 v10, p.926b17-c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