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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쌍계암 삼소굴 원문보기 글쓴이: 상민 시자
중생(衆生)이란 무엇인가
대승동성경(大乘同性經) 상권
일체불행입지비로자나장설경(一切佛行入智毘盧遮那藏說經)
-천축삼장 사나야사(闍那耶舍)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如是我聞: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 대마라야정묘산(大摩羅耶精妙山) 정상에 있는 마하원림(摩訶園林)의 화지소(華池沼) 옆 대지주신(大持呪神)이 거처하는 곳에 머무셨다. 이곳은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며, 가장 훌륭한 도(道)를 얻은 분만이 거처하는 곳으로 대비구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이들은 모두 마하성문(摩詞聲聞)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끝냈으며, 이미 모든 범부(凡夫)의 경지를 뛰어넘은 이들이었다.一時,婆伽婆住在大摩羅耶精妙山頂摩訶園林華池沼邊大持呪神所居止處人不能行最得道者所居之處,共大比丘千二百五十人俱,一切皆是摩訶聲聞,所作已辦,已過一切凡夫之地。
그들의 이름은 아야교진여 존자와 아설시(5비구 중 한분) 존자와 마하가섭 존자와 사리불 존자와 마하목건련 존자로서 이들과 같은 대성문(大聲聞)들과 함께 계셨다. 또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모두 대보살로서, 보살의 삼매와 다라니의 행(行)을 모두 얻었고, 이미 모든 보살지(菩薩地)에 이르렀다.其名曰:尊者阿若憍陳如、尊者阿說示、尊者摩訶迦葉、尊者舍利弗、尊者摩訶目揵連,與如是等諸大聲聞。復有菩薩摩訶薩衆,皆大菩薩,悉得一切菩薩三昧陁羅尼行,一切已住諸菩薩地。
그들의 이름은 성자(聖者) 미륵보살마하살ㆍ대의(大意)보살마하살ㆍ익의(益意)보살마하살ㆍ견의(堅意)보살마하살ㆍ정의(定意)보살마하살ㆍ무진의(無盡意)보살마하살ㆍ무변의(無邊意)보살마하살ㆍ해의(海意)보살마하살ㆍ정정의(正定意)보살마하살ㆍ정의(淨意)보살마하살ㆍ지의(智意)보살마하살이었다. 이들은 모두 각각의 불국토에서 이미 수기(受記)를 받았으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서의 법륜을 굴리기 위하여 보살이 되었다.其名曰:聖者彌勒菩薩摩訶薩、大意菩薩摩訶薩、益意菩薩摩訶薩、堅意菩薩摩訶薩、定意菩薩摩訶薩、無盡意菩薩摩訶薩、無邊意菩薩摩、訶薩海意菩薩摩訶薩、正定意菩薩摩訶薩、淨意菩薩摩訶薩、智意菩薩摩訶薩,如是等一切各各佛剎已得受記,爲阿耨多羅三藐三菩提轉法輪故。
또 가장 높고 훌륭한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又)ㆍ건달바(揵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지주신(持呪神)ㆍ비인(非人) 등이었으니, 갖가지 용모에 천관(天冠)을 쓰고 의복을 입었으며, 기장(器杖)ㆍ당번(幢幡)ㆍ일산(日率:蓋)들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귀신과 선인(仙人)의 무리들이 모두 와서 법을 듣기 위하여 모여 앉았다.復有最上最勝天、龍、夜叉、揵闥婆、阿修羅、迦樓羅、緊那羅、摩睺羅伽,幷持呪神及非人等,種種形容、天冠衣服,執持器杖幷諸幢蓋,及諸鬼神、仙人衆等,皆來 集坐爲欲聽法。
이때 세존께서 큰 바다와 같은 대중에 의해 앞뒤로 둘러싸였다. 설법은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한결같이 훌륭하였으며, 그 뜻은 심원(深遠)하고 그 말씀은 오묘했으며, 청정한 범행(梵行)을 모두 갖추어 자세히 설명하셨다.爾時世尊,衆如大海前後圍繞,有所說法初中後善,其義深遠其語巧妙,具足廣說淸淨梵行。
이때 능가대성(楞伽大城) 안에 비비사나(毘毘沙那)라는 나찰왕이 그곳을 다스리며 교화하고 있었다. 그때 비비사나 능가왕(楞伽王)이 부처님께서 지금 대마라야정묘산 정상 마하원림의 화지소(華池沼) 옆에 있는 대지주신(大持呪神)의 거처이자,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며 가장 높은 도를 얻은 분만이 거처할 수 있는 곳에 1,250명의 비구와 함께 나타나시어 범행을 말씀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爾時楞伽大城之中,有羅剎王名毘毘沙那,治化於彼。時毘毘沙那楞伽王,聞佛今住大摩羅耶精妙山頂摩訶園林華池沼邊大持呪神所居之處人不能行最得道處,與千二百五十比丘現說梵行。...중략...
이때 비비사나 능가왕이 공양을 마치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의심나는 것이 있어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 여쭈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도리(道理)를 명확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爾時毘毘沙那楞伽王,供養訖已白佛言:“世尊!我今有疑,欲問如來、至眞、等正覺,唯願世尊,爲我開解。
”
이 말을 하고 나자, 부처님께서 능가왕에게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내가 항상 너에게 의심나는 것을 부처에게 묻도록 열어 놓았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너를 위하여 설명하여 마음에 환희를 얻도록 해 주리라.”說此語已。佛告楞伽王言:“楞伽王!吾常開汝問佛所疑,隨汝意樂,當爲解說令心歡喜。”
이때 능가왕이 허락을 받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을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뜻으로 ‘중생’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時楞伽王得開許已,白佛言:“世尊,衆生衆生者,世尊!以何義故名爲衆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중생을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연(緣)이 화합하였으므로 이름하여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佛言:“楞伽王!衆生衆生者,衆緣和合名曰衆生,
말하자면 흙(지地)과 물(수水)과 불(화火)과 바람(풍風)과 허공[空]과 식(識)과 명색(名色)과 6입(入;6근-안이비설신의)의 인연으로 생긴 것이다.所謂地水火風空識名色六入因緣生。
또 중생이란 마치 대나무를 묶어 놓음[束竹]과 같아서, 업에 의지하는 까닭에 보(報;자업자득)가 있으며, 업에 의지하므로 과(果)를 얻는다. 又衆生者,猶如束竹,緣業故報、緣業得果,
나[我;아상]와 인(人;인상)과 중생(衆生;중생상)과 수명(壽命;수자상)과 축생[畜養] 등의 여러 가지와 앎의 주체와 보는 것의 주체와 행위의 주체와 닿음의 주체와 받음의 주체[受者; 업으로 인하여 몸을 받은 자]를 중생이라 이름한다.”我、人、衆生、壽命、畜養、衆數、知者、見者、作者、觸者、受者,是名衆生。”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은 무엇으로 근본을 삼으며, 무엇에 의지하여 머물며, 무엇이 인(因; 인연의 인因을 말함)이 됩니까?”毘毘沙那楞伽王言:“世尊!彼衆生者,以何爲本?依何而住?以何爲因?”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능가왕이여, 중생은 무명(無明)을 근본으로 하고, 애착(탐욕)에 의지하여 머물며, 업(業; 3업 신구의)이 인이 되는 것이다.”佛言:“楞伽王!此衆生者,無明爲本,依愛而住,以業爲因。”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업에는 몇 종류가 있습니까?” 毘毘沙那楞伽王言:“世尊!業有幾種?”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업에는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업이다. 佛言:“業有三種。何等爲三?身、口、意業,
다시 세 가지 모습[相]이 있으니, 깨끗함[淨]과 깨끗하지 않음[不淨]과 깨끗하지도 않고 깨끗하지 않음도 아닌 것[非淨非不淨]이다.”復有三相,淨、不淨、非淨非不淨。”
비비사나 능가왕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이 이 수명을 버리고 저 수명을 받으며, 이 옛 몸을 버리고 저 새로운 몸을 받습니까?”時毘毘沙那楞伽王復白佛言:“世尊!云何衆生捨此壽命受彼壽命,捨此故身受彼新身?”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중생은 이 몸을 버리고 나면, 업의 바람이 부는 힘으로 식(識; 의식〔영혼〕)이 옮겨져 떠나게 되며 스스로 지은 업으로 그 과(果)를 받는다. 佛言:“楞伽王!衆生捨此身已,業風力吹移識將去,自所造業而受其果,
선(善)과 불선(不善)과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것[非善非不善]이니, 중생이 만약 이와 같은 업행(業行)을 지으면, 곧 그로 인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몸을 받는다. 若善及不善、非善非不善,衆生如此造業行者,卽於彼處而受新身,
혹은 알[卵]로 태어남을 받고 혹은 습(濕)으로 태어남을 받고 혹은 태(胎)로 태어남을 받고 흑은 홀연히[化] 태어남을 받으니, 이 모두가 업의 바람이 만드는 것이다.或受卵生、或受濕生、或受胎生、或受化生,皆是一切業風所造,
그러나 업 역시 스스로 만드는 줄을 알지 못한 채, 각기 스스로 보(報; 과보)를 받는다. 而業亦不自知所造,各自受報。
능가왕이여, 중생이 이와 같이 이 몸과 목숨을 버리고 저 새로운 몸을 받는다.”楞伽王!衆生如是,捨此身命受彼新身。”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이 몸과 목숨을 버리고 미처 저 몸을 받지 못하면, 그 중간에 식(識; 중음신 / 中有)은 어느 곳에 머뭅니까?”楞伽王言:“世尊!衆生捨此身命未受彼身,於其中閒識停何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네 생각은 어떠한가? 밭에서 씨앗이 싹트게 될 때에, 씨앗이 먼저 없어진 후에 싹이 생기게 되느냐. 그 싹이 먼저 생긴 후에 씨앗이 없어지게 되느냐? 아니면 오직 씨앗이 없어질 때 즉시 그 싹이 생기게 되느냐?”佛言:“楞伽王!於汝意云何?田中種子至生牙時,爲當子先滅已然後牙生?爲當其牙先生然後子滅?爲當唯子滅時其牙卽生?”
비비사나왕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毘毘沙那王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그럼 무엇이냐?”佛言:“楞伽王!是義云何?”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 씨앗이 없어지면 곧 그 싹이 생기는 것입니다. 먼저 씨앗이 없어진 후에 싹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먼저 싹이 생긴 후에 씨앗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楞伽王言:“世尊!其子若滅其牙卽生,非先子滅然後牙生,非先生牙然後子滅。”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능가왕이여, 식(識; 의식/영혼)이 먼저 없어진 후에야, 식이 비로소 생기게 되는 것은 아니다.佛言:“如是。楞伽王!非識先滅後識方生。
능가왕이여, 또 먼저 전식(前識)이 생기고 나서 후식(後識)이 비로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능가왕이여, 오직 후식이 없어지면서 전식이 곧 생기는 것이다.楞伽王!亦非先生前識後識方滅。楞伽王!唯後識滅前識卽生。
능가왕이여, 마치 자벌레가 먼저 앞부분을 놓은 다음 그 후에 뒷부분이 따라가며 그 모습이 굽혔다 폈다 하면서 중간에 단절됨이 없는 것과 같이 그런 것이다. 楞伽王!如步屈虫,先安頭足次後足隨,其形屈申閒無斷絕。如是如是,
능가왕이여, 이 신식(神識; 中有)이 먼저 유〔有; 4유(生有.本有.死有.中有)〕 중에서, 태어날 곳을 보고 확실히 알고 나면, 식(中有)이 곧 저곳으로 옮겨가서 기탁(生有)하는 것으로, 중간에는 단절됨이 없게 된다.”楞伽王!此之神識,見前有中生處了已,識卽令移託就於彼,閒無斷絕。”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그렇다면 중음(中陰; 中有)은 없습니까?”毘毘沙那楞伽王言:“世尊!若如是者,無中陰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한 종류의 중생이 있다. 알로 태어나는 것[난생 卵生]이 이러한 것이다. 佛言:“楞伽王!一種衆生卵生是也,
이 몸을 버리고 나서 알 속에 들어가면(生有 단계), 이 신식이 업풍(業風)에 잡혀서 알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어둡고 어리석어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바뀌어서 식(生有)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깨달아 알게 된다. 捨此身已入於卵中,而是神識業風所捉,停住卵中昏鈍不覺,及至覆成識方覺了,
이렇게 되면 저 알은 이미 성숙된 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알로 태어나는 중생의 법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미처 성숙되지 못했을 때는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그 까닭은 업력(業力) 때문이다.當知彼卵已爲熟也。何以故?卵生衆生法如是故。未成熟時不覺不了。所以者何?爲業力故。
능가왕이여, 또 어떤 중생은 복력(福力)이 순수하고 두터워 전륜성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니, 그는 태에 있으면서도 태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또한 태와 함께하지 않으며, 부정(不淨)과 함께 머물지 않으며 또한 더럽혀지지도 않는다.楞伽王!復有衆生福力純厚,得於轉輪王家作子,而彼在胎不爲胎污,亦不與胎不淨共住亦不污染。
능가왕이여, 그 전륜왕의 소생인 아들은 대부분 화생(化生)을 받는다. 비록 태를 받으나, 처음 태중에 들어갈 때 이미 몸이 다 만들어져 있으며 태어난 후에 막을 깨고 몸이 나온다.楞伽王!其轉輪王所生子者多受化生,設受胎者,初入胎中結子已成,及生出後破膜出身。
능가왕이여, 이러한 인연으로 중음이 있다고 말한다.”楞伽王!是因緣故說有中陰。”
이때 비비사나 능가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신식(神識; 中有)은 얼마나 크며, 어떤 색을 하고 있습니까?”時毘毘沙那楞伽王言:“世尊!衆生神識爲當幾大?爲作何色?”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중생의 신식은 끝이 없이 크며, 색도 없고 상(相)도 없어 볼 수도 없으며, 걸림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정해진 곳도 없어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佛言:“楞伽王!衆生神識無邊大,無色無相、不可見,無㝵無形無定處、不可說。”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식(識)의 모습이 이와 같이 끝이 없이 크고, 색도 없고 상도 없어 볼 수 없으며, 걸림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정해진 곳도 없어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단절(斷絶)이라고 하지 않습니까?”毘毘沙那言:“世尊!識相如此無有邊大,無色無相不可見,無㝵無形無定處不可說者,豈非斷絕?”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네 마음대로 대답하여라.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佛言:“楞伽王!吾今問汝,隨汝意答,當爲汝說。
능가왕이여, 비유하면 대왕이 궁전 안에 있거나 혹은 높은 누각 위에 있으면서 화려하게 차린 여자[婇女]에 둘러싸여 가지가지 옷을 입고 모든 영락을 두르고 안락하게 앉아 있을 때, 대원림(大園林)의 아수가(阿輸歌/무우수 無憂樹)나무에 온갖 여러 가지 꽃으로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고, 그 정원이 있는 곳에 산들바람이나 크고 빠른 바람이 저 원림의 아수가나무에 불어 여러 꽃의 향기가 왕이 있는 곳에 이른다면, 왕이 맡을 수 있겠느냐?”楞伽王!譬如大王在宮殿中或高樓上,婇女圍遶安樂坐時,著種種衣及諸瓔珞。時大園林阿輸歌樹,種種雜華莊嚴精麗,其園在處有細軟風或大駃風,吹彼園林阿輸歌樹,衆華香氣至王所者,王聞之不?”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毘毘沙那白言:“世尊!我聞此香。”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네가 그 향기를 맡고 분별하여 알 수 있겠느냐?”佛言:“楞伽王!汝聞此香,分別知不?”
왕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알 수 있습니다.”王言:“世尊!我能得知。”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이 꽃의 향기를 왕이 안다고 말하는 것은, 크기를 본 것이냐, 어떤 색을 하고 있는지 판단한 것이냐?”佛言:“楞伽王!此華香氣王言知者,見大小耶?定作何色?”
능가왕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향기의 모습은 색이 없고 나타남이 없으며, 걸림도 없고 상(相)도 없으며, 정해진 곳도 없어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기와 형색(形色)을 볼 수 없습니다.”楞伽王言:“不也。世尊!何以故?此香氣相,無色無現、無㝵無相、無定處、不可說,是故不見大小形色。”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능가왕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약 저 향기의 크기를 알 수 없다면 단절된 모습[相]이 아니겠느냐?”佛言:“楞伽王!於意云何,若不見彼香氣大小,非斷絕相耶?”
비비사나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여러 향기가 단절된 모습[相]이라면 어떤 사람도 맡을 수가 없습니다.”毘毘沙那言:“不也。世尊!何以故?若此衆香是斷相者,無人得聞。”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능가왕이여, 식의 상[識相; 의식의 모습]도 역시 그러하므로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佛言:“如是如是。楞伽王!識相亦爾,應如是見。
능가왕이여, 만약 식(識; 의식)이 단절된 상(相)이라면 생사를 알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다. 楞伽王!若識斷相,則無生死而可得知。
이와 같아서 능가왕이여, 식의 모습은 본래는 청정하나, 오직 이 무명(無明)과 탐애(貪愛)와 습기(濕氣)와 업(業) 등의 모든 객진번뇌[客塵煩惱; 외부로 부터의 번뇌]에 덮이고 가로막힌 것이다.如是楞伽王!識相淸淨,唯是無明貪愛習氣業等,諸客煩惱之所覆障。
능가왕이여, 비유하면 마치 청정한 허공계(虛空界)가 오직 네 가지 객진〔(객客; 근본이 없는 나그네와 같다은 의미. 진塵; 마음의 장애)으로 오염된 것과 같다. 楞伽王,譬如淸淨虛空之界,唯有四種客塵污染。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아지랑이와 구름과 먼지와 안개이다. 何等爲四?所謂煙、雲、塵、霧。
능가왕이여, 식의 모습도 이와 같아서 본래부터 청정한 까닭에 끝이 없어 잡을 수 없으며 색에 물듦이 없었으나, 오직 이 모든 객진번뇌에 덮이고 오염된 것이다.楞伽王!識相如是,本淸淨故,無邊、不可捉、無有色染,唯是諸客煩惱之所覆染。
왜냐하면 능가왕이여, 만약 바르게 관(觀; 관조 觀照; 위빠사나)할 때에는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所以者何?楞伽王!若正觀時不得衆生,
나[我; 아상]도 없고 중생(중생상)도 없으며, 수명(수자상)도 없고 축생도 없으며, 남[人; 인상]도 없고 중생수(衆生數)도 없으며, 無我、無衆生、無壽命、無畜養、無人、無衆生數、
앎의 주체[知者]도 없고 봄의 주체[見者]도 없으며 깨달음의 주체[覺者]도 없고 받아들임의 주체[受者]도 없고 들음의 주체[聽者]도 없으며, 無知者、無見者、無覺者、無受者、無聽者,
또한 물질(색色)과 받아들임(수受)과 생각(상想)과 행동(행行)과 식(識) 등(5온/5음; 육신)도 없다.乃至無色、受、想、行、識等。
능가왕이여, 만약 바르게 관(관조 觀照)할 때는 분별할 만한 것이 없다.楞伽王!若正觀時無有分別而可得者,
능가왕이여, 모든 법은 화합(5온)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실상(實相)이 없다. 楞伽王!諸法和合無有實相。
너는 비록 이 중생의 실상을 얻는다고 하여도, 이 생(生)의 유위(有爲)의 광야를 버리지 말라. 汝雖得是衆生實相,亦莫捨此生有曠野。
무엇을 이름하여 ‘중생의 실상을 얻는다’고 하는가? 저 대지동성(大智同性)을 얻는 것을 말한다.”云何名得衆生實相?所謂得彼大智同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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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현식경(大乘顯識經) 상권
-중천축국(中天竺國) 지바하라(地婆訶羅) 한역
현호(장자)는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몸이 어찌하여 식(識; 심의식 心意識)을 받나이까?”賢護復白佛言:“此身云何稟受於識?”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이 식(의식 意識)은 쌓음도 모음(5온)도 없고, 또한 생장함도 없나니, 佛言賢護:“此識無積無聚亦無生長,
비유컨대 싹이 날 때에 종자가 변치 아니하고 생긴 것이 아니며, 또한 종자가 무너져서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싹이 생길 때엔 종자는 곧 변하고 허물어지느니라.譬如牙生,非種不變而生,亦非種壞而生,然牙生時種則變毀。
현호여, 뜻에 어떠하느냐? 그 싹이 있는 바는 어느 곳에 그치느냐? 종자냐, 가지냐? 줄기와 가지와 잎이냐?”賢護!於意云何?其牙所在,止於何處?子耶?枝耶?莖柯葉耶?止樹頭耶?”
현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싹은 그치는 바 없나이다.”賢護白佛言:“不也!世尊!牙無所止。”
“이와 같으니라, 현호여. 식이 몸에 있어서 그치는 곳이 없나니, 눈도 아니며, 귀와 혀와 몸 등이 아니다. 如是,賢護!識之在身止無處所,非眼非耳鼻舌身等,
종자가 싹이 날 때는 식이 조금 지각함 같으며, 나아가 꽃(色)이 결합할 때에 식의 감수[受]가 함축함과 같으며, 꽃이 필 때와 열매를 맺을 때에 이르러서는 식이 몸이 있는 것 같다(想). 種生牙時,如識微覺,乃至花結合時,如識有受,含開花發時至結果,如識有身。
식이 몸에서 나와서 몸과 사지에 하나 식의 그치는 바를 찾아보면 그 처소를 얻을 수 없고, 만일 식을 제외하고는 몸이 곧 나지 못하리니, 나무에 과일이 익으면 능히 장래 나무의 종자가 되어 익지 않은 것 아님과 같으니라.“識之生身遍身支體,求識所止莫得其所。若除於識身則不生,如樹果熟,堪爲將來樹之種子,非不熟者。
이와 같이 과보가 성숙되고 몸이 죽으면, 식의 종자가 문득 나타나며, 식으로 인하여 수(受)가 있고, 수로 인하여 애(愛)가 있고, 애에 얽매여 문득 생각(상想)을 내며, ”如是報熟身死,識種便現,因識有受,因受有愛,繫著於愛便生於念,
식이 생각을 섭취하여 선악의 업을 따르고, 풍대(風大)와 아울러 부모 생각할 줄을 알며, 인연이 합하여 대하매 식이 문득 의탁하나니, 識攝取念隨善惡業,與風大幷知念父母,因緣合對,識便託之,
마치 사람의 얼굴 그림자가 거울에 나타남과 같다. 깨끗하지 않고 밝지 않으면 얼굴 모양이 나타나지 않고, 거울이 밝은데 얼굴을 대하면 그림자 모양이 이에 나타나니, 如人面影現之於鏡,非淨非明面像不現,鏡明面對影像乃現,
거울 속의 모양은 수(受)도 생각도 없건만, 사람의 몸을 따라 구부리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며, 입을 열고 농담하며 가고 오고 행동하며, 가지가지로 운동하느니라. 鏡中之像無受無念,而隨人身屈申俯仰,開口談謔,行來進止,種種運動。
현호여, 그림자 모양은 누구의 힘으로 나타난 것이냐?賢護!影像現誰之力也?”
현호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는 사람의 힘이니, 얼굴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그림자가 있으며, 그림자 모양의 형색은 얼굴의 형색과 같고, 감관[根]이 구족하고 구족하지 못함도 모두 다 얼굴과 같나이다.”賢護白佛言:“是人之力,由有面故而有面影,影像之色如面之色,根具不具咸悉如面。”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얼굴은 그림자의 원인[因]이 되고, 거울은 그림자의 인연[緣]이 되나니, 원인과 인연이 화합하므로 그림자가 나타남이 있다. 佛言:“面爲影因,鏡爲影緣,因緣和合故有影現。
식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수(受)ㆍ상(想)ㆍ행(行) 및 심소(心所)가 있고, 부모가 인연이 되어 인연이 화합하므로 몸이 나타남 있나니, 由識因故,有受想行及諸心所,父母爲緣,因緣和合而有身現。
저 몸과 거울과 같다. 거울 속의 그림자는 몸이 가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몸이 있으면 그림자 모양이 나타나며, 혹은 달리 물 등의 속에도 나타나니,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선악(善惡)의 업을 가지고 옮겨서 다른 과보를 받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如彼身鏡,鏡中之影身去影滅,身持影像,或別現於水等、之中;識棄此身,持善惡業遷受餘報,亦復如是。...중략...
대추와 석류와 암라암륵(菴羅菴勒)과 비라(鼻螺)와 갈수(渴竪)와 겁필타(劫必他) 등 가지가지 과일이 혹 맵고 혹 쓰고 혹 시고 혹 달고 혹 짜고 혹 떫고 하여 맛의 힘이 각기 다르고 소화시키는 그 공효도 한결같지 않으며, 과일이 부패함에 당해서는 맛의 힘이 종자를 따라 옮겨 변화하여 생기나니,如棗、石榴、菴羅、菴勒、鼻螺、渴豎、劫必他等種種之果,或辛或苦或酸或甜或鹹或歰,味力各別,消熟所資,其功不一,及果壞已,味力隨種遷化而生。
이와 같은 식(의식)의 종자도 그 옮기는 바를 따라 수(受)와 염(念)과 선(善)과 악(惡)이 모두 다 따라가서, 이 몸을 버리고 다른 과보의 몸 받을 줄을 알기에 식(識)이 된다고 이름한다. 如是識種隨其所遷,受念善惡咸悉隨之,知棄此身受餘報身,故名爲識;
선악의 업을 알며, 업(業)이 나[我]를 따름을 알며, 나[我]가 업을 가지고 옮겨 변화하여 과보 받음을 알기에 식이 된다고 이름한다. 몸이 하는 바를 모두 다 알기에 식이 된다고 이름한다.知善惡業知業隨我,知我持業遷化受報,故名爲識;身之所爲咸悉知之。故名爲識。
비유컨대 바람의 형체는 취할 수 없고 형질을 잡을 수 없지만, 인연으로써 모든 사업을 짓기에 ‘바람이 있어서 차가움과 뜨거움을 지니고 향내와 악취를 옮기고 나무숲을 흔들며, 혹은 치고 불리며 꺾고 타격한다고 말한다. 譬如風大,無形可取,無質可持,以因緣故作諸事業,表有風大,持冷持熱,運香運臭搖振林木,或鼓扇摧擊;
이와 같아서 식도 형질이 없고, 보고 듣는 것으로 취할 바가 아니나, 인연으로써 식의 모양이 골고루 나타나고, 식으로 말미암아 몸을 부지하고, 몸으로 괴로움과 즐거움을 알며, 광채와 윤기가 충실하고 가고 오고 하며, 말하고 웃고 즐겨 하고 근심하며 사업이 밝게 나타나나니, 식이 있는 것으로 알아야 하느니라.”如是識無形質,非視聽所取,以因緣故識相具顯,由識持身,身知苦樂,光色充盛行來進止,言笑歡憂事業昭著,當知有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