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가 경외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다. K-방산의 신화와 막강한 하드파워로 대륙과 해양을 압도하는 군사대국이며, 반도체와 첨단 기술로 글로벌 공급망을 주도하는 경제대국이다. 전 세계가 한글과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명실상부한 문화강국이기도 하다. 우리의 외형은 이토록 찬란하고 거대해졌지만, 그 외형을 지탱해야 할 우리의 정신, 즉 ‘국사(國史)’는 여전히 식민사관이 그어놓은 반도의 감옥과 외세의 역사 침탈공정 앞에 사슬로 묶여 있다. 이제 우리는 군사·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빼앗기고 지워진 ‘국사’의 본연을 찾아 역사주권을 강고히 확립하는 제2의 독립선언에 나서야 한다.
한 국가의 주권은 영토와 국민뿐만 아니라 그 공동체가 걸어온 ‘시간과 공간의 정통성’을 스스로 수호할 때 완성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국사는 사방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와 대진(발해)를 넘어 우리 민족의 시원이자 국사의 출발점인 단군조선(檀君朝鮮)마저 자국의 지방정권으로 편입하려 획책하고 있다. 고대 조선의 서쪽 경계를 어떻게든 한반도 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이 거대한 역사 침탈의 중심에는, 고대 행정구역인 기주(冀州)와 유주(幽州)를 후대의 만주와 대동강 유역으로 고착화시킨 지리적 기만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적 대국(大國)의 반열에 오른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현실을 방치하고 묵인할 것인가. 이제는 잃어버린 국사를 찾아 주권국의 자존을 증명해야 할 때다.
중원 왕조가 스스로 남긴 가장 오래된 1차 원전 텍스트들을 철저한 문헌학적 메스로 해체해 보면, 그들이 감추려 했던 공간의 진실이 명백히 폭로된다. 『상서(尙書)』 「우공(禹貢)」, 『여씨춘추(呂氏春秋)』, 『회남자(淮南子)』, 『주례(周禮)』 등 선진(先秦) 시기 성립된 최고의 지리 서적들은 공통으로 기주와 유주의 원초적 발원지가 지금의 요령성이나 북경이 아니라, 황하가 ‘ㄷ’자로 꺾여 도는 산서성(山西省) 남부(하동)와 그 북안인 하내(河內) 지역이었다고 일관되게 증언한다.
『상서』의 호구(壺口)와 담회(覃懷)가 명백히 산서성 남부와 하내 공간을 지시하고 있으며, 『회남자』 「지형훈」은 고대 북방의 상징인 유주(幽州)에 대해 “그 땅은 하동(河東, 산서성 남부)에 있다”고 직설적으로 명시했다. 즉, 초기 중원 문명과 대륙의 북방 세력이 국경을 맞대고 격렬하게 교섭하던 시원적 접경 지대는 바로 황하 절곡부 내부의 산악지대였다. 그러나 제국이 성장하고 세력을 북동쪽으로 확장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쓰던 방위 지명들을 새로 획득한 영토인 요서와 요동으로 투사하며 이동시켰다. 이것이 바로 역사지리학의 핵심법칙인 ‘지명이동(Toponymic Migration)’이다. 중국 사학계는 이 지명의 유랑 궤적을 은폐한 채 고대 지도를 사후 가공하여 우리의 국사를 반도 안으로 유폐시켰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선서하는 헌법 제69조의 ‘국가 보위 책무’는 눈에 보이는 국경선만을 지키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민족의 정체성이 담긴 시간의 주권, 즉 국사를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가 보위의 본질이다. 요서 지역의 하가점하층문화 등 독자적 청동기 유적들은 문헌 속 지명이동의 궤적과 완벽하게 맞물려 단군조선이 중원 세력의 동진에 맞서 강력한 대륙적 실체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물질적 화석들이다. 이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도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거나 학계의 타성에 젖어 침묵하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을 스스로 저버리는 부끄러운 직무유기다.
하드파워의 비대화에 걸맞은 소프트파워, 즉 역사와 정체성의 방패가 강고하지 못하다면 우리가 이룩한 대국의 위상은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다. 국사찾기는 철 지난 국수주의나 학술적 유희가 아니다. 왜곡된 지리관의 장막을 걷어내고, 고대 동아시아 문명의 당당한 주역이었던 우리 상고사의 시간과 공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주권국의 당연한 권리선언이다. 정부와 학계, 그리고 언론은 이제라도 잃어버린 국사를 되찾는 장엄한 여정에 나서야 한다. 가공된 장벽을 깨고 대륙을 호령하던 우리 역사 본연의 지평을 강고히 구축하라. 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자존으로, 이제는 당당하게 우리의 시원적 시공간을 완전히 탈환해야 할 때다.
임기추 (홍익경영전략원 원장 / 역사광복연대 대표 / 국사찾기협의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