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길과 시골길
남진원
일상적인 사물은 이웃과의 관계에 의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이런 겉모습에 우리는 자칫 정신을 잃기 쉽다.
시골에 시골길이 살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깔보고 우습게 본다고 여겼다. 그래서 시골길은 늘 불만을 안고 지냈다. 시골길은 사람들이 자신을 밟고 다니면서도 고마움도 모른다고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길로 임금님이 지나가게 되었다. 시골길은 임금님이 지나가면서부터 ‘임금님의 길’이란 영과스러운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길을 지나갈 때 황송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걸었다.
시골길은 한동안 으쓱하였다. 자신을 보두 우러러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이름이란 것이 매우 쓸모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멋있는 이름을 얻었을 때나 평범한 시골길이었을 때나 자신이 달라진 것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처음엔 자신이 남을 깔보는 마음을 가졌다가 지금은 자신이 남을 깔보는 교만한 마음 뿐이었다.
일상적인 사물의 모습을 알아보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나와 주위의 관계, 그리고 모양과 색깔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정신차리기를 하여야 한다.
‘길’은 ‘길’ 그 자체로 크고 위대하다.
( 동해안시대문학 8집 머리글. 2002. 7.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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