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수행자가 보리수 아래에서 더 이상 위가 없는 마지막 깨침을 얻으니..
그것은 나와 세계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에 그려진 비다오임을 보았다.
존재 세계를 벗어나 마음에 흠뻑 노닐며 즐기다 문득
이 행복을 홀로 즐기는 건 사랑과 자비가 아니라는 생각에 세상에 전해야겠다고 하다..
숨이 잠시 멈추었다.
어느 누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계가 진실이 아닌 마음에 그려진 비디오임을 어찌 이해하리요..
그들은 오히려 무슨 사기극이냐며 화를 내며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그러자구나. 그냥 침묵 속에 조용히 열반에 머물고 있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세상에 나온 부처님 가르침은
사람에 따라 이렇게 혹은 저렇게 이해되어 장님이 만진 코끼리 주장처럼 부딪히니..
세존께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법을 전하지 않고.. 상대 수준에 맞추어 알아들을 수 있는 법을 전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불법이 문자화되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게 되면서 부처님 법에 대한 이해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논란의 핵은 12처에 대한 이해였다.
어느 날 명석한 바라문이 세존을 찾아와 일체는 어떻게 생기냐고 질문을 한다.
세상에는 브라흐마가 일체를 창조했다는 설과 유물론자들의 원소 화합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석가세존은 그것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들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려고 세존을 찾아와 질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석가세존은 일체는 안과 색, 이와 성, 비와 향, 설과 미, 신과 촉, 의와 법에 의해 생긴다 고 하셨다.
지금 우리가 들어도 금방 이해가 안되는 설명인데.. 용케도 바라문은.. 일체는 주체인 나와 대상인 만나 생긴다는 것으로 일체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창조설이나 원소설과는 분명히 다르니.. 기뻐하며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바라문은 자기 눈높이로 이해한 것이지 세존께서 가르치려는 법높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라문의 문제일 뿐 아니라 불교 역사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단 세존의 12처 설명은 주체인 나에게 있는 6개 감촉기능과 그에 대응되는 대상에 존재하는 6개 기능이니..
보는 자[안]와 보이는 대상[색]이 만나면 보는 일체가 생기고, 듣는 자, 느끼는 자, 기억하는 자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일체가 생긴다는 것처럼 보인다.
질문자인 바라문은 그렇게 이해했고.. AD 이후 상좌부 불교에서도 그렇게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보는 자인 안과 보이는 대상인 색이 만나기 전에.. 안과 색은 선험적 apriori으로 있는 것으로 보고..
접촉된 것들을 종합하고 분석하는 기능인 여섯번 째 의(意)에 의해 각자가 이해하는 일체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상좌부에서 의와 법을 제외한 10처는 감각 작용을 일으키는 5근5경과 다른 게 아닌 것으로 보았고..
의와 법의 만남은 보다 철저히 관찰해야만 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부처님 당시 세상은 일체는 이미 존재하며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6근과 만나 인식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깨치고 보니 그게 아니다.
일체인 세상은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 각자 마음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일체가 이미 그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일체 괴로움은 이미 존재한다고 알고 있는 것에서 생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리며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저들의 착각을 어떻게 하면 깨뜨릴 수 있을까..
그 결과 6근6경이란 존재 말 대신에 같은 것처럼 알고 있지만.. 마음이 만든 '12처'란 말을 새로 만들어..
일체는 2법6쌍인 12처 곧 안과 색, 이와 성, 비와 향, 설과 미, 신과 촉, 의와 법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앞에서 말했듯이 일체는 이미 존재하는 게 아닌 것을 강조했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더욱 12처를 6근6경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뿐이었다.
그와같은 상좌부 불교를 부정하고 나온 반야부 논사들도 <구사론> 같은 상좌부 논서를 근거로 삼고 있었기에 마음에서 생긴 12처를 존재인 6근6경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만일 반야부에서 12처가 심연생임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지금도 대부분의 불자들은 12처를.. 존재를 전제로 하는 6근6경의 활동으로 국한하여 결국은 같은 말로 이해하고 있는 판이다.
소수와 다수가 다투게 되면 다수가 이긴다는 것은 세상의 진리다.
12처는 심연생으로 마음에서 생긴 것임을 석가세존이 간곡히 가르쳤건만 후인들이 오해하여 12처를 존재어인 6근6경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무지한 다수는 코웃음도 아니 친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오면서 과학 문명 시대라 불리는 오늘은
12처는 존재인 6근6경과 다른 마음을 연해 생긴 것[심연생]이라는 설명을
다수가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기존의 6근 설명이란 안이비설신 5근은 존재하는 감각기관으로 대상과 만나 감촉하고 있으며, 오로지 의근은 정신적인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뇌 안에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의처는 물론 안처, 이, 비, 설, 신처인 5처 역시 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용임을 밝혀낸 것이다.
그 증명은 바로 우리가 외부에 있는 대상을 접촉해 작용하는 5근의 작용이 실은 뇌 안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보는 마음[안처], 듣는 마음[이처], 냄새맡는 마음[비처], 맛아는 마음[설처], 촉하는 마음[신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근을 통해 틀어온 대상의 색은 신경 전달 세포를 통해 뇌에 전해지면, 마음에 보려는 안처에 보이는 색처가 만나는 작용이 일어나 비로소 본다는 작용이 일어난다.
이해되지 않는가?^^ 그 이해하는 능력은 불교가 아닌 현대 과학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괴거.. 석가세존 시대에는 일반인은 물론 그의 제자들이 보는 자는 눈이 아니라 뇌 속에서 마음이 보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새삼 정리해 보자.
사물을 볼 때 과거에는 눈이 외부에 있는 것을 본다고 알았는데.. 사실은
1. 대상의 색이 눈에 들어오면 신경 세포가 뇌에 전달하여
2. 뇌 안에서 마음이 보는 작용이 일어나 보았다는 마음[식]이 일어나면..
3. 마음은 그것을 눈을 통해 외부로 투사하여 '저기에 사물이 있다' 고 아는 것이다.
이 작용은 순식간 찰라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눈이 사물을 직접 즉각적으로 보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것을 <잡.214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보는자(眼)와 보이는 것(色)을 연하여 본앎(眼識)이 생기니,
그것은 무상하고 유위(有為)이며 마음을 연하여 생긴 것이다[心緣生].
만일 보는자와 보이는 것과 본앎이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연하여 생긴 것[心緣生]이라면,
이 세 가지 법이 화합하는 접촉[觸], 접촉 뒤의 느낌[受], 느낌 뒤의 생각[想], 이러한 모든 법도 다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연하여 생긴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른바 접촉[觸]·느낌[受]·생각[想]·의도[行]이다.
듣는자(耳)·냄새맡는자(鼻)·맛보는자(舌)·접촉하는자(身)·의하는자(意)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간단히 보충 설명해 보면..
안처와 색처가 마음에서 만나면 안식이 생긴다.
만일 안과 색과 안식이 마음을 연해 생긴 것을 안다면 5온인 색수상행식이 모두 마음을 연해 생긴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또한 의처와 법처는 당연이지만 이처와 성처.. 역시 모두 마음을 연해 생긴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치적 순서는 안과 색이 만나 안식이 생기지만..
우리는 안식이 생기면 그때서야 안식은 안과 색의 만남으로 생긴 것임을 나중에 안다.
즉 안식이 생기기 전에는 보는 눈이, 보이는 대상이 있는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안과 색이 있으니 안식이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이해가 되시는지?^^.
여기서 마음 작용을 마음이 아닌 존재인 뇌 작용이라 하면..
인공일반지능인 AGI가 인간을 능가할 수도 있을 것이나.. 에이지아니에게는 비존재인 마음이 없다.
해서 AGI는 축적된 데이타[경험]를 넘어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생각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더더욱 AGI는 '나'라는 앎을 가질 수 있다해도.. 그런 나가 없음을.. 생긴 나를 다시 멸하는 행동은 할 수 없다.
그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늘 속에서 잊어버린 바늘을 엉뚱하게 불빛 아래에서 찾고 있다.
과연 바늘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