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영원한 현재진행형
남진원
계해년(1983년)의 새 아침,
강원일보 신춘문예시,당선이라니!
1982년의 어느 날 정선의 한 식당에 문학회 모임이 있었다.계절은 가을인 모양이다.왜냐하면 그때 신춘문예 작품을 모두 써 놓았기 때문이다.
전태규 이갑창 등 많은 문인들이 있었다.신춘문예 응모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나는 전국의 중앙지 신문에 낼 시 작품을 모두 써 놓았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회원들 얼굴을 보니 전태규 선생님과 모인 사람들은 놀라움보다는 오히려 안 될 것 같은 예감에 측은히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앙지의 몇 군데는 당선될 기쁨에 들 떠 있었다.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라고 믿었던 것이다.전태규 형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마구 웃었다.그리고 술이나 먹자고 하였다.
그 후,나는 응모 기간에 낼 작품을 선별하였다.중앙지에는 제 일 잘 썼다는 작품을 보내고 제일 못 썼다고 여기는 작품을 강원일보사에 보냈다.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모두 떨어지고 강원일보에 보낸 작품이 당선된 것이었다. ‘아니 제일 못 쓴 작품이 당선되다니…’의외였다.그러나 다시 떨어진 작품을 나름대로 분석해 보면서 알았다.내 혼자 최고 작품이라고 들떠 있었다는 걸 알았다.대부분의 작품은 이미지 보다는 관념적인 서술 형태의 글들이었다.그리고 감동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니 별로였다.어찌 되었든 강원일보에 당선된 일이 기뻤다.전혀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심사평을 보니 심사위원은 이성교 선생님과 민영 선생님이셨다.
나는 당시 저녁보다는‘아침’,겨울 보다는‘봄’,어둠보다는‘빛’등에 대한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였다.모든 게 활동적이고 일어서는 게 좋았다.그래서 작품의 성격도 매우 역동적이었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일념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그래서 배움에 대한 욕구도 컸다.나는정선군 벽탄국민학교에 근무하며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편입학 하였다.당시에는 국어과나 국문학과가 방송대학에는 없는 게 너무 너무 아쉬웠다.
* 1983년1월1일자,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1983년12월23일 경 서울에 올라갔다.동시집 싸리울이 발간되었기 때문이다.많은 책은 소포로 부치고 몇 권은 가지고 왔다.내려오는 김에 강원일보사 문화부에 들러 동시집을 드리고 내려오려고 하였다.
강원일보 문화부에 들어갔다.동시집『싸리울』을 드리니 김기중 문화부장께서 반가워하셨다.
얼마 후 김기중 문화부장께서 내게 물었다.
“혹시 그 학교에‘청파’라는 분이 있는가?”
나는 왜 물으시녀고 하였더니 서울에서 심사위원 연락이 왔는데 신춘문예 당선작은 청파라는 사람이 지은 거라고 하였다.나는 뛸 듯이 기뻤다.
“네,그 사람이 접니다.제가 필명으로 응모했습니다. ”
그러자 김기중 부장님은 잘 되었다고 하시며 아예 이곳에서 당선 소감을 써 놓고 가라고 하셨다.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나는 이렇게 되자,강원일보에서 당선 소감을 쓰고 내려왔다.그날 창밖으로는 눈이 펄펄 내렸다.당선 소식을 알기 전에는 함박눈도 별 의미가 없었는데 당선 소식을 듣고나니,눈이 엄청 반가웠다.마치 나를 위해 축하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내리는 것 같았다.
⁑당선 작품-봄빛
남진원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 옆에
산의 손 시린 물소리
마을로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 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 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뽑고 나서
예선을 거쳐 선자들에게 넘어온 응모작은 총44편이었다.이중에서 엄선을 거듭 정진경의‘촛불’,한성희의‘산가에서’,남진원의‘봄빛’,전향규의‘휴전선의 꿈’등이 물망에 올랐다.
‘촛불’은 언어를 다듬는 깔끔한 솜씨가 돋보였으나 주제가 평범하다. ‘산가에서’는 서경을 노래한 작품으로 가끔식 보이는 빛나는 구절이 작품을 살리고 있지만 신인다운 패기가 부족하다.나머지 두 사람의 것에서 우열을 가리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휴전선의 꿈’은 선명한 주제의식과 도입부의 순탄한 전개에 호감이 갔다.그러나 뒤로 갈수록 시의 내용이 지리멸렬해진 아쉬움이 있었다. ‘봄빛’은 시가 비교적 깨끗하게 잘 짜여져 있고 주제도 알맞고 시어의 선택도 잘 되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특히 제2편 이후의 시적 전개가 뛰어나 무리가 없다.금년도의 당선작으로 뽑는 이유이다.
이성교(시인). 민 영(시인)
‣뽑히고 나서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당선 소감을 무엇이라 써야될지 모르겠다.시가 아직 무엇인지 모르면서 지난5년 동안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다니던 일이 이제 조그만 열매로 맺혀지고 있나보다.
전兄!
며칠 전 정선 달구지 식당에서10개 중에 다섯 개가 된다고 객기를 부린 일이 생각납니다.이름이 틀렸다고 안 된다고 하시며 우린 내기를 걸었지요.
전 형에게 얻어먹을 술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취해오는 군요.
전 형!
당선 통보를 받던 날 창밖에는 주먹 같은 함박눈이 내렸읍니다.큰 눈송이도 나를 위해서 내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더군요.당선 소감을 빨리 써내고 우연히 만난 안효선 형과 막걸리 집에 가서 술을 한잔 했지요.그동안 앞에서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 * ‘전 형’은 시문학에 추천이 된 시인 전태규 형을 지칭함
(한국아동문학회 회원,여울,정선아라리문학회 동인)
고향, 고향집
어릴 때 태어난 고향집 마을의 이름이‘골개’이다. 마을 사람들은 ‘골개’라 불렀지만 지명에 등재된 마을의 원래 이름은 ‘골지(骨只)’였다. 나는 우리의 옛 어른들이 부르던 그 이름인 ‘골개’라 부르기로 했다. ‘골개骨皆’‘마을에 지켜 선 산의 모습이 돌로 이루어져 눈부신 뼈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인 이름 같았다. 금강산의 ’겨울 이름은‘개골(皆骨)’이다. 금강산의 겨울은 눈이 덮이면 더욱 신비스런 흰 뼈로 된 봉우리들이 장관이다. 우리 마을도 그런 아름다움을 표현한 마을 같았다. 사실 마을의 정면에서, 앞에 있는 산을 보면 높은 바위들로 된 벼랑으로 이루어진 산은 신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마을에 살던 모든 사람들의 집이 1960년대엔 초가집이었다. 내가 태어난 우리 집 역시 초가집이었다. 어릴 때 지붕을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새 볏짚으로 지붕을 바꾸는 것을 보았다. 지붕이 새 볏짚으로 바뀐 초가집들은 황금을 덮어놓은 듯 아름다웠다.
한 2년 쯤 되면 저릅대가 꺼멓게 썩고 짚도 낡았다. 봄으로 가는 늦은 겨울 지붕에서 낙숫물이 떨어질 때면 짚이 썩는 냄새가 났는데 그게 무척이나 특이하여 고향을 떠올릴 때이면 그 썩으새 냄새를 생각했다. 강릉의 큰 시인 김원기 선생은 ‘썩으새’ 냄새에 대해 자주 말씀을 하셨다. 그 분도 그 냄새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하신 듯했다.
원래 태어난 곳의 마을 이름은 ‘골지리’였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의미가 좋지 않다고 하여 법원에서 이름을 ‘문래리’로 바꾸었다.
봄으로 가는 늦은 겨울. 지붕에서 눈이 녹아 낙숫물이 떨어질 때면 짚이 썩는 냄새가 났다. 그게 무척이나 특이하여 고향을 떠올릴 때이면 그 ‘썩으새’ 냄새를 생각했다. 강릉의 시인 김원기 선생님을 만날 때면 자주 그 ‘썩으새’이야기를 하셨다. 김원기 선생님도 그 냄새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하신 듯했다.
나 역시 그 늦겨울이 되어 지붕에서 눈 녹은 물이 처마에 떨어질 때면 고요한 시적 정취에 잠기곤 하였다.
고향, 고향집
남진원
보리밥 시래기국 앞에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가난한
살림에도
웃음이 솟고
숭늉 그릇
모락모락
깊어가던 정
질화로에선
잉걸불이
환하게 타오르고
싸락눈
사락사락
내리는 밤
호롱불 밝혀놓고
글을 읽다가
할머니 무릎 베고
잠이 들던 집
고향,
고향집
( 2024. 5. 11. 남진원 제18시집 『어머니 물동이길』, 동우재.)
산방에 피는 매화
남진원
나는 시조를 즐겨 쓰고 있다. 나의 시조는 어찌 보면 자연발생적으로 나오는 작품 같았다. 또한 계절에 따라 소재가 달라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봄이 다가오면, 매화에 대한 생각으로 설레는 기쁨을 모두 시조 안에다 그려놓고 싶었는지 모른다. ‘산방에 피는 매화를 보며’의 작품은 그런 마음에서 창작된 듯 싶다.
매화의 진한 향기에 취해 보고 싶은 밤! 달빛이 홀연히 비치는 밤, 술잔을 기울이며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산방에 피는 매화를 보며
남진원
은은한 천년의 향 어이 그냥 지나치랴
고요를 장단 삼아 취하고 싶은 봄밤
달빛을 벗한 그림자, 먼저 넋을 놓는구나
2011년 11월 22일,『강원시조』 26집에 시조 3편을 수록하였다.
『강원시조』는 현재 [강원시조시인협회]에서 발간하는 연간집이다. 1980년대 후반 강릉대학교 서무과에 근무하던 곽영기씨가 시조를 쓰면서 [강원시조문학회] 설립을 주관하여 [강원시조문학회]가 강원도 도내에서 결실을 보았던 것이다. 당시 [시조문학]을 창간하여 운영 하시던 월하 이태극 박사님의 힘도 컸다.
창립에 주도를 한 분이 강릉에 주거하는 곽영기씨였기에 [강원시조문학회]의 발아(發芽)는 자연히 강원도 도청 소재지인 춘천이 아니라 강릉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2019년과 2020년엔 내가 강원시조시인협회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강원도의 시조문학은 이처럼 곽영기씨의 시조문학회 창립 주선으로 그 서막이 올랐다. 그 후 시조 시인들의 활동으로 강원시조문학은 찬란한 봄과 여름을 맞이한 듯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름이면 또 그리워지고 기다려지는 것이 매미 소리다. 어릴 때 고향의 대추나무에서 들리던 매미 소리는 가녀린 대추나무의 여린 색조처럼 아름다웠다.
나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매미 소리를 들으면 힘이 났다.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곤충이었다. 아래의 ‘매미 소리를 듣다가’ 시조는 세 t로 된 작품이다. 첫수는 매미 소리의 즐거움을 그렸고 둘째수는 계절이 바뀌면서 약해져가는 매미 울음소리를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그렸다. 셋째 수는 매미소리와 함께 오버랲 되는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는 내용이다.
매미 소리를 듣다가
남진원
매미가 아침마다 창문 열게 만들더니
울음도 이쯤이면 물 머금은 교향악
서늘한 바람 한 줄기 여백으로 맛 보고
처서가 지나니 약해진 매미 소리
감기에 몸살 난 듯 흐느끼는 소리 물결
쌩쌩한 울음소리가 저리 식어 풀 죽었나
풀무치 울음 같은 매미 소리 듣다가
서정의 나날 나날 아쉬움이 쌓여갈 때
그대여, 내 안의 사진첩 가을처럼 들춰 본다
시조 [모정. 2]는 어머니의 사랑과 늙어감에 대한 안타까움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누워 계시고 그곳에서 임종까지 맞았다. 내 어릴 때 집안일 하시며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던 그 따뜻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린다.
모정. 2
남진원
삼동 기나긴 날 젖은 자리 갈으시고
아랫목 데우시며 불심지 돋우시던
훈훈한 사랑의 불길 아직 이리 더운데…
세상사 여부운(如浮雲), 언제 이리 늙으셨나
팔다리 돋은 힘줄 거동마저 힘드시네
칠 일에 한 번 찾아도 고맙다는 인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