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5월 월간문학 동시 월평 글 –5월분
행복한 미소가 맛을 내는 작품
남 진 원
5월은 봄이 절정에 이르는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가경지절(佳境之節)이다. 지난 2월, 2m 가까이 푸짐하게도 눈이 오더니 수량이 풍성해서인가. 작은 앞 냇물의 물이 불어나 물소리가 지난해보다는 한결 더 청청(淸淸)하다. 4월의 진달래는 한창 붉음을 더해 산자락마다 수줍은 산처녀 얼굴이다. 우리 집 아래에 사는 할머니 집 옆에는 허리 구부러진 할아버지같이 서 있는 살구나무에 화사한 봄빛이 깃들어 집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이럴 때면 생각나는 사람,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이원수 선생과 동요 ‘고향의 봄’ 노래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언제 어디서 불러도 마냥 좋은 영원한 국민애창 동요였다. 이원수 선생의 동요 ‘고향의 봄’ 노래 안에는 봄을 상징하는 나무들이 순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그들이 피워내는 꽃의 모양과 은은한 색감은 순박한 산골 사람들을 닮았나 보다. 꽃으로 대궐을 만들어 놓은 고향의 봄은 임금이 사는 대궐보다 더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운 곳이다. 남쪽에서 찾아온 따뜻한 봄바람이 파란들로 내달리고 냇가의 수양버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춤을 추는 동네. 어디 그뿐인가, 봇도랑으로 졸졸 흐르는 물결 위로는 복사꽃 살구꽃 잎이 떠 흘러가니 도원의 봄이 아니던가. 처자들은 들로 산으로 냉이 달래를 캐러 다니고 빨래방망이 소리가 노곤한 햇살에 묻어 마을에 자부룩이 내려앉던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였다. 그래서인지, 복숭아꽃과 살구꽃 진달래꽃은 한 동네에 모여 살아가는 피붙이 같았다. 우리들의 옛 고향은 이처럼 자연스럽고 행복한 미소가 맛을 내는 곳이었다. 순수함이란 측면에서 보면 동시(童詩)도 봄의 나무나 풀잎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란 하늘의 해와 달과 구름과 비와 천둥 번개 등이 땅과 때(時)를 맞춰 일정한 생명현상이나 비생명 현상을 내놓았을 때의 아름다움이라 말 할 수 있다. 자연현상을 자연스러움이라 말하는 것은 인위를 배제한 상태에서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자연의 한 생명현상으로 살아가기에 자연스러움이 나타날 때에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할 것이다.
요즘은 그야말로 싱그러운 봄의 숨결이 잎 잎마다 터져 나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아우성을 치고 있다. 동시(童詩)도 자연의 순수함 같은 바탕에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동심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월간문학 4월호와 계절문학 봄 호에 실린 동시 작품들을 몇 번이고 읽었다. 많은 동시작가들의 애쓴 모습이 글 속에 묻어나 있었다. 이 중에 박소명의 ‘서투른 겨울 바람’이 눈길을 끌었다.
차가운 손으로 / 덜커덩 쾅쾅 / 그렇게 시끄럽게 두드리면 // 창문 꽁꽁 / 더 걸어 잠글 수밖에 // 나랑 / 놀고 싶다면 /작전을 바꾸는 게 어때? // 손 따뜻이 덥히고 / 톡톡 탁탁 / 살짝 두드려 봐 // 그러면 / 나도 몰래 / 드르륵 창문 열고 말 걸.
- 월간문학 2014년 4월호 박소명 ‘서투른 겨울 바람’ 전문 -
겨울바람이 창문을 흔드는 자연현상의 일부를 소재로 삼았다. 읽어보면 재미와 의미를 함께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겨울바람이 창문을 쾅쾅 흔드는 사실이 2연에서 고조되다가 3연에서 부드럽게 반전을 시도하려는 것이 기발하다. 혹한의 겨울바람이 창문을 흔들어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짜증나는 일이다. 짜증나는 마음을 지성적인 마음으로 바꾼다. 폭력적인 겨울바람에게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작전을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고 회유책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면서 ‘손 따뜻이 덥히고 살짝 두드려보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해준다. 어린이들이 읽으면 무리 없고 재미있게 읽히는 좋은 동시 작품이다. 어디 그 뿐이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위의 동시는 감동을 전해 받는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첫째, 억지스럽게 지어진 느낌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 지혜로운 어린이의 순수한 모습을 연상할 수 있기에 친밀감이 드는 점이다. 셋째, 우직하고 난폭한 겨울바람의 가슴 속 깊은 정열은 사랑하지만 그 뜨거운 사랑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려주고 있는 점이다. 자연스럽고 넉넉한 마음이 담겨 있고 행복한 미소가 있어서 맛을 내는 작품이다.
지난 4월의 글에서 이규보의 ‘구불의체(九不宜體)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강호 제현에게 삼가 참고가 될까 하여 내가 글을 쓸 때에 시행착오를 하여 잘 못 쓴 시들을 추고하면서 언뜻 생각하고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늘어놓아보고 글을 맺는다.
1. 단순히 신기해 보이는 것을 써놓은 작품은 그냥 신기하구나 하는 정도에서 끝나고 말기에 마음에 남기가 어렵다.
2. 하나의 평범한 서사구조로 이어지다가 돌연히 큰 깨우침을 얻은 듯 거대한 주제가 담긴 표현을 해 놓고 다시 앞의 이야기로 이어지면 매우 황당함을 느낄 것이다.
3. 글귀는 달라도 이미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시는 모방작으로 오해를 받기가 쉽다.
4. 반복법의 사용은 신중하지 않으면 내용은 없고 경박한 느낌만 들 수 있다.
5.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머리만 있고 팔다리가 없는 모양의 글이 되기도 한다. 특히 글의 마무리는 화룡점정의 묘가 있어야 한다.
6. 현 시대의 이야기를 1930년대, 40년대의 상황 같은 언어로 묘사한다면 구두 신고 갓 쓴 모양이 되어 우스운 꼴이 될 것이다.
7. 생활동시에서 이미 많이 나온 생활이야기를 자신의 언어로 육화하지 못한 글은 식상한 글이 되기 쉽다. 그리고 찬양 찬사의 글은 시가 아니고 자칫하면 구호에 그칠 염려가 있다.
8. 동시는 어린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읽힐 수 있어야 하는데, 어른의 눈으로, 어른의 입장에서 어른의 투로 썼다면 깊은 주제의식이 있는 작품일지언정 동시로는 아주 부적절할 것이다.
9. 시를 다 써 놓은 후에라도 읽어 보고 억지스러워진 곳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 읽었다 해도 시간이 아까웠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