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남)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업무에 몰두한다. 일하는 동안 내 감정들은 마치 얼어붙은 강물처럼 갇혀 있다. 차분한 표정과 절제된 말투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이틀간의 휴식이 찾아오면, 억눌렸던 감정과 기억들이 저수지의 봇물이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살아온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오고, 그 안에서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그럴 때 나는 펜을 들고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으면 이 감정들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나는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자유를 만끽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늦은 밤까지 거리를 걷고, 웃고 떠들며, 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날들을 보냈다. 부모님의 걱정 섞인 목소리도, 잔소리도 멀리 두고 오직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주말이면 새로운 친구들과 야유회를 가고, 등산을 하며,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서울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봄날, 학교 우체통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내게 보낸 편지였다.
“서울에는 차도 많으니 차 조심해라. 공부한다고 힘들겠지만 꼭 끼니는 잘 챙겨 먹어야 한다. 그리고 용돈을 충분히 주지 못해 미안하다. 절약해서 써라.”
평소에는 말로만 전하던 어머니의 짧은 문장이었지만, 편지를 읽는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늘 바쁘신 분이라 직접 편지를 써 보내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편지를 손에 쥐고 학교 뒤뜰로 갔다. 그곳에는 등나무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서울 생활의 들뜬 기분에 취해 있던 나는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편지를 뜯어 읽어 내려갔다.그러다가 갑자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그 순간, 어머니의 사랑이 그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서울 생활이 즐거워 부모님을 잊고 지냈던 시간이 부끄러워졌고, 미안함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머니의 편지를 여러 번 꺼내 읽었다. 읽을 때마다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이제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이야기뿐 아니라, 그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 글로 남겨야겠다.
이틀간의 글쓰기 삼매경에 빠질 때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손끝을 타고 흘러나온다.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잊고 지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난다. 마치 봄이 오면 땅속의 씨앗들이 움트듯,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 안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한다.그리고 이틀이 지나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안다. 또다시 바쁜 날들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의 감정들은 다시 저수지처럼 가득 차오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 다시 펜을 들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풀어놓을 것이다. 글쓰기란,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글쓰기 삼매경에 빠지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즑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