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의 유병률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당뇨병의 여러 합병증 가운데 가장 흔하면서 환자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합병증이 당뇨병성 신경병증입니다. 당뇨환자의 약 15%는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증상과 징후를 보이고, 약 50%는 신경전도 검사상 말초신경손상이 발견됩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50세 이상의 환자에게서 흔히 나타나고 다양한 임상적 아형이 존재합니다. 통증은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이고 환자에 따라 발생하는 빈도가 다양합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주로 말초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신경섬유의 손상이 가장 뚜렷하게 관찰됩니다. 갑자기 발생하는 통증과 함께 비대칭적으로 몸 쪽에 생기는 신경병증과 뇌신경 및 말초홑신경병증의 원인은 신경에 혈액을 공급하는 신경 혈관의 폐쇄성 병리적 변화로 인한 이차적 허혈(조직의 국부적인 빈혈 상태,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지는 것이 원인)이 주된 기전으로 생각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병적 증상은 몸 쪽에서 시작하여 말초로 갈수록 심해지고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혈관의 폐쇄 및 허혈성 변화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당뇨병의 유병 기간이 길고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는 환자에서 이러한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보다 많이, 그리고 뚜렷하게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크게 말초신경장애와 자율신경장애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당뇨병성 말초신경염
말초신경 합병증은 그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고혈당의 정도 및 기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발저림과 온도 및 통증에 대한 감각소실 등을 일으키고 보통 잠자리에 들기 전 사지, 특히 다리의 통증이나 마비를 일으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경우 일반 신경통이 보통 한 쪽에만 통증이 오는 데 반해 양쪽이 모두 아프다는 점이 다릅니다. 통증의 정도는 은근한 정도의 통증에서부터 격심한 통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또 바늘로 찌르거나 찬 것, 뜨거운 것에 대한 반응을 느끼지 못하게 되기도 하며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심한 통증과 열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 합병증 환자의 약 10%가 통증을 겪게 됩니다.
② 당뇨병성 자율신경병증
당뇨 환자의 20~40%에서 발생하는 자율신경계 이상은 당뇨병을 오래 앓았거나 나이가 많고 혈당조절이 잘 안 되는 환자에게서 빈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앉았다 일어날 때 어지러움, 위장장애, 배뇨장애(방광기능장애), 성기능장애 등이 일어납니다.
당뇨병성 위장장애로는 식도 연동운동파가 감소하거나 이중, 삼중으로 수축하여 음식물이 식도를 원활히 통과하지 못하게 된다든지, 위무력증으로 배가 늘 더부룩하며 메스껍고 쉽게 포만감에 빠지고 위 배출시간이 지연되어 케톤산혈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또한 설사와 변비가 부정기적으로 교차되는 수도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이 흘러나오는 변실금을 앓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한편, 방광의 수축력이 감퇴되고 배뇨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광수축력이 감퇴되어 소변이 고이게 되면 염증이 발생될 수도 있으며, 이 때에는 요로감염증에 대한 항생제를 투여하고 배뇨장애가 지속되면 방광검사를 실시하고 적절한 약물치료를 해야 합니다. 남성 당뇨병 환자의 약 50% 이상에서 나타나는 발기장애와 사정장애는 삶의 질적 향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인데, 당뇨병 환자의 성기능장애 원인으로는 당뇨병성 신경혈관 장애일 수도 있지만 만성질환으로 인한 정신적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당뇨병이 많이 악화되어 심한 신경장애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원만한 성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며, 신경혈관 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발기 유발제를 주사한다든지, 음경 진공흡인 치료법 또는 음경보형불 삽입 등의 치료법을 이용하여 비교적 간단히 성생활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당뇨신경병증의 여러 아형 중에서 대칭먼쪽여러신경병증(symmetric distal polyneuropathy)은 가장 흔한 형태로 혈당 조절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당뇨병의 유병기간이 긴 환자들에게서 발견됩니다. 대칭먼쪽여러신경병증은 초기 당뇨 진단을 받은 환자들 중 약 7.5%, 유병 기간이 25년 이상 된 환자들 중 약 50%에서 발견됩니다. 주된 증상은 몸통에서 먼 부위인 발과 하지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지속적인 저린 느낌과 무딘 감각입니다. 감각 증상은 주로 하지에서 먼 쪽에 국한되지만 심한 경우에는 손을 침범하기도 하며, 감각저하가 하복부의 측면으로 퍼져 나가기도 합니다. 심한 감각소실과 영양성 변화(피부가 두꺼워지며 궤양이 발생하는 현상), 반복 손상 등에 의한 심부 궤양 형태의 영양성 변화와 신경 관절 병증이 간혹 동반되기도 합니다. 발목 반사는 거의 모든 경우에 소실되며, 일부에서는 무릎반사가 소실됩니다. 근력 약화 증상은 가볍지만, 몸 쪽 근육의 위축을 동반합니다. 이와 같은 신경병증은 일단 시작되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급성당뇨홑신경병증(acute diabetic mononeuropathy)은 당뇨병 환자의 말초신경에 발생한 병리적 변화입니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말초신경이 외부의 압력이나 조임에 의해 쉽게 손상될 수 있는데, 정중신경(median nerve)의 수근관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 팔꿈치의 척골신경(ulnar nerve)의 손상과 종아리뼈머리에서 종아리신경(peroneal neve) 손상 등이 자주 발생합니다. 그 외에 당뇨병성 신경병증 환자에서 병적인 증상이 흔히 발생하는 말초신경은 좌골신경(sciatic nerve)과 대퇴신경(femoral nerve)입니다.
당뇨병 환자에서 제3뇌신경인 눈돌림신경(oculomotor nerve)의 단일신경병증이 종종 발생합니다. 또한 눈돌림신경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제6뇌신경이 함께 침범되기도 합니다. 눈돌림신경마비는 대부분 50세 이상의 환자에게서 갑자기 발생하는데, 후두부의 통증과 함께 나타나며 대부분 6개월 이내에 저절로 회복됩니다. 그러나 뇌줄기(뇌간, 숨뇌)에 발생하는 매우 작은 뇌경색에 의해서도 눈돌림신경의 단일신경병증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당뇨병 환자에서 갑작스럽게 복시(겹보임) 현상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병원을 찾아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당뇨병성 근육위축증(diabetic amyotrophy)은 제2형 당뇨병의 약 1%에서 나타나며, 40대 이후의 성인 남자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동통성 비대칭성 다발신경병증의 일종으로, 대퇴의 통증과 함께 시작되어 근력약화로 이어지고 무릎반사도 사라지게 됩니다. 칼로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 주로 밤에 심해집니다. 근력 약화와 근육 위축은 먼쪽(distal) 근육에서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골반대 및 대퇴부위의 대퇴사두근육, 볼기근육(gluteal muscle), 엉덩허리근육(iliopsoas muscle), 뒤넓적다리근육(hamstring muscle), 엉덩이모음근육(hip adductor muscle)에서 잘 나타납니다. 상지는 거의 침범하지 않지만 방광과 항문조임근을 침범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수년 또는 수개월이 걸리며, 대부분의 경우 회복됩니다. 반대쪽 하지에 동일한 증후군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심하고 오랜 기간 지속된 당뇨병에서는 가슴 및 배 부위의 통증과 함께 이상 감각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통증 및 이상 감각은 주로 가슴 및 배의 한 개 또는 연접한 여러 개의 척수 분절에 분포합니다. 이는 당뇨신경뿌리병증(diabetic radiculopathy)의 증상이며, 한 쪽 또는 양 쪽으로 나타나고 침범된 부위에 얕은 감각 소실이 관찰됩니다.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치료 결과는 좋은 편입니다.
당뇨병성 자율신경병증(diabetic autonomic neuropathy)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증상이 비특이적이거나 무증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당뇨병이 오래 지속된 환자에서 자율신경 침범의 증세는 동공 이상과 분비 기능 이상, 땀분비 이상 및 혈관성 반사 이상, 밤에 땀분비가 심한 야한증, 위장관 및 방광이완증, 기립저혈압(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났을 때 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 등입니다. 증상은 서서히 나타나지만 일단 시작되면 회복이 어려운 비가역적 변화가 발생합니다. 이런 증상들은 환자마다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삶의 질과 장기 생존율에 영향을 미칩니다.
당뇨병이 있는 환자에서 상기한 특징적인 임상 증상들이 나타나면 당뇨신경병증을 임상적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검사를 위하여 신경전도 검사, 근전도 검사 및 자율신경 검사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다른 다발성말초신경병증과의 감별이 필요할 경우에 한하여 말초신경생검을 시행할 수 있지만 널리 이루어지는 검사는 아닙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신경의 손상과 당뇨병의 부적절한 혈당 조절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일하게 의미 있는 치료는 혈당을 정상 범위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외에 경정맥 인슐린 투여 방법을 이용한 엄격한 당뇨 조절은 통증성 신경병증의 완화에 효과가 있습니다. 사지 말단부의 이상감각에는 삼환계항우울제(TCA)나 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SSRI) 등이 효과적입니다. 쏘는 듯하고 찌르는 듯한 통증에는 항경련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각 아형에 따라 경과 및 합병증이 서로 다른 편입니다. 급성 당뇨홑신경병증, 당뇨근육위축증 및 당뇨신경뿌리병증은 대부분 치료 결과가 좋기 때문에 수개월에서 수년 이내에 상당히 회복되고 장기 합병증도 남기지 않습니다. 대칭먼쪽여러신경병증은 오랜 기간 지속된 당뇨병 환자들이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 중 하나이며, 느린 속도로 점차 진행되고 잘 회복되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손가락 및 발가락의 괴사가 진행되어 절단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당뇨자율신경병증도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불편을 야기하는 증상들이 많습니다. 특히 당뇨자율신경병증에 동반되는 기립성 저혈압의 경우, 당뇨를 갖고 있는 노인 환자의 낙상과 두부외상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당뇨 환자의 경우 엄격한 혈당 조절을 통해 당뇨신경병증의 발병을 최대한 늦출 수 있습니다. 대칭먼쪽여러신경병증을 갖고 있는 환자는 사지 말단부의 감각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상처가 생기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장갑, 양말 등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충분히 보호하고, 외출 후에는 따뜻한 물로 깨끗이 씻고 잘 말려 주어야 합니다. 당뇨자율신경병증 환자는 기립성 저혈압(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났을 때 심한 어지럼증과 함께 시야가 흐려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쉬우므로 갑작스러운 자세 변화를 피해야 합니다.
대구한의대학교 부속대구한방병원 침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