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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안농장 우리교육99년 03월호
돈이 필요없는 사회
인간과 자연의 조화는 인간, 자연 모두에게 절실한 요구이다. 현대의 환경, 생태계의 위기는 바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는 사고 체계와 삶의 방식, 제도들에 기인하고 있다.
(야마기시회 소식지 『연찬(硏鑽)』 제35호에서>)
제약단지로 잘 알려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향남제약공단. 공단을 돌아 낮은 구릉과 황토밭을 사이에 두고 산길로 3km 가량 더 가면 파란색 지붕의 계사(鷄舍)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야마기시즘사회경향실현지라는 정식명칭 외에 돈이 필요 없는 사이좋고 즐거운 마을로도 알음알음 알려진 산안농장(産岸農場)이다.
얼마 전 개통한 서해안 고속도로가 멀리 보이는 야마기시 공동체는 마을 언덕 양편 5만 평의 너른 농경지에 자리잡고 있다. 숙소로 쓰이는 숙사 2동과 생활관 1동, 어린이들 숙소인 태양의 집과 공동식당, 생활관 1동이 깨끗하게 가꿔져 있다. 마을 한복판에는 계사 10동이 있고 오솔길을 따라 언덕에 오르면 제2계사 8동이 자못 큰 규모로 다가온다. 야채 비닐하우스 10동과 밭, 연찬강습장과 법인사무국이 마을 변두리를 감싸 자리잡고 있다.
공동체가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모습은 아니었다.
물도 길도 없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 재산을 정리해 이 곳에 들어와 움막에 살면서 한겨울에 집보다 계사를 먼저 지었습니다. 초기 공동체 건설 과정에 참여했던 김상보(43) 씨 설명이다.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소개된 것은 66년. 실험적 협업농장 여러 개가 세워졌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당연히 새 공동체의 건설은 처음부터 위험 부담 속에서 출발했다. 공동체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은 여섯 가족. 그들은 84년 아궁이 솥까지 모든 재산을 털어 허허벌판 이곳에 왔다. 쓰러져가는 비닐 움막을 집으로 정하고 황무지에 벽돌을 한 장씩 놓았다. 이들은 2동의 계사에 자기네 미래를 실험할 닭 6천 마리를 들여놓았고, 농경지 1만 평을 맨손으로 개간했다. 그 사이 일부 회원이 바뀌었지만 공동체 밑그림은 계속된 실천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10년 뒤 공동체의 계사는 10동으로, 다시 5년 뒤 현재 계사가 18동이 되었고 닭들은 4만~5만 마리로 늘었다. 농경지
도 계사를 포함해 5만 평(임대 2만 평)으로 확장됐다. 어른과 아이를 포함해 15명이던 회원은 이제 성인 35명과 아이 15명 등 50명, 공동체 밖에서 생활하는 회원 수는 1천명에서 2천여 명으로 갑절 늘었다.
자연과 인위의 조화, 그리고 평등
이들 공동체는 종교적이거나 체계화된 철학적 이념공동체는 아니다.
누구나 행복을 바랍니다. 불행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외부인 사회를 단절시킨 채 원인을 찾는 데만 골몰한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위의 조화가 깨지고 대신 경쟁과 소유가 지배하는 세계가 불행의 세계라면 순환공생하고 무소유함으로써 모든 것을 함께 누리는 세계가 행복세계다. 공동체의 지난 시간은 그 세계를 찾아나선 길이고 그들의 공동체 생활은 실천 그 자체였다. 이들에게 행복의 세계는 먼 미래의 시간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각자가 누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같은 세계에서 역설적으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공동체 회원들이 이러한 행복을 누리려면 야마기시회의 오래된 관문인 특별강습연찬을 꼭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일본에서 지난 53년 공동체를 처음 세운 야마기시 미요조(産岸巳代藏)가 만든 특별강습연찬이라는 독특한 방법은 영성 계발과 밀접한 듯 보이며 공동체 이해에 매우 중요하다는 인상을 준다.
80년대 암울한 시절 대학생으로 전경련 점거농성에 참여해 투옥됐던 김현주(36) 씨. 공동체에 참여했던 부모를 통해 뜻맞아 사는 모임 정도로 여겼던 그는 90년 우연히 야마기시회 특별강습연찬에 참석해 정반대의 세계를 체험하고 기꺼이 공동체 회원이 되었다고 했다.
계급투쟁이나 경쟁을 하지 않고 식물과 동물, 인간사회도 조화와 이해로 보면, 서로 소통하고 감싸는 관계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 씨의 경험은 이 곳에서 만난 공동체회원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일일이 말로 다 표현하는 것을 곤혹스러워 했지만, 그것이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연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회원이 처음 되려는 사람을 위한 특별강습연찬
회(특강), 특강을 마치고 공동체 생활을 익히고 심화하는 연찬학교, 특강을 마친 회원들이 서로 교류하는 행복연찬이 있다. 공동체에서 사는 회원들에게도 연찬은 중요한 일상사다. 공동체 내의 일에 따라 직장연찬, 전체 공동체 연찬과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가족연찬 등 연찬은 공동체 안에 살든, 밖에 살든 특별한 구실을 한다. 그 중 평생 한 번밖에 못한다는 특별연찬은 이 곳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연 6회 가량 공동체에 뜻을 둔 18세 이상된 사람들의 희망을 받아 8박 9일 동안 공동숙식을 하며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그 날 제시된 주제에 따라 둥글게 둘러앉아 대화를 거듭하면서 정말로의 모습은 무엇일까를 규명하는 토론에 참여한다.
지난 1월 9일 토요일 저녁 야마기시회에서 특별연찬을 마친 회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교류를 나누는 행복연찬이 벌어졌다. 그 때 주제는 모두와 함께 그리는 사회,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한 회원이 일상사회는 사실 남을 발 아래 딛고 서야 하는 냉혹한 경쟁사회다. 공동체에서 연찬을 통해 배우고 나가 행복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에 함께 참여한 회원 20여 명이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들이 연찬을 통해 구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연찬회 주제를 보면 짐작은 가능하다. 예를 들면 사이좋은 것이란 어떤 것일까, 싫은 것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그리는 사회상 등이다. 이들 주제는 참여자가 정말의 삶의 모습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잘 배치된 듯하다. 진행자는 있지만 교사는 없다. 특정한 결론이 정해진 것도 없지만 전제 없는 토론은 존중되는 방법이다. 서로 다른 관점, 자기 생각의 집착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덕이다.
공동체를 찾아 세계 곳곳을 떠돌다 이 곳에 안착한 서울농대 출신의 유상용(36) 씨. 그는 누가 그러지 않아도 정말의 삶의 추구는 누구에
게나 있으며, 정말의 삶을 찾는 속에서 행복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가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연찬을 설명했다.
그는 또 연찬은 인디언 부족들이 그랬듯이 상하, 계급을 뛰어넘어 평등과 순환적인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도 비유했다. 자연과 인위의 조화, 평등과 무소유 사회가 우리가 살고픈 사회요, 정말의 모습들이라면 왜 그렇게 살려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공동체는 이러한 마음의 변화가 실제로 가능한 보편적인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관념 속 이상만이 아니라 사회의 짜임새와 삶의 형태를 바꿔가는 실천, 이것은 연찬의 또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이익만 추구하지 않는 사회
계사는 이 곳 공동체의 핵심적인 경제적 토대다.
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다 남편과 함께 공동체 회원이 된 서혜란(47) 씨. 그는 사이좋고 즐겁게 하나로 번영해 간다는 것을 당시 군국주의 일본사회에서는 실현하기 힘들었던 야마기시가 닭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뛰어든 것이 야마기시 양계의 출발이 됐다고 전했다.
닭이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알을 낳고 싶을 때 알을 낳는, 닭이 행복해지는 양계법이다. 행복한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을 사람이 먹으면서 행복의 순환은 이뤄진다. 간섭과 강요, 비교와 경쟁 대신 각자의 자율성과 창의성, 평등과 조화라는 공동체 정신이 구현되는 것이 양계다. 매일 오후 1시 계사에서 닭들에게 모이를 주는 양계부 회원은 닭에게 사료를 줄 때 존대한다. 계사는 닭들의 쾌적한 생활에 초점을 맞춰 설계되었다. 닭 날개를 본떠 만든 계사와 풀과 야채를 섞은 사료 배합으로 닭똥 냄새를 거의 느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계분은 닭이 계사에서 나가야만 치우고 이 때 닭똥은 질 좋은 퇴비가 되어 밭에 뿌려진다.
일반 양계의 1차적 관심이 수익성을 고려한 산란율 증대에 있다면 야마기시회 양계에서 경제가치는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닭똥이 다시 밭으로 가서 질 좋은 야채를 생산하고 야채가 닭의 모이가 되듯 진실이 담긴 알이 활용자(이 곳에서는 소비자를 살려서 이용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부른다)에게 전달된다. 양계는 순환농법을 실현하고 있다.
계사에서 알을 많이 낳는 닭이 적게 낳는 닭을 무시하나요? 사료를 더 많이 먹는다고 싸움을 하나요? 닭의 세계에서는 사람에서와 같은 차별과 불평등이 없습니다. 다만 서로 조화를 이룰 뿐이지요.
공동체의 하루 일상사는 사실 행복한 닭들의 생활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회원들은 쉬고 싶으면 쉬고 일하고 싶으면 일을 한다. 바깥 사회와 같은 공휴일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이 곳에서 연찬 때 시간을 맞추는 것을 빼고는 공동체 안에서 꼭 해야 한다거나 무엇은 안 된다는 식의 강요나 규칙들을 본 적이 없다. 닭들이 알을 낳고 싶어 알을 낳듯 이들의 일 또한 즐거워서 하는 것이다. 자연을 가공해 재화를 창출하고 소유를 목표로 하는 노동과는 다른 의미로 일이 쓰여진다. 일은 즐거워서 할 뿐이다.
공동체에서 회원들은 양계부와 공급부, 학육부와 생활부, 야채부로 나뉘어 있다. 각자의 일은 적성과 바람에 맞춰 정해진다. 물론 공동체를 관리하기 위해 이들은 6개월마다 한 번씩 자동해임이라는 기회를 갖는다. 모든 회원이 자신의 일에서 면직 처분되고, 다시 하고 싶은 일에 따라 일을 배정 받는다.
일의 개념이 다르듯 이 곳 생산과 분배의 체계도 기존 사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러한 체계가 야마기시회가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경제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어 도심지로 공급되는 유정란은 하루 9천여 개. 아침마다 1톤 트럭 3~4대에 실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물론 광주와 전주, 대구, 진주 등지 회원들에게 판매된다. 소비자 값이 1개당 2백10원인 유정란은 일반 달걀보다 40% 가량 비싸지만 이 곳에서 연찬에 참석한 도시 회원 2천여 명이 주로 달걀 구입에 나서고 있다.
유정란이 다소 비싼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공급자나 활용자나 자유롭습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니며 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급부 최창호(36) 씨의 설명이다.
유정란 공급은 달걀을 사고 파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구매행위는 공동체의 행복운동이 사회 속에서 펼쳐지는 연결점으로 간주된다. 질 좋은 농업생산물이 있고 공동체 운동을 이해하는 활용자들이 참여한다. 생산자는 직접 판매로 중간 유통마진을 회수하는 체계다.
공동체는 형태상으로 영농조합법인의 형태를 취한다. 세금도 내고 농사에 필요한 지원도 받는다. 그러나 생산이익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 명의로 환수되어 필요한 지출의 나머지는 재투자나 저축으로 남는다. 회원 각자는 자기가 필요하면 공동체 동의를 거쳐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적, 공적 소유는 없고 무소유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공동체 대표 윤성열(54) 씨는 대개의 협업농장이 생산이익을 개인에게 분배해 공동체의 경제적 기반 약화를 가져오거나 재투자 비용마저 회수하지 못해 결국 공동체 자체가 실패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공동체에 참획(공동체 회원이면서 공동생활에 참여한다는 의미)할 때 회원들은 무소유의 정신에 따라 자기 재산을 모두 공동체에 내고 다시는 가져가지 않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떠날 경우에 이들에게 최소한의 자립비용은 사례별로 공동체에서 내준다고 했다.
양계 외에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들이 먹는 주곡과 야채들을 상당량 자급자족하고 있다. 그리고 무와 고구마 같은 야채는 물론 무말랭이 등 일부 가공식품도 직접 판매하는데 양계의 1/4 수준이다. 공동체 회원들이 공동식당에서 하루 2번씩 하는 식사의 식단은 김치와 각종 달걀 요리, 국과 찌개 등으로 단촐하지만, 대개의 반찬과 주식은 공동체에서 자체 생산한 것들로 채워진다.
이들 농업생산물은 이익을 겨냥한 투기성 작물도 아니며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한 특용작물도 아니다. 달걀이라는 특정 농산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전체 공동체 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이 큰 불안감은 있지만, 일단 이러한 성공 이유를 이익에만 목표를 두지 않는 농업경영에 있다고 설명한다.
농사짓는 사람이 이것을 해서 돈이 될까 안 될까가 아니라 농사짓는 즐거움 속에서 농사를 짓다보면 경영도 되는 것 아닌가요. 서혜란 씨 설명이다. 야마기시 정신만 있다면 어디서나 가능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정말의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는 힘
농업이 야마기시회의 정신을 경제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라면, 학육은 공동체 특유의 정신을 교육에 반영한 것이다.
이 곳 마을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하나가 가령 지나가는 어른을 보면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상할 수 있지만 내 것, 네 것 구별 대신 조화가 강조되는 이 곳의 단면이다. 아이를 둔 최창호 씨는 자기가 낳은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정이 희석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지만 실제로 더 넓어진다고 했다. 아이를 낳은 부모는 따로 있다. 다만 공동체의 전체 어른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로서 부모 노릇을 공동으로 해주고 있다.
이 곳 어린이는 현재 15명. 이 가운데 중학생이 1명, 초등생이 5명, 유치원생이 1명, 미취학 어린이가 8명이다. 고교와 대학과정 학생도 여럿 있지만 이들은 현재 일본과 독일 야마기시회에서 스스로 원하는 작물농사에 필요한 과정을 공부중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은 일종의 공동 기숙사인 태양의 집에 있는 10개의 방에서 각자 공부방과 잠자는 방을 가지고 있다. 교사 구실을 맡은 학육부 어른 4명이 이들과 생활하고 24시간 돌본다.
초․중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일반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 공동체내 자체 학교가 마련되지 않은 탓이지만 학교에서 생활이 끝나면 나머지 시간은 공동체 생활로 꾸려진다.
이들에게 물론 어떤 규칙이나 특별한 학습활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어른을 교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곳에서 아이들은 가르쳐 기른다는 교육(敎育)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은 제 스스로 배워서 큰다는 학육(學育)의 주체일 뿐이다. 어른은 아이가 스스로 클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야마기시회의 교육은 자연과 인위의 조화라는 공동체 실험정신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학교를 끝내고 온 학생들은 밭에서 작물을 가꾸기도 하고 동물을 돌보기도 한다. 놀기를 원하면 놀고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하는 등 어느것을 할 것인지는 각자 자유다. 실학(實學)이라고 부르는 공동체 내 과외활동은 학육부 어른들에 의해 자연, 다른 어린이들, 어른들과 조화라는 배려 속에 진행된다.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저녁 때 어린이 프로그램 1시간 정도로 정해진 것이 이 곳에서 본 유일한 규제라면 규제라고 할 수 있다.
학육부에서 10여 년째 아이들을 돌봐온 김현주 씨는 정말의 것을 느끼고 보고 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는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대 관심사라고 했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H.O.T와 같은 가수들을 보고 그들의 복장이나 몸짓을 흉내내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나? 학육부 관계자는 아직은 없었지만 고민해 볼 문제라고 했다. 사실 이 곳 아이 중 부모가 공동체 회원이 되려고 했을 때 엄마 아빠는 소유사회가 싫은지 몰라도 나는 이런 데가 좋다. 경쟁도 좋다며 반발이 컸다고도 했다.
아직은 공동체 학생들이 분야를 넓게 정해 스스로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관계자들은 인정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오랜 세월 왜곡되어 학육의 중점이 한정되는 사실을 시인했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길을 열어 보자는 생각을 합니다. 직업에 대한 우열만 없다면 다양한 기술을 배워 이 곳 공동체는 물론 일반사회에서 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힘쓸 수 있습니다. 학육부 김현주 씨의 설명이다.
공동체의 적정 규모 확대는 가능할까, 지속 가능한 공동체 운동 실험은 성공할까 등 잇따른 의문에 이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공동체 그 한 사회만 번영하면 암이다. 기존사회와 조화를 이루면서 지구상의 누구와도 순환공생할 수 있는 사회, 모든 자원과 사람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순환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꼭 야마기시 사회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했다.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그리고 다가올 21세기 모든 이가 만족할 만한 사회의 모습을 찾을 때 누가 하더라도 꼭 해결해야 할 부분을 야마기시회는 다만 모델로 보여 주며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창녕 공생농 두레 우리교육99년 05월호
도농 한살림을 추구하는 사회
- 창녕 공생농 두레농장
글 홍용덕 한겨레신문 기자
저수지 앞에 심어 놓은 살구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던 봄날, 경남 창녕군 남지읍 수개리에 있는 공생농 두레농장 식구들 손길이 바빠졌다. 서른일곱 동갑내기 부부인 미대 출신의 정덕수, 김정서 부부가 천안 생활을 정리하고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농장 식구가 되는 날이다. 훤칠한 키의 정씨는 대학 졸업 뒤 인테리어에 종사했고, 홍대 미대를 나와서 서울에서 집단창작 활동을 펼쳤던 아내 김씨는 미술작업을 하는 일에 미련을 두고 결혼을 미루다 뒤늦게 결혼한 뒤였다.
이날 정씨 부부가 짐을 푼 곳은 공생농 두레농장에서 7㎞ 떨어진 창녕군 장마면 동정리마을.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로, 아기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이가 떠난버린 농촌이었다. 이 때문에 한 살짜리 아들과 함께 이사온 이들 부부는 하루 내내 동네 화제였다. 평당 6만원에 이들 부부가 사들인 집과 대지는 모두 120평 가량. 허물어진 흙벽은 판자와 유리로 새로 막았다. 먼지만 가득한 부엌도 손을 보면서 빈 집은 깔끔한 전원주택으로 바뀌었다.
늦가을 억새밭으로 유명한 창녕 화왕산과 낙동강변 영남수리 사이에 자리잡은 공생농 두레농장의 올해 봄은 이렇게 새 식구를 맞는 일로 시작됐다.
지속적 삶의 대안, 공생농업
지난해 논농사 거의 망쳤어요. 양식 정도 간신히 건졌지요. 비가 많이 온 데다 농사가 서툴러서요. 경북대 유전공학과를 나와 농장이 생긴 첫 해인 95년 이 곳으로 온 손영일(33) 씨는 딸기 하우스로 올라가며 내뱉듯 말했다. 공생농 두레농장 규모는 대략 8천여 평. 수개 마을에서 2㎞ 가량 떨어진 맞은편 미이실골 양편에 자리잡은 논이 3천평이고, 밭이 점점이 흩어져 있으며 저류조(흐르는 물을 저장하는 작은 저수지) 앞에는 관리사와 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한창 수확기를 맞아 빨갛게 익은 보교(품종 이름) 조생 딸기 위로 손씨가 부지런히 이중비닐을 씌우는 사이, 손씨 아내 김명수(31) 씨와 강민경(25․여) 씨가 옆 비닐하우스에서 야채를 따낸다. 저녁거리로 포대에 담긴 무공해 시금치와 상추에서 봄 내음이 상큼하게 배어 나온다.
대구대 특수교육과를 나와 장애아를 보살피던 김 씨가 남편과 함께 공생농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맞아 직장을 그만 두고 이 곳에 온 지 2년, 그러나 아직도 시골 어둠에 적응이 덜 돼 무서움을 타는 편이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배우다 그만 둔 처녀 강씨는 평생 있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현재로서는 괜찮은 편이라며 수줍어한다.
2백4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두 동에는 손씨 몫의 딸기가 자라고 있고, 나머지 한 동에서는 통마늘과 색동양파, 자생 양파인 황색양파가 뿌려져 멀칭재배(땅에 비닐을 씌워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를 대체할 유기농법으로 실험 재배되고 있다.
멀칭재배를 하면 지열이 높아져 알이 굵어질지는 몰라도 땅심을 일시에 빨아들여서 땅을 황폐화시키고 폐비닐은 썩지 않아 땅을 죽이는 결과를 낳지요. 반(反)공생적 농법이라는 게 손씨의 말이다.
대신 이 곳에서는 통마늘 사이에 상추를, 양파 사이에는 시금치를 키워서 농약과 비닐을 쓰는 대신 잡초제거 효과가 있는지를 실험중이다. 마늘, 양파뿐 아니라 벼농사와 잡곡농사에서도 농약과 화학비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는 퇴비경작원칙은 철저히 지켜지는데, 공생농 두레는 이를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공생농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생농의 한 대목을 엿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다두사육 축산업의 금지다. 흔히 농촌에서 한두 마리 정도는 키우는 개나 닭, 오리 같은 집짐승을 이 곳 농장에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꺼내자, 농장 식구들은 웃으면서 말했다. 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라며 (농장 대표인) 천규석 선생님한테 여쭤 보라고 말을 흐렸다.
식구들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는 근처 양계장에서 받은 질 좋은 토종닭과 개를 몇 마리 키우기는 키웠는데, 농장 식구들이 먹어 치운 뒤 그 뒤로는 전연 안 기른다는 설명이었다.
천 선생은 개도 때로 사람이 깜박해서 물과 먹이를 주는 것을 잊다 보면 목마르고 굶는데 그 모습이 불쌍도 하려니와, 요즈음 같은 삭막한 세상에선 닭이 남의 밭을 헤쳐 놓기라도 하면 쥐약을 놔 죽인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이 표면상 원인이기는 했지만 동물 사육의 금지는 동물들이 먹는 사료에서 비롯한다는 게 식구들의 말이었다. 농장 식구들의 음식 처리가 알뜰해 남는 음식물 쓰레기가 없고 이들 동물을 먹이려면 사료를 쓸 수밖에 없는데, 이 사료라는 것이 전부 다국적 기업에서 수입하는 것이라 독점의 폐해가 크다는 것이 진짜 이유라고 한다. 아프리카는 물론 북녘 동포까지 굶는 마당이고, 곡물 그대로 먹으면 평균 7명이 먹을 식량을 가축 사육을 통해 고단백질로 섭취하면 1인분의 열량밖에 생산하지 못합니다. 일곱 사람 몫의 곡식을 한 사람 몫으로 독점하는 것은 반공생적이고, 반생태적인 것입니다. 천 선생의 따가운 설명이다.
농장 식구들의 이처럼 유별난 농사법이 그렇다고 주변 농민들에게 꼭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일년 사시사철 비닐하우스를 쳐 작물을 재배하고 농약 주고 비료 치는 게 일인 농민들에게는 우선 호기심부터 작동한다. 동네 분들이 마주치면 흔히 말하는 게 그렇게 해서 먹고 사냐는 거예요. 그 때마다 뭐 달리 할 말 있나요. 그냥 웃지요. 손씨의 부인 김명수 씨의 대답이다.
따져보면 오늘날의 화학비료와 농약은 현대적인 산물이다. 공업화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인근 산야의 풀과 나무 따위를 거름으로 해서 먹거리를 자급하는 전통적인 농사가 지속되던 때가 있었다. 순수 유기물 거름만 써서 땅과 인간이 순환재생하면서 공존했던 조상들의 이러한 농사 지혜가 오히려 현재에 와서 아주 새롭게 보인다는 게, 우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농촌 현실이다.
농기계가 없던 지난날, 힘들 수밖에 없는 농사일을 위해 마을의 총경작지를 하나의 경작 단위로 해서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나서 해결한 것 또한 농업의 현대화 구호 앞에서는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과거보다 농촌의 삶의 질이 높아지거나 풍요로와졌을까? 농번기 때마다 일할 젊은이가 없어 비싼 품삯을 주고서 일꾼을 벌충해야 하는 삭막한 현실 앞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인 두레는 과연 한낱 지나간 꿈에 불과한 것일까?
공생농 두레의 현대적 복원
이 곳 공생농 두레농장의 식구들은 손씨 부부와 정씨 부부, 독신인 강씨를 비롯해 7명으로 단출한 편이다. 그 동안 오간 독신자가 7~8명에 이르고, 오려고 준비중이거나 대기중인 사람도 여럿 있다고 한다.
공생농 두레농장은 손씨나 정씨와 같이 결혼한 가족은 농장 인근에 집을 사거나 빌려 생활하게 한다. 농장내 관리사에서는 독신자들과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이 머문다. 사생활이 잘 보장되는 셈이다.
새로 이사온 정씨 부부 외에 손씨 부부가 농장에서 2㎞나 떨어진 수개마을에 80여 평 크기의 빈 집을 관리해 주고 집을 빌려 나가 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제법 너른 마당과 생활 가전제품도 골고루 갖춘 집 앞에서, 여름이면 집을 찾는 이들과 함께 술 한 잔 마시기 딱 알맞다며 손씨의 자랑이 은근하다.
이들 농장 식구는 저녁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다시 아침에 농장으로 모여 일하는데, 농장의 경작과 운영은 모든 식구가 공동책임으로 한다. 다만 농사일은 농장 안의 질서와 효율성을 위해서 농사 경력을 우선으로 해서 책임자를 정하고 있다. 농장에서의 농사가 일단 공동노동을 원칙으로 하고, 실제로 그렇게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채소 작목의 경우 식구마다 몫이 정해져 있고 주인이 구분된다.
지난 3월초 이 곳에 온 강민경씨는 2천원을 주고 대파 씨앗을 사다가 모종을 했다. 모종 비닐을 자꾸 들척이던 강씨는 잘 자라야 하는데 하며 여간 걱정스러운 표정이 아니다. 가을에 수확할 대파는 잘되면 그의 내년 농자금 구실을 톡톡히 한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대파가 강씨의 몫이라면 농장에 제일 오래 머문 손씨 부부는 비닐하우스 네 동 중 두 동에 심은 딸기를 그들 몫으로 재배한다. 정씨 부부도 딸기하우스 위에 있는 7백평 가량의 보리밭을 가꾸고 있는데, 초여름 보리수확이 적잖이 기대되는 눈치다.
공생농 두레는 재산의 공동소유나 생산물의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공동체는 아니다. 농장 안에서 농사 경력이 인정된 부부나 채소농사를 책임질 수 있는 독신자들에 한해서 개인 몫의 채소농사를 짓게 해주고 농사몫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씨 부부는 농장일 외에도 귀농인이 사 놓은 논과 밭을 가꾸고, 정씨 부부도 집 인근 땅 8백여 평에 보리를 기르는데, 수확한 작물은 생활비와 농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공생농 두레는 이렇게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공동숙식 같은 원칙적 의미의 공동생활보다는 농장 밖 마을에서 자립기반을 닦는 데 더 중점을 둔다. 보통 공동소유나 공동분배, 공동생활을 하는 일종의 집단주의적 의미의 공동체와 공생농 두레가 엇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다.
자본주의적 의미의 소유욕을 인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성실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 구별되는 전통적 의미의 소유 개념은 인정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정서 씨는 이를 두고 게으름뱅이와 부지런한 사람이 동등하게 취급되는 것은 `유토피아적 바람이거나 `이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모든 농사가 개인 몫을 찾아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벼․보리․밀․콩․수수․기장 같이 농장에서 재배하는 곡류 작목은 개인 소득이 있는 부부 농업인들의 농자재 분담으로 짓되 수확된 곡물은 농장 공동의 몫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농사를 지은 식구들이 한 해 먹을 식량으로 골고루 나눠지기도 하고, 관리사 운영은 물론 이 곳을 찾는 농업 실습생과 외부손님맞이 등 농장 운영 경비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몫과 공동의 몫이 함께 있지만 농장에서 이뤄지는 농사일은 그것이 누구 몫이든지 구분 없이 모든 식구가 농장을 하나의 단위로 해 공동으로 일한다. 이른바 과거의 `두레가 살아난 셈이다. 공생농 두레농장은 이런 점에서 우리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마을 단위로 있다 지금은 사라진 두레농장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키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들 식구들의 말이다.
공생농 두레농장의 규칙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것이 있다. 매주 토요일은 모여서 두레에 주어지는 문제나 주제들을 놓고 공동학습과 토론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식구가 아주 적을 때는 손씨 부부 둘이 앉아서 이러한 토론을 하곤 했지만, 식구 수가 늘면서 두레노동은 물론 토론과 같은, 두레문화의 활성화도 앞으로 적잖이 기대되고 있다. 두레노동과 두레농지를 중심으로 두레신용과 두레문화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공생농 중심의 자급자족하는 지역자립공동체 사회를 실현하는 일이 공생농 두레의 뜻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두레농장은 이 곳 식구들의 삶의 근거지다. 그들은 이 곳을 중심으로 지역에 흩어져 자립하도록 하고 있고, 생산물은 대도시의 신뢰할 만한 소비자들에게 건네져 한살림이라는 유대의 끈으로 이어진다. 대개의 공동체가 구성원의 탈퇴 의사가 없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어 부러 내보내지 않는 한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지만, 이 곳에서는 보통 부부는 5년, 독신자는 1년 이내 자립해 농장에서 나가서 독립하도록 하고 있다.
미래의 실험, 도농공동체
수개리 산골에서 공생농 두레의 첫삽을 뜬 것은 95년 음력설. 다랑논(좁고 층층으로 된 작은 논)에 땅임자만도 10명에 이르던 이 곳에서 천규석 선생은 뼈저린 고독을 느꼈다고 할 만큼, 황무지에서 농장은 시작됐다고 한다.
농장이 들어선 미이실골의 밤은 완벽한 어둠 그 자체다. 웬만한 농촌 어디를 가도 치안 불안 때문에 보안등이 밤새 대낮처럼 불을 밝히는 것과 달리 전깃불을 끄면 말 그대로 적막이 묻어 나온다. 산골의 겨울 추위와 오한 속에서 길도 내고, 좁고 층층으로 이뤄진 논배미를 정리하는 긴 작업 끝에 정리된 논․밭의 형태를 갖췄는데, 이나마 일이 진척된 데에는 도시의 수많은 지원자를 빼놓을 수 없다.
창녕 공생농 두레농장의 현재 소유는 대개의 경우처럼 영농조합법인 소유가 아니라, 농업회사법인 공생농 두레로 되어 있다. 생산자 단체가 아니면 농지를 가질 수 없다는 법에 따라, 농업회사로 등록했다고 한다. 이는 창녕 공생농 두레농장이 현지 농민이 마련한 농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 한살림협동조합의 회원 2백여 명이 90년부터 한 푼 두 푼 회비를 적립해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에 마련한 1억5천만원으로 농장 구입이 이뤄진 탓이다. 대구 한살림의 전체 회원은 현재 7백여 명. 지난 90년 농촌을 지키고 도시소비자들에게 깨끗한 농산물을 공급하는, 이른바 유기농산물 거래라는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출발한 도시 소비자 모임이다.
농촌을 지키고 살리려면 새로운 지역공동체가 필요했어요. 그것은 도시를 발판으로 연대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 선생은 30년이라는 오랜 농민운동을 거친 고뇌의 결과였다고 했다. 도시인들에게 도움이 되면서도 농촌에 관심을 쏟고 지원하는 계기가 유기농산물 거래였다면, 도시 소비자인 대구 한살림 회원들이 농장 자금을 마련한 것은 진정한 도농공동체를 위한 먼 장정의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한살림의 일이 유기농산물 직거래인데, 잘 되면 풀무원이고 안 되면 망하는 것이다. 영남대 김종철 교수에게 진정한 공동체는 지역자립공동체 하려는 것 아니냐고 했지요. 그랬더니 군말 없이 도와주더라고요.
도시에서 문명과 체제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을 도로 농촌에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도시 지원을 받는 지역공동체, 농촌과 도시가 공동으로 만드는 도농공동체가 비로소 싹을 틔워낸 것이다. 공생농이 좋다고 하더라도 모든 도시인을 농촌에 귀향해서 농사지으라고 하는 것은 비현실적 발상이다. 그렇다고 농촌에서 공생농에 입각한 두레공동체를 스스로 만들기는 불가능했다고 천 선생은 말했다. 젊은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농촌에서 어떻게 자립적 소농공동체가 이뤄질 수 있겠어요. 농촌으로 돌아오려는 젊은이들이 농지를 마련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