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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시총서]<시향만리>(2010.6집)<한국시인 집중조명>徐芝月 詩-'꽃잎이여' 외20편/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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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芝月 詩選>
1.꽃잎이여
2.가난한 꽃
3.집 보는 날
4.진달래 山川
5.素月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6.나비야 靑山 가자
7.江물과 빨랫줄
8.개밥그릇의 노래
9.바람 불어 좋은 날
10.한국의 달빛
11.紅枾를 보며
12.팔조령에서의 별 보기
13.朝鮮의 눈발
14.둥근 밥그릇의 노래
15.시위를 떠난 화살
16.나의 抒情詩
17.그리운 金剛山
18.一松亭 푸른 솔
19.북방하늘의 땅
20.우리는 馬夫
21.우리 朝鮮사람들은
< 한국시 특집>徐芝月 詩-'꽃잎이여' 외20편
ㅡ서지월시인은 김소월 서정주 박목월로 이어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에스프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주류의 서정시인이다. 즉 한국이 낳은 현존하는 민족서정시인이다. 한국에서는 서구적 모더니즘 시와 민중시라는 사회참여시가 시단을 강타해 온 나머지 민족성과 고유정서에 대한 반성이 늘 재기되어 왔다. 서지월시인은 미당 서정주, 정지용, 박목월, 박재삼을 잇는 서정본류에 깊이 맥이 닿아있는 한국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라매김 되어온 시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만주땅을 사랑하고 민족고유정서를 만주땅에서 찾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으며, 이제 한국문단에서도 민족정서를 가장 현실적으로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본지에서는 큰 귀감이 가는 일로 한국 어느 시인 보다 서지월시인이 있기에 중국 전 조선족 뿐만 아니라 중국 조선족 시단에도 큰 활력의 계기가 되리라 보며 한국시인으로서 <서지월 민족서정시 특집>을 마련해 내보낸다.
서지월시인은, 순수서정시로 출발해서 전통서정시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족서정시를 개척해 온 유일무일한 민족서정시인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2002년에는 중국 <장백산문학상> (해외부문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조선족 문단에서도 눈부신 활동을 거듭해 왔으며, 중국 만주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시인으로 이미 평가되어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민족정서라는 우리의 혼과 얼을 재구성하고 새로이 모색함으로써 급변하는 역사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생각만 해도 아직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우리의 오천년 역사 그 시원의 땅이기도 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이주해 오늘에 이르기도 한 영토임과 동시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만주땅은 자리매김 되어 왔던 것이다. <편집자/주>
꽃잎이여
서 지 월
한 世上 살아가는 法
그대는 아는가.
물빛, 懺悔가 이룩한
몇 小節의 바람
옷가지 두고 떠나는 法을
아는가.
눈물도 黃昏도
홑이불처럼 걷어내고
갓난 아기의 손톱같은
아침이 오면
우린 또 만나야 하고
記憶해야 한다.
꽃이 피는 것과 所有하는 일이
서로 半半씩 즐거움으로 비치고 있는
그 뒤의 일을
우린 통 모르고 지내노니
胸腸의 일기장 속
꼭꼭 숨은 줄로만 아는
풀빛, 그리울 때
山그림자 슬며시 내려와 깔리는 法을
아는가.
눈썹 위에 눌린 天頂을 보며
아들 낳고 딸 낳고
나머지는 玉돌같이 호젓이 앉았다가
눈감는 法을
그대는 아는가.
**1985년 전국교원학예술상 문예부문 大賞, 문교부장관상 수상작.
가난한 꽃
서 지 월
금빛 햇살 나려드는 산모롱이에
산모롱이 양지짝 애기풀밭에
꽃구름 흘러서 개울물 흘러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나그네가 숨이 차서 보고 가다가
동네 처녀 산보 나와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꽃샘바람 불어오는 산고갯길에
고개 들면 수줍은 각시풀밭에
산바람 불어서 솔바람 불어서
가난한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행상 가는 낮달이 보고 가다가
동네 총각 풀짐 놓고 보고 가다가
가난한 꽃 그대로 지고 맙니다
집 보는 날
서 지 월
따서 먹으면 먹을수록 붉은 대낮
얼얼한 눈썹 하나 살은 듯이 빼어들고
어디서 문둥이는 꽃을 부비고 섰는가
밀보리 향기짙은 훈풍 불어 올진대
먼 山의 뻐꾸기는 빨랫줄에 와서 울며
호드기 불며 가신 누이는 돌아올 줄 모르니
장독간에 깨진 질그릇 누이의 눈물인가
엄마는 밭일 가고 나 혼자서 집 보는데,
뜰안에 모란 꽃잎이 머리 풀고 피더라
진달래 山川
서 지 월
비슬산 참꽃 속에는 조그만
초가집 한 채 들어있어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
쿵쿵쿵쿵 가슴 두들겨 옵니다
기름진 땅 착한 百姓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난 듯 큰일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
어머니 누나들 그런 날의 山川草木
얄리얄리 얄랴셩 얄랴리 얄라,
쿵쿵쿵쿵 물방아 돌리며 달을 보고
흰 적삼에 한껏 붉은 참꽃물 들었었지요
素月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서 지 월
하이네도 좋고 릴케도 좋고
바이런도 좋고 구르몽도 좋지만
우리의 산에서 우리와 같은 밥을 먹고
우리와 같이 눈물 흘리며 핍박 받아오던 시대의
素月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붉은 목젖의 피어 헝클어진 진달래꽃 다발 안고
북녘 어느 소년은 南으로 南으로
내려오고 있는가
흰옷 입고 자라고 흰 창호지빛 문틈으로 세상 엿보고
동여맨 흰수건 튼튼한 쇠가죽북 울리며
예까지 흘러왔건만
소월의 산새는 지금 어디쯤 날아간 묘지 위에서
점점이 멀어져간 돌다리와 짚신과 물레방아와
자주댕기 얼레빗......
이 땅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섬돌밑에 잠드는가
그리운 백도라지 뿌리 깊이 내리여
천길 땅속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나비야 靑山 가자
서 지 월
북망이라도 금잔디 기름진데
나비야 청산 가자
울아버지 흰 띠 매고 압록강 건너고 울엄마
초승달같이 쓰러져 울던 저녁
우리 누나 새하얀 박꽃같이 피어서
독립만세 부르다 숨진 곳,
나비야 청산 가자.
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못해도
오천년 피강물 놋낱으로 굽어보고
잠든 말발굽소리 천변의 돌멩이
산천도 내것 초목도 나의 것
곱고 고운 나래 나비야 청산 가자
피피새 우는 오리목 모밀밭에 나래 접고
북녘땅 내려다보면 눈물 왈칵 쏟아지고
남쪽 하늘 바라보면 강남제비 온다야
어느 날 우리 아침상 받아 허기진 배
채울지 몰라도
눈믈겨운 한때 가슴에 못박히우던 저
멍든 세월의 풀잎하늘,
나비야 청산 가자 가서는
곱게 물든 편지 한 장 빵 한 조각 없어도
산천은 다 우리 것 초목은 다 우리의 것.
江물과 빨랫줄
서 지 월
오늘도 어머니는
강물을 훔쳐 와
한 자락씩 줄에 너신다.
누런 호박오랭이 썰어 말리듯이
햇빛은 항시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지만
얼굴 없는 바람은
부뚜막 위에서 불고
장독대를 넘어와
어머니의 허이여신 머리칼 위에도
분다
하늘과 땅 그 크낙한
화해를 위해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분별을 위해
두 귀 바지랑대는
생명의 줄을 튼튼히 받치고 있다
천년풍우 그 어느날에도
우리의 제기(祭器), 제기(祭器) 같은 것
먼 산 그리메 숱한 메밀밭 위으로
낮달이 조을고
젖은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파란 하늘은 아득히 멀고
나는 왠지 눈물이 핑 돈다
개밥그릇의 노래
서 지 월
나는 철저히, 철저히 유배당한 지상에서의 짝 잃은 고무신 누가 뭐래도 웃지 않고 울지 않는다 한낮의 해와 부엉이 우는 밤의 골짜기 둥근 달이 내 움푹 패인 겨드랑이 훑고 가도 퍼담을 수 있는 건 주인이 내어다 주는 음식찌꺼기 그것만으로도 흡족한 나는 이내 속이 비어져 늘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당당히 낮과 밤의 시간을 함께 한다.
너희들의 식사시간을 은근히 습관처럼 기다리지만 너희들이 수저 놓고 자리 뜰 때 분주한 건 나 아무렇게나 마당가에 놓여져 나의 여윈 살과 뼈와 살까지 핥는 강아지들을 보라 얼마나 눈물겨운 만찬인가
철저히 유배 온 이 지상에서 때론 빗물도 고여 마당 가득 채워 주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손길이라는 자부심에 넘쳐 흐르며 꽃송아리를 헤는 아이마냥 해와 달을 셈하며 살아간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서 지 월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색동저고리 날리는 바람이 분다
어느 땐들 우리가 한 식구 한솥에
밥 아니 먹고
북채 장구채 골라잡지 않았으리요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꽃 떨어지기 전에 부는 바람 임 보는 바람
꽃 떨어지고 부는 바람 열매 맺는 바람
백두산의 진달래꽃 피어서 꽃구경 가는 날
으스러진 강물이 땅을 울리고
으깨어진 어깨가 춤을 춘다
이 강산 햇빛 나고 구름 좋은 날
구름 위의 새소리 맑게 뚫리는 날
쓰린 발 쓰리지 않고
저린 손 저리지 않고
목마름도 피맺힘도 한풀꺾인 목숨이라
샘물 퍼내어서 버들잎 띄워 마시고
숨막히는 산고개도 넘어보면 훤한 이마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연지 찍고 분 바르고 귀밑머리 날리는
바람이 분다, 소나무 가지 위에,
한국의 달빛
서 지 월
쟁반 위에 놓여져
床을 받치고
더러는 바람부는 청솔가지 솔잎 사이로
물소리 흩뿌리는 수작을 걸면서
억겹 산을 넘어
지름길로 오는구나.
玉돌이야 갈고 닦아 서슬이 푸른 밤
싸늘한 바위 속 어둠 밝히며
쟁쟁쟁 울려오는 은쟁반 소리
은쟁반 위의 거문고, 바람이 흉내내는
나의 파도소리…….
옛날엔 이런 밤 홀로 걸었노라.
걸어서 거뜬히 몇 십리도 갔노라
짚세기 신고 돌담길 세 번쯤 돌아
모시적삼 남끝동 임을 만나고
수줍어 돌아서는 강물도 보고
손 포개고 눈 포개고 달빛 또한 포갰노라.
창망히 멀어져 간 수틀 위 꽃밭과
애달피 구슬꿰는 피리소리가
시렁 위에 얹혀서 돌아올 때면
쑥국쑥국 쑥국새는 숲에서 울고
칭얼칭얼 어린것은 엄마품에 잠든다.
紅枾를 보며
서 지 월
적어도 이만큼은 휘드러져야 보기좋은
감나무쯤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가 말해주고 간 감나무에
누런 감잎 훌훌 옷을 벗나니
아버지는 그걸 과실 중에는 제일이라 말씀하셨고
더 오래 사신 어머니는 그 감잎 긁어모아
아궁이의 불 지피는데
한 밑천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보아하니, 감나무는
우리의 오랜 하늘까지를 지탱하여
北邙이라도 안 가보아서 어딘지 모르는
그 끝을 향해
노자도 없이 그냥 날아가기엔 쓸쓸해
거기 까막까치가 저승으로 날아들기 전
붉은 감홍시를 파먹고
중참은 면한 구실로 잘 가거라 잘 가거라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不歸의 그것 아니겠는가
나 어릴 땐 쳐다보기만 하여도
아득하게만 여겨지던 것이
이제는 손이 닿는 한 뼘쯤의 하늘 위에서
하나 둘 잎은 땅위로 흘리면서
더욱 찰지게 매달려있는 것을
西녘으로 불려가는 찬바람 속에서 느끼나니
우리도 저와 같이 매달려 있음의 세상이 눈부실 때,
절로 눈앞이 흐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팔조령에서의 별보기
서 지 월
우리는 팔조령에 별을 보러 갔지요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고 별을 보러 갔지요
두 발 동동 구르며 쳐다보는 밤하늘
어둠 속에 소풍 나온 바람과 함께 별을 보러 갔지요
모여서 사는 것이 더 아름다운 거라고
별들은 우릴 내려다보며 노랠 불렀지요
언덕 아래 옹기종기 모인 마을의 불빛과
밤 이슥해도 꺼질 줄 모르는 저들만의 눈짓이
우리가 모르는 골짜기가 되고 강물이 되어서
닭 울음소리 담을 뭉개는 새벽녘이면
또 어디로 쉬임없이 흘러갈지 몰라도
무시로 저무는 별을 봤지요
어깨 겯은 나무들이 둥둥 떠오를 즈음
밤은 먼발치의 길을 덮고 언덕을 덮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 우리는
얼굴 하나로 꼿꼿이 서서 별을 봤지요
朝鮮의 눈발
서 지 월
나는 지금 세계의 가장 平安한 牛車에
실려가고 있다
아침 床 받으면
풋풋한 생채나물
그 미각을 더불어
어린 날의 서당골 물푸레나무
결 고운 길을 따라
잠 덜 깬 포대기 속 아이의
꿈결같이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닿아야 할 예지의 나라
純銀의 밀알들,
바다와 江이 놋요강처럼 놓이고
陵은 풀잎처럼 잠든다
문경새재에 눈이 내리면
청솔가지 꺾어들고 오는
하얀 버선코,
사슴의 무리가 눈을 뜬다
지붕밑 동박새가 살을 부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눈은 내리고
누군가 흰 고무신 눈발속을
조심조심
미끄러져 가고 있다
아침 신문 유액 위 '朝鮮通史'가 빛나고
한술의 배고픔보다 천근의 무게로 울려올
우리의 풍악소리.....
몇 백년쯤의 뒷날을 다시 생각노니,
지금 나는
세계의 가장 平安한 牛車에 실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잘도 넘어간다
둥근 밥그릇의 노래
서 지 월
우리가 오천년을 먹어온 밥그릇 앞에
지금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오늘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받고 있으면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보리밭 길을 가아자......」
겨울을 나는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동구밖에서 들려오고
늘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 먹고 자란 둥근 밥그릇 위에
먼 산이 다가서 비치고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날아와 깃을 칩니다.
또다시 푸짐한 밥 한 그릇 받고 있으면
「해야해야 나오너라, 김치국에 밥 말아먹고
장구 치고 나오너라......」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골목에서 들려오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들이 실컷
먹어온 밥그릇 주위를 빙빙 돌며
「쾌지나칭칭나네, 쾌지나칭칭나네......」
밤낮 할 것 없이 사시장철 우리들을 두루 비추어 온
해와 달 그리고 별
둥근 하늘아래, 북 장구 꽹과리 징 상모
그 어느 것 하나 둥글지 않은 것이 없듯이
우리가 오천년을 먹어온 둥근 밥그릇 속에 김이 오르고
길을 가는 소달구지는 팔조령 재를 넘었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
서 지 월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맞힐 때까지를 한번 생각해 보아라. 거기에는 수천억만 광년의 햇빛이 나리고 풀밭에 숨어있던 들쥐 들쥐새끼들이 기어나와 새로운 하늘을 맛보고 몇 代를 이어가는 집집마다 生老病死가 거듭되는 동안 화살은 쏜살같이 날아가 자신의 몸을 던져 어느 한순간 정지시켜 버리나니
저쪽 풀밭에서 박수소리 들려오지만 과녁을 맞힌 화살은 우리들의 생각 밖으로 밀려나고 그처럼 건장한 한 사내의 화살은 다시 밝아오는 아침의 활시위에 올려져 목숨 가는 곳까지 눈 부릅뜨고 마지막 불꽃을 사룬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젖은 몸으로 그는 돌아올 기약없이 처절히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흘러간 강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 위에서 비껴 흐르듯 우리도 강둑에 패랭이꽃 같은 훈장 떨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목숨인 것을
나의 抒情詩
서 지 월
열 대여섯 살 무렵부터 나는 열심히 서정시를 써왔습니다. 꽃과 나비, 새들의 하모니며 저녁마다 우러르던 바알간 노을빛에 그리움 같은 걸 묻어두며 누이의 화안한 미소에까지 나의 서정시는 번져갔습니다. 그러니까 우선 시는 곱다는 것으로, 크레용을 가지고 좋아하는 계통의 색깔을 골라 도화지 위에 박박 그려내는 그런 그림과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해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태양에 흑점이 많이 생긴 해로서는 농작물 피해 뿐만 아니라 눈이 산더미같이 와 억수로 추운 겨울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세상은 잔칫날 파장처럼 술렁거리며 저마다 생활의 짐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변소에 가 앉아 똥을 누면서 생각하듯 서정시는 계속 써 온 것입니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의 그 휴식의 표정을 보고 삶의 한순간이 애처로웁듯 초췌하다는 것을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내가 그리던 사랑나무의 핑크빛 사랑열매도 저문 강언덕 위로 낙하할 즈음, 나는 세상을 근심처럼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사물의 형상이라는 게 어두운 쪽은 잘 보이지 않듯이 용케 명암을 따지는 세상을 맞게 되었고 혓바닥 내민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숨 가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버릇은 서정시를 쓰는 그것만은 휙 뿌리쳐버리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베에토벤의 심포니가 더욱 강렬하게 뇌리를 때리었고 나자빠진 영혼처럼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흰 백합화를 흔들며 지나가던 소녀꽃장수마저 거리에서 사라져버린지 오래 바람도 집 잃어 우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내가 그만한 무지개 색깔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형편이라서 늘 눈물나고, 어릴 때는 노란 은행잎 주워 세면 마냥 즐겁기만 하여 더 가질려고 떼를 써 줍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신 다른 것에 눈을 흘리는 정황이 되었으니 때가 묻고 구성이 잘 되질 않았습니다. 비오는 날의 장단같은 것이 어딘가 맞지 않는 슬픔 느끼고 저무는 처마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정녕코 오늘에 와서 이제껏 꽃이나 별이나 사물에서 보던 나의 서정시가 도시를 꽉 메운 빌딩 속 어딘가에 숨어, 눈 딱 감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몇 번을 외쳐봐도 눈 떠보면 흰구름 한 송이 피어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나의 서정시는 바람 구르는 새벽풀밭 잃고 새들이 날아와 야영할 숲마저 잃어버린 채, 세상의 마지막 광장 쪽으로 우리가 쓸쓸히 발 맞추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운 金剛山
서 지 월
江 건너 山
너머 부연 물안개
오늘도 빛나는가
草露에 떨던 하늘 높고
땅 낮은 祖國이여,
아침 床 받으면
김 오르는 밥그릇
앞에 두었거니
우리 마음 나란한 은수저
어머니 깊게 패인 꿈으로 엮으신
즈믄 물살에
학처럼 여윈 모가지여,
비단바람은 살랑살랑
저기 저 열두 폭 휘장
휘장 두른 水墨香
눈물이 반쯤 젖가슴 가린
半裸의 貞節이여.
杏壇에 기도 드리던 날
鳳凰은 와서 울었다
處容은 와서 춤추었다
거북은 돌이 되고
돌은 蓮꽃이 되고
蓮꽃 위의 절간 그 위에
法師 홀로 앉아
꿈꾸었다.
진달래 꽃그늘에
소 몰아 가던 農夫
꽃술에 취해 낮잠들 때
靑山行 봄나비
열 대여섯 살 난 娘子같이
사푼사푼 걸어가던 이 거리
전쟁통에 흘린 핏방울
누구의 원혼이던가
젖줄 없어 목놓아
울던 어린것들
누구의 遺産이던가
아아, 끝내 너는 너대로
커서 우는구나.
날이면 날마다 햇빛 받아
목침 곁에 조을고
밤이면 밤마다 달빛 받아
조화로운 우리의 玉피리!
늴리리야
江 건너 山
너머 부연 물안개
빛나는가, 새로 열린 이 아침
床 위에 김 오르는 밥그릇
하나 두었다.
一松亭 푸른 솔
서 지 월
달이 밝은 밤이면
하나인 달밤에 너를 생각한다
지금 이 땅은 말발굽 대신
군화발자국, 깨어진 명경 들여다 보듯
너는 하나이고 둘이구나.
우리가 우리 마음같은 커다란
범종을 울릴 때 아니면
우리 튼튼한 뱃가죽같은
북을 울릴 때
하나인 것은 하나의 소리로 울려퍼지고
江을 끼고 누운 달빛마저 하나인 것을
너는 알겠구나.
바람을 깨우쳐 눈 뜨게 하고
펄럭이는 풀잎을 일으켜 꽃피게 해도
상처난 살점 도려내듯
흰 피 붉은 피
철철 넘쳐흐르는 달빛아,
별들도 말없는 밤이면
밤새는 울어쌓는데
잠 못드는 산아 강물아
댓돌 위의 어머니 코고무신
코고무신을 에워싼 적막이
모래소리를 내는구나.
하늘은 하나이지만 총칼로
나뉘어진 가슴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무성하구나
내가 나의 아내와 어린아이와 숨찬 언덕에 올라
보여줄 것이라고는 너의 얼굴
생채기난 푸른 얼굴
무엇이 더 필요하랴,
우리의 밥과 물과 흙이
숨쉬는 이 땅 위에
늙어서 더욱 청정한 너를 보면
이마에 땀이 솟고 나는
먼길 속에 갇혀 누이를 부르며
너와 놀던 오월 단오날의 그네
그네 위의 玉色 치마물결
눈물겹게 그리노라.
눈물이 반쯤 마르면
상한 옆구리 사이로
상한 고기비늘 퍼득이는
솔숲 사이 강물을 보고
밥그릇도 포개어져 주인 없는 시렁 위에
빈 날개의 안개만 뗏목처럼 밀려올 뿐,
오늘도 무성한 피의 들꽃이
소리없이 피는구나.
아,
동동동 발 구르는 산아 언덕아
배고픔도 피맺힘도 고개 너머 아리랑
너의 이마 위에 숯검정 묻은
달이 솟는구나, 솟는구나.
우리는 馬夫
서 지 월
아직은 우리가 우리로서 만세를
부르지 못하는 때
장기를 두거나 바둑의 패에 몰려
기찬 사랑도 마음대로 나누지 못하는 때
풀리는 江물은 北에서 오고
꽃靑山 맑은 바람은 南에서 오건만
누가 흥부의 박타령에 징을 울리고
놀부의 굵은 심술에 돌 던지겠는가
아직은 우리가
우리의 아침 상에 밥을 올리고
나란한 은수저 그 질량을
들어 마주하기 이른 때,
아리랑 쓰리랑 섞갈려 도는 물레방아 물소리같이
차고 쓸쓸한 아침
김치국에 밥 말아먹고 江山에 돋는 해의 아침
그날이 오면 장구는 울리라
이(齒) 시린 보리들이 서릿발에 얹혀
얼어붙은 江山 다시 녹을 때까지
우리는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고,
눈 내린 응달에 겨울나무들이 줄지어 선
어깨 겯고 무장한 그런 세상은
있어서는 안되지
우리는 배움이 모자라 馬車를 끌고
걸어다니지만, 새 풀밭길 여는
馬夫야 馬夫,
녹슨 바퀴에 기름을 치고
맑은 하늘 아래 둥둥둥 북을 울리며
야! 호!
야야! 호호!
신나게 전진하는 ―
북방하늘의 땅
서 지 월
아아, 북방하늘의 땅
눈물 마를 날 없지 않았지만
저 하늘이 저리 푸르고
바람 불어와 옷깃에 머무는 것 보면
흐르는 강물도 잔돌들 껴안고 살아가며
물동이 물 이고 오는 여인이
내 누이인 것을!
나의 더운 피가
저 하늘에 스며있음을 알아
밥 아니 먹어도 배 부르고
님을 못 만나도 슬퍼지 않았네
모든 것이 사위어갔지만
해가 떠서 열매 맺고
달이 떠서 향기로운 것 보았지
내 눈물 모두 보태어도 다함 없는
아아, 북방하늘의 땅!
우리 朝鮮사람들은
서 지 월
우리 조선사람들은
물맛을 배맛으로 보고 살았습니다
먹물 창호지에 아른아른 배어나듯
그렇게 먹 갈고 살았습니다.
비오는 날은 도롱이를 쓰고
봇도랑으로 나갔습니다
초승달이 석류나무 가지 위에 뜨는 저녁답
자주댕기 남끝동 다 큰 처녀가
몰래 담을 넘고
오오래 길들여진 나귀가 주막에 드는 밤
호롱불처럼 쑥꾹새는 밤새 울었습니다
천 년 강물 허리에 두르신 어머니는 곤히 주무시고
아버지는 걸어서 타관백리의 산을 넘고 또 넘었습니다
우리 조선사람들은 조선낫처럼 有情해서
물맛을 배맛으로 보고 오래 오래 잘 살았습니다.
▒ 徐芝月詩人 약력 ▒
▲ 시인. 아동문학가.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대구대학교 졸업.
▲1955년, 고주몽 연개소문과 같은 생일인 음력 5월 5일 단오날(端午)날, 대한민국 대구 달성 출생. 본명 서석행(徐錫幸), 아명 건식(巾湜),아호 아미산(峨眉山月).
▲1985년 10월, 제2회『전국교원학예술상』문예부문에 시<꽃잎이여>로 大賞 당선(문교부장관상 수상).
▲ 1985년, 고 박목월시인이 창간한 시전문지『심상』신인상 시 당선 및『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각각 시가 당선 되어 등단.
▲1986년,『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1998년, 제1회『한하운문학상』본상 수상.
▲1999년, 제1회 전업작가 대한민국정부 특별문예창작지원금 일천만원 수혜시인에 선정됨
▲2000년,한국문인협회 문경지부 주관『正文文學賞』수상.
▲2002년,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2003년, 중국 연길 한국정지용시인 국제세미나 참가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만주땅 전역을 답사함.
▲2004년,대구시립국악단「민족의 숨결을 찾아」공연에 시 <건들바위의 노래>가 창예술가곡으로 작곡 되어 무대에 올려짐.
▲2005년, 일본 최대 詩잡지「지구」詩 초청으로 도쿄 아시아환태평양시인대회 참가.
▲2006년, 대구MBC문화방송 주관, 구미오페라단 주최로 시 <울릉도 섬말나리꽃>이 창예술가곡으로 작곡 되어 울릉도군민회관에서 무대에 올려짐.
▲2006년, 대구 MBC 문화방송 노래 <달구벌의 빛과 소리>가 가곡으로 작곡됨.
▲2006년,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 주관, 詩碑「신 귀거래사」가 영천 보현산자연수련원에 세워짐.
▲2007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기념 향토적인 삶을 찬양하고 노래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인으로 선정됨.
•▲2007년, 달성군 주관, 한국시인협회 MBC KBS 등 후원으로 詩碑「비슬산 참꽃」이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짐.
▲2008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大韓民國創作合唱祝祭에 시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창작합창가곡으로 작곡 되어 무대에 올려됨.
▲ 중앙일보사『한국을 움직인 인물들』,조선일보사『국내 주요인사 인물정보 BD』,문화일보사『문화예술인 BD』, 연합뉴스 '한국 주요인물'에 선정됨. 불교TV방송국『불교인명대사전』및『韓國詩大事典』에 수록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대구문인협회 외국문학분과위원장,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동시문학회, 아동문예작가회 회원. <낭만시> 동인.
▲한중공동 시전문지『杜鵑花』편집주간. 한민족사랑작가회 공동의장. 대구시인학교 지도시인.
■시집■
¤『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
¤『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 대구시인협회상 수상시집.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 시와 시학사)
¤『팔조령에서의 별보기』(1996, 도서출판 중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백도라지꽃의 노래』(2002, 중국 요녕민족출판사),중국 '장백산문학상' 수상시집.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천년의 시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시집으로 선정됨.
¤동시집『휘파람나무』(1987, 아동문예사. 공저).
¤『한국아동문학선집.권42』에 동시 <우리 나무들>, <별, 나무 하늘>, <그날밤>이 수록됨(계몽사).
[연락처]
(우)711-860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 詩山房 南栖齋 徐芝月(詩人)
¤전화:(053)767-5526 휴대폰 011-505-0095
¤이메일: poemmoon55@hanmail.net
¤홈페이지: http://poemtree21.net/
[徐芝月 詩論]박태상-'서정의 질그릇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서정의 질그릇이 빚어내는 아름다움
박 태 상(문학평론가. 한국방송대 교수)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서지월시인은 가장 전형적인 서정시인이다. 시인 치고 서정성을 강조하지 않는 시인이 없겠지만, 서시인은 유독 김소월 - 서정주 - 박목월로 이어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에스프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주류 서정시인이다. 서시인과의 첫 만남은 1994년『 현대문학』에서 서평을 청탁해 와서 11월호에 게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이후 제2회 미당 서정주문학축제에서의 만남까지 아름다운 우정이 14년간 지속되고 있다.
서지월시인의 대표작은 「소월의 산새는 아직도 우는가」라고 할 수 있다. 소월의 서정시를 패러디한 이 시에는 아름다운 민족의 숨결과 끊임없는 조국 산하에 대한 숭고한 마음을 현대에서 되찾겠다는 전통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배어져 나온다. 이러한 세계관에는 투명하고 순수한 우리 가락의 흥겨움과 피눈물을 뿌리며 가슴을 부여잡고 슬피 우는 한의 정서를 씨줄과 날줄로 짜서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려고 하는 시인의 각고의 노력이 담겨져 있어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하이네도 좋고 릴케도 좋고
바이런도 좋고 구르몽도 좋지만
우리의 산에서 우리와 같은 밥을 먹고
우리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핍박받아 오던 시대의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
-서지월, 「소월의 산새는 아직도 우는가」 일부
서지월 시인이 김소월에서 나왔지만, 김소월에 머물지 않고 김소월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는 시 「나는 마차를 끌고 싶다」에서 단순한 서정과 미학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적 위상과 의미에 대해 반추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초기, 중기 시의 특징은 「진달래 산천」에서도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
첫째,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골마을의 초가집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꺼리를 끄집어낸다. 시골집에는 대가족제도하의 농경사회의 전통이 묻어나온다.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 주머니와 노동을 중시하는 철학, 그리고 손자손녀 사랑의 미풍양속이 마음속에 그려질 것이다. ‘툇마루 다듬잇돌 다듬이 소리’는 소리의 공명효과만을 고려한 표현이 아니고, 동양화가 주는 여백의 미학을 부가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름진 땅 착한 백성
무슨 잘못 있어서 얼굴 붉히고
큰일 난 듯 큰일 난 듯 발병이 나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
꽃이야 오천년을 흘러 피었겠지만
한 떨기 꽃속에 초가집 한 채씩
이태백 달 밝은 밤 지어내어서
대낮이면 들려오는 다듬이소리
-서지월, 「진달래 산천」 일부
둘째,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보릿고개와 수탈당하고 핍박 받은 고통의 역사를 고스란히 재현하되, ‘얼굴 붉히고 / 큰일 난 듯 큰일 난 듯 발병이 나 /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라고 전통무용의 춤사위로 형상하거나 다소곳한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처리하고 있어 미적 범주 중에서 비애미를 극복하고 우아미로 승화시키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
셋째, 「비슬산 참꽃」은 총 4연이 연결고리를 통해 이어지며 시적 상승효과를 보이면서 총체성을 지니고 있다. 1연은 ‘다듬이 소리’를 매개로 한 청각작용, 2연은 ‘버선발 딛고 아리랑고개 넘어왔나요’에서 춤사위를 응용한 율동적 시각, 3연은 ‘한 떨기 꽃 속에 초가집 한 채씩과 ‘다듬이 소리’의 복합작용을 통한 시청각의 통합효과를 구사하여 민속적 소재를 예술적 흥취로 맛갈 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마지막 4연에서는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에서 고려속요의 리듬 차용을 통한 우리 민족 특유의 전환의 미학(한-흥)과 ’흰 적삼 한껏 붉은 참꽃물‘에서의 시각적 미학의 통합효과를 다시 반복하여 고통을 정화시키고 신바람 나는 미래를 떨쳐나가는 강인한 민족성을 꽃상징과 색채감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요약하면, 서지월 시의 감칠맛은 자연과 인간, 소리와 율동, 색채와 리듬, 광기와 일상생활, 선적 침묵과 동적 쾌활함, 고풍과 현대성, 계절적 순간성과 자연적 영원성의 우주적 이분법적 대립 항을 계열화하고 통합화하여 ‘화융의 미학’을 생활자기로 빚어내어 독자들 앞에 탐스럽게 내놓고 있는데서 드러난다. 서정시의 아름다움을 이 이상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의 찬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시적 계보측면에서 정지용 - 조지훈 - 신경림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아름다움과 민중적 흥취를 조화시킨 전통의 계승은 시인 서지월을 한국문학사에서 순수 서정시의 굳건한 초석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徐芝月 作品論]송수권-'한국 서정시의 깊은 맛'
한국 서정시의 깊은 맛
宋 秀 權 (시인. 순천대 문예창작과 명예교수)
1908년 최남선이 쓴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한국 현대시의 효시로 규명하고 있고 보면 한국 현대시는 100년이란 역사를 거쳐왔다. 세계 어느 국가나 민족의 존립은 그 국가나 민족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기 마련인데 역사 문화 풍습 언어 등으로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역시 그 국가나 민족의 개념에서 해석되며 형성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한국 현대시사 100년이라는 변천사를 보더라도 한국 현대시는 시대상황과 다각적인 변모를 보여왔다. 그 민족의 고유한 정서나 문화는 어느 시대에서나 토양과 같은 것이어서 민족의 혼과 얼을 고스란히 계승해 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화시대를 맞아 더욱 절실한 주체성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10년대와 1920년대의 김억 주요한 김소월을 비롯해 1930년대 정지용, 김영랑, 백석, 이용악, 서정주, 1940년대의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1950년대의 고은, 박재삼, 황동규, 신경림, 김춘수, 김수영 등으로 이어지며 해방을 맞고부터 한국 현대시는 자유자재한 세계관을 갖기 시작했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정진규, 이근배 오세영 문정희 등 그리고 1970년대의 송수권, 나태주, 이성선 등으로 이어져 1980년대에 와서 더욱 거센 시대적 소용돌이를 맞으면서 한국 현대시는 더욱 다양한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1980년대 중반에 한국시단에 얼굴을 내민 시인이 서지월시인이다. 1980년대에 등단해서 한국현대시가 100년을 맞는 지금까지 독보적이랄까 유일하다고 할까 한국인의 민족정서 내지는 고유정서를 가장 잘 살려내며 꿋꿋한 시정신사을 지켜온 시인이 서지월시인이라는 것이다. 서지월시인은 타고난 서정성을 고유정서와 민족정서에 결합시킨 시인으로 평가된다. 부족어인 한글을 가장 유려한 문체로, 가장 따뜻하면서 웅혼하게 울려온 중견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현대시의 마지막 서정시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서지월시인의 미적감각은 가장 한국적인 가락을 빚어내는데 있다.
말하자면, 우리 한민족을 아리랑 민족이라 부르며, 어딜 가나 어디서나 아리랑을 즐겨부르는 민족임엔 두말 할 나위없듯 이처럼 아리랑의 정서와 멋을 가장 잘 살려내며 그 얼을 계승하고 있는 유일한 한국시인이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리랑의 정서는 한의 정서인 동시에 백의민족의 신명이라 할 수 있는데 한국시의 얼굴이라면 바로 아리랑이 갖는 끈끈한 민족혼에서 비롯된 고유정서로 천년만년 이어 나가야할 유산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서구화 되어있고 우리의 것은 퇴색되어 가고 있는 이즈음 서지월시인 같은 현역시인이 있어 우리는 그나마 민족정서에 기댈 수 있는 요행을 맞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서지월시인은 역사와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라면, 가장 한국적인 그러면서 아리랑의 정한을 한민족의 젖줄로 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서정시의 완성을 서지월에게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현대시 100년의 한국 서정시의 완성을 서지월시인에게 기대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언어가 갖는 미학적 표현의 간절함을 뜻하기도하는데, 서지월시인이 아니면 아무도 한국 서정시의 깊은 맛을 우려내지 못할 뿐더러 더 이상 한국 서정시의 깊은 맛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이 되고 다문화시대를 맞은 이때 민족의 고유정서가 자칫 탈색될 우려도 없지않을 만큼, 민족의 고유문화와 민족어의 숭배사상도 요청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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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월시인, 문학과 인생 사진자료]
◆생가 돌담앞에서, 20대 젊은 시절의 서지월시인.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세워진 서지월시비「비슬산 참꽃」판플렛 표지
◆서지월시인과 딸 다미와 아들 대원과 함께
◆「국선문학회」창립식에서, 스승 박재삼시인과 함께 한 최별희 대구시인학교 회장과 서지월시인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시인과 담소나누고 있는 서지월시인.(서울 예술인마을 미당댁에서)
◆2002년 한국 서지월시인, 중국 「장백산문학상」해외문학상 수상 장면.
◆대구 달성군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세워진 서지월시비「비슬산 참꽃」제막식에서.(순천대 문창과교수 송수권시인 서지월시인, 서울대 국문과교수 오세영시인과 한국방송대 문학평론가 박태상교수와 함께).
◆생가에서 대구시인학교 제자들과 함께한 서지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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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의 주옥같은 시편들 잘 보았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