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며 주의 나라건설을 위해 힘든 사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부산교구 은퇴신부 배봉룡(바오로ㆍ62세) 신부가 지난 11월 오전 10시 광안동 사제관에서 5년반 동안의 긴 투병생활 끝에 영원한 안식처인 하느님품에 조용히 안겼다.
1954년 6월 29일 사제로 서품된 후 27년간 오직 주만을 믿고 사랑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던 故 배 바오로 신부의 장례미사는 13일 오전 10시 중앙성당에서 최재선 주교 및 교구전 사제를 비롯 목자를 잃은 1천8백여 신자가 참석한 가운데 이갑수 주교 집전으로 엄숙하게 봉헌됐다."
(1981년 3월 11일 장례미사 때 고별사)
바오로야! 배 신부야! 블러도 대답없는 이름을 부른다.
평소의 친구 신부들이 모두 모였는데, 아끼고 돌보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는데 정답게 같이 살던 신자들이 여기 모두 모였는데 너는 왜 영영 말없이 누워있느냐!
오늘 내가 네곁에서 축사도 치사도 아니고 마지막 고별사를 하게되다니 이 어찌된 일이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이구나.
열다섯 어린 나이에 같이 서울 소신학교에 56명이 입학하여 23명이 졸업하고 그중 11명이 신부가 되었더니 바오로 너마저 떠나가니 이젠 단 3명의 동기만이 남았구나!
바오로야! 너는 기어이 신부가 되어보겠다고 한국의 신학교를 두루 다녔고 또 유능한 신부가 되려고 서울대 문리과 대학을 졸업하고 불란서「리용」대학에 유학, 문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재사 (才士) 가 아니었던가! 그 웅지와 포부는 또한 한국 천주교회의 기대이기도 했건만
35세란 성숙의 나이에 신부가 되어 종횡무진으로 주님 나라를 세우려 하였으나 아깝게도
광주교구 신설 월산동 본당 부임 첫날 불의의 가스중독으로 사경을 헤맨지 그 얼마였던가!
구사일생 (九사一生) 다시 부산교구로 옮겨 포교일선에서 고생하다가 졸도, 무려 2년반이란 긴 투병의 시련을 격다가 급기야는 그학식과 포부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영영 우리곁을 떠나고야 말다니…
투병생활 중 문병한 순박한 신자가『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어찌 자기 사제를 저렇게 고통받게 하시는가?』했으니 그 고통이 어떠했는지!
성녀 소화데레사가 까르멜 수녀원에서도 포교일선의 신부들보다 더 많은 전교를 한것과 같이 병고의 신비로 우리보다 더많은 일들을 주님의 교회에 했으리라!
배 바오로 신부님!
평소 믿고 바라고 헌신한 주님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소서. 주여,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1981년 3월 11일 고별식
동창사제 안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