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며칠 지나다 보면 기억들이 조가조각 연기처럼 스물스물 살아 오른다.
닐씨가 조금은 무더웠던 어느 날~
사무실과 가까운 거래처에 사수 대신 떨어진 활자를 몇번 붙이러 다니면서 버스 타는 요령도 알고 대충
어느 방향에서 버스를 타야 되는지 사장님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좀 더 멀리 출장을 갔다 오라고 한다.
타야 될 버스 번호와 사무실 주소가 적힌 쪽지를 받아 들고 내려야 될 버스 정류장을 놓칠까봐 온통 버스 정류장
간판에만 집중했다.
바짝 긴장해서 내린 곳은 동의대학교 앞...
당연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찾을 줄 알았던 사무실을 아무도 모른다?
미련하게 30분을 넘게 헤메다가 거래처에 몇번 전화를 했더니, 시끄러운 소리속에 여자분이 받더니 어디어디 방향과
건물 모양을 가르쳐 주었지만 당최 찾을수 가 없었고 전화하는 것도 미안해서 사무실을 찾을 때까지 그저 왕복으로
걷고 걸었다.
사무실 건물을 코 앞에 두고 같은 길을 동의대까지 왕복을 몇번 했는지 모를 정도로 지쳐갈때쯤
동의대에서 사무실 방향으로 길을 가다가 갑자기 소낙비가 쫘악! 피할데가 없어서 그대로 다 맞았다.
안그래도 까치 생머리에 소낙비가 멈출때까지 다 맞았으니 내가 내 꼴을 생각해봐도 꼴이 가관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살까지 떨려왔다, 그게 당이 떨어지는 신호였지만 당 떨어지는 것보다 사무실을 찾는 게 더 급선무였다.
이 때의 통신은 내가 전화할 때까지 사무실에서는 사장님이 내가 뭘 하는지 모를 깜깜이 통신 시대였다.
마침 근처 가게에 공중전화가 있어서 전화 걸러 갔다가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셔서 혹시나 쪽지를
보여줬더니 사무실을 아신다고~ 구사일생으로 할렐루야~
나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관세사나 통관사 같은 말들이 뭘 뜻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할머니가 비를 쫄딱 맞은 나를 보고 비 다 맞았네~ 혀를 차시는 것도 기억나고 ㅠㅠ
사무실을 찾아가는데 1~2시간 걸렸나... 들어가는데, 내가 봐왔던 사무실 같은 곳이 아니라 무슨 창고나 공장
같은 2~3층쯤 되는 낮은 건물이었는데, 현관에서 만남 남자에게 사무실 입구를 찾아 물어보고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헉!
나는 사회에 나올때까지 여자라고는 순수문학 소설 차타레 부인의사랑, 바람과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같은 순수 로멘티스트적인 여성상을 생각해 왔기에 이 날의 한꺼번에 첫 만남은 충격이었다.
나는 내 생에 이렇게 많은 여자들을 가까운데서 마주 하기는 학교를 졸업한 이래 시골을 떠나서 처음이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말자 느끼기 시작한 타자수들의 쏠린 눈들을 마주한 순간부터 정신이 아득해지고 정신이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는 한 여자의 말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때서야 타자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 땡! 땡!
타자기에서 종이 빼는 소리와 뭔지 모를 말들이 와글와글~ 촌놈은 한순간에 얼이 빠져 거의 패닉 상태였다.
아마 가장 언니였나 보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을 한 나를 보더니 비를 다 맞았네! 하면서 타주는 커피가 그렇게
따뜻할 수 가 없었다.
나중에 따로 다방에서 커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누나라고 불러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에다 숫기가 없어서리 뭘 어찌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웃기만 했다는~
지금은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계시죠 누나~ 가끔 소낙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그날에 키가 컸던 누나가
생각나네요.
사무실은 보세창고 통관사무실...
나중에 단골로 수리 다니면서 타자기를 보니 13~16대 정도에 레밍톤,로얄, 언더우드 타자기에 롱사이즈였다.
나중에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사장님이 도대체 뭘 하다가 왔냐고 ㅋㅋ
하긴 아침에 수리 가서 오후에 들어왔으니 궁금하시겠지요.
그래도 나중에 친해진 누나가 사무실까지 와서 타자기도 몇 대 소개해서 팔아줬지요.
총각인 사수는 가서 뭐 수리 했냐고 나중에 아가씨에 대해 따로 물어보더라는^^
하여튼 시골에서는 몇리 길을 걷는거는 기본이라 내 다리는 멀쩡했고
초년의 내 인생에 가장 러블리하면서 쪽팔림의 드라마틱한 흔적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추억의 출장이었다.
그 사무실이 있던 동네는 동의대를 지나서 민가가 없는 "양정" 이라는 지명이었으며 하야리아 미군부대와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