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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인의 작품 세계>
宇玄 김민정
먼저 특집을 실은 다섯 시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각자의 개성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두 나름대로의 시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한 시인에 대해 한 두 작품씩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추창호 시인의 시조 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긴 시간 짧은 궤적
꼬불꼬불 고물고물
풀쐐기 가는 양을
한동안 보았습니다
불현듯
돌아 보이는
나,
살아온 모습 같아. (어느 날, 전문)
<어느 날>은 풀쐐기의 가는 양을 바라보며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작품이다. 긴 시간을 온 것 같지만 짧은 흔적이다. ‘꼬불꼬불 고물고물’이란 표현 속에는 크고 시원스럽게 삶을 살지 못하고 작고 보잘 것 없는 풀쐐기의 모습으로 작게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중장에서 화자는 풀쐐기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그 이유가 종장에 나온다. ‘불현 듯/ 돌아 보이는/ 나,/ 살아온 모습 같아.’라고 표현하여 자신의 살아온 모습을 한 마리의 보잘 것 없는 풀쐐기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시적 여운을 남기고 있다. 시인은 존재론적 자아성찰의 겸허함을 가짐으로서 그 작은 풀쐐기한테조차 애정을 갖게 되는 자연친화적 감정을 보이는 있는 작품이다.
古色 찬연한 秋史의 글씨 한 점
위작 판정으로 소액에 머물렀다
이름에 묵힌 세월이 더 없이 어여쁜 날
앙가슴 깊이 숨긴 地籍圖를 펼쳐든다
남의 삶 흉내내기 진품도 되지 못한
고개를 끄덕일만한 골동품 한 점 없는
저 먼지 한 올처럼 달려온 길 가볍다
파지로 남겨진 필지(筆地) 휘모리로 부는 바람
내 몸의 실핏줄 세워 붓대 고쳐 잡는다 <TV를 보다가 -명품진품, 전문>
<TV를 보다가>는 부제가 ‘명품진품’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첫째 수에서는 TV에서 보여주고 있는 명품진품에서 추사의 글씨 한 점이 진품이 아니라 위작이라 금액이 소액에 머물렀다는 내용이며, 종장의 ‘이름에 묵힌 세월이 더 없이 어여쁜 날’은 위작을 어여쁘게 본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고, ‘추사’라는 이름이 주는 값을 어여쁘게 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아무래도 후자쪽일 것 같다. 추사 김정희는 자기만의 독특한 글씨체를 가졌기에 후세에도 그토록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은 지금 추사의 자기만의 개성, 자기만의 흔적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둘째 수에서 ‘앙가슴 깊이 숨긴 지적도를 펼쳐본다’고 했다. 지금까지 작품을 쓴다고 하여도 남의 삶 흉내내기에 급급해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골동품 한 점 없’고, 진품도 되지 못한 본인의 작품을 반성해 본다. 먼지 한 올처럼 가볍게 달려온 삶과 지금까지의 작품은 모두가 파지라고 생각하며 ‘붓대 고쳐 잡는다’고 하고 있다. 즉 새로운 작품, 자기의 개성이 드러나는 자기다운 작품을 쓰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셋째 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추창호 시인은 자아성찰 및 반성을 통하여 자기다운 개성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시인이며 또한 <아버지>라는 작품에서 보았듯이 효심도 깊다. 변함없이 시조에 대한 애정으로 시조를 사랑하며 또한 개성이 넘치는 시조를 창작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천숙녀 시인의 시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궤적을 긋는다
이어주는 이음줄로
정도의 목소리 정결한 숨소리만
새롭게 열려야 할 바다 세상바다 향하여
한 줌 한 줌 던진다
진실의 맥박 짚어
생의 마디 역경을 뚫고 뚫는 굴착음
불멸의 든든한 반석 널찍한 터 되고저
시퍼런 선 칼날로
굳은 의지 세워놓고
진동소리 그득하게 지축을 울리리라
저-빛 문을 향하여 접힌 무릎 펴리라 (빛, 문을 향하여, 전문)
<빛, 문을 향하여>란 작품은 세상을 향해 도전해가는 화자의 의지가 드러나는 시조다. 화자는 지금 ‘새롭게 열려야 할 바다 세상바다 향하여’ 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정도의 목소리 정결한 숨소리만’으로 그 길을 가려하여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시인의 올곧은 마음도 잘 나타난다. ‘한 줌 한 줌, 뚫고 뚫는’이란 반복, 첩어적인 시어를 통해서는 의지를 실천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말하고 있다. ‘생의 마디 역경을 뚫고 뚫는 굴착음’이라고 하여 적극적,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하는 삶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불멸의 든든한 반석 널찍한 터 되고저’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시퍼런 선 칼날로’로 표현은 무섭게 마음을 다지며, ‘진동소리 그득하게 지축을 울리리라 / 저-빛 문을 향하여 접힌 무릎 펴리라’고 하여 굳건한 의지를 드러낸다. 종결에서 ‘-리라’는 의지형을 반복함으로서 의지의 굳셈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종장의 ‘저-빛’에서 ‘-’를 하나의 음절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는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 표기일 뿐이라, 3음절이라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누군가 빈 방에 물빛벽지 바르네
두터운 창 가르며 눕는 저 달 모습으로
성심껏 동양화 한 폭 그려주고 있었네
질질긴 목숨하나 끌고 밀어 당길 때
저무는 언덕에서 불사르는 그대 손길
그리움 화음으로 받쳐 불러주는 노랫소리
하늘을 씻고 닦아 물소리 심겠어
마주보아 가슴치는 실바람 이름 얹어
외줄의 쓸쓸한 허기 詩 한편을 빚겠어 (실바람 전문)
<실바람>에서는 첫째 수에서 ‘누군가 빈 방에 물빛벽지 바르네’라고 하여 보이지 않는 바람의 모습, 그러면서도 느껴지는 실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달과 함께 동양화 한 폭을 그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첫째 수에서 달 밝은 밤 실바람이 부는 이미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둘째 수에서는 삶과 시름하는 화자와 저무는 언덕에서 불사르는 그대 실바람이 만난다. 그 실바람은 그리움을 불러오는, ‘화음으로 받쳐 불러주는 노랫소리’ 구실을 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는 ‘심겠어, 빚겠어’ 등의 표현으로 화자의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는 부분이다. ‘하늘을 씻고 닦아 물소리 심겠어/ 마주보아 가슴 치는 실바람 이름 얹어/ 외줄의 쓸쓸한 허기 시 한편을 빚겠어’라고 하여 실바람 속 쓸쓸한 허기를 ‘하늘을 씻고 닦아 물소리’ 같은 시를 빚으며 달래겠다는 화자의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천숙려 시인의 작품에서는 삶과 시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잘 드러나고 있고, 실제로도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부지런함과 의지로 더욱 아름답고 좋은 작품을 많이 빚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은 이옥진 시인의 시조를 살펴보기로 한다.
푸르른 관음포는 잔잔한 호수였다
빛나는 물결 위로 아른아른 님의 모습
역사 속 우뚝 선 장군 칼의 노래* 들리네.
오너라 적선들아, 퇴로 없는 이 물목으로
베어지지 않고 닿지도 않는 적(敵)들이 아직도 출몰하는 바다가 서럽구나.
독도가 다케시마, 너희들 땅이라구? 동해의 맑은 물은 그 답을 알고 있다.
1905년! 얼씨구! 도둑질한 그 해로군. 이사부 장군님께 입 있으면 물어봐라.
이 땅의 처녀들은 전쟁의 제물 되고 장정들은 노예같이 일하고 총 맞았다.
역겨운 너희 역사 더 이상 숨기지 마라. 젊은 세대 앞에서 순순히 사죄해라.
또 오너라. 이번엔 나라 안의 적들아. 늪 깊숙히 갈아앉고 뻘 속에 숨었구나.
나라의 유익보다 제 욕망이 앞서는, 일어나라 적들아, 질척한 뻘을 뚫고.
바다의 색깔을 나의 칼이 염(染)하리라.
굶주린 북녘땅은 이데올로기 건재하고, 핵무기는 오리무중 한 치 앞이 어두운데
탈세 뇌물 부정 비리(非理) 부패의 군상들아. 눈 앞의 이익만 좇아 나라를 팔려느냐.
비겁한 적들아, 안개 속에서 썩 나와라. 저무는 바다에서 맞붙어 보자꾸나.
진정 소중한 것 무엇인지 모르는, 나의 피가 그리운 어리석은 적들아!
이 곳은 너희들의 무덤 이미 나의 무덤.
오너라, 함께 스러지자 나의 칼이 울고 있다.
*칼의 노래 : 이순신 장군의 삶을 소설화한 김훈의 장편소설.
부분: 칼의 노래 중 (칼의 노래, 전문)
<칼의 노래>는 한창 인기였던, 이순신 삶을 소재로 한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를 그대로 제목으로 한 시조이다. 이 시조는 첫째 수는 평시조, 둘째 시조는 사설시조로 표현되어 있다. 첫째 수에서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의 고시조에 나오는 시름에 잠긴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빛나는 물결 위로 아른아른 님의 모습’으로 떠오르고 있어 관음포 잔잔한 물결과 함께 눈에 보이는 듯 장군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역사적 인물, 민족의 영웅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다. 둘째 수, 사설시조에서는 일본을 나무라고 있는 이순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직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을 향해 ‘역겨운 너희 역사 더 이상 숨기지 마라, 젊은 세대 앞에서 순순히 사죄하라’고 호령한다. 또한 나라 안의 적들을 향해서는 ‘나라의 유익보다 제 욕망이 앞서는, 일어나라 적들아, 질척한 뻘을 뚫고/ 바다의 색깔을 나의 칼이 염하리라’고 ‘탈세 뇌물 부정 비리(非理) 부패의 군상들’, 즉 나라를 좀먹는 나라 안의 적들을 향해서도 큰 소리로 나무란다. 그러한 자들을 향해 ‘오너라, 함께 스러지자 나의 칼이 울고 있다.’고 이순신 장군다운 기개로 호령을 한다. 이 작품은 안팎의 적들을 향해 이순신의 기개로서 호령하는‘칼의 노래’다운 시원스러움, 통쾌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1.
고난의 그 끝에서 한 꺼풀 자아를 벗겨
비꼬인 유칼리나무* 허물을 벗는다
돌이켜 하늘을 향하는 우듬지의 휘인 끝.
뉘겐들 그런 어려움 닥쳐오지 않으랴
누군들 맘껏 팔 뻗고 살고 싶지 않으랴
밤마다 나를 벗는다 하루치의 허물을.
2.
배로 기는 천한 목숨 축축한 어둠을 뚫고
뱀도 여름나절 자신을 빠져 나온다
어쩌랴 원죄 번쩍이며 나타나는 새 허물.
뉘겐들 극복할 자아 숨은 감옥 없으랴
누군들 태양 아래서 빛나고 싶지 않으랴
날마다 기도의 문 열어 습한 상처 말린다.
*유칼리나무 : 오른쪽으로 짠 빨래처럼 비틀어지며 자라고
일년에 한 두 번 껍질이 벗겨진다 (허물에 관한 명상, 전문)
<허물에 관한 명상>에서는 인간에 대한, 자신에 대한 천착을 본다. 항상 같은 자세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롭게 허물을 벗으며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유칼리투수 나무는 호주에 유난히 많은 나무이다. 호주의 블루우 마운틴이라는 산에는 80%이상이 유칼리투수 나무로 되어 있다. 팬더곰이 무척 좋아하며 1년에 한 두 번 껍질을 벗는 나무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러한 유칼리투수 나무를 ‘고난의 그 끝에서’ 한 꺼풀 자아, 곧 자신의 허물을 벗는 모습으로 보고 있다. 인간에게도 허물을 벗어야 하는 어려움이 닥쳐올 수도 있고, ‘누군들 맘껏 팔 뻗고 살고 싶지 않으랴’고 하여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자유롭게 성장하고 싶은 욕망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리하여 화자는 ‘밤마다 나를 벗는다 하루치의 허물을’이라고 하여 허물 많은 하루를 반성하며, 더 나은, 더 성숙하는 나를 위해 밤마다 허물을 벗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매일 밤 허물을 벗지만, 그것은 ‘어쩌랴 원죄 번쩍이며 나타나는 새 허물’이라고 하여 늘 잘못과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허물은 새롭게 나타남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수에서는 ‘뉘겐들 극복할 자아 숨은 감옥 없으랴/ 누군들 태양 아래서 빛나고 싶지 않으랴/’라고 하여 누구에게나 숨은 고통은 있고, 누구에게나 빛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으로 보편화하여 ‘날마다 기도의 문 열어 습한 상처 말린다’고 긍정적 자아개념을 확립하고 있다.
이옥진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시가 부드럽고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운율이 자연스럽고 어휘 또한 잘 가려서 쓰고 있다. 작품 소재의 폭이 넓고 작품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깊이 있는 작품을 쓰고 있어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된다.
다음은 이근덕 시인의 시조를 살펴보자.
우거진 솔숲에선 산 까치 노래하고
반기는 듯 부는 바람 어머니 고운 손길
고요히 눈감은 채로 가르침을 듣습니다.
형제는 한 몸이니 힘들 때 도와 살며
도란도란 우애로이 한평생 살라하네
나직이 들리는 음성 가슴팍에 새깁니다. (우애로이 살라하네, 전문)
<우애로이 살라하네>라는 작품은 편안하게 읽히는 작품이다. 정철의 훈민가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지만 훈민가가 일반 대중을 훈화하기 위한 글이라면 이 글은 자신의 내면에 조용히 새기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가 생전에 하신 말씀을 ‘고요히 눈 감은 채로 가르침을 듣습니다. / 나직이 들리는 음성 가슴팍에 새깁니다’ 라고 표현하여 어머니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현하려는 효심과 형제에 대한 우애가 그대로 나타나 시인의 조용하고, 후덕한 인간성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겐 부모가 있고 모두가 부모의 은혜를 입고 자라 오늘을 살고 있지만, 부모를 그리워하는 모습의 농도는 각각 다르다. <어머님 생애>, <불전에 삼배하고>, <서천을 바라보니>등도 모두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드러나는 시조이다.
알싸한 세월 따라 속절없이 잃어버린
젊은 날에 품은 이상 맥없이 져버린 채
허기로 메워진 삶을 훌훌 털고 살아감세.
저무는 노을 보며 허구한 날 눈물 쏟고
절절히 사는 이가 하늘 아래 또 있으랴
지난날 아픔 다 잊고 구름처럼 살아감세.
뒤틀린 애환세월 한탄한들 무엇 하리
먹구름 걷히고 나면 환한 새벽 오리니
푸근한 넉넉함으로 노래하며 살아감세. (고운 임아, 전문)
<고운 임아>에서의 임은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세상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앞서는 작품이다. 여기서는 후자가 더 가까울 것 같다. 사랑도, 꿈도 세월이 지나면 속절없이 사라져 간다. 그러나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살아가듯이, 사랑도, 꿈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도 하고 꿈도 키우며 살아간다. 삶은 기쁨만도 슬픔만도 아니고 늘 즐겁기만 한 것도 늘 고통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젊은 날에는 이상도 크지만 나이들수록 삶은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자는 늘 허기로 메워지는 삶이지만 훌훌 털고 살아가자고 첫째 수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아픔이나 그리움이 있을 때 울게 된다. 지난날의 눈물 쏟던 아픔도 모두 잊고 구름처럼 살아가자고 말하는 화자에게서 삶에서의 초연성, 의연성을 발견하게 된다. ‘뒤틀린 애환세월 한탄한들 무엇하리/ 먹구름 걷히고 나면 환한 새벽 오리니/ 푸근한 넉넉함으로 노래하며 살아감세’라는 표현 속에서 세상을 향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시인의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싶어하는 시인임을 알게 된다.
이근덕 시인의 시를 읽으면 효심이 유난히 깊다는 것과 불심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이 모두 효심과 불심이 중심 소재가 되고 있는 작품이라 그러하겠지만, 이러한 작품을 통해 볼 때 이근덕 시인은 효자이고 불자이다. 또한 세상에 대한 화해의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 더욱 아름답고 좋은 시를 창작할 것을 기대해 본다.
다음은 김차순 시인의 시조를 살펴보자.
억새풀 아우성 하늘 받쳐 든 한계
으스스 푸른 혼불 바람으로 머물고
피멍든 낡은 메아리
온몸으로 가을이다
고열로 삭은 살내 고사목을 꽃 피운다
겹겹이 신기루로 골짝길 포복하는
긴 세월 생목숨 달군 넌,
하나의 예술 祝典
祝典의 고갯마루 한뎃잠 자던 낮달
따가운 푸른 속살 설핏 설핏 목 내밀고
부르튼 날카로운 허공
맘껏 밟고 서있네 (가을 한계령, 전문)
<가을 한계령> 억새와 갈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억새는 주로 산에 있고, 갈대는 강가에 있다고 한다. 억새는 조금 더 머리부분이 가벼워 보이고 갈대는 조금 더 무거워 보인다는 차이도 있다. 화자는 가을 한계령에 서서 한계령을 노래하며 그곳의 억새가 하늘을 받쳐들고 있다고 한다. 조금은 가을한기가 느껴지는 가을 산정에서 피멍든 것처럼 붉은 단풍을 ‘피멍든 낡은 메아리’로 표현하고 있고, 뜨겁게 달아오른 듯한 산정의 가을이미지를 둘째 수에서는 ‘긴 세월 생목숨 달군 넌,/하나의 예술 축전’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가을이미지에 동참하는 낮달을 ‘한뎃잠 자던 낮달/ 부르튼 날카로운 허공 맘껏 밟고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늘에는 조금은 춥게 느껴지는 낮달이 걸려있고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생목숨 달구듯이 붉게 단풍들고 있는 가을의 한계령 이미지가 잘 살아나고 있는 이미지의 시이다.
단풍차를 마시는 언덕 위 맷돌찻집*
왈가닥 루시 아줌마* 껄껄한 목소리로
구수한 수제비를 뜬다 꿈 한 사발 빚는다
풍물패 북채 옆 찢겨진 창으로
자꾸만 작아지는 해안선을 그리며
진하게 물감을 푼다 바다를 만든다
찻잔 속 시월상달 색종이로 접던 밤
해 갈수록 깊은 파고 커져가는 느낌표
가을엔 샹송을 듣는다 고엽*을 부른다
*경남 마산 가포바다 언덕 위 ‘맷돌’ 찻집의 여 주인 별명
*프랑스 대중가수 ‘이브 몽땅’이 불렀던 샹송 (가포찻집, 샹송이 흐르는, 전문)
<가포찻집, 샹송이 흐르는>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서정적이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찻집에선 샹송을 들으며 한 잔의 가을을 마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첫째 수에는 가을에의 감상을 ‘단풍차를 마시는’으로 표현한 기교가 뛰어나 보인다. 또 ‘왈가닥 루시 아줌마’의 서양적 이미지와 ‘구수한 수제비’의 한국적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다.
둘째 수에서는 찢겨진 창으로 보이는 해안선의 모습, 그것은 화자가 지니는 꿈의 크기일까. 자꾸만 작아지고 있지만, 진하게 물감을 풀고 바다를 만든다고 한다. 꿈에의 도전의식, 더 푸르고 짙은 바다를 꿈꾸는 화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셋째 수에는 추억을 말하고 있다. ‘찻잔 속 시월상달 색종이로 접던 밤’이라 하여 아름다운 꿈을 꾸던 시간들을 말하고 있으며 ‘해 갈수록 깊은 파고 커져가는 느낌표’는 그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그리움 때문에 가을엔 샹송을 듣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제목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의 조화를 추구해 본 시조작품으로 보인다. 아니 서양적인 내용을 시조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자 한다. 세계문화를 한국화하려고한 시인의 의도를 알 수 있으나, 이러한 작품을 쓸 때는 자칫 조화를 잃기 쉽고 정체성마저 잃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숙고해서 씀이 좋을 것이다.
김차순 시인의 시를 읽으면 작품이 무척 서정적이고 이미지즘적인 것을 느끼게 된다. 또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표현을 찾아 쓰려고 노력하는 시인이라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이 창작되리라 기대해 본다.
이상으로 다섯 시인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시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관이 나타나게 마련이고, 그 사람만의 강한 개성도 나타나게 된다. 모두 자기다운 목소리를 지닌, 그러면서도 폭넓게 공감을 줄 수 있고, 오래도록 좋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섯 시인 모두 창작열이 대단한 시인들이라 앞으로 우리 시조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