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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스트리트 아이 포커스 가스펠PG : ROAD STREET I FOCUS GOSPEL PROGRAM : 가정복귀PG : 부산역, 부산진역, 서면, 전포동 도보 7.5km 200분 로드 가스펠
2004년03월20일~2010년12월31일, "숨은어린양찾기운동"설립
(가출어린이 53명 관리)
➀ 1986년, 장애인사역으로 시작된 가출 아동과의 만남
1986년03월10일, 교회를 찾아온 30세의 언어지체장애인 “양재규”씨는 반여동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사직동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알수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그를 만나면서 시작된 장애인사역과 1988년01월, 주거부정의 35세, “박봉년”씨와의 만남은 나의 미래에 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후 4년간 중단되었던 주거부정인 사역은 1996년에야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장애인사역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그것을 대신해줄 사람이 없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줄 의지있는 기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어디로 갔는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의 길로 나아 갔다는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다.
새롭게 시작한 노숙자 사역에는 여성노숙자와 가출청소년, 그리고 가출초등학생과 독거노인들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일정한 주거지역이 없고 구별도 쉽지 않았다. 특히 가출청소년은 범죄적 양상을 보여주며 반항아적 기질이 역력했다. 폭력성향으로 인하여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았고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이 불가능 하였다. 봉사자들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브레이크 조차 밟을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가출초등학생은 더욱더 구별이 어렵다. 스스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거짓말을 한다. 어느것도 확인되지 않고 안전도 담보되지 않는다. 치고 빠지는 아이들의 행동에 기겁을 할 정도다. 그중에는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은 부모가 아침일찍 일을 나가고 밤늦게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경제는 여전히 어려운 가정이다. 빈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 시작된 거리 방황에서 가출초등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귀가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집에 가면 늘 꾸중을 듣지만 부모도 아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가난이 문제지만 주변환경도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➁ 2002년 : 가출초등학생과의 만남과 눈물의 시간들
2002년02월09일, 그날은 바람마져 거센 영하의 날씨였다. 살을 에는듯한 날씨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부산역광장을 뛰어 다니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가을옷을 입은 아이들은 제대로 씻지 않은 얼굴이었다. 외근을 나갔다가 들어가던 중이어서 지나치려 했지만 그날의 날씨가 마음을 붙들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이름과 집과 부모를 물어 보았다. 그들은 부산역 맞은편에 산다고 하였고 엄마아빠는 회사에 갔다고 말했다. “김후현”(11세,2001년10월가출), “황보람”(12세,여,2001년12월버려짐), “윤석구”(11세,2001년11월가출), “송지혜”(10세,여,2001년11월버려짐), “송지원”(8세,여,2001년11월버려짐,송지혜의동생), 등 5명의 아이들의 손등은 이미 할머니의 손처럼 시꺼멓게 금이 가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 경계를 하고 도망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아이들을 달래어 그곳에서 함께 이야기하던 중 아이들에게 무엇이라도 먹여야 했다. 부산역 건너편 초량시장에 가서 오뎅과 떡볶이와 김밥과 라면을 사주었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하고 안전한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을 누가 이렇게 방치한 것일까? 며칠을 굶은건지 아이들은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좀더 자세히 물어보자 엄마한테 가야 한다면서 골목길로 도망쳐 버렸다. 경계가 극심한 아이들, 어디론가 팔려가게 될지, 의심이 많은 아이들이었다.
3일후,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이틀후 다시 만났고, 다시 이틀후 길 건너편에 서 있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자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밥과 라면 등을 사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의 경계심은 조금씩 열려 졌다. 그리고 3일후 다시 그들을 만났을 때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왔다. 송지원은 “아빠!!”라고 부르며 나에게 안기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렇다, 마음은 어른이 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열어가도록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작년에 가출한 상태였다. 충격적인 것은 그 가운데 3명은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시급하였다.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보호되어야만 했지만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나는 구청과 복지단체와 연계하여 아이들의 부모와 연락을 취했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을수 없었다. 송지혜와 지원이 부모는 연락이 닿았지만 보육을 포기한 상태다.
부득불 아이들이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고아원에 가겠다고 하기 까지 3개월간 회사내 여성기숙사 방 한칸을 내어 주기로 하였다. 회사에서는 회사기숙사가 무슨 거지들 숙소냐면서 신경질을 내었지만 나 또한 물러설 여유공간이 없었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회사식당에서 근무하는 할머니들에게 부탁을 하였고, 아이들은 회사식당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을 먹으며 생활하였다. 목욕을 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었을 때 아이들은 그야말로 우리가 아는 보통의 아이들이었다. 회사내 여직원회에서 옷과 과자류와 문구류를 후원하였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청년직원들 가운데 두 명이 돌아가면서 학업과 생활지도를 도와 주었다. 아이들은 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주일에는 교회를 다니면서 적응을 잘해 나갔다. 당시 회사는 극심한 어려움에 봉착하였고, 나 또한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었지만 아이들을 버릴수는 없었다. 3개월이 지난후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헤어지는 기간이 다가 올수록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 내었다. 짜증을 내어 울고 트집을 부리는 등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고, 또다시 버려지는 듯한 배신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결국 1년을 유예하고 아이들을 인근 학교에 보내기로 하였다. 회사식당에서 근무하는 할머니들도 아이들을 보살피며 정이 들었고, 여직원회와 직원들도 아이들로 인하여 스스로에게도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회사내 숙소에서 2006년7월까지 2년을 추가로 더 생활하며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정부기관과 법률에 의해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볼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가 고아원 등을 운영할 상황은 아니었다.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황보람과 김후현과 윤석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안타까운 것은 송지혜와 지원자매다. 경기도에 사는 부모가 부산으로 여행을 내려와 이들을 버린 것이다.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다. 아이들을 전혀 돌볼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은 각각 OOO원 등에 위탁되었고 그곳에서 적응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아이들의 정서적 환경적응을 위해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이들을 위탁했고, 아이들은 그후로도 회사에 거의 매일 찾아왔다. 주말에는 회사 숙소에서 자고 가는 등 이곳은 그들의 고향같은 곳이 되었다. 그러나 회사의 사정이 더욱 어려워 졌고, 기숙사는 모두 폐쇄됨으로서 아이들의 고향은 없어졌다. 아이들은 이제 자립을 위한 성장통을 앓고 있고 결국 승리자가 될 것이다.
➂ 2004년03월20일~2010년12월31일, "숨은어린양찾기운동"설립
(가출어린이 53명 관리)
빈곤계층의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우연하게 목격한 후 그들을 마음에서 버릴수가 없어서 다시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 “한윤수”(8세,주거부정,부모이혼,어머니재혼으로 가출)는 이미 이틀을 굶은 상태였다. 회사내 숙직실 한칸을 배려해 숙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아이들이 있음을 확인하고 “최정환”(9세,주거부정,부모이혼,아버지재혼으로 버려짐), “조수연”(10세,주거부정,부모이혼) 등 3명을 데려왔으나 주변주민의 신고로 고아원으로 보냈지만 그들은 다시 가출하여 부적응 상태로 있었다. 현재 이들은 양육보호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가족적응훈련을 받고 있다.
부산역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며칠후 서면의 뒷골목에서도 만나게 된다. 여전히 무리지어 다니지만 강력한 보호망은 전혀 없다. 가출 청소년의 구걸대상이 되기도 하고, 나쁜 어른들의 성적 학대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도보로 움직여야만 한다. 아이들과 만남을 약속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없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기까지 아이들과의 약속이란 무의미하다. 부모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많은 어른들이 자기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은 주거부정과 어른에 대한 강한 불신으로 거리에 방치되어 있고, 빈집등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 거리에 있는 아이들 가운데 가출 어린이를 확인하기 어렵고, 잘 드러나지 않아 관리가 쉽지 않은 상태가 반복된다. 기관지원과 후원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2004년03월 숨은 어린양찾기운동“을 설립하고 회사 동료의 전적인 지원속에 2010년까지 운영하였다. 아이들 사역에는 회사의 지원이 절대적인 필요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회사는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었고 이러한 지원을 계속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재정부족의 이유로 2011년이후 가출초등학생 사역은 중단되었다.
➃로드 스트리트 아이 포커스 가스펠PG : ROAD STREET I FOCUS GOSPEL PROGRAM : 가정복귀PG : 부산역, 부산진역, 서면, 전포동 도보 7.5km 200분 로드 가스펠
(1) 발견하기 : 다가가서 만나기, 다시 만나기, 쫓아가지 않기
아동사역이라고 해서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돌을 던지기도 하고, 칼로 위협을 하기도 한다. 어린 아이들이 할수 있는 최고의 방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을 믿지 않는다. 어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고착화 되어가고 강한 불신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가출을 한것인지 아닌지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점은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이다.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 가출한것도 아니다.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한다. 만나려고 애쓰지 말고 내 눈에 띄는지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한다. 얼굴이 익혀지고 자기들을 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아이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2) 아이들과 함께 조건없이 먹기 : 아이들의 행위에서 선악을 판단하지 않기
아이들이 다가오면 먹을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대부분 굶주려 있다. 일정하게 먹지 못했고 쓰레기 통을 뒤져서 먹기도 한다. 아이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좋지 않거나 기생충이 많다. 기침을 하고 위험해 보인다. 아이들의 주거지가 불분명하고 노숙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복지단체에 바로 연락해서는 않된다. 아이들은 그 또한 불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미 그러한 곳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더 큰 상처를 받고 도망쳐 나온 아이들에게 다시 그곳으로 돌려 보내는 것은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냥 라면, 떡볶이, 오뎅, 김밥, 우동, 피자, 통닭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사주고 다시 기다려야 한다. 그들의 행위를 보고 선악을 판단해서도 않된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어른이었다. 자원봉사자가 직접 가해자가 아니었다 해도 동일한 책임의식을 갖고 아이들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
(3) 의심을 넘어 믿음에 이르기까지 : 기다림 : 버려지기 전에 선택되지 않으려는 아이들
아이들은 의심의 시간을 갖고 있다. 사랑을 주었다가 또 언젠가는 버릴것이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버려지기전에 선택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잘할 자신도 없고 잘하는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내가 필요하다. 믿으라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과 시간으로 답하는 것이다. 믿음은 사랑을 동반한다. 진실한 사랑이 없는 믿음은 언젠가 배신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은 그동안 버려지고 배신당하고 이용당해 왔다. 아이들은 보호받아야 하는데 이용의 가치로 여겨진 세월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의심이 쌓여있는 시간 만큼 믿음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출한 아이들을 나쁜 아이들로 인식하는 고정관념도 문제다. 부모에게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왜 가출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의 중요성보다 결과에 대하여 비난을 한다. 부모세대의 진정한 반성이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봄이 자녀 또한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거름이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면 그 시간만큼 기다림이 필요하다. 언젠가 아이들의 마음문이 열리고 사랑받고 싶은 자녀로 다가올 것이다.
(4) 복음의 씨앗과 열매
아이들은 교회가는 것을 좋아한다.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편견의 얼굴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안에서 같은 자녀일 뿐이다. 아이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 사랑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미움에는 시기와 질투만이 공존한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었다. 해맑은 웃음과 선한 마음을 회복해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로 그들의 손을 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동행하며 십자가의 치유로 오랜 상처를 조금씩 씻어내 가는 것이다.
“김은호”(11세,2005년11월버려짐)가 가출한후 8일이 못되어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엄마와 아빠는 이사를 가버렸다. 백방으로 찾아줄 줄 알았던 은호는 충격을 받고 마냥 울고 있다가 인근의 가출 청소년에게 끌려가 앵벌이의 수단이 되었다. 가출청소년에게 맞는 것이 두려웠던 은호가 나와 만났을 때, 그에겐 강한 끌림이 있었고, 그 순간 이것은 범죄다!!라는 인식이 들어왔다. 가출 청소년은 경찰에 연행되어 갔지만 은호는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부모의 거절때문이었다. 부모들에게도 분명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의 은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우리는 2008년까지 그를 가족처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었다. 우리가 직접 보살펴 주고 싶었지만 법령 때문에 불가능하였다. 은호는 예수를 믿고 중학생이 되었고, 영적 건강성을 회복하고 있다.
“최영아”(9세,여,2006년10월버려짐)는 “최주민”(7세,남,영아의 동생,2006년10월버려짐)과 함께 OO시장에서 버려졌다. 시장통 할머니들이 혹시 몰라서 3일을 돌보아 주다가 고아원에 맡겨졌다. 고아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한 남동생 때문에 그곳을 도망나왔지만 막상 갈곳이 없었다. 회사 물류센터내 빈 공간에 숨어 들어와 생활하다가 쥐들 때문에 무서워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직원에게 발각되었다. 아이들은 다시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때 나는 숨은어린양찾기운동을 설립한후 였고 직원이 나를 긴급히 찾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그들을 버릴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와주어야 했다. 구청과 복지단체와 고아원과 연계하여 3주에서 12개월까지 생활쉼터에서 보살펴 주기로 하였다.
“생활쉼터”는 회사내 기숙사 5실을 임대해 가출생들의 별도 시설로 사용하고 있던 곳이었다. 생활쉼터에는 당시 5실이 모두 다 있었으므로 추가로 1실을 임대해 회사식당 할머니들의 보살핌속에 두었다. 적게는 8세에서 많게는 18세에 이르기 까지 생활쉼터에는 14명의 남녀 아이들이 함께 형제자매처럼 살고 있다. 그들은 단지 고아원이 아니라는 한가지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해 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를 회사식당에서 먹는다. 여직원회와 직원회중에서 1인 월1천원씩 기부를 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한달 잡비를 주고 남은 돈으로 월1회 외식을 한다.
직원들이 때로 특별용돈을 주기도 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불러서 통닭과 피자파티를 열어 주기도 한다. 수많은 삼촌들과 사촌형들이 생겨났고 아이들은 행복에 젖어있다.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을 결코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의 쇠퇴와 어려움으로 기숙사는 매각되었고 이들 모두는 고아원으로 보내져야 했다. 회사의 어려움은 곧 모든 것에 직격탄을 주었다. 나 또한 용기와 희망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들은 흩어졌고, 노숙자들은 빈곤의 늪지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