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가둘 수밖에 없던 그들
영화‘김씨표류기’를 보고-
김민영 소피아
한 남자가 전화를 받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돈을 갚으라는 상대의 목소리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자신이 먼저 세상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높은 대교를 찾아가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낯선 모래바닥이다. 저 멀리 고층빌딩이 보이고 둘러보니 풀과 모래와 쓰레기들..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답답하다.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는데 물에 들어가니 빠져 죽을 거 같아 다시 기어 나왔다.
이미 삶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던 이 남자는 지금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 홀로 있다. 어느 누구와 만날 수도 없을뿐더러 핸드폰의 마지막 연결음도 이미 끊어졌기에 세상과의 소통은 단절이 되었다. 그런데 삶을 버리기로 결심했음에도 이 순간 이 남자는 이 상태가 너무 낯설었다. 그리고 세상과 연결해야겠다는 욕구를 갖게 된다.
이 남자는 지나가는 유람선에서 사진을 찍던 이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남자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간다. 이 남자는 답답하다. 이 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곳을 빠져 나가고 싶어 돌고 돌아도 강으로 둘러싸인 작은 섬이 거대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없고 그 남자 혼자였다.
이미 몸은 살아났기에 식욕 또한 살아나 뭔가를 찾아 먹어야 되었다. 이제 이곳이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생존하기 위해 버섯을 뜯어 먹고 물고기를 잡아 먹고, 아니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물에 둥둥 떠내려 오는 죽은 물고기를 건져먹고, 그 물고기 뼈를 먹고 죽은 오리를 잡아먹는다. 이젠 죽을 수 없어서 살아야 된다. 던져진 쓰레기를 모아 쉴 곳을 마련하니 나만의 삶터가 되었는데 숨겨진 쓰레기를 파내다가 발견한 짜파게티 봉투를 보는 순간 짜장이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내손으로 면을 만들어 봉지 속 짜파게티 스프를 넣어 짜장면을 먹어보자는 일념으로 밭까지 일군다. 이젠 빚, 가족, 이웃이 중요하지 않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한 여인. 그녀 또한 세상을 버리고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었다. 커튼으로 둘러싸인 어둑한 방 한칸이 그녀의 세상이다. 좁은 벽장 안에서 잠을 자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오직 사이버상 세상과 소통하면서 제자리 걸음으로 나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일정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잠을 잔다. 3년 동안 두문불출한 그녀의 방 앞에는 밥상이 차려있다. 밝은 태양 빛이 쪼이는 세상은 상처 깊은 외모로 왕따를 당했던 그녀가 마주하기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망원경을 통해본 풍경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망원경 너머로 이상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괴기한 행동을 하는 남자이지만 고립되어 있는 모습에 친근감이 느껴지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뭔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궁금증과 새로운 기대가 생겨난다.
엄청난 폭우로 한강물이 넘친 후 남자는 3개월 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 한강변 환경정비를 위해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는 이곳에 남아있게 해달라고 울부짖는다. 그 남자만의 성이자 유일한 안전지대라 여기던 곳이 무너졌다. 이제 가야할 곳은 63빌딩위로 올라가 다시 한번 뛰어내리는 길이라 생각하고 처절한 모습으로 그곳을 향해 다가간다.
깨끗한 자연환경을 만들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남자의 모습을 포착한 여인은 그동안 두려워 피했던 세상의 눈빛보다 그 남자의 안위가 걱정되어 뛰어나간다. 세상의 손가락질보다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그 사람에게 내가 바로 당신이 궁금해 하던 사람이었노라고 자신을 드러내주고 싶어진다.
이유가 무엇이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위로를 받는다. 그 남자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행위는 무기력하게 숨어있는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기에 뛰쳐나올 수 있는 힘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관심 있게 바라봐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 남자가 살 힘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남자에게는 유일한 휴식처였던 곳. 한강 안에 몇 발자국 걸으면 관통할 수 있는 조그마한 무인도. 먹을 것도 없고 그 남자의 몸을 보호해줄 아무것도 없지만 쓰레기를 모아 그만의 휴식처를 하나하나 창조해간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하나 갖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에 적응해가면서도 그는 허공에 울부짖으며 모래바닥에 글을 새긴다. ‘HELP’ ‘HELLO’ 그런데 어느 날 이 울부짖으며 새긴 말들이 메아리처럼 병속에 타이핑되어 되돌아온다. 그 순간 그 남자는 혼자가 아님을 느끼며 미소를 짓는다. ‘WHO ARE YOU?’ 그 남자는 모래바닥에 또 새긴다. 그런데 환경을 정비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쳐 그는 자신이 버리고자 했던 세상 속으로 끌려가고, 그녀는 자신을 가두었던 방을 뛰쳐나와 그를 향해 달려간다. 자신의 상처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기에 자신을 음침한 방안에 스스로 가둔 그 여자이고, 세상을 버리고자 했던 그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삶은 내가 선택한 울타리 안에서 발버둥치는 코믹한 일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첫댓글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눈 앞에 그림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합니다.
고립된듯 발버둥 치면서도 우린 언제나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원하고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