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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2003년 초, 평의회 운동을 제안한 「노동자민중회의」와 비국가 꼬뮨운동을 주장했던 「노동의 미래를 여는 현장연대 」, 노동자평의회와 혁명 정당을 모색했던 「사회주의정치연합」이 대전에서 '비국가평의회 수련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비국가 꼬뮨(민주주의) 운동의 흐름에는 「광주 현장실천연대」, 「경기남부 좌파활동가모임 」, 「학생 행동연대」 일부도 결합해 있었습니다.
이후 여러 번의 토론회와 전국적 수련회를 거쳐 울산의 노힘 현장 회원 일부를 포함하여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전국회의」를 결성했습니다. 이후 '비국가꼬뮨' 그룹은 「이윤보다 인간을」을 결성하면서 독자적 길을 걷게 되고, 운동의 중심이었던 조문익 동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이후 축소되었습니다. 초창기 수많은 토론과 모임을 만드는 데는 윤웅태 동지(부산)와 조문익 동지(전북)의 역할이 가장 컸습니다.
이 자료는 당시 3개의 운동 흐름이 '노동자평의회'를 매개로 만나 새로운 운동과 노동자 정치조직의 건설을 도모했던 최초의 시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벌써 10년이 지난 자료이지만, 당시의 문제의식과 '계급적-독립적 노동자 조직' 전망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일부는 유효하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빛나는 전망 연구소」에서 제기했던 연구과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모쪼록 당시와 비교하여 현재 우리 정치의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당시의 고민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어떤 부분이 지체되었고 어떤 부분이 해소되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했으면 좋겠습니다.
자 료 집
<발제 1> 맑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지평확대를 위하여…
<발제 2> 반자본․비국가 사회변혁운동을 둘러싼 운동정세와 우리의 임무
<첨부자료> 사회이론연구소 「빛나는 전망」 노동자평의회 관련자료
비국가․평의회 수련회
2003. 1. 11~12 / 대전. 계룡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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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스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지평확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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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의회 운동의 전국화를 제안한다.
- 노동자민중회의
※ 이글은 비국가 평의회 수련회에 제출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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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문트기-오늘․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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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시대건 정치, 경제, 사회는 늘 불편부당했고, 항시 당대 모순이 존재했다. 애들은 언제나 불온하기(!) 짝이 없었고 젊은이들은 어른을 우습게 생각했다. 정치권력이 백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려 하지만 반대세력은 끊임없이 나타났고, 또 저항했다. 이러한 조건과 역조건의 갈등과 부침의 기록이 바로 인류의 역사이고, 마감없는 대립과 쟁의의 역사 밑바탕에는 삶의 불평등과 서로 인정할 수 없는 문화의 충돌이 구체적인 상황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든 완전한 자기 해방을 꿈꾸지만 어김없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 이같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자기중심주의를 폐절하기 위해 시대마다 수많은 이념과 철학이 주창되었지만, 대중은 늘 시큰둥했고 지식인은 대세에 따라 부화뇌동했으며 권력은 자기 정당화를 위해 날이 거세된 이념만 허용했고 용인할 수 있는 철학만 인정했다. 모든 철학은 이것과 저것으로 나뉘는 이원론이었고, 이념은 저급스러움과 고급스러움으로 등급이 지워졌다. 본성과 이성, 물질과 정신, 존재와 사유, 이기와 이타 등으로 나뉘어진 두 개의 개념들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후자에 의해 전자는 통제되고 규제돼야할 금기의 영역이었다. 그것은 반동의 논리였다.
하지만 테제(these)는 필연적으로 안티테제(anti these)를 태동시키지 않던가. 본성, 물질, 존재, 이기 등의 가치를 중심에 두려는 역반동의 힘은 끊이지 않고 세력화되어 저항했다. 그리고 산업사회의 태동과 함께 나타난 일단의 전위세력들은 마침내 이 역반동의 힘을 대세로 돌려놓았다. 낭만주의 먹물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부르주아가 역사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훈고학적인 봉건제는 이제 낡은 것이 되고 이성, 정신, 사유, 이타 등은 기만적인 왕족과 귀족의 이율배반적 논리가 돼 저잣거리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로 이러한 19세기 역반동의 혁명기에 인간 맑스는 이원론에 쐐기를 박으며 물질과 존재를 바탕으로 하는 변증법적 일원론(辨證法的 一元論, dialectic monism)을 주창했다.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를 향해 물질을 떠난 정신이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 존재가 소멸할 때 사유 또한 소멸하는 것이며 이기의 변증이 이타임을 역설했다. 그러자 부르주아들은 저잣거리에 내팽개쳤던 지난 시기의 이론들은 다시 재구성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엉뚱하게도 관념세계를 객관적 존재보다 우위에 두는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음모였다. 자신들은 물질과 이기를 우선하면서 영혼의 고귀함을 외치는 날조된 철학을 대중 공간에 유포시켰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공조는 끝이 났고 지난한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어 적잖은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승리는 일시적이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좌초와 함께 헤게모니는 다시 자본가에게 환원되었다.
그리고 21세기,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을 인력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노동자들은 경매에 붙여졌고 비정규직이라는 바겐세일 품목이 되어 일용직 일터를 서성거려야 한다. 기업마다 도입된 연봉제는 능력 있는 수퍼스타 박찬호 혹은 골프 여왕 박세리의 프로 근성을 몸에 익히길 강요한다. 정규직이 파업하면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에서 골라 쓰면 그만인 세상이다.
2) 자본주의의 즉물적 이윤 추구는 세기를 넘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변혁운동의 역사 또한 현재 진행형이며 여전히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주지하는 바지만 부당한 생존 현실이 존재하는 한 이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변절하고 투항하는 이들은 그렇게 삶의 방향을 튼 것이니 뭐라 사족을 달아 덜미를 챌 것도 없다. 문제는 여전히 투쟁의 전선에 남아 있는 우리들이다. 역사를 이어간다는 것은 과거를 고스란히 답습하자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욕과 오류의 역사도 역사인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사실이기에 역사로 기록된 것이지 반복할 모범이라 새겨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제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한다. 몰라서 저지른 시행착오는 인간이면 누구든 한 번쯤 경험하는 바이지만 번연히 알면서 똑 같은 짓을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과거를 반추하며 오늘, 이곳의 운동 흐름이 올바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곰곰이 짚어봐야 할 것이다.
2. 변혁운동을 후퇴시키는 그릇된 인식들
1)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간 노동운동에 헌신적으로 몸바쳐온 현장 실천가들의 최우선 과제는 민주노조 건설과 쟁취 그리고 현장권력 장악이었다. 전노협 건설과 사수 그리고 지금의 민주노총까지 이어지는 이 과제는 전투적 조합운동의 기풍을 세우는 주요 명분으로 작용했다.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단결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결사체로서의 노동조합은 노사관계가 존재하는 한 필요한 것이며 이를 만들고 지키는 일은 분명한 가치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노조 건설과 노조민주화운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대립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나아가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과 같은 정치적 총파업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운동적 가치는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권력장악이라는 명제에 이르면 노동조합운동은 치명적인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조합은 노동자이면 누구든 자발적인 의지로 참여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행동하는 결사체인 까닭에 개별의 노동자 각각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를 수 있고 다수의 의사에 의해 어떤 결정을 한다하더라도 여전히 조합원 전체의 동의를 의식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전제로 운영되는 노동조합을 권력장악의 거점으로 판단하는 순간 다수 노동자를 하나의 생각으로 강제하려는 의지가 개입되고 이는 곧 노동자 개개인을 대상화시키는 사고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중의 의지와 집행부의 의욕은 상충하고 조합원과 집행부가 괴리되는 현상을 빚게 되는 것이다.
집행부가 어떤 사상적 신념을 가졌다 하더라도 조합이란 태동부터 사상적 결사체가 아닌 탓에 정치적 목적이 이념적 과욕으로 치달을 경우, 조합은 정파적 입장이 수시로 대립하는 난장판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조합원들은 더 이상 조합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노동조합이 정치적 입장을 전면에 걸고 싸울 수 있고 또 그것이 가능하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단일한 사상을 고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아가 보다 더 근원적인 조합의 한계는 이러한 조직적 형태가 바로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데 있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인 자본가와 끊임없이 대립하고 충돌하지만 혁명의 순간이 도래하기 전에는 사용자와 관계 단절을 선언하지 못한다. 노동조합은 결국 사업장을 넘어서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하기에 조합은 혁명과 함께 평의회로 흡수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사상적으로 단련되는 운동가들을 길러내는 장이 되기에 가치가 있으며 전체 노동대중의 총파업이라는 정치적 행동이 가능할 수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사회적 바탕을 뒤바꿀 수 있는 담지체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조합의 운명인 것이다. 따라서 현장권력은 다른 형태의 사상적 결사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사체가 혁명기까지 노동조합과 어떻게 관계 맺는가에 있다. 노동운동은 임․노동의 관계를 끝내려는 노동자들과 혁명가들의 사상운동이다. 따라서 조합운동 또는 조합주의 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2) 방향을 잘못 잡은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소위 좌파운동이 한국사회에 한 조류로 형성된 이후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논란거리가 되어 온 테제는 다름 아닌 ‘당’이었다. 전위정당론에서부터 비합(非合)이냐 반합(反合)이냐, 합법정당이 옳은가 그른가 등등, 주장과 논리도 여러 갈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건설은 끊임없이 시도되었고 명분은 언제나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었다. “민중의 당”, “민중당”, 그리고 최근의 “사회당”과 “민주노동당” 소수 그룹까지를 포함하는 일련의 세력들이 일관되게 주창한 것도 바로 이 슬로건이었다. 그런데 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정치구호는 한국변혁운동에서 제출된 대단히 한국적인 언어이다. 세계변혁운동사에서 나타나는 당건설의 슬로건은 이러한 명분이 아니었다. 예컨대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사용되는 공산당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부르주아 의회 “정당”과 같은 그런 정당이 아닌 반자본주의 사상가들을 묶은 결사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맑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던 “당”이란 합법이니 비합법이니 하는 따위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계급 운동가들의 전위적(前衛的) 실천체 그 자체였다. 기실 이러한 전위적 실천체를 ‘전위정당’으로 표방한 이는 바로 레닌이었다. 그러나 레닌 역시 ‘전위’의 의미를 지금 좌파 활동가들이 해석하는 것처럼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한국변혁운동진영의 전위에 대한 과도한 해석에 있었다. 여전히 좌파운동의 다수 활동가들의 머리 속에든 ‘전위’는 ‘비합’, ‘반합’과 같은 단어와 이미지들이다. 왜 그런가. 레닌이 말한 전위는 다름 아닌 ‘앞서 싸우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실천 단위’였다. 그들은 이러한 전위를 짜르(황제)의 허락을 받아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비합법적이며 짜르의 법을 지켜야 할 이유 또한 없었기에 반합법적이었을 뿐이다. 생각해 보라.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에도 전위는 여전히 비합이고 반합이었는가. 아니라면 전위는 사라졌는가. 전위정당의 비합과 반합적 성격은 정치적인 상황이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 전위)는 기존 예술형태를 부정하기 때문에 전위적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사회를 부정하는 전위는 원튼, 원치 않든 비합법적이고 반합법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은 비합이거나 반합 혹은 합법적이어야만 한다는 논리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나아가 한국변혁운동의 정치적 상황에서 제출된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귀결은 왜 항상 ‘정당’만이어야 하는가이다.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란 당을 앞에 내 보낼 수 있는 노동자계급 꼬뮨(commune)의 조직화인 것이다. 당이란 바로 이 꼬뮨에 의해 전면에 배치되는 실천체이며 그래서 당이 곧 전위인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변혁운동은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이 결여된 상태로 당이 모든 운동의 귀결인 듯 착각하거나, 전체운동의 절대적인 지도체인 것으로 곡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운동은 정치적이며 정치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운동이 정당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변혁운동에 당 또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요구되는 당은 운동하는 정당이며 계급주체들과 계급운동조직들의 혁명 전략을 종합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또한 합법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까지(법적등록까지 포함하여) 운용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이는 전술적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의회를 통한 현실정치권력의 장악으로 혁명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의회주의자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권력 욕구를 가리기위한 기만 일 뿐이다. 냉철히 생각해 보라. 신자유주의 세계시장 질서의 전복 없이 일국차원의 혁명으로 대안사회건설이 가능하겠는가. 바로 이러한 객관적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사민주의(의회주의)를 비판하게 하는 것이다. 계급대중의 투쟁이 프로레타리아 국제연대망을 형성할 수 있을 때 혁명의 밑그림이나마 그려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3) 관성이 돼 버린 조직 패권주의 행태
노동자민중운동이 매 시기마다 고민해 온 또 하나의 과제가 ‘우리는 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가’이다. 이 때 ‘단일한 대오’는 단일한 실천과 단일한 조직을 목적으로 하는 단일대오를 말하는 것이다. 이 단일한 대오 형성을 위해 연대도 연합도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조직 통합의지가 매번 성과 다툼이나 논의의 선점 경쟁으로 나타나고, 이로 인해 조직 간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 활동가들의 분열과 대립은 고스란히 노동현장과 운동 각 부문으로까지 확대 재생산돼 애꿎게 현장만 사분오열시켜 놓는 결과를 빚었고, 각 조직의 독점욕과 선점의식은 급기야 자기 조직의 역량 고려 없이 전 부문운동을 다 수행하려는 의욕과잉을 불러왔다. 결국 조직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런 운동적 성과도 없이 심신만 고달프고, 대중성 없는 거대담론은 난무하지만 전문적이고 미시적 각론의 담론은 제대로 형성시키지 못한 채 휑뎅그렁한 개념들만 나열된 지루한 문건만 성과 아닌 성과로 남긴 채 저물어가는 운동집단이 돼 버리곤 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과거사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조직 생리는 관성이 돼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여러 조직이 연대 테이블에 마주 앉긴 하지만 잘 해야 전술적 연대 수준으로 모두 따로 동상이몽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가. 원칙과 초목표가 동일하면서도 다양한 실천방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세계관을 가진 인간이 누구는 시를 쓰고, 또 누구는 음악을 할 수 있듯이 이념의 표현과 실천은 다양하기 마련인 것이다.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이고 그래야만 되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운동의 선결과제는 단일한 전국조직건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전국화(국제화)인 것이다. 이제라도 계급운동조직들은 다른 조직, 다른 영역과 부문을 객관적 실체로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전제될 때, 비판도 격려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집단의 자기 역할을 정확하게 설정하는 결단 또한 필요한 것이다. 한 조직이 전체 운동을 다 책임지려는 패권주의는 버려야 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조직과 조직을 잇고, 소통시키는 사람의 네트웤이 필요한 것이다. 이질적인 세포 덩어리가 듬성듬성 둘러 앉아 있는 것 같은 형식적 연대가 아니라 사람이 혈관이 되어 피돌기가 가능한 쌍방향의 소통(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사람을 매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평의회’고 이를 우리는 ‘노동자민중회의’라 말하는 것이다.
4) 무지와 편견으로 호도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계급이란 말만 떠 올려도 화들짝 놀라는 반공주의자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좌파 운운하는 조직운동가들 중에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면 경직된 정서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를 최근 들어 종종 발견한다. 그런데 이들의 무의식적 거부감은 군사독재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생겨난 언어거부감과 국가 사회주의의 중앙집권적 통제 정치에 대한 과도한 피해의식이 일차적인 원인인 듯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몰과학적 언어이해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객관적으로 노․자 양대계급이 존재하고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 한 계급에 속해지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제유지를 위한 계급정치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계급정치란 바로 자본주의를 지탱시키는 자본가계급의 정치이며 부르주아계급의 사상 독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계급의 사상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란 포장 안에 담긴 그들의 민주주의란 개인 자유주의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거부하는 사적 소유에 기반한 시장주의에 다름 아니다. 시장주의는 이윤추구를 위해 피라미드식의 착취구조를 형성시켜 끊임없이 잉여를 수탈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상독재만이 아니라 소수 자본가들의 독점적 카르텔을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구조화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이러한 부르주아 독재에 맞서 계급관계를 철폐함으로 부르주아라는 계급이 사라지게 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소멸시키는 인간해방의 민주주의를 전 사회적 사고체계로 바꾸려는 무계급사상의 관철을 뜻하는 것이다. 어떤 사회건 그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문화로서 사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조선 시대는 유교독재의 사회였고 북쪽은 주체사상의 독재 국가이며, 이슬람 국가 통치자들은 이슬람 독재를 그들의 문화로 고수하려 하는 것이다. 이 같이 독재란 한 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의 바탕이 하나의 사상적 조류임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물리적 폭력으로 찍어 누르는 군사독재나 파시즘독재와는 전혀 다른 독점과 폭력을 거부하는 독재인 것이다.
구조화된 국가와 배타적 국가주의를 거부하는 민주주의 즉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사회 형태적 표현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무조건 모든 사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관계를 부정하는 평등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피억압 피착취 무산자 계급의 반억압, 반착취 세계관을 보편화, 일반화 시키려는 의지(신념이며 사상)의 독재인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의 핵심 과제는 민주주의 실현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 정신에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창출해야 한다.
5) 평의회에 대한 악선동들
-평의회는 꼬뮨, 소비에트 등과 같이 노동계급의 (몰계급적 공동체가 아닌)자치체를 일컫는 말이다. 또한 평의회는 자율운동체(정신)이며 조직이다.
우리가 한국 사회에 ‘평의회’라는 조직운동전망을 대중적으로 제출하자 말자 적잖은 이들이 무정부 주의라는 딱지를 붙여댔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과거 소비에트의 맹아였던 러시아 노동자 평의회에 일군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침소봉대해 악의적으로 평의회의 가치를 폄하하는 몰계급적 악선동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별반 설득력을 얻지 못하자 이제 평의회란 혁명 시기에나 가서 생겨나는 조직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딴지를 널어놓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장 역시 근거가 없는 것으로 소비에트 이전 공장위원회 등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미성숙의 학습 상태에서 당운동에 경도된 얼간이 같은 지도부의 분별없는 발설을 그져 따라 읖조리는 앵무새 복창일 뿐이다. 이들은 파리 꼬뮨조차도 본래 존재하던 자치체가 아니라 파리 혁명 때 갑자기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니 얼마나 어이없는가. 그러나 꼬뮨은 12세기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립된 자치체로서 사회혼란이나 영주권(領主權) 남용에 대해 사회질서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주민이 상호부조를 맹세하고 단결하여 왕 또는 영주로부터 사회단체로 인정을 강제했던 것이다. 중세 말기에 이르러 왕권의 간섭이 강화되자 도시는 가두정치화하여 100년 전쟁의 혼란 속에 쇠퇴해 갔으나 자치체의 개념만은 유지돼 1871년 파리 꾜뮨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평의회 역시 혁명시기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투쟁기의 평의회가 혁명시기에는 노동조합까지 흡수해 계급대중 전체를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사회권력이며 정치권력을 해소시키는 자치체로 질적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또한 평의회는 투쟁을 통한 생산수단의 장악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다. 이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투쟁의 핵심과제로 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국유화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따라서 공장자주관리는 평의회의 전략적 목표 중 하나인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공기업의 사유화를 저지하는 최선의 지름길은 국․공기업의 노동자자주관리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결코 이상이 아니다.
3. 2002년 계급운동(조직)에 대한 평가
- 활동가정치조직 기획위에 대한 평가
- 공투본과 투쟁연대 그리고 대선에 대한 평가
- 사회주의정치연합 제안에 대한 평가
- 노동자 힘과 사회진보연대의 존재논리
- 사회당의 운동논리와 이후 전망
4. 제안
- 지역 노동자민중회의 구성과 전국노동자민중회의 구성에 대하여
5. 맺으면서
또 한 해가 속절없이 저물었고 어김없이 새 해가 밝았다. 2002년 벽두부터 시작된 노동자민중운동의 재조직화를 위한 노력은 ‘활동가정치조직 기획위’의 해소와 함께 일 단락 지은 셈이다. 이쯤에서 현상만 보자면 그간의 노력에 비해 당장의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운동은 항상 진행형이고 성과란 현재 상태를 마침표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오래지 않아 한 해 동안 쏟았던 진정성만큼의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가져도 좋다. 운동의 결과는 축적된 내용이 삭혀지는 과정을 거쳐 드러나는 것이기에 전체 운동가(활동가)들에게 파급되어 행동으로 나타나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인 것이다. 자조직 확대를 위한 통합논리로 재조직화를 접근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것이 쉽사리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별 조직의 전국화가 아닌 사상의 전국화라는 측면에서 운동흐름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내용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간 국가주의를 극복할 민주주의에 대해 함께 고민했고 노동자계급운동의 조직전망으로 노동자평의회를 한국 변혁운동진영의 화두로 제출했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사상과 조직 전망을 전국적으로 기획하려 하고 있잖은가. 이로서 한국변혁운동은 새로운 주체형성과 맑스주의 재정립을 위해 땅 뜀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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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자본․비국가 사회변혁운동을 둘러싼 운동정세와 우리의 임무
- 노동의 미래를 여는 현장연대
1. 들어가는 말
- 우리가 하고 있는 운동은 155년전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을 통해 자본주의의 근본적 전복에 대해 이야기한 이래로 줄곧 이어져온 노동자민중운동속에서 반자본․비국가 사회변혁의 전망을 열어나가는 바로 그 운동이다.
- 반자본․비국가 사회변혁운동은 2003년 현재 어디에 서있는가? 운동주체는 항상 자신이선 운동정세를 헤아려 운동의 갈 길을 정한다.
- 비국가꼬뮨운동, 또는 비국가민주주의운동과 평의회운동은 조직운동의 내용과 형식, 또는 실천방법과 조직정신으로 해석될 수 있다. 평의회운동이 역사적으로 한편으로는 대중투쟁속에서, 한편으로는 정당/노조운동과의 갈등과 연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것과 국가사회주의운동에 대당한 문제의식으로서의 비국가민주주의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성장헤온 경로는 다르지만 2002년에 접어들어 한국에서 이 두 운동은 만났고 교감하기 시작하였다.
- 2002년은 특히 좌파운동의 역사에서 특별한 한 해로 기록될만하다. 한국에서의 역사적 좌파운동은 1991년에서 1996, 7년까지의 좌절과 해체기를 넘어서서 1997년부터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였으나 *좌파운동에 자체에 대한 근본적 반성의 부족 *좌파운동의 연대운동을 조직할 수 없는 무능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활동가정치조직기획위원회”로 상징되는 2002년도의 연대활동을 2003년 1월 7일 기획위해소로 최종적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 이제 비국가․평의회운동은 노동자민중운동의 상황과 좌파운동정세, 그리고 비국가․평의회운동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전진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2. 2002년 한국사회의 변화가 말해주는 것들
1) 대중들의 역동성과 노동자민중운동의 후진성
- 대중들은 엄청나게 역동적인 힘을 갖고 있다. 대중들의 역동성에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감각한 사람들이다. 38일간의 발전노조파업은 발전노조원들이 조직한 것이기도 하지만 대중들이 지지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의 11.5 총파업은 사실상 지도부의 의지가 관철된 것이라기 보다는 대중들이 밀고간 측면이 강하다. 노동자민중정치와는 밀접한 관계가 없지만 노사모나 붉은 악마는 대중들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지자체선거와 대선에서의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대중들이 기존정치질서를 넘어서고자하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촛불시위는 이러한 대중들의 역동성이 정치적으로, 계급적으로 조직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선운동에 매몰된 노동자민중운동을 ‘투쟁으로 돌파하자’고 주장하고 이끌고간 운동이 바로 청소년-청소녀들의 촛불시위였다.
- 대중들의 힘이 성장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난 6년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미친 가공할 민중생존의 위기 탓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대중들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투쟁주체로 각성시켜내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계속되면서 대중들은 한국부르조아정치체제의 기만성을 절실히 깨닫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기성정치집단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대중들은 어려웠지만 사실상 재집권이 당연하다 예측했던 한나라당을 거부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경직된 지배체제’로의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 물론 대중들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하지만 민중직접투쟁에 대한 희망 못가지고 있고 일단 노무현식 개혁 프로젝트 수준 - 신자유주의구조조정의 폐해를 줄인다 - 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과 국가주의적 재생산구조(식민지국가, 재벌국가, 비민주국가)에 적극반대하지만 민중직접행동과 사회변혁에 대한 희망을 못가짐으로써 노무현식 정치개혁에 희망을 걸고 있음으로써 당분간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이 갈등하면서도 ‘개혁세력’이 주도권을 발휘하는, 그러면서 부분적으로 진보진영을 성장시키는 사회세력/정치구도 정도만을 실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계가 반자본운동/비국가운동의 가능성을 내포한 대중들의 역동성 자체를 무시할 수 이는 것은 아니다.
- 반면 노동자민중운동은 이러한 대중들의 역동성을 제대로 이끌어내고 조직화, 계급화시켜내지 못하고 있다. 대중들의 역동성을 이끌어내어 노동자민중운동으로 분출시키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노동자민중운동의 책임이다. 민주노총은 2002년 구조조정저지투쟁과정에서 3번이나 지도부가 교체되는등 지도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투쟁수위를 상승시킬 수 있었던 11.5총파업을 단호하게 밀고가지 못하였고, 전농은 30만농민투쟁을 만들어놓고도 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지 못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등 진보정당들은 노동자민중운동과 대중들의 역동성을 결합시키고 상승시키는 역할보다는 ‘투표함정치’로 내몰아 노동자민중운동과 대중들을 수동화하는데 그쳤다.
2) 노동자민중운동의 후진성의 배후 : 수권정당운동, 민족주의운동의 동요와 좌파운동의 무능
- 대중의 역동성과 노동자민중운동의 후진성은 2002년정세가 확인시켜준 운동정세의 상수이다. 이 운동정세의 한축인 노동자민중운동의 후진성에는 수권정당운동, 민족주의운동과 좌파운동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 1997년 민주노총의 총파업에서의 부분적 승리와 이후 정치적 과정에서의 완전한 패배를 근거로 국민승리21과 대선을 경과하며 조직된 민주노동당과 정치연대의 분열이후 독자조직된 청년진보당을 경과하며 만들어진 사회당은 수권정당운동의 중심축이다. 수권정당운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입지를 강화시켜 줄수 있는 운동이지만 실제로 2002년 선거에서 투표경향과 선거 전술 및 정당 조직의 변화 경향이 보여주는 법칙은 반엘리트주의적, 토대민주주의적 실천을 원칙으로 하는 진보정당운동의 토대 자체가 허물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권정당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대중의 직접행동을 약화시키고 전선에서 이탈하게 하고 사회체제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가로막으면서 노동자민중운동의 투쟁에 대하여 ‘적정수준의 요구로 한정’함으로써 개량적 의식을 유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노동자민중운동의 투쟁 조직화에 별 도움이 안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법개악저지투쟁과 경제특구법저지투쟁등은 민주노총이 조직하고, 쌀개방반대투쟁은 전농이 조직하는 것이 현실이며 진보정당들은 이런 자리를 따라다니며 ‘투표함정치’정도를 하는 것이 다이다. 더욱이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분파주의적 실천으로 인해 노동자민중운동내부를 교란하는 문제까지 안고 있다.
- 민족주의운동은 동요하고 있다. 대선 말미에 민주노동당공동선거대책본부에 결합한 민족주의운동의 일부가 노무현지지로 선회하고, 전국연합과 6.15실천단이 실제로는 거의 작동되지 않았다. 민족주의운동은 실제로 ‘반이회창노선’과 ‘민주노동당지지노선’ 사이에서 동요하였다. 문제는 민족주의운동 전체가 ‘종북주의적 노선’에 기반해있기 때문에 현실대중등의 투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과학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의 현실투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논 물대기식’으로 운동을 하다보니 대중들의 역동성은 무시되고, 노동자민중투쟁을 제한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것이 민족주의운동과 수권정당운동이 만나는 지점이다. 실례로 이미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세력말고도 민족주의운동의 일부는 “지역통일전선역량이 민족민주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는 것보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는 것이 훨씬 강위력한다는 사실은 이번 대선투쟁에서 현실로 입증되었다”며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판을 짜자고 주장한다. 길게보면 민주노동당 내부의 다수분파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수권정당론으로 옷을 갈아입을 궁리를 하고 있다. 민족주의운동은 현실의 노동자민중운동과 종북주의적 노선 사이에서 동요하며, 동시에 수권정당론과 전통적인 전선운동 사이에서 동요를 계속 할 것이다.
- 쏘련의 붕괴와 정파운동의 몰락이후 지난한 모색과정을 통해 97년경부터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좌파운동들은 맑스주의의 새로운 순환을 시작할 가능성을 여러 차원에서 담고 있었다. 지역, 공장등 현장운동에 대한 고민, 사상이론 수준의 재구성, 조직운동방식과 형식에 대한 모색등 각각의 좌파운동들은 모두 ‘맑스주의의 전화’를 실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5년여가 지난 지금 현재 더 이상 전진하기 어려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로, 좌파운동들은 맑스주의의 전화를 실현할 사상이론적 내용을 풍부하게 정리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둘째, 좌파운동들은 오늘날 한국에서 노동자민중운동에 개입하기 위해 필요한 전국적 정치기획력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좌파조직들간의 연대운동은 한편으로는 맑스주의의 사상이론적 전화프로젝트를 실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국적 정치기힉력을 확보하는 조직적 근거를 확보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2002년 ‘활동가정치조직기획위원회’로 상징되고 1.27정세토론회와 5.18결의대회, 8.24 전국활동가수련회로 실천된 좌파연대운동은 조직발전전망에 대한 이견, 대선전술과 관련된 이견등을 넘어서지 못하고 일단 좌초하였다. 1년여간 좌파연대운동을 전개해온 전국활동가정치조직기획위 소속 단체들은 2003년 1월 7일 *현장연대가 제안한 연대조직은 현실의 조건으로 인해 어려울 것으로 보고 *활동가정치조직 건설을 자기 목적으로 하는 기획위원회를 해소하고 *향후 사안별 연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민중운동 정세가 좌파의 문제의식의 건강함만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지금 현재 노동자민중운동은 그 힘이 쇠잔하고 있고 수권정당운동이나 민족주의운동이 노동자민중운동의 강화를 위한 실천의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 아닌 바에야 좌파운동의 실천적인 개입을 통해 노동자민중투쟁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프로젝트와 실천이 담보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못해낼 때 좌파의 무능이 질타받을 것이다.
좌파는 2002년 정세에서 노동자민중투쟁의 전국적 기획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였고 주된 흐름을 조직하는데에도 실패하였다. 이데올로기적 투쟁에서도 수권정당론에 밀렸다. 특히 대중들의 역동성이 발휘된 정치적 과정에서는 완전히 보수적이고 무능한 한계를 드러냈다.
3. 2003년 노동자민중운동 정세에 대한 판단
-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개방화의 가속화, 한반도 전쟁위협등이 계속될 것이며,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침체와 이라크전쟁의 여파로 2002년 보다 낮은 5%대 성장에 머무를 것이다. 임금인상 억제와 설비투자감소로 인해 고용창출효과는 떨어질 전망이며, 4%에 가까운 물가상승은 노동자․민중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전망이다. 독점강화와 빈부격차확대로 경제와 사회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는 하층의 가정파탄 위험성을 가중시킬 것이다. 또한 제조업 공동화와 서비스부문 확대 현상이 지속되고 그 결과 비정규직의 증대 등 고용불안이 가중될 전망이다.
우선 2003년 1-2월 중에 근기법개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기업연금제 도입으로 퇴직금제도를 잠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경제특구 설치를 위한 시행령 제정 및 대상지역선정작업도 진행할 것이다. 또한 금융, 공공, 화학 부문의 구조조정이 예정되어 있고, 자본과 정권은 통합도산법 제정으로 구조조정 기업에서의 단협백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16대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구조조정 관련법(가스공사법, 철도민영화법, 정산법) 제개정이 2003년 중에 다시 추진될 것이다. 이와 함께 발전매각이 강행될 것이다. 이외에도 교수․공무원노동3권보장, 직권중재조항 철폐, 실업자의 단결권 보장,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노사정위원회 구성문제등이 투쟁의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민중운동의 투쟁동력 약화는 현재로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2~4월의 노동법개악저지투쟁등을 이슈로 한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있고, 전농도 2004년 쌀개방을 앞둔 시점의 최후결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것이 힘있게 조직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 국가장치 재생산에 대한 적극적/소극적 저항자인 선거거부자가 출현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참여율 48%, 8.8보선 참여율 29.6%, 대선 참여율 70%가 보여주는 것은 선거거부의 일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선거결과에 고무되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무기로 수권정당운동을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민족주의운동세력과 전농의 운동까지 포괄하는 수권정당운동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독립변수인 북한정권의 움직임조차 북-미상호간의 ‘전쟁회피정치’ - 1.8 파월의 안전보장 가능 발언과 1.9 북한의 대화제의를 보라 - 를 경과하며 남한정치에 개량주의적 정치지형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수권정당론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다.
- 노동자민중투쟁의 약화와 수권정당운동의 강화가 2003년정세를 결정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되는가? 2003년 2, 3월의 노동법개악저지나 국가기간산업사유화저지투쟁이외에는 대중투쟁의 동력을 확보하고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03년 상반기를 경과하고나면 04년 4월의 총선을 둘러싼 정치투쟁을 전망하며 운동정세는 급속하게 ‘수권정당론’이 활성화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 강화를! 전국연합은 시군구민중연대와 민주노동당 재창당강화를! 자신의 운동적 지향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면 조합주의적 노조운동과 경제주의적 농민,빈민운동을 재조직화하여 계급적, 변혁적으로, 의회주의적 진보정당운동으로 함몰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적운동을 계급적, 변혁적으로 재구성해나가야할 임무를 띄고 있는 좌파는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 2002 전체정세를 관통하면서 급변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한국사회는 격렬한 대중투쟁들은 사실상 소멸되었으나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투쟁들이 모색되고 있으며, 대중들의 집접행동(붉은 악마, 촛불시위등)이 강화되고 있어 향후 운동정세에 따라 대중투쟁의 양상이 변화될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 좌파는 이러한 전국적 정치정세변화에 전국적 수준에서의 기획을 갖고 개입하지 못하면 그나마 대중투쟁에 기대어 생존하던 지금까지보다도 더욱 수동적인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대중운동의 약화와 수권정당의 득세 앞에 좌파의 입지는 없다.
4. 2003년 정세와 비국가․평의회운동진영의 역할
1) 노동자민중운동에 대한 전국적 기획을 준비해들어가야한다.
- 노동자민중운동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비국가․평의회운동진영은 전국적 기획과 집행에 힘을 모아야한다. 민주노총의 혁신, 현장운동의 재조직화, 농민회운동의 변혁화, 학생운동의 활성화는 사회변혁운동 모두의 핵심관건이다.
- 비국가․평의회운동진영이 앞장서서 노동자민중운동의 변혁화, 계급화를 위한 노력을 위해 공동의 모색과 실천을 조직하자.
2) 맑스주의의 전화와 좌파의 연대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자.
- 맑스주의는 전화되어야한다. 맑스주의의 전화는 맑스주의 사상이론의 전화로 시작하여 전화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의 건설로 일단락된다. ‘차이와 연대의 민주주의, 비국가민주주의’는 전화된 맑스주의가 담아낼 조직원리이자 내용이다.
- 맑스주의의 전화와 좌파의 연대강화를 위한 2002년의 노력이 일단 좌절되었지만 연대정신과 활동은 지속적으로 계승되어야한다. 비국가․평의회운동진영은 맑스주의의 전화와 좌파의 연대강화를 위한 실천의 선두에 서야한다.
3) 건강한 좌파운동들간의 연대운동을 강화하자.
- 여전히 좌파운동은 가능성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노동자민중운동의 역동성을 높일 유일한 대안이다. 노동자민중 스스로를 역사속의 주체로 사고하고 투쟁과정속에서 조직화한다는 좌파운동의 문제의식은 반자본․비국가사회변혁운동의 핵심이자 노동자민중운동속에서 반드시 관통되어야하는 내용이다. 이런 좌파운동간의 연대는 진정 중요하다.
- 일단 가능한 좌파운동들간의 연대구조를 실현하자. 구조로 실현되지 않을 경우 사업과 실천과정을 통해 연대활동을 강화하자. 이러한 구조적, 실천적 연대에 비국가․평의회운동진영이 앞장서자.
5. 맺는말
- 지식인들의 이론은 대중의 이데올로기로 발현되지 않으면 진리가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이 알튀세르의 올바른 지적이다.(「오늘의 마르크스주의」, 1978) 지식인들의 이론은 이론으로 대중속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형태로 실현된다. 이데올로기형태로 실현되지 못하는 사회변혁이론은 실천적으로는 무의미하다. 그것은 대중의 지지를 얻는 실천적 지침으로 전진하지 못한다.
- 현재 좌파운동은 대중이데올로기 형태의 운동을 구성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중들은 이미 - 촛불시위같은 - 이데올로기형태의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운동의 조직자로서, 가장 선진적인 대중운동분파로서의 좌파가 운동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큰 문제이다.
- 좌파운동진영내부에서도 가장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의 전화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반자본․비국가사회변혁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 비국가․평의회운동진영의 결단과 노력이 진정으로 필요한 때이다. 더불어 전진하자.
3.첨부자료
The Western Soviets, Worker's Councils Versus Parliament 1915-1920
(by Donny Gluckstein)
본 글은 조만간 전문을 번역할 예정입니다. -사회이론연구소 ‘빛나는 전망’ |
책의 목차
서론
1장. 페트로그라드에서의 소비에트와 혁명(Soviets and revolution in Petrograd)
2장. 위기속의 서구 제국주의(Western imperialism in crisis)
3장. 글레스고우: 기반다지기(Glasgow:Lying the foundations)
4장. 실패의 교훈(The lesson of failure)
5장. 전쟁속의 독일(Germany in war)
6장. 독일제국의 몰락(The Kaiser falls)
7장. 1918년 11월 혁명의 화학식(The revolutionary chemistry of November 1918)
8장. 반혁명과 혁명(Reaction and revolution)
9장. 이태리: 공장평의회와 그 이상의 것(Italy: Councils and beyond)
10장. 재평가와 대립(Re-assessment and confrontation)
11장. 결론(Conclusion)
서 론
-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다시금 위기 속으로 들어갔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맑스의 ‘경제위기와 필연적인 계급전쟁’에 대한 예측은 현실에 의해 부정되었으며 단지 전통적인 의회민주주의적 길만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착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의회주의적 길의 지속적 실패, 사회복지제도의 의도적 축소 등은 현재 우리로 하여금 혁명적 변화의 과제를 제기하겠금 하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많은 노동자들이 의회주의를 불신과 조소로 대하고 있지만 동구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유형 이외에는 ‘투표함’에 대한 대안을 탐색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노동자 평의회’를 두 체제(의회주의-스탈린주의)에 대한, 현재도 유효한, 진정한 대안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몇몇의 사회사상가의 계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노동자 농민은, 1918년 독일, 1956년 헝가리, 1972년 칠레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청사진에 의해 혁명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중의 이익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위기가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 민주주의’를 창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평의회로 조직된 노동자 권력(러시아에서는 이를 ‘소비에트’라 칭함)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가장 큰 실질적 도전이었다. 이제 노동자 평의회라는 권력체는 다소 현상적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노동자 평의회의 전통은 이를 반대하는 자들(반혁명세력, 개량주의자, 스탈린주의자)로 인한 모호성으로부터 재발견되야 한다.
- 이책은 현재까지의 모든 평의회 활동을 나열하는 단순한 기념비적 서술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러시아 사례조사를 첫걸음으로 하여, 나는 서구의 의회주의와 대중화된 개량주의의 조건속에서 분투한 사회주의 활동가의 평의회 사례로 집중하고자 한다. 서구 평의회 활동의 3개의 중심지(영국, 독일, 이태리)를 자세히 연구하고자 한다.
-이책은 단순한 가치중립성을 가장하지 않고자 한다.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자와 피착취자간의 근본적 모순과 대립을 초월한 역사서가 있을 수 없음을 확신한다. 이책은 출발부터 자본주의 혁명적 철폐의 필요성을 취하고자 한다. 이는 단지 노동자 자신의 활동과 조직을 통해 이루어질 뿐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이러한 과정을 이루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이책이 오늘날의 노동운동과 혁명적 정당의 건설, 과거 투쟁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기여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1차세계대전 도중과 이후 유럽은 제국주의의 위기와 볼쉐비키 혁명에 맞물려 혁명적 활동의 만개를 경험하였다. 러시아, 이태리, 영국, 독일사례간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일은 혁명과정의 일반적 교훈을 끌어낼 수 있기때문이 유용한 작업이다. 단순한 국가수준의 연구는 그 나라의 특수성에 의해서만 윤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기간의 영국사례의 연구들은 노조문제와 정치로부터의 수동적 도피로 결정되어 졌다. 대조적으로 독일의 사례의 연구들을 보면 맹목적인 정치 중심주의와 작업장 수준에서의 변화의 무관심으로 특징지워진다. 명백히 이러한 일국수준에 기반한 제한된 연구관점은 본 글의 이후에서 좀 더 명확해 질것이지만 여기서의 연구목적은 일국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국경을 넘은 전 세계적 계급투쟁의 일부였는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국제적 비교연구는 특히 1905-1920년 기간에 명확히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이 전유럽 노동자 게급 투쟁간의 차이의 많은 부분을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평의회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합법적인 정치영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람시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공장과 그 안에 있는 노동자 의식의 혼란-이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자신의 관철에 종속됨-속에서 그 배면(본질)을 보아야 한다. 이곳의 사회적 관계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이며, 이곳에서는 노동자와 관련하여 자유와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 여기에 역사연구자에 있어 필연적인 문제가 봉착된다. 지배계급은 국가관료, 문서정리자, 출판업자 등 일군의 이데올로기 기제의 군대를 가져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논의 및 결정사항을 정리하고 유포시킨다. 반면 억압된 계급조직으로서의 노동자 평의회는 그들의 의사결정을 문서로 정리한 ‘의사진행록’이 거의 없다. 유급 문서정리자의 부족과 역동하는 계급 투쟁과정에 있는 관계로 인해 현장노동활동가는 자신의 사상을 문서로 표현하여 남길 수 없었다. 평의회와 현장노동활동가조직은 당조직과 같이 여유를 두고 의사결정을 기록할 정식단위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보 즉 현장노동자와 평의회 간부가 만나 토론한 장소, 그러한 만남의 정규성 정도, 참석률과 대표성의 정도등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때때로 이러한 정밀하고 세부적인 정보 부족은 우리로 하여금 평의회를 실체가 없는 조직으로 오인하겠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문서의 부족은 노동자의 자주활동의 증거로 인해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 결국 노동자 평의회는 실천을 위해 기획된 조직이었던 것이다.
- 개별공장과 산업의 현장노동자가 수행한 각각의 투쟁과정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글레스고우, 베를린, 튜린에 대한 연구로 그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투쟁에 대한 전체적 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들 지역을 러시아 페트로그라드로부터 시작된 좀 더 큰 운동의 ‘한 흐름’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1장. 결론
- 노동자 평의회는 1905년 러시아 혁명과정에서 처음 발생하였다. 당시 이 사건은 서구노동운동내에 하나의 논쟁을 유발시켰다. 1906년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람들은 종종 러시아 혁명의 사례와 이로부터의 교훈이 독일혁명의 준거점을 제공할 수 없다고 습관적으로 이야기하곤 한다......[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교훈은 곧 우리 독일의 교훈이다’라고 썼다. 그년의 당시 논쟁구도내에서의 반대적 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혁명적 에너지가 넘지는 사람들이여!....러시아로 돌아가라’
- 1차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혁명정당의 원칙을 따르기를 거부했던 핵심인물은 카우츠키이다. 그에 의하면 서구와 러시아 노동운동간에는 어무런 공동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이후 많은 사람들이 10월 혁명과 소비에트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부정했던 카우츠키의 논의에 따랐다. 심지어 1917년 혁명의 결과로 창립됬던 서구 공산당 조차 그랬다. 예를들면 영국 공산당의 최근 실천강령을 보자.
영국의 사회주의로의 ‘길’은 소비에트의 ‘길’과는 다를 것이다. 소비에트의 봉기, 시민전쟁 그리고 권력의 새로운 조직(소비에트)의 창조는....... 짜르 독재체제라는 러시아 특수성의 배경에 기인했다.
- 레닌의 견해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러시아 혁명모델이 다른 지역에서 곧 필연적으로 발생될 미래에 관련한 의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믿었다. 1919년에 발족되어 1920년대 수많은 혁명가의 거점이 되었던 공산주의 인터네셔날은 모든 지역의 프롤레타리아에게 러시아혁명 사례를 따르고 모든 소비에트 공화국을 지원하도록 요청했다. 러시아의 고립과 스탈린주의의 관료제로 인해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파괴되었지만 현재까지 본질적 문제는 변하지않고 있다. 1차세계대전에서의 혁명과 그 성공의 결과물인 러시아 소비에트는 현재 사회주의자의 지침서로 기여할 수 있는가?. 러시아 소비에트와 독일, 이태리, 영국에서의 공장평의회 간의 강한 유사성은 우리에게 앞의 질문에 대한 긍정적 해답을 제공한다. 동시에 서구 3지역의 권력장악의 실패는 또한 우리에게 명맥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1. 러시아: 예외인가, 정도인가
- 러시아 노동자 투쟁은 다른 모든 곳에서와 같이 생산의 사회화로 인해 촉발됨. 하지만 그 표현형태에서는 다음과 같이 예외적임
1) 노동자 계급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에 관한 정치적 요구에 있어 자본가 계급과는 독자적인 행보를 취하였다.
-> 1905년 노동자 투쟁: 의회구성과 결합된 보통선거권 요구. 이에 대해 짜르는 폭력으로 답함. 몇년 후 노동자들은 총파업전술을 통해 소비에트를 건설하여 다시금 의회 구성(듀마)을 요구함
->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비록 부르조아 민주주의 슬로건을 차용하였지만 그 방식에 있어 의회주의를 넘어 노동자 권력으로 접근함. 즉 제헌의회 구성의 요구는 직접적으로 소비에트건설로 이어짐.
2) 러시아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무능과 부르조아 정치 경제제도의 미형성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노동자의 의식을 포섭하는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 서구의 경우 자본가는 노동자에 대해 임금인상의 양보와 더불어 노동자 스스로 조직할 권리를 부여(단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을 경우만). 이러한 상황이 서구노동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로의 ‘개량주의적’ 길의 가능성을 믿게 하며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진보와 정치권력간의 긴밀한 연계성을 못 보게 함. 따라서 서구에서는 노동운동에 있어 혁명적 세력이 미약한 반면 개량주의 세력은 노동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미침.
-> 반면 러시아에서는 노동자들이 단순한 경제적 요구만을 성취하기 위해라도 무장된 권력이 필요했으며 이로인해 모든 파업은 정치적 성격을 띰(eight hours and a gun!). 이로인해 러시아 노동자의 대부분은 혁명에 대한 실질적 이해를 지니고 있었음.
3) 러시아에서는 서구에 비해 소수노동집단 투쟁과 계급투쟁간의 괴리가 적었다. 이러한 차이는 러시아 자본주의의 급속도의 발달과 짜르의 무차별적 폭압에 기인한다.
->영국의 경우 산업 기술과 작업조직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 이로인해 금속산업의 숙련노동자들은 숙련노조를 토대로 자신의 기술을 자본에 대한 협상권력으로 활용. 당시 숙련노조는 엄격한 가입제한을 통해 기술의 시장독점을 유지하며 자본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냄. 그 결과 이러한 노동의 숙련분파적 조직은 점차 ‘노동귀족’으로 전화되어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분파적 태도와 타 노동자의 지원에 대한 보수주의적 거부로 일관함.
-> 반면 러시아의 경우 서구자본에 의한 급속한 산업기술, 작업조직의 이식이 이루어지고 노동자는 러시아 각지에서 모여들어 동질성이 짙은 산업프롤레타리아로 변화되어 숙련노조라는 노동분파적 조직이 구성되지 못함. 또한 숙련노조가 구성되지 못한 주요 요인을 보면 러시아 짜르는 모든 노동자 조직을 효과적으로 금지하고 탄압함.
4) 러시아의 경우 정치조직인 소비에트가 노동자 계급에 의해 구성된 최초의 집합적 조직이었다. 소비에트는 1905년부터 1917년사이 구성된 분파적 경제적조직(노조, 공장위원회 등)에 시기적으로 선행한다.
-> 소비에트는 1917년의 짧은 시기(당시 소비에트 중앙의 주저함을 공장위원회가 도전)를 제외하고는 이에 필적할 노동조직이 없었음. 이로인해 개량주의자들 조차 대중에 접근하기 위해 소비에트의 성장에 주력하게 됨. 따라서 개량주의 지도자에 대한 현장노동자의 투쟁은 소비에트 내에서 이루어짐. 소비에트의 즉각적 소환권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쉽게 대체하여 수개월이내에 개량주의에 대한 투쟁을 종결하게 됨.
-> 반면 서구의 경우 개량주의자에 의해 통제되는 노조가 있었고 이를 통해 노조의 권위에 도전하는 공장평의회의 성장을 제어하였음. 이로인해 서구의 공장평의회는 정치권력획득을 위한 조직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다만 노조관료주의에 대한 반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단지 노조와의 관계로만 제한함. 경제위기시 노동자 투쟁의 정치적 의미는 단지 일부지역 소수노동자에게만 나타나며 이러한 저항조차 개량주의자 지도자의 ‘노조의 관료주의적 통제기제’를 통해 장애물을 만나 지연되고 사라지게 됨.
5)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단련된 혁명정당이 존재한 반면 서구에서는 이러한 정당이 없었다.
-> 러시아의 경우 지속적인 혁명적 정세가 혁명정당의 발전을 촉진시켰음. 1917년 2월 멘세비키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때, 볼쉐비키는 3개월 내로 페트로그라드의 공장위원회와 노조를 실질적으로 지도하여 10월 혁명으로 이끌음. 사실상 소비에트 지도부는 9월까지 대다수인 병사 대위원의 반대로 볼쉐비키의 노선을 따르지 않았으나 노동자의 강력한 볼쉐비키 지지로 인해 결국 혁명을 수행하게 됨.
- 앞서 논한 차이점이 러시아와 서구노동자간의 본질적 연계성(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부정하게되면 않됨. 노동자 국제주의(모든 곳의 노동자는 단일한 집합적 이익을 가진다는 믿음)는 이론을 초월함.
-> 1차대전 동안 모든 노동자들은 동일한 적대계급에 직면하여 유사한 투쟁조직형태를 개발함. 프틸로프의 노동자들은 사실상 베를린, 글레스고우, 튜린의 임금노예와 다르지 않음. 다만 러시아의 성공적인 소비에트 형태(부르조아 국가권력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무장된 권위체)는 이후 나타나지 않음. 독일 노동자 병사 평의회만이 소비에트의 형태에 도달함.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60년간 무수히 많은 노동자 평의회 조직이 재생됨. 따라서 소비에트가 ‘러시아적 특수현상’이거나 ‘전시에만 나타난다’는 논의는 추방되야 함. 우리는 수많은 평의회 운동이 재생 이후 소멸된 원인을 명확히 해야 함.
-> 1936년 바르셀로나 무장된 노동자운동은 당시 아나키스트의 무능(노동자의 무장된 힘을 노동자 국가건설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 스탈린주의자와 부르조아의 부정된 결탁, 이로인한 노동자 평의회의 해체로 인해 실패함. 1956년 헝가리의 노동자 평의회 운동은 러시아 군인에 의해 무력진압됨. 1974년 포르투갈에서의 노동자 자주조직은 스탈린주의자와 사민주의자의 결탁과 탄압으로 실패.
- 앞의 실패사례는 우리에게 공장평의회 건설의 객관적 조건이 무엇이며 그 운동이 반드시 취해야할 조직형태가 무엇인가에 대한 엄밀한 이론적 분석을 요구함. 모든 대중적 자기조직의 공통점은 ‘유연함’임.
-> 서구에서 발생한 노동자평의회는 개량주의의 조건(노조에서의 관료주의는 현장노동자 운동을 필연화함)에서 성장함. 따라서 이들 조직형태(올바른 조건에서 소비에트로 전화가능)와 소비에트적 조직형태를 혼동해서는 않됨 소비에트적 조직형태는 단지 이중권력기간에 존재함. 현장 노동자 운동은 부르조아의 국가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한 비혁명적 기간에도 존재함.
-> 현재 자본주의는 러시아 혁명이후 국제적 수준에서 도전받은 적이 없음. 그 주된 이유는 현장 노동자의 용기부족이나 허약함 또는 노동자평의회의 조직향태상 불충분성이 아니라 혁명적 리더쉽 부족과 맞물린 개량주의의 득세임.
2. 개량주의의 문제
- 지배계급의 영향력은 겉으로 드러난 폭력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운동 내의 이데올로기적 침투에 의해 작동됨
->개량주의는 지배계급의 영향력이 노동계급내에 드러난 형태임. 개량주의적 조직은 안정된 자본주의내로 제한된 노동자계급의 투쟁에서 발생됨.
->따라서 노조조직은 경제영역에서 임금수준, 표준적 노동조건 확립 등의 즉각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반면 개량주의적 정당은 정치영역에서 노동계급의 이익을 점진적으로 확보함. 둘다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작동됨. 자본주의가 안정될 시기 두 조직은 단기적이익을 획득할 수단이 되며 동시에 장기간 점진적 수단으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유포함.
->노조조직은 주로 직종별로 분파적으로 조직되며 나아가 정치적 목적으로부터 경제적 기능을 분리하며 관료제(이는 현장노동자의 주체적 약함의 반영물임. 이것이 노조지도자에게 상대적 자율권력을 부여함)에 의해 지배됨. 반면 개량주의적 정당은 공개적으로 ‘노동자에 제한적인 부르조아 국가’를 자신의 활동영역으로 삼아 부르조아 국가의 ‘민족주의적’ 목적에 동화됨. 또한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부르주아의 ‘판사’의 의견에 동의하며 외국 및 노동자로부터 자본주의 경제를 보호하게 됨. 결국 두조직은 노동자의 활동을 조절하고 부르조아 틀내로 목적을 제한함으로서 자본주의를 강화하게 됨.
-> 그러나 자본주의 안정기에 획득된 성과는 혁명기에는 장애물로 전화함. 노동자들은 불황기에 이러한 개량주의가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하더라도, 만약 신뢰할 만한 혁명적 대안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생활의 개선을 위해 또다시 개량주의에 의존하게 됨. 개량주의 조직은 자본과 노동간의 완충물로 작동하여 위기의 본질을 은폐하게 됨.
-> 혁명시기 자본에 의해 구사되는 개량주의의 완충전술은 미소한 양보와 더불어 노자간 협력을 유지함으로서 자본으로 하여금 일시적 후퇴와 재충전을 가능케 함.
- 개량주의의 이중적 본질: 기본적인 노동자 조직의 수단 <-> 운동의 진전을 한계지움
-> 개량주의 조직은 자본가계급의 노골적 착취에 대한 방어수단이 되나 동시에 계급 협조에 봉사할 관료주의적 상층을 형성하여 현장 노동자의 이익과 괴리됨
->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할시 개량주의를 극복해야하는 문제는 혁명적 당조직의 존재로 귀결됨. 한편으로 개량주의에 동요되는 노동대중조직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조직에서 현장노동자의 전투성을 억제하는 개량주의 지도자와 투쟁해야하는 문제는 즉각적 이슈와 사회주의적 목표를 바로바로 연결할 수 있는 혁명적 당조직과 이를 통한 사상투쟁의 문제로 귀결됨.
->1920년 러시아와 서구의 투쟁과정에서 위의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 평의회가 건설됨. 그러나 초기 평의회 내부는 매우 다양한 노동자 집단을 포괄하고 있으므로 각 지역, 공장마다 그 성격이 다양해짐. 다만 지난한 투쟁과정 이후 일정지역의 평의회(예: 페트로그라드와 베를린)가 전지역을 선도하는 ‘혁명적 성채(revolutionary capitals)로 전화함. 이러한 노동자 평의회의 주요중심지는 한편으로 객관적 조건인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약한고리의 발생,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적 조건인 이에 대한 노동자의 대응양상으로 결정됨
3. 평의회 건설: 객관적 조건
- 자본주의의 체제는 전세계에 지배의 체인을 구성하나 그 지배의 연계고리가 공장평의회가 발생하는 ‘혁명적 성채(revolutionary capitals)에서는 약해짐.
-> 이지역의 객관적 특징은 1.빠른 사회적 확장, 발전과 전통의 붕괴 2 .타지역 인구의 유입을 통한 혁명사상의 전파와 기존이데올로기간의 충돌 3.금속산업지역 등임
-> 금속산업지역에서 ‘혁명적 성채(revolutionary capitals)가 발생하는 이유는 ’금속 다루기‘라는 산업적 조건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맥락에 있음. 금속산업은 자본집중과 기술변화의 역동성으로 인해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항상적으로 재고려하고 방어하게 함. 20세기 초 금속산업 숙련노동자들은 평상시 신기술 도입으로 인해 위협될때 공장내에서 분파적 투쟁에 나서게 되지만 전시에는 이를 일반화하여 그 지역 현장노동자들간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됨.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집합적 노동자를 창조하여 투쟁에 나서게 하며 동시에 자본주의의 ’재구성‘과정은 이러한 경향을 촉진하게 됨.
- 특히 전시에 현장 노동자들은 1.사민주의 정당과 노조의 전쟁동조로 인해 기존 지도력으로부터 벗어나며 2.국가자본주의의 구성으로 인한 폭력적 억압을 경험함. 전시에는 공장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그 생산물의 자본주의적 활용(군수품)간의 모순이 군수공장 노동자에게 예리하게 간파됨.
-> 1.사민주의 정당과 노조의 지도력으로부터 벗어남: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자들은 자신 스스로의 리더쉽을 개발하여 폭넓은 투쟁을 조직하게 되며 급변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조직형태를 원하게 됨. 기층민주주의가 그 해결대안임. 밑으로부터 조직된 새로운 리더쉽은 대중의 지원을 받으며 동시에 즉각적인 소환원칙에 의해 지도-피지도간의 관계는 강화되고 관료주의의 토대를 제거.
-> 2.국가자본주의의 구성으로 인한 폭력적 억압을 경험: 이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촉발하게 됨.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는 국가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정치-경제 분리’라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를 자본 스스로 해체하게 됨. 파업이 불법화되고 직조장이 경찰과 군인으로 채워질 때 노동자의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으로 직결됨.
-> 이러한 맥락에서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의 경제적 해방을 위한 정치적 형태로 등장하게 됨.
4. 평의회 건설: 주체적 조건
- 전시유럽에서는 인구유입과 금속산업의 확장으로 수많은 잠재적 ‘혁명적 성채(revolutionary capitals)가 존재했음. 그러나 이러한 ’성채‘를 창조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은 그 지역 노동자들의 주체적 반응이었음
->노동자의 저항이 혁명적 형태를 취하기 위해서는 종종 소수의 의식적 활동이 필요했음. 이러한 활동이 존재하는 곳에서 노동자평의회의 맹아는 개량주의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게 됨. 하지만 이들 내에도 개량주의의 ‘정치-경제분리’이데올로기의 해악으로 인해 정치적 선노(vanguard)와 작업장의 전투적 선노로 분리됨.
1) 작업장 전투적 선노의 주체적 상태
- 관료적 노조간부에 대한 도전과정(노동자민주주의)에서 공식 비공식 투쟁을 통해 작업장 조직을 건설. 준비과정은 전쟁 전부터 시작되어 주로 작업장 이슈에 있어 개별자본가와의 투쟁으로 집중. 러시아의 경우 소비에트가 대중의 자발성에 의해 형성된 반면 서구의 경우는 독립적인 작업장 조직건설 이미 형성된 개량주의 노조의 방해로 인해 다른 향상으로 건설됨
- 초기건설 과정은 사실상 노조의 보호아래 작업장 내 노조기제의 단위로 시작됨. 그후 노조로부터 독립된 자율적인 작업장 투쟁조직으로 전화. 각 공장의 작업장 투쟁조직은 전시 위기속에서 연대파업투쟁을 위해 그 리더들간의 지역적 네트워크 형성하고 나아가 공식적 위원회(ASE Vigilance committee)로 성장.
2) 정치적 선노의 주체적 상태
- 서구 ‘혁명적 성채’에서는 러시아의 볼쉐비키에 필적할 정치적 세력이 없었음. 하지만 당시 공장평의회를 건설했던 주된 리더들은 노동자 국제주의와 정치-경제의 융합을 신조로 했던 사회주의자들이었음.
- 정치적 선노가 작업장의 전투적 선노와 다른 점은 초기부터 대중과는 독립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임. 작업장의 전투적 선노의 경우 리더쉽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대중이 노조의 관행을 포기하고 스스로 행위하려는 조건이 형성되야 함.
->정치적 선노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매개로 한 자발적인 개인간의 결사체임. 또한 초기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명확하며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했음. 즉 이들은 대중이 일어서기 전에 이미 조직적, 정치적인 자신의 위상을 명확히 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개입적 힘(당조직)을 형성할 필요가 있었음.
->혁명적 정치선노들의 사상은 노동자 평의회운동을 지도하는데 필수적임. 전시조건에서 발전되는 혁명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은 정치적 사상을 필요로 함. 특히 이러한 당조직과 정치논의는 노자간 화합과 평화를 주장하는 개량주의 논의에 대응하고 각각의 공장과 산업내 평의회를 연결하는 매개가 됨. 나아가 공장평의회는 정치-경제의 분리를 융합시키는 조직형태이므로 이후 투쟁과정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필요로 함.
-혁명적인 정치선노가 구체화되는 형태는 시공간마다 다름. 우리는 미래의 투쟁을 발생시키는 객관적 조건을 선택할 수는 없음. 하지만 과거 노동자 투쟁에서 객관적 조건내에서의 주체적 반응에 대한 교훈은 반드시 필요함. 만약 과거 느슨한 정치적 선노간 결합와 작업장 전투적 선노의 네트워크가 실패, 성공을 통해 단련된 견고한 당조직과 소비에트로 조직형태 변환을 한다면 그들의 힘을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5. 실천속에서의 노동자 민주주의
- 평의회는 개인의 머리에서 발명되는 것이 아님. 단 자본주의의 위기속에서 평의회는 노동자들의 창조적 힘을 발산시키 때문에 새로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를 보여줌
->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정치체를 창조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음. 이러한 정치체의 운영원리는 현재 대의제와는 매우 다름. 또한 이중권력 상태는 오래가지 못함. 노동자 권력은 자본주의 체제내의 공권력과 의회형태라는 자본가의 권력을 파괴하고 대체하지 않는 한 정착될 수 없음. 평의회와 의회사이의 노동자 권력이란 있을 수 없음.
1) 부르조아 민주주의에 있어 대의제의 기만
- 이는 노동자 대중에게 통제의 환상을 심어 자본가의 실질적 통제를 시야에서 사라지게하는 기능을 함
a. 경제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정치적 평등: 모든 피선거권자는 한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평등함. 하지만 경제적 영역에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은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권력관계속에 있음.
b. 대의제의 지역분할에 의한 투표: 이는 노동자로 하여금 집합적 노동자의 이익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지역내 개별적 ‘시민’으로 정체화시킴. 노동자는 각각의 가정에서 자본이 장악한 매스미디어에 의해 ‘민족국가이익에 봉사하는 시민’으로 호출.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질적인 적대는 국가간 적대가 아니라 노자간 적대임.
c. 주권자의 대의자에 대한 통제불능: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대의제(국회)는 순전히 임의적인 정치기제로서 국회의원은 주권자에 의한 즉각적 통제에 구속되지 않음. 선거는 단지 이미 이루어진 의사결정에 대한 수년에 한번 돌아오는 ‘의견개진’이며 미래를 구체적으로 결정한 수단이 아님.
d. 일상생활로부터 정치의 제거: 부르조아 민주주의인 대의제는 대중으로 하여금 국회를 통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겠금 함(지루함과 무관심). 사실상 국회의 배후에는 자본주의 지배의 폭력적 관료주의적 핵심(행정, 사법, 군, 경찰 등)이 있어 선거로부터 면제되고 결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따라 지배구조를 구성하게 됨. 따라서 자본주의국가의 결정적 힘은 대중에 반하여 바깥에서 조직됨
2) 노동자 민주주의로서의 소비에트
- 노동자 평의회 특히 이것의 최고 발전형태인 소비에트는 의회주의의 완전한 부정임. 정치권력은 결국 사회적 부에 대한 통제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소비에트는 공장내 대중조직에 직접적으로 기반하게 됨
->의사결정 과정: 소비에트 운동에 있어 작업장 조직과 노동자 통제는 정치권력 획득, 기존국가기제의 파괴, 새로운 정치체의 건설운동과 분리될 수 없음. 집합적 의지는 공장과 사무실에서의 토론을 통해 형성됨. 노동자들이 서로 항시적으로 만나 일하게 되는 공장과 사무실만이 일상과 정치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공론장과 즉각적 소환장이 될 수 있음.
->의사결정 실행:
a. 무력의 기반: 부르조아는 의사결정의 실행여부를 공권력(군, 경찰, 법)에 직접적으로 의존함. 따라서 소비에트도 스스로 무장된 대중에 의해 자신의 의사결정 사항을 대수의 의지로 실행하게 됨. 자본주의 국가는 대중으로부터 소유권을 보호하지만 노동자 국가에서는 사적 소유의 권력으로 대중을 보호하게 됨. 노동자 국가는 대중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그자체임.
b. 정치경제의 융합: 노동자 국가를 통해 각 공장의 생산력은 조직되고 동원됨.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정치적 독재는 반드시 경제적 독재를 수반하게 됨.
6. 평의회-당-노조
- 노동자 평의회는 직접적인 대중투쟁을 위한 조직임. 이것은 즉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작업장에서 대표를 선출함. 이들은 서로 만나 연대범위를 확장시키며 한 지역의 노동자들을 하나로 단결시킴. 따라서 이러한 현장 노동자의 조직은 또 다른 노동운동조직인 당과 노조와는 다름.
->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 대중이 자신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해야 겠다는 의지가 생길때(위기국면) 발생함. 반면 당과 노조는 자본주의 체제내에서 안정기와 불황기 모두에 걸쳐 존재할 수 있음.
-> 노동자 평의회를 당과 혼동해서는 않됨. 당은 정치적 사상에 다른 자발적 결사체며 노동자 평의회는 개인의 정치적 신조와 상관없이 작업장에 따라 조직됨.
-> 노조는 자본가의 경제조직화에 따라 특정 노동자 집단을 조직하여 그들의 경제적 요구를 충촉시킴. 노조는 역사상 장기간 발전되어 특히 자본주의 안정기에 전문가를 고용하여 자본과의 단체교섭를 통해 고임금과 근로조건을 향상시킴. 하지만 임노동관계 자체를 철폐하는 것은 아님. 반면 노동자 평의회는 대개 1.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협상조차 배제되거나 2.노동자가 가능한 한 넓게 조직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을시 발생. 이때 평의회는 각 부분과 경제영역을 가로질러 조직되어 정치사회권력의 담지체(소비에트)로 성장 가능함.
- 노동자 평의회는 최종적인 계급 투쟁의 한 부분으로 혁명정당의 역할없이는 스스로 성공할 수 없음. 평의회는 혁명시 혁명정당과 대중을 이어주는 조직체임.
-> 당문제는 평의회연구에 있어 본질적 부분임. 러시아 소비에트의 성공과 서구 평의회의 실패는 혁명당-공장평의회의 관계설정이 매우 중요함을 시사. 베를린의 경우 당이 평의회와는 독자적으로 혁명하려다 실패. 튜린의 경우 평의회가 당없이 스스로 혁명하려다 실패한 사례. 즉 혁명정당이 노동자 평의회를 통한 권력장악을 도외시하면 혁명에 반드시 실패하며 동시에 평의회는 혁명정당에 속한 정치적 선노의 지도가 없을 경우 혁명에 반드시 실패하게 됨.
7. 노동자 평의회의 성장과정: 러시아와 서구의 비교
- 노동자 평의회는 위기시에 대중의 의식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조직임. 러시아의 경우 1917년 2월 혁명시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가 정치권력의 맹아를 표현했으며 대중의 의식에 이미 정치-경제의 융함이 이루어져 10월에는 자본주의 경제의 강한 고리(대공장)와 국가권력의 동시적 전복이 가능했음
- 반면 서구의 경우 평의회의 발전과정 매우 더디게 진행되어 특정 부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 계급전체의 이익을 위한 정치투쟁으로 진화됨. 또한 평의회조직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미 서구에 확산된 개량주의적 조직(사민주의 정당과 노조)과의 투쟁이 근본적 수준에서 필연적임.
->Clydeside사례: 이곳에서 평의회활동은 주로 숙련공을 중심으로 그들의 특수이익에 대한 투쟁으로 이루짐. 반전투쟁이라는 정치투쟁을 자신의 투쟁과제로 하지않음
->Turin사례: 이곳의 평의회 활동은 공장내 모든 노동자를 조직함. 그러나 평의회 운동은 시경계를 넘지 못하여 결국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이 이르지 못함
->Berlin사례: 단지 이곳에서만 러시아에 비교할 이중권력 수준에 올라섬. 하지만 개량주의세력의 강고함으로 인해 노동자 병사 평의회는 독립된 활동을 방해받음.
- 결국 위의 사례로부터의 함의는 평의회운동을 지도할 혁명적 리더쉽의 문제로 집중됨
-> 러시아의 1917년 7월 상황을 보면 혁명적 리더쉽이 부재할시 소비에트는 정체되거나 고사됨. 당시 소비에트는 내부의 관료제로 인해서도 파괴될 수 있었음. 10월에 이르러 당-소비에트-대중은 서로 긴밀히 연계됨. 반면 서구에서는 이러한 연계가 이루어지지 못함. 결국 서구 평의회의 허약함은 혁명정당의 지도의 실패에 상당부분 기인함
-> 서구 평의회에 대한 혁명정당의 실패는 당이 변화하는 대중의식을 선도하지 못한 문제로 집중됨. 투쟁이 위기를 촉진시키더라도 대중의 의식은 일관된 사회주의관으로 무장되지 못하고 개량주의적 의식에 의해 혼란을 겪게됨. 단지 대중은 스스로의 투쟁경험을 통해 혁명적인 사회주의적 의식을 체득하게 됨. 서구 평의회 운동의 3가지 문제 즉 대중의 경제와 전쟁(정치)문제 인식의 괴리, 평의회와 결합치못한 당의 부적절한 혁명시기의 선택, 서구 3지역 각각의 독특한 특징은 러시아의 경우 혁명정당의 효과적 리더쉽에 의해 극복.
->볼쉐비키는
1. ‘평화, 빵 그리고 토지’라는 단순한 슬로건과 각 공장에 유포되는 당 신문을 통해 대중의 경제의식와 전쟁의식간의 괴리를 매꿈. 이 슬로간은 노동자와 농민을 연결시키는 기능도 함.
2.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볼쉐비키의 혁명시점은 7월 노동대중의 조급한 투쟁 억제를 통한 자본의 반혁명시도 빌미의 미제공 및 10월 대중의식 특히 공장위원회 노동자의 의식 변화에 맞추어 절묘했음. 이는 노동대중의 행동에 대한 볼쉐비키의 영향력있는 규율에 근거함.
3.당을 통한 페드로그라드와 농촌간의 연계(토지개혁정책)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전국화함.
8. 서구 유럽 평의회에 대한 이론적 함의
- 우리가 서구 유럽 평의회를 보아야 하는 이유
1.러시아에는 부재했던 강력한 개량주의 세력이 서구에 존재했으며 이러한 세력에 대한 투쟁과정에서 서구 노동자 평의회 운동이 성장함
2.러시아의 빠른 소비에트 성장과정에서 보여지지 않는 서구노동자평의회의 특징들이 있음
1) 대중의 불균등과 통일, 선노와 계급대중
- 노동자 평의회는 다양한 노동자 계급의 구성을 하나로 집중시킬 수 있음을 보여줌. 이러한 단결는 자동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의 행위를 촉진시키는 리더쉽에 의해 이루어짐.
- 그러나 문제는 평의회의 투쟁이 최소한의 낮은 수준에서의 통일이 아니라 높은 수준에의 통일을 요구한다는 점임. 이때 앞에 먼저 나선 선노그룹이 나머지를 끌고간다면 노동계급내에 분화 및 불균등성은 오히려 이점으로 전화됨.
2) 정치와 경제의 융합
- 노동자 평의회는 오히려 ‘전시국가자본주의화’에 의한 자본의 정치-경제통합을 대응수단으로하여 자본의 공격에 반격할 수 있음. 노동자가 계급으로 행동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할때만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권력이 파괴되어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음
- 사민주의자들은 정치경제분리를 원칙으로 하여 노동자 대중의 파업투쟁을 잠재움. 반면 생디칼리스트들은 ‘생산이 사회의 핵심이므로 자본주의 권력은 작업장만에서 장악’된다는 신조하에 파업을 지원하지만 정치투쟁을 멀리함.
- 그러나 노동자 평의회는 이 두가지 경향성의 문제를 해결가능함. 공개적인 계급 전쟁기간에는 순수한 경제적 투쟁은 없으며 노동자의 자신감에 의해 정치적 함의를 지니게 됨. 즉 노동자 평의회에 있어 정치는 의회주의 선거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자기 통치임.
3) 의식의 자발성 또는 주입
- 위기의 결과로 인해 단순한 경제적 투쟁은 기업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 국가기제로 향하게 됨. 이 과정에서 분파적 투쟁은 계급투쟁을 변화됨. 노동자 평의회는 이러한 투쟁의 성장과정에 적합한 조직형태임.
-그러나 노동자들은 실재 투쟁행위속에서도 개량주의적 의식을 지닐 수 있음. 따라서 이러한 과정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음. 이는 결국 대중과 독립적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정당의 선전에 의해 도입되야 함.
4) 조직이냐 정치냐
- 1915년부터 20년까지의 혁명을 위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짐
-> 스파르타쿠스단의 정치적 실험: 이들은 세밀한 조직화보다는 정치적 선전에 주력함.
-> 영국과 이태리의 실험: 조직적 완결성이 혁명을 보증하지 않음. 이지역에서는 평의회 조직의 민주주의를 물신화하며 이러한 조직원칙이 혁명의식을 저절로 탄생시킬 것으로 봄.
- 그간의 실험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노동자 평의회와 혁명정당간의 관계임. 즉 노동자 평의회의 국가권력 장악은 광범위한 혁명정당의 존재에 의존함. 혁명정당은 기존 역사의 경험을 종합하여 계급투쟁을 지도해야 함.
1. 현장 노동자에 대한 강조는 기본: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 관료주의적 반응으로 응답함. 혁명적 정치선노들은 작업장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자기해방과정을 알아야 함. 현장노동자의 자신감과 조직건설에 집중한다는 것은 단지 그 노조기제만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자신감을 증폭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임.
2. 분파적 경제투쟁으로부터 정치투쟁으로의 변화는 혁명적 시기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님: 개량주의자들은 경제투쟁의 수위를 자본주의가 허용하는 범위로 제한. 분파주의는 자신의 정치적 순수성이 오염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투쟁으로부터 회피. 혁명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모든 투쟁이슈의 해결방식을 노동자의 자신감을 증가시키는, 노동자의 자기활동으로 귀결시켜 제한된 경제투쟁을 계급투쟁으로 변화시켜야 함.
9. 마치며
- 20세기 전시기에 광범위하게 발생되었던 노동자 혁명과 노동자의 자주조직간에는 본질적인 유사성과 연계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였지만 자본주의 본성 그 자체라는 공통적 기원에 기인한다. 자본축적의 필요성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끊임없는 자본축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발생시키며 기존의 고정된 사회적 관계를 해체시키며 결국 위기로 귀결된다. 과거 전쟁터의 참호와 공기압축 선반은 당시에만 존재했던 것으로 알기쉽다. 하지만 그것은 왜곡된 방식으로 현재에도 재발할 수 있다.
- 현재 우리는 극소전자기술에 의해 추진되는 ‘제 2차 산업혁명’의 와중에 있다. 자본주의는 극복불가능한 위기 속에 있다. 1914년 그러한 위기는 제국주의적 전쟁을 유발시켰다. 현재 대량살상무기를 위한 경쟁은 1차대전 당시 그 무서운 ‘Dreadnought형 전함’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힘 또한 더욱 크게 성장하고 있다. 고르(Gorz)와 홉스바움(Hobsbawm)과 같은 학자의 ‘노동자 역할의 기각’이라는 과장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재 노동자의 집합적 잠재력은 1915-20년 당시의 힘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이는 아주 쉽게 증명된다. 영국에서 화이트 칼라의 비율이 증가되고 있지만(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을 노동자로 보며 노조에 가입하고 있음) 아직 천만의 육체노동자가 노동계급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금속산업의 경우 현재 노동자의 수는 1921년의 수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한두개의 대량생산 산업이나 유럽몇몇 지역만을 주목해서는 않된다. 오히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상파울로, 방콕 등을 보아야 한다.
-현재의 시기에 근본적인 선택문제는 로자룩셈부르크의 시대와 같이 ‘사회주의이냐 야만이냐’이다. 그러나 이제 그 대안은 좀 더 명확해 지고 있다. 이제 ‘야만’은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공멸이다. 사회주의는 현대기술의 기적을 인민대중의 욕구에 맞게 활용하며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근절시키기위한 기반으로 사용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현재의 사회주의운동는 이전 노동운동(1차대전 이후 발생한 소비에트와 평의회는 그 하나임)들에 비해 많은 잇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비참한 패배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최고점에 다다른 이후에야 혁명정당의 필요성을 깨달은 유럽 혁명가의 괘적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서는 않된다. 러시아의 경험을 준거로 하며 발생된 1915-20년사이의 서구혁명시도의 성공과 실패 역사는 현대자본주의가 어떻게 싸움을 걸고 결국 패배할 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다. 사회주의는 혁명적 정당이 건설되야 실현될 수 있다. 그 당은 반드시 노동자 평의회(노동자의 집합적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조직)에 기반하여 의회주의의 현혹을 대체하여야 한다.
노동자 평의회의 역사적, 구체적 연구전략을 고민하며
- 현재 노동자 평의회 연구의 필요성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남한을 포함하여 전세계적 수준에서 위기 속으로 돌진하고 있다. 과거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맑스의 경제위기와 필연적인 계급전쟁에 대한 예측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 의해 부정되었으며 단지 전통적인 의회민주주의적 길만이 변화를 주도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전세계적 수준에서 전면화된 신자유주의와 이에 대한 전세계 현장노동자의 저항은 ‘의회주의적 길’이 노동착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며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혁명적 변화의 과제를 다시금 제기하고 있다.
- 두 체제(의회주의-스탈린주의)에 대한 진정한 대안 ‘노동자 평의회’
이러한 결론은 몇몇의 사회사상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 노동자 농민은, 1918년 독일, 1956년 헝가리, 1972년 칠레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청사진’에 의해 혁명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기반하여 자본주의 위기가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중 민주주의’를 창조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평의회로 조직된 노동자 권력(러시아에서는 이를 ‘소비에트’라 칭함)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가장 큰 실질적 도전이었다. 따라서 이제 노동자 평의회라는 권력체는 다소 현상적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역으로 우리는 노동자 평의회의 전통을 반대하는 자들(반혁명세력, 개량주의자, 스탈린주의자)로 인한 자의적 재단과 모호성으로부터 그 진수와 구체적 속성을 재발견해야 한다.
- 러시아 혁명과 연계된 유럽 노동자 평의회의 한계와 그 의미
자본주의 혁명적 철폐의 필요성은 단지 노동자 자신의 활동과 조직을 통해 이루어질 뿐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이러한 결과을 이루어내기 위한 하나의 조직적 도구이다. 1차 세계대전 도중과 이후 유럽은 제국주의의 위기와 볼쉐비키 혁명에 맞물려 혁명적 활동의 만개를 경험하였다. 러시아, 이태리, 영국, 독일사례간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일은 혁명과정의 일반적 교훈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한 작업이다. 단순한 국가수준의 연구는 그 나라의 특수성에 의해서만 윤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기간의 영국사례의 연구들은 노조문제와 정치로부터의 수동적 도피로 결정되어 졌다. 대조적으로 독일의 사례의 연구들을 보면 맹목적인 정치 중심주의와 작업장 수준에서의 변화의 무관심으로 특징지워진다. 이러한 일국수준에 기반한 연구관점의 제한성은 일국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국경을 넘은 전 세계적 계급투쟁의 일부였는가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부터 노동자 국제주의의 첫걸음을 디딜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국제적 비교연구는 특히 1905-1920년 기간에 명확히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1차 세계대전이 전유럽 노동자 계급 투쟁 간의 많은 차이점을 제거해주었기 때문이다.
- 노동자 평의회 연구가 ‘소수화’된 현실적 원인
노동자 평의회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합법적인 정치영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람시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공장과 그 안에 있는 노동자 의식의 혼란-이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자신의 관철에 종속됨-속에서 그 배면(본질)을 보아야 한다. 이곳의 사회적 관계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이며, 이곳에서는 노동자와 관련하여 자유와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역사연구자에 있어 필연적인 문제가 봉착된다. 지배계급은 국가관료, 문서정리자, 출판업자 등 일군의 이데올로기 기제의 군대를 가져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논의 및 결정사항을 정리하고 유포시킨다. 반면 억압된 계급조직으로서의 노동자 평의회는 그들의 의사결정을 문서로 정리한 ‘의사진행록’이 거의 없다. 안정적인 유급 문서정리자의 부족과 역동하는 계급 투쟁과정에 있는 관계로 인해 현장노동활동가는 자신의 사상을 문서로 표현하여 남길 수 없었다. 1차대전 당시 평의회와 현장노동활동가조직은 당조직과 같이 여유를 두고 의사결정을 기록할 정식단위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노동자 평의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보 즉 현장노동자와 평의회 간부가 만나 토론한 장소, 그러한 만남의 정규성 정도, 참석률과 대표성의 정도 등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 때때로 이러한 정밀하고 세부적인 정보 부족은 우리로 하여금 평의회를 실체가 없는 조직으로 오인하겠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문서의 부족은 노동자의 자주활동의 증거로 인해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 결국 노동자 평의회는 실천을 위해 기획된 조직이었던 것이다.
- 사회이론연구소의 연구전략: ‘노동자평의회의 구체적 역사성을 드러내서 그 물신화된 상징을 전도하기’연구전략
1. 일단 우리는 러시아 혁명과 긴밀히 연계된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운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하고자 하였다.
2. 그런 후 당시 노동자 평의회 운동을 이론적으로 정교화시킨 코르쉬, 판네쿡, 호르터, 그람시, 폴 매틱의 글을 읽고 그들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하고자 하였다.
3. 현재 노동자 평의회와 관련하여 전문적으로 연구를 집중시킨 켈러, 스마트, 게르버, 실리아니, 글룩스타인, 바야트의 글을 읽었다. 그후 논의의 정점이 될 수 있는 노동자 평의회 자체의 작동방식, 그 조건(객관적 ,주체적 조건 모두), 당과 노조 그리고 평의회간의 관계, 유럽과 제 3세계간의 평의회운동의 비교 등을 토론하고자 하였다.
4. 앞서 살펴본 유럽 평의회운동의 특수성 그리고 그 이론적 표현을 숙지한 후 현재 남한에서 현장 노동자에 의해 제기되는 특수성과 쟁점을 확인하여 그 원인과 성장경로, 쟁점 등을 토론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은 아직 현실감각이 미흡한 연구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쟁점의 예각화와 현실화가 드러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장 노동자의 연구과정에 대한 실질적 결합이 필수적인 것 같다.
그간 우리팀의 ‘노동자평의회에 대한 연구결과’는 말 그대로 첫걸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첫걸음이 현재의 노동운동의 개량주의화 즉 민주노총의 경제주의화와 사민주의적 정치(의회주의의 길)의 전면화에 대한 대안조직적 논의를 촉발시키기를 바란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간 연구팀에서 진행시킨 책의 제목과 소목차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이후 남한에 의미있는 책자는 각고의 노력을 들여서 빠른 시일 내에 번역하여 ‘평의회’ 에 대한 구체적 지식획득과 실천적 대안발견의 즐거움을 공유하고자 한다.
<노동자 평의회 세미나의 읽을거리와 그 소목차>
Mattick, Paul (1978) 반볼쉐비키 공산주의(Anti-Boshevik Communism).
서론
1. 칼 카우츠키: 맑스부터 히틀러까지
2. 로자와 레닌
3. 레닌 전통
4. 볼쉐비즘과 스탈린니즘
5. 평의회 공산주의
6. 오토륄레와 독일 노동운동
7. 자발성과 조직
8. 칼 코르쉬: 혁명적 맑스주의에 대한 공헌
9. 인간주의와 사회주의
10. 맑스주의와 신-물리학
11. 독점자본
12. 노동자 통제
Kellner, Douglas (1977): 칼코르쉬: 혁명이론(Karl Korsch: Revolutuonary Theory).
1.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코르쉬의 길
2. 코르쉬와 공산주의
3. 맑스주의의 위기
4. 맑스주의와 사회화
5. 레닌과 소비에트 union
6. 맑스주의의 위기
7. 혁명적 실천의 모델
8. 파시즘과 반혁명
9. 코르쉬와 맑스주의
Smart, D. A. (ed. 1978) 판네쿡과 호르터의 맑시즘(Pannekoek and Gorter's Marxism)
- 안톤 판네쿡: 맑스주의 이론과 혁명 전술
- 헤르만 호르터: 프롤레타리아에 있어서의 민족주의의 기원
- 안톤 판네쿡: 세계혁명과 공산주의자 전술과 다음장 후기
- 헤르만 호르터: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조직
Gerber, John P. (1984): 안톤 판네쿡과 노동자의 자기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Anton Pannekoek and the Socialism of workers' self-emancipation)
- 노동자 평의회의 세계: 판네켁과 평의회 공산주의 이론
- 혁명과 현실: 전후에서의 평의회 이상.
Sirianni, Carmen (1982): 노동자 통제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소련의 경험을 중심으로 (Workers Control and Socialist Democracy - The Soviet Experience)
- 노동, 통제 그리고 이데올로기(Labor, Cotrol, and Ideology)
- 공장평의회와 노조(Factory Committees and Trade Union)
- 스탈린주의와 러시아 혁명(Stalinism and the Russian Revolution)
- 유럽에서의 노동자 통제: 비교사회학적 관점에서(Works' control in Europe: A Comparative Sociological Analysis)
Donny Gluckstein, 서구에서의 소비에트, 공장평의회, 이에 대한 의회주의 1915-1920
(The Western Soviets, Worker's Councils Versus Pariament 1915-1920)
1장. 페트로그라드에서의 소비에트와 혁명(Soviets and revolution in Petrograd)
2장. 위기속의 서구 제국주의(Western imperialism in crisis)
3장. 글레스고우: 기반다지기(Glasgow:Lying the foundations)
4장. 실패의 교훈(The lesson of failure)
5장. 전쟁속의 독일(Germany in war)
6장. 독일제국의 몰락(The Kaiser falls)
7장. 1918년 11월 혁명의 화학식(The revolutionary chemistry of November 1918)
8장. 반혁명과 혁명(Reaction and revolution)
9장. 이태리: 공장평의회와 그 이상의 것(Italy: Councils and beyond)
10장. 재평가와 대립(Re-assessment and confrontation)
11장. 결론(Conclusion)
Bayat, A. (1991) 노동의 정치와 권력 그리고 노동자통제와 자주관리의 국제주의적 관점(Work Politics and Power, An imternational perspective on workers' control and self-management)
- 유럽에서의 노동자 통제: 역사적 관점(Workers' control in Europe: an historical introduction)
- 노동자 통제에 관한 논쟁과 접근법(Workers' control: arguments and approaches)
- 제 3세계에서의 노동자통제에 관한 연구들(The study of Third World Workers' control.)
- 이중권력하의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in conditions of dual power)
- 제3세계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자 통제(workers' control in Third World socialist states)
- 제3세계 민중주의 정권과 노동자 참여(workers' participation and Third World populist regimes)
- 주변부 자본주의의 조건하에 노동자 참여의 전망
(Perpects for workers' participation under the normal conditions of peripheral capitalism)
-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신기술, 그리고 노동자 통제
(The division of labour, new technology and workers' contr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