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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 통일후 대륙에 설치한 9주, 5소경, 117군, 293현
고려사 지리지와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나타난 지명들을 고찰하면서
아래의 지도와 함께 대륙에서의 위치와 현재 그 지명의 변천을 살펴보자.
통일 신라 경덕왕 16년에
9주 5소경
1, 사벌주 - 상주 ---------- 10군, 30현
2, 삽량주 - 양주 - 김해소경 - 12군, 34현
3, 청주 - 강주(진주) ----- 11군, 27현
4, 한산주 - 한주 - 중원경 - 27군, 46현
5, 수약주 - 삭주 - 북원경 - 11군, 27현
6, 웅천주 - 웅주 - 서원경 - 13군, 29현
7, 하서주 - 명주 - 동원경 - 9군, 25현
(선덕여왕이 창설했으나 태종이 주로 만들었다가 고려 태조때 부활했다가 다시 명주가 되었다.)
8, 완산주 - 전주 - 남원경 - 10군, 31현
9, 무진주 - 무주 ---------- 14군, 44현
총 9주 5소경 117군 293현
고려 성종때
1, 관내도 - 왕경 개성부, 남경 류수관 양주, 광주목, 황주목, 안서 대도호부 해주
2, 중원도 - 충주목, 북원소경 원주, 청주목
3, 하남도 - 공주, 운주
4, 강남도 - 전주, 영주, 순주, 마주
5, 영남도 - 상주
6, 영동도 - 동경 류수관 경주, 금주
7, 산남도 - 진주
8, 해양도 - 라주, 광주, 정주, 승주, 패주, 단주, 랑주
9, 삭방도 -춘주(우수주), 동주(철원군), 화주, 명주(하서랑), 안변 도호부 등주, 함주 대도독부(합란부)
10. 패서도 - 서경 류수관 평양부, 안북 대도호부 녕주
총 10도, 12주 (후에 5도 양계)로 전국에 4경, 8목, 15부, 129군, 335현, 29진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1, 봉천성 - 4주, 10군, 22현 심주 - 1주, 1군 (광주, 화주,양주, 철주, 심주)
광주-사천성 광원, 화주-섬서성 화현, 양주-섬서성 한수유역, 철주- 이천,삭녕. 심주- 강화,교동(강소성 강도)
2, 사천성 - 4주, 10군, 28현 (공주, 홍주, 청주, 충주)
공주- 양자강 유역의 공안, 홍주- 양자강과 한수사이의 호북성 홍호유역, 청주- 사천성 성도, 충주- 중경시와 귀주성
3, 완남성 - 3주, 6군, 18현 (전주, 용주, 순주)
전주(완산)- 호남성, 광서성
4, 무남성 - 3주, 6군, 18현 (광주, 나주, 승주)
광주- 광동성 광주, 나주-강서성 라소산
5, 제주 - 1주, 2현
해남도
6, 영남성 - 3주, 9군, 18현 (달주, 가주, 경주)
하남성
7, 황서성 - 3주, 9군, 18현 (성주, 상주, 진주)
호북성
8, 열동성 - 3주, 6군, 12현 (원주, 춘주, 명주)
산서성, 하북성
9, 송해성 - 1경, 2주, 12군, 12현 (중경 개성부, 해주, 황주)
청해성,
10, 패서성 - 1경, 1주, 6군, 12현 (서경 평양부, 안주)
서경-섬서성 서안, 안주-감숙성 숙천
11, 청서성 - 3주, 14군, 2현 (영주, 의주, 강주)
영주-녕하회족자치주, 의주-감국성 난주, 강주-강계
12, 폐4군 - 4군
카자흐스탄(함주), 아프카니스탄, 기르기스탄(길주), 타지키스탄(영고탑), 우즈베키스탄(오랄)
13, 현도성 - 2주, 4군, 10현 (함주, 항주) 함주-함흥, 항주-북청
내몽고, 하북성
14, 만하성 - 2주, 8군 (경주, 회주)
신강위구르, 경주-경성, 회주-회령
총 12성 3경 34주 107군 172현
1, 상주목
상주 尙州는 원래 사벌국 沙伐國으로 신라 점해왕이 취하여 주를 삼았다. 법흥왕은 상주上州로 고쳐서 군주를 두었으며, 진흥왕은 주를 없애고 상락군 上洛郡으로, 경덕왕은 상주로 고쳤다.
고려 성종때 영남도에 소속되었으며 상락 上洛또는 상산 商山이라고 부르는 바 낙동강이 있고 공검이라는 큰 제방이 있다.
이 주에 소속된 군이 7개, 현이 17개 있으며 지사부가 2개이다.
위의 고려사 지리지의 내용을 보면 상주는 사벌국으로 고구려의 비사성이었으며, 上州, 上洛, 商山, 尙州로 변해왔으며 현재 지도에는 商洛과 商州라고 되어있다.
상주는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곳이다. 이 곳이 고구려의 평양성 이었던 대륙의 서경, 산동반도 동래에서 황하를 거슬러 올라 가다 보면 장안을 가로 막는 동쪽 관문이 즉 동관이 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장안을 지키는 첨험의 요새.
대부분 진군로를 남쪽 비사성을 향해 가는데 이곳이 낙수가 흐르는 상락 이며 고구려가 멸망한후 통일한 신라에 의해 상주로 지명이 바뀐 곳이다.
섬서성 상주이다.
고구려의 비사성 이었던 상주인데 한반도에 평양과 상주를 옮겨놓고 역사를 왜곡하려니 상주가 비사성 이었던 사실를 숨기고 있었다.
다음 지도를 보면 대륙의 섬서성에서 하남성 낙양을 향해서 洛水라는 강이 흐른다.
이 낙수의 상류를 上洛이라고 부르는데 지도에 그 지명이 商洛으로 표기 되어 있다.
이 곳이 상주임이 지도에 뚜렸이 나타나 있다. 고려사 지리지의 설명이 대단히 정확한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지도는 백제를 통합한 신라와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의 땅을 차지한 대진국 발해를 나타낸 지도이다.
당나라 당 태종 이세민은 고구려를 무리하게 침입하다가 양만춘 장군의 화살에 눈알을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입고는 그 후 4년동안 병상에서 신음하다가 서기649년 죽는다.
이때부터 당나라는 거의 신라의 제후국이 된다. 이세민의 후궁이었던 측전무후가 대 신라국의 후원하에 주로 나라 이름을 주라고 바꾸고 706년 죽을때까지 신라의 제후국으로 연명한다.
해동성국(689~926) 대진국 발해는
15세 259년을 누리면서
서쪽 경계는 모란의 동쪽을 철리(지금의 카자흐스탄)라고 하고,
동쪽으로는 흑수의 강변을 회원, 난하의 동쪽을 장령(대흥안령), 장령의 동쪽을 동평(동북평원),
남쪽으로는 서남쪽은 청해성 아랍달택산이 된 구월산 아사달 에서 서녕시가 된 암연현까지, 산서성에서는 강릉의 북이하(태원)까지,
동남은 등주와 래주까지(산동성)였고,
북으로는 염해, 나산, 갈사, 조나, 석혁, 남, 북우르(연해주에서 흑룡강 북쪽 알란고원까지)를 공략하여 제부를 두었다.
땅의 넓이 원폭 .9000리로 5경 60주 1군 38현이었다.
대진국 2대 광종 무황제 즉위하여 인안이라 개원하고 서쪽으로 거란과 경계를 정하니 오주목의 동쪽 10리에서 황수를 굽어 본다.
이해 개마, 구다, 흑수의 여러나라가 모두 신하가 될것을 청하며 공물을 바쳤다.
또 대장 장문휴를 보내 자사 위준을 죽이고, 등주와 동래를 취하여 성읍으로 삼다.
당나라 왕 융기가 노하여 군사를 보냈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듬해 수비장수 연충린이 말갈병과 함께 요서의 대산의 남쪽에서 크게 당나라 군사를 격파하였다.
당나라는 비밀히 신라와 약속하여 동남의 여러군과 읍을 급습하여 천정군까지 쳐들어 왔다.
이에 제는 조서를 내려 보병과 기병 2만을 보내 이를 격파 하였다.
이때 큰 눈으로 신라와 당의 군사는 동사자가 아주 많았다. 이에 추격하여 하서의 이하에 이르러 국계를 정하니, 지금 강릉의 북이하가 그것이다.
해주 암연연은 동쪽으로 신라와 접했는데 암연은 지금의 옹진이다.
이로부터 신라는 해마다 입공하고 임진강 이북의 제성은 모조리 대진국에 속하였다.
이 대진국과 대륙을 양분하던 신라의 위용을 보라.
위의 지도상 신라의 영토에서 상주를 확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지도를 자세히 보면, 붉은색 동그라미에 상주라고 되어 있다. 또한 낙수의 상류라는 의미의 상락이라고 지명이 되어 있다.
그 위의 장안이 고구려의 평양성이다.
상주에 소속된 군, 현들에 문경군과 용궁군이 있는데 문경은 문희라고도부르고 용궁군에는 하풍진이 있다고 고려사 지리지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상주 북동쪽에 그 문희시와 하진이 있다.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이다.
문경군은 원래 신라의 관문현으로 관현또는 고사갈이성이라고도 하는데 경덕왕은 관산으로 고쳐서 고녕군의 소속현이 되었고, 고려초에 문희군으로 고쳤다. 공양왕2년에는 감무를 두고 가은현을 이 군에 소속시켰다. 이 군에 길이 험한 요해처가 세곳이 있는데 서쪽에 초호와 이화현이 있고, 남쪽에 관갑천이 있다.
이 기록이 매우 중요하다.
위의 지도는 대륙의 섬서성으로 고구려의 평양성을 흐르는 대동강이 황하와 합류하는곳에 관갑천串岬川이 있다.
고려사 지리지의 대동강을 설명하는 기록에 " 대동강 즉, 패수를 말하는데 왕성강이라고도 한다. 이 강의 하류는 궤진익수氿津溺水로 되어 있다." 라고 했는데, 두 단어의 특징이 황하에 대동강 물이 꿰져 들어간다는 표현이다.
바로 위의 지도 대륙의 섬서성의 관갑천이 궤진약수이다.
2. 북원경 원주
원주는 원래 고구려의 平原군으로 신라 문무왕은 이 곳에 北原小京을 설치하였다. 고려 태조 23년에 원주로 고쳤고, 그후에 정원도호부로 승격했으며, 충렬왕 17년(1291)에는 합단의 침략군을 방어함에 공로를 인정받아 익흥도호부로 34년에는 원주목이 되었다. 충선왕 2년 전국의 목이 페지되면서 성안부로, 공민왕 2년에 왕의 태를 치악산에 묻고다시 원주목으로 고치다. 平凉京또는 平凉(성종이 정한 명칭)이라고도 부르며 본주에 소속된 군이 2개 현이 5개 있다. -고려사 지리지-
아래지도는 대륙의 감숙성 甘肅省 지도이다. 지도에 평량이란 지명이 보인다.
대륙의 長安성 (서안西安 ; 서경 유수관 평양 西京 留守官 平壤, 서경西京, 서도 西都, 일명 호경鎬京)을시작으로 실크로드의 길을 따라 가면 첫번째 만나는 감숙성의 고원지대가 평량平凉이다.
(세조실록지리지의 숙천 도호부 肅川 都護府 이다.)
이곳이 후고구려의 양길이 나라를 세웠던 북원北原이다. 지금도 고원 固原, 진원 鎭原, 해원 海原이라는 도시들이 있어 과연 원주 原州라 부를곳이며 원주의 또다른 이름인 평량平凉이라는 이름이 지도상에 뚜렸이 표기되어 있다.
한반도의 원주는 치악산 곁의 작은 군사도시일 뿐이다.
고려사의 기록에 원주뿐이 아니라 중원경인 충주까지 고구려의 강역 이었다고 한다.
한반도의 역사와는 동떨어진 이름뿐인 원주와
이곳의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원주인 평량을 감히 비교할수있겠는가.
게다가 조선의 숙천도호부가 된 원주는 그 지역이 감숙성 전체에 해당된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려사 지리지에 소개된 원주의 소속 군,현들이
아직도 감숙성에 존재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려사지리지의 내용을 살펴보자-
원주 原州에 소속된 군이 2개, 현이 5개나 된다.
1) 영월寧越군 ; 본래 고구려의 내생 柰生군으로
신라 경덕왕이 내성 柰城군으로 고쳤다.
공민왕21년(1372년) 이곳 태생 연달마실리 延達麻實里가
원사 院使로서 명나라에 있으면서 우리 고려에 공로가 있었다 하여
지군사 知郡事로 승격시켰다.
-주- 아래 감숙성의 지도에 보면 감숙성 평량현과 경양현주위로
회령 會寧, 정령 靜寧, 령현 寧縣, 정령 正寧, 령원 寧遠, 중령 中寧이란,
도시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이 영월 寧越군이다.
이 령寧 이란 글자의 뜻은 편안할 령으로 임금이 계신 도읍지의 안녕을 책임 지는곳 이란 뜻으로 실크로드를 통한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던곳을 의미한다.
또한 이곳 감숙성이 지도상으로 보면 길다란 이유는 아래로 해발 5천미터가 넘는 기련산맥과 북으로 고비사막 사이로 난 유일한 통로로 실크로드의 회랑이라 불리는 곳이다.
2) 제주 堤州 ; 본래 고구려의 내토 奈吐군으로
신라 경덕왕은 내제 奈堤군으로 고쳤다.
의원 義原또는 의천 義川이라 부른다.
3) 평창 平昌현 ; 본래고구려의 욱오郁烏현(=牛烏)으로
신라경덕왕은 백오白烏라고 고쳤다. 고려에와서 평창平昌이라고 고쳤다.
로산魯山이라고도 부른다.
4) 단산 丹山현 ; 본래 고구려의 적산 赤山현 인데
고려초 단산으로 고쳤고, 충숙왕 5년(1318년) 지단양군사 知丹陽郡事로 승격시켰다.
죽령산 竹嶺山이 있다.
5) 주천 酒泉 현 ; 놀라운 이름이다.
대륙의 우주 로켓 발사기지가 있는곳이다.
대륙의 지명과 우리역사의기록인 고려사 지리지의기록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감숙성에 주천현이 있다. 감숙성 돈황에서 가욕관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지역이 주천 酒川현 이다.
이 지역 원주의 크기가 한반도 만한 크기이며, 주천현의 크기가 돈황 석굴까지로 남한 만한 면적이다.
지도를 살펴보라 .
이번에 이곳 우주발사기지에서 우주정거장 천궁 1호가 발사 되었다.
대륙의 감숙성 주천현. 이 현의 크기가 한반도의 경상남북도 만 한 크기이며 이곳에
대륙의 실크로드의 유적 중의 하나인 돈황석굴이 있다.
이 돈황이 있는 지역의 군,현의 이름이 주천(酒川)이고, 주천을 포함한 전체 감숙성의 옛 명칭이 북원경 원주인 평량(平凉)이며 그 곳이 지금 대륙의 우주로켓 발사기지가 있는 곳이다.
다음지도는 대륙의 감숙성 주천인데 한반도의 영월군 주천면과 비교해 보라.
주천에서 감숙성 기련산을 따라 내려 오다 보면 산단 山丹시를 만난다. 단산 丹山을 꺼꾸로 읽었다.
그다음이 금창 金昌 시 이다 . 바로 붙어 영창 永昌이다. 이곳이 평창 平昌이다. 그 다음이 백은 白銀시다.
백오白烏다.
이 지역이 바로 고려의 원주이며, 신라의 9주 5소경의 하나인 북원경 원주인 것이다.
3, 중원경 충주와 서원경 청주
충주목은 원래 고구려의 국원성인데 신라가 빼앗아 진흥왕은 소경을 두었고, 경덕왕은 중원경으로 고쳤다. 고려 성종2년 전국에 12개의 목을 설치할때 충주목이 되었다. 14년에는 12개 주에 절도사를 두면서 본 주는 창화군이라고 했으며, 중원도를 만들었다. 현종 9년 전국의 8목중의 하나였고, 고종 41년 (1254) 국원경으로 승격되었다. 楊津溟所와 楊津衍所가 있으며 大原, 또는 예성이라고도 부른다. -고려사 지리지-
다음의 지도는 대륙의 사천성과 중원경인 중경시 의 지도이다.
中京을 重慶이라 표기해놓았다. 배꼽을 잡을 일이다. 이렇게 역사를 왜곡해도 되는가? 발음은 그대로인데 표기만 다르면 다른 역사가 되는것인가?
그 옆의 사천성의 서원경 청주가 있었던 곳은 성도라는 도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발음이 문제이다. 중경를 충칭, 성도를 청두라고 그들이 발음한다.
바로 충주와 청주인 것이다.
사천성이란 지금의 충청도라고 한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의 기록과 부합된다.
또한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에 楊津溟所(명소-강물이 아주 깊은 곳)와 楊津衍所(연소-강물이 아주 넓어지는 곳)가 있다고 했는데, 이 양진이 양쯔강이다. (양진- 양찐 - 양쯔)
원래 진이 강이란 뜻이니 양쯔강이 되니 고려사의 기록 양진이 맞는 것이다.
우리 충청도인 사천성에 양쯔강이 흐른다고 분명히 고려사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