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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나타난 대륙의 우리 역사 지명 - 12성(省)
(省-현재 중국의 지방 행정 구획의 이름인데 조선시대때 우리의 행정 구획 명칭이 성(省)이었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경세유표 제3권 천관수제 군현분예
경기(京畿)를 봉천성(奉天省)이라 하고, 다음 남쪽은 사천성(泗川省), 그 다음 남쪽은 완남성(完南省),
또 남쪽은 무남성(武南省)이라 한다. 동남쪽은 영남성(嶺南省)이라 하고, 그 서쪽은 황서성(潢西省)이라 한다.
서울에서 동쪽은 열동성(洌東省), 서울에서 서쪽은 송해성(松海省)이라 하고, 또 서쪽은 패서성(浿西省),
또 서쪽은 청서성(淸西省)이라 한다. 서울에서 북쪽은 현도성(玄菟省), 또 북쪽은 만하성(滿河省)이라 하여
총 12성으로 한다.
경기는 경계를 예전처럼 분할하는데, 오직 낭천, 금성, 금화, 철원, 평강, 이천, 안협등 열수 서쪽,
대수 동쪽에 있는 일곱 고을은 경기에 붙이고, 양근, 지평, 제천등 열수 동쪽에 있는 세 고을은 열동성에 붙인다.
또 송경으로 황해 포정사를 삼고, 장단, 마전, 풍덕등 세 고을을 송경으로 붙여서 대수를 경계로 한다.
열수는 황하의 하류가 이른바 (구하지지)라고 하여 아홉 갈래로 갈라져서 황해바다로 들어 가기 때문에
생긴 말로 "옛날 황하의 하류"를 말하는 것이다.
그 황하의 하류지역인 하남성의 서쪽, 섬서성이 조선시대에 경기인 봉천성이었다.
그리고 서울의 서쪽에 대수를 경계로 송해성이 있다.
사천성이란 지금의 충청도이다.
그 강역은 모두 예전대로이나 오직 제천 한 고을을 열동성에다 고쳐 붙였다.
지금 금강을 옛 사기에 사비하라고 한 까닭으로 성 명칭을 사천성이라고 했다.
이 성은 도성에 아주 가까운 울타리이므로 웅대 했으면 해서 깍거나 가르지 않았다.
충청도를 사천성이라고 한 점이 현 대륙의 지명과 잘맞아 떨어진다.
사천성 성도를 청두, 중경을 충칭이라 부르는데 이 곳이 청주와 충주로 지금 현지 지명이다.
사천성 성도에 고려 태조 왕건의 묘가 거대한 유적으로 남아 있다.
인터넷 - 사천성 왕건묘 참조
완남성ㆍ무남성은 지금의 전라도다.
이 도(道)의 동쪽에는 잔수(潺水)가 있고 복판에는 노령(蘆嶺)이 가로 뻗쳐서 남북 한계와 똑같다.
이번에 잔수 이동 노령 이북은 완남성에 붙이고 잔수 이서 노령 이남을 잘라서 무남성으로 만들었다.
잔수 동쪽에 있는것은 구례, 남원, 운봉, 임실이고,
노령 북쪽에 있는것은 순창, 정읍, 고창, 무창인데 여기서 부터 북쪽은 모두 완남성에 붙였다.
무남성의 포정사(布政司)는 광주에 있음이 마땅하며 광주는 옛날 무주이다.
영남성ㆍ황서성이란 지금의 경상도이다. 이 도에 황수(潢水)가 있어, 남쪽으로 흐르는데,
물의 근원 가운데 하나는 태백산에서 나오고 하나는 소백산에서 나온다. 소백산을 따라 내려오면서,
황수 동쪽에 있는 것을 영남성으로 하고 황수 서편에 있는 것을 황서성이라 했다. ---
황수, 즉 황하의 서쪽이 현재 지명은 섬서성이며, 황수의 동쪽과 남쪽이 영남성으로 지금은 하남성인데 그 곳에
낙수라는 강이 낙양을 향하여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지역을 낙동이라 부른다.
그리고 낙양의 서쪽을 낙서라고 한다.
황하같이 수만리를 흐르는 거대한 강은 그 이름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 황하의 상류는 청해성에서 시작되는데
그 지역은 청수, 청하, 마자수또는 압록이라고 부르며,
감숙성을 지나면서 부터는 내몽고를 향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이 지역이 영하 회족자치주인데 겨울이 되면 북쪽인 하류(내몽고)가 먼저 얼어붙는다.
봄이 되면서 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따둣한 남쪽이 먼저 얼음이 녹으면서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는 녹은 물이 범람 하면서 홍수가 발생한다.
이 지역이 광범위한 진흙 벌판으로 변해 버리는 요택이란 곳이다.
바로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략 했다가 양만춘 장군과의 안시성 전투에서 왼쪽 눈알에 화살을 관통당하는
중상을 입고 도망하면서 고생한 진흙탕 길 로 유명한 요택이란 곳이다.
요동 땅에서 이러한 지형은 이 곳 뿐이다. 황하의 북안 오르도스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황하의 흐름은 다시 횡으로 흐른다. 횡강이란 이름이 붙었다.
횡강을 지나면 황하의 흐름은 다시 남쪽으로 직하한다.
바로 섬서성과 산서성사이의 흐름으로 이 유역에서는 황토가 유입되면서 황하는 누렇게 변한다.
즉, 황수라는 이름을 얻는다. 황하는 섬서성 중방지방에서는 ㄴ자로 꺽긴다. 황하의 흐름을 한가지로 표현하면
활궁자로 꺽끼어 흘러 간다(弓).
이 황하의 하류 지역인 하남성에서는 낙수와 물길이 합쳐지는데 이 낙양의 동쪽을 낙동이라 한다.
드디어 하류에 당도 해서는 아홉 갈래로 갈라져 바다로 들어 간다고 구하지지라고 하는데 이것이 열수 이다.
열동성(洌東省)이란 지금의 강원도이다.
그 강역은 예전대로 하되 오직 낭천, 금성등 열수 서쪽 고을은 경기에 옮겨 붙이고
경기의 양근, 지평 두 고을과 충청도의 제천 한 고을을 본성에 옮겨다 붙인것이 조금 다르다.
이 성의 영동쪽 아홉고을은 (북쪽 흡곡에서 남쪽으로 평해까지) 본래 현도의 남부이다.
그 후 금와의 아버지, 해부루가 예 지역에서 동쪽으로 가섭원에 옮겨 왔는데,
가섭원이란 하서량이고 지금의 강릉이다.
열동성의 영동쪽 아홉고을이 현도의 남부라고 하였다.
대륙의 현재 북경지방이 현도이다.
하서랑인 산서성 태원이 동원경이고 조선의 강릉江陵이 되었다.
강릉이란 강의 구릉으로 황하라는 거대한 강이 만든 구릉이 강릉이다.
아무리 갔다 붙일 곳이 없다고 하지만 아무렇게나 바닷가에 만들어 놓을 곳이 아니다.
한반도의 지명은 도대체가 엉망이다. 우리 조상님들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동서남북도 모른다는 말인가?
한반도 저 구석의 경주를 동경이라 부르고 평양을 서경이라 했다는 것이,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서울을 4곳이나 둔
고려의 행정구역 명칭은 도대체가 한반도에는 들어 맞지가 않는것이다.
대륙에서 지금의 서안이 서경이며 평양이었고, 낙양이 동경이며 경주였던 것이다.
고려사 지리지에 서경유수관 평양, 동경유수관 경주로 분명히 나온다.
그리고 남경유수관 양주인 것이다.
게다가 皇都 개경까지 4개의 서울을 가진 大高麗國 이었던 것이다.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대 제국으로 징기스칸의 원제국 하고도 끝까지 싸워 100년 만에 원이 먼저 멸망할 때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거대한 대륙 중원 땅에 버티고 있던 나라가 고려 였다.
송해성(松海省)이란 지금의 황해도이다.
해주는 궁벽지게 한 모퉁이에 있고, 송경은 다만 성 하나만 관할한다.
위치가 궁벽지면 명령이迃回하고, 관할이 작으면 권세가 약하다.
그리하여 西路의 藩屛으로 두 곳을 다 믿을수 없으니 송경을 황해 감영으로 해야 한다.
패서성(浿西省)과 청서성(淸西省)은 지금의 평안도이다.
이 도는 중앙에 적유령(狄踰嶺ㆍ江界 남쪽 경계)이 있는데, 영 남쪽은 곧 청수(淸水)가 나오는 곳이고,
영 북쪽은 곧 독수(秃水)가 나오는 곳이다.
설한령(薛罕嶺) 산맥이 서쪽으로 나가서 적유령이 되고 또 서쪽으로 극성령(棘城嶺 : 熙川 서북쪽에 있다)
이 되었는데, 가로뻗쳐서 남북의 큰 관(關)이 되었다.
지금은 적유령 남쪽 청수 동쪽에 있는 것은 패서성에 붙이고,
적유령 북쪽 청수 서쪽에 있는 것은 잘라서 청서성으로 만들려 한다.
생각건대, 평안 한 도가 본래 청남(淸南)ㆍ청북(淸北)으로 갈라져 있는데,
두 성으로 가른다는 것은 내가 처음 말한 것이 아니다. --
청해성에서 발원한 황하의 상류를 청수라고 하였고, 현재 대륙의 청해성과 감숙성 사이의 기련산맥을
적유령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청해성은 조선의 청서성이고 감숙성은 패서성이며 숙천도호부가 된다.
생각건대, 폐4군(廢四郡)이란 무창ㆍ여연ㆍ우예ㆍ자성이다.
네 고을의 지역이 거의 천 리가 넘어서 지금 황해도와 비교하여도 곱절이 넘는다. --
내가 일찍이 폐4군의(廢四郡議)를 지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었다.
“그윽이 압록강의 형세를 보건대,
4군 이서(以西)로부터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고을이 된 것이 위원(渭原)ㆍ초산(楚山) 등 일곱 고을이고,
4군 이동(印)으로 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을이 된 것이 삼수와 갑산이다.
압록강 물은 남에서 북으로 여연에 이르고, 또 꺾여서 남쪽으로 흐른다. 지금 북쪽으로 매우 불거져나간
지역으로서,
대략 지대가 같은 곳을 논한다면 위원ㆍ갑산은 시위[弦]가 되고, 4군은 활이 된다.
압록강의 물은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는 기록이다. 여연에 이르러 또 꺽기어 남쪽으로 흐른다.
황하의 흐름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대륙의 지도에서 황하의 흐름을 보라.
현도성과 만하성(滿河省)이란 지금의 함경도이다.
이 도는 한복판에 마천령(摩天嶺)이 있는데, 영(嶺)의 큰 등마루가 바로 장백산(長白山)큰 줄기에 닿아 있으므로
영 이남을 남도(南道)라 하고, 영 이북을 북도라 했다. 이제 이것을 따라 나누어 두 성으로 만들었다.
남성(南省)은 단천(端川)에서 그치고 북성(北省)은 길주(吉州)에서 시작한다.
여기부터 북쪽으로 큰 등성이의 서쪽에 있는 것은 현도성에 붙이고 동쪽에 있는 것은 만하성에 붙인다.
현도는
만하성 6진(鎭)은 본래 북옥저(北沃沮) 지역이었는데 오랜 세월 동안 말갈(靺鞨)이 점거(占據)해 있었다.
발해(渤海)가 번성할 때에는 그 지역을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로 삼았고,
또는 책성부(柵城府)라 하여 경(慶)ㆍ염(鹽)ㆍ목(穆)ㆍ하(賀) 네 고을을 영솔했다.
당(唐)나라 정원(貞元) 2년(신라 元聖王 2년 786)에 발해 문왕(文王) 흠무(欽茂)가 상경(上京)에서 동남쪽으로
도읍을 옮겨 동경(東京 :《輿地勝覽》에는 南京으로 되어 있다)에다 정했는데 동경이란 지금의
행영(行營)이 혹 그 지역인가 한다.
그 후 발해가 망하자 그 지역을 야인(野人)이 몽땅 차지해서 자주 변경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세종과 세조가 이를 정벌하고, 경략하여 겨우 경리하여 만하 이남이 드디어 우리 판도에 들어 오게 되었다.
그러나 기후가 아주 다르며, 지방 풍속이 우둔하여 이 시애와 이 징옥등이 한번 깃발을 휘두르며 난리를
일으키자, 백성이 쏠리듯 쫒았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팔도 와는 사뭇 다르다.
조선은 명나라가 멸망한 후 대륙을 온통 지배했음을 알 수 있다.
1, 봉천성 - 4주, 10군, 22현 심주 - 1주, 1군 (광주, 화주,양주, 철주, 심주)
광주-사천성 광원, 화주-섬서성 화현, 양주-섬서성 한수유역, 철주- 이천,삭녕. 심주- 강화,교동(강소성 강도)
으로 대륙의 섬서성과 호북성 그리고 사천성 북부가 봉천성이다.
2, 사천성 - 4주, 10군, 28현 (공주, 홍주, 청주, 충주)
공주- 양자강 유역의 공안, 홍주- 양자강과 한수사이의 호북성 홍호유역, 청주- 사천성 성도, 충주- 중경시와 귀주성
으로 사천성과 호북성, 중경시와 귀주성 지역이 사천성이다.
3, 완남성 - 3주, 6군, 18현 (전주, 용주, 순주)
전주(완산)- 호남성, 광서성 지역.
4, 무남성 - 3주, 6군, 18현 (광주, 나주, 승주)
광주- 광동성 광주, 나주-강서성 라소산
5, 제주 - 1주, 2현
산동성이다.
6, 영남성 - 3주, 9군, 18현 (달주, 가주, 경주)
하남성과 강소성 안휘성, 강소성 지역이다.
7, 황서성 - 3주, 9군, 18현 (성주, 상주, 진주)
호북성.과 호남성 지역이다.
8, 열동성 - 3주, 6군, 12현 (원주, 춘주, 명주)
산서성, 하북성 지역이다.
9, 송해성 - 1경, 2주, 12군, 12현 (중경 개성부, 해주, 황주)
청해성,
10, 패서성 - 1경, 1주, 6군, 12현 (서경 평양부, 안주)
서경-섬서성 서안, 안주-감숙성 숙천
11, 청서성 - 3주, 14군, 2현 (영주, 의주, 강주)
영주-녕하회족자치주, 의주-감국성 난주, 강주-강계
12, 폐4군 - 4군 - 무창, 여연, 우예, 자성
카자흐스탄(함주), 아프카니스탄, 기르기스탄(길주), 타지키스탄(영고탑), 우즈베키스탄(오랄)
13, 현도성 - 2주, 4군, 10현 (함주, 항주) 함주-함흥, 항주-북청
내몽고, 하북성,
14, 만하성 - 2주, 8군 (경주, 회주)
신강위구르, 경주-경성, 회주-회령
총 12성 3경 34주 107군 172현
다음은 대륙의 있었던 조선시대의 12성의 위치를 나타 내었고, 확대한 지도에서는 각 지역을 자세히 설명한다.
경기지역-봉천성-우리 조선의 수도를 장안으로 불렀다. 지금 섬서성 서안의 이름이 장안성이다.
사천성 - 그 남쪽을 사천성이라 했다. 대륙의 지도에서 보면 사천성에 흐르는 강이 양쯔강(揚子江)이다.
이 양쯔강을 우리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에는 양진楊津 이라고 한다.
이 양진에서 유래된 도시가 양주이다.
그 양자강이 사천성 지역을 흐를 때의 이름이 금사강이다.
즉, 백제의 강 사비하라고 불렀던 금강이다.
지금도 대륙의 티벳에서 발원하여 운남성과 사천성을 지나고 중경시를 거치고,
백제성이 있던 곳 무협을 지나서 한수와 양자강이 만나 합쳐지는 홍호와 무한시를 지나고,
황산 유역을 지나 고려의 몽고 침입때 수도였던 강도를 지나면 양자강 하구 해구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거대한 강의 각 지역의 이름이 티벳의 발원지에서는 통천하, 운남성을 거칠때는 려강, 사천성에서는 금사강,
황산유역에서는 황산강이라고 부르며, 금사강의 또 다른 이름이 사비하인 것이다.
옛 사기에 사비하라고 한 까닭에 사천성이라고 했다.
완남성 -전주는 원래 백제의 완산이다.
사천성 남쪽에 호남성과 광서성 경계에 지금도 전주라는 도시가 있다.
다음지도를 보면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여행지 계림 바로 위에 전주라는 도시가 있다.
그 남쪽을 무남성- 지금은 광동성, 광서성이라 부른다. 무주가 광주로 바뀌어서 무남성이 광동, 광서성이 되었다.
그 완남성과 무남성을 가르는 산맥의 현재 지명이 남령산맥인데 옛 이름이 노령이란 것을 알았다.
경기의 동남쪽이 영남성, 그 서쪽이 황서성이라고 했다.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을 황수라고 했다. 지금 흐르는 강의 이름은 황하이다.
그 황하의 서쪽을 황서성(섬서성)이라고 하고 황수의 동쪽, 태행산맥인 대관령 남쪽을 영남성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동쪽은 열동성이라 했다. 열동성에 원주와 춘주와 명주가 소속되어 있다.
열수-구하지지-황하의 하류가 아홉 갈래로 갈라져 바다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생긴말이다.
황하유역이 조선의 땅인 것을 증명하는 지명이 열수이다.
단군조선에서는 이 지역을 열양이라고 불렀다. 황하유역이 우리의 터전임을 알수 있다.
북원경 원주는 평량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의 감숙성 평량이다.
춘주는 원래 맥국인데 우수주, 또는 삭주로 불리우며 지금 산서성 대동 서남에 삭주시가 있다.
위의 지도는 황하의 동쪽, 태행산맥 서쪽의 지도인데 태원 북쪽에 오대산이 있는것을 찾아보라.
이곳의 가장 큰 도시의 이름이 태원太原이다. 이 클 태자는 동쪽을 의미한다. 즉 이 곳이 東原京 이다.
송해성은 지금의 황해도이다.
"해주는 궁벽지게 한 모퉁이에 있고, 송경은 다만 성 하나만 관할한다. 위치가 궁벽지면 명령이 迃回하고,
관할이 작으면 권세가 약하다. 그리하여 西路의 藩屛으로 두 곳을 다 믿을수 없으니 송경을 황해 감영으로 해야 한다."
여기로 난 길이 실크로드로 또한 외적의 침입로 이기도 한 서쪽으로 난 길,
한반도에서 서울의 서쪽에는 황해바다가 있을 뿐이다.
해주는 우리 역사 지리에서 아주 심하게 왜곡된 지역중의 하나인데 해주의 역사를 알아보자.
안서 대도호부 해주(安西 大都護府 海州)
안서 대도호부 해주는 원래 고구려의 내미홀(內米忽)(지성池城 또는 장지長池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은 폭지군(瀑池郡)으로 바꾸었다.
고려 태조는 이 군을 해주라고 부르고, 성종 2년 처음으로 전국에 12개의 목을 설치 했을 때 그 중 하나가 되었으며,
14년 12개 주에 절도사를 두면서 우신책군 이라 부르고
좌신책군 양주(楊州)와 함께 서울을 지키는 좌, 우 2개의 방어선의 하나가 되었다.
대녕서해(大寧西海) (성종이 정한 명칭이다,) 또는 고죽(孤竹)이라고도 부른다.
수양산, 대수압도, 소수압도, 연평도, 롱매도등이 있으며
이 주에 소속된 현이 3개 관할하에 방어군이 1개, 현령관이 1개, 진이 1개 있다.
대륙의 청해성 지도이다 .
중국에서 제작한 교통지도로 청해호수 옆에 청해진이 있어야 할 곳에 서해진이 있다.
이 곳 청해호에 서해진으로 표기된 현재 대륙의 지명을 잘 생각 해보자.
청해성에 있는 진의 이름이 왜 서해진일까.
고려때 이 지역을 서해도로 불렀음을 상고해 볼때 왜 그들이 청해진을 서해진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역사 왜곡의 슬픈 현장이다. 그들조차 청해진을 청해진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경세유표 제11권 지관 수제(地官修制) 부공제(賦貢制) 5
황해도 지방에 땅이 갑자기 꺼져서 길은 못이 된 곳이 있는데, 그 깊이는 측량할 수 없고 그 맛은 쓰고 매우 고약하다.
이것은 모두 염정(鹽井) 지역이건만 조사하지 않으니 애석한 일이다.
심괄(沈括)의 《필담(筆談)》에, “해주 염택(解州鹽澤)은 사방이 120리이다 오랜 장마에 사방 산의 물이 모두 못에
쏟아져들어와도 일찍이 넘치지 않았고, 큰 가뭄에도 일찍이 마르지 않았다.
간수(滷) 빛이 새빨갛고 판천(版泉)의 하류에 있는데 민간에서는 치우(蚩尤)의 피라 부른다.
오직 중간에 샘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감천(甘泉)이며, 이 물을 발견한 다음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북쪽에 요소수(堯梢水)가 있는데, 무함하(巫咸河)라 이르기도 한다.
매우 짠 물이며, 감천을 섞지 않으면 소금이 되지 않고, 무함수를 넣으면 소금이 다시 엉기지 않는 까닭에 사람들이
무함하(無鹹河)라 부르면서 염택(鹽澤)에 해가 되므로 큰 둑을 쌓아 막아서 도둑을 방비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했다.
그 이치를 궁구하면 무함은 탁(濁)한 물인데 간수 속에 들어가면 해감이 간수 결에 가라앉아서
소금이 되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여조겸(呂祖謙)은 “소금의 종류가 매우 많다. 바다에서 나고 우물에서 나고 못에서도 나는데, 이 세 가지 외에도 나는 곳이 더 있다.
하북(河北)에는 노지(鹵地 : 소금이 나는 땅)가 있는데 이것은 땅에서 나는 것이고, 영강군(永康軍)에서는 소금이 벼랑에서 나는데
이것은 산에서 나는 것이며, 또 돌에서 나는 것, 나무에서 나는 것이 있어, 종류가 하나가 아니다.” 하였다.
또 “남방의 소금은 전적으로 바다에서 생산되고 북방은 전적으로 해지(解池)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남방 소금을 관리하는 데에 올바른 사람만 얻으면 그 해가 적지만,
오직 북방 해지 소금은 글안(契丹)과 서하(西夏) 소금이 서로 끼여들어서 해지 소금의 이(利)를 빼앗는다.
대체로 해지 소금 맛이 서하 소금 맛보다 못하므로 연변(沿邊)에는 은밀히 두 나라 소금을 파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하였다.
해주에 소금호수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반도 해주에는 소금호수가 없다. 대륙의 청해성 청해호를 말하는것이다.
그래서 이 곳의 지명이 옛 부터 염주鹽州 였다. 천연적으로 소금이 무진장 나오는 바다와 같은 곳.
그후 현종4년 안서 대 도호부로 고쳤다가 고종34년 해주목으로 하였다.
대녕 서해 大寧 西海(성종 이 정한 명칭) 또는 고죽孤竹이라 부른다.
이 곳 청해성의 중심지가 서녕西寧 이란 도시이다.
서녕은 대녕서해란 뜻이다. 서녕을 대녕서해라고 부른다고 알려준 우리의 역사기록 고려사 지리지에 감사 드린다.
또, 이곳이 신라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건설하여 실크로드를 장악한 중심지 임을 지도를 통해 알수 있다.
황하의 상류지역, 감숙성 난주를 통해 황하를 건너면 만나는 감숙성 회랑지대,
남쪽의 기련산맥과 북의 고비사막 사이로 난 길다란 통로 실크로드 길을 장악한 장보고 장군의 청해진이
바로 이 해주의 서해진이었던 것이다.
대녕 서해 大寧西海란 서쪽, 청해성 지역의 바다와 같은 넓은 땅의 안녕을 책임 진다는 뜻이고,
폭지 瀑池, 장지 長池, 지성 池城 이란 지명을 보면 폭지, 즉 큰 폭발이 일어난 후 움푹 파인 지형을 말하며,
광할하게 넓고, 무한정한 불모지대, 황하의 상류지대로 큰못과 거대한 호수와 수많은 늪지대 등으로
마치 바다海 와 같은 곳으로, 우리 역사의 기록에 큰강, 사막 등을 즐겨 바다 海로 기록 했음을 볼 때,
청해성이 바다가 아님에도 청해靑海라 한것처럼, 고려의 서해도는 청해성이 고려의 서쪽지방이며
안서 대도호부 해주가 大寧 西海 ,
즉 지금의 청해성의 서녕시 인것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