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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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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 이것은 본서의 서론적 표현으로서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을 나타낸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말로 시작되는 여호수아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곧, 전에 모세가 죽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인해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여호수아는 110년을 향수하였는데(수 24:29), 그동안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의 통치권과 지휘권을 행사하였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나안 땅 분배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수 14-21장). 그로써 자신의 직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 대한 권면을 마지막으로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수 23:1 - 24:31).그런데 문제는 막상 여호수아가 죽고나자 그를 이을 적당한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사기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정치적 배경으로 하여 기록되었다. 즉 여호수아 사후 강력한 통치자가 없던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들과 미처 정복치 못한 가나안 원주민들로 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였다. 그러한 때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등장한 이들이 곧 사사인 바, 사사기는 이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서가 여호수하의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8,9에는 다시금 여호수아의 죽음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이와 관련, 학자들 간에서는 1:1 - 2:9에 기록된 사건들이 여호수아의 죽음 이전의 사건들인지 아니면 그 이후의 사건들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나뉘고 있다.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1-20 강해, '본장에 기록된 가나안 정복 사건의 발생 시기 문제'를 참조하라.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 이는 곧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사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타난다(별18:5;20:18,23,28:삼상 10:22;22:10;23:2).구약시대에는 주로 대제사장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했는데(출 28:30;민27:21;삼상28:6), 아마 이때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이다(Keil,Delitzsch).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사후하나님의 뜻을 물은 이유는 여호수하가 남긴 유업을 마저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즉 비록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 안식을 가졌다 주었지만(수11:23;21:44;23:1) 아직도 가나안 땅에는 미정복지와 잔존 원주민들, 그리고 그들의 우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가나안 땅을 마저 정복하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사후 이스라엘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것이다(수24:22-24). 따라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이 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은 것이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싸우리까 - '올라가서'에 해당하는 원어 '알라'는 단순히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대신 이는 수 8: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싸움터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Living Bible은 이를 '전쟁에 나가다'(go to war)로 분명히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질문 속에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없는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아직도 여전히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는 많은 지역(수 13:1-7 등)을 정벌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민족적 대과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누가 먼저 가나안 족 속의 정벌에 나서서 백성들의 사기를 복돋워 주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가 선봉에 나서라고 일러주셨다(2절).
가나안 사람 - 정확히 얘기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아브라함 당시 가나안에 거주하던 '초기 원주민들'(창 2: 5, 6)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족속들'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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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즉시 이스라엘 족속들의 질문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여호와께 물은 행위가 옳았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사 시대 전반에 걸쳐 되풀이 되던 극심한 타락상과는 달리 사사 시대 초기에는 그래도 여호와 신앙이 유지되었음을 보여 주는 일례이다. 이러한 사실은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동안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2:7)는 기록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 여기서 '유다'란 '유다 지파'를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미정복지 정벌 전쟁에 이스라엘 여러 지파 둥 유다 지파가 먼저 출전토록 명하신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우선 이스라엘 지파들 중 유다 지파의 수효가 가장 많았기 때문(민1:27 ; 26:22)일 것이다. (2)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의 예언(창 49:8-12)을 통해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중 가장 탁월한 지위를 차치하리라 축복하셨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우선 출전 명령과 함께 과거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것(수 13:1)과 같은 승리의 약속도 함께 주고 계시는 것이다.
이 땅 - 이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분배해 주었으나 그들이 미처 정복하지 못한 탓에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 미정복지를 가리킨다(수 13:1-7). 그런데 혹자는 이를 유다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땅만을 가리키는것으로 보기도 하나,그 것은 지나치게 의미를 축소시킨 견해이다.
그 손에 붙였노라 - '붙였노라'에 해당하는 원어 '나탄'은 '넘겨 주다' 또는 '양도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미 하나님의 작정하에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도록 계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성경에는 비단 민족간의 전쟁 뿐아니라(민21:2) 개인의 생명(16:23)도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손에 붙이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개인의 생명과 더불어 모든 국가의 장래도 곧 하나님의 주권하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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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함께...싸우자 - 이처럼 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가나안 미정복지 정벌 전쟁에 함께 출전할 것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자신의 분깃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수19:1-9). 그러므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와 행동을 같이 하여 자신들의 기업을 얻을 필요성이 있었다. 한편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분깃을 나누어 받게 된 까닭은 야곱 당시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과거 시므온은 자기 누이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로 과도하게 세겜 사람들을 멸한 일이 있었다(창 34:25-29). 그러자 야곱은 이에 대한 징벌로 시므온 자손들이 이스라엘 지파중에서 흩어질 것을 예언하였다(창49:5-7).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는 바,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정복 직전에 실시한 인구조사(민 26:14) 때 그 수가 가장 적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축복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신 33장). 그리고 그 결과 시므온 지파는 독립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유다 지파의 기업 중 일부만을 자신의 몫으로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수19:1-9). 하지만 본절 이하에 의하면 이처럼 열세한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온 지파는 불평 불만에만 빠져 있지 않고, 유다 지파와 협력하여 가나안 미정복지를 성공적으로 정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다 지파는 가장 수가 많고 강한 지파였으나(민 1:27;26:22)미약한 시므온 지파를 무시해 버리지 아니하고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잘 유지했음도 알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사사 시대 초기 당시는 아직 말기적 현상(20장)과는 달리 각 지파간의 관계가 돈독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정벌에 대한 열망으로 서로의 마음도 똘똘 뭉쳐져 있었다고하겠다.
제비뽑아 얻은 땅 - 일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줄때 제비뽑기를 통하여 실시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각 지파에게 분배될 땅의 상태가 좋고 나쁜 데 따르는 시비를 사전에 방지할 뿐 아니라 제비로 결정된 땅은 곧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기업이란 점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6:52-56 강해, '제비 뽑기'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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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사람 - 1절에도 같은 말이 나오지만 그것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즉 이말은 성경에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가지 경우로 사용되고 있다. 그중 넓은 의미로는 1절에서와 같이 가나안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을 가리킨다(창 10:19).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시돈과 두로의 베니게 지역 해변가와 요단 강계곡 및 평원에 살았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한 종족을 가리킨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족속들>.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브리스사람 - 이 역시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하나이다(수 3:10;11:3;17:15;24:1). 한편 '브리스'에 해당하는 원어 '페리지'는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는 장소'라는 뜻의 '페라조트'와 어원이같다(겔 38:11). 이로 보아 브리스 사람이란 요새화된 성이나 성벽이 없는 성읍, 또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가나안의 한 종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성벽을 세우지 않은 것은 그들의 거주지가 주로 산지였으므로(수 17:15) 그지형 자체가 충분한 요새 역할을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베섹 - 이 지명은 본절 외에 삼상 11:8에 딱 한번 언급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베섹은 기브아와 길르앗의 야베스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곳은 유다 지파의 땅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베섹'과 동일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올라간 베섹은 유다 지파의 기업 내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오늘날의 '베즈카'(Bezqa)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혹자는 '베섹'이라는 지명의 뜻을 '빛'(겔 1:14에는 '번개'로 번역되어 있음)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베섹'이란 모래가 많아 태양 빛에 반사되는 지역을 통칭하는 지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약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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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 베섹 - '베섹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개인 이름이 아닌 베섹 성읍 통치자의 칭호이다. 이같은 칭호로는 애굽 왕을 가리키는 '바로'(출 1:11), 그랄 왕을 가리키는 '아비멜렉'(창20:2) 등이 있다. 창26:1 주석 참조. 한편 혹자(G.E.Wright)는 이아도니 베섹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수10:1)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나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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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족의 엄지 가락을 끊으매 -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 포로를 다룸에 있어서 이처럼 불구로 만들거나 눈을 뽑아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민16:14;삼상11:2;왕하25:7). 이러한 형벌은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이었음은 물론, 실제적인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즉 엄지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무기를 잡을 수 없도록 하기위함이었고 엄지 발가락을 자르는 것은 도망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눈을 뽑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실례로는 일찍이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여(B.C. 331) 헬라의 포로가 되었을 때, 헬라인들이 포로들의 수족과 귀 따위를 잘랐던 사건을 들 수 있다(Lange). 아무튼 본절에서 아도니 베섹이 이같은 형벌을 당한 까닭은 일찍이 그가 동일한 방법으로 70명의군왕들을 능욕했기 때문이다(7절).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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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왕 -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왕에' 해당하는 '멜레크'는 종종 일개 성읍의 통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창14:1,2 ; 수10:3;12:9-24). 따라서 이들은 아도니 배섹 당시 각기 가나안의 군소 성읍을 관장하던 군왕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 아래서 먹을 것을 줍더니 - 마치 개처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행위(마15:27)를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비참하기도 굴욕적인 대접 중 하나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이 나의 행한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 타인에게 가한 손상만큼 가해자에게도 동일한 형벌이 주어지게 하는 동해 보복법(Rex Talionis)은 모세 율법 이외에 함무라비 법전에도 언급되어 있다<출 21:18-36 강해, 동해 보복법>.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아도니 베섹의 이 한탄의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한 말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인과 응보(因果應報)적 사상에 따라 자신이 처한 곤고한 상태를 한탄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이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간 사실은 아도니 베섹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5절>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즉 라이트(G.E.Wright)같은 학자는 예루살렘이 아도니 베섹의 왕도(王都)였기 때문에 유다 연합군이 그를 그곳으로 끌고 간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추측적 견해일 뿐 뒷받침될 만한 객관적 증거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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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 예루살렘은 이미 여호수아 군대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수 10:23,26)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절에서도 유다 자손이 그 성읍을 치고 불살랐으나 역시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았다(21절). 이러한 미정복 상태는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다윗이 이를 정복함으로 비로소 끝이 났다(삼하 5:6-9). 그런데 혹자는 이와는 약간 다른 견해를 표명하기도 한다. 즉 본시점에서 예루살렘은 유다 연합군에게 완전히 점령되었으나 유다와 시므온 두 지파의 인구가 전지역을 장악할 만큼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곧 다시 여부스 족속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해 버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가 없다. 오히려 19절의 기록에 의거하여 여부스 족속 중 평지 거민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유다 지파가 그 성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아무튼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히 정복되었으며, 그곳에 성전이 건립됨으로 명실 공히 이스라엘의 수도로 부상하였다(삼하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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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서 - 유다 지경(地境)의 북단 경계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남쪽 경계인 네게브(Negeb)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산지와 남방과 평지 -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 지경(수5:1-12)의 지형상 특징 및 구조를 나타내 주고 있는 말이다. 이 중 산지, 즉 유다 산지는 해발 약800m에 달하는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지경 내의 산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남방'은 헤브론과 가데스바네아 사이의 반사막(semi-arid) 지대로서, 일명 '네게브'라고도 불리운다. 그리고 '평지'는 히브리어로 '쉐펠라'라고 불리우는 저지대로서, 곧 지중해변의 해안 평야와 팔레스탄 중앙 산맥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뻗어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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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 -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30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해발 910여m 정도의 고도(古都)이다. 오늘날 '엘 칼릴'(el-Khalil)로 불리우는 도시인데 상공업으로 유명하다. 한편 일찍이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던 곳이며(창 13:18) 아브라함과 사라가 매장된 곳이기도 하다(창 23:19 ; 25:9). 그리고 후에는 다윗의 통치 초기 7년 동안 유다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삼하 5:5). 또한 '연맹'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고대 도시는 이스라엘에 정복된 후 이스라엘의 여섯 도피성 중 하나가 된다(수 20:7)). 한편 헤브론은 갈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20절; 수 14:6-15), 그 이유는 아마 헤브론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탐 때에 갈렙의 책임 지역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민 13:22 이하).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헤브론에 거하던 거인족 아낙의 세 자손이다(20절;민 13가22;수 15:14). 이 중 '세새'는 '애굽 왕 시삭' (왕상14:25)처럼 '태양'을 의미하고 '아히만'은 이방 신인 '므니'(Meni)의 친구(사65:11)를 의미한다. 그리고 '달매'는 밭고랑을 각각 의미한다. 한편 일찍이 헤브론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파괴되고 헤브론왕 호함도 죽임당했었다(수 10:1-27,36,37), 그리고 드빌(11절), 아납 및 기타 산지의 성읍들도 헤브론과 마찬가지로 파괴되었었다(수 11:21-23). 그러나 본절에 따르면 그 후에 아낙 자손으로 된 이 세 씨족이 헤브론을 재탈환했던것 같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를 다시금 정복해야 했었는데, 유다 지파 갈렙의 군대가 이를 재정복한 것으로 나와 있다(수 15:13,14). 한편 이 세 씨족의 이름들은 당시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의 이름에서 본딴 것으로 가나안 땅에 우상 숭배가 얼마나 만연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럇 아르바 - 헤브론의 본래 이름으로 '넷으로 된 성읍'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은 당시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네 성읍이 하나로 연합한 데서 유래된 듯하다(Lange).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이 기럇아르바는 '연합' 또는'연맹'이란 뜻의 '헤브른'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던 것이다(창 23:20).
=====1:11
드빌...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 '드빌'은 헤브론의 남서쪽 약20km 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븍 당시 이곳에는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수 11:21). 이곳은 오늘날 '히르벳 라붇(Hirbet Rabud)으로 불려지는 지역과 거의 동일시되고 있다. 1968년부터 모쉐 코카비(Moshe Kokhavy) 탐사반이 이곳을 발굴한 결과 가나안 정복 당시의상황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유물들이 대량 발견되었다 한다. 한편 '드빌'의 본명인 '기럇 세벧'은 '책의 도시' 또는 '기록의도시 '란 뜻이다. 드빌이 본래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웠던 까닭은 그곳에 큰 도서관이나 문서 보관 창고 따위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 15 : 15 주석 참조.
=====1:12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 갈렙이 이처럼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고대의 포상(褒賞) 관습(삼상17:25;18:17,27)을 따른 것이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신앙의 용사를 사위로 맞이하려 한 갈렙의 신앙 제일주의 사상이 작용하였던 것 같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16 주석을 참조하라.
=====1:13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 - 본절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이 되며 갈렙은 그나스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견해는 KJV,NIV,RSV과 같은 영어 성경도 따르는 바이다(Othniel the son of Kenaz,Caleb's younger brother). 그러나 공동 번역은 본절을 '갈렙의 동생 크나즈의 아들인 오드니엘'로 번역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가 되며 그나스는 갈렙의 동생이자 옷니엘의 아비가 된다. 이는 Living Bible이 취하고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Caleb's nephew, Othniel,son of his younger brother Kenaz).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은 성경의 원문이 그 어느쪽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때문에 학자들 간에는 옷니엘이 갈렙과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이 중대표적인 견해를 들자면은 곧 다음과 같다. (1)옷니엘은 갈렙의 이복(異腹)동생이라는 견해는 갈렙이 '여분네의 아들'(민 13:6;수 14:14)인 데 반해 본절에서 옷니엘은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2)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라는 견해는 갈렙과 옷니엘간의 현격한 연령 차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고서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다(수 14:10). 그러나 당시 옷니엘은 혈기 왕성한 젊은 용사였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두 사람은 형제간이 아니라 숙부와 조카 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 옷니엘과 갈렙은 다같이 그나스 집안의 사람들로서 친척이라는 견해(Lange) : 이는 민32:12에 갈렙이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로 나와 있으며 본절에선 옷니엘이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상과 같은 세 견해 중 오늘날 대체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는 두번째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 : 17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성경에는 그나스란 이름과 관련하여 동명 이인(同名異人)으로 에돔 사람 '그나스'(창36:11)가 나온다. 따라서 이 자를 옷니엘의 아비인 '그나스'와 혼동해서는 안 될것이다.
=====1:14
악사가 출가할 때에...아비에게 밭을 구하자 - 이는 이스라엘의 '모하르'풍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모하르'란 시집가는 딸에게 아비가 주는 결혼 선물, 또는 남자가 처녀를 아내로 데려갈 때 장인에게 치루는 '대가'를 가리킨다. 성경에선 대개 이 둘중 전자를 가리켜 '빙물'(聘物)이라 하고 후자를 가리켜 '빙폐'(聘弊)라 한다<1 : 1-20 강해,빙폐와 빙물>. 물론 부모가 결흔하는 딸에게 '모하르'를 주는 경우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그리 흔하지 않다. 하지만 악사는 옷니엘에게로 출가하면서 이 '모하르' 관습에 따라 아비에게 밭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악사가 요구한 밭이 어느 곳의 어떠한 밭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대개는 여타 밭과는 다른 특정한 밭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8 주석을 참조하라.
=====1:15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 KJV는 이를 '당신께서 내게 남쪽 땅을 주셨으니'(for thou hast given me a south land)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악사가 밭을 요구한 데 대하여(14절) 갈렙이 '남방', 즉 '네게브'(Negeb) 땅을 준 것으로 이해하고서 행한 번역이다. 어쨌든 악사가 출가하여 옷니엘과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곳은 네게브 지역이었는데, 그곳이 '드빌'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12절).
샘물도 내게 주소서 - 남방(Negeb)은 거의 사막과 같은 곳이었다(9절 주석 참조). 때문에 급수(給水)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자들에게 있어 절대 중요한 문제였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악사였기에 그녀는 현명하게 아비에게 샘물도 요구한 것이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두었더라 - 이 샘들의 위치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혹자는 헤브론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그곳은 아마 옷니엘이 싸워 정복한 드빌 땅과 헤브론 지역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는 헤브론 남방 약 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베이트 미르심'에서 두 샘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 아무튼 재치있고 현명한 악사로 말미암아 본래 가난한자였던 옷니엘은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그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같다(3 : 9)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 : 19 주석을 참조하라.
=====1:16
본절은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민 10:29,30에 따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또는 르우엘) 와 처남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자고 요청했으나 호밥은 처음에 이를 거절했었다. 그러나 본절을 통해서 볼 때 호밥은 후에 이같은 청을 수락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이 틀림없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그의 처남 호밥은 원래 가나안 원주민이 아니라 미디안 족속 중 하나인 겐 족(Kenites)이다. 이 겐 사람에 대한 최초의 성서 기록은 창 15:19에 나타나며 발람의 신탁 속에 등장하는 '가인 사람'도 역시 겐 족을 가리키는 말이다(민 24:21,22). 이들은 주로 홍해 부근, 즉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Aqaba) 만 일대에 거주했었는데 점차 모압 경계선 북부(민 21:4), 팔레스틴 남부 산악 지대에까지 북상하였다. 아무튼 모세 이후부터 이들 겐 사람은 히브리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출 2:15-22)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삼상 15:6;30:29). 그리고 본절에서는 이 겐 족이 유다 지파의 지경내(地境內)에 거하므로서 이스라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종려나무 성읍 - 일명 '향기의 도시', '달(月)의 도시'로도 불리웠던 여리고를 가리킨다(신 34:3;대하28:15). 예루살렘 동북방 약27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인데, 종려나무의 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종려나무 성읍'(the City of palms)으로 불리웠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최초로 정복한 성읍이기도 한 바, 이에 대하여서는 수6장을 참조하라. 한편 혹자들은 겐 족이 유다 지파와 처음부터 함께 아랏 남방의 헤브론과 드빌로 갔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종려나무 성읍은 헤브론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리고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절에 보면 겐 족이 처음에 머문 곳은 분명히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이며 그 후에 유다와 시므온이 남방을 정벌할 때 아랏 남방으로 내려가 유다 백성과 함께 거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랏 남방 - 아랏은 헤브론 정남쪽 2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성읍이다. 넓고 완만하게 경사진 황무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곳은 아브라함 당시 이미 문명이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아랏과 여리고는 약 85km 가량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겐 족의 이주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 혹자는 '백성'에 해당하는 원어 '암'이 '아말렉'과 첫 두 자음이 일치하며, 겐 족속이 아말렉과 깊은 연판이 있는 족속이라는 사실을 들어(삼상 15:6), 여기서 '그 백성'이란 아말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유다가 언급되었고 '암'이라는 단어에 정관사가 덧붙어 있으므로 '그 백성'이란 유다 지파를 가리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역사적으로도 겐 족이 다윗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의 주장은 분명히 옳지않다(삼상 30:29).
=====1:17
스밧...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 스밧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텔 엘 밀'(Tell-ei-Milh)이거나 '텔 에쉬세리아'(Tell
esh-Sheriah)인것으로 추정된다. 전자는 브엘세바에서 약 10km 정도, 후자는 약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한편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스밧을 진멸한 뒤
'호르마'라 칭하였는데, 이는 '완전히 파괴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읍의 파괴가 신
들에게 언약의 맹세를 표하는 하나의 종교적 예식임을 암시하는 말로서 당시 고대 근
동에서 널리 행해지던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진멸은 잔인한 면도 있으나 전쟁에 뒤
따르기 쉬운 것들, 즉 예를 들면 강간, 약탈 등의 추한 행위들을 미리 예방해 주는 이
점도 있었다. 특히 유다 지파의 이러한 철저한 도륙은 그 땅에 뿌리박고있던 우상과
이방 종교의 척결이란 점에서 오히려 의미가 깊다. 한편 호르마라고 불리우는 이 스밧
은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지경내에서 얻은 시므온 지파의 기업이었다(수 19:4).
=====1:18
가사...아스글론...에그론 - 아스돗, 가드와 더불어 블레셋의 5대 성읍으로 꼽히던
도시들이다(수 13:3). 이 중 가사(Gaza)는 예루살렘 남서쪽 80km, 지중해에서 내륙쪽
으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아스글론(Ashkelon)은 가사 북쪽,
아스돗 남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다. 마지막으로 에글론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남쪽에서부터 점차 북쪽으로
북상하면서 블레셋 성읍들을 정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그곳의 거민들을 완
전히 진멸하지 못하였는 바, 이들 성읍들은 다시금 블레셋의 장중에 들어갔으며 이후
이스라엘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대적이 되었다(14:19;삼상 5:1,10;7:7,8).
=====1:19
본절에서는 두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유다 지파가신앙적으
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산지(9절)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앙적으로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 내지 못한 사
건이다.
철병거가 있으므로 -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 족속(Hittites)에 의해
서 였다(성경 총론,'구약과 고대 근동 문화' 참조). 그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가나안
땅에 이주해 온 듯하며(창 23:3 ; 26:34) 합금 기술의 개발을 통해 다른 어느 부족보
다 더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철재 무
기는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당시 철
재 무기는 매우 구하기 힘들었다(삼상 13:2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병거로 무
장한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하나님의
능력으로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던 그들이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
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불신앙이라는 말로 설명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족들에게 철병거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을 쫓아낼 수 있
다고 요셉 지파에서 주지시켰던 적이 있었다.(수 17:16-18). 그리고 실제로 사사 시대
에 드보라와 바락은 철병거 9백승을 가진 야빈 왕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4:13-16). 따라서 유다 지파가 철병거를 가진 적에 대해 미리 겁을 집어먹고 하나님
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으로 인하여 정복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로 레호리쉬'(* )는
능력이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아니한 직무 유기 내지는 고의적 회피 행위를 의미한다. 족 유다 지파는 골
짜기 거민들을 쫓아내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미리 겁을 집어 먹고 아예 이 일을
포기했던 것이다(Lange).
=====1:20
모세의 명한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 일찍이 모세의 가나안 정탐꾼 파송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과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
은 모세에게 회의적인 보고를 하였었다(민 13장).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이스
라엘이능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민14:6-9). 그러자 모세는 갈
렙에게 축복하기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
14:9)고 하였다. 그같은 약속에 근거해 갈렙은 여호수아 생존 당시 헤브론을 요구,
기업으로 받았었던 것이다(수14:13-15). 본절은 바로 그 사건을 다시금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낙의 세 아들 - 이미 10절에서 언급된 아낙 자손의 세 씨족인 세새, 아히만,달매
를 가리킨다. 한편 갈렙을 대장으로한 유다 자손이 이들을 무찌른 기사는 수 15:13,14
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러므로 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1:21
본절에는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
록되어 있다. 그러나 수 15:63에는 유다 자손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두 기록은 서로 상치되는 것처럼 보일 수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
다. 왜냐하면 베냐민과 유다의 경계는 벤 힌놈 골짜기와 예루살렘 남쪽 지역에서 서
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수 15:8 ; 18:28). 그러므로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쫓
아내지 못한 책임은 이 두 지파 모두에게 있었던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수15: 63
주석을 참조하라.
여부스 사람 -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으로서(창 10:16). 예루살렘 산악 지대
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다(수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그래서 고대에는 예루살
렘을 '여부스'라고도 불렀다(19:10 ; 수 15:18 ; 18:28 ; 대상 11:4 등). 한편 볘
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이같은 공격 실패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사사 시대 동안 이스
라엘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19:10-12),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
전히 정복된다(삼하 5 : 6-10). 그러나 다윗의 정복 이후에도 부분적이나마 여부스
사람의 예루살렘 거주는 계속 허용된 듯하다 (삼하 24:16).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당하고 여부스 족이 축
출당한 때는 다윗 시대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리키는 '오늘날'이란 B.C.1050-1000년
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본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
는 바, 본서의 기록 연대 역시 이 시기인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사사기 서론참조.
=====1:22
본절은 베냐민 지파와는 달리 요셉 지파가 믿음으로 정복 사업에 나아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요셉 족속 - 여기서 '요셉 족속'이라 함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통틀어 칭하
는 말이다(수 17:17). 그들은 유다와 시므온처럼 기업을 함께 할당받았기 때문에(수
16:1-4) 연합하여 벧엘 정복에 나섰음이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8).
벧엘 - 예루살렘에서북쪽으로 1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베이틴(Beitin)이
다. 이곳에는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았었다. 본래의
이름은 '루스'(23절)인데, 야곱에 의해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로 바뀌었
다(창 28:16-19). 한편 이러한 벧엘은 본래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땅(수 18:22)이었
으나 요셉 족속의 남쪽 경계선과도 서로 맞물려 있었다(수 16:1,2). 따라서 요셉 족속
도 벧엘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인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영토를 보호하
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므로 본절에서 요셉 족속이 벧엘 정복에 나선 것이다.
한편 벧엘 정복에 관한 기사는 성경상에 상세히 나타나 있지 않다.그러나추측컨대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정복한 후(수 8장) 곧 이어 벧엘도 일시 정복했던 것같다(수
12:16). 그러나 벧엘은 다시금 가나안 원주민들의 수중에 넘어갔으며 이에본절에서
요셉 족속이 재차 정복에 나선 것 같다(Goslinga). 아무튼 이러한 벧엘은 이스라엘 역
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이름
에 걸맞지 않게 벧엘은 왕정 시대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2:26-33
; 왕하 17:27-33 ; 렘 48:13).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 요셉 족속이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게 된
동인(動因)이 근본적으로 여호와께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구절이다(삼상 17:47).
=====1:23
벧엘을 정탐케 하였는데 - 여기서 '정탐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투르'(* )는
'경비가 엄한 지역을 몰래 살피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모세가 가나안에 염탐꾼
들을 보냈던것(민 13:1-20)과 비슷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즉 요셉 족속의 이런 신중
한 태도는 그들이 참으로 믿음 가운데 서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루스 - '벧엘'의 본명이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처
음 붙인 것이며(창 28:19) 가나안 족들은 그곳을 '루스'라했다. '루스'(* )란 '
왜곡되다', '떠나다'라는 뜻인데 벧엘의 우상 숭배 역사와 잘 부합되는 이름이다.
한편 수 16:2에는 "벧엘에서부터 루스가 나아가"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마치 벧엘과
루스는 서로 인접해 있는 다른지역인 것처럼 생각케 해준다. 때문에 혹자는 루스의
남쪽을 '벧엘'로 보고 있기도 하다(Cassel).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껏 살펴
보아왔듯 이 '루스'와 '벧엘'은 동일한 지역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6:2 주석을 참조하라.
=====1:24
본절에 기록된 사건은 여리고 정탐시에 기생 라합에게 일어났던 사건과유사하다
(수 2장). 아무튼 이는 요셉 족속이 어떻게 견고한 요새 벧엘을 정복하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벧엘 정복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셨음(22
절)도 잘 보여 준다.
성읍의 입구 - 이것은 성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벧엘
사람들이 요셉 족속의 성문 출입을 허용 할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는 요새화된 벧엘에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루트(root)나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이해하여야 한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9).
선대하리라 - 원문을 직역하면 '자비를 보이겠다'.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이다.
여기서'자비', '은혜'에 해당하는 원어 '헤세드'(* )는 '하나님의 무조
건적인 긍휼' 또는 인간과 인간 간의 '변함없는 신뢰'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창19:19
; 삼하16:17 ; 시59:17). 여기서는 정탐꾼이 벧엘 거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어기지 않
고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1: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르친지라 - 이 벧엘 사람은 요셉 족속의 정탐꾼으로
말미암아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므로 이처럼 성읍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탐꾼이 그에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한 점으로보아(9절) 자발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그는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수2:8-11). 이미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심(22절)을 감지했기 때문에 정탐꾼의 요청에 협조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 라합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
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켰다(수6:17). 이와 같이 한 사람의 행동 여하에 따라 전가족의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표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과거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오늘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롬5:18).물론 구원은 최종
적으로 개개인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타인의
구원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
구원에로 인도할 수는 있으므로, 성도의 힘쓸 의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고후 2
:15, 16 ; 딤후 4:2).
=====1:26
헷 사람의 땅 - 헷 족속은 인도 유로피안(Indo-European)족이다. 이들은
B.C.1800-1200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었다(수 서
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참조).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나 모세 율법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과 헷 족속의 법률이나 관습들,특히 이들의 종주권계약
(suzerainty treaties)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한편 시리아 지역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헷 족속의 온 땅'으로 불리워졌다(수1:4). 따라서 본
절에서벧엘 거민이 이주하였다는 '헷 사람의 땅'은 시리아의 어느 한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 이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정착지에 다가 벧엘의 옛이
름인 '루스'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
나, '떠나다'라는 뜻 외에도<23절> '편도나무'(almond)라는 뜻을 지닌 '루스'라는
이름에 근거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즉 편도나무로 유명했던 고대 헷 족속의 땅으로
는 북부시리아의 '쿠프로스'가 있으므로 이곳이 곧 루스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Cassel).
=====1:27
<므깃도의 곡식저장 창고>
본절은 벧엘의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므낫세의 영토
내에 있는 많은 가나안 인들의 성읍들이 그대로 존속
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성읍들은 '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스르엘과 에스드렐론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
도시들 중 몇몇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되었으나
(수12:21,23), 나머지 성읍들에 대한 정복기사는 아무 데도 없다.
아마 그들은 철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
었을 것이다(Goslinga).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성읍들까지도 곧 독립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본절의 끝 부분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라는 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저항이 막강하였음을 의미한다.
벧스안 - 요단 계곡과 이스라엘 골짜기의 교차 지점, 곧 요단 강 서쪽 약 10km 지
점에 위치한 주요 요새이다. 라암세스 3세 때(B.C.1175-1144)까지 이곳에 애굽 수비
대가 상주했었으며, 그 후 블레셋이 이곳을 점령했었다.
그 향리 - 즉 큰성읍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형성되었던 촌락이나 위성 도시를 가
리킨다.
다아낙 - 므깃도 남동쪽 8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역사상 이 성
읍은 당시 에스드렐론 계곡에서 샤론 평야에 이르는 남서 통로를 지배했던 것으로 나
와 있다.
돌 - 가이사랴 북방 약 13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 팔레스틴 해안에 위치한 요새
화된 성읍이다. 이곳에는 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이났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해 살았었다. 한편 솔로몬 당시 돌과 그 인근
지역은 솔로몬 왕국의 제4행정 구역에 편입되었던것으로 전해진다.
이블르암 - 샤론 평야 동쪽,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성읍이
다. 오늘날에 '길벳 빌 암메'(Khirbet Billameh)와 동일시 되는데, 이는 므깃도 남동
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므깃도 - 하이퍼 남동쪽 약 30km 지점의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이곳은 B.C. 12세기 중반까지 애굽의 지배 하에 었었다. 고고학자 스트라툼(Stratum)
7세는 므깃도가 갑자기 멸망당했음을 밝혀냈는데,그것은 5 : 19에서 암시하고 있는
드보라의 숭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lbright)
=====1:28
본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므낫세 뿐만아니라 다른 지파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 사
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가나안 인들을 그 땅에서다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쫓아낼 수 있을 즈음에는, 가나안
인들을 쫓아내기 보다는 오혀려 그들을 부려먹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즉 강성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라 보다 가나안 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국의 이익
을 추구하는 이기성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 - 정확히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물른 이스라엘
의 국력이 최고로 신장(伸長)된 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기(B.C.1005-931)
이다.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꾸준히 국력을 길러 왔던 것이 사실이
다. 아무튼 이때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다 쫓아낼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신장된 때임에 만은 분명하다.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인들을 사역시킨 경우
는 이미 여호수아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다. 즉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 조약
을 맺었던 기브온 거민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았었던 것이다(수9:22-27). 또한 솔
로몬은 자신의 건축 사업에 가나안 인들을 동원, 인부로 사용하기도 했었다(왕상
9:19-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가나안땅에서 모든 원주
민들을 멸하고 쫓아내는 것이었지(신20:16-18) 결코 그들을 남겨, 이용하라는 것이 아
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잘못이 있었는 바, 이후 이스라엘은가나안
의 이방 우상 숭배 종료와 사악한 풍습에 점차 물들어 가고 말았던 것이다.
=====1:29
게셀 - '쉐펠라', 즉 가나안 평지<9절>의 돌출부에 위치한 전략 도시로서 예루살
렘 서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특히 에브라임의 영토 중 최남서쪽 경계와 맞물
려 있는 이곳은 지중해변에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다. 한편
이 게셀은 애굽의 문서들에서도 여러번 언급되고 있는데, 애굽의 바로가 솔로몬에게
결혼 선물로 이 성읍을 줄때까지(왕상9:15-17) 이 성읍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
오지 않았었다.
=====1:30
스불론의 영토에 있는 두 성읍 기드론과 나할롤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기드론 - 예루살렘과 감람 산 사이를 흐르는 시내인 '기드론'(삼하1:23)과는 엄연
히 틀린 곳이다. 하이퍼(Haifa)의 남동쪽에서 1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늘날
의 텔 엘 파르(Tell el-Far)인 듯하다.
나할롤 - 또는 '나할랄'으로도 불리우던 성읍이다(수19:15 ; 21:35). 아크레 평원
남단, 하이파 동쪽 8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엔 나흘(Tell en-Nahl)로추측된다
(Albright).
=====1:31
본절에 언급된 성읍 중에서 악고, 시돈, 알랍, 악십은 모두 갈멜 산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 거민들은 다른 지역의 가나안 인들과는 달리 커다란 세력을 지니
고 있었다. 후에 이곳은 중요한 해양 국가인 베니게(Phoenicia)로 발전하였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삼하5:11 ; 왕상5:1-12). 그런데 레니게의 공주 이세벧이 아합과 결혼하
여 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옴으로써(왕상16:31-34) 이스라엘에 비참한 결과를 가
져오게 되었다. 한편 본절에 언급된 아셀 지파의 성읍들을 간략히 도표화하여 살펴보
면 곧 다음과 같다.
┌──┬───────────────────────────────────┐
│이름│ 비 고 │
│ │ │
├──┼───────────────────────────────────┤
│악고│페니키아의 항구 도시. 갈멜 북쪽 6km 지점의 지중해 연변에 위치. 사도 │
│ │바울 당시에는 '돌레마이'(행 21:7)로 불리웠음. │
├──┼───────────────────────────────────┤
│시돈│두로 북쪽 약 35km, 베이루트 남쪽 약 35km 지점에 위치한 베니게의 중요 │
│ │항구 도시. 솔로몬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돈의 우상 신 '아스다롯'을 │
│ │숭배하였음(왕상 11:5,33). │
├──┼───────────────────────────────────┤
│알랍│두로 북동쪽 약 6.4km 지점에 위치한 성읍. 이름의 뜻은 '비옥함', '풍성 │
│ │함'으로서 당시 경제적으로 상당히 윤택한 도시였음을 짐작케 해줌. │
├──┼───────────────────────────────────┤
│악십│악고에서 두로에 이르는 도로상에 위치한 지중해 연변 도시 악고 동남쪽 약│
│ │11 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키산'(Tell Kisan)과 동일시됨. │
├──┼───────────────────────────────────┤
│헬바│정확한 위치 불명. 일명'알람'(Ahlab)으로도 불리운 듯함. │
├──┼───────────────────────────────────┤
│아빅│일명 '아벡(Aphek)으로도 불리웠음(수 19:30). 하이퍼(Heifar) 만에서 4.8 │
│ │km 정도 떨어진 악고 평원에 위치. 베니게와 애굽을 잇는 도로상의 전략적 │
│ │요충지이기도 함. │
├──┼───────────────────────────────────┤
│르홉│악고 평원 동남방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엘-갈비'(Tell el │
│ │Gharbi). │
└──┴───────────────────────────────────┘
=====1:32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 증에
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에브라임과 스불론 지파의 경우(29,30절)와는 대조되는 기
록이다. 즉 위의 두 지파는 가나안 거민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하였으나 그들이 점
령한 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아셀 및 납달리 지파(33절)
는 오히려 그들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아셀과 납
달리 지파의 지경 내에서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의미
한다. 아마 그 까닭은 가나안 사람들이 숫적으로 우세하며 아셀 지파나 납달리 지파가
그들에게 대하여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1:33
벧세메스 - '태양의 집'이란 뜻, 이것은 이곳에 태양 신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갈릴리 고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
치는 알 수 없다. 한편 성경에는 '벧세메스'란 이름은 같으나 서로 다른 지역인 곳이
몇 군데 더 나온다. 그중 하나는 법궤 사건으로 유명한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수
15:10)인 벧세메스이고(삼상6:10-16) 다른 하나는 잇사갈 지파의 경계지인 벧세메스이
다(수19:22).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애굽의 성읍인 벧세메스이다(렘43:13) 따라서 본
절에 나오는 납달리 지파의 벧세메스를 이들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벧아낫 - '아낫의 집'이란 뜻이다. 이로 보아 이곳에는 피요의 여신이며 바알의 아
내인 '아낫'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 '아낫'(Anath)은 우가릿
(Ugarit)의 전쟁의 여신이었다. 한편 이곳 역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다만 밸세
메스 부근에 위치하였던것으로만 추정할 수 있다.
=====1:34
본절에서는 단 지파가 아셀 지파나 납달리 지파와는 달리(31-33절) 가나안인 가운
데 거하지도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 의해 산지로 쫓겨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 단
지파의 일부는 아모리 족속을 피해 유다의 영역이나 팔레스틴 최북단 지역의 라이스
(Laish)로 이주해야만 했다(18:1-31).
아모리 사람 -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까지 그곳에 거주하던 모든 가나
안 족속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창15:16). 그러나 엄격히 구분하면 주로 팔레스
틴 계곡이나 해안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가나안인'이라 일컬은 데 반해 팔레스틴 산지
에 주로 거주하던 자들을 '아모리인'이라했다. 이들은 본래 팔레스틴, 시리아, 바벨론
등지에 널리 흩어져 살았었다. 그러나 팔레스틴 내에서는 당시 에게 해 연안출신으로
서, 가나안 남서부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오던 블레셋에게 쫓겨 골짜기나 산지로 밀
려나고 말았다. 따라서 단지파가 산지로 쫓겨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때문이다.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 단 지파가 본래 기업으로 받은 땅은 가나안의 서부
지역 산간과 해변에 이르는 비옥한 땅이었다(수19:40-46).그러나 이들은 아모리사람
들에게 밀려 산지로 쫓겨났고 급기야는 그곳에서조차 정착치 못하고 결국 '라이스'에
로까지 이주해야만 했다(수 18장).
=====1:35
헤레스 산 - '태양의 산'이란 뜻으로서, 이곳 역시 우상 신전과 깊은 관계가 있음
을 암시해 준다. 이곳은 수19:41에 나오는 '이르세메스'(태양의 성읍)와 동일한 곳으
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아인 세메스'(Ain Shemes)라 불리우고 있다(Keil, Goslinga
등). 한편 이스라엘이 정복하는 데 실패한 도시들의 이름이 대부분 우상과 관련된 것
으로 볼 때<33절>. 이스라엘의 실패는 단지 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
히려 신앙적인 차원에서 설명이되어야 할 것 같다.
아얄론 - 여리고와 지중해 사이의 고지에 위치한 성읍.오늘날의 '얄로'(Yalo)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호수아가 아모리족을 격퇴할 당시 야얄론 골짜기에 달이 머문사건
으로 유명하다(수10:12).
사알빔 - 예루살렘 서쪽 약 24km 지점, 아얄론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다.오늘날의
'셀비트'(Selbit)로 추정된다. 솔로몬 당시 이곳은 식량 공급을 위한 행정중심지였다
(왕상4:9).
요셉 족속이 강성하매 아모리 사람이...사역을 하였으며 - 단 자손들은 대부분 평
야로 이루어져 있는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고 산지에서조차 아모리인들의 공격
으로 고난을 받았었다. 그러나 훗날 요셉 족속, 엄밀히 말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단 지
파의 영토에까지 새력을 확장, 아모리인들로 하여금 사역케 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
모리인들이 비록 단 지파의 지경에서 단 지파를 쫓아 내긴 했으나 그 지역이 결국에는
다시금 이스라엘의 영토로 회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1:36
아모리 족속이 단 지파의 영토를 차지한 것(34,35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
도 팔레스틴 전역에 널리 잔존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이를 위해 본절
은 당시 아모리 족속이 거주하던 땅의 남쪽 경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곧 유다 족
속이 기업으로 분배받은 가나안 땅의 최남단 경계와 일치한다(수15:1-4).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그 위였더라 - '아그랍빔'이란 '전갈'이란 뜻이다.아마
도 이 지역에 전갈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Pulpit Commentary).
이 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민34:4과 수15:3에 의거하면 사
해 남쪽지역에서부터 브엘세바, 즉 유다 남부 구릉 지역의 평지까지 이르는 가파른 절
벽 지대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바위'에 해당하는 원어 '하쎌라'(* )는 헬라어
로'페트라'(Petra)에 해당된다. 민34:3과 수15:1에 의거할 때 이는 온통 바위로 이루
어진 에돔 지경(地境)의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 듯하다(Lange, Wycliffe). 그러나 혹자
는 '하쎌라'를 에돔 지경의 산악지대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닌 그냥 바위가 많은
지역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 이해하기도한다(Keil). 마지막으로 여기서 '그 위'란 서
쪽지중해변을 가리키는 바, 이는 민 34:5 ; 수 15:4에 의거할 때 지중해로 흘러드는 '
애굽 시내'부근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사기 제 2장
====2:1
여호와의 사자가 갈길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
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 여기 이른바 "여호와의 사자"(*
)는 실상 여호와 자신이시다. 그것은, 그가친히 "내가 너희를...내
가...내가"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가 그 자신이심을 밝
히신 말씀이 알려준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 자신으로서 구약 시대에 제시(提示)되신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 3:1에는"언약의 사자"(*
)라고 하였으며, 히 3:1에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하였다.
"길갈"은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서 가나안의 산악지방을 정복할 동
안 머물렀던 근거지이다. 그리고 "보김"은 "벧엘"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70인역(LXX)
은 "보김"이란 땅 이름에 "벧엘"(* )이란 말을 첨부하였다. "보김"은 "벧
엘"을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
렸"기 때문이다(5 절). 전에는 법궤가 길갈에 있었지만(수 5:9), 이 때에는 벧엘로 옮
겨진 것이 사실이다(20:26-27).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하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
는 것일까? 이는 "길갈"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할례(割禮)로 언약을 확고히 하신 그
가(수 5:9, 13-15) 이제 "보김"에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가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
신 대로(창 13:14-15) 그들을 인도하여 그 땅을 주신 것은, (1) 그의 진실성을 증명하
며, (2) 그의 구원의 능력을 실증하며, (3) 그의 사랑을 보여준다(사 43:1-4). 그러므
로 그는 절대로 믿을 만한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니만큼 그가 친히 그들의 하나님
이라고 하시는 내용(창 17:8)의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니, 죄인들
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의 자비는 무궁하시다. 애 3:22참조.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
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 하나님께서 일찌기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에게 가나안 민족과 "언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여 주셨다(출 23:32-33, 34:12, 16;
신 7:2; 수 23:12-13).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족속과 교
류하며, 그들의 우상 숭배를 용납하는 의미에서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리어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우상 제단을 파괴해야 된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나안 족속의 제단을 파괴하려면 전쟁의 강한 정신이
요구된다.
오늘날 기독자들이 이 세상의 그 무엇을 하나님처럼, 혹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이 그에게 우상이다. 그들이 그것을 파괴하는 것도 전쟁하는 심리로만 할 수 있
게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해야 된다고 가르친다(히 12:4).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하여는 희생, 용기, 결단, 수고, 또는 죽음까지라도 각오하는
심각한 전투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들과 언약을 세우는 경우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 민족들을 이
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어 주시지 않겠다고 이미 경고하신 바 있었다(수 23:12-13). 여
기 이른 바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란 말은 그들이 죄를 용납한 결과로 당하게 될
화(禍)를 의미한다. 기독자들도 죄와 싸우지 않는 때에 그 죄가 가시처럼 그들을 괴
롭히며 덫처럼 그들을 잡아 거꾸러지게 만든다.
=====2:4,5
하나님("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지적하시고(2절), 그들이 그
불순종한 죄값으로 가나안에서 화를 당하게 되리라고 선포하실 때에 그들은 저희의 죄
를 뉘우치고 큰 소리로 울었다.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권위로 임하신 영(靈)이시니 만
큼 그들의 심령에 압도적으로 큰 충격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니 만큼 그들도 통회하
지 않을 수 없었고, 그곳 이름을
"보김"(* ), 곧 우는 자들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으니, 그것은 그들의 죄악을 대속(代贖)하기 위한 속죄제(贖罪祭)였을 거
싱다. 그들이 통회(痛悔)한 것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의 말씀을 불순종한 저
희의 죄악을 원통히 여기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 것은 죄악 문제에 대한 해결책, 곧 하나님이 계시하여 주신 속죄의 제도에 순종
한 신앙인 것이다. 기독 신자들도 그들의 죄악 문제에 대하여 원통한 느낌을 가지는
것만으로 해결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음으로 만
족한 회개를 이룬다.
이스라엘이 여기서 회개하고 믿는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그 믿음을 오
래 동안 지속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와 같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하신
바 씨 뿌리는 비유에 있어서 돌밭에 뿌리운 씨의 나타남과 같은 것이다. 곧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 쉽게 말라버림과 같은 것이다(마
13:20-21). 또한 가시떨기에 뿌리운 씨와 같다고도 할 수 있으니, 곧 말씀을 듣고 반
응을 보이다가 세상 염려 때문에 결실하지 못함과 같은 것이다(마 13:22). 참된 경건
은 좋은 밭에 뿌리운 씨와 같아서 인내로 결실하는 것이다(눅 8:15).
=====2:6-10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와 또 하나님의 기적적 구원을 목도한 지도자들("장로
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여호와를 잘 섬겨왔다. 이 사실을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
는 지도자들의 영향력이 교회에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이
란 것은 인간적인 어떤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영적 운동은 하나님
의 영력의 간섭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적 능력도 인간의 역사
를 통하여서 실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롬 10:17 에는 말하기를, "믿음은 들음에서 나
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
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세우신 기관은 역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도하시며 다스리심에 있어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이유
가 무엇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고 천사들을 통하여 각 개인을
지도하신다면 더욱 더 효과적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특별히 세워서 자
기 백성을 위해 영적으로 더욱 유력하게 일하시는 방면이 있다. (1) 그것은, 지도자를
모본으로 세워주셔서 그들의 신앙 생활이 구체화되도록 함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연약한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영력을 받아 구원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들도 그렇게
되고자 하는 용기를 얻는다. 성경은 확실히 이 방면을 제시하여 준다. 곧, 성경이 우
리에게 기도의 용기를 주기 위하여 말씀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
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
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하였다(약 5:17-18). (2)하
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또 한가지 이유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한 체휼(體恤)
때문이다. 지도자의 눈물이 피지도자들의 눈물을 발생시키고, 지도자의 사랑의 수고가
지도를 받는 자들의 마음 속 깊이에 아름다둔 덕행의 동기를 발생시킨다. 이것은 오직
인간인 지도자를 통로(通路)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천사들은 고난 당하는 일도
없고 눈물도 없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 (10 절 상반) 곧, 여호수아와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는 뜻이다. 정통 학자들 중에서 이 문구를 내세(來世)과 관
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그세대 사람
들이 죽어서 그 영혼으로 앞서 간 성도들이 가 있는 복된 세계로 들어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 (10절 중간) 이것을보면 인생
은 올바른 영적 교육을 받아야 하나님을 알게 된다. 신자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라고 하여 그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거나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
다. 그 뿐 아니라 국가적, 또는 사회적 교육 기관이 참된 종교 교육을 보장하는 일도
매우 드물다. 어떤 시대에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잘 공경하도록 권장하는 일이 있게 되
면 그 때에 부모된 자들이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착실히 실시해야 된다. 그렇게 못
하면, 그 부모들이 별세한 뒤에 그들의 사회는 불신앙과 세속으로 타락할 수 밖에 없
다.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실시함은 하나님의 명령이다(신 6:6-7; 시 78;5-8).
이 일에 대해서도 원천적으로 지도할 자는 교회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기 시대
만 책임진 것이 아니고 장래 세대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일해야 된다. 딤후 2:2에 말하
기를,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2:11-13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에 대하여 말한다. (1) 그들이 참된 신, 곧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살아 계신 여호와를 버렸음.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는,
선을 악이라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는 강퍅한 행동이다. 이렇게 행한 자는 하나님
의 벌을 받아 마땅하다(사 5:20). (2) 그들이 다른민족들의 신(神)들을 따름. 곧, 그
들이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 - 을 섬겼으니,
"바알과 아스다롯" - 이었다. "바알"(* )은 소유주(owner)란 뜻인데 이스라엘
주위에 있는 민족들이 섬기는(예컨대 베니게 족속들과 아람 족속들이 섬기는) 신이었
다. 그리고 "아스다롯"(* )은 역시 그들이 섬기는 여신(母性神)이었다. 그
들이 이 두 가지 우상을 농신(農神-풍년 들게 하는 신)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찌하여 그렇게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이런 미
신(迷信)으로 타락했던가? 이것은 우리로서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우
리가 다음 몇가지 원인을 알 때에 이 의문이 풀린다. (1) 그들이 참되신 하나님에 대
하여 효과적인 증거와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10절). 인간은 특별히
종교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제시(提示)를 보수(保守)하지 않는 한(限), 어두운 미신
에 빠지지 않을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영혼이 조상 때부터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
나(하나님을 떠난 것이 곧 죽음임) 어두워졌기 때문이다(엡 2:1). (2) 음란의 미혹에
빠진 원인도 있었다(민 25:1-3). 겔 16:17, 20:30, 23:3참조. 이 참조 귀절들에 지적
된 말씀은 영적 음행, 곧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따름에 대한 비유적 언사이다. 그
때의 우상당(偶像堂)에는 창녀(娼女)가 배속되어 있어서 그 우상 숭배 행위의 한 순서
로 음행도 들어 있었다.
=====2:14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셨으므로 그들이 즉시 이방 세력에게 삼키웠다.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현상
은 신약 교회의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 신약 교회도 하나님을 떠나면 속화(俗化)되는
법이다.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
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
더라 - "어디를 가든지"란 문구에 있어서 "가든지"란 말(* )은 전쟁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왕하 18:7 ; 신 28:25 참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패전하게 되리라는
것은 일찌기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바이다. 신 28:15, 25 참조. 본서의 저자는 이렇
게 하나님의 계약신(契約神) 성격을 역설(力說)하여 하나님의 진실성을 지적한다. 택
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는 언제든지 먼저 예언하신 것을 그대로 성취하시는 것
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절대적 신앙의 대사응로 계시(啓示)되어 계신다. 누구
든지 그를 믿지 않는 것은 발뒤꿈치로 송곳을 차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2:16,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지도자로
"사사"(士師)를 세워 주셨으나 그들이 극히 타락했을 때에는 사사의 지도도 순종
하지 않았다. "사사"란 말의 히브리어(* )는 재판하는 자를 가리키지만(D.K
. Budde, der Grundbegriff dafurist Recht schaffen), 이는 일반 국가 행정에 속하
는 재판장을 말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공의를 나타내어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
여 세우신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말을 "사사"라고 번역함보다는 구원자란 뜻
을 내포하는 "심판자"라고 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쫓아" - (17절 상반)란 문구의 히브리어(*
)는 "다른 신들을 쫓아 음란하여"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음란하여"란 말(* )은 그
들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니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자를 가리켜서 음란한자라고 하시는 이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다.
(1) 참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니 만큼, 신자가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은 여호
와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 한 분에게만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만 섬겨
야 된다(신 6:5). (2)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신자를 사랑하시되 마치 남편이 아내를 사
랑함 같이 자기 자신을 주셨다는 것(엡 5:25). 그러므로 그는 신자도 그렇게 전심 전
력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신다. 신자가 하나님을 그렇게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을 때에 그는 질투하신다고 하였다(출 20:5). 이것은 신자에게 대한 그의 사랑이 불
붙듯하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속히 치우쳐 - (17절 하반). 여기 "속히"(* )란 말은 우리의 주의를 끈다. 얼
마 전까지 하나님 여호와를 공경하던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속히 타락했을까 함이다.
그러나 이 난제는 쉽게 해결된다. 인류가 아담의 타락 후 이미 종교적으로는 타락되어
있으니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는 그의 부패성이 발동하게 된
다. "치우쳐"란 말(* )은 배반함(turned aside)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 여호
와를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쫓는 배신 행위를 가리킨다.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 (17절 끝). 곧, 사사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즐이 그
들의 신실했던 선조들처럼 행치 아니하였다는 뜻이다.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였으니 - 곧, 사사의 구원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지적한다.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사사기의 이 말
씀은, 그 백성을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중요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그가 지
도자를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도자 없이도 하나님께 기
도함으로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보통으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사회에도) 지도자들을 세워주시고 그들을 통하여 역시하시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
다.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
이키셨음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신 동기에 대하여 가르친다. 그가 사사
를 세우신 동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도 때문에 일어난 그의 긍휼이었다. "슬피 부르
짖으므로." 곧, 그들이 애달프게 기도했다는 것이다. 큰 죄인이라도 그 지은 죄를 진
실히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은 인애
를 원하시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호 6:6).
======2:19-21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지도자가 별세한 뒤에는 또 다시 우상을 섬기며범죄하기
를 그치지 않았다. 특별히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 (19절 끝)란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
씀에서 떠나 강퍅해진 사실을 지적한다. 사람의 일반적 범죄는 성령을 근심케 하고(엡
4:30), 그의 강퍅성은 벌을 초래한다.(창 6:5-7).
====2:22,23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의 거민, 곧 여호수아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
던 그 족속들을 더 이상 쫓아내 주시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시는 목적을 밝혀준다. 그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 (22절 하반)고
하였다. 여기 "시험"이란 말(* )은 시련(試鍊)을 의미한다. "시험하려 함이라"고
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할 때에 그 땅에 남아있는 가나안 족속으로 인
하여 연단을 받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신약 시대에 잘 믿는 신자들의 주위에도 가시와 같이 괴롭게 하
는 시험거리들을 남겨두신다. 그가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역시 그들을 시련하시려는
데 있다. 신자들은 시련을 통하여 성화(聖化)되어 간다. 벧전1:6-7; 욥 23:10 참조.
사사기 제 3장
=====3:1
<블레셋족의 단지>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 '가나안 전쟁'은
B.C. 1405년경부터 약 5년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창12:7;출3:8)에
들어가기 위해 수행했던 정복 전쟁을 가리킨다. 이 엄청난
전쟁은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신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과거에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없는 큰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았던 장로들이 죽은 뒤 그들을 이은 세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큰 일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었다(2:10).
그래서 이 전후(戰後) 세대는 그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몸소 향유하면서도 전쟁의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
엘의 구원자로서 그들의 주와 왕이 되시니, 이스라엘은 마땅히 그 하나님을 그들의 왕
으로 섬겨야 했다(출 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렇지 못하였으
니 본절은 이를 암암리에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시험하려 하시며 - 전쟁의 경험이 없는 여호수아 이후 세대들에게 전쟁을 친히 겪
게 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경험하게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3:2
그것을 기르쳐 알게 하려 하사 - '그것'이란 1절에 언급된 '전쟁'을 의미한다. 그
런데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가나안 족속을 남겨 두신 본래 이유와 조화되
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남겨 놓으신 이유는 분
명 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
오게 하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달리 본절에서는 가나안족속을 남겨 놓
은 이유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
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유약한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전쟁의 기술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쟁을
통해 하나님 당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알리시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호수
아 당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쟁의 승패가 사람수의 많고 적음이
나 병기(兵器)의 우수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
실(삼상 17:47)을 익히 체험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사후 세대들에
게도 남아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오직 그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모든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돌아서는 데 있음을 가르쳐 주려 한 것이다
(A.C.Hervey,A.E.Cundall,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74).
남겨 두신 열국 - 곧 여호수아의 가나안정복 당시 미처 완전히 진멸되지 못했기 때
문에 여호수아 사후에도 가나안에 존속하고 있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3,5절). 그런데
본절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열국을 남겨 두신데에도 깊은 경륜(經綸)이 담겨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당시 이스라엘은 분명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
을 것이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 역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인간의 지혜로운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거해주는 일례
이다(사 55:8,9).
=====3:3
블레셋 - 그레데(Crete)에서 가나안 남부 해안 지대로 이주해 온 자들이다. 이들은
인종학상 노아의 둘째 아들 함(Ham)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가슬루힘' 지파(창 10:14)
에 속한다. 이들은 사사 시대는 물론(10:7 ; 13:1-16:31), 사울과 다윗 때(삼상
13:19-22 ; 14:52)와 남북 분열 왕조 동안 내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왕상 15:27 ; 사
9:8-12). 이후 이들은 성경에 예언된(슥 9:5-7)대로 알렉산더대왕 때에 완전히 멸망당
했다(B.C. 332).
다섯 방백 - 블레셋의 5대 성읍인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가드, 가사의 방백들
을 의미한다(수 13:3). 여기서 '방백'(* ,사레네이)이란 호칭은 그리이스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인 '코이라노스'(* ), 또는 '타이라노스'
(* )등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곧 블레셋인
들이 그리이스 지방으로부터 이주해 온 족속임을 간접적으로 증거해 준다.성경에서
'사레네이' 또는 이에 준하는 '세렌'(* )이란 호칭은 오직 블레셋족속에게만
사용되어졌다(16:5 ; 수 13:3 ; 삼상 5:8 ; 6:4 ; 7:7 ; 29:3,9 ; 대상 12:19). 한편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가나안 땅에 이주해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블레셋인들의 초기
중심지는 그랄(Gerar)이었다(창 20:1,2 ; 21:32,34). 그러나 이후에는 아스돗 등 다섯
도시의 방백들이 중심이 되어 블레셋을 이끌었다.
가나안 모든 사람 - 여호수아가 미처 다 정복하지 못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가리킨다. 1:1주석 참조. 당시 이를이 차지하고 있었던 땅의 경계에 대해서는 수
13:1-7에 상세히 언급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시돈 사람 - 시돈은 두로의 북쪽 32km, 베이루트(Beirut)의 남쪽 32km 지점에 위치
한 항구 도시로서, B.C. 2750여 년경 함의 아들 가나안이 낳은 장남 '시돈'(창 10:15)
에 의해 건립된 도시라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주로 이웃 도시인 두로(Tyre)
와 함께 언급되고 있다(마 11:21 ; 눅 10:13). 이 당시 두로와 시돈은 지중해 해상 무
역을 통해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가장 번성했던 도시였다.이후에이들은베니게인
(Phoenicians)이라고 불려졌으며, 이들이 거하던 베니게는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행 11:19 ; 15:3). 1:31 주석 참조.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 '바알 헤르몬'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수 11:17 ; 13:5에 근거해 팔레스틴 최북방 헤
르몬 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 일 것으로 추정한다(Lange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75). 다음으로 '하말어구' 역시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 분명치않다.혹자는 다메섹 북부 약 200km 지점의 오론테스 강을 끼고 있
는 수리아 성읍 '하맛'(Hamath) 부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Rawlinson). 그
러나 대개는 '하맛에 들어가는곳'(수 13:5). 즉 레바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바알
갓의 맞은편 북동쪽에위치한'르보(* , 어구)-하맛'일 것으로 추정한다
(Pulpit Commentary).
히위 사람 - 히위 족속은 가나안의 후손으로서 일반적으로(창 10:17 ; 대상 1:15)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 분류되어 진다.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참조. 그런데 이들 히위 족속은 대체적으로 호리족속과 동일시된다. 왜냐하면 히브리
어 '히위'(* )의 '와우'(* )와 '호리'(* )의 '레쉬'(* )가 혼동
되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서의 아내오흘리바마가 창
36:2에서는 히위 족속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 뒤에 가서는(창 36:20,25) 호리 족속
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아무튼 이들은 아마르나 시대(Amarna
Age, B.C. 15세기~14세기) 동안에 북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미탄니(Mitanni)라는 매우
중요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미탄니 왕국은 당시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대적이 되었고,
레바논 산지와 하맛 어구(수 11:3 ; 삼하 24:7). 그리고 기브온과 그 주변 도성에까지
이주해 살면서 가나안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끼친 그러한 영향력은 예루살
렘에 거하는 여부스인 중 한 지도자의 이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하 24:16에
'아라우나'라고 하는 어떤 여부스인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때의 '아라우나'
(*)는 '지도자'란 뜻을 가진 히위인 들의 호칭이었다(IDB).
=====3:4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 여기서 말하는 시험의 뜻은 1절에서 말하는 시험
의 뜻과는 다르다. 1절 주석 참조. 즉 여기서 '시험'이란 2:22에서 의미하듯 열국으
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괴롭혀 그들의 신앙을 재확립케 하는 연단 내지 검증 과정을 가
리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2:22 주석을 참조하라.
모세로...명하신 명령들 - 2:22에 나오는 '여호와의 도'와 같은 말이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 2:22 주석 참조.
=====3:5
마침내...거하여 -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수없이 반복하여 주신 말씀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있는 족속들을 다진멸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거나 통혼치 말며 우상 숭배치 말라는 것이었다(출 34:10-17 ; 신
7:1-5 ; 수 23:11-26). 그리고 그에 불순종할 시 따르는 징벌에 대해서도 익히 일러
주셨다(신 28:15-68). 그러나 이 모든 경고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려하던 죄악에 빠지고 만다. 즉 그들은 가나안족속들을 용납한
결과(1:19,21,27-36) 자연히 우상 숭배에 빠지고 이방인과 통혼하는 자리에까지 이르
렀던 것이다(6절).
가나안 사람과...여브스 사람 - '기르가스 족속'(신 7:1)을 합하여 소위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라 불리우던 자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할 때 그곳에
거주하던 자들로서 '가나안 후기 원주민'으로도 불리웠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여호수
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과 수 9:1-2 강해, '가나안의 일곱족속'을 참조하라.
=====3:6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 과거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지 조항을 이제 이스
라엘이 여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 조항이란 곧 신 7:3,4에 나오는 이방인
과의 통혼(通婚) 금지 명령이다.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와 그
것을 어졌을 경우의 결과가 분명히 언급되고 있다. 먼저 이방 결혼을 금한 이유는 이
방 여인과 결혼하므로써 이스라엘 백성이이방 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그 금지 조항을 어긴 데 대한 대가는 하나님의 진노와 이스라엘의 돌연한 멸망이
다. 사실 그릇된 결혼으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불행은 우리주변에서도 흔히 목격되
는 사항이다. 심지어 성경은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이한 결과
그들이 갖고 온 우상을 섬기고 마는 과오에 빠졌음을 보여 준다(왕상 11:1-8). 또한
창 6:1-5은 당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모하여 결혼한 결과 세상에 관영
한 죄악에 물들고 말았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 이러서도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는 권도(勸導)가 주어지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고후 6:14).
그들의 신들 - 이스라엘에 커다란 영향을 준 가나안 종교는 1929년 발굴된 우가리
트 문서, 즉 라스 솨마라서판(Ras Shamra)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
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들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엘
'(El) 신, 그의 아들인 '바알'(Baal) 신, 바알의 누이이며 아내인 '아낫'(Anath) 신
이 있다. 그리고 일명 '호론'(Horon)으로도 불리운 바알의 원수인 '못'(Mot)과 바다를
주관하는 '얌'(Yam) 일명 '리워야단'(Lotan) 신이 있다. 또한 아낫과 함께 가나안의 3
대 여신이라 불리우는 '아세라'(Asherah)와 '아스다롯'(Astaroth)신 등도 언급되어 있
다(F.M.Cross). 그 외에도 그곳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중요한 가나안 신으로서는 블레
셋인들이 섬기던 '다곤'(Dagon) 신이 있다. 이는 곡물의 신으로서 바알 신과 그성격이
비슷하여 바알과 이명 동신(異名同神)이 아닌가 추측된다. 라스 솨마라 지방에서 바알
신을 '다곤신의 아들'(The Son of Dagon)로 부르기도 했던 점은 이 사실을 뒷받침 해
준다(I.D.B.). 또한 라스 솨마라 서판에는 '그모스'(Chemosh, 삿 11:24) 혹은 '몰렉'
(Molech, 레 18:21), '밀곰'(Milcom, 왕상 11:5)등으로도 불리운 암몬 신이 언급되
어 있다. 이상과 같은 제반 신들에 관해서는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
과 본서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보다 참조하라. 아뭏든 이처럼 다양한
이방 신들이 숭배되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순수한 여호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가나안인과의 통혼을 엄격히 금지하는것도 한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바드'(* )는 단지 생각이나 말로
만 섬기는 것이 아니고, 몸과 인격 전체를 바쳐 섬기는 종교적인 섬김(Service)을 의
미한다(Lange). 그러므로 70인역(LXX)은 이말을 종교적인 의미에서극히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레이투르게인'(* )즉 '예배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3:7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원어 '솨카흐'(* )의
기본 뜻은 '잘못 놓다'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않고
마음 바깥에 내다 놓으므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망각한것을 가리킨다. 마
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마음중심에 여호와가 아닌 다른것을 모시고 살 때에는
하나님과 그분의 교훈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다.
바알들과 아세라들 - 여기서 '바알'은 '풍요'와 '다산'(多産)을 관장하던 가나
안의 고위 신이다. 그리고 '아세라'는 엘(El)의 아내이자 바알을 포함한 70명의 신의
어머니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참조하라.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이처럼 복수형으로 쓰여지고 있는 까닭에대하여서
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장엄 복수형으로서 신의 이름
에 흔히 사용되던 히브리어법의 한 형태이다. 즉 신의 존엄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복수형으로서 모양은 복수지만 그 뜻은 단수로 쓰인 경우이다. 그 한 예로 '하나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엘로힘'(* )을 들 수있다. 이는 복수형이지만 그렇다
고 해서 여러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창 1:1 주석 참조. 둘째, 이것
은 여러 모양,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들을 나타내기 위
해 쓰여진 복수형이다. 본문의 문맥상 위의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후자의 것이 더 타당
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당시 지역에 따라 여러 모앙, 여러 이름으로 섬겨지던 바알과
아세라를 자기의 이웃들과 더불어 섬겼던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 주석을 참조하라.
=====3:8
메소보다미아 - 메소보다미아는 '두 강사이'라는 뜻으로서 유브라데(Euphrates) 강
과 티그리스(Tigris) 강 사이의 광대하고도 비옥한 초생달 지역을 가리킨다. 그러나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그처럼 북방에 한정시킨다면, 이곳의 왕인 구산 리사다임이
'팔레스틴' 가장 남쪽 지파인 유다의 지도자 옷니엘과 싸우기에는 그거리상 지나치게
멀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9,10절). 때문에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이와 관련하
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곧 이집트와 앗시리아의 문서들이 메소보다미
아를 가리킬 때 주로 북방 메소보다미아를 의미했지만 간흑 그것은 오론테스(Orontes)
강이 있는 하맛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틴 북방 지역에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
이다. 따라서 본문의 메소보다미아를 오론테스 강 유역으로 보면 구산 리사다임 왕과
옷니엘의 싸움에 별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구산 리사다임 - 이 왕에 대한 기록을 성경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리사다임'에 해당하는 원어 '리쉬아타임'(* )은 '두 배나 악하다'는 뜻인
데, 아마도 이스라엘이 그에게 붙여 준 칭호인 듯하다. 그리고 '구산'이란 이름은 바
벨론왕 '니므롯'의 부친인 '구스'(창 10:8)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ary, Vol. II, p. 293).
손에 파셨으므로 - '팔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마카르'(* )로서 사람을
노예로 파는 것(신 21:14 ; 28:68)을 가리킨다. 2:14 주석 참조. 그런데 이 말은 간혹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될 때에도 사용되었다(사 50:1).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상과 달리
'항복하게 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
의 지배하에 놓이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3: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원어 '자아크
'(* )는 '힘을 다해 외치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극심
한 고통속에서 부르짖는 것을 의미한다(Lange).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바로의
압제로 인해 힘든 노역을 할 때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있다
(출 2:23).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
기들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방 우상 숭배죄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하나
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그러한 회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시금 구원의 손길을 베푸
시는 것이다.
한 구원자를 세워 - 여기서 구원자라 함은 사사(Judge)를 의미한다. 그런데 본서에
서 사사들에 대해 구원자란 명칭이 사용된 것은 사사들이 문자 그대로 단순히 재판만
을 수행하는 재판관(4:5)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위의 적들로부터 구해 주는 구원자의 직무를 수행했
기 때문이다 (15절;5:14;8:22).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6 주석을 참조하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 - 옷니엘(Othniel)이 정확히갈렙의아우인지
아니면 조카인지 하는 학자들간의 이견에 대해서는 이미 1:13에서 살펴보았었다. 그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 여기서 '여호와의 신'(* , 루
아흐 예호와)이란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 모로 활동 하셨던 성령을 가리킨다. 창 1:
2 주석 참조. 그런데 이러한 성령이 옷니엘에게 임하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과 능력이 그에게 주어진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특별한 소명이란 이스라엘 백성
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로부터 구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맡아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능력이란 그러한 소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가리킨다. 한편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은 구약 시대의 여러 인물들에게도 임
했던적이 있다(6:34;11:29;13:25;삼상 10:9,10;16:13;대상 12:18).여호와의 신은 가
끔 백성들 가운데 몇몇 사람에게도 임했으며(민 27:18;단 4:8), 어떤 사람에게는 특정
한 봉사를 수행토록 하기 위해서 임하기도 했다(출 31:3;35:31;민 11:25). 이는 오순
절 이후로(행 2:1-5)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에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과는 대
조적이다(요 14:17).
여호와께서...그 손에 붙이시매 - 옷니엘이 구산 리사다임에게서 거둔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주관적인 능력과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자 즉각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 하나님의 사랑
의 한 표현이기도하다(9절).
=====3: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옷니엘이 죽었더라 - 이와 같은 표현은 다른 사사
들의 행적을 마무리할 때에도 사용되었다(30절 ; 5:31 ; 8:28). 아무튼 본절은 옷니
엘의 활약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그치고 정치적, 종교적으로 평안을 얻
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백성들은 옷니엘이 죽자 또다시 죄악을 범하는 전철(前轍)을
되밟는데 그 결과 모압의 지배하에 놓이고 만다(12-14절).
=====3:12
이스라엘 자손이...악을 행하니라 -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은 40여년에 걸친 평화로
운 세월을 구가하는 동안(11절) 구산 리사다임의 수하에서 8년간이나 노예생활하던
때의 비참함(8절)을 까맣게 잊어버렸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잘못과 죄의 악순환은 사
사기 전반에 걸쳐 되풀이되는 바 그들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 그리고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완악한 백성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러한 잘못은 오늘날 우
리들도 범할 수 있다. 즉 평안하고 안락한 여건 가운데서 살다 보면 우리도 자칫 향락
과 정욕, 각종 죄악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그러한 때일수록 더욱더 경성하여 자신의
삶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힘써야할 것이다(빌 1:20).
모압 - '모압 족속'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롯의 딸 간의 근친 상간(近親相姦)에
의해 태어난 '모압'의 후손이다(창 19:30-38). 그들의 거주 지역은 사해 동쪽에 위치
한 고원 지대로서 해발 약 1,300m에 이른다. 한편 과거 그들은 출애굽 과정에 있던 이
스라엘이 그 지경을 통과하고자 요청할 때 이를 거절했었다(11:17). 그리고 발람에
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케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 앞에서
음란히 행하도록 만들었다(민 23:11 ; 24:10 ; 25:1-3).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하
여 하나님께서는 암몬과 모압 사람을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
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다(신 23:3-6).
에글론 - 이름의 뜻은 '젊은 황소'이다.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 초기 당시 모압의
왕이었던 자로서 여리고 부근의 요단 강서부 지역을 한때 강점(强占)하였었다(13절).
강성케 하사...대적하게 하시매 - 여기서 '강성케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하자크
'(* )는 '돕다', '붙잡다'는 뜻이다. 이는 곧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들
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도리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시려고 잡은 손을 놓으시
고 대신 모압을 권능의 손으로 붙드신 것을 의미한다.
=====3:13
암몬 - 롯과 그 둘째딸 사이에서 난 '암몬'(창 19:38)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
따라서모압 족속(12절)과는 형제국이 된다. 이들은 모압 북방의 랍바를 중심한 지
역에 거주하였는데 곧 요단 동편 지방이다(신 3:11). 이들은 역사상 이스라엘을 끊임
없이 괴롭혔으며(삼상 11:1-3 ; 왕하 24:2) 일찍이 모압 족속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가
나안 행군을 저지하려 방해하기도 하였다(신 23:3-6).
아말렉 자손 -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을 조상으로 하는 족속이다(창 36:15,16).
이들의 거주지는 팔레스틴 남방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광야지대였다. 이들은 사
사 시대 동안 미디안과 화합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히다가 기드온에게 격멸당하고 만 역
사도 지니고 있다(6:1-7:25).
종려나무 성읍 - 여리고 성을 의미한다(신 34:3 ; 대하 28:15). 이에 대한 보다 자
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말렉 연합군이 여리
고 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성읍이 여호수아 이후 얼마동안 강력한 요새
로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즉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선 이후 그곳
을 재건치 못하도록 저주를 선언했었다(수 6:26).때문에이후 여리고는 외적의 침
입을 방비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히 재건되지 못하였고 그 탓에 에글론의 연합군에게
쉽게 점령당하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295). 아무튼 이
들이 이처럼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모압 북쪽에 인접해 있던 르우
벤 지파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그 결과 그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요단
서편도 점령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 셈이 된다.
=====3:14
이스라엘 자손이...십 팔 년을 섬기니라 - 모압이 점령한 땅은 여리고 성뿐이다.
그런데 본절은 이스라엘 전체가 '모압 왕 에글론'을 섬긴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비
록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에글론을 섬긴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적 특성 때문
에 그처럼 표현한 듯하다. 즉 이스라엘은 비록 몇몇 개인이나 지파가 범죄하였어도 연
대 책임을 강조,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으로 곧잘 간주하였던 것이
다.
=====3:15
베냐민 사람...에훗 - 이스라엘의 제2대 사사인 '에훗'이 베냐민 출신이란 점은 어
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시 에글론의 압제하에 있던 여리고 성이 곧
베냐민지파에게 기업으로 할당되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수 18:21).
왼손잡이 - 원어 '이쉬 이테르 야드 예미노'(* )는 '오
른 손을 쓰지 못하는 자'란 뜻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오른손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70인역(LXX)을 이를 '암포테로덱씨오
스'(* ), 즉 '양손잡이'로 번역하고 있다. 따
라서 이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왼손이발달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이 같은 사실은베냐민지파중에
왼손잡이가 700명이나 있었던 점(20:16)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Lange, Matthew
Hen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p. 295 f).
그를 의탁하여...공물을 바칠 때에 - 여기서 '그를 의탁하여'란 말은 '베야도'
(* )로서 '그의 감독하에' 또는 '그를 통하여'란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이 모압에게 공물바치는 일을 에홋이 관리, 감독하였음을 의미한다(Keil & Delitzsch
Commantary, Vol. II, p. 296).
공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미느하'(* )의 원뜻은 '예물', '선물'이다
(KJV). 그러나 여기서는 속국의 백성들이종주국에게 바치는 '조공'(朝貢)을 가리
킨다(RSV, NIV).
=====3:16
【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규빗에는 두 종류가 있었
는데 곧 일반 규빗과 성전 규빗이다. 그중 일반 규빗은 신약 시대에도 널리사용되던
단위로 한 규빗은 45.6cm였다. 그리고 성전 규빗은 일반 규빗보다 손바닥 폭만큼 더
긴 53.2cm였다(겔 40:5). 본절에서는 에훗이 칼을 오른쪽 다리 옷 속에 숨겼다가 왼손
으로 빼어 사용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그 칼은 일반 규빗으로 한 규빗인 칼이었던
것 같다.
좌우에 날선 칼 - '칼'에 해당하는 '헤레브'(* )는 장검(sword) 뿐 아니라 단
검(dagger)을 포함한 모든종류의 예리한 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훗이 준비한 칼도
예리하게 양날을 세운 일종의 단검이었다.
=====3:17
비둔한 자 - '비둔한'에 해당하는 원어 '바리'(* )는 '통통한', '배부른',
'풍성한' 등의 뜻으로 살이 비정상적으로 찐 상태를 의미한다. 에글론은 참으로 비
만한 자였는데 그것은 그가 에훗의 칼에찔렸을 때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던 점으로
서도 알 수 있다(22절). 그런데 사사 시대 후기의 제사장 엘리도 심히 비둔한 자였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
져 죽었다. 이와 관련 성경 기자는 엘리가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 때문이라고 언급
하였다(삼상 4:18)
=====3:19
길갈 - 성경에는 이름은 같으나 실제로는 다른 곳인 '길갈'이 여러 곳 나온다. 즉
여리고 근처의 길갈(수 4:19)이 있는가 하면 갈릴리 지역의 길갈(수 12:23), 유다 경
계지의 길갈(신 15:7)도 있다. 그 뿐 아니라 에발 산 근처의 길갈(신 11:30) 및 엘리
야와 엘리사가 관계된 길갈(왕하 2:1)도 있다. 여기서는 그가운데 사무엘의 순회 통치
지이기도 하였던(삼상 7:16) 여리고 근처의 길갈을 가리키는 듯하다.
돌 뜨는 곳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페실림'(* )의 기본 뜻은 '새
기다'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한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3가지로 집약되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채석장
의 의미 : KJV와 Living Bible은 이 해석을 취한다. 이것은 '돌을 뜨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파살'(* )에 따른 번역이다(Keil). (2) 기념 비석의 의미 :이
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강을 건넜으므로
이를 기념키 위해 여호수아는 길갈에 돌을 세운 적이있다(수 4:19-24). 그래서 이곳
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잘 알려진 곳이 되었는테 '페실림'은 바로 그곳에 세워진 기념
비석들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A.E. Cundall). (3) RSV, NIV, 공동번역에는'페실림'
이 '새겨진 돌' 또는 '우상들'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서도 '페실림'
이 '우상'의 의미로 사용된 곳이 있다(신 7:25 ; 사 21:9 ; 렘 8:19). 이 세 가지 해
석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세번째 견해이다. 그 이유는 '페실림'이란 단
어가 성경 다른 곳에서 대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단어의
단수형 '페셀'(* ) 역시 '새겨진 형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Lange, C.F.
Pulipit Commentary).
은밀한 일 - 공동 번역은 이를 '은밀히 드릴 말'로 번역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
이 들어서는 안 되는 '비밀 정보' 곧 보안을 필요로 하는 중대사(重大事)를 가리킨다.
=====3:20
서늘한 다락방 - 고대 근동 지방의 건축 양식에 따르면 지붕 위에 통풍이 잘 되도
록 여러 개의 창문을 낸 다락방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낮의 더위를 피해 휴
식을 취했던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었던 장소도 이러한 다락방이었
다(막 14:15). 오늘날까지도 근동 지방에서는 지붕 위에 이러한 다락방을 만들어 쉬
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Shaw, Wycliffe Commentary).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고할 일이 있나이다 - 에훗이 실제로 에글론에게 전
달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본문에는 언급되어 있지않다. 그렇
지만 하나님께서 에홋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구원자로 세우실 때, 이미 그에게 에
글론을 죽이고 그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백성을구하라는 명령을 주셨을 것이다
(15절). 따라서 여기서 '하나님의 명'이란 바로 그러한 명령을 가리킨다고 본다면 에
홋은 단순히 에글론을 암살키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Matthew
Henry). 에훗이 모압과의 전투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
압사람을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28절)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소명을 받았
기 때문일 것이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 혹자(Bertheau)는 에글론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일
어났다고 해석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97). 그러나 본문에는
그러한 의미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 그는 에글론이 말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
엇인지 너무 궁금하여 일어났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에훗의 말이 매우 비밀한 내용
을 담고 있는것으로 추측하여 더욱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에홋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좌석에서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3:21
에훗이...왕의 몸을 찌르매 - 이에 대하여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에글론에게
전달될 하나님의 명령(20절)이 에글론의 귀가아닌 가슴(heart)에 즉각적으로 그리고
말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강해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136).
=====3:22
칼자루도...등뒤까지 나갔고 -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칼날이 에훗에 의해 힘있
게 에글론의 몸에 꼽혔음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칼을...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 이 역시 하나님께서 에글론에게 내리신 심판을
거두지 아니하시므로 죽음의 저주가 끝까지 에글론과 함께 하였음을 강조하는 구절이
다. 한편 혹자는 이상과 같은 에훗의 암살 행위에 대하여 그 정당성을 의문시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에홋의 행위는 성경에 나오는 여타 암살 행위(삼하 2:27 ;4:6)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즉 일반적으로 암살 행위는 사적 원한과 야비한정치욕(政治慾)에
서 비롯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홋은 엄연한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하나님의 명
을 받들어 에글론을 응징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에훗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평가해야 한다.
=====3:23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 에홋은 암살을 은폐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있는 문들을
닫아 잠갔다. 다락방 안에 왕이 있을지라도 문이 잠겨 있으면 신하들이 왕의 허락 없
이 출입할 수 없다는 점(24절)을 에훗은 십분 이용한 것이다.
=====3:24
발을 가리우신다 - 이러한 말은 히브리인들의 관용적 표현으로 사람의 생리적인 현
상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즉 이 말은 '용변을 보다' 또는 '잠을 자다', '휴식을
취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삼상 24:8에서도 이 같은 말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용변
을 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모압 왕 에글론이 발을 가리운 곳
이 다락방으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잠을 자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다락
방은 담화 장소(삼상 9:25)나 기도처(단 6:10) 이외에 거실로도사용된곳이었다
(행 1:13).
=====3:25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 성경 원문(* ,와야히루 아드 보쉬
)에는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때까지 기다렸다'(And they tarried till they
were ashamed)로 나와 있다. 이는 곧 왕이 너무 오래동안 지체하자그때서야 비로소
심상치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고서 자신들이 방심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주가 이미 죽어 - 신하들은 왕이잠을 자고 있는것으로생각했는데 과연
에글론은 영원한 잠을 자고 있었다(Matthew Henry).
=====3:26
스이라 - 본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지명이다. 따라서 '스이라'
는 그 말의 뜻대로 '삼림' 지역을 의미하는 것 같다(Hervey). 27절은 그곳이 에브라임
산지의 어느 한 곳이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곳은 에훗이 추적자들로부터 피하기 쉬
은 곳이다.
=====3:27
에브라임 산지 -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 중 울창한 삼림이 있는 구릉 지대를 일컫는
다. 이곳은 가나안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개 에스드랠론 평지에서부터 유다 산지와
맞닿는 지점까지의 지역을 가리킨다(수 16:1). 비교적 토양이 비옥한 곳이었으므로 수
확물도 많이 났었다고 한다.
나팔을 불매 - 이처럼 에훗이 나팔을 분 것은 백성들을 소집할 뿐 아니라(6:34;삼
상 13:3) 동시에 전쟁과 같은 비상 사태를 선포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3:28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붙이셨느니라 - 이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
나님의 계획과 권능을 확신한 지도자 에홋이 이스라엘을 통솔한 것은 당시 이미 자기
들의 왕 에글론을 잃고 지휘 체제를 갖추지 못한 모압군과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고 할 수있는데 실제로이스라엘
은 모압군 일만명 가량을 죽이는 대승을 거둔다(29절).
요단 강 나루를...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 여기서 말하는 '요단 강 나루'는 모압
땅 맞은 편, 여리고 앞의 요단 강 어느 한 지점일 것이다. 한편 에훗이 이처럼 요단
강나루를 지킨 데에는 이중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있던
모압군(13절)이 강을 건너 모압땅으로 도망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
른 하나는 모압 본토에서부터 소식을 들은 모압인들이 원군(援軍)은 형성, 요단 강을
넘어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에훗의 봉쇄 작전은 주효(奏效)하였는바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침입하였던 모압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
아낸다(29,30절).
=====3:29
다 역사요 용사라 - 여기서 '역사'는 원어로 '솨멘'(* )으로서 '신체적으로
강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용사'는 '하일'(* )로 전쟁에 능한 '용사를 의미
할 뿐 아니라 재산이나 권세 같은 것을 갖추어서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도 의미
한다(룻 2:1).
=====3:30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이는 이스라엘이 사사 옷니엘의 치하에서 누렸던 태
평 시대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이다(11절). 그리고 전 사사 시대를 걸쳐서도 한 사
사밑에서 가장 긴 평화를 누렸던 기간이기도하다(5:31;8:28;10:2, 3;12:7-15;16:31).
=====3:31
삼갈 -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과 더불어 6인의 소사사로 불리우는 자이다.
본서 서론, '이스라엘의 사사들' 참조. 한편 삼갈에 대해서는 본절 외에 여자 사사
드보라의 노래에서 한번 더 언급된다(5:6). 그렇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대의 형편에 대
해서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에홋의 뒤를 잇는사사로서
드보라의 활동 시기에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에홋 당시 이스라
엘은 80년 동안 태평했으니(30절) 아마 삼갈은 에훗이 죽고 난 후 드보라가본격적으
로 활동하기 전의 일시적 혼란기, 즉 일부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때에 잠시
사사로 활동했던 것 같다.
소 모는 막대기 - 당시 팔레스틴이나 수리아에서는 밭을 갈 때 길이 약 2.5m 정도
되는 둥글고 두꺼운 막대기를 사용하였다 한다.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뾰족해서 소를
몰 때 찌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조그마한 삽이 달려 있어서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 p.299).
그런데 삼갈이 이처럼 무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막대기를 가지고 600명의 블
레셋인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또 다시 배후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증거해
준다.
사사기 제 4장
=====4:1
에훗의 죽은 후에 - 에훗의 죽음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능력을대행한지도자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또 다시 이스라엘이 타락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으
니 에훗의 치하에서 누렸던 것과 같은 평화(3:30) 역시 끝나게 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또...악을 행하매 - 사사 시대의 일반적 사회 현상(2:19)을 다시 한번 보여 주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던 이스라엘(3:9)이 이처럼 또다시 죄악의 길에
빠져 든 것은 마치 방금 목욕한 돼지가 다시금 오물탕 속에서 뒹구는 것과 같이 어리
석고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는 한번 빠져 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죄의
속성을 여실히 증거해 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삼가 자신을 살펴 무릇 악은 모양이라
도 버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살전 5:22).
=====4:2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 - '하솔'(Hazor)은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하는 북
부 가나안 성읍 중 하나(수 19:36)로서 가장 강력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새에 해당
하였다(A.E. Cundall).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 이곳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
한 메롬 호수(수 11:5,7) 부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이전에 이미여호수아
의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납달리 지파의 지배하에 있었다(수 11:1-14). 한편 여호수
아가 그곳을 점령할 때도 '야빈'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었으나(수 11:1), 본절의 야빈
은 그 당시의 왕과 동일 인물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때로부터 벌써 1세기가
훨씬 넘은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하솔을 다스렸던 '야빈'이라는 칭호의 또 다
른 왕으로 보아야 한다. 아마 '야빈'(Jabin)이란 말은 애굽 왕의 공식 칭호인 '바로'
(Pharaoh)나 블레셋 왕의 공식 칭호인 '아비멜렉'(Abimelech)처럼 하솔 왕을 가리키는
공식 칭호였던 것 같다. 한편 그가 여호수아 군대로부터 하솔성을 어떻게 되찾아 세력
을 키웠는지는 알수 없으나 아마도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남아 있던 벧세메스와 벧아
낫 거민을(1:33)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것 같다.
이방 하로셋 - '이방'에 해당하는 원어 '고임'(* )은 '열국'(nations)의 의
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어떤 백성이나 지명에 대한 고유 명사인지, 아니
면 여러 족속의 집단을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개역 성경 창 14:1과 수
12:23에서는 이 단어를 고유 명사로 생각하여 문자 그대로 '고임'이라 하였다. 그리고
사 9:1에서는 '고임'을 '갈릴리' 지역과 동의어로 보고 '갈릴리'로 번역하였다. 그러
나 본문에서는 '고임'이란 단어에 정관사가 붙어 있으므로 이는 고유 명사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임'이란 당시 '하로셋'에 거하던 가나안 여러 족속을 지칭하는
듯하다. 한편 하로셋(Harosheth)이란 지명은 성경 중 이곳에만 나온다. 따라서 이곳
역시 그 위치가 분명치 않은데, 디베랴 호수 남쪽의 갈릴리 평원 어느 한 지점이었던
것 같다.
=====4:3
철병거 - 고대 전투에서 철제 병기의 사용은 전략 전술에 못지 않게 승리의 관건으
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당시 이 무기를 가지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철병거를 지닌
가나안 거민 중 많은 족속을 쫓아내지 못했다(1:19). 이는 곧 당시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평야 지대를 많이 점령치 못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철병거'는 산악 지대
에서는 사용될 수 없고 오직 평야 지대에서만 사용되는 전투 장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 관련, 당시 가나안인들이 향유했던 철제 문화에 관해서는 1:19 주석을 참조하라.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 고로 -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란 전체 12지파를
가리키지 않는다. 대신 하솔을 중심한 일대(2절)의 납달리지파 내지 그 지파를 중심한
북부 지역의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6,10절). 왜냐하면 당시 야빈이 철병거 900승
으로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를 점령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한
편 여기서 '학대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라하츠'(* )는 '비틀어 짜다'는 뜻이다.
이는 곧 포도즙을 짜기 위해 밟아 으깨듯 이스라엘에 대한 야빈의 압제가 매우 혹독했
음을 시사해 준다.
=====4:4
랍비돗의 아내...드보라 - 랍비돗이 어떠한 자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상에 언급이 없
다. 다만 그 이름의 뜻은 밝혀졌는데 곧 '번개' 또는 '횃불'이다. 때문에 일부 유대
주석가 및 몇몇 학자(Wellhausen, 1844-1918, 독일의 신학자)들은'랍비돗'이 바로
'바락'(6절)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바락'이란 이름의 뜻 역시 '번개'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보라는 곧 바락의 아내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 그 어디에
서도 드보라가 바락의 아내로, 바락이 드보라의 남편으로 언급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상의 견해는 전혀 신빙성이 없다. 한편 또 다른 학자(Lange)는 '랍비돗'의 뜻이 '횃
불'인 점을 중시 '랍비돗의 아내'란 말을 '드보라'를 수식해 주는 수식어로 보기도 한
다. 그리하여 이를 '불꽃과 같은 여인...드보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역시 '아내'
란 말을 '여인'으로 대치하는 등 지나치게 의도적인 해석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는 랍
비돗을 문자 그대로 드보라의 남편으로 보아야한다. 다만 성경상에서 더 이상 그에 대
한 언급이 없는 까닭은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여선지 - 성경에서 여자로서 선지자직을 감당한 자로는 드보라 외에도 모세의 누이
미리암(출 15:20)과 훌다(왕하 22:14)을 들 수 있다. 즉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예언
자적 기능을 은사로 받았던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 당시 선지자가 어떠한 역할을 담
당했는지 등에 관해서는 삼하 12:1-14 강해, '선지자의 사명'을 참조하라.
=====4:5
에브라임 산지 라마 -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한 '라마'(수 19:36)와는 분명히 구
별되는 곳이다. 본절의 라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수 18:25) 예루살렘북쪽 약
9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훗날 예레미야 선지자가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렘 31:15;마 2:18)라고
읊었던 라마가 바로 이곳이다.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 '드보라의 종려나무'란 이름은 드보라가 종려
나무 아래서 재판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본서 저자가 본서를 기록할 때에도
그 나무가 '드보라의 종려나무'로 알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여 그렇게 칭하
였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드보라가 그 종려나무있는 곳에서 살았다는 것인지, 그곳
에 앉아 재판만을 주관했다는 것인지 하는 점에 있다. 본문의 문맥만으로서는 잘 해결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거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 )가 '거주하다'
란 의미와 '앉다'라는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려나무'가 드
보라의 재판과 관련하여 언급되었으므로, 이는 그녀가 재판시마다 그곳에 앉아서 재판
을 진행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더 낫다.
재판을 받더라 - 사사 시대 당시 재판하는 일은 사사의 임무 중 하나였다. 2:16 주
석 참조. 즉 사사는 전쟁시에 자기 민족의 구원자 역할을 담당했지만 평상시에는 백성
들의 송사를 맡아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했다. 특별히 드보라는 여자로서 사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하여 '대언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으
로 풀이된다. 그래서 저자는 드보라의 이름을 언급할 때에 '여선지'(*
, 이솨 네비아)라는 말을 덧붙였던 것이다(4절).
=====4:6
거처하였었다(5절). 그런데 그녀가 멀리 북쪽 지방인 납달리 게데스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바락을 부른 것은 곧 지파간을 초월한 그녀의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준다. 즉
드보라는 비록 자기 지파가 아니었지만 당시 납달리 및 북쪽 지방의 지파들이 야빈의
압제하에 당하는 고통을 간과치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납달리 출신의 사사 바락을
불러 문제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납달리 게데스 - 납달리 지파가 얻은 견고한 성읍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성중 하나
이다(수 19:37). 이것은 유다 지파에 속한 '게데스'와 구별되는데(수 15:23), 야빈의
도성인 하솔 성에서 동북쪽 4.8km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너는...가라 - 이처럼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그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수행토룩 한 까닭은 그 자신이 여자였기에 직접 군대를 지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 추측컨대 이들은 하솔 왕 야빈으로부터 가장 많은 괴
로움을 당한 지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대적을 치는 데 선봉장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5장의 드보라의 노래에는 이 두 지파 외에 다른 지파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 전투에는 납달리, 스불론 지파와 인접한 잇사갈 지파도 참여했음
에 분명하다(5:15).
다볼 산 - 해발 약 528km 되는 산이다. 이곳은갈릴리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이스르엘 골짜기에 속해 있다. 초대 교회 전승(A.D. 4세기경)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그 모습이 변형되셨던 변화산(마 17:1-8;막 9:2-8;눅 9:28-36)이 바로 이
다볼 산이라고 하는데 분명치 않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2). 드
보라가 야빈과의 접전지(接戰地)로 이곳을 택한 이유는 아마 그곳이 하솔 왕 야빈의
철병거(3절)가 다다를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4:7
기손 강 - 다볼 산과 그 부근 지역에서부터 발원하여 이스르엘 꼴짜기를 따라 흐르
다가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따라서 이 강은 잇사갈, 스불론 그리고 아셀 지
파의 지경(地境)을 모두 거쳐 흐른셈인데, 총 연장 길이는 약 40km이다. 전해지는 바
에 의하면 겨울의 강우기에는 풍부한 수량으로 인해 이곳 물이 범람하므로행인들의
통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한다. 특히 이 강 주변에는 넓은 평야인이스르엘 평지가
있어 철병거가 움직이기 용이하였으니 시스라가 이곳에 그의 군대를 집결시키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되어진 것이었다.
그를 네손에 붙이리라 - 여기서 '붙이다'에 해당하는 원어 '나탄'(* )은 '꼼짝
못하게 하다' 또는 '패하게 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대적
에게 내어 주시어 패하고 종노릇하게 한 것을 '팔다'라는 말로써 나타낸것과 같은 표
현이다(3:8). 즉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완전히 패하였듯이 이제 야빈과 시스
라의 군대가 꼼짝없이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말리라는 강조적 표현이다.
=====4:8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 이와 같이 바락은 반드시 전쟁에 드보라와
함께 출전(出戰)하겠다고 고집했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견해가 분분하지
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견해로 압축된다. (1)바락이 드보라의 예언을 믿
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Bertheau). (2)바락은 대적들과 전쟁하는 것이 두려워 예언
의 능력을 지닌 여선지 드보라와 동행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G. Bush). (3)바락이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 대하여 자신이 그 소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
에 드보라와 동행하기를 요청했을 것이다(Keil, Lange). 이상과 같은 세 견해 중 가장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 견해는 세번째 해석이다. 왜냐하면 모세도 과거 하나님으로부
터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약점을 앞세워 거절하고자 시도했으며(출 4:10), 사사 기
드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 자신의 비천함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자 시도했
기 때문이다(6:15). 사실 만약 바락이 불신앙적이거나 대적들을 정말로 두려워 했다면
결코 하나님과 드보라에 의해 야빈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선봉장으로 선택될 수 없
었을 것이다.
=====4:9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 이처럼 드보라가 순순히 바락과의 동행을 허락한
까닭은 물론 바락을 격려하며 그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함이었기도 하다. 그러나 보
다 중요한 이유는 아마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지시와 명령을 받아 바락에게 대언하기
위함이였을 것이다(Matthew Henry).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그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 어떤 이는 드보라가 바락의 요
구(8절)로 인해 불쾌하여 본절과 같이 말했다고 주장한다(A.E. Cundall). 그러나 이러
한 주장의 근거는 본절 전후 문맥 어느 곳에서도 암시되어 있지 않다. 단지 본절은 바
락이 시스라의 군대와 싸워 승리할 것이지만 결정적인 승리는 여인의 손에 의해서 이
루어질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17-24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많고 적음이나 훌륭한 병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의뢰하는
믿음에 달려 있음을 바락에게 깨닫게 해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삼상 17:47).
게데스로 가니라 - 혹자는 여기에 언급된 '게데스'는 '납달리 게데스'(6절)와 동일
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A.E.Cundall). 왜냐하면 드보라와 바락이 현재 만나서 이야
기 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이 '납달리 게데스'인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라마와 벧엘 사이에 거하고 있던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 게데스
에 살로 있던 바락을 불러온 것으로 되어 있다(6절). 따라서 이 드보라와 바락이 군사
를 모아 다볼 산으로 출전하기 위해(12절) 우선 납달리 게데스로 올라간 것은 전혀 문
제가 되지 않는다.
=====4: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부르니 - 이로 미루어 보아 당시 바락은 가나안 북부
지방의 이스라엘 지파를 통치하였으며 많은 추종자들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
한 바락의 권위는 분명 군사를 모집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이다.
그를 따라 올라가고 - '올라가다'에 해당하는 알라(* )는 군대의 움직임과 관
련되어 사용될 때에는 전투가 예상되는 어떤 장소로 그 군대가 진격하는 것을 가리킨
다(수 7:2;삼상 24:22;왕상 9:16;14:25;20:1;대하 35:20).
=====4:11
모세의 장인 호밥 - 성경상에서 혼란을 일으켜 주기 쉬운 구절이다. 왜냐하면 성경
의 다른 곳에는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르우엘'(출 2:18;민 10:29) 또는 '이드로'(출
3:1;4:18:18:1)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학자들은 르우엘이 본명이며 이드
로는 모세의 장인이 제사장이 된 후에 얻은 공식 존호(尊號)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호밥'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 대개의 학자들은 모세의 처남인 것으로 본다. 그 근
거는 '장인'과 '처남'을 뜻하는 히브리어가 모두 동일한 '호텐'(* )이기 때문인데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20:29 주석을 참조하라.
겐 사람 헤벨 - 모세의 장인이 바로 이 겐족 출신인데(1:16), 성경 다른곳에서는
미디안 출신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출 2:16;3:1;민 10:29). 이로 볼 때 겐족과 미디
안족은 일찍부터 상호 친밀한 유대 관계를 이루었거나 아니면 서로 동화되어 한 민족
을 이룬 것 같다. 아무튼 '겐 사람'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6 주석을 참조하
라. 한편 드보라와 바락에 관한 기사 도중 갑작스레 겐 사람 헤벨이 언급되고 있는 까
닭은 이후 전개되는 시스라와의 전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자가 바로 이 '헤벨'의 아
내인 '야엘'이기 때문이다(17-24절). 즉 본절은 헤벨의 아내 야엘의 가문과 신원을 미
리 소개할 목적으로 삽입된 것이다.
자기 족속을 떠나 -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자손들은 팔레스틴으로 이주 후 유다 지
파의 경내에서 거주했다(1:16). 그런데 헤벨은 그 가족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납달리
지파의 경내인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을 등지고 이스라엘의 압제자 하솔 왕 야빈과 손을 잡았다(17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는 도리어 그러한 헤벨의 아내를 들어 쓰사 시스라를 죽였으니 인간이 미처헤아리기
어려운 깊고 오묘한 섭리를 잘 드러내 준다.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 문자적으로 이 말은 '사아난님에 있는 상수리 나무'란 뜻이
다. 무슨 사연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나무는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던 것 같다. 한편 '사아난님'(Zaanaim)은 납달리 지파의 남쪽 변경에 위치한 한
장소이다(수 19:33). 오늘날 '칸 엣 투잘'(Khan et Tujjar)로 불리우고 있는데 아다미
(Adami) 남동쪽 약 6.4km 지점의 '벧스안-다메섹 도로'의 중도에 위치해 있다.
=====4:12
다볼 산에 오른것 - 바락과 그의 군사 일만 명이 다볼 산을 거점으로 전투 태세를
취한 것을 가리킨다.
=====4:13
시스라가...온 군사를...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 이것은 드보라의 예언이(7절) 성
취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 다른 때에는
거의 말라 있는 건조천(Wadi)이며, 그 주위에는 평지가 형성되므로 시스라가 철병거를
배치시키기에 적당하였을 것이다. 7절 주석 참조.
=====4:14
일어나라 - 이것은 '마음을 굳게 하여 전투에 임하라'는 의미이다(수 8:7). 일반적
으로 이 말은 어떤 일로 인해 심령이 위축된 사람에게 '힘을 내라'는 격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수 7:10). 그런데 드보라가 이처럼 바락에게 담대히 명령을 내릴 수 있었
던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친히 인도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즉 드보
라는 과거 출애굽 노정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앞장서서 싸우시고 앞길을 인도해 주셨
던 하나님께서 이제 시스라와의 싸움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시리라 굳게 믿었던 것
이다(출 13:21;14:14).
이는...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 즉 오늘이 20년 동안 가나안 왕 야빈으
로부터 받았던 압제(3절)에서 해방되는 날이며, 그 위대한 역사는 바락에 의해 이루어
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스라를 죽인 자는 바락이 아닌 야엘(21절)인데
이는 이미 드보라가 예언한 바이다(9절).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적인 장군
은 바락이 아닌 바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을 대
행하여 전쟁을 수행하던 자인 바락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또한 바락이 수행하
는 전쟁에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하셨다는 사실은 바로 그 전쟁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하솔을 징계하기 위한 전쟁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난 하솔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한 거룩한 전쟁임을 시사해 준다(신 9:3;삼하 5:24;시 68:7;사 52:12). 이
와 관련해서는 수 5:13-15 강해, '성전'(聖戰)을 보다 참조하라.
바락이...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 드보라와 바락의 탁월한 전략을 보여 주는 장면
이다. 즉 그들은 시스라의 군대가 기손 강 평지에 집결한 것을 보고서는(13절) 다볼
산 고지에 매복시켜 두었던 일만 명의 군사들로 하여금 일시에 기습 작전을감행토록
한 것이다.
=====4:15
패하게 하시매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와야함'(* )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에 의해 그 군대가 참패당하는 것을 의미한다(출 23:27;수 10:10;시 144:6). 즉
이는 과거 하나님께서 바로의 병거와 마병을 홍해에 수장(水葬) 시키셨듯이(출
14:23-31) 이적적으로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하신 것을 가리킨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4). 이같은 사실은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행하시고 있다는
드보라의 말(14절)과 매우 잘 어울린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 이처럼 시스라가 병거를 버리고 도망
친 까닭에 대해서는 5:21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갑작스럽게
기손 강을 범람케하사 그 주변 평지에 집결해 있던 시스라의 철병거와 군사들을 휩쓸
어 버리게 하신 것으로나와 있다. 그러니 자연 진흙탕이 된 평지에서 철병거는 무용지
물(無用之物)이 되버렸고 시스라는 도보로라도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초자연적 방법으로 시스라의 군대를 격파하셨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4:16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 기손 강이 범람한 물로 인하여 바닥이 질펀
해지자 기동력이 떨어지고 만 시스라의 군대와 그 철병거들을 바락의 군대가 일일이
추격하여 다 격멸시키려 한것을 가리킨다.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 시스라의 패잔병들이 도망간 곳은 '이방 하로셋'으로 시스
라가 거주하던 장소였다. 2절 주석 참조. 이로 보건데 시스라의 군대는 자기들이 주둔
하던 곳으로 도망쳐 원군과 합세하여 바락의 군대와 싸울 작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
다. 그러나 그들의 지도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들이 바락의 군대를 대항한다는 것은 부
질 없는 일이었다.
=====4:17
시스라가...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 헤벨의 가정이 거주한 사아난님 상수리 나
무 곁은 게데스와 인접해 있었으므로(11절) 당연히 야빈이 거주하던 하솔과도 매우 근
접해 있었을 것이다. 6절 주석 참조. 따라서 시스라가 이곳까지 도망한 것은 하솔 왕
야빈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시스라가 헤벨의 가정을 찾아갔
을 때 헤벨의 아내 야엘이 그를 알아본 점으로 미루어 보아 헤벨의 가정은 하솔 왕 야
빈 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유력한 인물들과도 늘 알고 지낼 만큼 그 지역에서 세력
있는 집안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헤벨은 자기동족 겐 족속을 보호해 주고 가나안
땅에 기업을 준 이스라엘 백성(1:16)과 나아가서는 그 기업의 주인되시는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만을 위해 간사하게도 이스라엘의 대적 야빈과 손을 잡고 살았음에 틀림
없다. 11절 주석 참조.
화평이 있음이라 - 비록 공수 동맹(攻守同盟) 관계는 아니지만 야빈과 헤벨 사이에
두터운 친교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서로다툼이나 분쟁이 없는상태를가리킨다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p.143).
=====4:18
나의 주 - '주'에 해당하는 원어 '아돈'(* )은 '주권자', '최고 통치자' 또
는 '주인'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 말이다(신 10:17;시 136:3;사
1:24). 여기서 야엘이 시스라를 가리켜 '나의 주'라고 말한 것도 그가 곧 자신의 생명
까지 관장할 수있는 자기 집안의 최고 통치자라는 뜻이 있는 바 이는 시스라에 대한
최고의 호칭이 아닐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 이러한 말만으로써는 야엘이 처음부터 시스라를 속이려 든 것
인지 아니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시스라를 환대하며 그의 처지를 위로하였으나 뒤에 하
나님께서 역사하사 마음을 돌이켜 먹고 시스라를 죽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야
엘은 시스라를 안심시키며 그에게 최상의 접대를 베풀었는데 이는 결정적으로 시스라
가 방심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I.p.143).
=====4:19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 바락의 추격을 피해 도망하느라 시스라가 얼마나 기진
한 채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그가 범죄한 결과 이 땅에서
도 이처럼 갈증을 느꼈는데, 하물며 죽은 후에 겪을 영원한 갈증이 어느 정도일런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눅 16:24).
젖부대 - 요세푸스(Josephus)는 이 부대 속에 있는 우유는 상한 것 즉 이미 변하여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탄훔(R. Tanchum)은 이 젖부대 속에
있는 우유는 완전히 지쳐 있는 사람이 먹을 때 그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05). 그러나 드보라의 노래에 나타나
있듯이(5:25) 이것은 엉긴 우유 곧 반쯤 '버터'가 된 최고급 우유임에 틀림없다(A.E.
Cundall). 그리고 그 우유를 담은 부대는 유목민들이 여행시 포도주나 물, 우유 등을
넣어 가지고 다니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것인 듯하다.
=====4:20
장막문 - 헤벨은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장막을 지어 거주했는데(11,18절),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직업이 유목이었음에 틀림없다. 특히 본절의 '장막문'은
아브라함이 유목 생활을 할 때 장막을 치고 장막문 앞에서 쉬었듯이(창 18:1) 유목 생
활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네게 묻기를...없다 하라 - 이처럼 시스라가 헤벨, 즉 남자의 거실을 피해 야엘의
장막(17절) 곧 여자의 거실에 숨어 들고서도 또다시 보안을 지켜 주도록 부탁한 것은
그가 심리적으로 극도로 불안한 상태에 있음을 반증해 준다. 그러나 정작 그가 안심하
고 몸을 의탁한 야엘의 거실이 바로 그의 사형 집행대가 될 줄이야! 이와 같이 하나님
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나(롬 8:28) 반대
로 하나님의 미움을 입은 자는 모든 일이 엉켜서 악을 낳기 마련이다. 즉 시스라는 야
엘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들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그를 찾아내어 심판
하신 것이다(시 139:7,8).
=====4:21
본절에서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자기들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시스라를 죽인 것은
그의 남편이 이스라엘을 버리고 이방인과 손을 잡은 것에 대해 속죄하는 의미가 내포
된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
다(시 127:2). 그러나 여기 시스라의 잠은 평안한 휴식을 취하는 잠이 아니었다. 그는
영원한 죽음의 잠을 앞에 놓고서 육신의 잠을자고 만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가던 요나가 배 밑창에서 곤히 잠을 잔 것과 흡사하다(욘 1:5).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 혹자에 따르면 고대 근동에서 생활하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장막 세우는 일은 주로 여인들이 하던 일이므로 여인들은 망치로 말뚝을 박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고 한다(G.F.Moore). 그렇다면 야엘이 장막 말뚝으로 시스라의 살
쩍, 즉 머리의 관자놀이(temple) 부분을 꿰뚫은 것은 어려운 일이긴 하나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 야엘은 시스라를 추격하는 바락에게 잠든 시스라를 넘겨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직접 그를 죽인 까닭은 아마 바락의 도착이
지연되는 동안 시스라가 원기를 회복하여 도망친 후 다시금 힘을 규합하여 이스라엘에
대항할 것을 염려했던 데서 비롯되었음에 틀림없다.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 여기서 '기절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에프'(*
)는 '탈진하다'는 뜻이다. 즉 시스라는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즉시로 까무러쳤으
며 그 후 발악과 더불어 죽어 갔던 것이다. 이로써 드보라의 예언(9절)은 온전히 성취
되었다. 한편 혹자는 야엘이 시스라를 안심시켜 깊이 잠들게 한 후 아주 잔인 무도한
방법으로 그를 죽였다 하여 그녀의 행동이 사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
나 이는 본문의 문맥과는 상치되는 주장인데 곧 야엘의 배후에서 역사하신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야엘의 마음을 주장하사 하나님의 영
광과 이스라엘의 구원,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해 이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다. 따라서
거기에는 어떠한 미움이나 사악함 그리고 개인적인 복수심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드보라와 바락도 그의 '감사 노래'(5장)에서 야엘의 신앙과 용기를 칭송한
것이다(5:24-27).
=====4:22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 즉 바락이 시스라가 도망친 것을 알고서는그 뒤를
추격, 이방 하로셋과 그 일대를 수색하던 때를 가리킨다(16절).
바락이...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 이로써 바락 역시 드보라의 예언(9절)대로
시스라를 죽이는 영예는 자신이 취하지 못하고 한갓 여인에 불과한 야엘에게 넘어갔음
을 분명히 깨달았다.
=====4:23
하나님이...패하게 하신지라 - 전쟁의 모든 과정에서 드보라와 바락 그리고 야엘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활약 때문에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이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방인을 징계하며 언약의 백성을 구원한 장본인은 바로
하나님이시니 그분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서 저자는 본
절을 삽입시켜 그 사실을 강조했던 것이다.
=====4:24
마침내...진멸하였더라 - 이스라엘이 정확히 언제 가나안 왕 야빈을 완전히 격멸시
켰는지는 성경상에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후로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기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보아 가나안 왕 야빈의 진멸 사건
은 가나안인들이 힘을 잃고 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사사기 제 5장
=====5:1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 본절만으로는 본장에 기록된 찬송이
'드보라'와 '바락'의 공동 저작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3, 7절에서 본 찬
송의 1인칭 주어가 '드보라'인 점을 고려할 때, 이 노래는 '드보라'의 저작임에 분명
하다(Keil, Hervey, Lange, Matthew Henry). 그렇다면 본절에서는 왜 두 사람이 노래
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가?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될 수 있다. 즉 드보라는 야
빈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기념하여 바락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했었다. 그리하여 히브리 노래의 한 유형인 화답송(和答
頌)의 형태로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여인들이 지은 노래로 본장 외에
'미리암의 노래'(출 15:21), '한나의 노래'(삼상 2:1-10), '마리아의 노래'(눅
1:46-55) 등이 있다.
=====5:2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 본절에 해당하는 원문은 '비페로아 페라오트
베이스라엘'(* )이다. 70인역(LXX)은 이를 개역 성경
과 거의 동일한 의미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인도로'(*
, 엔 토 아르크사스타이 아르케구스 엔 이
스라엘)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몇몇 학자들도 받아들이는 해석이다(S.R.Driver, C.A
.Briggs). 그런데 본절에 사용된 히브리어 '비페로아'와 '페라오트'의 동사형 '파라'(
* )는 '석방시키다', '(머리카락을) 풀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곧 상징적
의미로서, 그 정확한 뜻은 '힘을 과시하다', '힘을 발휘하다'이다. 이에 따라 본문을
다시 번역하면 '이스라엘의 힘 있는 자들이 힘을 다했고'란 의미가 된다((Keil & Del-
itzsch Commentary, Vol.II.p.308). 즉 이 말은 이스라엘의 두령들, 방백들(9절)이 힘
을 다해 충성했음을 가리킨다. 더욱이 이러한 해석은 이스라엘 시문서의 한 특징인 '
평행법'(parallelism)과도 잘 조화된다. 왜냐하면 본절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지도자들의 헌신과 대비되는 백성들의 헌신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Cundall). 그러
나 이상의 두 가지 해석 중 그 어느 쪽을 취하여도 상관은 없는데, 그 까닭은 둘 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헌신과 솔선 수범적 행위를 잘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
투에 참가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바락이 군사를 모집하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일만
명이 지원한 것(4:10)과 그외 여러 지파도 적극 조력한 사실(4,15절)에서 잘 나타난
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 본시(本詩) 전체의 내용은 언뜻 볼 때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
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용기 그리고 연합에 대하여 노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
러나 실제적으로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배후에서 친히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었다(3,5,11,13절).
=====5:3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 본절에도 역시 강조를 위한 '평행
법'이 사용되어 본문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왕
들'과 '방백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 말이 아니다. 그 근거로는 (1)당시 이
스라엘에는 왕이나 방백이 없었다는 점(17:6;18:1;19:1;21:25)을 들 수 있다. 또한
(2)'왕'이란 단어가 복수 형태를 취하여 여러 나라의 왕들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본절은 열방의 통치자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신이시며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유일하신 최고 통치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라 하겠다(Keil,
Lange, Wycliffe).
내가...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여기서 '찬송하다'에 해당하는 '자마르'(* )
는 '연주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단순히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
하여 찬송하는 것을 가리킨다(시 33:2;71:22;98:5;147:7;149:3). 이스라엘인들은 일찍
부터 하나님을 찬앙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그에 화답하여 노래 부르
는 예배법이 발달되어 있었다(출 15:20;삼하 6:5). 이와 관련하여서는 대하 5:11-22강
해, '공중 예배에 있어서의 음악과 악기'를 참조하라.
=====5:4
주께서...진행하실 때에 - 여기서 드보라는 자기 선조들의 출애굽 노정 때 하나님
께서 인도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회상하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 강림하셨다'는 모세의 회
상과 연관지어(신 33:2), 드보라는 야빈과의 전쟁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도우셨다
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세일...에돔 들 - 둘 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과정에서 지나온 사해남동쪽의
에돔인의 산지를 가리킨다. 신 33:2 주석 참조.
땅이 진동하고 - 출애굽 당시에 나타난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권능과 기이하신 역
사를 가리키는 말이다(Matthew Henry). 이와 같이 드보라는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권위
앞에 모든 피조물들이 두려워하며 떨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삼하 22:8;시 68:8;77:18;나 1:5;합 3:6).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 것을 뜻하는 시적
표현이다. 이는 노아 홍수를 연상케 한다. 즉 노아 홍수 때에도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땅의 샘이 터져 40주야 비가 쏟아졌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창 7:11,12). 이처럼
드보라는 하나님의 기이하신 능력을 찬양함에 있어서 과거 실제적으로 발생했던 사건
들을 중심으로 노래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생함을 더해주고 있다.
=====5:5
시내 산도...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 '시내 산'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에게 언약의 율법을 베푸신 장소였다(출 19:18).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모세와 대면하
실 때 그 주위는 연기로 자욱함과 동시에 온 산이 진동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에게 당신의 위엄과 영광과 권세를 나타내신 것이다. 출 19:16-19 주석 참조. 그런데
드보라가 여기서 그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드볼 산과 기손 강을 중심으
로 시스라와 싸워 대승한 사실(4:12-16) 역시 그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는 사
건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5:6
삼갈의 날...야엘의 날 -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족과 하솔 왕 야빈의 압제 하에서
고통당하던 때를 가리킨다. 이때 '삼갈'은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던 블레셋 사람 600
명을 소 모는 막대기로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었다(3:31). 그리고 '야엘'은 이스라엘
의 압제자 야빈 왕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를 지혜롭게 처치했었다(4:17-22).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 당시 이스라엘의 황폐상을 표현한 것이
다. 즉 당시에는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가 극심하여 상거래(商去來)도 없었으며 법질
서도 마비되어 있었기에 노상(路上)에서 약탈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었다. 때문에 약
탈, 폭행 등을 피하여 행인들은 큰길로 다니지 않고 소로로 다녀야 할 형편에 처해 있
었다. 다시말해 블레셋족과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은 경제가 핍절되었으며, 무
법 천지가 되어 백성들에게 평안이 없었던 것이다.
=====5:7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 KJV는 이를 '이스라엘에 마을 주민들이 끊어
지고 끊어졌다'(The inhabitants of the villages ceased, they ceased in Israel)로
번역하고 있다. 왜냐하면 KJV는 '관원'에 해당하는 원어 '페라존'(* )을 성
벽이 없는 마을의 주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주민들은
튼튼한 성벽이 있는 성읍으로 피신하기 위하여 마을을 떠난 셈이 된다(Lange,
Wycliffe).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페라존'을 '능력자' 즉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것으로 본다(Gesenius, Teller). 이는 70인역(LXX)도 '페라존'을 '능력 있는
자들', '힘 있는자들'(* , 뒤나토이)로 번역하고 있는것에 의해 뒷받침된
다. 따라서 본절을 뒷부분과 연결시켜 이해한다면, 당시 이스라엘에 강력한지도자들
이 없었음으로 부득불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뜻이 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II.p.311).
나 드보라가...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 야빈의 학정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에
는 참된 지도자가 없었는데, 드보라 자신이 이스라엘의 보호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어미'라는 표현은 욥이 자기에게 의탁하던 자들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빈궁한 자의 아비'라고 고백한것과(욥 29:16)같이 하나님께서 보낸 '보호자'란 의미
를 지닌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12) 다만 드보라는 자신이 여성이
므로 '어미'란 표현을 사용했으며, 욥은 자신이 남성이므로 '아비'란 표현을 사용했을
따름이다.
=====5: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에 이방인의 압제와 전쟁의 참화(慘禍)
가 임하게 된 원인이다. 즉 이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숭배함으
로써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 탓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여기서 우상과 이방
신들을 가리켜 '새신들'(new gods)이라 표현한 것은 그것들이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
은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신 32:17)이기 때문이다(Keil, Lange). 즉 이스라엘은 영원
하시고 참된 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마치 새 옷 입기를 즐기는 어린 아이처럼 새 신
(神)들을 섬긴 것이다(2:17;3:6,7).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 드보라는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에워싸고 곧 공략하려 드는 일촉 즉발의 위기 상황을 '전쟁이 성문에 미쳤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겐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할
무기가 변변찮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철병거를 지닌 하솔 군을 격멸시켰
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우셨기
때문이다(4:12-16,23,24). 따라서 드보라가 당시 이스라엘에 무기가 있었느냐고 반문
한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사만 명 - 시스라와의 싸움을 위해 출전하였던 이스라엘의 주력군은 스불
론과 납달리 지파 군사 일만 명이었다(4:10).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사만 명'은 어
떻게 된 것인가? 아마 이는 이들 주력군을 도와 같이 전쟁에 참전하였던 이스라엘 여
러 지파의 병력을 합한 대략적 수효일 것이다. 즉 14,15절을 보면 시스라와의 싸움에
는 비단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뿐 아니라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 반, 잇사갈 지파
등이 참여했었음을 알 수 있다.
=====5:9
앞 부분에서의 분위기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즉 6-8절에서는 이스라
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단하므로 압제자의 멍에에서 신음하는 모습이 묘사되
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본절에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고서
기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Goslinga). 더욱이 본절에서 드보라는 하나님
과 화해를 이룬 이스라엘 방백들이 시스라와의 전투에 즐거이 헌신한 사실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사실의 재차 반복이다. 2절 주석참조.
내 마음이...사모함은 - 이처럼 드보라가 이스라엘 방백들을 사모하였다는 말에 대
하여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를 다음과 같은 뜻으로 보았다. "나는 참으로 그
들을 사랑하며 존경한다. 그들은 영원토록 내 마음을 차지하였다. 나는 결단코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147). 즉 이는 곧 이스라엘
의 방백과 두령들이 자신을 도와 전쟁에 적극 참여하고, 솔선 수범한 것에 대하여 드
보라가 깊이 감사하고 있는 말이다.
=====5:10
흰 나귀를 탄 자들 - 이스라엘 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
다. 이것은 어린 나귀를 탄 것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한 신분임을 암시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10:4;12:14). 고대 근동에서 나귀는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창
22:3;수 9:4;느 13:15). 그런데 흰색의 나귀는 좀처럼 드문 짐승이니, 이것을 타고 다
닌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 아닐 수 없었다(Keil, P.Cassel).
화문석에 앉은 자들 - '화문석'은 오늘날에도 평민들이 구하기 힘든 귀하고 비싼
물건이다. 따라서 '화문석에 앉은 자들'이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부유하고 여유있
는 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길에 행하는 자들 - 일반 평민 또는 행상(行商)을 가리킨다. 이들은 압제자의 시대
에는 마음놓고 길을 갈수 없었으나(6절), 하나님께서 그 대적들을 훼파하셨으니
(4:12-24) 이제 안전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한편 이상과 같은 흰나귀 탄 자, 화문석
에 앉은 자, 길에 행하는 자들이란 결국 이스라엘 모든 계층, 모든사람을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선파할지어다 - 본문에는 어떤 사실을 선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
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다음에 이어지는 드보라의 노래 중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
(11절)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드보라는 백성들에게 압제자의 손에서 그들을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라고 가르친 것으로 추정된다.
=====5:11
활 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 여기서 '활 쏘는 자'란 다름아닌 이스라
엘의 대적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이스라엘을 얼마나 심하게 괴롭혔는지는 4:3에 잘 암
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 대한 대적들
의 압제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셨으니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시금 평화가 찾아든 것이다(10절).
물 긷는 곳에서도...칭술하라 - 여기서 '물 긷는 곳'이란 우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보통 고대 근동 지역의 우물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요 4:5-8,28). 그래서 이스라엘이
적의 압제 하에 있을 때에는 마음놓고 여인들이 물을 길으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제는 하나님께서 적들을 분쇄해 주셨으니 안심하고 물을 길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드보라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두고서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한 것이다.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백성들의 주요 회합
(會合) 장소였다. 그곳에선 비단 상거래 뿐 아니라 공식 재판, 중요 사항 공지, 친교
등이 이루어졌었다(창 19:1;신 21:19;느 13:19). 그러나 이스라엘이 야빈과시스라의
군대와 전쟁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회합이 이루어질 리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
엘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고(4:12-24) 다시금 팔레스틴에는 평화가 깃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백성들은 생활의 주요 무대인 성문으로 모여들 수 있었는데, 본절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5: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노래할지어다 - 드보라가 이처럼스스로에 대하여
네번이나 '깰지어다'는 말을 반복한 것은 자신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즉 그녀
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그 놀라움과 영광을 힘있게 찬송할 지도
자적 책임이 있었다(Matthew Henry).
바락이여...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 여기서 '사로잡은 자'란 바락이 시
스라군을 진멸할 때 생포한 포로들을 가리킨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이제 그들을 끌고
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라 하였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백성들
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케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Lange, Matthew Henry).
=====5:13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정에 시
달렸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재산과 가족을 외국으로 피신시키거나 아니면 그와중에서
적에게 살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야빈의 압제 하에서도(4:3) 굳건히 살아
남은 백성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곧 시스라와의 전투에 참여한 것을 가리킨다(4:6-10).
여호와께서...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 여기서 '용사'란 야빈의 군대 장관
인 시스라와 그의 군사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대적
과 싸우시기 위해 나서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여호와께서 강림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눈에 보이게 이 땅에 임하신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는 그분이 초
자연적인 이적으로 적들을 패퇴시키며 이스라엘을 도우신것을 가리킬 뿐이다(4:15).
=====5: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요 - 에브라임 지파 중 이번 전투
에 참가한 자들은 전에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12:15)의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그런데 70인역에 따라 RSV와 공동 번역에는 이 '아말렉'이 '골짜기'로 번역되어 있다.
아마 이는 과거 에브라임 지파의 영토 내에서 아말렉 족속이 거주했던 지역이 에브라
임 산지와 그 골짜기 주변이었던 점에 근거한 번역일 것이다.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 본절을 통해 볼 때 베냐민 사람들은 일개 지
파의 자격으로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대신 그들은 여러 지파들 틈에 섞여 일개인
적으로 참전(參戰)했던것 같다. 이는 아마 그들이 팔레스틴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었
던 탓에 북부 지역의 지파들과는 달리 야빈의 압제를 덜 받았기 때문일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야빈과의 전쟁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연히 일부 사람들만이 개인적으
로 전쟁에 참여했을 것이다.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 '마길'은 므낫세의 독자였다(창 50:23).
그런데 이 '마길'의 자손, 곧 므낫세 지파 중 절반은 요단 동편에 정착하였으며(수
13:29-31) 나머지는 요단 서편에 들어갔다(수 17:1-13). 따라서 본절에서 '마길'이라
는 표현은 이 중 요단 서편에 거한 므낫세 반 지파만을 의미한다. 이 지파는 아셀, 스
불론 그리고 잇사갈 지파와 북쪽 경계를 이루며 살았으므로 잇사갈 지파의 경내에 있
는 다볼 산(4:12)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편 여기서 '다스리는 자들'이란 군대
의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이는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군 지휘관들이 군사를거느리고
내려왔음을 알려 준다.
스블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 '대장군'에 해당하는
원어 '소페르'(* )는 '계수하는 자' 또는 '서기관' 등의 뜻이며, 이스라엘의 지
도자들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Keil). 그런데 '대장군의 지팡이'가 무엇을
지칭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즉 RSV, NIV, Living Bible, 공동
번역 등은 모두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고 있으나 KJV에서만은 '작가의 붓'(pen of
the writer)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KJV의 번역을 지지하여, 스불론 사람
들은 시돈 사람들처럼 상업에 능하고 장사를 전문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도 전쟁 경비를 계산하는 일을 맡아 보았다고 주장한다(P. Cassel). 그러나 이 해석은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서기관'은 전시에 국민을 초모(招募)하는 일도 맡아 보았으니
(왕하25:19;렘 52:25), 스불론 지파는 그 전쟁에 있어서 서기관의 직무를 담당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5: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 지파도 스불론, 납달리 지파
(4:6,10)를 돕기 위해 드보라와 행동을 같이 하였으며 친히 방백들이 자기 지파를 인
솔해 나온 것을 가리킨다.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 즉 바락이 잇사갈 지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
잡은 것을 가리킨다. RSV는 이를 '잇사갈이 바락에게 충실하였다'(Issachar faithful
to Barak)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준해 공동 번역도 '잇사갈도 바락에게 충성
을 바쳐'로 번역하고 있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 잇사갈 지파가 바락의 군사와 더불어 시스
라 군대를 치기 위해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로 내려간 것을 의미한다(4:14,15).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 르우벤 지파가 차지한 요단 동편 땅에는 시
내가 많이 있었고, 그에 따라 목초지가 널려 있었다(수 13:15-23).따라서드보라가
르우벤 지파의 지경(地境)을 가리켜 '르우벤의 시냇가'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이 때문
이다. 한편 본절에 의거하면 르우벤 지파는 타지파로부터 전쟁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큰 결심'
이란 표현은 16절의 '마음에 크게 살핌'(* , 히크레 레브)이란 표현처럼 그
들이 전쟁에 참여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토론이 있었다는 의미를 지니
기 때문이다.
=====5:16
본절은 르우벤 지파가 다른 지파의 전쟁 소식을 듣고도 평안한 목자의 생활에 안주
하고 있음을 비꼬는 내용이다. 즉 다른 지파들은 전쟁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들 참
전, 전쟁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14,15절) 르우벤 지파는 편안히 목자의 저(笛)
부는 소리를 들으며, 단지 탁상 공론(卓上空論)만을 벌였다는 것이다.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 기록에 의하면 르우벤 지파는 갓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
엘 여러 지파 중에서도 특히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민 32:1). 그들이 요단서
편 땅에서 기업을 차지하지 않고 요단 동편의 모압 북방 지역을 기업으로 차지한 까닭
도 그 때문으로서, 그곳은 목축(牧畜)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목축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을 터인데, 본절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 - 이는 곧 르우벤 지파가 한가로운 목가적(牧歌的) 생
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즉 저들은 요단 강 건너편의 소식과는 무관한 채
목자들이 가축을 치면서 부는 피리 소리나 들을 정도로 평안을 구가하셨던 것이다.
마음을 크게 살핌이 있도다 - 공동 번역은 이를 '끝도 없이 토론이나 벌이는구나'
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15절의 '큰 결심이 있었도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5:17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 '길르앗'(Gilead)은 넓은 의미에서 요단 강 동편
의 전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중심부는 갓 지파가 차지하고 있지만 북쪽으로는 므
낫세 반 지파, 남쪽으로는 르우벤 지파의 지경에까지 뻗쳐있는 요단 동편의 산지가 곧
길르앗이다. 그런데 이 중 르우벤 지파는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으니(15,16절), 여기서
'길르앗'이란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드보라는 이들
지파 역시 요단 동편땅에 거하면서 동족의 전쟁에조력지않았음을 책망하고 있다
(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19).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 이 표현은 단 지파도 르우벤 지파나 갓, 므낫세 반
지파와 같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활을 즐기고 있었음을 지적하
는 것이다. 특히 '배에 머무르다'라는 표현은 단 지파가 뱃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베니게 사람들과 함께 욥바에서(수 19:46) 무역을 했다는 의미이다(Goslinga). 이것으
로 보아 단 지파는 이때까지는 아모리족에 밀려 팔레스틴 최북방의라이스지방으로
쫓겨나지 않은 것 같다(18장).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 여기서 '해빈'과 '시냇가'는 각기
지중해변을 가리킨다. '아셀 지파'는 지중해 연안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야빈의 압제
가 가장 심했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에 연접해 있었다(수 19:24-31).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들은 자기 동족들의 전투에 무관심하며 자기들의 생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5:18
들의 높은 곳 - 납달리 지파가 거주하던 게네사렛 호수 북서쪽의 산악 지역(수
19:32-39)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의 정예 부대 만 명이
집결했던 다볼 산을 가리킨다(4:6,12). 그곳에서 스불론, 납달리 지파는 시스라 군을
맞이하여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용감히 싸웠던 것이다.
=====5:19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 '열왕'은 북부 가나안의 여러 동맹군을 지휘하여 싸우러온 시스라(4:13) 및 동맹군들의 군사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때에도 하솔 왕야빈은 북부 가나안 지경에 거주하던 열왕들과 동맹군을 형성해서 여호수아의 군대와
메롬 물가에서 싸운 적이 있었다(수 11:1-9).
므깃도 물가 다아낙 - '므깃도 물가'는 므깃도와 남쪽 산지사이, 즉 므깃도 후방의
분지로 흘러 들어가는 마른 계곡인 '와디'(Wadi)를 가리킨다. 이곳은 우기(雨期)때 비
가 와야만 물이 흐른다.이러한사실은14세기의 유대인 학자에쉬토리 하파리
(Eshtori Haparhi)에 의해서 밝혀졌다. 따라서 '므깃도 물가'는 기손 강(4:7)을 가리
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4:7,15 주석 참조. 한편 '다아낙'은 '므깃도'에서 불과 8km
도 채 안되는 이스르엘 계곡의 남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수 12:21). 기손 강은 평지
를 지나 므깃도와 다아낙의 북부로 흘러 들어갔다.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 '돈'에 해당하는 '케세프'(* )는 구약 시대 당시
화폐로 통용되었던 '은'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쟁시 취하는 전리품이나 노획
물 따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Keil, Lange). 즉, 시스라와 그 동맹군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고자 하였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들
이 진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4:15,16,23,24).
=====5:20
별들이...시스라와 싸웠도다 - 칼데아역(The Chaldee)은 본절을 '하늘로부터 별들
이 나오는 곳에서 시스라에 대항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로 번역하고 있다(Matthew
Henry Commentary, Vol.II.p.149). 그러나 이 역시 정확히 무슨 뜻인지 잘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요세푸스(Josephus)는 본절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즉 하나
님께서 시스라의 군대 앞에서 일으키신 바람과 벼락, 폭풍우와 우뢰로 인하여 원수들
이 진멸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Lange, Pulpit Commentary).이러한 견해는
본장이 곧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에게
승리 주신 사실에 대한 노래인 점(21절;4:15)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이에 찬동한다(Keil, Goslinga, Hervey, Matthew Henry, Cundall).
즉 본절은 하나님께서 대자연의 힘을 빌어 이스라엘을 도우신 사실에 대한 시적 표현
인 것이다. 역사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파하기 위해 사용하신 자연 현상
들은 바람, 하수, 뇌성, 우박, 숯불, 번개등 아주 다양하다(출 14:27;15:10;수 10:11;
삼상 7:10;시 18:13,14).
=====5: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 '기손 강'은 겨울 우기를 제외하고서는 보통
메말라 있었으므로 시스라의 군대가 그 주변에 주둔할 수 있었다. 4:13 주석 참조. 그
러나 그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강을 범람케 하셨으니 시스라의무리들은
표류(漂流)할 수 밖에 없었다. 즉 그때 시스라의 군대는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인해
우왕 좌왕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군대를 칼로 쳐 파
했었다(4:15).
기손 강은 옛 강이라 - 이처럼 드보라가 '기손 강'을 '옛 강'이라 부른 이유에 대
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혹자는 오래 전부터 고대 역사가들이나시인들이 그곳을
찬양해 왔거나 아니면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시스라군을 멸하시기로 예정
하셨기 때문인 것으로 주장한다(Matthew Henry). 그리고 어떤 학자는 그 강 가에서 옛
부터 무수한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그 강이 옛날부터 유명해진탓으로추정한다
(Gosinga, Hervey). 그밖에 단지 기손 강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흘러 내려온 오래된 강
이기 때문에 '옛 강'으로 불리웠다는 주장도 있다(Keil). 이상과 같은 견해를 종합해
볼 때 기손 강은 드보라시대에 이미 옛날의 어떤 사건들과 연관되어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 본절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
역 성경과 KJV, 그리고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밟았다'고 해석한 공동번역 등은 본절을
시스라 군대에 대한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4:12-24)를 노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러나 '밟았도다'에 해당하는 원어 '티드레키'(* )가 명령형인 점에 근거, 다
른 영역본들은 이를 달리 번역하고 있다. 즉 RSV, NIV, Living Bible 등은 본절을 '내
영혼아 힘차게 진군하라'(March on, my soul;be strong !)로 번역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시스라와의 전쟁 당시 드보라가 힘차게 이스라엘군을 격려했던 사실을 노래한 것
으로 보아야 한다. 어쨌든 본절은 시스라와의 전투에서 용맹히 싸웠던 백성들을 치하
하는 것이므로, 양 견해 중 그 어느 쪽을 택하여도 무방하다.
=====5:22
군마가 빨리 달리니...땅을 울리도다 - 시스라 군이 패퇴하여 급히 도망치는 것 뿐
아니라 이스라엘 군이 그 뒤를 맹렬히 추격한 것(4:15,16)을 가리키는 시적 표현이다.
즉 시스라 군은 목숨을 부지(扶支)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도망친 반면 이스라엘 군
은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하기 위하여 말발굽 소리도 드높게 그 뒤를 추격한 것
이다.
=====5: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 '메로스'에 대한 저주와 '야엘'에 대한 축복(24절)은 드
보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대언한 것일 뿐임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한편
'여호와의사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 주석을 참조하라.
메로스를 저주하라...치지 아니함이니라 - '메로스'란 지명은 본절 외에 성경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받아 마땅한 메로스의 죄는 분
명히 나타나 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메로스'는 기손 강 부근에 위치해 있었던 마을
임에는 분명하다. 혹자는 이를 사마리아 북방 약 20km지점에 위치한 '메루스'(Merrus)
일 것으로 추정한다(Pulpit Commentary). 그리고 또 다른 이는 다볼 산 남방에 위치한
'케플 무슬'(Kefr Musr)일 것으로도 추정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아무튼
메로스 거민은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받고자 싸우는 이스라엘을 도와줄 의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메로스의 주민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돕지 아니하
므로 간집적이나마 폐해를 끼쳤었다.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메로스를 저주
하였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운 탓에 하나님의 축복을받은 야엘(24-27
절)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5:24
겐 사람 헤벨 - 모세의 장인인 르우엘과는 일족(一族)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4:11 주석을 참조하라.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 야엘에 대한 축복은 '메로스에 대한 저
주'와 완전이 대조된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압제자와 사귀고 있었고 자신 또한 이스
라엘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4:11)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러한 야
엘의 행동에 대하여서는 앞장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4:17-22). 따라서 그의의 및
제반 사항에 대하여서는 4:21 주석을 참조하라.
=====5:25
우유...곧 엉긴 젖 - 여기서 '엉긴 젖'에 해당하는 원어 '헤므아'(* )는 '
두껍게 엉긴 젖'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급 우유를 의미하는 '할라브'(*
)와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Keil, Lange). 한편여기서 '우유'와 '엉긴 젖'은 같은
의미를 지니면서 서로의 뜻을 강조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히브리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행법적 표현이다.
=====5:26,27
4:21에 언급된 장면의 반복 기사이긴 하나 사건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부분
이다. 이처럼 드보라가 야엘의 의거(義擧)를 노래하고 있는 것은 가냘픈 여인이 한때
이스라엘 백성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사실을 부각시
켜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함이었다.
살쩍 - 사람 얼굴의 귀와 눈 사이에 태양혈(太陽穴)이 있는 부분, 즉 '관자놀이'
(temple)를 가리킨다.
죽었도다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솨다드'(* )는 '완전히 파괴된 것',즉 전혀
소생할 가망성이 없이 완전히 죽은 상태에 이르른 것을 가리킨다. 이로써 시스라는 그
목숨 뿐 아니라 권력과 영광도 다하고 만 것이다.
=====5:28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 이 말은 자식을 전쟁에 보낸 후 그가 무
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안타까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일반적인 심정을 나타낸다.
살창 - 원어 '에쉬나브'(* )는 '틈을 남기다'라는 말에서 온 단어로 좁은 나
무나 쇠창살을 사이사이에 박아 만든 창문을 가리킨다. KJV는 이를 '격자창'(lattice)
으로 번역하였다.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 처음에 시스라의 어미는 승전의 소식을 실은
아들의 병거가 늦게 오는 것에 대하여 이러한 말로 불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스라
의 귀가가 한없이 늦어지자 그녀의 불평은 오히려 불안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하
여 이제는 '어찌하여 병거가 더디 오는고'라는 말을 반복하며 근심과 걱정에 쌓였던
것이다.
=====5:29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 드보라가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한 시녀들을 가
리켜 '지혜로운 시녀들'이라고 언급한 것은 역설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즉
그녀들은 시스라가 전리품을 많이 탈취하느라고 이렇게 늦을 것이라는 말로써 시스라
의 어미를 위로하였다(30절). 하지만 정작 시스라는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이미 죽고
말았으니 그녀들의 생각과 위로의 말은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5: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 시스라가 적들과의 싸움에서 당연히 승리
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시스라는 전쟁 때마다 승승 장구하여 많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왔었기에 시스라의 어미와 시녀들은 이번에도 그가 굉장한 전리품을 가지고 오리
라 기대했던것이다. 아무튼 드보라는 이 표현을 통해 시스라가 전쟁에 능한 자임을 설
명하면서 그러한 그를 죽인 야엘의 용기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러한 시스라와의 싸움에서 이긴 이스라엘의 승리가 매우 값진것임을 강조하
고 있다.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 전쟁시 여인들을 포로로사로잡아 노예로
삼거나 아니면 첩으로 삼는 경우는 고대에 흔히 있던 일이다(신 21:10-14). 그런데 시
스라의 모든 병사들이 제각기 한 두 명의 여인을 포로로 얻지 못하였겠느냐는 말은 곧
시스라군이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굉장한 전과(戰果)를 올렸을 것이라
는 뜻이다.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 - '채색옷'에 해당하는 '리크마'(* )는 다앙한 색깔의
자수품(刺繡品)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옷감의 안팎을 손이나 베틀로 수놓아 만든 옷을
가리키는데 고대에는 매우 값비싸 주로 상류 계층 사람들만 착용 했었다(창 37:3).
노략한 자의 목 - 혹자는 '노략한자'에 해당하는 '솨랄'(* )이 '여왕'이라는
뜻을 지닌 '쉐갈'(* )에 대한 필사자의 실수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략한 자의
목'이란 '시스라 아내의 목'을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Ewald).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원본을 뚜렷한 이유 없이 바꾸어 버린 것으로 타당치 않다. 한편 또 다른 이는 '노략
한 자'를 '노략물'로 해석하여 시스라가 각 노략물 곧 약대나 나귀, 말 등과 같은 짐
승에 채색옷을 두른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Hervey). 그러나 이러한 해석 역시 전
후 문맥상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노략향 자'는 시스라를 가리키며 그가 승리를
기념하여 채색옷을 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5:31
본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기
원하는 내용이다. 즉 이스라엘의 대적이자 하나님의 대적인 시스라를 망하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모든 대적들을 그와같이 처리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의 언약 백성이 된 자들에 대해서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미래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축복해 달라는 의미이다.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이것은 전쟁의 결과를 요약적으로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은 전쟁 이후 드보라가 살았던 기간이며(비교, 2:18), 이스
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았던 기간을 지칭하
기도 한다.
사사기 제 6장
=====6: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행한 악은 어떤 도덕적인 범죄라기 보다 우상 숭배였다(2:17). 그들은 강력한
지도자인 사사들이 살아 있을 동안 우상 숭배에서 멀어졌던 것 같으나 사사의 치리 기
간이 끝나면 곧바로 다시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처럼 타락, 하나님의 징계, 이스라엘
의 회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 순환적으로 반복되던 역사가 곧 사사 시대였다.
미디안 -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에게서 난 후손들이다(창 25:1-4). 그들은 유목
민이었으며 외국과도 무역을 했다. 요셉이 바로 이러한 생활을 하던 미디안족속에게
팔렸다(창 37:28). 한편 이러한 미디안 족속이 거하던 땅은 모세와 아주 중요한 연관
을 맺기도 하였다. 즉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해 도망친 곳이 곧 미디안 땅인데 그는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었다(출 2:15-22). 미디
안땅의 경계는 정확하지않으나 대개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만 일대이다.
그런데 간혹 모압 경계선 북부(민 22:4,7)나 시내 반도 부근으로까지 그 경계가 확장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들 미디안족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시에 모압 족속과 동
맹을 맺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대패를 당하고 만다(민
31:1-12). 그런 자들이 본문에서처럼 다시 세력을 키워 이스라엘을 침공했으니 비록 7
년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어느 때보다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6:2
산에서 구멍과 굴...만들었으며 - 팔레스틴 땅은 대체로 석회석으로 되어 있어서
천연동굴이 많았으며 또한 인위적으로 굴을 파기도 쉬웠다. 이떠한 굴은 창고나 무덤
(마 27:60)뿐 아니라 일시적 거처나 피신처로도 곧잘 사용되었다(삼상 22:1). 그러기
에 이와관련 히브리서 저자는 구약 시대 믿음의 사람들이 핍박을 피해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서 유리했다고 언급했다(히 11:38).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도 핍박을 피해 동굴
생활을 했으며 유대 종파 중 어떤 사람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쿰란동굴에
서 생활했다. 이와같이 사람들이 산속의 구멍이나 굴에서 생활했던 이유는 인적을 피
할수 있고 타인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아 패퇴(敗退)하자 그곳으로 도망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즉 그들
은 적을 대항할 힘이 없었으므로 적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설령 적이 온다고할지라도
어느 정도 쉽게 방어할수 있는 높은 산의 동굴로 피신했던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이스
라엘 백성의 생활은 당시 미디안으로 인해 입은 그들의 고통이 매우 컸음을 잘 나타내
준다. 그 뿐 아니라 과거 그들이 하나님 편에 섰을 때에는 능히 미디안 족을 물리쳤던
것(민 31:1-12)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성도들도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이탈할 때에는 사면에서 에워싸는 원수들로 말미암아 괴롭힘을 당
하게될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Matthew Henry).
=====6: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 - 우리 나라와는 달리 팔레스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인
해 여름철(5-9월경)에 비가 없는 건조기가 계속된다. 그러다가 10월에 들어서서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에 그곳 사람들은 파종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파종된 씨
앗은 겨울 우기(12-2월경) 동안 자라나 결실을 맺고 대개 3,4월 경에 추수하게 된다
<성경 총론, '팔레스틴의 기후'>. 그런데 본절에 의하면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
방 사람들은 파종한 겨울 철에서 추수기까지에 걸쳐 이스라엘을 약탈했던것 같다. 특
히 유목민인 미디안 사람들은 곡식이 싹을 내어 한창 자랄 때에 가축을 몰고 와서 그
곡식을 뜯게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 자라 이삭이 여물은 곡식마저 빼앗
아 갔으니 이스라엘에 양식이 남아 있을 날이 없었다(4절).
아말렉 사람 -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그의 첩 딥나 사이에서 난 '아말렉'의 후손
을 가리킨다(창 36:12). 그들은 과거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을 르비딤에서 공격한 적이
있는데오히려여호수아의 지휘하에 분투한 이스라엘에게 크게 패하였었다(출
17:8-16). 이때 하나님께서는 장차 아말렉을 세상에서 완전히 없어지게 하리라고 말씀
하셨는데 히스기야왕 때에 이르러 그들은 시므온 자손에 의해 멸절 당했다(대상
4:42,43). 이들은 계속 존속하는 동안 이스라엘을 매우 괴롭힌 것으로 악명높다(3:13;
삼상 15:7,8;27:8,9). 3:13 주석 참조.
동방 사람 - 창 29:1에서 처음 언급된 족속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족속인지 정
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단지 야곱이 갔던 곳이 밧단아람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창 29:1에서 가리키는 '동방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지역 사람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된
다. 그런데 본문에 언급된 '동방 사람'은 이스라엘 남부와 남동부에 자리를 잡고 있던
아말렉 및 미디안과 동맹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여기서 가리키는
'동방 사람'은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족속들은 아닌 듯하다. 추측컨데 아마도 이는 미디
안과 인접해 있는 시리아 사막 지역의 이말렉 족속 중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Wycliffe).
=====6:4
진을 치고 - 본절에서는 미디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들이 어느 곳으로 올라
와서 어디에 진을 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뒤에 기드온과 싸우려 할 때
에는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골짜기에 진친 것으로 나와 있다(33절). 그래서 혹자
는 그들이 가사에 이르도륵 이스라엘 지경(地境)을 황폐화시킨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번에도 요단을 건너와서 점점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Keil).
왜냐하면 '가사'는 이스르엘 골짜기보다 훨씬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사 - 유다 지경에 속한 블레셋인들의 5대 성읍 중 하나이다. 1:18 주석 참조.
토지 소산을 멸하여...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 미디안 연합군이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적으로 쳤을 뿐아니라 그에 병행하여 생계 수단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
고 초토화시키고 갔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생계 문제로 극심
한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이는 단순히 조공을 바치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
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한 대가를 톡톡히치루었음
을 알 수 있다(1절). 한편 이상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백성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
었던 것은 아마 기드온처럼(11절) 노략꾼들에게 들키지 않게 감추어 둔 곡식이나마 조
금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6:5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 미디안족은 유목민들이었으므로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초지를 찾아 떠돌아 다녔다. 특히 그들은 약대가 있었으므로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였는바 가나안의 곡식이 자랄 때 쯤이면 나타나 곡식 밭에 자기
들이 몰고 온 짐승들을 방목하고 장막을 지어 장기간 체류였다. 한편 여기서 '올라와
서'라는 표현은 반드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혹은 아래에서 위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아
니다. 단지 이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방 땅에서 나아오는 것을 의미한다(왕하
17:3;24:1;사 36:1).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 성경에서 메뚜기 떼는 종종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재앙을 상징한다(출 10:4;신 28:42;시 105:34;욜 2:25). 여기서도 이러한 의미를 내포
하고 있는데 특히 대적들의 수효가 엄청났다는 점과 그들로 말미암은 피해가 막심하였
음을 강조해 준다.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 미디안족은 떠돌아 다니면서 유목 외에 무역도 했
으므로 약대가 반드시 필요했다. 고대 근동에서는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이 약대가
가장 많이 이용되었다(왕상 10:2;사 30:6).
=====6:6
이스라엘이...미약함이 심한지라 - '미약하다'에 해당하는 '와이달'(* )은
'쇠하게되다'(be brought low)란 뜻 외에도 어원적으로 '가난하게 되다'(be
impoverished)란 의미도 있다. 그래서 KJV와 NIV. Living Bible등은 이를 '가난하게
되다'(was impoverished)로 번역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입자들로 인해 모든 곡
식과 짐승을 빼앗겼으므로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4절). 그런데 공동 번역
은 이와 달리 '와이달'을 '황폐하게 되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그 단어의 근본
뜻과도 밀접한 연관이 없으며 본절의 본래적인 의도와도 조금 다르다. 물론침입자들
로 인해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게 되었으나 본문에서는 횡폐하게 된사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의 곤궁(困窮)한 처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
태가 7년 동안 계속되었으니(1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매우 심했음은말할나위
없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선조들이 애굽
의 압제에 못이겨 고통으로 신음할 때와 같이(출 3:7)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
다. 이처럼 주위의 열국들을 이용, 타락한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시어 그 타락의 길에
서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비단 사사기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의 전형적 섭리이다.
=====6:7
부르짖은 고로 - '부르짖다'에 해당하는 '자아크'(* )는 위험이나 고민거리에
직면했을때 소리 외쳐 구원자를 청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
하에 심히 곤궁하자 구원자 '하나님'을 애타게 찾은 것이다.
=====6:8
한 선지자를 보내사 - 모세 시대까지가 신현현(Theophany) 시대라면 사무엘 이후부
터 말라기 선지자까지는 선지자(prophet)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간의 사사
시대는 신현현 시대와 선지자 시대의 과도기적 상황으로서 특별히 어떠한 시대라고 정
의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는 통로가 다양했
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본절에서처럼 선지자를 보내시거나 아니면 사사를 통하
여 말씀을 전달하시는가 하면 직접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기도 하셨다(11절;2:1;13:3).
한편 선지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2:1-14 강해, '선지자의 사명'을 참조
하라.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역사를 다시 상기시켜 주신 까닭은 가나안 땅에 그들이 거주할 수 있게 된 것이 온전
히 당신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했음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에게 출애굽 과정에서 맺은 당신과의 언약(출 19:5-8)도 상기시켜 주기위함이었다. 따
라서 본절은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교훈하시는 말씀임을 알 수있다.
=====6:9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 -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시 모두들 들고 일어나 이
스라엘을 대적하였던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그 땅에서 쫓겨났으나 약간의 세력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가나
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이 배역(背逆)하고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남은 자
들을 사용하여 타락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겠다고 경고하신 적이 있다(2:19-23). 그 경
고가 실제로 성취된 사례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인데 이스라엘은 모압 왕에글론에
의해 18년 동안(3:14), 그리고 가나안 왕 야빈에 의해 20여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었다
(4:3).
=====6:10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 일찍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던 약속을 상기
시켜 주는 구절이다. 즉 당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고 세상
과 구별된 삶을 살면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출
6:7;19:5,6)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후 이스라엘은 그 같은 언약에 충실할 의무가 있
었는데 오히려 그들은 틈만 있으면 이를 거스르는 죄악을 저지르곤 하였다.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 성경에서 '아모리 사람'은 종종 '가나안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창 15:16;수 24:15). 본절 역시 동일한 경우인바
'아모리 사람의 땅'은 '가나안 땅'을 의미한다. 한편 이 가나안 땅에는 국가 신(수호
신)을 비롯해서 인간의 행.불행과 관련된 신들 등 여러 종류의 신들이있었다. 그중 성
경에 언급된 가장 대표적인 신들을 보면, 가나안의 바알과 시돈의 아스다롯을 들 수
있다(2:13;10:6;삼상 12:10;왕상 16:31;18:18).그리고모압의 그모스(11:24;민
21:29;왕상 11:7,33;렘 48:7)와 암몬의 몰록(왕상 11:7), 및 블레셋의 다곤(16:23;삼
상 5:2-7) 등도 들수 있다. 다음으로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가나안 땅에 유
행했던 신들은 만신전의 우두머리인 '엘', 전쟁신 '아낫' 그리고 죽음의 신 '못'이 대
표적이다. 그외에도 몇몇을 들자면 헷족속의 폭풍우의 신 '테슛', 모신(母神) '한나한
나', 시리아의 폭풍우의 신 '아닷' 등이 있다. 3:7 주석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이러한 우상들을 섬김과 동시에 여호와도 같이 섬겨 종교적
혼합주의(syncretism)에 빠져 있었다. 한편 이러한 신들은 조각품에 지나지 않고 사람
이 고안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선민은 그 우상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신들이 보호하고 있다는 가나안 열국 역시 두려워할 필
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빠진 결과 그러한 신들을 두려워
하게 되었으며 열국들의 침략에 대해서도 속수 무책이었다.
=====6:11
여호와의 사자 - 구약 시대에도 현현하시어 당신 백성을 권념(眷念)하시며 부단히
활동하셨던 성육신(成肉身) 이전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2:1 주석 참조.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 - '아비에셀'은 므낫세 지파 중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 따라
서 '아비에셀 사람'이란 므낫세 지파 중 '아비아셀'의 가계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
(수 17:2). 한편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의 아비인바 본절은 기드온의 출
신을 밝혀 주는 의의를 지닌다.
오브라 - 이곳의 위치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곳은 베냐민 지파
의 소유인 '오브라'와는 분명히 구별된다(수 18:23). 혹자는 샤론 평야 부근의 오늘날
의 엘파이(Erfai)가 이 오브라인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31).
상수리 나무 - 성경에서 이 '상수리 나무'는 종종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사 44:14,15). 기드온이 자기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 중 목신(木神)인 아세라를 찍어
불태운 것으로 보아(25,26절) 기드온의 아비 요아스 역시 이 나무를 숭배하였을 가능
성이 있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 고대 근동에서는 대개 땅에 큰 구덩이를 파서 포
도주 틀을 만들었던 것 같다(사 5:2). 한편 이처럼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구원자로
부르심을 받을 기드온이 몰래 숨어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다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압
제의 정도가 매우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밀 타작은 마당이나 넓은 들판에서 타
작용 마차나 황소의 발굽을 이용하여 하였으나, 기드온은 미디안 족의 눈을 피해 좁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중이었다. (2)기드온의 타작 행위는 그가 장차 이루게 될 큰
일을 암시하고 있다. 고기 잡는 어부를 불러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마 4:19), 밀 타작하고 있던 기드온을 택하사 미디안 대적을 타작하게 하신 것이다
(사 41:15). 오늘날 성도들도 기드온처럼, 생계에 연연해 하던 상태에서 하나님께로부
터 오는 사명을 자각하는 상태로 변모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왜냐하면 시대는 달라도
수행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일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 그리스도
인들이 일하지 않고 버려두어도 좋을 곳은 세상에 한 치도 없다.
=====6:12
큰 용사여 - 이에 해당하는 '깁보르 헤하일'(* )은 문법적으로 '능
력있는 용사'를 의미한다. 그러나 룻 2:1에서는 '유력한자'곧 '재산과 덕망 그리고 세
력을 겸비한 사람'으로도 번역되었다. 한편 혹자는 본절과 관련, 기도온이 실제로 '깁
보르 헤하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주의 능력으로 큰 용사가 된 것으로
이해한다(Keil, Goslinga), 다시 말해 기도온은 본래 연약하며 작은 자였지만(15절)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큰 용사'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불러 세우셨던 제반 유형에 비추어 볼 때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견해이다. 2:11-23 강
해, '사사들의 입지(立志)' 참조.
=====6:13
나의 주여 - 이 말은 기드온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자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알
아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낯선 사람에 대한 예우로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
은 기드온이 처음에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P.Cassel).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 기드온은 자기 백성이 미디안으로부
터 고통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 것으
로 이해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백성들을 징계하고 돌이키시기 위해 미디안
사람들을 보내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중에도 여전히 함께
하셨던 것이다(출 3:7).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
다면 미디안 사람의 손에서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심지어 그들이 쳐들어 와도 출애
굽시에 행하셨던 놀라온 이적으로 그 대적들을 물리쳤을 것으로 믿었다. 다시말해 기
드온은 고통의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거듭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은 탓으로 돌렸다.
=====6:14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 '이 네 힘'은 단순히 기드온 자신의 힘을 기리키지 않
는다. 대신 이는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 계셔서 주시는 힘을 의미한다(Keil,
Goslinga). 용사라도 자기 힘을 의지하면 실패하지만 연약하고 작은 자라도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승리한다(시 33: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도온에게 인간적인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
를 보증해 주셨다.
=====6:15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 아직 기드온은 자신이 의지할인간적인
요소나 가시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그
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삼상 17:47)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
께서 원하시면 여리고 성과 같이 견고한 성도 인간적인 수단을 사용치 않고 쉽게 무너
뜨려 정복할 수있게 하심을 그는 망각했던 것이다(수 6:1-21).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
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요 11:40).
나의 집은...극히 약하고...제일 작은 자니이다 - 본절은 기드온이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사람과 대적하기에는 자신이 역부족임을 고백한 것이다. 여기서 아직까지 기드
온이 인간적인 방편을 의지하려는 모습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의고백처럼
기드온의 가정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지도적 위치에 있기는 커녕 매우 보잘것 없는 위
치에 있었음은 사실 일 수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가정의 기드온을 들어
쓰사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신 것은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해 준다. (1)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일과 관련해서는 그 누구도 교만할 수 없다는 점이다. (2)하나님의 부
르심에는 그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고전 1:26-31).
=====6:16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와 동일한 약속하에 모세
와 함께 하셨고(출 3:12) 여호수아와도 함께하셨다(수 1:5).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큰
능력을 행하셨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역사하셨던 것처
럼 이제 기드온과도 함께 하사 그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 미디안 사람은 메뚜기 떼처럼
많다(5절).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 사람을 치듯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을 매우 쉽게 멸망시킬 것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 이러한 표현은 민 14:15에서 하나
님께서 배은 망덕한 이스라엘 백성을 치시려 한 것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적이있다.
이는 곧 누구든 한번 하나님의 심판의 장중에 빠져 들면 헤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멸절
되고 말 뿐임을 시사해 준다.
=====6:17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 본절은 여호와에 대한 기드
온의 불신앙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문맥은 단지 그러
한 시각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즉 본절은 기드온이여호와의
사자를 통하여 주어진 자신의 소명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그 사
실 여부를 확실히 알고 싶어 요구한것으로 보는게 자연스럽다. 사실 과거 모세도 이스
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통해, 그리고 모세의 손을 통해 표징을 보여
주셨다(출 4:1-8). 또한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명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자신을 아이와 같은 미약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그의 입에 손을 대시는 표징으로써 그에게 소명을 확신시켜 주셨다(렘
1:4-9).
=====6:18
예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미느하'(* )는 '선물', '조공', '제물'을 의미
한다. 특히 이 단어가 '제물'의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주로 '소제'(grain offering)와
관련되어 사용된다(사 66:20;말 1:11). 한편 다음 절에 보면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해
'미느하'로 염소새끼와 가루 한 에바로 만든 무교 전병과 국을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19절). 이와 유사하게 과거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위해 기름지고 좋은 송아
지 요리와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반죽하여 만든 떡과 버터와 우유를 가져와서 대접했던
적이 있다(창 18:6-8). 따라서 본절의 '미느하'는 NIV의 번역처럼 '제물'(offering)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 보다는 '선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 아마도 기드온이 땅에 구덩이를 파 만든 포
도주 틀은 자신의 집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어귀의 상수리나무 부근이
었던 것 같다(11,12절). 때문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음식을 준비해 돌아오기 까지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자리를 뜨지 말고 잠시
기다려 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 때문이다.
=====6:19
본절에는 기드온이 여호와께 바친 예물이 언급되어 있다. 그 예물은 미디안 족속의
압제로 인해 매우 곤궁한 살림을 하던 기드온(4,11절)에게는 매우 귀중하고 값진 것임
에 틀림없다.
가루 한 에바 - 약 23리터, 즉 약 12되 정도되는 부피를 의미한다. 성경 총론, '성
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이러한 양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위해
가져왔던 가루 세 스아와 같은 부피이다(창 18:6). 왜냐하면 한 에바(Ephah)는 세 스
아(Seah)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무교전병 - 효소의 역할을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이나 떡을 가리킨다. 이
것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을 신령한 음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편 이것은
출애굽 사건과도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출 12:8 주석을 참조하라.
=====6:20
하나님의 사자 - '여호와의 사자'(11절)와 같은 말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그곳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문서설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은 문서를 나눌 때 신(神) 명칭
인 '여호와'와 '엘로힘'의 사용에 따라 구분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 두 이름이 한
책 안에서 교호적(交互的)으로 발견되면 '여호와' 문서와 '엘로힘' 문서가 혼합되어
편집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그러한 생각은 본장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
까닭은 본장에 '여호와의 사자'란 말과 '하나님의 사자'란 말이 동시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서설의 허구성은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명백히 밝혀졌
다. 더군다나 일관된 흐름을 보여 주고 있는 본장의 이야기는 편집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모세 오경 개론, '문서설'을 참조하라.
=====6:21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 훗날 삼손의 부모가 염소 새끼 하
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 두었을 때도 하나님의 사자는 이와 동일한 이적을 행
하셨다(13:19,20). 또한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도 하나님께
서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 불로써 제물을 태
우셨다(왕상 18:38). 이처럼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불로써 제물을 태우신 것은 한편
으로는 기도온의 헌신을 열납하신 증거이며(레 9:24), 다른 한편으로는 징표를 구한
기도온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다(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
=====6:22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 이제야 기드온은 자기에게 나타나 위로와(12절) 소
명과(14절) 확신을(16절)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의 사자' 곧 '여호와'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제자가 그들 바로 곁에 동행하셨던 예수
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눈이 밝아진' 후에야 깨달은 것과(눅 24:13-32) 유사한
예이다. 이처럼 우리도 항상 곁에 계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도무
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때가 많이 있다.
슬프도소이다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흐'(* )는 특정한 의미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단지 슬픔을 나타내는 감탄사이다. 그런데 이 말은 '주 여
호와'란 단어와 연결되어 주로 사용되었다(수 7:7;렘 1:6;4:10;14:13;32:17;겔
4:14;9:8;11:13). 한편 기드온이 이렇게 탄식의 소리를 발했던 것은 사람이여호와를
대면하여 볼 수 없고, 또한 보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했기 때문이다(출
20:19;33:20;신 5:25).
=====6:23
너는...죽지 아니하리라 - 이처럼 기드온이 하나님을 보고서도 죽지 아니할 수 있
었던 까닭은 그가 하나님의 본체를 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출 33:20, 23 주석 참조.
주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는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형상을 취하사 '여호와의 사자'로 기드온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후에 삼손의 부모가
하나님을 뵙고서도 죽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13:22,23).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 히브리인들은 동의어 대구법(同義語對句法)을 사용하여 말
의 의미를 분명히 하거나 강조하는 습관이 있다. 본절 역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위로
하시면서 슬퍼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해 '동의어
대구법'을 사용하신 경우이다.
=====6:24
거기서 - '상수리 나무 아래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자는 상수리 나
무 아래에 있는 반석에서 기드온의 예물을 태웠으며(19-21절), 그곳에서 기드온과 대
화했기 때문이다(22,23절).
단을 쌓고 - 과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한 후 헤브론에서 단을 쌓았
다(창 13:18). 그리고 야곱도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후 그곳에서 단을 쌓았다
(창 28:16-19).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단을 쌓는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람의
열심과 헌신을 의미했다.
여호와 살롬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예호와 솰롬'(* )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또는 '평강의 여호와'란 의미이다. 앞서 여호와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
는 기드온에게 '안심하라'고 말씀하셨는데(23절), 이 말의 원어 역시 '솰롬', 곧 '평
강'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본절에서 기드온이 쌓은 단은 하나님과의 화해의 제단
이요 구원의 제단이었던것이다. 한편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주요 속성중 하나를 평강
이라 하였고(롬 14:17),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평강의 왕이라 불리운것 같이(사 9:6),
평강이라는 주제는 하나님의 귀한 은총으로서 성경 전편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런데
특히 불안과 혼란이 팽배해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눅 8:48) 가정과(고전 7:15)
나아가 전세계가(왕상 4:24)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화목된 관
계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시 29:11;갈 1:3).
=====6:25
수소 곧 칠년 된 둘째 수소 - 본절은 약간 난해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원문상으로
본절은 '수소와 칠 년 된 둘째 수소'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수소'는 기드온이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해 바쳤고, '칠 년 된 둘째 수소'는
온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바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
II.p.160). 그러나 사실상 기드온이 제물로 드린 것은 '그 둘째 수소' 밖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26,28절). 즉 본문에는 두 마리 수소가 바쳐졌다는 암시가 그 어디에도 없
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 역시 본절을 개역 성경과 같은 의미로 번역하고있다
(bull, the second bull seven years old;KJV, RSV, NUV). 따라서 본절의 '수소' 는
'칠 년 된 둘째 수소'와 동의어로 보아야 한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한편 하나님께서 굳이 번제물로 7년 된 수소를 취하라고 하신 까닭은 이스라엘로 하여
금 7년간의 미디안의 압제(1절)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하신 당신의 의사를 상징하는 것
으로 추정된다.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 - 이 단은 본래 오브라에 모여 살던 아비에셀 사람들
(11절)의 공동 소유이나 특별히 기드온의 아비가 관리 책임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추
정된다. 그 근거로 (1)기드온이 자기 아비의 바알.단을 훼파하면서 성읍 사람들을 두
려워했다는 점(27절), (2)'단'이 단수로 사용되었다는 점, (3)이튿날 아침에 백성들이
바알의 단이 훼파된 것을 알 정도로 그 단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28
절).
아세라 상 - 가나안의 최고 신인 엘(El)의 아내이자 바알(Baal)의 어미이다. 간혹
'아스다롯'(Ashtaroth)과 동일신인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별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26:1-13 강해, '가나안 땅의 신들'을 참조하라.
=====6:26
이 견고한 성 위에 - 이에 해당하는 원문 '로쉬 하마오즈 하제'(*
)는 '이 견고한 것의 끝에'란 의미이다. 이것을 NIV는 원문의 의미와는 달리
'적절한 종류의'(a proper kind of)로 번역했으며, KJV는 '이 바위의 끝에'(the top
of this rock)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Living Bible은 '이 언덕 위에'(on this hill)로
번역하였으며 RSV는 개역 성경처럼 각각 번역했다(the top of the stronghold). 이러
한 차이는 '로쉬 하마오즈 하제'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추측컨
대 이곳은 성읍 사람들이 모두 다 쳐다 볼 수 있는 성읍의 '가장높은 곳'을 의미하는
듯하다.
규례대로 - 이 말은 문자적으로 '정돈되게'라는 의미로서, 기드온이 단을 쌓음에
있어서 정성을 들였음을 보여 준다(Lange).
아세라 나무 - 이로 미루어보아 아세라 여신상은 통나무로 만들어 세운 목상(木像)
이었음을 알 수 있다(왕하 21:7).
번제 -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정상적인 관계 유지를 기구(祈求)하는 마음에
서 드리던 자발적인 제사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레 1:3-9 강해, '번제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6:27
기드온이...두려워하므로 - '바알'은 농경물의 수확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신
이다. 2:13 주석 참조. 따라서 바알 우상 훼파 소식이 그 신봉자들의 귀에 들어갈 경
우, 자신들의 소득이 격감되는 것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이 격노할 것은 자명하다. 기드
온이 두려워한 것도 바로 그러한 사태였을 것이다.
=====6:28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장소는 동네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26절 주석 참
조. 그렇지 않았다면 성읍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 단이 훼파되었는지를
금방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기드온과 그의 종들이 밤중에 신상과
산당을 훼파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을지라도(26,27절)그곳이 마을 가까이 위치했다
면 성읍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6:29
서로 물어 가로되...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 이로 보건대 기드온의 종 열
(27절)중에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에게 기드온이 바로 범인 임을 자백하거나 고해 바친
것 같다(Pulpit Commentary).
=====6:30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를 훼파한 일 때문에 성읍 백성들
이 그를 죽이려 한 점은 기드온의 부친이 소유한 바알과 아세라가 그의 가족에게만 속
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증거해 준다. 4절 주석 참조. 한편 이들 성읍 주민들은 본
래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상을 숭배하여 십계명을 범했으면서도 무너진 우상의 제단
과 신상을 보고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 상을
훼파한 기드온을 죽이려 하였다. 즉 하나님 앞에서 정작 죽임을 당할 자들은 자신들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처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6:31
바알이...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 마을 사람들은 우상을 파괴한 기드온에게 분노
를 품고 그 아버지에게 사형을 요구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버지 요아스는 그 아
들의 행위를 꾸짖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위해 변호하였다. 기드온의 심령을비추었던
하나님의 영이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화시켰던 것 같다. 적과 동조하리라 예상했던 아
버지가 지금 자기 편이되어 주니, 기드온의 감사한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이렇듯 하나
님의 편에 서서 진리를 위해 싸우는 자는 언제나 그분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불
의와 악한 세력은 생각보다 약하고, 정의와 진리는 무쇠처럼 강하다. 요아스는 참신과
거짓 우상, 진리와 오류를 구별하는 길을 마을 사람들에게 제시한 것이다. 즉 참 신은
징계하나 거짓 우상은 벌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진리는 그 자신을 증명한다.
후에 바리새인으로서 뭇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던 교법사 가말리엘도 같은논법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였다(행 5:34 이하).
=====6: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은 '바알에게 대
항하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는 기드온이 바알을 쳐부쉈으되 바알은 기드온에게 어떠
한 처벌도 내리지 못한 사실을 조롱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로써 바알은 허구의
산물이며 헛된 우상임이 밝혀진 셈이다. 한편 삼하 11:21에서는 '여룹바알'이 '여룹베
셋'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때 '베셋'은 바알의 별명인 '보셋'과 동일한 말로서 '부끄
러움', '수치'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룹베셋이라는 이름도 바알의 수치를 드러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6:33
때에 - 원문에는 이 말이 없이 단순히 '그리고' 또는 '그런데'를 의미하는 접속사
'우'(* )만이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접속사 '우'만으로는 본절과 앞의 사건이 시간적
으로 어느정도의 간격이 있는지를 알 수 없다.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 '이스르엘 골짜기'는 요단 강에서 길보아 산(삼
상 28:4)부근을 거쳐 갈멜 산(사 33:9) 부근을 지나며 지중해에까지 뻗쳐 있는 비교적
큰 계곡이다. 따라서 이 골짜기는 므낫세 반 지파와 잇사갈, 스불론, 아셀지파의 땅에
걸쳐 있는 셈인데, 그곳에는 기손강이 흐른다. 4:7 주석 참조. 한편 본절에서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
과 싸우기 위함이라기 보다 이스라엘을 약탈하기 위한 준비를 갖춘 것으로 보아야 한
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전혀 그에 대한 방어나 어떠한 군사 행동(34,35절)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162).
=====6:34
본절에는 성령이 임한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아비에셀 족속'이 순종하면서 모여
그를 좇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지극히 심하게 우상을 숭배했던 자들이었으
나 성령이 강하게 임한 기드온을 따랐다. 초대 사사 옷니엘도 하나님의 신이 임했을때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다(3:10).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강림하시니'로 번역된 원어 '라바쉬'(
* )는 '옷을입히다'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히시듯 혹은 무거운 장비로 온통 감싸시듯 하여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드셨음을
의미한다(11:29;13:25;14:6;사 11:2;요 20:22;행 13:2;고전 12:4).이처럼 신앙 생활
에서는 붙잡는 것보다 붙잡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도륵 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지혜나 능력에 의하여 이루
어진 것은 아니며, 신앙의 열매도 하나님께로부터의 은혜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것이
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신이 특별히 임하였을 때에는 명철과 지혜(창 41:38,39), 예언
(민 11:25,26), 비상한 체력(14:6,19)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보혜사로서 함께 하신다(요
15:26). 따라서 우리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해서는 아니 되며, 육신
의 정욕을 누그러뜨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보다 충만히 받기 위해 힘써야 한다(엡
5:18). 본절에서는 바야흐로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므로서 그가 때마침 침
략한 대적들로부터(33절) 이스라엘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로 세움 받는 장면이 나온
다.
=====6:35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족속 출신이다. 11절 주석 참조. 따라서 자기가
속한 므낫세 지파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취해 그들의 힘을 규합했다. 그러자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와 접경 지대를 기업으로 받은 므낫세 지파는 기드온
의 부름에 쉽게 응했다. 33절 주석 참조.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 - 이들 역시 이스르엘 골짜기와 인접해 있고 적들의 약탈
과 위협에 처해 있었기에 기드온의 부름에 응했다. 33절 주석 참조. 그런데 이 중 '아
셀'은 드보라 시대에는 압제자의 영향권 내에 있으면서도 출전치 않아 드보라의 비난
을 받은 적이 있는 지파다(5:17).
올라와서 - 이 말에 해당하는 원어 '알라'(* )는 반드시 '올라가다'란 의미만
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는 어느 중요한 지점으로 나아가거나(스 7:6) 전
쟁을 위해 진군하는 것(왕하 17:3;24:1;대하 36:23;나 2:1)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 중 본절에서는 '알라'가 전쟁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6:36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 기드온은 자신의 요구를 하나님께 아뢰
기 전에 이미 이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셨던 바를(16절) 먼저 언급했다. 이것
은 앞으로 있을 자신의 요구가 앞서의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6:37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불렀음을 표징으로 보여 주셨
던 적이 있다(20,2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이 다시 하나님께 표적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대한 의심 때문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약성에서 비롯된
것이다(Keil). 이미 그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충만히 임해 있었으나(34절), 그는 자신
의 연약한 힘으로써 메뚜기 떼 같은 대적들과(5절) 싸워 이긴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
았다. 그에 따라 좀더 확실한 하나님의 표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 근동지방은 강우량이 적은 대신 밤에
이슬이 많이 내려 식물을 자라게 한다. 성경 총론, '팔레스틴의 기후' 참조. 따라서
기드온 자신이 준비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사면 땅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그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기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6:38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 밤새 이슬이 사면 땅에 내리는 대신에 기드
온이 준비한 양털에만 비가 와서 젖은 것처럼 많이 내리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
서는 마치 어린애 장난과 같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혀 개념치 않으
시고 기드온의 요구를 들어주셨는데 이로써 기드온은 어느정도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
의 부르심과 그분이 덧입혀 주실 능력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6:39
양털만 마르고...하옵소서 - 이러한 기드온의 요구는 앞에서 언급한 요구와 정반대
된다(38절). 그렇지만 이 요구가 앞의 표적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서 기드온이 하나님
께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이는 앞의 이적을 보다 더 확증하기 위한목적에서
청한 요구일 뿐이다.
=====6:40
하나님 -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용된 신(神) 명칭 중 '여호와'가 고유 명사라면 '엘
로힘'(하나님)은 보통 명사이다. 이 중 '여호와'란 명칭은 다른 이방신과 구별된 하나
님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반면 '엘로힘'은 보다더 넓은 범위로서 이방신까지
포함한 모든 신중의 신이신 하나님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그런데 기드온이 하나님
께 표징을 구하는 장면(36-40절)에서는 '여호와'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대신 '엘로
힘'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기드온을 부르신 여호와께서(1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
만 아니라 자연 만물까지도 주장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표현인 듯
하다(Goslinga).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1:1 주석을 참조하라.
사사기 제 7장
=====7:1
여룹바알 - '바알과 논쟁하다', '바알에게 대항하다'는 뜻으로 기드온이 바알
(Baal)의 단을 훼파하고서 얻은 이름이다. 6:32 주석 참조.
하롯샘 -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얄룻'(Jalud) 샘으로 알려져 있다(Cundall,
Hervey). 이샘은 '이스르엘 골짜기'의 바로 북쪽 길보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한
편 '하롯'이란 지명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 '삼훗'과 '엘리가'의 출신지로(삼하
23:25) 언급된 것 외에는 성경에 더 이상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블레셋 군대가 사
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진 친 곳이 '이스르엘에 있는 샘'곁이 었는
데(삼상 29:1), 이것이 하롯샘과 동일한 샘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스르엘 골짜
기 주변에는 샘을 끼고 있으면서 군대가 진을 치기에 적당한 장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
다.
모레산 -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레'(Moreh)는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
는 '세겜'에 속한 한 지역이다(창 12:6;신 11:30). 그런데 이 지역은 전투 장소로 묘
사된 '이스르엘 골짜기'남쪽에 떨어져 위치하고 있으므로 '모레 산'과 동일시될 수 없
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혹자는 모레 산은 높은 곳이므로 북쪽이며 하롯 샘
은 낮은 곳이니 남쪽이라는 주장을 편다(Cassel). 그러나 이것은 막연한 주장일 뿐 위
치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을 못준다. 따라서 다만 '모레 산'은 '하롯 샘' 북쪽의 어느
한 곳일 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7:2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 사실상 기드온을 좇은 이스라엘 백성은32,000명
으로(3절) 메뚜기 떼 같은 적들과 비교할 때(12절;6:5) 그렇게 많은 수효는 아니다.
왜냐하면 무기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는 사람의 수효와 훈련 정도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거의 판가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36,000명의알렉산더
대재(Alexander the Great)의 군대가 60만의 바사 왕 고레스 3세(Cyrus III)의 군대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이긴 적도 역사적으로 실제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분명 그리 많
지않은 수의 이스라엘군이 엄청난 병력의 미디안 연합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수 밖
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수효를 줄일 것을 명하셨는데, 그
이유는 다음 두가지에서였다. 즉 (1)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고
(2)믿음의 정예(精銳) 용사를 뽑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세우사 이스라엘을 구
원하시려 한 목적은 단순히 이방의 압제를 그치게 하려는 데 국한되지 않았다. 즉 하
나님께서는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각성시켜(6:7-16)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려
는 주요 목적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전투 인원을 극소수로
제한시킴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1)겸손히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였고 (2)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
게 하셨다(삼상 14:6).
=====7:3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 하나님의 백성이 대적과 싸움에 있어서 '두려워
서 떤다'는 사실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거절하셨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셨다. 만일 이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 커녕 스스로 자긍할 자들임에 틀림없
다.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 여기서 '길르앗 산'은 요단 동편의 갓, 르우벤,
므낫세 반 지파의 지경(地境)에 걸쳐 넓게 퍼져 있는 길르앗 산지를 가리킨다. 5:17
주석 참조.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길르앗은 '길르앗'(* )이 아니라 '길보아'(
* )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Clericus, Bertheau, Cassel, Cundall). 왜냐
하면 현재 이스라엘이 진치고 있는 곳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산지가 아니라 길보아 산
기슭의 하롯샘 곁(1절)이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1). 그
러나 본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큰 무리는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길르앗'
이라하면 요단 동편의 므낫세 반 지파를 일컫기 때문이다.그리고 '-에서'란 말은 '-
으로'라고 번역하여, 본절을 '길르앗 산으로 떠나 돌아가라'라고 번역할 수도 있기 때
문이다. 그럴 경우 기드온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그와 같은 지파인 므낫세 지파 사람
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며, 많았던 점에 의거할 때(6:35) '길르앗으로 돌아가라'는 말
은 자연히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역 성경 RSV도 이를
'집으로 돌아가라'(let-return home)는 의미로 의역하고 있다.
=====7:4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아마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남은 이들 백성 중에는 '졸장
부'라는 비난이 두려워서 남아 있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전쟁의 승리 후 하나
님의 영광을 가로막을 불신앙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아 있
는 1만 명도 많게 보시고 다시금 재감군(再減軍)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했다(약 1:13). 그런데 본절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언급되
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각각의 문맥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즉 야고보 사도가 말한
시험은 인간 자신의 욕심에 미혹되어 인간 스스로 고난에 빠진 것을 의미하며, 본문에
서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전쟁에 합당한 자를 고르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 해서
는 2:11-23 강해, '시험의 종류와 목적'을 보다 참조하라.
=====7:5
그 혀로 물을 핥는 자 - 6절에서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라고 언급되어
있다. 카일(Keil)의 말대로 이들은 서서 물을 움켜 조금씩 핥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이들이 평소와는 달리 마음 놓고 물을 마시지 못한
것으로 보아 겁장이들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
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Keil & Delitzsch Commentary,Vol.II,p.342). 한편 혹자
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보다 훨씬 재빠르므로 전쟁에 보다 적합한 자
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Goslinga). 아무튼 이들은 서서 혀로 물을 핥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위를 경계하면서, 방심하지 않는자들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이들은 매
우 조심성이 요구되는 횃불 작전(15-23절)에 적합했을 것이다(Wycliffe).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 전쟁에 임할 자들 치고는 너무도 태평스러운 자세를 취한
자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조심스러운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다.
=====7:6
삼백 명 - 이처럼 최종적으로 선발된 삼백 용사의 특징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첫
째, 그들은 장차 맞게 될 전투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3절). 즉 비록수효면에
서는 엄청난 열세에 몰려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민족에 대한 소명으
로 굳게 무장되었기에 담대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철저한 임전 태세(臨
戰態勢)를 갖춘 자들이었다(6,7절). 비록 소수일망정 확고한 목표 아래 한 마음 한 뜻
으로 강력하게 결집될 때 위대한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7:7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 이 승리의 약속은 이미 이전에 하나님께서 기드
온에게 주셨던 바 있다(6:16). 하나님께서는 우상의 산당을 제거하게 하시고(6:25,26)
군대를 선발하시는 등 모든 절차를 끝내신 후 비로소 기드온에게 승리를 다시 확증시
키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 중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하시고 오직
당신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 선발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
해 본격적으로 역사하셨던 것이다(9-25절).
=====7:8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 여기에서 '나팔'에 해당하는 단어인 '쇼파르'
(* )는 대개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킨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
들에게는 이러한 '나팔'이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나팔'은 예배나 축제때에 악기로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레 25:9;민 10:10;왕상 1:34) 전쟁이나 기타 비상시에 신호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민 10:9;31:6;수 6:4;삼상 13:3).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백성들은 돌아가는 길에 양식을 구할 수 있으므로 '양식'도 거의 필요치 않다. 따라서
본절의 '백성'은 선발된 300명임에 틀림없다. 히브리 본문 역시 '그 백성이 그들의 손
에 있는 양식과 그들의 나팔을 취했다'라는 뜻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그 같은 사실은
더욱 분명하다.
=====7:9
이 밤에 - 문자적으로 '그리고 바로 그 밤에 그것이 있었더라'는 뜻이다. 이는 곧
정예 300명을 뽑고 그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 보낸 그날 밤에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명
령이 떨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즉시 명령을 내리신 것은
아마 적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군대의 수효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위함이었을 것이
다.
=====7:10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300명을 남겼으나
수많은 적들을 생각할 때 아직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즉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신
하지 못하여 하나님께 3번씩이나 표징을 구했었던 바 있으므로(6:17,36-40) 적을 치라
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두려워 망설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또 다른 표적(13,14절)을 보여 주실 필요가 없었다.
=====7:11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믿음 약함을 탓하지 않으시
고 오직 믿음으로써 적과 싸울 수 있는 담력을 그에게 주시고자 원하셨다. 그 이유는
전쟁의 승리가 기드온과 그의 백성들의 용기와 지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님의 능력에 있음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영광 받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군대가 있는 - 문자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는'이라는 의미이다(Pulpit
Commentary). 이것은 적들이 순수한 병사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이므로
여인들과 아이들도 데리고 있었음을 암시 해 준다. 아마 그들은 무장한 사람들을 이스
라엘 백성의 진과 마주 대하여 배치했을 것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짐승과 더불어 안전
한 곳에 배치시켰을 것이다(Goslinga).
=====7:12
미디안 사람과...동방의 모든 사람 - 이들 미디안 연합군들이 어떠한 자들인지에
대하여서는 6:3 주석을 참조하라.
골짜기에 누웠는데 - 기드온이 부하 부라와 함께 적의 진지로 정탐하러 간 때가 밤
이었으므로(9절) 적군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누워 있다'는 표현이 사용
된 것이다. 여기서 '골짜기'는 '모레산 앞 꼴짜기'(1절)를 의미한다. 한편 이처럼 적
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가까이에 두고도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깊은 잠을 자고 있었기에 기드온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에 정신이 없어 자기들끼리
서로 싸웠을 정도이다(22절). 더욱이 기드온이 정탐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늦어도 이
경 초 곧 밤 10시에서 11시 이전이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수효가 메뚜기 떼같이 많은 것만을 믿고서 정신 상태가 해
이해져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 무수한 메뚜기 떼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
앙'을 상징하였다. 6:5 주석 참조.
그 약대의 무수함 - 약대는 유목민들이 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운
송 수단이다. 특히 미디안의 침략에는 이 약대가 병기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은 전투시
에 상당한 기동력을 발휘했을 것이고 그 위용면에서도 상대방을 크게 위압했을 것이
다. 전쟁에서 약대를 사용한 예는 여기서 처음 나타나는데, 이스라엘을 공포로 몰아넣
기에 적절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6:5 주석 참조.
=====7:13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 꿈이란 한갖 생리적 현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함부로
해몽(解夢) 운운하는 것은 매우 터무니 없는 일이다(전 5: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
별한 경우에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계시하기도 하셨다(민 12:6;욥7:14;렘 23:28).
기드온과 부라가 적진으로 은밀히 침투해 들어갔을 때, 두명의 적병이 꿈 이야기를 하
고 있었다. 만일 기드온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14절과 같이 해몽하였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기드온에게 큰 확신을 주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왜냐하면 그 꿈이 하
나님의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면 그 해몽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야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일행이 잠복한 때에 꼭 맞춰 꿈과 해몽을 적병
의 입을 빌어 들려주심으로써,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서는 창 40:5-19 강해, '구약에 나타난 꿈과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참조하라.
보리떡 한 덩어리 -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흔했던 음식으로 '비천함'을
상징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인바 이 '보리떡'은 넓은 의미로 당시 가난에 찌든 이스
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 그리고 좁은 의미로는 비천한 가문 출신인(6:15)기드온을
상징한다(14절).
한 장막 - 이는 대표 단수로 미디안 전체 장막을 의미한다. 특히 '장막'이라는 표
현은 유목민의 거주지이므로 미디안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용어 이다.
=====7:14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 문자적으로 '이는-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란 의미이다. 즉
이것은 어떤 사실을 단정적으로 확증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동료의 꿈 이야기를 듣
고 그 미디안 사람이 이처럼 판정적인 표현을 사용한것은 은연 중에나마 미디안 진영
에 '기드온'이란 인물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 원어로는 '엘로힘'(* )이다. 이처럼 미디안 사람이 신명칭으로
보통 명사인 '엘로힘'을 사용한 것은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엘로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자신들의 '신'을 가리키던 명칭이기 때문이다. 6:40 주석 참조.
=====7: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 기드온은 그들의 꿈과 해몽이 정확한지 아
닌지를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이는 이미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리라 약
속했던 또 하나의 증표였기 때문이다(9-11절). 따라서 그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미
디안 사람들을 자기에게 붙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Goslinga). 사실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장비와 훈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그 군대의 정신력이 더욱
중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전투력이 두려움으로 인해 매우
저하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싸움에서의승리를확신한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Vol.II,pp.166 f).
미디안 군대 -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의 연합 군대를 가리킨다(12절;6:33).
=====7: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 기드온이 수립한 횃불 작전(19-23절)은 비밀스럽게 적
진 가까이 가서 적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 와중에 뛰어들어 싸우는 것이었다. 기드온
이 본절에서 자신의 용사 300명을 100명씩 세 대로 나눈 것도 보다 비밀을 잘 유지할
수 있고, 적들이 방어할 채비를 갖추기도 전에 한꺼번에 기습 공격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사실 병사를 세 대로 나누어 미다안을 공략하는 것은 꼴짜기에 위
치한 미디안 사람들(12절)을 공격하는데도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나팔과...횃불을 감추게 하고 - 기드온 군대의 주무기는 이처럼 나팔과 항아리 그
리고 횃불이었다. 이는 전쟁 무기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다음과 같은 목
적에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무기였음에 틀림없다. (1)나팔을 붊으로써 마치천군만마
(千軍萬馬)의 대 공격을 알리는 신호인 듯한 위협을 주고자 하였다. 이는 마지막 심판
의 날에 천사들을 통해 들릴 나팔 소리를 상기케 한다(계 8:2). (2)항아리는 횃불을
감추는 데에 사용되었음은 물론, 깨뜨려질 때의 그 요란한 소리는 마치 적군을 짓밟아
부수는 듯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3)야밤에 횃불을 한꺼번에 밝힘으로써 군대의 규
모가 엄청나게 크게 보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기드온 군대는 갑자기 기습하여 대적들
의 장막을 불태우려는 계산도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
기 위해 복음의 횃불을 밝히 들고 나가야 할 것이다.
=====7:17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 횃불 작전은 한 두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
게 되면 실패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드온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신호에
따라서만 움직이도록 명령했다.
=====7:18
여호와를 위하라 - 20절에는 '여호와를 위한 칼이여'라고 하여 '칼'(* , 헤
렙)이 추가되어 있다. 그래서 몇몇 히브리어 사본과 시리아 역본 등은 본절에도 '칼'
이란 단어를 삽입시켰다. 또한 영역 성경 KJV도 이러한 견해를 취하여 '칼'(sword)을
삽입시켰다. 이러한 견해를 따라 혹자는 '칼'이란 단어가 본절에서 누락된 것으로 추
정하였다(Hervey, Cassel).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추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본절은
기드온이 용사들에게 함성의 군호(軍號)를 주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고, 20절은
300명이 기드온의 신호에 따라 어떻게 함성을 질렀는가하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을 뿐
이다.
=====7:19
이경 초에 - 구약 시대에 히브리인들의 밤 시간 계산은 해지는 시각과 해뜨는 시각
을 중심으로 하여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즉 해질때부터 밤 10시경이 초경(애 2:19)이
며, 10시경부터 2시까지가 이경, 그리고 2시부터 해뜰때까지가 삼경이다. 따라서 '이
경 초'라 함은 밤 10시에서 11시 사이를 가리킨다. 한편 신약시대에 와서 이러한 시간
구분법은 좀더 세분되어 일, 이, 삼, 사경으로 나뉜다(마 14:25;막 6:48). 이는 곧 유
대인들이 당시 로마인들의 시간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번병의 체번할 때라 - 보초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기점으로 하여 기드온 군대는 공
격을 개시했다. 그 시각은 근무 교대를 위해 인수 인계를 함으로 말미암아아무래도
외부 경계에 소홀히 하기 쉽다.
=====7:20
본절에는 기드온의 군대가 '횃불'과 '나팔 소리' 그리고 '함성 소리'로 보초 교대
중에 있는 미디안 사람 뿐 아니라 편히 잠자고있는 약대 떼까지 놀라게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그곳은 골짜기였으므로(12절) 미디안 사람들에게는 평지보다 나팔 소리
와 함성 소리가 더욱 크고 우렁차게 들렸을 것이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 이 함성의 표현은 이스라엘 군대의 대표가 누구인지를
보여 준다. 즉 이스라엘 군대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출 14:13,14)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의 실질적인 대표자는 바로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기드온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종으로서 그분을 대리할 뿐이다. 한편 기드온은 300명 용사들에게 이 함성을
지르게 함으로써 이미 이 이름들로 인해 두려워 떨었던 미디안 군대를(14절) 더욱 놀
라게 했던 것이다.
=====7:21
각기 당처에 서서...에워싸매 - 기드온의 용사들은 포위망을 좁히지 않고, 단지 적
진의 사면을 에워싸고서 계속하여 나팔을 불며 횃불을 들고 함성을 지르며 서 있었다.
그러자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의 나팔 소리와 함성에 의해 무너졌던 것처럼, 미디
안 군인들의 마음은 무너져 버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들은 혼비 백산하여도주하기
에 급급하였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승리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계 19:21).
=====7:22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 불의와 비리는 스스로 자멸하기 때문에 구태여
손을 써서 패망시킬 필요조차 없을 때가 많다. 이 때 성도의 할일은 다만 진리의 빛을
발하고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일 뿐이다.
스레라의 벧싯다 - 아직까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은 지명이다. 혹자는 '스레라'를
수 3:16과 왕상 7:46에 언급된 '사르단'과 동일시한다(Keil). '사르단'은 여리고 북방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던 성읍이다. 이곳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여리고 가까
운 요단 나루 턱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그 부근에는 '아벨므홀라'가 있다. 이곳으로 도
망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므낫세 남쪽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가 동원된
점으로 보아(24절) '스레라'가 '사르단'과 동일한 성읍일 가능성이 크다.
답밧 - 요단 강 건너편, 즉 동쪽에 위치한 성읍이었다는 점 외에는 달리 정확한 위
치를 획인할 수 없다. 혹자는 길르앗 산지의 '라스 아부 타밧'(Ras Abu Tabat)일 것으
로도 추정한다.
아벨므홀라 - 이 역시 요단 동편의 답밧부근에 위치했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려
진 바가 없다. 왕상 19:16에는 엘리사의 고향으로 언급되어 있는데동일 지명인지도
분명치 않다.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벤산 남쪽 16km 지점의 요단강
서편의 한 유적지가 바로 이 '아벨므홀라'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Wycliffe).
=====7:23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 곧 '이들 지파들의 지경(地境)에서부터'란 뜻이
다. 6:35 주석 참조.
=====7:24
에브라임 온 산지 -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지경 남쪽에 넓게 펼쳐진 산지
를 중심으로 그들의 경계를 이루었다(수 16,17장). 이 지파는 처음에는 전쟁에 소집되
지 않았으나(8:1) 도망치는 미디안 사람들을 추격하기 위해 후에 소집되었다. 이로 보
아 미디안 사람들이 주로 도망해 간 곳은 가나안 남부 지역임이 분명하다.
벧 바라 - 이곳의 위치는 확실치 않다. 다만 문맥상으로 보아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요단 나루턱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나루턱을 취하고 - 문자적으로는 '그 물들을(the waters) 취하고' 라는 의미이
다. 이것은 벧 바라에서 여리고 동편 요단 나루턱까지 이르는 모든 나루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이 나루턱들을 지키게 한 것은 적
들이 요단을 건너 동편땅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6:33).
=====7:25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 - 이들은 미디안 연합군의 군사 지도자 중 일원이었지
미디안 족속의 최고 통치자들은 아니었다. 이것은 8:5에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
나'가 언급된 점으로 보아서도 확증된다. 왜냐하면 한 족속에 두 왕이 존재할 수는 없
기 때문이다.
오렙 바위...스엡 포도주 틀 - 본 전투에서 '오렙'과 '스엡'이 죽임을 당한 것과
관련하여 알려진 지명이므로 사 10:26 외에는 성경 다른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오렙'은 '갈가마귀'를 '스엡'은 '늑대'를 뜻한다는 것 외에 달리 그것들이 어
디에 위치하였던 바위이며 포도주 틀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Lange).
사사기 제 8장
=====8:1
에브라임 사람들 - 이들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가장 불평 불만이 많은 지파 사람
들 이었다.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자기들이 기업으로 받은 영토
가 다른지파에 비해 좁다고 불평했던 적이 있다. 또한 훗날에도 그들은 본절에서 기드
온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사사 입다에게도 하면서 다투었던 적이 있다(12:1). 이러
한 저들의 소위(所爲)는 거의 고질적이었는데 훗날 이스라엘 왕국을 분절시키는 데 주
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로보암 역시 이 에브라임 사람이다(왕상 11:26).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이 어쩜이뇨 -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에 빠진 지파는 비단
에브라임 한지파 뿐만 아니라 여러 지파들이 었다(6:35). 더군다나에브라임 지파는
전쟁 말기에서나마 참전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에
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러한 말로 비난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 지파 중에서 자
신들이 주도권(hegemony)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드
온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높여 주면서 그들의 노를 풀었던 사실에서분명히나타난다
(2,3절).
=====8:2
나의 이제 행한 일이...비교되겠느냐 - 이 대답에서 기드온의 성품이 드러난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여 명예와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의 분별력은 뛰어나 에
브라임 사람들의 불평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내부의 분열위험을 감지하고지혜롭게
예방책을 강구하였다(잠 15:1).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낫지 아니하냐 -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를 거둔 후
남은 포도를 의미한다(사 24:13). 때문에 KJV, NIV, RSV등은 본절을 '에브라임의 포도
찌꺼기가 아비에셀의 수확한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포도 찌
꺼기'즉 '끝물 포도'는 '맏물 포도'보다 맛이 시고 질도 훨씬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에브라임 산지의 '끝물 포도'가 자기 고향에서 생산되는 '맏물 포도'보다
훨씬 좋다고 말한 것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기드온 집안 사람들인아비에셀(6:11)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운 공로보다 전쟁의 막바지에 참여한 에브라임 지파의 공로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물론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
백을 죽였을 뿐 아니라 적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등 큰 역할을 하였음에는틀림없다
(7:24,25). 그러나 아무리 낮게 평가하여도 싸움의 전과정을 주도했던 기드온과 그의
소속 가문의 업적은 에브라임 지파의 것에 비해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뒤떨어질리 없
다. 그런데도 기드온이 이처럼 겸허한 태도를 취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심
때문이었다. 즉 그는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지파들간에 분열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는 반목(反目)보다는 화평을 추구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
는 신앙의 정도(正道)에 자신을 승복시켰던 것이다(마 5:9; 빌 2:3).
=====8:3
하나님이...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 미디안 연합군이 기드온의 군
대에게 쫓겨 도망갈 때 요단 나루터에서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가 미디
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가리킨다. 7:25 주석 참조. 그런데
기드온이 이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이...너희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한 것은 곧 '하나
님께서 너희로 하여금 그토록 명예로운 일을 하게 하시지 않았느냐? 는 일종의 반문이
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1.2,pp.170f).
나의 한 일이 어찌...비교되겠느냐 - 즉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지파로 하여금 미디
안 두 방백을 죽이는 명예로운 전과(戰果)를 올리게 하신 이상, 그밖에 기드온 자신이
행한 모든 일들은 그 같은 영광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에 블과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는 교훈이 꼭 들어맞은 경우이다. 만일 기드온이 자
신의 지도자적 권위에 도전해 온 에브라임 지파를 용납치 아니하고 또한 저들의 시비
를 공박하려고만 들었다면 이처럼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
드온은 그러지 아니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줄 아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빌 2:3).
=====8:4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명이...피곤하나 - 사실 이들은 '모레 산 앞 골짜기'
(7:1), 즉 이스르엘 골짜기에서부터 적과 싸우며 요단 나루턱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쉬
지 않고 적군을 추격하였으니 매우 지쳐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는 기드온이 자신과
병사들을 위하여 채면 불구하고 숙곳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요청한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5절).
따르며 - 기드온과 그의 정예병 삼백 인은 비록 피곤하고 지쳤으나 끝까지 적을
추격했다. 이들이야말로 충실한 정병(精兵)이며, 최후까지 긴장하여 희생적 봉사에 참
여한 순교적 투사들이었다. 승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잠시 출전하여 다행히 두 적장을
죽인 공로를 내세워 이익과 명예를 얻으려 했던 에브라임 사람들과는 그유가 다른 충
성이었다. 애굽의 모든 영화와 부귀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고 하나
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더 원했던 모세의 신앙과 가히 비견될 만하다(히
11:23-26).
=====8:5
숙곳 사람들 - '숙곳'(Succoth)은 요단 동편의 갓 지파가 기업으로 차지한 성읍이
다(수13:27). 이곳은 얍복 강에서 북쪽으로 약 16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
런데 본절에서 '숙곳 사람들'이란 그곳에 거하는 이스라엘 거민인지 가나안 원주민인
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기드온이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에게 스스
럼없이 떡덩이를 요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거민은 갓 자손들일 것이다.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 본절에는 '세바'와 '살문나' 두
사람이 모두 미디안 왕인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은 각기 '미디
안'과 '아말렉' 그리고 '동방 사람'의 왕 중 어느 한 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은 '미디안 두 왕'이라 칭한 까닭은 아마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이 연합하여 미디
안 연합군을 이루었기 때문인 듯하다(6:3). 즉 세바와 살문나는 미디안 연합군의 두
왕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두 왕은 '오렙'과 '스엡'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우는 중에
(7:25) 요단 강을 건너 도망쳤을 것이다.
=====8:6
숙곳 방백들 - '숙곳' 거민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의미한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떡을 주겠느냐 - 기드온이 미
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해서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므로 떡을
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즉 숙곳 방백들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
니라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에게 패할 경우 미디안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를 보복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기드온에게 말한 것이다. 이것은 동족의 슬픔과
고통을외면한이기주의적이며 기회주의적인태도였으니 응징받아마땅했다
(Wycliffe,Keil & Delitzsch).
=====8:7
여호와께서...내 손에 붙이신 후에 - 모래 산 앞 골짜기에 진쳤던 대적들을 기습
한 이래(7:19이하) 계속된 추격전으로 인해 기드온의 용사들은 기진 맥진한상태였다
(4절). 거기다가 예상 밖의 푸대접을 받은 터였지만, 기드온은 전의(戰意)를 상실하지
않고 오혀려 승리의 확신을 더욱 굳게 다지고 있다. 오늘날 주의 일을 하는 데에도 이
와 유사한 어려움이 많이 닥친다. 응당 협력해야 할 사람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
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
심하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고후 4:8; 빌 3:14).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살을 찢으리라 - '들가시'는 광야에서 자라는 매우 딱
딱한 가시를 의미한다. 히브리 원문에서도 이것은 '광야의 가시'(*
, 코체 하미드바르)라고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찢으리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타작하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의 표현을 '기드온이 그들을 돌가시와
찔레 위에 눕혀 놓고 타작용 기구로 그들 위에 눌러 끌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Cundall). 또한 어떤 학자들은 '타작하다'란 맡을 '가혹한 형벌을 가하다'란 의미의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한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Bertheau). 아무튼
본절은 기드온이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방백들의 살을 타작하듯이 징벌하겠다는 의미
로 기드온의 극도로 분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 까닭은 지금 기드온이 수행하고 있는
전쟁이 하나님의 성전(聖戰)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13-15 강해, '성전'(聖戰)을 참조하라. 한편 오늘날도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관망
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정죄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에
적극 동참하는 까닭은 궁극적인 하나님의 승리가 불을 보듯 명확하다고 믿기 때문이
다.
=====8:8
브누엘 - '브니엘'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다. 숙곳 동쪽 약 9km 지점에 위치
한 오늘날의 '텔 에드 다합 에쉬 쉐르퀴예'(Tell edh-Dhahab esh-Sherqiyeh)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숙곳과 마찬가지로 얍복 강 바로 위에 있는 갓 지파의 성읍이었다.
이 '브니엘'이란 명칭은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너기 전 그곳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하여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칭했던 데서 비롯되었다(창 32:30).
=====8:9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는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
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라고 말했다(7절). 따라서 이는 '적들을 완전히 섬멸시킨 후
자신이 평안히 돌아오는 때'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망대를 헐리라 - '망대'는 성읍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파수꾼들은 이 곳
에서 적의 침입을 관찰하고, 적의 침입이 있을 때 나팔을 불어 전 성읍에 위험을 알린
다. 따라서 이러한 망대가 무너지면 그 성읍이 적에게 점령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
러므로 기드온이 이 '망대'를 헐어 버리겠다고 브누엘 사람들에게 위협한 것은 그 성
읍을 파괴해 버리겠다는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8:10
갈골 -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 유세비우스(Eusebius)와 제롬(Jerome)은 카르카리아
(Carcaria) 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카르카리아' 성은 사해 동쪽의 '페트라'
(Petra)에서 남쪽으로 하루 길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모압 사람의 지경에 속해 있
다. 그러나 이속은 갓 지파의 영역에 있는 '노바와 욕브하'(11절)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므로 '갈골'의 위치로는 적당하지 않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 2, p.
353). 한편 히브리 본문에는 '갈골'을 보통 '울타리로 쳐진 곳'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
으므로 이는 '양의 우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모세 당시 갓 자손
은 '욕브하'와 그 근처 성읍을 점령하여 그곳에 양의 우리를 지은 적이 있다(민
32:35,36). 그러므로 본문의 '갈골'은 고유명사로 취급하기 보다는 보통 명사로 취급
하여 '노바'와 '욕브하' 근처에 있는 '양의 우리로 지어진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 지금까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
사람의연합군을 대표적으로 말할 때에는 '미디안 사람'으로 칭했다(6:14;
7:1,14,15,24). 그러나 본절에서는 '동방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아마 이것은 미디
안 사람이 거의 전멸하고 동방 사람들이 많이 살아 남았든지 아니면 그들이 진치고 잇
는 곳이 동방 사람이 거하던 곳과 인접해 있던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십 이만 명이 죽었고 그남은 일만 오천명 가량 - 전사자(戰死者) 십 이만명은 당
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수효였다. 그리고 패잔병에 해당하는 일만 오천 명 또한 기드온
삼백용사에 비하면 무려 50배에 달한다. 따라서 그들은 갈골에 이르러 진영을 가다듬
어 일전(一戰)을 준비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바 있는
기드온 용사들의 사기는 의기 충천해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패잔병들은 위축되어 또
다시 도주하기에 급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8:11
안연히 있는 중에 - 이말은 세바와 살문나가 군대의 호위 가운데서 안전하게 거하
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를 호위하고 있는 군사들 역시기드온의
손에서 벗어났음을 확신하며 안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 기
드온의 300명 용사가 그들을 치자 그들은 예기치 않은 공격에 놀라 전의(戰意)를 상실
했을 것이다.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 - 노바와 욕브하 동편에 거주하는 유목
민들에게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아마 이곳은 갓 지파와 동방 사람들이 사는 지경의
경계 지역일 것이다. 한편 '노바'와 '욕브하'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성읍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헤스본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곧 길르앗 산
지의 어느 한 지점이다.
=====8:12
온 군대를 파하니라 - '파하다'에 해당하는 '하라드'(* )는 '공포에 떨게
하다', '당황하게 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기드온에게 세바와 살문나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접한 미디안 연합군이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
멸(潰滅)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상으로 7장에서부터 계속되었던 기드온군과 미디
안 연합군과의 싸움은 끝이 난다.
=====8:13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 KJV는 이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
이 해가 뜨기 전에 전장에서 돌아오다가'로 번역하였다. 그 까닭은 '헤레스 비탈'에
해당하는 원어 '밀마아레 헤하레스'(* )를 '해가 뜨기 전'이란
뜻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몇몇 학자들도 지지하는 견해이다(Luther, Hervey). 그
러나 본절으 굳이 이처럼 의역(意譯)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 '헤레스 비탈'이란 말
은 기드온이 미디안 연합군과 싸워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던 곳인 '갈골'(10-12절)
에 대하여 보충 설명해 주는 말로 봄이 더 낫다.
=====8:14
한 소년 - '소년'에 해당하는 '나아르'(* )는 '사환'(삼하 9:10), '어린 아
이'(출 2:6), '청년'(출 24:5; 33:11) 등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단어이다. 본문에
서는 그가 숙곳 방백과 장로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청년'으로 해석하
는 편이 좋다.
신문하매...기록한지라 - 사로잡힌 소년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숙곳의 방백과 장
로 칠십 칠인의 명단을 폭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숙곳의 방백과 장로들은 동
족에게로부터까지 버림을 받는 지경에 당도한 셈이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 인 - 이들은 슥곳 성읍을 다스리며 재판을 총괄하는 그
성읍의 대표자들이다. 6절에서는 방백들만이 기드온을 조롱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는
데, 본절에서 기드온이 보복하고자 한 사람 중에는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몇몇 방백들의 말이라 해도 그 성읍 대표모두가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연대성
(Solidarity) 때문이었을 것이다.
=====8:15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 기드온은 숙곳 방백들에게 자기를 조롱한 것(6절)이 얼마
나 어리석었었가를 보여 주기 위해, 그 증거로 전쟁에서 사로잡은 미디안 두 왕(12절)
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그의 의도는 숙곳 방백들로 하여금 더 이상 쫓기고 있는 적들
이 또다시 힘을 키워 보복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또한
자기 동족의 고통을 같이 나누지 않은 숙곳 방백들은 이제 세바와 살문나처럼 자기 손
에 사로잡힌 바 된 것을 시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8:16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 이 표현은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을 죽인 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징계임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6,7절). 즉 기드온이 그들을 죽인 것은 사소
한 개인적인 악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와 관계된 그들의 죄
에 대한 징계로서 뚜렷한 대의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8: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 기드온에 의해 브누엘 성읍이 완전히 파괴된 것을 의미한
다. 9절 주석 참조.
=====8:18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 - 여기서 '다볼'(Tabor)은 이스라엘 골짜기에 위치한
'다볼 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곳은 일전에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의 군대에 대
항하기 위하여 진쳤던 곳이다. 4:6 주석 참조. 그런데 지금까지는 세바와 살문나가 다
볼에서 어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아마 이는 세바와 살문나가 이
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탈할 때(7:1) 그 중 일부를 죽인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런데 이때 죽임을 당한 자들은 다름아닌 기드온의 형제들이
었다(19절).
모두 왕자 같더라 - 이로 미루어 볼 때 기드온의 형제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8:19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 공동 번역은 이를 '그들은 한 어머니에
게서 난 내 형제들이다'로 번역하였다. 이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죽임 당한 자들이 단
순히 기드온과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라 분명히 기드온의 친형제였음을
나타내 준다.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 이는 곧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에 대하여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누군가가
피살당한 경우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족이 복수자가 되어 살인자의 생명
을 요구할 의무와 권리가 있었다. 그것은 노아 시대 이래 '피를 흘리게한 자는 그자
역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율법 사상에 근거한 규례였다(창 9:6). 따라서 본절의 기드
온의 보복 행위 역시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의(公義)의 심판을 가
하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죄의 복수'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 19:6
주석을 참조하라.
=====8:20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 이처럼 미디안 연합군을 지휘하
던 대장이자 왕이었던 세바와 살문나가 적장(敵將)은 물론 용사도 아닌 한갖 소년 여
델에 의해 죽임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 이처럼 기드온의 장자 여델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일 만큼 용기있는 소년은 아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기드
온이 세바와 살문나를 처형한 것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왜
냐하면 그의 아들은 어려서 300명 용사 안에 분명히 포함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
었을 것이기 때문이다(7:2-8).
=====8:21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 이 말은 기드온의 장자 여델이 나이 어리
기 때문에 그의 힘과 용기도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기드온이 직접
자기들을 죽여 달라는 역설적인 의미의 호소이다. 한편 그들이 이와 같이 기드온에게
직접 죽고자 자청한 것은 힘도 없는 어린 아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용사에게 죽
임을 당하는 편이 덜 수치스럽다는 생각에서였음이 분명하다(Keil, Wycliffe).
새 달 형상의 장식 - 금이나 은으로 된(26절) 반달 형상의 장신구이다(사 3:18).
미디안족들은 월신(月神)을 숭배하던 관습에 따라서 반달 모양의 장식품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기드온은 이 장식물을 세바와 샅문나를 쳐서 승리한 기념으로 취했던
것이다. 한편 이외에 그와 함께 출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미디안 사람을 친 후 여
러 가지 장식물을 노략물로 가져왔다(24절). 이와 같이 전쟁에 승리하여 적국의 물건
들을 노략물로 취하는 것은 고대 전쟁에 있어서 보편적인 일이었다.
=====8:22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 이 말은 기드온의 집안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요구한 것
은 당시 고대 근동에 왕위 세습 제도가 보편화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당시의
사사 제도는 아직 미분화된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과도기적 체
제였다. 그리고 왕정(王政)에 대해서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지시하신 바 있
다(신 17:14-20).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기드
온의 인간적 용맹과 지도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확보해 보려는 의도에서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때가 이르러 왕을 택하시고 세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행위이다. 이스라엘이 진정 왕정이 도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다면, 백성들은 하나님께 간구했어야 마땅하였다. 따라서 임의로 왕을
세우고자 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왕되신 하나님(삼상 8:7; 12:12)을 경홀히 여기는 불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8:23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진쟁에서 승리한 것이 자
신의 힘과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임을 잘 알고 있었
다. 그래서 그는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다스
리시는 왕이시며 모든 영광을 그분이 받아야 마땅하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또한
기드온이 했던 이 말은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 지도자를 의뢰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
뢰하도륵 하는 교훈도 담고 있다.
=====8:24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귀고리가 있었음이라 -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낳은 아들이다(창 16:15). 그 후손인 이스마엘족은 시내 반
도 북동쪽에 있는 바란 광야를 중심으로 유목 생활과 대상(隊商)을 하였으며, 아브라
함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미디안 족속(창 25:2)과 매우 친밀하게 지냈다. 이러한 사
실을 근거로 본서의 저자는 이스마엘과 미디안을 같이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실상 별 무
리는 없다. 왜냐하면 '이스마엘 사람'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며
넓게는 미디안족도 이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은 항상 이동하면서 생활했
으므로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물건과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귀중품 특히 금을 많
이 지니고 다녔다.
=====8:25
겉옷 - 이에 해당하는 '시믈라'(* )는 대개 사막 지대 사람들이 낮에는
겉옷으로,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던 긴 '외투'를 가리킨다.
귀고리 -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실상 '귀고리'가 아닌 '코걸이'였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당시 아라비아 일대의 유목민들은 많은 장식품들로 코를 단장하는 풍
습이 성행했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습은 오늘날에도 일부 근동 지방에서 볼 수 있
다(A.C.Hervey). 그러나 '귀고리'에서 해당하는 '네젬'(* )은 일반적인 '장식용
보석'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귀고리와 코걸이를 막론한 모든 종류의
장신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좋을 것 같다(Lange).
=====8:26
금 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 한 세겔(Shekel)은 약 11.4g이다. 따
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사람에게서 노략한 금의 무게는 21.38kg 가량 되었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자색 의복 - 고대 애굽 및 팔레스틴 일대에서는 지중해의 조개에서 추출한 액으로
붉은 보라 빛 염료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자색 염료로 염색한 천이나 의복은 매우 귀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대개 귀족이나 왕족들만 착용하였다. 로마 병정들이 예수님을 체
포한 후 그에게 붉은 홍포를 입힌 까닭도 곧 '자색'이 당시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었
기 때문이다(마 27:27,28).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 '에봇'(Ephod)은 본래 대제사장의 의
복으로서 앞으로는 가슴을, 뒤로는 등을 덮었던 조끼 모양의 상의(上衣)였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에 대제사장은 이 옷을 입고 우림과 둠밈으로 판결을 구하
였다(출 28:6-30). 그런데 기드온은 금으로 이 예봇 형상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둠으
로써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케 하는 소지를 마련하였다. 즉 이 때문에 이스라
엘 백성들은 실로에 있는 성막의 제사에 집중하지 않고, 오브라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
나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무질서 속에서 점차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자기의 성읍 오브라 - 베냐민 지파의 성읍 '오브라'(수 18:23)와는 구별되는 곳으
로 기드온의 집안이 거주하던 성읍이다. 6:11 주석 참조.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 '음란'이란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용어이다(겔 16:58; 23:27,29). 즉 이스라엘 백성은 기
드온이 만든 에봇을 우상을 섬기듯이 섬긴 것이다.
=====8:28
미디안...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 이 말은 미디안 사람이 기드온으
로부터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그 세력이 매우 약화되었음을 가리킨다. 사실상 미디안
사람들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살아 남았으며 유목생활도 계속 유지하였지만(사 60:6)
더 이상 이스라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사십 년에 그땅이 태평하였더라 -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미디안 세력
이 철저히 진멸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평화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평화 이면에는 타락의 움직임이 음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
생전에도 에봇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등 가증한 행실을 버리지 못하였으며(27절) 기드
온의 사후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알을 열렬히 숭배하기 시작하였다(33절). 요컨대 그
들은 자유와 평화를 신앙 성숙의 기회로 삼지 않고 도리어 육신의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갈 5:13). 우리는 이러한 기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우상 숭배 욕망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굳이 새겨진 이방 신
의 형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황금 만능주의, 출세 제
일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등도 우상 숭배나 다름이 없다(사 60:6).
=====8:29
여룹바알이...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 기드온이 노년(老年)에는 사사로서의 공직
을 사퇴하고 조용히 집에 머물면서 여생을 보낸것을 가리킨다(Wycliffe).
=====8:30
본절은 기드온이 아내를 많이 얻어 70명이나 되는 아들을 두었을 만큼이스라엘
사회에서 큰 지위를 얻었던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이것은 기드온이 비록 왕위를 거절
했으나 왕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이 짧은 구절을 통해
서 기드온이 말년에 영적으로 매우 타락했음도 시사해 주고있다.
아내가 많으므로...아들이 칠십 인이었고 - 기드온은 많은 아내들 뿐만 아니라 최
소한 한명 이상의 첩(妾)을 거느리고(31절) 마치 큰 방백과 같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던 것 같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일부 일처 제도를 세우셨으나(창 2:18-25) 이스라
엘 백성은 당시 주변 여러 나라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일부 다처 제도를 공공연하게
실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기드온은 사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방 악습
을 따랐으며, 그로 인해 70명의 아들이 거의 몰살당하는 징벌을 받게 되었다(9:5).
이와 관련해서는 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 및 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
부당성'을 참조하라.
=====8:31
세겜에 있는 첩 - 기드온의 본래 거주지는 '오브라'였다(6:11). 그런데 그는 첩을
세겜에도 두고 있었다. 이 사실은 기드온이 첩들을 여러 지역에 많이 두고 있었을 가
능성을 시사해 준다. 한편 '세겜'(Shechem)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50Km 정도 떨어진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성읍이다(수 20:7).
아비메렉 - 이 이름의 뜻은 '왕의 아비' 또는 '아버지는 왕이시다'란 의미이다.
이 이름은 그의 아버지 기드온의 지위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기드온이
낳은 70명의 아들 중 유독 이 '아비멜렉'이 언급된 것은 훗날 그가 왕위 찬탈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9장).
=====8:32
아비에셀 사람 - 므낫세 지파 중 아비에셀의 가계(家系)에 속한 자들을가리킨다
(수 17:2). 기드온과 그 아비 요아스도 이 아비에셀 사람이다. 6:11 주석 참조.
=====8:33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 사사의 죽음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과직결되었
다(2:19; 3:12; 4:1; 6:1).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은 주로 우상 숭배였으며, 이에 따라
여호와 종교는 그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또한 이스라엘 전체 역사 가운데 가장 심각
한 우상 종교는 바알 종교로서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이후에도 계속될 정도로 그 뿌리
가 깊었다(왕하 10:18,28; 21:3).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할 때도 이 종교는 이스라
엘 가운데 잔존해 있었다(렘 2:8).
바알브릿 - 구약시대 당시 세겜지역에 존속했던 가나안인들의 바알 신이다. 그뜻
은 '언약의 바알'로 곧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바알과 언
약을 맺었음을 보여 준다. 즉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을 매우 열렬히 숭배
했음을 가리킨다. 한편 '바알브릿'은 '엘브릿'(언약의 엘, 또는 언약의 하나님)으로도
알려졌는데(9:46),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그와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한다(34절). 이처럼 '바알브릿'이란 말
은 이스라엘 사회에 우상 숭배가 극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용어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1.2.p. 176).
=====8:34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아니하며 - 이는 곧 저들이 일전에 하나님 앞에
서 패역하여 대적들의 손에 빠졌던 것(6:1-5)은 물론 그들이 부르짖자 기드온을 통해
구원해 주셨던 역사(6:6-7:25)마저 모조리 잊어버린 것을 가리킨다. 만일 그들이 이러
한 과거를 조금이라도 기억하였더라면 사사기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타락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8:35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후 이전
에 바알 단을 파괴하였던 여룹바알(6:25-32) 곧 기드온의 가정을 선대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과거 기드온에게 대대로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
했을 정도로 그의 집에 충성을 보였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자세이다(22절). 바로
이러한 점은 훗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 거민들과 공모하여 반역을 도모하게
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9장).
사사기 제 9장
=====9:1
여룹바알 - 기드온이 바알 단을 훼파한 일로 인하여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이름
이다. 6:32 주석 참조. 그런데 본장에서는 '기드온'이란 본래의 이름 대신 이 이름만
이 사용되고 있다(2,5,16,19,24,28,57절).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본
장이 다른 장의자료와는 다른문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문서설'을 주장한다
(Hervey). 그러나 본장에서 '여룹바알' 이란 이름만이 사용된 것은 본장의 사건과 매
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사건은 다름아닌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바알을
극심히 섬기는 자기 친족들과 더불어(4절)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하여 동족 상잔(同
族相殘)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6절). 그리하여 본서의 저자는 일찍이 바알 단을 훼파
한 기드온의 행동과 정반대되는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소위(所爲), 즉 바알 추종 세력
들과 결탁하여 악을 도모한 행위를 대조시키기 위해 '여룹바알'이란 이름만을 사용했
던 것이다. 한편 '문서설'에 대해서는 모세 오경 개론, '문서설'을 참조하라.
아비멜렉 - 기드온과 그의 첩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그 이름의 뜻은 '아버지는
왕이시다'로 본장의 왕위 찬탈 사건과 잘 부합된다. 8:31 주석 참조.
세겜 - 예루살렘 북방 약 50km 지점의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
다. 8:31 주석 참조. 이곳은 일찍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관
련이 있었다(창 12:1-7). 이곳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
로 분배되었으나(수 17:7-9) 그 후 다시금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래위인의 성읍이 되었
다(수 20:7;21:20,2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를 이곳에서 개최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수 24:1) 당시 세겜 성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성읍이었을 것이다(Matthew Henry, Cassel).
그 어미의 형제...외조부의 온 가족 - 아비멜렉이 아비 기드온의 가계(家系)와 그
의 어미의 가계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는 말이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
셀 가문 출신이다. 6:11 주석 참조. 그러나 아비멜렉의 어미는 세겜 사람이다(8:31).
세겜성이 가나안 정복 후 에브라임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점에 의거할 때(수
17:7-9) 당시 세검 성에 거주하던 아비멜렉의 어미와 그 외가(外家) 사람들은 에브라
임 지파였을 가능성이크다(Lange).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은 아직껏 그곳에 잔존하
고 있던 히위족속의일부로보아야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2,p.361). 왜냐하면 세겸 성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이전에 히위 족속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이 차지하고서 가꾸었던 성읍이기 때문이다(창 33:18-20; 34:2). 이중 전
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부계(父系)로든 모계(母系)로든 완전한 이스라엘인
이니 그가 벌인 왕위 찬탈전은 동족간의 싸움이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취한다면
아비멜렉은 히브리인과 히위인 간의 혼혈아인 셈이니 그 싸움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원
주민 간의 싸움이 된다.
=====9:2
여룹바알의 아들...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 아비멜렉은 자기의 형제들이 한
결같이 왕권을 탐하고 있다고 전제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사실 무근(事實無根)
한 것이며 그의 지나친 피해 의식으로부터 연유되었다고 여겨진다. 아비멜렉은 자신이
사악한 야욕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도 동일한 생각을 지녔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형제들로부터 당하기 전에 먼저 선수(先手)를 침으로써 화
근을 아예 제거하고자 결심하였다. 요컨대, 아비멜렉의 경우는 스스로의 탐욕에 취하
여 무고한 형제를 의심하고 나아가서 살해까지 하였으나(5절) 필경 칼의 보응을 받아
처단되고 만다는 전형적인 악인의 행로를 보여 주고 있다(54절). 반면에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들은 대립과 의혹과 투쟁으로 팽배해진 상황에서라도 오혀려 먼저 선을 베
풀므로써 불화의 싹을 미연에 없애 버리고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
다(롬 2:7; 살전 5:15; 벧전 3:13).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 - 아비멜렉은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세겜을 음모의 근거지로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세겜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혈연
에다 호소하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은 이성보다 강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결
국 세겜인들의 마음은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졌을 뿐만 아니라 바알브릿 신당의 수입
금으로 아비멜렉을 지원하였다(4절). 그리고 아비멜렉은 그 지원금으로 건달패를 고용
하여 요담 외의 모든 형제들을 살해하고 세겜의 왕이 되었다(5,6절). 이로써 알 수 있
듯이, 아비멜렉은 그 아비 기드온의 후광(後光)과 어미의 혈연 및 지연 관계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발판을 구축하였던 셈이다. 이같은 왕위 찬탈 음모와 살상은 이스라
엘 왕국은 물론 이방 왕정의 역사에 두루 점철되어 있다(왕상 16:10).
=====9:3
기울어서 - 이에 해당하는 '나타'(* )는 (손을) '뻗다', '돌아서다' 또는
'기울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지지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이제 기드온 가문에서부터 '돌아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는 일
에 대하여 '지지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9:4
바알브릿 묘 - 여기서 '묘'에 해당하는 '바이트'(* )는 '집', '지하 감옥',
'궁전', '감옥' 등을 뜻한다. 이를 KJV, RSV는 '집'(house)로 번역하였으며, VIN,
Living Bible, 공동번역 등은 '신전'(temple)으로 번역하였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
이 하나님을 버리고 대신 언약을 맺은 바알브릿의 신당을 가리킨다. 8:33 주석 참조.
은 칠십 개 - 일반적으로 은 70세겔에 해당한다(NIV). 그러므로 이것을 무게로 따
질 경우 약 800g 곧 210돈 정도의 무게가 된다. 왜냐하면 1세겔(Shekl)은 11.4g에 해
당하는 무게이기 때문이다. 성경 총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참조.
방탕하고 경박한 유 - '방탕한'에 해당하는 '레크'(* )는 '허무한', '무가
치한'이란 뜻이다. 그런데 본절에서는 '무익한' 것을 추구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경박한'에 해당하는 '파하즈'(* )는 '자기멋대로의', '방탕한', '억제할 수 없
는'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며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9:5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 - '오브라'는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경계에 가까운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다. 요세푸스(Josephus)는 오늘날의 '에브란'(Ephran)일 것으로
추정하나 위치가 정확치 않다(Keil & delitzsch). 6:11 주석 참조.
자기 형제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 이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
한 것은 본래 기드온이 많은 부인을 두었던 탓이다(8:30,31). 다윗의 경우에도 마찬가
지다. 다윗은 많은 처와 첩을 거느렸다(삼하 5:13). 그 결과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 위
해 집안 싸움이 두 번씩이나 있었다(삼하 15:7-18; 왕상 1:25). 이러한 일부 다처제
및 축첩 제도의 폐단에 관해서는 창 4:16-24 강해, '일부 다처제'와 창 16:1-6 강해.
'축첩 제도의 부당성'을 보다 참조하라. 한편 븐절은 사람이 욕심을 품으면 자기 형제
조차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일을 서슴치 않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마도 야고보
사도는 이러한 일을 두고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
라'(약 1:15)고 했는지 모른다.
=====9:6
밀로 모든 족속 - 일반적으로 '밀로'는 다윗이 여부스 사람으로부터 빼앗은 다윗
성에 속한 지역이다(삼하 5:7-9). 그러나 그곳은 세겜 성과 위치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며 다윗 때까지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곳이므로 본절의 '밀로'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오히려 본절에 해당하는 원어 '칼 벧 밀로'(* )는 문자
적으로 '밀로의 모든 집'이니 이는 '밀로'라는 어떤 가문을 총체적으로 암시하는 말인
듯하다. 그렇다면 아마 이는 아비멜렉의 외조부 전체 가문을 지칭하는 말일것이다(1
절). 그렇지 않다면 세겜 사람과 함께 이 가문이 특별히 언급될 이유가 없다. 한편 이
밖에도 혹자는 '밀로'가 세겜 근방에 있는 요새나 망대일 것으로 추정하여 46,47절의
망대와 동일시한다(Keil, Hervey, Cundall).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분명 세겜
족이니 '밀로 모든 족속'과는 구분된다.
기둥 상수리나무 - '기둥'에 해당하는 '무찹'(* )은 '어떤 것을 세우다'란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기념물' 내지 '기념비'를 의미한다(Keil). 고대 근동 지방에서
나무는 우상 숭배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도 오래된 나무를 섬기는 무속
종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마 세겜의 이 상수리 나무는 과거에 야곱이 자기 가족의
모든 우상을 그 밑에 파묻어 버렸던 상수리 나무일지 모른다(창 35:4). 아니면 여호수
아가 백성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베푼 것을 기념하여 그 아래에 기념비를 세웠던 여호
와 성소 곁의 상수리 나무일지도 모른다(수 24:25,26).
=====9:7
그리심 산 - 세겜 남서쪽에 인접해 있으면서 북동쪽에 있는 에발 산과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해발 854km이다. 신 11:29 주석 참조.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수 8:33-35). 그러나 참화(慘禍)
를 면한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5절)이 이곳에서 그의 형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하
는 세겜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선포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칼(ironical)한 일이다.
세겜 사람들아...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를 들으시리라 - 본문에 밝혀져 있듯이
요담은 형제들을 복수하기 위해 은밀히 군사를 양성한다든가 하지 않고 심판을 하나님
께 맡기는 태도를 취했다(롬 12:19). 이로 보건대 아비멜렉의 선동적 언변은 전혀 터
무니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난다(2절). 한편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
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
키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즉 이후 전개되는 내용 중 8-13절은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의 우화로서 기드온의 처신을 상기시킨다(8:22,23). 여기서 등장하는감람 나
무, 무화과 나무, 그리고 포도 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
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인간상(人間像)을 대변하고 있다(롬
12:3). 반면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 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
구하고 협박 공갈로 왕위를 서슴없이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시 12:8; 전
10:6). 요담의 이러한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었다(22절 이하).
=====9:8
감람나무 - 즉 '올리브 나무'(olive)를 가리킨다(공동번역). 그 열매는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이 나무
에서 나오는 기름은 왕과 제사장의 임직식 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민 4:16; 왕하 9:6).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감람 나
무에 비유되기도 하였다(호 14:6). 이처럼 감람 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
에, 나무들 중 왕이 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굳이
왕을 뽑을진대 감람 나무를 먼저 천거하는 것이 순리(順理)라 할 수 있었다.
=====9:9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 확실히 감람 나무에서 나는 올리
브 기름은 하나님께 제사할 때 드려졌으며 (레 2:1-16), 왕과 제사장의 성직 수임식
때 그들의 머리에 부어졌고,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출 27:20; 레
24:2; 민 35:25; 삼상 10:1). 그러니 감람 나무의 기름은 하나님과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영화롭게 될 만한 일에 사용되었다.
내가...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 '요동하다'에 해당하는 '누아'(* )는 '떨
다', '요동하다'라는 뜻 외에 '휘두르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아'는 '지배
권'을 보여 주는 용어이다. 즉 감람 나무는 본절에서 자기가 모든 나무의 왕이 되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9:10
무화과 나무 - 오늘날에도 팔레스틴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
다. 그 열매는 흔히 식용으로 사용되나 일부는 약재(藥材)로도 사용된다. 팔레스틴에
서는 1년에 9개월 내지 10개월 이상 계속해서 그 열매를 딸 수 있다. 더군다나 무화과
나무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해서 더운 지방에서는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신약 시대 예수님의 비유에도 이 무화과 나무가 등장함은 우리가 익혀 아는 바이다(마
24:32,33)
=====9:11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 - 무화과 열매는 그 당도(糖度)가 높다. 때문에
설탕이 귀했던 고대에는 설탕 대용으로 음식을 달게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9:12
포도 나무 - 팔레스틴 지방에서 감람나무와 무화과 나무와 같이 가장 많이 재배되
는 수종(樹種)이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품질도 아주 좋아 주변 여러 나라로 수
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못한 팔레스틴에선
중요한 음료수 역할을 한다.
=====9:13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 - 고대로부터 팔레스틴 및 시리아 지방
은 포도주의 질이 좋고 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헤브론 일대는 손꼽히
는 포도주 산지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가르침을 '새 포도주'에 비유할 정도
로(마 9:17) 이 포도주는 팔레스틴 지방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
다. 그들은 잔치 때는 물론(요 2:1-11) 평상시의 식사 때에도 음료수 삼아포도주를
마신다. 이와 관련 시편 기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를 주
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주(祭
酒)로도 바쳐졌다(삼상 1:24; 10:3). 그밖에도 포도주는 곤비한 자들에게 활력을 주
며(삼하 16:2) '비위와 자주 나는 병'(딤전 5:23)에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상
처 부위를 소독하는 소독약 대용으로도 쓰였다(눅 10:34). 이상과 같은 점에서 가히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술'이라 칭할 수 있다.
=====9:14
가시나무 - '들 가시'뿐 아니라(8:16) 가시 있는 관목(灌木)을 총칭한다. 이 나무
는 저주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창 3:18) 무화과 나무나 포도 나무처럼 식용으로 사용될
열매도 없고, 감람 나무와 같이 여러 용도로 소용되는 기름도 없다. 오히려 이 가시는
사람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요담은 이 가시 나무를, 스스
로 왕이 되기 위하여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형제 70인을 죽인 아비멜렉(4,5절)에
비유하고 있다.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 이처럼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
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 나무더러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
초하는 행위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취향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망을 만들고자하는 부단한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한다.역사상으
로 그러한 보호망은 이념, 체제, 국가, 이방 종교, 재물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무모한 요청에 대해 가시 나
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보이기까지 했다
(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輿望)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9:15
내 그늘에 피하라 - 가시 나무는 본래 그늘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가시 나무 밑
그늘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요담은 세겜 사람
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 삼은 것이 그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가
르쳐 주고 있다(Moore).
레바논의 백향목 -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진 나무로 최고급의 건축 재료이다. 레
14:4 주석 참조. 본절에서 이것은 특별히 세겜 성읍의 지도자들을 상징한다.
=====9:16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하나님 한 분 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8: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겜 사
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3절). 따
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다.
요담은 그들에게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 여기서 '보답'에 해당하는 '그물'(
*)은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 등을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받는다고 하는 보응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수 23:9-16). 이는 신정국(神政國)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
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
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
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절에서 이러한 잘목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
적 정책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잇는 것이다.
=====9:17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었거늘 - 이는 곧 기드온이 7년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미디안(6:1)과 그 연합군들(6:3; 7:12)을 격멸하고 백성들을 구원한 것
(7:19-21)을 가리킨다. 이처럼 요담은 자기 아버지 기드온의 공적을 언급함으로써 세
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것이 기드온의 공로를 무시한 처사임을 지적하고
있다. 즉 세겜 사람들은 기드온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갚기는 커녕 그의 가족을 파멸시
켰으니(4,5절) 배은 망덕한 죄를 범한 것이다.
=====9:18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 기드온이 70 아들 중 막내인 요담만 유일하게
피신에 성공하였다(5절). 따라서 실제로 살해된 수는 69명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살인 미수죄 또한 살인죄나 다름없다. 따라서 70인을 죽였다는 말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세겜 사람의 왕 - 이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동의하여 세운 왕이 아니라 세겜 사
람들이 임의로 세운 왕이란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아비멜렉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세겜 지역의 왕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9:19,20
여기서는 세겜 사람들의 행위가 자신들이 행한 대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요
담의 예언이 언급되어 있다. 즉 이 예언은 진실과 의로움 없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
대한 세겜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분쟁이 발생하여 자멸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 즉 세겜 족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킨 아
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전혀 사심(私心)없이 하나님의 뜻을 좇은 행위였다면 하
나님께서 세겜족은 물론 아비멜렉도 형통케 하사 서로 기쁨을 누리게 하실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세겜족의 소위(所謂)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
행위였다. 16절 주석 참조.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 이는 이미 아비멜렉 스스로가 세겜족들에게 협박한
내용이다(15절). 즉 아비멜렉은 세겜족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괴롭히리라고 위협했었다.
세겜 사람들과 밀로 족속에게서도 불이 나와서 - 즉 세겜족과 밀로족이아비멜렉
에 대항하여 오히려 그들 군박(窘迫)하게 만들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요담의 예언
은 삼년 후 그대로 성취된다(22-27절).
=====9:21
브엘 - '우물'(well)이란 뜻이다. 민 21:16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
을 주시기로 약속한 후 말씀대로 물을 주신 우물이 있었던 곳으로 '브엘'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은 요단 동편의 모압 족속 지경(地境)이다. 따라서 요담이 아비멜렉
을 두려워하여 도망한 곳인 이곳 '브엘'과 동일한 곳인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요
담이 그리심 산(7절)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요단 동편 모압 지경에 까지 도망쳤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벧엘 남쪽 '엘
비레'(El-Bireh)와 동일시 하지만(Hervey, Goslinga), 이 역시 확실한 근거가 없다.
=====9: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삼년에 - 본절에서 '다스리다'에 해당하는 '야사
르'(* )는 사사들의 재판을 의미하는 '솨파트'(* )나 왕의 통치를 의미하
는 '말라크'(* )와 다르다. 이는 방백들이 백성을 다스리며 지도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 사용된 용어이다(Keil & delitzsch). 따라서 본서의 저자가 '야사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3년 동안 밖에 다스리지 못했음을 강조
하기 위한 의도적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9:23
하나님이...악한 신을 보내시매 - 공동번역과 RSV는 '악한 신'을 '악령가'(evil
spirit)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악한 성품이 없으신 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속한 악한 신을 보내신 것과 같이 표현되어 있
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의 근
원이 되지 아니하시며 다만 당신의 주권적 섭리하에서만 악한 세력의 활동을 용인하고
계실 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요일 1:5). 다만 본
절은 욥기에서와 같이(욥 1:12),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신 장면에서와 같이(마
4:1) 악령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활동하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Matthew Henry, Lange,
Pulpit Commentary).
세겜 사람들 - 여기서부터는 '세겜사람과 밀로족속'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1절).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 요담의 예언대로(19,20절) 마침내 아비멜렉과 세겜 주
민들 간에 깊은 반목이 조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아비멜렉은 자칭 왕의 자리
에 오른 후에 아루마(41절)를 수도로 삼고서 점차 세력을 확충시키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 세겜 주민들은 아비멜렉으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지 못함은 물론 오히
려 억압만 당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의 비
열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미루어 그가 세겜인들을 이익의 도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많
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정책하시는 섭리로 말미암아 그들간에 쟁
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9:24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인에게 행한 포악한 일을 갚되 -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율법적인 심판을 위해 행해진 것이다(신
32:35). 따라서 본절은 요담의 저주(19,20절)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피 흘린 죄를 아비멜렉과 - 아비멜렉은 역심(逆心)을 품고서 아비 집으로부터 등
을 돌려 형제 70인을 살해한 장본인으로서의 죄를 면할 수 없었다(1-5절).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서...세겜 사람 - 세겜인은 아비멜렉의 역모(逆謀)에 동조하
여 거사(擧事) 자금을 빌려 주었으며(4절) 또한 그를 왕으로 추대한 죄(6절)를 면할
수 없었다.
=====9:25
산들 꼭대기 - 그리심 산과 에발 산 및 세겜을 둘러싼 기타 산들을 가리킨다. 이
는 다른 지역에서 세겜으로 듸어오는 길목에 있는 산들이다. 7절 주석 참조.
그 길로 지나는 자를 다 겁탈하게 하니 - 아비멜렉에 대항한 세겜 사람들은 산적
생활과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아비멜렉의 세력에 비공식적으로 도전했다. 이로
보아 아비멜렉이 세겜 성을 다스리는 동안 결코 훌륭한 통치를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산적 떼는 과거의 역사에서 정치와 종교가 부패되어 공의가시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매우 많이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9:26
에벳의 아들 가알 - 본장에서 분열되어 가는 세겜 성의 상황을이용하여 자신의
정권욕을 채워 보려한 인물로만 언급되어 있을 뿐 그 외에 그에 대해서는 성경상에 아
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그의 아비 이름인 '에벳'(* )이 '종' 또는 '노
예'라는 뜻인 점에 비추어 볼 때 그가 천민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겜 사람들이 그를 의뢰하니라 - 다시 말해 세겜 사람들이 가알을 아비멜렉에 대
항하기 위한 대표로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9:27
그 신당 - '바알브릿'(4절) 또는 '엘브릿'(46절) 신당을 의미한다. 고대 제사 의
식에서는 신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보편
적인 일이었다. 특히 포도 수확기는 가장 즐거운 계절 중 하나였으므로(사 16:9; 렘
25:30) 신당에서 배설(排說)된 연회는 축제 분위기였음에 틀림없다.
=====9:28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 이 표현은 아비멜렉과 세겜 성이 아무 관련
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 가알은 기드온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름으로
써 우상 숭배에 빠진 세겜 사람들로 하여금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을 더욱적대시하
도록 유도했다. 즉 '여룹바알'은 기드온이 바알단을 훼파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니
(6:25-32) 이 사실을 기억한 세겜인들은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에 대하여 더욱 반
감을 가졌을 것이다.
세겜의 아비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 '하몰'은 히위 족속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 세겜 성의 추장이었다(창 34:2). 따라서 본절의 표현은 이
방인의 후손을 섬기는 것이 차라리 아비멜렉을 섬기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이다. 즉 가
알이 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몰락하여 타족속들 사이에 흡수되어 버린 하몰의
후예와 아비멜렉을 비교하여 아비멜렉의 지위를 실추시키고 있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과 RSV는 본절을 '그 여룹바알의 아들과 그의 심복 스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할 것 아닙니까'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세겜 성 거민
들을 히위족 하몰의 후예들로서 당시까지도 그곳에 잔존하고 있던 무리로 본 데서 비
롯된 번역이다. 1절 주석 참조. 그렇다면 이는 곧 세겜 성은 어디까지나 세겜 원주민
이 다스려야 한다는 정통성(正統性)을 강조한 말로 볼 수 있다.
=====9:29
군대를 더하고 나오라 - 가알이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宣戰布告)하는장면이다
(Keil & Delitzsch). 이 말은 가알의 추종자가 아비멜렉의 추종자보다 강하다는 사실
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알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비멜
렉을 반역하는 일에 용기를 가지도록 했다(Goslinga).
=====9:30
그 성읍 장관 - '장관'에 해당하는 원어 '사르'(* )는 일반적으로 '방백' 또
는 '통치자'로 번역되는 말이다. 그런데 28절에서 '장관'으로 번역된 원어는 '파키드'
(* )로서 '대리인'(deputy) 또는 '감독자'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두 단어
가 아비멜렉을 추종하는 스불에게 적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스불'은 아비멜렉을 대
신해서 세겜 성을 다스린 관리였던 것 같다. 만일 그가 군대 장관이었다면 아비멜렉의
도움없이 자기의 힘만으로도 아직 완전히규합되지 않은 가알을 칠 수 있었을 것이
다.
=====9:31
사자를...가만히 보내어. 스불은 아비멜렉 휘하에서 그 성읍의 장관이었기 때문에
세겜의 정황을 그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스불의 세력이 가알의 영향력을
꺾기에는 다소 부족하였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은밀하게 밀사를 보내어 아비멜렉에게 세겜의 상황을 알렸던 것이다.
성읍 무리를 충동하여 당신을 대적하게 하나니 - 가알이 세겜 사람이 베푼 연회석
에 참석하여(26,27절) 반역을 도모했지만 아직 그들의 세력이 완전히 규합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불은 그들의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아비멜렉에게 가알과 그
의 형제들에 의한 반역의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9:32
밭에 매복하였다가 - 본래 매복(埋伏)은 적의 공격을 기습적으로 반격하기 위한
전술이다(수 8:10-17). 그러나 여기서는 아침 일찍 세겜 성을 공격하기 위해 밤에 미
리 세겜성 앞에 있는 밭에 숨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33절). 이러한 매복 작전은 구약
에 자주 등장하는 전술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당시, 아이성
전투에서 이 전술로 크게 성공을 거둔 바 있다(수 8:1-23). 한편 '밭'은 세겜 성읍 백
성들이 농사짓는 곳으로, 그 성 밖에 있었다(42절).
=====9:33
아침 해 뜰 때에...엄습하면 - '엄습하다'에 해당하는 '파솨트'(* )는 본래
'돌진하다', '가죽을 벗기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순간적으로 기습하여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스불이 아비멜렉에게 이른 아침 동틀 무렵에
이러한 기습 작전을 펴도록 충고한 것은 그때가 잠에 취했던 적들이 이제 막 깨어날
무렵인 바 미처 아무런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한 적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
다(40절).
=====9:34
밤에 일어나 - 아비멜렉은 스불의 말에 따라 군대를 비밀리 이동하기 위해 밤을
이용했다. 밤에 이동함으로써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손쉽게 세겜 성과 인접한
곳에 이를 수 있었다.
네 떼로 나눠 - 이처럼 많은 수의 군대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은 전술
상의 이점이 있다. (1) 지휘하는 자가 그 대원을 통솔하기 쉽다. (2) 각각의 소단위
부대는 전투시 기동력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적에게포위당할 위험이
적다. (4) 그리고 매복 공격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비멜렉은 기동
력을 살려 군사의 이동을 신속하게 하고자 자기 부대를 네 떼로 나눈 것 같다.
=====9:35
가알이 나와서 성읍문 입구에 설 때에 - 본문에는 가알이 무슨 이유로 아침 일찍
부터 성읍 문 앞으로 나아갔는지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 행차(行次)에
는 스불 뿐 아니라 일부 병사들도 동행하였을 것이다(36,39절). 추정컨대 아마도 앞서
아비멜렉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던 가알(29절)은 적정(敵情)을 살펴보려고 성읍 문 앞
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으니 도리어 아비멜렉이 가알을 치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9:36
가알이...스불에게 이르되 - 가알은 세겜 성읍의 장관인 스불을 따라 성읍 문 앞
으로 나간 것 같다. 이로 보아 가알은 스불이 아비멜렉 편인 것을 눈치채지못했음에
분명하다. 만일 스불이 아비멜렉의 대리권을 행사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가알은 그
와 함께 아침부터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아비멜
렉을 따른 무리 중 한 떼에 불과하다(34절). 이 무리들은 세겜 성에서 볼 때 가장 눈
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서 내려왔으므로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9:37
밭 가운데로 - 이 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달리 해석하고 있다. (1) '그 땅 가
운데로' 또는 '그 땅의 중앙에'란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이다(KJV, RSV, NIV). 그 이유
는 '가운데'애 해당하는 원어 '타부르'(* )가 '중앙으로'란 뜻이기 때문이다
(겔 38:12). (2)'밭 가운데로'에 해당하는 '타부르 하아레츠'(* )를
'그 땅의 중심'(Navel of the Land)이라는 의미를 지닌 지명으로 보는 견해이다
(Goslinga, Hervey, Cundall). 그래서 혹자는 이곳을 '그리심 산'으로 주장하며
(Goslinga), 또 어떤 사람은 세겜 앞의특별한언덕 지대의 지명으로주장한다
(Hervey, Cundall). 그러나 이 두번째 견해는 첫번째 견해에 비해 그리 타당하지 못하
다. 왜냐하면 '타부르 하아레츠'란 말은 가알이 세겜 성문 입구에서 보았을 때 한 떼
가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었으머(36절), 그 산 중앙으로 또 한 떼가 내려왔던 것과
연관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므오느님 상수리 나무 - 문자적으로 '점장이의 상수리 나무'란 뜻이다. 아마 이곳
은 점장이가 그 상수리 나무에 앉아 점을 쳤기 대문에 이런 식의 이름으로 특별히 알
려진 장소인 듯하다. 그러나 '므오느님'(Meonenim)은 세겜 성 인접지였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사항이 없다.
=====9:38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 다시 말해 아비멜렉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던 그
용기(29절)가 어디 있느냐란 의미이다. 스불은 가알에게 이렇게 말함으로써 가알의 자
존심을 자극시켰다.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 만일 가알이 성문을 굳게 잠근 채 수비에만 전력을
기울였다면, 아비멜렉의 세겜 성 공략은 몇 배나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 알
았던 스불은 의도적으로 가알의 자존심을 부추겨 정면 대결로 유도하였다.
=====9:39
세겜 사람들의 앞서 나가서 - 공동번역은 이를 '세겜의 어른들을 거느리고 앞장
서 나가'로 번역하였다. 이는 곧 가알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사태에 빠진 세겜 사람
들을 추스리며 몸소 그들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지휘하는 것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9:40
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서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 가알은 아비멜렉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의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나아갔을 것이다(39절). 그러나
이른 아침에 불시(不時)의 습격을 받은 그들은 전투를 위해 사전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전했으므로 아비멜렉이 이끄는 네 떼의 사람들을 당해 낼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인명 손실을 내고 세겜 성문 입구까지 아
비멜렉군에 의해 쫓겨왔던 것이다.
=====9:41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하고 - 아비멜렉이 이번 기회에 세겜 성 내부에까지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자기가 거하던 곳으로 되돌아간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왜냐하
면 그는 돌아간 후 다시금 세겜 성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42-45절). 아
마 이번에는 성내로 들어가서 싸우게 되면 자신의 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할 것
으로 판단했기에 되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아루마'(Arumah)는 '높이', '높
다'란 뜻이다. 이 역시 세겜 부근인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
런데, 어쩌면 여호야김의 모친의 출신지인 '루마'(Rumah)와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왕
하 23:26).
=====9:42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세겜 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이처럼 밭으로 나온 것은
아비멜렉과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Keil). 이
것은 아비멜렉이 더 이상 그 성을 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세겜 성 사람들이 갖고 있
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들의 성읍 방어는 허술했을 것이다.
=====9:43
아비멜렉이...그 들을 치되 - 아비멜렉은 일단 반역의 주동자를 제거함으로써 소
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아루마로 퇴각하였다(41절). 그런데 이튿날 세겜의 백성들이 밭
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42절) 그들 모두를 제거하여 후한을 없애버리기로 결의한
듯하다. 아비멜렉은 이번에는 전술을 달리하여 군사를 세 떼로 나누어 매복시켰다. 그
리고 세겜 사람들이 모두 성에서 나온 후 한 떼는 성문을 차단하고 나머지 두 떼는 성
밖의 세겜 사람들을 무참하게 도륙(屠戮)하게 하였다(4절).
=====9:44
아비멜렉과 그를 좇는 떼는...성문 입구에 서고 - 아비멜렉이 이와 같은 행동을
취한 목적은 그 성에서 나오는 자들을 칠 태세를 취한것 뿐 아니라 밖에서 그의 군대
에게 쫓긴 자들이 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상 밖으로 나온
성읍 백성들을 제외하고 성내에 있는 자들은 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밖에 있는 자들만 치면 성을 점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
비멜렉은 바로 이 점을 이용했던 것이다.
=====9:45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 아비멜렉이 이렇게 힘든 싸움을 함에도블구하고
그의 지지자인 세겜의 장관 스불(31-33절)은 미처 그를 돕지 못한 듯하다. 만일 성내
에 거하던 스불이 아비멜렉을 도왔다면 아비멜렉은 성읍을 쉽게 점령할 수있었을텐
데, 오히려 그는 끈질기게 저항하는 성읍 주민들로 인해 고전을 했다.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 소금은 식물의 결실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따
라서 아비멜렉의 이러한 행위는 그 성읍에 대해 영원한 멸망의 저주(신 29:23)를 선고
하는 것을 상징한다(Pulpit Commentary). 한편 일찍이 여호수아도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 그 무너진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선고한 적이 있다(수 6:26). 그리고 로
마의 디도(Titus)장군도 A.D.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 성을 완전히 헐었던 적이
있다.
=====9:46
세겜 망대의 사람들 - 많은 학자들은이들을밀로 족속(6,20절)과 동일시한다
(Keil, Goslinga, Hervey).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이유는 없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망대'는 세겜 사람들이 포도밭에 세워 둔 막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사 5:2). 망대는
그 성읍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는 파수막 역할을 하였다. 세겜 망
대는 세겜 성읍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고 천 여 명도 거뜬히 운신할 수 있는 견
고한 요새였던 것 같다(49절). 그래서 쉽게 점령할 수 없었던 아비멜렉은 화공법(火攻
法)을 사용하여 공격하였던 것이다(6절).
엘브릿 신당의 보장 - '엘브릿'은 '계약의 신'이라는 뜻으로 '바알브릿'(4절;
8:33)과 같은 의미이다. 8:33 주석 참조. 그리고 '보장'에 해당하는 원어 '체리아흐'
(* )는 '동굴'이나 '지하 방'과 같은 은밀한 장소를 가리킨다. 공동번역은 이
를 '밀실'로, RSV와 NIV는 '요새'(stronghold), Living Bible은 '은신처'(refuge)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들어갔더니 - 이처럼 세겜성으로부터 세겜 망대로 피한 사람들은 다시 위기를 느
끼고 엘브릿 신당의 은밀한 곳을 도피처로 삼았다. 즉 거기에는 바알의 도움이 있어
안전할 줄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피처로 삼은 보장이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다(47-49절). 악인의 종국은 이처럼 처참하고 가련하다(잠 3:25). 정녕 구원
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 그들의 신 바알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반면에 주 여
호와께서는 재앙의 날에 피난처가 되시며(렘 17:17), 구원의 산성이 되신다(시 28:8).
=====9:47
모든 사람의 모인 것이...들리매 - 본래 유능한 전술가는 적들을 한 곳으로 유인,
그곳에 모인 적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작전을 편다. 그런데 세겜 사람들은스스로가
한 곳에 모였으니 이를 전해 들은 아비멜렉은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였을 것
이다.
=====9:48
살몬 산 - 지명의 뜻이 '그늘'인 점으로 보아 울창한 숲으로 덮힌 산인 듯하다
(Luther, keil, Hervey). 혹자는 에발산에 대한 다른이름이라고 하며, 또 다른 사람은
그리심 산과 관련된 산꼭대기로 오늘날의 셀만(Selman)이라고도 한다(Goslinga). 그러
나 성경에 달리 언급된 사항이 없으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9:49
그곳에 불을 놓으매 - 아비멜렉과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이 꺽어 온 나무 가지로
(48절) 신당 보장(保障) 앞에 불을 놓았다. 이것은 보장에 불을 붙혀 그 안에 있는 사
람들을 태워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불타는 나무의 연기로 질식시켜죽이기위함이었
다. 그리고 연기로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람도 손쉽게 죽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반면에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굴로 들어가게 되면 도리어 자기들
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좁은 굴 입구를 통해 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굴 속에 있는자들은 방어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대략 일천 명이었더라 - 이로 보아 그 보장은 비록 지하이지만 매우 넓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그들은 항상 종교 의식을 거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우상숭배에 따른 음란한 행위도 벌어졌을 것이다.
=====9:50
데베스 - 세겜 북동쪽에서 약 18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혹자는 이
곳을 오늘날의 '투바스'(Tubas)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Wycliffe, Robinson). 이곳
사람들도 세겜 사람들과 함께 아비멜렉에 대항하여 반역을 도모했음에 틀림었다.
=====9:51
성중에 견고한 망대 - '성 안에 있는 견고한 요새'란 뜻으로 데베스 성의 최후의
보루를 가리킨다.
그 성 백성의 남녀 - 단순히 '그성 백성들'이라 하지 않고 '남녀'란 말이 첨가되
어 있는 점에 유의하여 혹자는 이들이 그성에서 구별된 사람들 곧 그 성의 지도자들이
라고 추정한다(Goslinga). 그러나 본절에서 특별히 남녀가 구별되어 언급된 것은 아비
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된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성중의 모든 백성이 그 견
고한 망대로 피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후에 아비멜렉이 여인의
손에 죽게 되는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53절).
=====9:52
불사르려 하더니 - 세겜인들을 공략할 때 사용하였던 것과 꼭 같은 화공법(火功
法)을 사용하려는 것을 가리킨다. 49절 주석 참조.
=====9:53
한 여인이 - 남자들이 활과 창과 칼로써 항쟁하는 동안에 여인들도 그 성을 수호
하기 위하여 접근하는 적에게 돌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투쟁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맷돌 윗짝 - 맷돌은 고대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 필수품이었다. 여인들은 이
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빻아 음식을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여인들은 그 망대로 피할
때에 이 맷돌을 가지고 갔던것 같다.
그 두골을 깨뜨리니 - 영역 성경 KJV는 조금 더 과장된 표현을 사용, '그의 두골
을 완전히 부수니'(all to brake his skull)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아비멜렉은 여인
이 던진 맷돌에 맞아 머리에 치명상을 입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54절).
=====9:54
병기 잡은 소년 - 좀더 정확히 말해서 '병기 잡은 신복'이다. '소년'에 해당하는
'나아르'(* )는 '아이', '청년', '사환' 등을 의미하지만, 본절에서는 전쟁에
참가할 만큼 나이가 들었고 주인을 따르는 자이므로 '사환' 또는 '종'의 의미로 번역
되어야 한다. 다윗도 사울의 병기 잡은 자로 그를 따라 다닌 적이 있다(삼상 16:21).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하노라 - 용사가 힘 없는 여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매우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죽어 가는 그 순간에서도 명예로운 죽
음을 원했던 것이다(Wycliffe, Pulpit Commentary). 이와 유사하게블레셋과 싸움을
하던 사울은 치명상을 입은 후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자
기의 병기든 자로 하여금 자기를 치게 한 일이 있다(삼상 31:4).
=====9:55
아비멜렉을 추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더 이상 싸워야
할 명분이 없으므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아비멜렉의 죽음
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 지도자를 잃은 아비멜렉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처럼 명분이 정당하지 못한 집단은 한때 흥왕하는 듯하여도 쉬 와
해되기 마련이다. 반면에 진리 안에서 모인 무리들의 결속력은 가히 영구적이라 할 것
이다. 왜냐하면 모인 무리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심지어 핍박을 당하
여 소멸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영원하므로 언제 어디서든지 또 다시 일어나기 마련이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이는 우리 성도들은 자칫 모임의 순수
성이 흐려지지 않도록 늘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 동
안 세겜인과 아비멜렉 간에 진행되었던 내분(內紛)은 끝이 난다.
=====9:56,57
여기에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아비멜렉의 악행과 그를 추종한 세겜 사람들의 악행
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자기 아비에게 행한 악 -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가문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반감
(反感)을 고조시키기 위해 짐짓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여룹바알'로 부르는 악을 범했
었다(9:2). 또한 그는 자기 형제들을 죽이고 자기 아버지 기드온이 거절한 왕위를 차
지하므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을 저질렀었다(9:2-6).
사사기 제 10장
=====10:1
부아의 아들 돌라 - '부아'는 '입', '말'이란 뜻이다. 그리고 '돌라'는 '곤충',
'벌레'란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사사(小士師)인 '돌라'(tola)와 그의 아비 '부
아'(Puah)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성경에 달리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사항
은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창
46:13).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이미
족보에 실려 있는 선조의 이름을 따라 지어 주던 풍습에서 기인된 것이다(묵 1:61).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25:19-26 강해, '이름 짓기'를 참조하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이스
라엘을 구원했는지 본절에는 아무 언급이 없다. 아마 아비멜렉으로인한 종족끼리의
분쟁이든지(Hervey) 아니면 사소한 국지전(局地戰)이었을 것이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사밀 -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살았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혹자는미디안인
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Goslinga) 확실치 않은 주장이다. 한편 '사밀'이 '사마레이아'(* )
로 변역되어 잇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후대의 '사마리아'(Samaria)와 동일 지역이 아닌
가 추정된다.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
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
파의 땅에 우거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10:2
사사가 된 지...죽으매 - 이처럼 돌라의 업적이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된 후 곧바
로 그의 죽음이 언급되고 잇는 까닭은 본서 기자가 구속사(救速史)의 흐름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10:3
그 후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라이우'(* )는 '그 사람 다음에'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돌라를 이어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단어만으로
돌라가 죽자 곧바로 야일이 사사가 되었는지의 여부를 파악 할 수는 없다.왜냐하면
이 말이 시간적인 연속을 나타내기 보다는 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르앗 사람 야일 - '길르앗'(Gilead)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
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
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32:33-42). 5:17 주석 참조. 그
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킨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
'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
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별다른 성경적 기록이없다.
다만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이다.
=====10:4
어린 나귀 삼십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
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서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
다는 것으로도 더욱 입증된다.
하봇야일 -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민
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하봇야일'이라 부
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
붙여진 새로운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0:5
가몬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phus)의 주장에 따르먼 '가몬'(Camon)은 길르
앗의 한 성읍일 것이다(Hervey). 뿐만 아니라 이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
4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다. 혹
자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의 '캄'(Qamm)이나 동북쪽의 '쿠메임'(Qumeim)이 바로 이 '가
몬'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10: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다시'에 해당하는 '야사
프'(* )는 '증가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
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져 갔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본절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
(情況)이 어떠하였는지를 여실히 증거해 준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그의 뒤를
잇는 사사가 나오지 않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
게 되었음도 보여 준다(2:18,19).
바알들과 아스다롯 -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즉 '바알'들은 가나안 당
의 남성 신을 가르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적으로 가리킨다. 혹자는 '아스
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
은 2:13과 3:7 주석을 참조하라.
아람의 신들 -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결쳐 살고
있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좁
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는 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를 '시리아'(Syria)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족
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었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
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다.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 참조.
시돈의 신들 - '시돈'(Zidon)dms enfh(Tyre) 북쪽 3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
안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Eshmun)을 섬겼었다.
그런데 이중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
배되던 '풍요의 신'이었다.
모압의 신들 -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하다(민 21:29; 왕상
11:7; 렘 48:7).
암몬 자손의 신들 -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Moloch)으로, 일명 '말감'(Malcam)
또는 '밀곰'(Milcom)으로도 불리웠다(왕상 11:5,7,33; 습 1:5; 렘 49:1).
블레셋 사람의 신들 - 블레셋의 국가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Dagon)이
다(16:23; 삼상 5:2-7). 이상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23 강해, '고대 근동
의 신들'을 참조하라.
=====10:7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 여기에서 '손에 팔다'는 말은 '손
에 붙이다'는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통한 '심판의 형벌'을 나타내는
말이다. 2:14 주석 참조. 한편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
어 쓰신 열국은 주로 팔레스틴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
라엘 백성 중 북쪽 지역 사람들이, 곧 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가
고통을 당했었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 같은 팔레스틴 남방
지역의 민족들을 들어 쓰고 계시는데, 이로 인해 이제는 주로 남쪽 지역에 사는 지파
곧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자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9절). 특히 암몬 사
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
한 적이 있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
는 나라로 등장한다(13:1).
=====10:8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 - 이는 요단 강 동편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그 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을 가리킨다. 3절 주석 참조. 한편
여기서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창 15:16).
학대를 당하였고 -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흩어 압제했다' 라는 의미이다. 즉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으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킨다.
=====10:9
암몬 자손이 또...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졈령한 후 다시금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
한 것은 당시 저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하던 때였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래 이들 암
몬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反
目)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편에서는 블레셋에 의
해, 동편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
릴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곤고가 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야차르'(* )는 '짓
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
로 심하게 학대받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과거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
라 사람들을 압제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10:10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 여기서 '바알들'은 단순히 가
나안의 남성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이미 언급된 여러 나라의 신들을
모두 의미한다(6절). 한편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단순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라는 표현만이 사용되었으나(3:9; 4:3; 6:6), 본절에서는 이와
관련 그들의 죄목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의
부르짖음이 다른 때보다 더 간절했음을 시사해 준다.
=====10:11
애굽 사람 - 여기서 '애굽 사람'이 언급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
굽시키신 사건(출 1-14장)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Matthew Henry).
아모리 사람 -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노정 가운데 정복한 족속 중하나이다
(민 21:21-26). 그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노정(路程)을 방해하였는데 결국하나님께
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에 의해 격멸당했었다.
암몬 자손 - 모압 왕 에글론과 동맹을 하여이스라엘을 압제했던 사람들이다
(3:13).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에홋을 보내사 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다(3:15-30).
블레셋 사람 - 이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마 에훗의뒤이은 사사 삼갈
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던 사건과 관런된 듯하다(3:31).
=====10:12
시돈 사람 - 이들은 사사 시대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적도, 이
스라엘에 의해 공격당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이들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
아 지리적으로 아셀과 납달리 북쪽에 거주했던 이들은 아마 하솔 왕 야빈이이스라엘
을 압제할 때(4:1-3) 그를 도왔던 것 같다(Keil, goslinga, Hervey). 장차 이스라엘을
압제할 열국 가운데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인 듯하다(3:3).
아말렉 사람 -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그들을 대적했던 족속으로(출
17:8-13) 사사 시대에도 미디안 족속과 함께 이스라엘을 압제한 적이 었다(6:3).
마온 사람 - 70인역(LXX)에는 '마디암'(* ), 즉 '미디안'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1.2,p.376). 그런데 수 15:55에서 '마
온'은 유다 지파의 기업에 속해 있는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삼상 23:24에서도
그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대하 26:7에서는 이곳이 사해 남쪽과 페트라 동쪽
지역으로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본절의 '마온' 역시 유다 지경에 속한 '마온'이 아니
라 요단 동편 사해 남쪽에 있는 '마온' 곧 미디안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
의 학자들도 '마온'과 '미디안'을 동일시한다(Keil,Goslinga, Hervey, Cundall). 물론
혹자는 이 '마온'을 미디안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같은 유목민 중 한 부족으로 추정
하기도 하지만(Cassel) 그 근거는 회박하다.
=====10:13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
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우상 숭배에 빠진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매우 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벡성들이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자 다시금 사사 입다를 보내어 그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11장). 따라서 본절의 말씀은 우상 숭배에 젖을 대로 젖은 당신의백성들에
대한 강한 경고(히 6:4-6)로 이해될 수 있는데, 궁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극진하신
간섭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10:14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은 우
상 숭배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즉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은 이스라
엘 백성을 환란 가운데서 구원할 수 없는 헛된 것들임을 강조한다(Wycliffe). 모세도
우상들은 헛되며, 인생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들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신 32:37,38).
=====10:15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 이러한 고백은 (1)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깊이 깨닫고 있음과 (2) 자기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싶을 깊이 인지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이제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
의 뜻에 순복하려 한 자세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이 진정한 회개의 마음
을 갖게 되었음을 증거해 준다.
오늘날 우리를 건져 내옵소서 - 지금 막 하나님의 어떠한 처벌이든지 달게 받겠다
고 고백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적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
께 간구한 것은 조금 모순되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선민(選民)인 자신들
이 이방인들에게 압제를 당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한다는 생각에서 비롯
된 것이다. 따라서 본절을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달
라는 간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신 이는 자신들을 원수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시
어 자신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이 다시 영광받게 해달라는 간구
인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10:16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과
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의 죄를 고백
했다(10절). 그것도 죄를 고백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2)그들은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15절). (3) 그리고 죄의 고백과 더불어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이 고백한 그 죄로부터 떠났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들의 회개
는 진정한 회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6-18절 강해,
'참된 회개의 본'을 참조하라.
여호와께서...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
와,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고서 그들을 구원하시려 마음 먹으
신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근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카차르'(* )는 '견
디지 못하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그들의 곤고한 삶을 보시
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Matthew Henry).
=====10:17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쳤으므로 - 이처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와서 전쟁 준비를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18년 동안 암몬 사람들에게 복종하
며 그들을 섬기다가(8,9절) 이제 반역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상으로도 피정복민들이
정복 군주에게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면 그 군주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피정복민들을
재차 공격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왕하 17:3-6; 24:1-3).
미스바 - 성경에는 지명은 동일하나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는 '미스바'가 대여섯
군데나 있다(수 11:3,8; 15:38; 18:26; 삼상 22:3). 그런데 본절에 언급된 '미스바'는
사사 입다가 거주하던 곳이다(11:34). 이곳의 정확한 위치는 분명치 않으나얍복 강
북쪽에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곳은 과거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과의 언약을 기
념하여 '증거비'를 세웠던 곳인 '미스바'와 동일지일 가능성이 크다(창 31:49).
=====10:18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 암몬 사람들과 대치 상태에 들
어갔으나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막상 선두에 나서서 그들과 싸울 만
한 인물이 없었다. 고대 전쟁에서는 선두에서 백성들에게 싸울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장
군이 반드시 요청되었다. 그리고 그 장군이 전쟁 중 죽게 되면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
져 도망하게 된다(삼상 17:50-52). 이러한 이유로 길르앗 백성들은 암몬 사람과 제일
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 만한 인물을 찾았던 것이다.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아
가 암몬 사람과 싸워 이기는 사람을 길르앗 땅의 우두머리로 삼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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