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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직설 법문 녹취 제01강 (序文)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그 분의 어록
팔만대장경을 나누면은 대개 경이다. 율이다. 논이다. 이렇게 해서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이라. 그래요.道는 不屬知며 不屬不知라 아는 데도 속해 있지 않고’ 모르는데도 속해 있지 않다
“안다는 것은 망상이고. 모른다는 것은 無記(무기), 멍청하죠. 모르는 것은 기억이 안 나는
비유를 드는데 猶如太虛寬廓(유여태허관확)이라 너그러울 寬(관)자. 확은 탁 트일 廓(확)자입니다. 무변이요. 무량이요. 무한이죠 은하수 중에서 오리온의 제일 성자는 무려 태양의 이만 오천 배인가 그렇게 돼요 태양부피는 지구의 약 130만 배 ( 109.13 ≒ 130만 )
慧身(혜신)을 不由他悟(불유타오)야
진짜 부처님의 참 몸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華嚴에 云하사대
信爲道源功德母라 長養一切諸善根이라
又唯識에 云하사대 信如水淸珠하야 能淸濁水故라하시니
우유식 운 신여수청주 능청탁수고
是知萬善發生이 信爲前導로다.
시지만선발생 신위전도
믿음이 있을 때 바로 내 마음속에 여의주
신심이 法藏第一財
法藏법장의 제일가는 재물이 된다.
敎門(교문)에는(불경)
有愛福樂者(유애복락자)는
信十善(신십선)으로 爲妙因(위묘인)이라.
人天(인천)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爲樂果(위락과)하며(樂)낙의 결과를 삼게 한다.
복을 누리고. 출세하고 싶고. 즐겁게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러면은 좋은 일 좀 많이 하라. 이것이 사실은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은 대다수 사람들입니다. 99%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요.
有樂空寂者(유락공적자)는
生滅因緣(생멸인연)을
苦集滅道(고집멸도)로 爲聖果(위성과)하며
공적한 것을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잘 사는 것도 싫고 잘 먹고 잘 입는 것도 싫고 출세하는 것도 싫다. 그냥 조용하게 안 태어난 것 같이 일생을 조용히 그렇게 사는 것이 최고 내가 바라는 바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공적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 혹 있잖아요. 돈도 싫어하고 명예도 싫어하고요
有樂佛果者(유락불과자)는
信三劫六度(신삼겁육도)로 爲大因(인)하고
菩提涅槃(보리열반)으로 爲正果(위정과)어니와
삼겁(三劫) 육도(六度)를 믿는 것으로서 대인(大因)을 삼고, 큰 원인! 큰 씨앗을 심는다. 삼겁 육도라는 것은 삼 아승지겁 동안 육바라밀을 닦는다 이 말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계속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이 육바라밀을 끊임없이 닦아 가는 그런 것으로서 큰 원인을 삼고, 보리 열반! 결국은 깨달음! 열반을 증득하는 것! 이것을 바른 결과를 삼는다.
조문에서는 조사들정신)은
不信一切有爲因果(불신일체유위인과)하고인과를 믿지 않는다.
콩을 얻으려면은 콩을 심는다. 천상에 난다, 아니면 락을 누린다. 그렇게 하려면은 기왓장이라도 하고 서까래라도 하고 보시를 한다. 이 조사 스님 문중에는 이런 것을 잘 안 믿는다고요. 사실은 잘못하면 사람 버리기에 딱 좋게도 되어 있어요.
只要(지요) 다만 이것만 중요시 여긴다
信自已(신자기)가 本來是佛(본래시불)이라.
天眞自性(천진자성)이 人人具足(인인구족)하고
涅槃妙體(열반묘체)가 箇箇圓成(개개원성)하야
不假他求(불가타구)요.從來自備(종래자비)니
三祖(삼조)가 云(운)하사대
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어늘 良由取舍일새 所以不如라.
원동태허 무흠무여 양유취사 소이불여
誌公(지공)이 云(운)하사대
有相身中에 無相身이요 無明路上에 無生路라.
유상신중 무상신 무명로상 무생로
모양 있는 몸 가운데 모양 없는 몸이요.
번뇌무명의 길 위에 생사를 초탈한 그런 길이더라.
永嘉(영가)가 云(운)하사대
無明實性이 卽佛性이요 幻化空身이 卽法身이라.
무명실성 즉불성 환화공신 즉법신
衆生(중생)이 本來是佛(본래시불)이로다.
信而不解(신이불해)하면 增長無明(증장무명)이요.
解而不信(해이불신)! 이해만 하고 믿음이 없을 것 같으면
增長邪見(증장사견)이라. 삿된 소견만 또 자꾸 또 불어난다
信解相兼하야사 得入道疾이니라. 빠를질
사실은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 인생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조사 스님들은 그야말로 활줄과 같이 말씀하신다
부처님은 절차를 밟아옵니다 저 깊은 본 마음의 자리에는 착한 것도 없고 잘못도 없어요.
저 태양에 무슨 구름이 끼였으며 무슨 안개가 끼었고 무슨 서리가 내립니까
조사스님들 상점은 진금포! 진금만 팔지. 잡화는 안 팔아요.
그래서 부처님 상점은 잡화포라 그래요. 거기에는 물론 금도 있지만 온갖 잡동사니 다 팔고, 그렇게 나와 있어요 진금포 잡화포라고 이 진심 하나 확실하게 얻어놓으니까, 계속 그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마음 땅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청정한(깨끗한) 믿음을 내는 사람.
천리를 가려면은 첫 걸음부터 바로해야 된다
“첫 믿음이 어떤 바른 위치를 잃어버릴 것 같으면은
萬善(만선)이 俱退(구퇴)라.”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 호리유차 천지현격이라 하시니
뭘 해도 하는 것이 없는 마음으로부터 어떤 상이 없고. 찌꺼기가 없고. 집착이 없고 하는 그런 삶이 사실 무위국의 삶입니다. 曰離妄名眞(이망명진)이요 靈鑑曰心(영감왈심)이다.
靈鑑曰心(영감왈심)이다 영감! 신령스럽게 비추는 거죠.
“마음이 착한 일을 따르면 모든 복이 그를 따른다. 마치 수레가 소를 따르듯이”
내가 얼마 안가서 없어질 것으로 안다. 왜냐? 변하는 것은 없어지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또 그리고 변하지도 않는다. 견정(空心)
한 때 성격이 조금 안 좋고 뭐 딱딱하고 차고 그냥 그렇다손 치더라도요. 어느 계기가 되면은 아주 봄 날씨같이 따뜻하고 아주 춘풍같이 부드럽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됩니다.
똑 같은 물이지만 온수도 되고 냉수도 되고, 커피도 되고 녹차도 되고...
交徹融攝교철융섭
서로서로 사귀어서 사무쳐 있다
형광등 불빛이 전부 이렇게 뒤섞여 있듯이
너와 내가 교철융섭이요. 남과 여가 교철융섭이요. 또 그 다음에 광물과 식물이. 광물과 동물이.
사람과 짐승이. 사람과 광물이. 사람과 식물이. 이 우주 법계의 전체가 전부 교철융섭이다.
그러면 여기 있지만, 여기 있을 때는 다른 데서 와 가지고 여기 있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따져 들어 가면은 또 우습게 되 버려요. 여기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또 다른 데서부터 왔다고 하는 것도 이상한 거예요. 몸뚱이라면은 그것이 가능하겠는데,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 하려니 까 그것이 안 맞아 들어요.
여기 있다면 그럼 어디서 와서 여기 있을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과연 왔느냐?“가고 오되, 여여히 가고 여여히 온다.
열반은 뭡니까? 모든 번뇌가 다 사라진 자리! 이 몸마저 사라진 자리! 그것이 열반입니다.
'우리가 한 마음 자리는 똑 같지마는 묘용이 그 작용이 다른데, 그 작용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공덕을 많이 닦고. 인연을 많이 짓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말하자 면은 자기의 어떤 영향력을 키우는 일! 왜 불성이라고 하느냐?三身本體故그랬어요
도둑놈들을 딱 보면은 자기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거예요. 생각할 여유가 없이 도둑놈들한테 손이 먼저 턱 간다는 겁니다. 세 번쯤 생각해서 나가는 말은 그것은 괜찮다고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르면은 어떤 일도 다 해결되고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한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면 한 예로서 죽일놈이라고 말이 탁 나갈 판에, 그것은 일종의 칼이 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사람 죽일놈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 죽인다는 뜻이니까. 그 순간에 관세음보살이 입에 익은 사람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자기 자신을 자제하는 거죠.죽일 놈이 관세음보살로 바뀌어지니까 그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느냐 一法千名(일법천명)이 應緣立號(응연입호)라
전부 인연 따라서 호를 세운다. 명색이 없는 그런 중인 줄 알았는데, 아주 컴퓨터 고수이든지 아니면 바둑의 고수든지 그러면은 보는 것도 다른 거예요 그때는. 벌써 그 사람들은 보는 것이 달라요. 대접이 다르고 應緣立號(응연입호)! 인연에 맞추어 호를 세운다.
“보살의 얼굴에 아귀의 마음! 아수라의 마음! 또 아수라의 얼굴에 보살의 마음!” 우리 진심속에는 관세음보살도 문수 보현도 아미타불도 석가여래도 아귀도 아수라도 그 속에 다 있다. 인연 따라서 그게 나오게 되지만, 나올 그런 인연이 설사 되었더라도 나오는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얼굴을 바꿀 수가 있다... 그것은 많은 수양과 정진 그리고 노력을 통해서 應感隨機(응감수기) 라고 하는 말은 느끼는데 따라서 내가 맞추어 주는 거예요. 상대가 느끼는 데로 내가 맞추어 준다.그 근기에 또 따라 준다.
형체를 갖추고 있으면 이것은 분석이 가능하다고요. 그런데 형체가 없으면 그것은 분석이 안 되는 거예요. 허령해요 묘심이라! 虛靈寂照(허령적조)!
荷負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지고 있다.
얻어먹겠다고 나서면은 못살 사람 없어요. 다 살아요.
今時(금시)라고 하는 말은 분별각지라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3. 진심묘체 眞心妙體 (11)
화두 들어 본 사람들도 저 정도 경험은 여러 번 합니다. 꿈속에서 화두 드는 경험은 으레 하거든요. 꿈에 지는 화두 들고 있어요. 나는 자는데 꿈에 지는 화두 들고 있다 고요. 대개 보고싶은 사람은 꿈속에서 매일 만나잖아요. 나는 자는데 지는 가서 만나는 거예요. 싱글벙글 웃는 거예요. 그와 같이 된다 고요.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이 무가보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은 진짜 그렇게 돼요.
이 보물에 대해서, 무가보에 대해서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은 기분이 좋아서 못 배겨요. 자꾸 웃음이 나와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요. 먹고 입고가 문제가 아니예요.
我有一法(아유일법):나에게 한 법이 있다.
(이름도 붙일 수 없고, 모양도 없고 말할 수도 없다.)
先天後天(선천후천):하늘보다 먼저 있었고, 하늘보다 나중까지 있다.
靈知不昧(영지불매):신령스럽게 알아서 어둡지 않다.
任運平安(임운평안):어느 곳에서나 어떤상황에서도 평안하다.
般若(반야)지혜는 無所有相(무소유상)하야. 있는바 의 모양이 없다
無生滅相(무생멸상)이라. 생과 멸의 모양이 없다.
聲聞(성문)은 공부가 조금 된 사람들! 여러분들을 성문이라고 그래요. 범부들 보다 한 단계 높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성문 이예요. 범부는 이런 법문을 아직 한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을 범부라고 하고 이런 법문을 자주 듣는 사람을 성문!
緣覺(연각)느끼고 깨닫기 시작하는 거죠.
언젠가 그 들었던 것이 어떻게 가슴에 턱 와 닿을 때가 있다고요. 이 자리에서 닿는 것이 아니예요. 이 자리에서 혹 닿을 수도 있어요.그것이 연각입니다.
菩薩(보살).알 것은 다 알아 가지고 중생을 위해서 자기가 깨달은 것을 전해 주려고 하는 그런 원을 들고 사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그래요.
諸佛(제불)은 제일 위에 부처님이지요. 凡夫(범부). 聲聞(성문). 緣覺(연각). 菩薩(보살). 佛(불) 이렇게 다섯 단계로 이렇게 나누어 놓았습니다
마음에 와 닿으면은 팔자가 바뀌고 바보건 천재건 달을 아무나 가르키면서 달이라 말할수 있다
조금밖에 모르는데도 이렇게 참 여러 사람이 좀 알았으면 싶고, 모든 것이 안타깝게 여겨지고 그런데, 부처님 같이 확철하게 깨닫고 손에 사물을 잡고 있듯이 그렇게 아는 분은 정말 얼마나 가르쳐 주고 싶었을까? 오라는 소리 안 해도 막 뛰어가서 설명하는 거예요. 사십 구 년간
죽지 않으면은 태어난 것도 아니죠. 부모가 낳아준 것은 육신 이예요
[變化無常]우리는 밖에 변화무상한 것 거기에만 익숙해요. 그 계산에는 밝아요. 나이는 몇 살 먹었고 어떻게 변했고 뭐 얼굴은 어떻게 변했고 또 더 늙었고, 그것만 자꾸 익혀 와 가지고 그 변화하는 것만 체크 할 줄 알지, 변화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도대체 이해가 없어요. 그 방면에는 너무 무식해요. 변화하는 데는 아주 유식해서 환희 들여 다 보고 있어요. (見聞覺知)! 보고 듣는 이런 일을 그냥 바깥경계의 변화에다 팔아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한 순간도 가만히 못 있고 텔레비전을 틀어야 된다든지. 전화를 해야 된다든지. 안 그러면은 하다못해 가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라도 해야 된다든지 자꾸 하이 튼 그렇게 일거리를 벌려 가지고, 거기다 내 몸과 마음을 전부 팔아요.
무가진보다. 일체공덕을 누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능력! 그것을 내 자신 속에 다 가지고 있다
진심의 본체는超出因果(초출인과)!해서 그래서 현상은 인연의 도리로 이루진 것이 현상이다. 그래서 천차만별이예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 다르고. 수준이 다 다르고 같으면 안돼요. 같을 수가 없어요. 같지가 않다고요. 非有非無(비유비무)라
여기는 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그랬어요. 사실 있다고 하려니 까 내 놓을 것이 없어요. 또 없다고 하려니 까 너무나도 또 분명해요. 왜냐?
금은 또 다루는 사람의 손에 따라서 시계도 만들어지고 무슨 비녀도. 팔찌도 또 반지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그러면서 금은 금이거든요. 영원히 금은 금이거든요. 어떤 모양을 만들어 놓아도 금은 금이예요. 이것은 이제 진심과 같은 거죠. 변하지 아니하는 세계와 같다
어떤 확신! 또는 거기에 대한 깨달음의 안목으로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또 깨닫고 또 깨닫고. 그렇게 또 깨달았으면서도 또 깨닫고 또 깨닫고. 그저 사실은 깨달음의 연속 입니다.
.우리 마음의 등불을 어두움을 밝히려고 그래서 오신 것이 거든요.
四山 我相(아상) 人相(인상) 衆生相(중생상) 壽者相(수자상) 四山(사산)도 어떻게 못하는데 하오며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진치(貪嗔痴) 그것이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은 더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거예요.
우스운 이야기하면 금방 웃을 줄 알고. 뭐 슬픈 이야기 하면 금방 슬퍼할 줄도 알고. 또 화나게 하면 금방 화낼 줄도 알고 그것이 뭐예요? 그것이 衆妙(중묘) 아닙니까?
온갖 미묘한 것이 그 속에 다 있어요.
夫此心者는 衆妙群靈而普會하야 爲萬法之王이다.
부차심자 중묘군령이보회 위만법지왕
마음에 대해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그것은 참 곤란해요.
獨尊獨貴(독존독귀)! 불교는마음놀이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 하는 일이고. 마음 배우는 일이고. 마음놀이 어떻게 하면은 잘하느냐? 그것을 배우는 일이다 마음 깨닫는 일이다
무식하다고 하는 말이 글을 못 배워서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고 이 마음을 몰라서 무식하다 이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말이 예요.
그래서 육조스님 같은 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데 이 마음에 대해서는 천재죠. 아주 무식한 사람이 예요.이 마음에 대해서는 천하에 그렇게 밝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존경 받고 대우 받지요.
參訪(참방)! 이라고 하는 것은 선지식에게 법을 묻는 일을 참방이라고 합니다. 참여해서 방문한다
達此心則頭頭皆是(달차심칙두두개시)라.
마음만 깨달으면 무슨 짓을 해도 다 옳아요.物物全彰(물물전창)이야. 어디든지 다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데 없으면은 변소에 똥에도 하느님이 있느냐?”훌륭한 하나님을 갔다가 말이지 똥에다가 비유를 해 가지고 그렇게 불손한 그런 표현을 쓴다고 그래서 나중에 “부처님도 무소부제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러면 똥에도 있느냐.” 그러니까. “아니 똥이 부처님이야.
똥이 부처님인데 뭐 똥에 있고 말고 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迷此心則(미차심칙)이 마음을 미혹한 즉은
處處顚倒(처처전도 )라念念痴狂(념념치광)이니.
처처가 전도되었고 념념이 다 어리석고 미쳐있다.
일체세계를 창조하는 근원자리가 바로 이 마음이다.
축峯(축봉)에 良久(양구)하시고. 良久(양구)라는 말은 가만히 있다 이 말이죠.
영축사에서 가만히 있었다. 법문 하러 올라가서 가만히 꽃을 들어 보였다든지. 아니면은 꽃마저도 들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은 적도 있고 그래요. 그것이 양구라. 가만히 있었다
수보리가 巖下(암하)에서 忘言(망언)하시고 達磨(달마)가 少室(소실)에서 觀壁(관벽)이라.
이 마음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봤자 설명도 제대로 되지않고. 제대로 되지 않는 설명을 하려니 까 답답하고.벽만 보고 있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할 길이 없죠
설명을 했다 하면은 그르치거든요 개구즉착 이라고 그러는데 설명했다면은 그것이 그르치고 틀려버리니까 이 마음의 오묘불가사의한 도리는 말이 없는 것으로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杜口(두구)
'마음이 마음을 하면 마음이 마음 한다. 그러니까 이제 가서 마음 해라. 가서 쉬어라. 자라 이 말입니다. 자는 것도 마음이 자니까 가서 마음 해라.마음작용으로 보지않고 현상을 좇아가요. 주체적인 입장이 되지 못하고 객체에서 보는 거예요. 현상에 속고 또 현상에 빠지고.
조주스님이 120을 살았는데 너희들은 시간에 끌려가고. 나는 시간을 끌고 간다.
어떤 이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은 한 시간이 언제 갔는지 모른다 그러거든요. 한 시간을 한 일분 정도로 쓰는 거죠. 한 시간을 쓰는데 일분 정도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한 시간에 어떤 제한된 시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한 시간을 사용하는 거죠. 내가 끌고 가는 입장이 돼 버립니다.
고인이 말씀 하시기를
風動心搖樹요 雲生性起塵이라. 풍동심요수 운생기진
風動心搖樹(풍동심요수)요 바람의 움직임이 마음이 나무를 흔들고
육조스님이 맨 처음에 법성사에 와 가지고 십 오년 동안, 말하자 면은 은둔 생활을 마치고 막 자기 법을 펴려고 할 때에 절에 처음 당도했는데, 마침 무슨 행사가 있어 가지고 번을 달아놓고 그 번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서 서로가 통하는 사람이, 마음이 예를 들어서 바람에 움직인다. 또 번이 움직인다. 그렇게 두 가지 상반되는 이론을 가지고 서로 다투고 있을 때, 육조스님이 나타나 가지고서
그것은 그대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 요. 번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도 내 마음이 그렇게 결부되지 아니하면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다
雲生性起塵(운생성기진)이라. 성품에서 진을 일으킨다.
삼독(三毒)의 구름이 성기진이라고 하는 것은 뒤덮을 때, 우리의 성품가운데 塵(진)! 번뇌를 일으킨다.
찾아보면은 없습니다. 텅 비었어요. 공적 하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묘체라고 그래요. 묘체! 묘하게 있다 또 그 영향력은 대단해요. 순전히 마음으로 살아가거든요.
참답고 항상 한 것. 진상(眞常 참다운 것 진짜다 이거죠.
학명 존자 라고 하는 이가 남긴 게 송인데
心隨萬境轉하니 轉處에 悉能幽라.
심수만경전 전처 실능유
마음은 일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니,
그 굴러가는 곳마다 다 능히 그윽하다.
이 幽(유)자는요. 그윽할 유자인데 말하자 면은 아득하다. 그래서 그 끝을 모른다. 불가사의하다. 참 묘하기는 묘한데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고, 그 근원을 밝혀낼 수가 도대체 없다.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
흘러가고 말 것이 아니고, 흘러감을 따라서 성품을 알 것 같으면성품이 거기에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은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내 마음이 거기에 개재되지 아니하면은 그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오른쪽으로 돌아보는 것. 왼쪽으로 돌아보는 것. 숟가락을 들고 놓고. 뭐 옷을 입고 벗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뭐 어디를 가고 하는 그런 일들이 전부가 마음 작용이다 이거예요.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냈는데금을 가지고 불상을 만들었던지. 무슨 코끼리 모습을 만들었던지. 아니면 비녀를 만들었던지. 시계를 만들었던지 그 성질은 전부 금이 예요.
전부 모양만 좇아가지 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잖아요.
모양을 따라서 좇아가더라도 저 모양도 내 마음! 내가 그 모양을 좋아하는 것도 내 마음.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도 내 마음의 작용! 전부 이렇게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갖고자 하는 모양이 어떤 모양대로 있으면 그것도 내 마음. 좋아하는 것도 내 마음. 내가 가지려고 하는 것도 내 마음 전부 그렇게 인식하는 것. 그렇게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마음공부예요.
다만 밥 먹고. 다만 옷 입고. 다만 잠자고. 다만 좇아 다니고. 다만 손을 들고. 다만 발을 들고 그렇게만 안다 이거죠. 날로 쓰되 그것이 마음의 작용인줄 알지를 못한다 전부 내 마음이 만든 사람이고. 내 마음이 만든 세상인데 그것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현상만 본다...
4. 眞心妙用 진심묘용 (16)
모든 삶이라는 것은 받아들이고 감지하고 감시하는 이 일의 연속이다 이렇게 해도 사실은 과언이 아니 예요. 妄心無處가 卽菩提라 그랬습니다.
질량은 변하지 않지 않습니까 형태만 변할 뿐이죠. 형태만 바꿀 뿐이지 그 본래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어떤 물질의 양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종이 한 장도 이것이 불로 태워서 없앨 것 같지 만은 천만에, 못 없애는 거예요.기체로 변화되고 그렇게 변할 뿐이지 이 종이 한 장의 고유한 질량은 영원히 변치 않고 그대로 있다 소멸이다. 허망이다 라고 하는 말은, 지금 눈 앞에 있는 그 형태가 그대로 보존되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 성질이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망상이 사라지면 진심은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망상이 사라진 그 자리가 바로 진심이죠. 어둠이 없어진 그 자리가 밝음의 자리다 이 말입니다
痕垢盡時에 光始現이요 心法雙忘性卽眞
성불한다고 여러분들 얼굴이 달라지는 게 아니 예요 그 안목만 달라지는 거죠
인생을 감수하는 것이 달라져요. 하루하루 그 삶이 전혀 다르지요.
다른 것 손아귀에 잡으려고 하지말고 이 마음하나 손 아귀에 잡아야 된다고요. 그래 가지고 내가 이 마음을 운용을 해야 돼요.그 사람이 성공한 인생이라고요.
대통령이 실컷 돼 가지고 감옥에 가고. 아들이 어디 가버리고 성공해보니 뭐합니까?
감이 잡혀야 기도가 쉬워요. 참선도 마찬가지고. 이런 경전공부도 마찬가지예요.내 인생의 키를 내 손에 꽉 붙들자고 마음 가지고 노는 훈련을 자꾸 해야 돼요 그 주인공을 어떻게 하더라도 잘 유도해야 되겠다.잘 부추 켜 주는 거예요 자식이고 남편이고 아내고 형제고 자매고 누구고 간에 다 마찬가지예요.
망상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고 하죠. “마음이 없으면 목석이야.공병(空甁)! 빈병 하면은 병이 없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병이 비었다는 말이죠.
汝但於心에 無事하고 於事에 無心하면
여단어심 무사 어사 무심
그대는 다만 마음에 일이 없고 일에 있어서 무심할 것 같으면은
自然虛而靈 寂而妙라 하시니
자연허이영적이묘
以無妄心이언정심 망령된 마음이 없을지언정
非無眞心妙用也 비무진심묘용야
진심 묘용이 없는 것이 아니다.
무심공부를 짓는 것
여러 가지가 있겠지마는 지금의 대의를 묶어서 열 가지만 간략하게 밝히겠다
첫째는 깨달아 살피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항상 생각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생각이 일어남을 막으려면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즉시 깨달아서 부숴버려야 한다. 그 망념을 깨달아서 부숴버리고 다음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며, 이러한 깨달은 지혜마저도 쓰지 않고 망념이다, 깨달음이다 하는 분별도 함께 잊어버리면 그것을 무심이라 한다. 그러므로 조사께서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말라. 단지 깨달음이 더뎌질까를 두려워하라”하였다. 또 게송에는 “진심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견해를 쉬어버려라”하였으니 이것이 깨달아 살펴서 망념을 쉬는 공부이다.
육조스님이 이 말씀을 합니다.
不思善 不思惡(불사선 불사악)하라.
둘째는 쉬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마음이 일어나면 곧 쉬고, 인연을 만나도 즉시 쉬어야 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한 가닥 흰 비단실처럼, 찬 땅을 조심스레 밟고 가듯, 옛사당 안의 향로처럼 엄숙하고 고요히 하여 바로 망상을 끊고 분별을 떠나서 마치 바보와 같고, 막대기 같이 되어야 비로소 조금 진심에 부합된다.’하였으니, 이것이 곧 쉬고 쉬어서 망념을 없애는 공부이다.
선방에 있는 수좌 스님들이 이 봉사정신! 보살정신이 아주 희박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런데 포교 활동하는 스님들은 막 그냥 어디 뭐 양로원에도 가고 고아원에도 가고 군부대도 가고 봉사활동도 많이 편다고요.인연을 만나면 곧 쉴지니
인연을 만나면 또 그 인연을 가지를 치고 연결해 가고. 또 인연에 인연의 고리를 물고 또 계속 그냥 인연의 고리를 달고 나가지요. 그런데 무심공부 하는 사람들은 인연을 만나면 곧 바로 그것으로 쉬어버려라. 양귀비가 와도 비추고 아무리 악한 도둑놈이 와도 비춥니다. 그런데 그 앞을 떠나가 버리면은 그것으로 끝이 예요.무심공부를 제대로 한 그런 사람의 정신상태를
古廟裏香爐去[고묘리향로거] 一條白練(일조백련)!冷湫湫地去(냉추추지거 如痴似兀(여치사올)! 멍청한 사람. 정신이 나간 사람. 얼빠진 사람을 치라고 그래요 오똑 할 兀(올)자인데 예를 들어서 인형이 이렇게 오똑하게 앉아있다
三은 泯心存境이니 멸할민 셋째는 마음만 없애고 경계는 두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일체의 망념을 다 쉬어서 바깥 경계를 돌아보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의 마음만 쉬게 되면 망심은 이미 쉬게 되는 것이니 바깥 경계가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곧 옛사람이 ‘사람만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는다’하는 법문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향기 나는 풀이 성 안에 가득하나 옛사람은 없구나’하는 말도 있고,
또 방거사(龐居士:당나라 때의 재가불제자)는 ‘다만 스스로 만물에 마음이 없으면 만물에 둘러싸였다고 해서 무슨 방해가 되리오’하였다. 이것이 곧 마음만 없애고 경계는 둔채로 망심을 없애는 공부이다.
세상에 선이니 악이니. 잘 났느니 못 났느니. 옳으니 그르니 아무 소용없거든요.
쉬는 것만 같지 못해요. 방하착! 하는 것이 제일이죠.
自無心於萬物하면 何妨萬物이야.
鐵牛不破獅子吼(철우불파사자후)라.무쇠로 만든 소는 무심하니까요
但自無心於萬物하면 何妨萬物이 常圍繞리오,
단자무심어만물 하방만물 상위요
어찌 만물이 항상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방해되겠는가. 무엇이 방해 되리오
四는 泯境存心이니
只存一心(지존일심)하야 孤標獨立(고표독립)이니
넷째는 경계만 없애고 마음은 두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안팎의 모든 경계가 다 비고 고요하다고 관찰하되, 단지 한 마음만 홀로 드러내어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도 말하기를 ‘모든 법과 짝하지 말고, 모든 대상과도 상대하지 말라’한 것이다. 마음이 만일 대상에 집착하면 그 마음은 즉시 망심이 되지만 이제 이미 대상이 없어졌다면 무슨 망심이 있겠는가. 이에 진심만이 홀로 비쳐서 도에 장애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옛사람이 말한‘경계는 빼앗되 사람은 빼앗지 않는다’하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동산에 꽃은 이미 다 졌는데 수레와 말이 오히려 붐비고 있네(즉 꽃이라는 경계는 사라졌지만 사람의 마음에 비유된 수레 소리는 남았다는 뜻임)’하였고, 또 누구는 ‘3천 검객은 지금 어디 있는가. 홀로 계획을 세운 장주가 태평을 이룩했네(옛날 조문왕[趙文王]이 검술을 좋아해 3천의 검객을 두고 서로 싸우게 해서 해마다 백 여명이 죽어갔다. 이때 장자가 조문왕에게 칼에는 천자의 칼, 제후의 칼, 서민의 칼이 있는데 지금 왕은 서민의 칼을 쓰고 있으니 천자의 칼을 쓰라고 했다. 즉 부국 강병의 정치를 펴면 온나라가 다 복종해오니 이것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천자의 칼이라고 했다. 이 말에 조문왕은 검술을 그치고 3개월간 밖을 나오지 않자 조문왕의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된 3천 검객이 자살했다는 중국 고사가 있음. 여기서 3천 검객은 경계에 비유되고 장자는 마음에 비유되었음)’하였다. 이것이 바로 경계는 없애고 마음은 둔채로 망심을 쉬는 공부이다.
다섯째는것 마음도 없애고 경계도 없애는 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먼저 외부의 대상을 비워 고요하게 하고 다음은 안으로 마음을 없애버린다. 이미 안팎으로 마음과 경계가 함께 비워졌다면 끝내 망심은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관계스님은 ‘시방에는 벽도 없고 사면에는 문도 없으니, 발가벗어 깨끗하기가 물뿌린 듯하네’하였으니 이는 조사께서 사람과 경계를 다 빼앗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말하기를 ‘구름 흩어지고 물 흘러가니 천지가 고요히 비어있구나’하였고 또‘사람과 소가 다 보이지 않으니 바로 달밝은 때로다’하였으니 이것이 마음도 없애고 경계도 없애어서 망심을 쉬는 공부이다.
여섯째는 마음도 두고 경계도 두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마음은 마음 자리에 머물게 하고 경계는 경계의 자리에 머물게 하여 때로 마음과 경계가 상대하게 되더라도 마음은 경계를 취하지 않고 경계는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각각 서로가 부딪치지 않으면 자연히 망념이 생기지 않으니 도에 아무 장애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 이 법(世間法)이 참된 법의 자리에 머무니 세간의 모습도 항상 머문다”하였으니, 이것이 조사의‘사람과 경계를 다 빼앗지 않는다’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한 조각 달이 바다에서 오르니 몇집의 사람이 누각에 오르는가(이 경우 달은 경계요 사람은 마음을 상징함)”하는 말도 있게 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산에 천만송이의 꽃이 피었으니 유람 나온 사람은 돌아갈 줄 모르네(이 경우 꽃은 경계요 사람은 마음을 상징함)”하였으니, 이것이 경계도 두고 마음도 두고서 망념을 없애는 공부이다.
일곱째는 안과 밖이 전체인 경지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산하와 대지, 일월과 별, 그리고 안의 몸과 바깥 세상의 사물과 일체의 법이 다같은 진심의 본체라서 고요히 비고 밝아 털끝만큼도 다름이 없어서 대천 세계의 모래처럼 많은 세계를 부수어서 한 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데 다시 어느 곳에서 망심이 오겠는가. 이런 까닭에 승조(僧肇)법사는“천지와 나는 한 뿌리이고, 만물과 나는 한 몸이다”하였으니, 이것이 곧 안과 밖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망심을 없애는 공부이다.
여덟째는 안과 밖이 모두 작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할 때, 안팎의 몸과 마음, 이 세계의 모든 법과 행동하고, 쓰고, 베풀고 하는 것들이 다 진심의 신묘한 작용임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 일어났다면 이는 곧 신묘한 작용이 나타난 것이고, 이미 일체가 신묘한 작용이라면 망심이 어느 곳에 발붙이겠는가. 그러므로 영가스님은“무명(無明)에 가리운 참된 성품이 곧 불성(佛性)이요, 실체가 없는 빈몸이 바로 법신이다”하였다.
아홉째는 본체가 곧 작용인 것이다. 공부할 때, 비록 진심의 본체에 고요히 합해져서 하나같이 비어 고요하지만 그 가운데에 안으로 신령한 밝음이 숨어 있으니 그 본체가 바로 작용이다. 그러므로 영가 스님은“또렷하면서도 고요한 것은 옳으나, 또렷하지만 망상이라면 잘못이고, 고요하면서 또렷하면 옳지만 고요하면서 멍청하면 잘못이다”하였다. 그렇다면 고요한 가운데에서 멍청함을 용납하지 않고, 또렷한 가운데서 어지러운 생각을 용납하지 않으면 망심이 어떻게 생겨나겠는가. 이것이 본체가 곧 작용임을 알고 망심을 없애는 공부이다.
열째는 본체와 작용을 초월하는 것이다. 공부할 때, 안과 밖을 구분하지 말고, 또한 동서남북도 가리지 않고 사방 팔면을 다만 하나의 해탈문으로 만들어서 둥근 구슬처럼 본체와 작용을 나누지 않는다. 그리하여 털끝만큼도 빈틈이 없이 온몸을 한덩어리로 두드려 만드는 것이니 망념이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옛사람의 말에 “온몸이 꿰맨 자리가 없이 위아래가 온통 둥글구나”하였으니 이것이 곧 본체와 작용을 초월하여 망심을 없애는 공부이다.
已上十種做功夫法 不須全用 이상십종주공부법 불수전용
이상의 열가지 공부법은 다 쓸 필요는 없고
但得一門 功夫成就 其妄自滅 단득일문 공부성취 기망자멸
다만 한가지 문만 택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망심은 절로 사라지고
眞心卽現 隨根宿習 진심즉현 수근숙습
진심이 곧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근기에 따라서
曾於何法 有緣卽便習 증어하법 유연즉편습
전생의 습성이 어느 법과 인연이 있는지 그것을 따라 익히도록 하라.
之 此之功夫 乃無功之功 지 차지공부 내무공지공
이 공부는 공부함이 없는 공부이므로
非有心功力也 此箇休歇妄心法門 비유심공력야 차개휴헐망심법문
공력을 들여 마음을 써서는 안된다. 이는 마음을 쉬어버리는 법문이
最緊要故 偏多說 無文繁也 최긴요고 편다설 무문번야
가장 긴요하기 때문에 치우치게 말을 많이 했으나 글의 뜻에는 번거로움이 없다.
付雲峰性粹(부운봉성수)一切有爲法(일체유의법)本無眞實相(본무진실상
)於相若無相(어상약무상)卽名爲見性(즉명위견성)
운봉 성수에게 부치노니,일체의 유위법은 본래 진실 된 모양이 없으니
저 모양 가운데 모양이 없으면 곧 이름하여 견성이라 함이라.
세존응화 2951년 4월경허문인 혜월 설함
육신이 튼튼 하려면 육신에 대한 운동을 해야 되고. 마음이 튼튼 하려면은 마음 운동을 해야 된다.
진심직설(眞心直說)(14)
-일체의 모든 생각은 버려야 하되-
-버린다는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
8. 진심은 사의(四儀:걷고, 서고, 앉고, 누움. 즉 행동 일체)에 있다(眞心四儀)
밑에 글들은 오른쪽 한글만 골라서 읽어야 빠름=
或曰前說息妄 未審 但只坐習= 물었다.“앞에서 망심을 쉰다고 말씀하셨는데, 앉아서만 공부하는 것인지
혹왈전설식망 미심 단지좌습
亦通行住等耶 =아니면 다니거나 머물 때에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역통행주등야
曰經論 多說坐習 所以易成故 =대답했다.“여러 경에, 앉아서 하는 공부를 많이 말한 것은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왈경론 다설좌습 소이이성고
亦通行住等 久久漸成純熟故 =역시 가거나 머물 때에도 통하는 것이니 오래하다보면 차츰 익혀지기 때문이다
역통행주등 구구점성순숙고 .
起信論云 若修止者 住於靜處 =〈기신론〉에 보면‘지(止:생각을 쉼. 참선하는 방법)를 닦는 사람은 고요한 곳에서
기신론운 약수지자 주어정처
端坐正意 不依氣息 不依形色= 단정히 앉아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되 호흡에도 의지하지 말고 형색에도 의지하지 말고
단좌정의 불의기식 불의형색
不依於空 不依地水火風 =공(空)에도 의지하지 말고 지·수·화·풍(地水火風: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인간의 육체나 일체 물질의 원소를 네 가지로 보았음. 여기에 空을 합하면 5大가 되는데 이는 일체의 법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뜻함)에도 의지하지 말며
불의어공 불의지수화풍
乃至不依見聞覺知=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깨닫는 일에도 의지하지 말며
내지불의견문각지
一切諸想 隨念皆除 亦遣除想 =일체의 모든 생각은 버려야 하되 버린다는 생각까지도 버려야 한다.
일체제상 수념개제 역견제상
以一切法 本來無想 念念不生 = 이 모든 법은 본래 생각자체가 없으니 생각이 생기는 것도 아니요
이일체법 본래무상 염념불생
念念不滅 亦不得隨心 外念境界後 =생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마음을 따라서 밖으로 대상을 생각한 뒤에야
염념불멸 역부득수심 외념경계후
以心除心 心若馳散 卽當收來 =마음으로써 마음을 없애려 하지 말고 마음이 만약 밖으로 달려가려 하면 응당 거두어 들여
이심제심 심약치산 즉당수래
住於正念 是正念者 當知唯心 = 바른 생각에 머물도록 하라. 이 바른 생각이라는 것은, 오직 이 마음은
주어정념 시정념자 당지유심
無外境界 卽復此心 亦無自相 =바깥 경계란 없는 것이며 역시 이 마음은 모양도 없어서
무외경계 즉부차심 역무자상
念念不可得 =생각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아는 것이니라
염념불가득
若從坐起 去來進止 有所施作 =만약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고 오고 전진하고 (그치는 등)
약종좌기 거래진지 유소시작
於一切時 常念方便 隨順觀察 . =모든 행위를 할 때에 항상 방편을 생각하며 순리에 따라 관찰하되
어일체시 상념방편 수순관찰
久習純熟 其心得住 以心住故 =오래 익혀서 익숙해지면 그 마음이 안주(安住)하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이 안주하게 됨으로써
구습순숙 기심득주 이심주고
漸漸猛利 점점 총명해져서
점점맹리
隨順得入眞如三昧 深伏煩腦 =순리에 따라 진여삼매(眞如三昧:법계가 平等一相이라는 진리를 관조하여망념을 없애는 삼매)에 들어서 번뇌를 누르고
수순득입진여삼매 심복번뇌
信心增長 速成不退 唯除疑惑 =신심이 더욱 늘어나 물러섬이 없는 지위를 빨리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혹과
신심증장 속성불퇴 유제의혹
不信 誹謗重罪業障 =불신·비방·중죄(重罪)와 업장(業障)과
불신 비방중죄업장
我慢懈怠如是等人 =아만과게으른 이런무리들은
아만해태여시등인
所不能入 據此則通四儀也 =능히 들어갈 수 없으니 이 말씀에 의하면 역시 사의(四儀:걷고, 서고, 앉고, 누움. 곧 행동 일체)에 통한다고 할 것이다.
소 불능입 거차칙통사의야
진심직설(眞心直說)(15)
-다니는 것도 앉아있는 것도 선이니-
-다만 실천하지 않음이 두려울 뿐 -
圓覺經云 先依如來奢摩他行 =〈원각경〉에 ‘먼저 여래의 사마타행(망념을 없애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함)에 의하여
원각경운 선의여래사마타행
堅持禁戒 安處徒衆 宴坐靜室 =계율을 굳게 지키고 대중들 가운데서 편안히 거처하며, 고요한 방에 앉아 참선하여라’하였으니
견지금계 안처도중 연좌정실
此初習也 =이는 맨 처음에 익혀야 할 일이다.
차초습야
永嘉云 行亦禪坐亦禪 =영가스님은 ‘다니는 것도 선이고, 앉아 있는 것도 선이며,
영가운 행역선좌역선
語默動靜體安然 據此亦通四儀耳=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활동하거나 고요히 있거나 몸은 항상 편안하다’하였으니 이 말에 의하면 역시 네 가지 거동에 통하는 것이다.
어묵동정체안연 거차역통사의이
總論功力 坐尙不能息心 況行住等 =통틀어 공부하는 방법을 논한다면 앉았어도 마음을 쉴 수가 없는데 하물며 다니거나 머물거나 하면서
총론공력 좌상불능식심 황행주등
豈能入道耶 若是用得純熟底人 =어찌 도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공부에 익숙함을 얻은 사람이라면
기능입도야 약시용득순숙저인
千聖興來驚不起 萬般魔妖不廻顧 =일천 성인이 온다해도 놀라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온갖 마귀가 덤비더라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천승흥래경불기 만반마요불회고
豈況行住坐中 不能做功夫也 =어찌하여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아 있는 가운데서 공부를 하지 못하겠는가
기황행주좌중 불능주공부야
如人欲讐恨於人乃至行住坐臥 =만약 사람이 남에게 원수를 갚고자 할 적에는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여인욕수한어인 내지행주좌와
飮食動用 一切時中 不能忘了 =음식을 먹거나 활동을 하거나 언제라도 (원수를) 잊지 못하며,
음식동용 일체시중 불능망료
欲愛樂於人 亦復如是 且憎愛 =또 남을 사랑하는 일에도 그러할 것이다. 이렇듯 증오하고 사랑함은
욕애낙어인 역부여시 차증애
有心中事 유심(有心) =가운데의 일이로되
유심중사
尙於有心中容得 今做功夫 =오히려 그 유심 가운데서 다 이룰 수 있는데 지금의 이 공부는
상어유심중용득 금주공부
是無心事 又何疑四儀中 =무심(無心)의 일이니 어찌 네 가지 거동 가운데 나타나지 않을 것을 의심하겠는가.
시무심사 우하의사의중
不常現前耶 只恐不信不爲 = 나타나지 않을 것을 의심하겠는가. 다만 믿지 않고 실천하지 않을까를 두려워할 뿐이요,
불상현전야 지공불신불위
若爲若信 則威儀中 道必不失也 =만약 실천하고 믿기만 한다면 모든 행위 가운데서 도는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약위약신 칙위의중 도필불실야
9. 진심이 있는 곳(眞心所在)
或曰息妄心而眞心現矣
혹왈식망심이진심현의 =물었다. “망심을 쉬면 진심이 나타난다 했습니다.
然則眞心體用 今在何處
연즉진심체용 금재하처 =그렇다면 진심의 본체와 작용은 지금 어디 있는 것입니까
曰眞心妙體 一切處 永嘉云
왈진심묘체변일체처 영가운 =대답했다. “진심의 묘체(妙體)는 어느곳이나 두루하다. 영가스님이‘
不離當處常湛然 覓卽知君不可見
불리당처상담연 멱즉지군불가견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고요하게 있지만 찾는다면 그대는 보지 못하리라.’하였고
經云 虛空性故 常不動故 如來藏中
경운 허공성고 상부동고 여래장중 =경에도‘허공과 같은 성품이기 때문이며, 항상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 여래장(번뇌에 덮여 있는 본래의 청정한 성품)에는
無起滅故 大法眼云 處處菩提路
무기멸고 대법안운 처처보리로 =일어나거나 사라짐이 없기 때문이다.’하였다. 또 대법안 스님은 ‘곳곳마다 보리(菩提)의 길이요,
頭頭功德林 此卽是體所在也
두두공덕림 차즉시체소재야 =일마다 공덕의 숲이다.’하였으니, 이것이 곧 진심의 본체가 있는 곳을 말한 것이다.
息妄心而眞心 現矣라고 하시니=망상! 불분명한 마음! 그것을 쉬어버린다면 참다운 마음이 나타난다.
그것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 벼를 방앗간에서 찧어 가지고서 겨를 다 날려 보내면은 쌀이 나타나는 것처럼, 그렇게 망심을 쉬어버리면은
진심이 나타난다 라고 그렇게 하시니,
眞心體用이 今在何處이닛고
지금 당장에 어디에 있느냐
眞心妙體가 遍一切處하니
일체 처에 모든 것에 다 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은 모든 것에 다 있다
춘성 스님이라고 아주 근래에 큰 도인스님이 있었어요
그리고 또 비가 좀 오면은 전부 처마 밑으로 끌어들입니다.
비 맞지 말고 처마 밑으로 오라고. 법당 처마 밑에 와서 하라 이거예요.
고기를 굽든지 찌개를 하든지 밥을 하든지 전부 법당 처마 밑으로 전부 끌어들입니다
옆에 사람이 화를 내거든 “참~ 어떻게 하면 저렇게 화를 낼 줄 알까? 참 묘하다
. 화내는 것 보면은 참 묘하잖아요.
객관적으로 딱 떼어놓고 보면은 화내는 일이 그렇게 묘할 수가 없는 거죠
片雲은 生晩谷하고 孤鶴은 下遙天이라.
편운 생만곡 고학 하요천 먼. 아득한 내려온다
어렵게 가르치면은 쉽다고 하고. 또 쉽게 가르치면은 어렵다고 하는 것이 또 불교예요.
불교가 참 묘해요
비우는데 있어요. “송지우선이라.” 덜고 또 더는 것이 우리 불법이고. 또 세속은 뭐냐?
또 쌓고 또 쌓는 것이 세속이 예요.
육조스님 같은 이들이 정말 단순하게 살던 사람이니까 경전의 말씀 한마디 들으니까
그대로 마음이 환하게 밝아졌죠.
‘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
보통 우리가 밥 먹고 빨래하고 일할 때 화두 들고, 염불을 하라 그러죠.
그것은 일 학년들한테 가르치는 불법입니다.
최상의 불법은 그냥 싸워요. 그래서 잘못했다 싶거든 그냥 툭 털어놓고 사과해버려요.
자기가 옳다 싶거든 막 싸워버리고. 잘못되었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사과해버려요.
(全機生 全機死)”내 삶의 전체! 온 통째로!. 또는 철저히! 완전히 살아! 또 죽을 때는 완전히 죽어. 전기사! 죽어도 죽은 것 같이 안 죽고 말이지. 살아도 산것 같지 않게 살면 그것은 죽은 것도 아니고 산것도 아니 예요.그러니까 괜히 그 자리에 망(妄)! 다른 생각(망상)을 끼어넣지 말라 이거죠.
擧心動念(거심동념)이라는 말이 마음을 두고 생각을 움직인다 라고 하는 그 말은,
괜히 다른 생각을 거기에다 끼어 넣는 거예요. 전기가 못되고. 온전하지가 못하고 틈이나 가지고 다른 생각이 끼어 드는 것. 그러면
體則偏一切處하야체득변일체처
체는 우리 신체. 우리 진심의 체. 본체죠. 마음의 본체는
偏一切處(변일체처)
모든 곳에 두루 해서, 일처 체에 두루 해서
悉能起用이로대실능기용
다 능히 그 작용을 일으킨다.
똑같은 인생을 살고. 똑같은 마음이라고 하는 재료를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재료는 똑 같아요.
但(단), 단서예요. 다만,
因緣有無不定故로 妙用이 不定耳언정
단연유무부정고 묘용 부정이
인연이 있고 없는 것이 부정(不定), 일정하지가 아니하다. 일정하지 않는 까닭으로
묘한 작용이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영위해 가는 그것이 일정하지가 않다.
인연이 없는 것이 뭐냐? 내가 짓는 거예요. 내가 하는 것이 인연 이예요.
내가 얼마만치 그것을 작용을 했느냐?그것이 있느냐 없느냐? 또 있어도 얼마나 있느냐?
일정하지 아니한 까닭에 妙用(묘용)도 일정하지 아니할 따름이다. 귀 耳(이)자는 따름이다.
眞心出死(진심출사) 진심은 생사의 문제를 벗어나 있다
그래서 6년 수도 끝에 견성 오도해서 생사를 해탈했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죽었다 이거예요. 팔십이 되어가지고 다른 사람 죽듯이 그대로 죽었다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화장했고. 화장해서 사리 나온 것 다 곳곳에 다 모셔놓고
그랬지 생사 해탈한 게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불교공부를 하다 보면 이 문제에 봉착을 한다고요.
出生死(출생사)! 생사를 벗어난다고 말하는가.
曰(왈) 生死가 本無어늘 妄計爲有니 망령되게 計(계)! 샘할 계자. 우리가 계산한다 그러죠.
생사 본무 망계위유
우리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전부 망계라고요. 잘못 계산한 거예요.
망령될 妄(망)자. 망령된 잘못. 잘못 생각해 가지고 그냥 불운을 겪고. 불행을 느끼고
또 아픔을 맛보고, 심지어 잘못 계산해 가지고 그냥 죽어버리기까지 해버려요.(妄計)
망집(妄集)!망계(妄計)! 妄認(망인)! 망견(妄見)!
妄見生滅(망견생멸)일새
說名輪轉生死라 하시니
설명윤전생사
妄認四大(망인사대)하야 爲自身相(위자신상)하고, 六塵緣影(육진연영)으로 爲自心相(위자심상)하나니라..사대를 잘못 알아 가지고 내 몸뚱이라고 하고, 어떤 육진 경계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가지고 내 마음이라고 한다
묘도당당하처재(妙道堂堂何處在)
막종외거고추심(莫從外去苦追尋)
일조양안능개활(一朝兩眼能開豁)
산색수광시본심(山色水光是本心)
묘한 도는 당당히 어느 곳에 있나
밖으로 애써 찾아다니지 말라
하루아침에 두 눈이 활짝 열리면
물빛이나 산 빛 본래 마음이니라.
뜬구름이 피어올랐다가 바람 따라 지나가는 걸로 무심히 볼 수가 있다.
이것을 일러 생사의 고통을 뛰어넘었다고 하는 이른바 초월한 경지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생로병사를 있게 한 요인은 마음속의 번뇌 망상이고
나를 위주로 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를 기준해서 지나치게 세운 기대가 어긋난다고 할 때괴로운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뜰 앞의 단풍잎 하나 떨어지는 걸 보는 거나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 보는 거나 다를 게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체험을 하신 게 부처님의 생사관의 특징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현상도 삼라만유 중의 한 가지 현상일 터이니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삶과 죽음 역시 인연생기적 현상일 뿐 그것 자체로서의 실체나 실재로서의 불변적 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생사를 유전(流轉)하는 과정으로 신(身), 구(口), 의(意)를 통한 선악의 인(因)에 따른 과(果)로 사유(四有)라 하여 생유(生有), 본유(本有), 사유(死有), 중유(中有)로 4분하여 중생이 무명(無明)의 세계에 윤회하는 한 기간의 상태를 뜻하는데 여기서 유(有)는 중생의 생존을 의미한다.
생유(生有)는 각각의 세계에 생을 받는 결생의 찰나,
본유(本有)는 생을 받은 뒤 임종 직전까지 생유와 사유의 중간을 말하며,
사유(四有)는 최후에 임종하는 찰나,
중유(中有)는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사유와 생유의 중간으로 죽은 영(靈)이 다음 생에 태어나기 전 중음(中陰)의 상태인 49일동안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일반적 죽음의 상태인 중유를 또 다른 생존의 형태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죽음을 단멸(斷滅)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특징을 갖는다.
문수가 대답하기를 其力이 未充故라
‘知無生死 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 생사가 없는 도리를 마음대로 활용을 해요. 마음대로 쓰니까 사용한다는 거죠. 자기가 써야 자기 것이 되죠.‘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금을 캤는데 광산에서 캔 그대로 쓸 수가 있나요? 못쓰잖아요. 금은 금인데 못쓴다고요
.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된다? 금을 가지고 녹여 가지고 금은 금대로 구리는 구리대로 철은 철대로
이렇게 분별해 가지고 순금만을 만들어 그때 사 쓸 수 있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마니 보배도 마찬가집니다.
眞心功德 진심공덕
무심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마음에 온갖 망상, 번뇌가 없다 하는 그런 말이다
有心修因은 得有爲果 하고 유심수인 득유위과 유심으로 인을 닦는 것은, 유위의 결과를 얻고
無心爲因(무심위인)은 무심으로서 씨앗을 삼는 것은顯性功德(현성공덕)이니
성품의 공덕을 나타낸다.그래서 불교의 공부는 결론만 가지고 이야기 하자면은, 자기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아주 뛰어나고 훌륭하고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그런 인품이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일입니다.마음속에 정말 어마어마한 그런 능력이 갖춰져 있고. 또
칠 팔십 년 내지 팔 구십 년 살다가 죽고 마는 그런 일회적인 생명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거예요.내 자신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무한한 능력을 이해하고, 그것을 개발하고. 그것을 스스로 자각하는 그것이 불교예요.
-마음은 경계따라 굴러가지만-
-신묘한 본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날마다 작용하는 마음 미혹 않으면-
-절로 자유자재 하여 걸림이 없다-
- 범부는 망령된 생각에 덮였기 때문에 -
- 번뇌에 가려 청정한 본성 깨닫지못해 -
거울의 때 벗겨내면 광명 비추듯-
-허망한데서 벗어나면 참된 성품-
眞心功德 진심공덕
有心修因은 得有爲果 유위의 결과를 얻고 조작이 있는 결과!
無心爲因(무심위인)은 顯性功德(현성공덕)이니
무심으로서 씨앗을 삼는 것은 성품의 공덕 마음의 공덕을 나타낸다
此諸功德이 本來自具로대 妄覆不顯이라가 今旣妄除(금기망제)일새
功德이 現前이니永嘉가 云하사대 三身四智 體中圓이요 八解六通이 心地印이라
(三身)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그러지요.
여덟 가지 해탈(解脫)과 여섯 가지 신통
보신 예를 들어서 한 삼십촉짜리는 조그마한 한 두 세평 되는 방 하나 겨우 비춰요
한 백 촉짜리 전구쯤 되면은 환하다고요.짠무김치 매끼 변화를 주더라니 까요.
물이 있을 때 맛이 다르고 물이 없을 때 맛이 다르고 아 해탈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고정관념으로부터 무는 이렇게 썰어야 한다는 법은 세상에 없어. 배추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는 그런 법은 없다고요. 寶塔은 畢竟化爲塵이어니와 一念淨心은 成正覺이라
고정관념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해탈(解脫)이 가능한 거예요.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돼요 “안 된다. 아이 나는 재주가 없다. 나는 못 배웠다 화석화 돼 버린 그런 잘 못된 부정적인 생각
이것이 문제라고요. 이게 망상이 덮여서 나타나지 않는다 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특히 자녀들 교육에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마음이 공부가 이렇게 어떤 절정에 달해놓으면은, 그런 하찮은 아주 작은 계기에 그렇게 깨닫게 된다고요.
呵佛罵祖꾸짖을 가 꾸짖을매
운문 스님 같은 이들은 부처님을 아주 심한 표현으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태어나자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때 만약 옆에 있었더라면은 한방에 쳐서 죽여 가지고 개의 밥을 줬을 것이다.”
시험 한다고 그랬죠? 내가 애착스러운것. 미워하는 것. 그것을 마음에 딱 한번 되새겨보라 이겁니다.
앞에 딱 갔다 놓았다 생각하고, 거기에 내가 여전히 미워하는 마음! 또는 애착하는 마음이 그대로 잘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가. 眞心無知(진심무지)앎이 없이 알고, 또 알되 그런 작용이 없다
거울은 환하게 비춰요. 그래서 사물이 오면은 그대로 밝게 비춘다고요. 그렇지만 거울에는 증애심이 없어요. 뭐 춘향이가 와서 비친다고 예쁘다고 더 잘 비춰주고 무슨 방자가 와서 비춘다고 나가라고 하고 거울은 그런 생각이 없어요.
妄心은 對境하야 有知而知하야
덥고 춥고 그느끼는 질이 다른 거죠. 도라면은 그러면 취사선택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취사선택 도인들은 보는 쪽쪽 전부 진리고 전부가 도이니까 취사선택할 게 없어요.
於順違境에 순경계 위경계 起貪嗔心하고 起痴心也니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킨다.
더우면 더운 대로 진리요! 추우면 추운 대로 진리요,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진리요, 밝으면 밝은 대로 진리요. 그 껍질이 없으면 그 안에 알맹이(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똑같이 가치를 인정한다 면은 삼독심이 일어날 까닭이 없는 거죠.
신심명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라.違(위)는 내 마음을 거슬리는 일, 順(순)은 내 마음에 딱 들어 맞는 일.
心 病 현대 과학으로는 그게 안 나타나고 (身)에 나타납니다. 몸 상태에 나타나요.
큰 심 병이 안 들면은 다행이고 그 사람은 잘 산 거죠.
사업이 망하니까 사람까지 가 버리는 상태로 만약에 되 버린다면은 이것은 참 큰 문제 예요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봐 십 대 이십 대 때에 즐기던 것을 싹 다 버리고 하나도 안 가지고 있어도, 오 십대 육 십대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잘 살아요. 왜 그러냐? 그만치 거기에 새로운 삶의 안목이 있어요.
끝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는데 자기의 그 세계만 가지고 “아, 세상살이 도박 아편
不生憎愛 對境虛明 不憎不愛하야
無知而知 平懷圓照 앎이 없이 앎이 뭐냐?
평탄 한 생각으로 원만히 비친다.
거울을 떠올리면 제일 쉽습니다.
夫聖心者는樂而不淫 哀而不傷은=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좋아 하되 빠지지 않고 슬퍼할 일이 있으면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 것.身病)이 되면은 그냥 가는 거죠
在有着有하고 在無着無라.유에 있으면 유에 집착하고 무에 있으면 무에 집착해서,
常在二邊(상재이변) 항상 이변에 있어서 착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내편이냐? 네 편이냐?
不知中道(불지중도) 중도를 알지 못하나니
捨妄心取眞理하면 取捨之心이 成巧僞라 교묘한 잘못이다. 교묘한 거짓을 이룬다
認賊將爲子(인적장위자)라고 유명한 말입니다. 능엄경에 나오는 말인데 도둑을 오인해서 아들이라고 하면 중도정견(中道正見)! 중도적인 바른 견해
이분은 영명 연수선사라고 아미타불 후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뛰어난 그런 스님이 있었는데, 이분의 萬善同歸集(만선동귀집) 이라고 하는 책이 있어요. 그 뒤에 결론적으로 이 게송으로서 말하자 면은 요약한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보면은 쭉 첫 줄부터 한번 살펴보지요.
菩提無發而發이라 보리심을 발하지마는 발함이 없이 발한다.
佛道無求而求라 구함이 없이 구하고 , 구하되 또한 구함이 없다
妙用無行而行이라 미묘한 작용이지요. 행함이 없이 또한 행하고
眞智無作而作이라 참다운 지혜도 무작이작이야 중도적인 모든 행위입니다
興悲悟其同體라 자비를 일으키되 동체를 깨닫는다.나하고 한 몸
行慈深入無緣이라 인연 없는 사람에게까지도 손길이 미치는 그런 자비(慈悲)!
無所捨而行檀이라 주되 주는 바 없이 주는 마음으로 주는 그런 보시행위!
無所持而具戒라 가지는 바 없이 계율을 구족 한다.생색을 내고 하는 것은 유(有)에 떨어지기 때문에
修進了無所起라수진료무소기
정진을 닦되 마침내 일어나는 바가 없음을 요달 하고
習忍達無所傷 하고
습인달무소
인욕을 닦되, 인욕을 익히되,
상하는 바가 없음을 통달하고,
般若悟境無生 하고
반야오경무생
반야는 경계가 생함이 없는 것을 깨닫고,
禪定知心無住라
선정지심무주
선정은 마음에 주함이 없음을 알고,
鑒無身而具相 하고
감무신이구상
본래 몸이 없는 것을 비춰보지만 그러면서 또 32상 팔십 종호를 갖추어요.
범소유상 개시허망
證無說而談詮이라=무설(無說)! 설할 것이 없음을 증(證)! 깨닫는다 이거죠. 깨달아 놓고도 “담전이라.”설명할 전 증(證)! 깨닫는다
言語道斷하고 心行處滅이라
建立水月道場이라 어차피 그림자처럼 헛것같은 도량이지마는,물에 비친 달과 같은 그런 도량을 건립하고
莊嚴性空世界야 성품이 공한 세계를 장엄 해. 이 세계가 사실은 헛 거예요
성공(性空)! 본질이 텅 빈 것이니까 성주괴공(成駐壞空)을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치울 때 치우더라도, 꾸밀 때는 잘 꾸밀 줄 아는 그 자세가 바람직한 거예요. 금방 잘 때 지울 화장이지만은, 자기 전에는 열심히 그리는 거예요.
羅列幻化供具 나열한다. 환화와 같은 공양구를,
금방 내려서 먹을지언정 올려놓고 절할 때는 또 절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고
懺悔罪性本空이야 죄의 성품이 본래 공한 줄 알고 참회 한다.
죄가 꼭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병이고 없다고 만 생각해서 참회를 무시하는 것도 병입니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是罪亦亡 心若滅是罪亦亡이라.
죄는 자성이 없어. 우리 한 마음이 조작한 거죠.
그래서 죄도 마음도 다 같이 사라져 없는 그 도리를 아는 것,
是則名爲眞懺悔
시즉명위진참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다.
罪性懺悔本空 (罪性本空)을 알고 참회하는 거죠
勸請法身常住라 법신이 상주하기를 권청 한다.본래 불생불멸(不生不滅)이야. 법신상주(法身常住)라고요
廻了無所得이라 얻을 바 없음에 회향 한다
隨喜福等眞如라 다른 사람이 잘하는 것을 따라 기뻐한다.
얼마만치 따라서 기뻐하느냐? 복이 진여(眞如)와 꼭 같다. 복이 진여와 같이 평등하다 저 사람이 착한 일을 요만치 했으니까, “아, 고만치 내가 좋아해 준다.”이것이 아니고
讚歎彼我虛玄이라 피아도 나도, 저 사람도 나도 텅 비었다.
텅 빈 것을 찬탄한다 저 사람도 공하고 나도 공하지마는 그래도 좋은데 만 칭찬할 줄 아는 것,
發願能所平等이라 능과 소는 주관과 객관,
너와 내가 평등하기를 발원 한다.
禮拜影現法會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법회에 예배 한다.
인연의 힘이 있는 동안그 법회를 구성하는동안
14. 眞心無知 진심무지 (38)
行道足躡虛空=도량을 도는 것을 행도라 “발이 진공에 섭한다.” 참다운 공한 도리에 섭하고
焚香妙達無生이라 향을 사르되 생사가 없는 도리를 통달한다
誦經深通實相이라 인생의 실상! 사물의 실상! 사건의 실상! 모든 것의 실상을 통달하는 것인데, 그것은 결국은 중도정견으로서 그것으로 가능한 거죠.
散華顯諸無著이라 자기의 인연 따라서 날려서 가는 꽃을 흩는데 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彈指以表去塵이라=그것은 온갖 번뇌를 다 제거하는 것을 표하는 것이다
施爲谷響度門이라=도문육바라밀이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은 그런 육바라밀을 말하자 면은 실천한다.
修習空華萬行이라=육도만행!허망한 꽃 그런 실제하지 아니하는 그런 꽃처럼 육도만행을 수습 한다. 그것이 중도적인 소견이 예요.
深入緣生性海라=인연으로 해서 생기는 성품의 바다에 깊이 들어 간다.깊이 이해한다
常遊如幻法門이라= 환과 같은 법문에 항상 논다 법문 들으니까 뭐 남는 것이 있습니까? 남는 것이 없잖아요. 여환 법문이라.
誓斷無染塵勞라=맹세코 물듦이 없는 길로 번뇌진로를 맹세코 끊는다.또 끊을 것이 없는 번뇌를 또 끊는 그런 자세
願生惟心淨土라=유심정토에 나기를 원한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서방이 예요. 그래서 유심정토라 그래요 이 한 마음으로부터 생긴 정토입니다.
사바세계도 유심 사바세계 입니다. 내 마음이 사바 세계니까 이 세상이 사바세계인 거죠.
履踐實際理地라=실제의 진리의 땅을 기어이 밟는다.
出入無得觀門이라=소득이 없는 참선 문에 늘 출입한다. 열심히 한다
降伏鏡像魔軍이라= 거울에 나타난 그림자와 같은 마구니를 항복한다. 마구니 가 실제하는 것이 아니 예요. 거울에 비치는 어떤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그런 마구니죠.
大作夢中佛事라=몽중 불사를 크게 짓는다. 사실 불사라고 하는 것도 그것이 허망하다고 생각하면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거든요.
-“애욕 경계를 대하되 집착을 두지않으면 -
- 자연히 몸가짐·말·정신 맑아집니다”-
경·률·론 삼장의 바다에 놀고 육경(시·서·예·악·역·춘추)의 술을 즐겨라
14. 眞心無知 진심무지 (38)
和光塵勞 광(光)은, 내 마음을, 진로(번뇌)와 화한다. 한 덩어리가 된다
周旋五趣하야 주선오취 오취는 뭔고 하니,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하고 아수라를 같이 겸해서 육취를 오취라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옥에 갈 일이 있으면 지옥에 가는 거죠. 왜냐? 和光塵勞(화광진로)니까, 번뇌하고 내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니까요
천당에 갈일 이 있으면 천당에 가고. 축생이 될 일이 있으면 축생이 돼요. 아귀가 될 일이 있으면 아귀가 된다 이거죠. 아수라 될 일이 있으면 아수라가 되는데 그렇다고 또 거기에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和光塵勞(화광진로)해서 周旋五趣(주선오취)하는 도리입니다.
寂然而往하고 고요히 가고. 또忽爾而來하야 홀연히 또 돌아와.
廉淡無爲호대 而無不爲라. 청렴 지옥에 가도 편안하고 천당에 가도 편안하고 담담해서 무위(無爲)야. 함이 없다
而無不爲라 하지 아니함이 없다
眞心은 乃平常心也요 妄心은 乃不平常心也니라
(無記) 착한 일도 악한 일도 않는 그것도 무기라 그래요
因자를 쓰고, 조건. 원인. 씨앗.
今達眞心하야 契無生滅之覺性하야 起無生滅之妙用이니, 妙體는 眞常하야 本無生滅이나 妙用은 隨緣하야 似有生滅이라. 然이나 從體生用이라 用卽是體니 何生滅之可有아, 達人은 卽證眞體어니 其生滅이 何干涉耶리요. 진심을 통달한 사람은 깨달은 성품에 계합 해서 무생멸(無生滅)의 묘한 작용을 일으키니, 진심은 참답고 항상 해서 묘한 작용은 인연을 따라서 생멸이 있는듯함이나. 그러나 우리 마음이 깨달은 입장에서 어떤 마음을 쓰더라도 그것은, 체와 용의 관계로 生하고 滅하는 것이 아니라 묘용(妙用
波亦無生滅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