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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이러브 예수님 (효소 해독 다이어트) 원문보기 글쓴이: 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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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많이 받으세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김요석 선교사님은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마치시고 전라도 영암군에 있는 나환자 정착촌의
영호교회를 10여년간 담임하시다가 현재는 선교사로 해외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자료는 선교사님이 미국 한인교회 방문 때에 전한 메세지 입니다. >
선택받은 제자
눅1:1-11
현재까지 18년간 국내외 나환자 사역을 하심
세상에는 우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또 요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는 일이 일어날 때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은 어쩌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한 우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섭리로써 예정하신 역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공생애가 시작하고 얼마쯤 있다가, 예수님께서 아직 제자를 택하지 못한 그 때였습니다.
갈릴리 바다 근처를 지나시다가 고기 잡는 어부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때 유독 여러 많은 어부들 중에서 베드로의 배에 예수님께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대번 “저쪽에 가서 그물을 한번 더 던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는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아주 실망한 가운데서 그물을 다 씻고 이젠 집으로 가서 쉬려고 하는 그런 때였습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한 곳은 이 어부인 베드로의 상식으로써는 고기가 전혀 잡히지 않는 그런 곳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참 순종하기 어려운 그런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짓는 일이라면 예수님이 목수이시니깐 훨씬 잘 알겠지만 고기 잡는 데는 베드로가 아버지 때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자기 상식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곳에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는데, 만약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을 순종하면 손해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주 절대적인 손해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베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제가 선생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던지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냥 순종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던지니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와 같습니다. 순종 후에 나타나는 큰 축복입니다.
엄청난 고기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습니다. 이 고기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당황했습니다.
자기 배에 다 담고도 고기가 남습니다. 그때 마침 다가오는 배 한 척을 발견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배입니다. 불러서 그 배에다가 고기를 나눠줍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두 번째 성격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밤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한마리도 못 잡았다면 이때 잡은 고기라는 것은 굉장히 아까운 고기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많을수록 더 많아지는데 그것을 아낌없이 친구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대단히 넓은 마음입니다. 대단한 관용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아낌없이 나눠주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베드로의 특징입니다.
아마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훗날에 바울과 사도권을 나눠가질 베드로의 성품을 보시고 이때 택하지 않았는가 하고 성경학자들은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큰 공회에서 바울이 베드로를 향해서 면박을 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때 베드로가 조금 잘못한 게 있었지만 사소한 일인데도 바울이 큰 소리로 면박을 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주 창피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바울과 이 베드로의 관계란 것은 아주 큰 선배와 아주 작은 후배의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3천명씩 회개시킬 때까지만 해도 바울을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대단한 큰 선배가 비록 조금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면박을 주는 일은 인간적으로 보면 참기 어려운 모욕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어떻게 한줄 아십니까?
베드로는 그런 모욕을 받고도, 창피를 당하고도 ‘옳다, 바울이 옳다’하고 그 후에 바울서신 모두를 성경으로 추천까지 했습니다.
굉장히 넓은 마음입니다. 아마 이때 야고보와 요한에게 고기를 나눠 가지던 이 베드로의 넓은 마음때문에 훗날 바울과 사도권을 나눠가질 것을 주님께서 아시고 택하지 않았나, 그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축복을 많이 받았는데, 갑자기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는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하고 울면서 엎드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예수님께서는 “너 과거에 잘못한 일 있지? 죄가 많았지?” 한마디도 질책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전혀 탓하지도 않았는데 베드로가 엎드러져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이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 축복을 많이 받았을 때, ‘아하! 하나님 은혜 감사하다’라고 끝나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축복 많이 받고 은혜 많이 받을수록 ‘나의 묵은 죄가 아직도 남아있는가’, ‘나의 나쁜 성질이 아직도 남아 있는가’, ‘아직도 내 남은 여지가 있는가’를 주님 앞에 자복하고 밝히고 주님 발아래 엎드러져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게 될 때 그 축복이 축복으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될 때 받은 은혜가 완전한 은혜로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베드로와 주님의 만남, 참 극적인 장면입니다.
저도 그런 체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저와의 만남이, 아마 이 정도는 안되더라도, 극적인 만남이 한번 있었습니다.
그럼, 좀 옛날로 돌아갑니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그 때 유명한 신약학 교수가 강단에서 강의를 하시다가, 그때 마가복음 강의를 하셨는데, 딱 스톱하시더니 갑자기 성경을 들면서 하는 말이 “여러분들 중에서 혹시 이 성경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 있습니까?”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한 1,500명 이상의 대학원학생들, 학부학생들, 타과 학생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졸업반 학생도 있었고, 목사고시에 합격한 박사과정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때 제가 구석에 있다가 손을 들었습니다.
근데 날 이렇게 보니깐 아마 독일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는 말이 “당신 어디에서 왔소?” 제가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니깐 그분이 하는 말이
“아, 한국은 아직도 샤머니즘과 원시종교에 젖어 가지고 그렇게 이것을 무조건 믿는 모양인데, 당신이 여기서 신약을 잘 배워보면 아마 믿을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여러분, 이 성경은 껍데기 두 장, 가죽으로 된 이 두 장 외에는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조용했습니다. 그 강의를 마치고 나서 제가 내려와서 제 옆방에 사는 독일 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혹시 독일어를 잘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된지 모르니깐, 네가 한번 더 소개해달라.
그 교수가 이렇게 물었나?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나?”하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대답도 안하고 가만히 나를 측은한 듯이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자네 진짜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다. 그러면 너는 안 믿냐?”하고 제가 대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안 믿는다.”
“그럼 왜 자네는 신학해서 목사 되려고 하는가?” “
직업이 좋지 않는가? 좋은 직업이니깐 하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랄 때 신학하고 목사하려면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야 한다고 들어왔는데 갑자기 직업이야기를 하니깐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무슨 직업이 좋길래?”하고 물어봤더니, 독일에는 신학교가 교단 신학교가 아니라 국립대학 속에 중심학부로써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부에 제일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신학부에서 공부를 못하면 의학부나 법대로 내려가니깐, 상당히 자기들이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학문적으로는 높은데 가슴은 아주 차갑지요.
그리고 목사님도 고급 국가 공무원이니깐, 또 상당히 지적 수준이 높으니깐, 제일 똑똑한 사람이 오지만 신앙과 신학은 별개로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그때가 60년대, 70년대 초반이니깐, 한참 사회주의 신학이란 것, 막스주의적 신학이라 것이, 그 교수가 한번은 강의를 하면서 “칼 마르크스야말로 사도 바울에 버금가는 대 선교사다”라고 공언할 정도로, 그런 판도가 날 때였습니다.
그때 제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가 신학을 공부한 것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워서 좋은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전해야 되는가? 사람의 생각을 전해야 되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세미나에서 그분과 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 자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는데, 당신 그렇다면 증거를 대봐라. 하나님의 존재가 확실하다는 증거를 대라.
” 하나님의 존재가 실존적이라는 증거를 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대야합니까?”라고 하니깐 하는 말이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과 한번 대면한 적이 있을 것 아닌가? 하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던가?
흑인이던가, 백인이던가, 아니면 당신 같은 황인이던가?” “그 다음 당신이 하나님과 만났다면 악수라도 한번 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손이 차던가, 덥던가?” 제가 두 질문에 아무 대답을 못 했습니다.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것 보라고. 그러니깐 당신 아직 모르면서 괜히 고집으로 믿는다는 거요, 고집으로.” 그리고 우왕좌왕하다가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마치고 나서 한국으로 귀국을 했는데, 와서 어느 신학교에서 제가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들도 많이 오고, 신학 교수님들도 다 와서 제 특강을 듣는다고 앉아있는데, 전 저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발표를 하고 났더니 갑자기 발표가 끝나기 전에 어떤 목사님이 손을 들고 질문하면서 “당신은 자유주의가 아니냐? 신신학자가 아니냐?”하고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공부할 때 복음주의자고 보수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다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거꾸로 자유주의자다, 신신학자다 라고 하니깐 아무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교수님들이 말려서 제가 창피는 당하지 않고, 얻어맞지는 않고 그냥 물러났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나이 많은 목사님 한 분이 저에게 오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당신 이론이라든지 학문적인 것은 참 훌륭한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다.
이론적인 것과 체험은 다른데, 당신 한번 체험을 해보면 어떻겠나?”라고 하세요. 그래서 “어떻게 체험합니까?”하고 물었더니 목회를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년 예정으로 그분이 소개한 어느 교회를 제가 주소를 들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저의 나병환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가서 첫 주일날 설교를 하려고 단 위에 이렇게 올라섰는데 제일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말문이 탁 막혀 버린 것입니다.
한 몇 분간을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그분의 얼굴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코도 없고, 입술도 떨어지고, 눈알도 빠졌습니다.
그 얼굴에는 구멍만 다섯 개 뚫린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밑을 내려다 보니깐 손가락도 다 잘려져 있고 팔목만 남아서 요렇게 하고 앉아 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소리 못하고 있다가, 제가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때 제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무슨 본문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당황해서 지났습니다.
마치고 나서 제가 그분들에게 “새로 부임한 목사니깐 마치고 나갈 때 나랑 같이 악수하고 인사 나눕시다”하고 광고를 했습니다. 근데 보니깐 아무도 없어요.
‘아이쿠, 잘 됐구나. 다 갔구나’하고 문을 탁 여니깐, 문 밖에 줄을 죽 서있습니다
. 그래서 어쩝니까? “아이고, 안녕하십니까?”하고 손을 내미니깐 그 제일 앞에 앉아있던 노인이 “아이고, 목사님 고맙습니다”하고 손을 내놔요.
손을 앞으로 탁 하고 내미는데, 여러분, 악수를 하려면 손바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손가락이 있어야 이렇게 잡는데, 아 여기 이렇게 잘려져 있는데,
이 팔목만 이렇게 딱 앞에 나와있는데, 이거 어디를 잡을지, 여기를 잡을지, 저기를 잡을지 몰라서 이렇게 보니깐, 그 잘라진 팔목에 노란 고름덩어리들이 동실동실 이렇게 모여있어요. 잡으면, 쥐면 터질 것 같은데, ‘아이고 모르겠다’하고 쥐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을 잡게 되는데, 할머니였습니다.
제가 보니깐 반이 잘라졌어요. 그러니깐 손바닥만 반이 남았는데 제가 그 손을 잡으니깐, 아 갑자기 그 할머니가 왼손을 떡 올려놓더니, 보니깐 손가락이 떨어진 그 사이에 또 노랗게 고름이 몇 덩어리가 둥실둥실 맺혀있는 것을 갔다가 제 손등을 자꾸 문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보니깐 꼭 터질 것 같아요. “할머니, 왜 이러냐”고 빼려고 하니깐, 그때 그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18살 때 이 병이 들어서 만 60년간, 지금 제 나이 78입니다, 이 병으로 있다가 한번도 성한 사람 손 못 잡아 봤는데, 오늘 목사님 손잡으라니깐 너무 좋아서 제가 이럽니다.”
그때 갑자기 제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어쩌면 이 손이 우리 예수님 손이 아니겠는가? 우리 예수님이 우리 더러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고초 받으신 손. 어쩌면 손가락도 부러졌고, 어쩌면 거기서 헌데도 났고, 상처난, 어쩌면 고름도 생긴, 그런 비참한 손이었을 것이다. 내가 예수님 손잡는데, 내가 뭘 이렇게 겁을 내는가!’
그때 갑자기 독일에서 교수가 하던 말이 “네가 손잡아 봤냐? 하나님 얼굴 봤냐?”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바로 이것이 해답이구나. 아, 이제야 내가 떳떳하게 주님 손잡았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10여 년간 공부하면서 찾지 못했던 하나님을 오히려 그분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분에게 한번 물었습니다.
“할머니, 참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어째서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사람은 아무 병 없이 살다가 시집가서, 또 손주 볼 나이에, 어떻게 할머니 평생 이 고생하면서 소외되어 사는데, 하나님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분이 뭐라고 한지 압니까? “목사님, 나는 이 문둥병 걸린 것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병 걸렸기에 예수 믿고 천국가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분은, 위암이다, 무슨 병이 걸렸다가 기도하고 나니깐 “아 이적 체험했다!”고 합니다만,
그것보다 더 큰 이적, 이적 중에 최고 이적은, 병들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와있는 것입니다.
병들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병들지 않고 예수 믿고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건강한 사람은요, 받을 축복 다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어떤 할머니가 밭에서 밭을 갈다가 일곱 번째 손가락이 떨어졌어요.
자기도 모르게 뚝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 들고는 “목사님”하고 불러요. 난리나 난 것처럼, 그래서 제가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목사님, 제가 일곱 번째 손가락이 떨어졌습니다”라고 해요.
제가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라고”, 그러니깐 하는 말이 “아, 그래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직 세개가 남았습니다. 이 세개 가지고 제가 성수도 하고 목사님 밥 할 때도 제가 쓸 마음 있습니다.” 여러분, 열 손가락 중에 일곱 개가 썩어서 떨어지고 세 손가락만 남아 있는데 그렇게 감사하다고 기뻐하는데, 여러분 열 손가락 가지고 사는 것 감사해봤습니까?
여러분, 발가락 열 개 다 갖춘 것 감사해봤습니까? 여러분, 발가락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걷지 못합니다. 균형이 안 잡혀서 그냥 쓰러집니다.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이 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그 병이 딱 걸리니깐, 온 집안 식구가 난리가 났더래요. 아예 골방에 가둬놓고는 나오지를 못하게 하더랍니다. 6남매였는데, 제일 큰 누나가 그 병에 걸리니깐 다들 어디가서 죽었으면 하는 눈치더랍니다.
여러분 참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병에 걸리면, 온 집안 식구가 기도하고 난리하면서 병원에 입원도 시키고 보살펴주는데, 그 병만 걸리면 왜 나 몰라라 하는 것인지. 그래 다 없어졌으면 하는 겁니다.
한번은 자기가 새벽에 눈을 떠서 보는데,
자기 아버지가 나오더니 숫돌에서 낫을 갈더랍니다.
갑자기 맘에 생각나는 것이 ‘아 오늘밤에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래서 가만 보고 있으니깐, 한 몇 십분 숫돌에 갈더니 그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자기 방 앞으로 오더랍니다. 한참 서있더니 또 나가고, 또 한번 들어왔다가 나가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더니 자기 방에 못 들어오고 있다가, 그 다음날 밤중에 또 들어오더랍니다.
들어와서 하는 말이 “내가 사실은 너를 죽이고 싶지만, 내가 차마 애비로써 그럴 수는 없고 우리 집안을 위해서 네가 나가서 죽어달라”고 하더랍니다.
“너, 하나만 죽으면 네 동생들 시집 장가가는데 지장 없다.” 아마 옛날에는 그 병에 걸리면 큰일났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깐 이 딸이 “그 말 들으니깐 그래야 되겠습니다.
제가 나가서 죽겠습니다. 뒤에 못이 있으니깐 그 못에 빠져 죽겠습니다”하고 나왔습니다.
나오니깐 그래도 어머니가 뒤따라 나오면서
“딸이 애미보다 먼저 죽으면 어떻하느냐”고 하면서 쌀을 두 되를 주면서 “이거 들고 산신령한테 가서 기도해라. 기도해서 나아서 들어오면 시집 보내줄께. 근데 제발 죽지는 말아 달라”고 하더랍니다.
어머니 한 분만 살라고 그러지, 다른 식구들은 다 죽었으면 하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하도 간곡하게 그러니깐 쌀자루를 들고는 산으로 올라가다가 그 못가에 왔습니다.
그 못가에 도착하니깐 갑자기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쌀자루를 놓고는 신발을 벗고 뛰어들려고 하는데, 그 어머니가 뒤따라 왔어요.
와서는 허리를 꽉 껴안으면서 울면서 그럽니다. “애미보다 먼저 죽는 딸이 어디 있냐. 제발 죽지 말라”고 하도 울면서 간곡하게 부탁하니깐 차마 그러진 못하고 살겠다고 나왔다가, 섬을 끌려갔다가, 우리 마을에 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하는 말이 뭔지 압니까? “저는 문둥이라도 됐기에, 예수님 만나고 예수 믿고 천국가지 않습니까? 불쌍한 것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우리 형제입니다.
예수 안 믿고 지옥 갔을 생각하니깐 너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 보셨습니까?
여러분 믿음이란 게 무언지 압니까? 지금 주어진 현 상태에서 감사하면서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 가난하건 역경에 처해있건 병들어있건, 그 가운데서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감사 기도가 진실로 나올 때 그것이 믿음이요, 성령충만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충만인 것입니다.
처음에 갔더니 사흘이 지나도 누가 와서 밥을 안 해줘요. 밥 먹으란 말도 없고. ‘이거 이상하다. 목사는 오자마자 무조건 며칠 굶어야 되는가보다’하고 한참 기다리고 있었더니,
한 나흘째 되는 날 웬 사람이 와서 부엌을 보더니 아무 것도 안 해먹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목사님, 왜 밥 안 해 잡숩니까?” “글쎄 내가 쌀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서 못 해 먹는다고, 내가 책가방만 하나 떡 들고 내려왔는데...”
그러니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이고, 우리보다 더 가난하네!” 그러더니 쌀을 얼마 걷어와서 한끼를 해줘요. 그렇게 사는데 바로 제 사택 옆에는 돼지 막이 이렇게 쳐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목사님, 돼지가 얼어죽을 테니깐 한 두 마리만 안고 자시오”,
그래요. 돼지를 안고 자면, 돼지가 오줌싸죠, 똥싸죠, 다 해놓으니깐, ‘이거 참 뭐...’, 기가 막히는 거예요.
‘야, 굶더라도 제대로 집을 지어야 되겠다’하고 생각해서, 마침 그때 영농자금을 융자해주길래 타다가 집부터 지어버렸어요.
돼지우리부터 지어놨는데, 근사하게 지었는데, 그게 전부다 빚덩어리 된 거에요.
80년 초에 돼지 파동이 일어나 가지고는 완전히 돼지값이 없어지니깐 꼼짝못하고 굶게 된 거예요. 그래서 ‘주는 대로 먹어야지’ 생각하고 있으니깐,
그때 뭐 헌금도 한주일에 5-6백원밖에 안 나오니깐, 전기 다마 하나 깨져서 사니깐 없어져요.
그러니깐 성미라고 걷어보고 가만 보니깐, 전혀 끼니를 못 먹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가 그것을 알고 나 혼자 밥 해먹을 수 없으니깐, 해먹으라고 도로 가져다 줬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았어요. ‘아하! 이 교회공동체에서는 제일 가난한 사람이 목사가 되어야 하는구나!
두끼 먹는 사람이 있으면 목사가 한끼 먹는 걸로 족하고 한끼 먹는 사람이 있다면 목사는 굶어죽어야겠다. 어쩌면 내가 굶어죽으면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여주지 않겠나!’하고 그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있는 참인데, 일년쯤 지났는데 부활절인가, 무슨 날이 되어서 성미가 굉장히 많이 걷혔어요.
그래서 보니깐 다들 끼니는 있어요. ‘아, 이거 됐다. 내일은 한번 세끼를 해 먹어야겠다.
딱 한번만 세끼를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선 새벽기도 마치고 나서 쌀을 풀어 가지고 한없이 데고 있는데 갑자기 웬 사람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문을 여니깐 왠 모르는 남자가 이렇게 서 있었습니다.
누구시냐고, 어떻게 왔냐고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여기서 한 30리 떨어진 다른 면에 사는 교회 목사님이예요. 그래서 어떻게 오셨냐했더니,
“아, 목사님, 사실은 제가 미안한 부탁드리려 왔습니다”고 해요. 무슨 부탁이냐고 하시라고 했더니,
“쌀, 좀 얻을까해서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깨달았어요.
‘아, 하나님께서 갑자기 웬 쌀을 이렇게 몇 되씩 주는가 했더니, 그것은 날 먹으라는 게 아니고, 이거 누군가 줄 사람이 있으니깐 잠깐 맡아두라는구나’고 생각해서, 들어오시라고 하고선, 그래도
이유라도 물어보고 뺏겨야겠다고 생각해서 “왜 그럽니까?”하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그 때 그분이 애가 셋이에요.
딸만 셋인데, 사모님하고 다섯이 사는데, 그때가 80년초인데, 그 마을에서 한달에 사비를 이 만원씩 받기로 하고 왔답니다.
와서 일년 됐는데. 그래서 내 속으로 생각할 때 ‘와, 많이 받네! 그런데 뭐 하러 얻으러 왔나?’했더니
하는 말이, 그런데 그것이 한 석달째 교회에서 나오질 못하고, 할 수 없이 그 사모님이 하루에 일당 2천5백원씩 받고 밭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허리를 다쳐서 며칠 못 나가니깐, “사실은 제가 혼자라면 굶겠는데, 쫄망쫄망한 애 셋이서 자꾸만 배고프다고 해서 오늘 새벽기도 마치고 나서 기도하면서 그냥 무작정 걷다가 제일 먼저 만나는 교회 찾아 들어가서 목사님에게 쌀 꾸어오겠다고 기도하고 왔습니다”는 거예요.
아, 그 응답받고 온 사람에게 쌀을 안 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그 응답 잘 받고 왔수다. 아마 하나님께서 그 응답시켜줄라고 쌀을 이렇게 어제 주일날 많이 모아둔 모양이라고. 당신은 다섯 식구고 난 혼자니깐 5:1이니깐 당신 편이오”해서 그것을 주고, 가는데 보니깐 이 사람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어요.
그래서 왜 다리를 저느냐 했더니, 그분이 군대에서 있던 사람인데 지뢰를 어떻게 하다 밟아서 다리가 하나 잘라져서 의족을 했어요.
그때 마침 어떤 분이 제게 자전거를 하나 보내왔었어요.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지만 새 자전거라서 아직 비닐도 안 뜯은 건데, 딱 한번 타보고는 아까워서 천천히 타야되겠다고 놔둔 건데 그 30리씩 절뚝거리면서 걸어갈 걸 생각하니깐 안 됐어요.
그래서 속으로 ‘저분이 자전거를 탄다 그러면 주고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하면 안 줘야겠다’ 생각하고 자전거 탈 줄 아시냐고 했더니 탈 줄 안다고 그래요.
그러면 뭐 할 수 없다고, 가져가라고 하고, 제가 속으로 그랬죠. ‘다리 절뚝거리면서 자전거 타는 것보다는 다리 절뚝거리지 않고 걸어다니는 것이 더 복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고 주면서 제가 그랬죠.
“목사님, 또 필요하면 오십시오. 제가 맡았다가 주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그러고 나서 한 몇 달 있다가 두 번 더 왔어요. 그때마다 묘하게도 쌀이 생기고 분식이 생겨서, 딱 그것만 생기면 ‘아, 또 손님이 오겠구나’하고 기다렸습니다.
한번은 웬 스님이 찾아왔어요. 교회에 스님이 머리 빡빡 깎고 장삼입고 찾아 들어오니깐 좀 이상합디다. 그래서 어떻게 왔냐고 문을 여니깐, 그분 하는 말이 “여기 스님 같은 목사님이 계시다 그래서 찾아왔다”고 그래요. “네?”하고 물었더니 “아, 스님 같은 목사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말이 좀 고약합디다.
그렇지만 어떠합니까? 들어오라고, 들어오니깐, 턱하는 말이 “아, 예수와 석가모니는 형제지간인데, 석가모니가 나이가 많고 형님이니깐, 목사님하고 내가 나이따지지 말고 내가 형님하겠소.
그러니깐 동생하시오.” “그,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안 하자면 뭐라고 합니까?
그리고 앉으라고 하니깐, 턱 앉아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사람이 좀 무섭게 생겼습디다.
나는 그때 바짝 말랐는데, 압도됐죠. 그래서 애기를 하는데 불경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저는 조용히 듣고 있었죠. 교회와서 이 사람이 설법을 하는 거죠.
한참 이야기를 듣는데, 가만 들어보니깐, 내가 전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산스크리트어로 된 고대 인도 경전을 이 사람이 인용하는 것 같은데, 조금 내용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저, 형님. 내가 하나 질문해도 되겠냐?”고 물으니깐 “뭐냐고?”, “내가 볼 때는 그 인용하신 부분이 인도 경전의 마지막 부분인데, 왜 첫번째 부분으로 인용하시냐고, 잘못된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그 사람 눈이 동그래지더니, 나를 이렇게 보더니 “아니, 목사님도 스님하셨소?” “그런게 아니고 조금 읽어봤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이 사람이 배가 고픈 모양이에요.
아침 8시쯤 되어서 온 사람인데, 그때가 한 오후 3시쯤 되었으니깐.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 왜 밥 안 주냐, 손님왔는데..”
“오늘 혹시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아마 식사가 된다면 4시 반 되면 식사를 합니다.
그때 한번 하는 식사시간이니깐 그때까지 형님이 계시면 제가 식사 드리고 바쁘시면 가셔도 제가 안 말리겠습니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갈 줄 알았는데 “아, 그것 먹고 가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앉아있었죠. 그런데 마침 그래도 손님 대접한다고 그 할머니가 밥을 해 가지고 왔어요.
조그만 소반에다가 들고 왔는데, 밥 한 그릇에다가 김치 하나 하고, 물 한 그릇 하고, 숟가락 하나, 젓가락 하나, 들어오니깐 “내 밥 어딨소?”
그래요. 그래서 제가 숟가락을 들고는 밥그릇에 반을 그어놓고 “위는 형님 잡숫고 아래는 제가 먹겠소. 그러니깐 숟갈로 잡숫겠소, 젓갈로 잡숫겠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밥상을 옆에 놓더니 저한테 큰절하면서, 아 “형님!” 그런다 말이예요. “아니, 동생이 갑자기 형님 되는 법이 어딨냐?” 하고 물었더니 그분 하는 말이
“아,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스님 동생이 하나 생겨 버렸어요 나는 또 밥상보고 은혜받는 사람 처음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애기 안 하는 거예요. “형님 이야기해주시오.” 그래서 그 양반하고 단 둘이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일이 생겼죠?
그런데 나는 밥을 반 그릇 뺏기니깐 좀 불편스럽죠. 밥 먹을 때는 갔으면 좋겠는데 기어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니, 형님. 왜 이렇게 삽니까?”, “뭐가?”, 자기는 중이라도 고기도 먹고 갈비도 먹고, 다 먹는데, 왜 이렇게 먹느냐 이거야. 거꾸로 된 것 같다 이거지. 자기는 고기 먹는데 나는 채소만 먹는다는 거지.
그래서 “자네 어떻게 불자가 살생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하고 물었더니 하는 말이 “나는 해탈을 했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참 해탈도 괜찮은 해탈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한 6개월을 그렇게 들락날락 했어요.
어떤 때는 일주일에 매일 오기도 하고 한 두세번 오기도 하더니, 한번은 “없는 집에 자꾸 와서 얻어먹으니깐 미안해서 제가 한턱 내겠소. 그러니깐 우리 절로 오시오.
” 그런데 한 300리 떨어져있어서 “난 못 가겠다”고, 거기까지 가려면 허기가 져서 안 되겠어요.
“못 가겠다고 괜찮다”고 했더니 하는 말이 “제가 차를 보내드릴 테니까 오시오”해요.
중이 무슨 차가 있는가 했더니 중은 있을 것은 다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다음날 차를 보내와서 타고 갔더니, 꽤 큰 절인데 법당에 한 200여명의 사람들이 꽉 모여 있어요. 그 가운데 마이크를 턱 들고 좌장하고 앉았어요.
저 친구가 무슨 말하려나 하고 뒤에 앉아 들었더니, 뭐라고 한지 압니까? 첫 서두가 이렇게 나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극락이 저희 것임이요.” 주어가 하나 바뀌었어요.
그렇지만 극락이나 천국이나 영어로 해석하자면 paradise는 같거든. 근데 그 다음이 문제예요.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부처님을 볼 것이라.” 그게 어두가 바뀌어진 거예요.
그것만 바뀌고는 한시간 내내 강의하는 것이 나랑 성경공부했던 팔복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친구가 그랬어요. 팔복을 보더니 “이거, 이거 부처님 교훈이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렇게 써먹습디다.
그렇게 가난한 속에서도, 한끼 먹으면 이틀 굶고, 또 한끼 먹으면 사흘 굶고, 그렇게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죽이시지는 않으십디다.
한번 누웠다가 일어나려면 하늘이 새카매져요. 그래서 누웠다가 일어나면 힘들어서 앉아서 자야되겠다 해서 앉아서 잤죠.
앉아서 일어나는 것은 쉬운데, 누웠다가 일어나니깐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영양실조 걸려서 끝나는가 보다’ 하고 있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천사가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그 마을에 군수가 나타났죠,
면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거 뭐 온 동네가 난리가 났어요.
면장도 한번도 안 오는 마을인데, 군수가 나타나니깐 난리가 났죠. 그런데 군수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도에서 제일 높은 분이 나타난 겁니다.
여러분, 한 도에서, 여기 주에서 제일 높은 분이 누군지 압니까?
주지사죠? 아니, 주지사보다 더 높은 사람? 그 사모님이에요.
그 당시 우리나라는 그랬어요. 80년 초에 전대통령 그 시절에는 그런 말을 합디다. 나도 그때 들었는데, 서울대학보다 육사가 더 낫고, 육사보다는 대통령이 더 낫고, 대통령 위에는 영부인이다.
그런 말 들어봤어요? 우리나라 여권(女權)이 발달할 땐데, 아니 글쎄 그 도지사 사모님이란 분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는 그분의 이름도 모르고, 도지사 이름도 모르는데, 찾아올 리가 없다고. 그런데 군수가 왔으니 나와보라는 거예요.
아, 그럴 리가 없다고. 그때 마침 제가 꿈틀꿈틀 댔습니다. 한 20분 가량 안 나갔어요.
그런데 아마 밖에서 기다린 사람은 얼마나 저 사람이 거창한 사람이길래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저에겐 양말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게 빵꾸가 나서 그걸 깁고 있었다고. 그러니깐 맨발로 나갈 수는 없고 그거 빨리 기워서 나가려니깐, 군수가 와서 자꾸 빨리 나오라고 해서 할수 없이 맨발로 나갔죠.
검정고무신을 신고 턱 나가니깐... 그때 만났습니다.
그 천사를 누가 보낸 지 압니까? 여기 이승구(?) 목사님이 보냈어요. 1
2년 전에. 난 사실 10년만에 처음 만났죠. 나는 미국에 오신 지도 몰랐는데 미국와서 어떤 분이 말해줘서... 늘 마음에 빚진 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영양실조 걸릴 땐데, 그분을 만나서 그분이 그다음에 저를 공관으로 초대를 했어요. 갔더니, 고깃국인 것 같아요.
고깃덩어리가 한 덩어리 들어있고 국물이 아주 기름기가 꽉 찬데, 그걸 한 숟갈 탁 드는 순간에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생각했어요. 얼마나 맛있던지! 그걸 한 그릇 다 먹고, “염치없지만 한 사발 더 먹을 수 있겠냐”고 하니깐 한 사발 더 줍디다.
그때 그게 어찌나 맛있던지! 두 사발 먹고 나니깐 입이 딱 막혀요. 그때서야 우리 식구들이 생각난 겁니다. ‘야! 이거 나도 별수 없구나. 배고프니깐 식구 생각없이 혼자 먹었다.’
“나 이제 이거 못 먹겠다”고 했더니, 그걸 사모님이 아시고 저보고 하는 말이 “목사님, 제가 그럴 줄 알고 떡을 두 말 해놨습니다. 갈 때 가져가십시오.
” 그래서 제가 왔지요. 오니깐, 내가 몇 년만에 처음으로 외출을 하니깐 이 사람들이 어떻게 기다린 지 압니까? 교회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거예요.
뭐 갔고 올까 싶어서. 버스를 대절해 가지고 전남도내 귀부인들 다 대동하고 왔지요.
와서는 오자마자 우리 교회 찾아왔으면, 우리 인사하기 전에, 왜 왔느냐 묻기 전에, 우리 가서 예배부터 드립시다. 그래 다 교회당으로 들어갔지요. 그런데 우리 마을 사람들은 겁나서 안 들어오려고 그래요. 그래서 “아, 들어오라고 괜찮다고”. 다 들어와서, 이제 전도집회를 한 겁니다.
내가 찾아가서 전도해야 할 판인데, 제 발로 다 들어왔으니깐...
한 두시간 가량 예배를 봤습니다. 보고 나서 제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요만한 방에 한 세사람 앉으면 꽉 찹디다. “다는 못 들어오고 대표만 오십시오.
제가 대접할 것이 없으니깐 냉수만 한 사발씩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그분이 갔습니다.
근데 며칠 후에 자기 공관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
래서 제가 그랬죠. “목사는 밥 먹으러 가지는 못하고 말씀 전하러 밖에 외출을 못 합니다”라고 했더니, “아, 그러면 여기 와서 예배드리면 될 것 아닙니까?”
“아, 그러면 그러지요.” 아마 그 공관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그 안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큰 회의실인데 전보다 더 많이 왔어요. 70명 가량의 분들이 모였습니다. 자리에 앉으라 하면서 그 자리가 전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라고 그래요. 근데 그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전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성경공부를, 첫 예배를 드렸죠. 하여튼간 마치고 나니깐, 여기저기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기에 불교 믿는 사람들이 더 많고 기독교인은 몇 명 없었어요,
“목사님 말씀 들으니깐 부처님 말씀만큼 재미있으니깐 우리 이런 것 자주 모입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못 합니다. 나오기도 힘들고... 그래서 안 됩니다”고 했더니, 2주일에 한번까지 내려갔다가, 그러면 한 달에 한번씩이라도 해야겠다고. 그렇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제가 떠날 때까지 도지사 공관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놀라운 역사가 그때 시작된 겁니다. 그때 그렇게 시작했지만, 그 사람들이 당장 어떻게 도와줄 수 없었죠. 우리는 우리대로 조금씩 이렇게 왔지만.
그러고 있는 판인데, 마침 그때, 도지사 사모님 만나기 전인데, 독일에서 제 지도교수님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긴 편지가 왔기에 뜯어보니깐 하는 말이 자기가 2년 후에는 은퇴를 하게 된답니다.
그래서 자기 후임자를 생각해보니깐 제자 중에서 자네가 제일 적격인 것 같아서 추천했는데 허락이 났으니깐 금년 말까지 오면 된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가만히 그걸 보니깐 ‘와, 이 자리 가면 밥은 하루 세끼 먹겠다’는 생각도 들고, 자꾸 저울질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답장을 못하고 한 두달쯤 지나니깐 또 편지가 왔어요.
“아무래도 일년 일찍 와야 되겠다. 와서 인수인계도 하고 맡을 일도 있으니깐 빨리 오라”는 편지가 두번째 왔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편지를 안 쓸 수가 없어서 대답을 썼습니다.
“교수님, 날 그렇게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건 좋은데, 제가 가만히 기도해보면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 교회에 남아서 시무하는 거하고 독일에 가서 교수님 후임자가 돼서 교수하는 거하고, 어느 게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하고 생각하니깐 그냥 이 자리에 남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리라고 깨닫고 거절하겠습니다”하고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그 다음해 봄학기 시작할 때 마침 일본에 무슨 모임이 있어 왔다가 저한테 찾아왔어요. 자기 생각에 ‘얼마나 좋은 자리에 앉았기에 그 자리도 마다하고 뿌리치는가’ 해서 온 거예요.
밤중에 왔으니깐 아무도 몰랐죠. 그 다음 새벽 6시에 다시 서울로 가서 비행기타고 독일로 들어가야 되는데, 우리가 새벽 예배를 늘 4시에 봤습니다.
4시에 “교수님, 오신 김에 우리 교인들한테 설교나 해주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하니깐 “그러자”하고 교회에 나와서 저는 통역하려고 섰고 교수님은 단에 섰는데 제가 몇 년 전에 봤던 할아버지가 또 앞에 딱 앉아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때는 다 자연스럽게 되었으니깐 안 놀랬는데, 교수님이 딱 서서는 이렇게 보다가는 말도 안하고 이렇게 보고는 눈만 껌벅껌벅하고 10분간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콕콕 치면서 왜 이러시냐고, 시작하라고 하니깐 “어..”하고는 가만히 있다가 자기도 정신없이 몇 말하고는 끝났어요. 이제 새벽예배 끝나고는 돌아서서 내려오려는데 갑자기 제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 제자이지만 난 당신을 존경합니다.” 여러분, 이 이상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대학교수가 그런 말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날 가르친 교수가 날 존경한다고 했으면 이 이상 큰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이 양반이 가서 소문을 어떻게 퍼뜨렸냐하면 “아, 저 김요석은 매일 하나님 손잡고 목회하더라”하고 된 거예요.
그리고 나서 한참 지났는데 한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같이 신학을 공부한 제 동기생입니다.
공부를 아주 잘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러 갔는데, 5천명 모이던 교회가 한 일년 반이 지났더니 교인이 3백명 밖에 안 남았어요. 왜 그랬는가 했더니, 나중에 물어봤더니,
“나는 이 성경을 믿지 않지만 여러분 알아서 들으시오”라고 설교했던 거예요. 그러니깐 알아서 안 나오게 된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문법적으로 논문 쓰듯이 정확히 설교를 써서 발표하는데, 그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자기가 고민하다가 ‘내가 고전어 교수를 하던가, 목사직 관둬야 하겠다’하던 찰나인데,
아 보니깐 자기 동창이 한국에서 매일 하나님 손잡고 목회한다고 하니깐 나한테 편지한 거예요.
“내가 들으니깐 자네 매일 하나님 손잡고 목회한다는데 나도 가서 하나님 손 한번만 잡을 수 있던가?
하나님 얼굴만 한번 볼 수 있다면 내가 절대적으로 성경말씀 믿고, 믿는 설교를 한번 할 테니깐 나를 자네 부목사로 청빙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부목사가 한 명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 답장을 썼죠.
“야, 그 대우는 담임목사나 부목사나 똑같이 해 주겠다. 내가 먹는 만큼 너도 먹고, 그럴 테니깐 우리 거기에는 이의 달지 말자. 음 그러니깐 그러려면 오너라. 근데 우리는 조금 식사량이 적어서 조금씩 밖에 못 먹는데 괜찮겠나?”고 했는데 이 친구가 뭐라고 한 줄 압니까? 자기 몸무게가 110Kg이 넘는답니다.
“그러니깐 다이어트도 해야되는데 그거 잘 됐다고. 그거 좋은 거라고” 이렇게 말하고 온 겁니다.
보니깐 보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한 가방은 전부 구두만 있고 또 한 가방은 양복만 있어요. 그래 “왜 구두를 이렇게 많이 가져왔냐? 일년에 하나면 충분한데...”하니깐 뭐 옷에 맞춰서 구두를 신어야 한다나.
나중에 정말 하나도 못 신고 다 나눠줬지만. 그리고 들어오더니 사람들이 부목사님 왔다고 환영을 할 것 아닙니까? 와서 다 몰려있으니깐, 이렇게 보더니 “야, 이 사람들 좀 이상하다” 그래요.
그래서 뭐가 이상하냐 하니깐 말은 못하고 우물우물하다가 “병신같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독일 격언에 그런 말 있지 않냐? 병신 눈에는 병신만 보이고 천사 눈에는 천사만 보인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이 친구가 다시는 그런 말 안 해요. 자기도 천사는 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너 이번 주 부임했으니깐 설교해라”했더니 하는 말이 “내가 독일에서도 설교 못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하겠냐?
그러니깐 우선 하나님과 악수를 하게 하던가, 하나님과 대면하게 하기 전까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 성경공부 하자.” 그래서 새벽기도 전에 한 2시쯤 일어나서 2시에 성경공부 시작한 겁니다. 이 친구는 히브리 성경, 헬라어 성경, 라틴어 성경 이거 세 개만 들고 왔어요.
왜, 그게 환하니깐. 들고 와선 딱 꺼내더니 “봐, 우선 히브리 성경부터. 이거 문법이 틀리지 않았냐? 이 문장 자체가 틀리지 않았냐?”. 이거 따지고 들어가니깐 공부가 됩니까? “아직 안 되겠다. 때가 안 된 것 같으니까 휴강하자.”
그리고 있는데 한 이틀쯤 지났는데 밥이 아무 것도 안 들어오니깐 다이어트하는 것은 좋지만 이 큰 덩치가 한끼도 안 먹으니깐 죽겠거든요.
“밥 안 주냐?” “자네 다이어트 한다고 했으니깐 한 일주일은 굶고 그 다음주부터 조금씩 먹는 거야.” 그랬더니 “아이고, 살 안 빼도 좋으니깐 좀 먹게 해 주라.” “그래? 그럼 우리 새벽 2시쯤 일어나서 밖에 나가면 큰 빵을 줄 테니깐 나눠먹자”하니깐 좋다 그래요.
새벽 2시만 기다린 거죠. 새벽에 나가니깐 마침 별이 하늘에 촘촘하게 빛나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입을 크게 벌려라. 하늘에서 별빵이 내려온다. 들이켜라.” 그러니깐 나보고 그래요. “너는 맨날 저것만 먹느냐?” 하고 물으니깐 “그렇다. 그러면 배가 부른다.
” 그리고 입을 다시 크게 벌리라고 하니깐 자긴 더 배가 고프다는 겁니다. 안 된 거예요. 그리고 있다가 몇 달 지났는데 그때 무슨 좋은 일이 생겼는지 쌀이 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니깐 하는 말이 “야, 한끼 먹더라도 한번 실컷 먹자.” 그러니깐 내가 그랬죠. “야, 매일 조금 먹다가 한끼 갑자기 먹으면 탈나니깐 안된다.” “아! 탈나는 건 둘째치고 한번 배불러보자.
” 그러고는 밥을 한 양푼 많이 해가지고는 거기다 김치 부어서 막 비벼 먹는 거예요. 처음에는 김치 못 먹겠다고 밥만 먹던 친구가 그냥 먹더니, 자, 쫄아진 위에다가 밥이 갑자기 들어가고 거기다가 김치 섞어먹으니깐 배가 이상해질 것 아닙니까?
그래 이게 급하거든요. 설사가 생겼죠. 변소에 가는데 급하죠. 근데 우리 변소가 어떻게 됐냐면 구멍을 깊게 파놓고 판때기 두개를 걸쳐놨습니다.
그래서 몸무게가 60Kg이내인 사람이 앉아도 요동이 없는데 그 이상 되면 이게 (부서진 겁니다.) 깊이가 4미터인데 이 친구가 아무리 커도 딱 걸린 거예요. 다행히도 걸렸죠.
안 그랬으면 쑥 들어갔을 건데. 딱 걸리니깐 이게 목까지 찬 겁니다.
아 또 그때 마침 구더기가 반갑다고 온 머리까지 다 엉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