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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원씨
이귀란
“사모님 저 원씨예요.”
“응 별이 아빠, 어디야 지금.”
“집이쥬 뭐.”
“언제 들어왔어?”
“그날밤요.”
“그제 밤에? 그 밤에 들어왔어?”
“예, 저 지금 좀 갈게요.”
숙희는 전화를 끊자 수화기를 침대로 집어 던졌다. 지긋지긋하게 속을 썩이던 원씨가 집엘 들어 갔다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숙희의 입에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3년 전에 옆집 아주머니와 고향지기라는 원씨의 어머니와 그의 부인이 숙희네 집에 처음 왔었다. 원씨는 개구리무늬 잠바에다 청바지를 입었는데 눈만 마주쳐도 손이 올라올 것 같은 도전적인 모습이었다. 그날 숙희의 눈에 비친 원씨는 한마디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였다. 등나무가지 휘감기듯 붙어선 원씨의 부인은 만삭이었는데, 하늘거리는 원피스의 앞자락은 허벅지에 닿았고 뒷자락은 복숭아뼈 위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날 저녁 세 그릇의 만두국을 비우고야 물러나 앉았다.
“가막소에서 나온지 꼭 사흘째예요. 어린네는 세상에 나올 날 얼마 남지 않았지, 어쩌든지 입벌이만 허개 해 쥬슈. 기술꺼정 가리켜 주시면 여한이 읎겠구요.”
연신 고개를 숙여가며 애걸하다시피하는 초췌한 어머니와는 달리 원씨의 얼굴은 기름칠을 해 놓은 땅콩 같았고, 부인은 방금 삶아 껍질을 벗겨놓은 달걀 같았다.
“이 밤에 충주루 가는 차 편이 있을랑가 모르겄네유.”
유자차를 후루룩 마신 어머니가 엉거주춤 일어서자 원씨네 부부도 따라 나섰다. 구부정한 어깨를 숙여 잘 부탁한다며 가는 원씨는 무릎을 앞으로 굽히며 걷는게 아니라 옆으로 벌리며 걸었다.
원씨 부인도 거기적거리며 뒤따르다 숙희의 남편인 영섭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다른건 다 좋은데 술만 못 먹게 해 주세요. 이 사람은 술만 들어가면 통나무에 치마만 둘러놔도 여잔 줄 알고, 그게 어린애든 할머니든 상관없이 지 마누란줄 압니다. 그러니 제발 술만 못 먹게 해 주세요.”
그런 원씨가 용케도 영섭의 말을 하늘같이 따랐다. 스믈여덟살이 되도록 살아 오면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하기는 처음이라며 온 몸을 아끼지 않았다.
원씨는 영섭이 눈만 치켜떠도 숨을 죽이고, 현장의 보고사항 때문에 전화를 해도 사장님이 어렵다며 숙희를 통해서 의사를 전달했다.
원씨 일행이 다녀간 지 사흘이 지났다.
숙희는 언제나처럼 자신이 즐겨듣는 발라드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저 여기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왕족발집인데요. 할머니가 와 계세요.”
“네? 웬 할머니요?”
숙희네 어머님은 평소에 자주 드나드시는지라 왕족발집에서 자신을 부를 리가 만무일텐데 생각하며 물었다.
“김 사장님네 집이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잠시만요. 할머니 바꿔 드릴께요.”
“ ...... ”
“여보슈. 사모님이시유?”
“누굴 찾으시는데요?”
“아이구 사모님 삼일이 에미예유.”
“삼일이가 누군데요.”
“아이구 지난번에 갔었지이. 내 하두 고마워서 인사 좀 할려구 왔는데, 그 길이 그 길 같아서 집을 못 찾겄어서 이 집에 들어왔슈. 그란디 전화꺼정 해 주구,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숙희는 할머니의 얘기를 듣는 동안 며칠 전에 왔다 갔던 원삼일씨의 어머님이란걸 생각해 냈다. 숙희의 남편이 건축업을 꽤 오래 해 왔어도 동료들이나 인부들이 부인이나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오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늙으신 어머니가 혼자 찾아 온 일은 처음이었다.
“하이구, 하두 고마워서 내 생각다 못해 한 걸음에 달려 왔지유.”
의아해하는 숙희와는 달리 할머니는 마치 사촌쯤 되는 친척집에 온 것처럼 양말부터 벗어 놓은 후에 삭힌 깻잎과 된장에 박아 두었던 고추 밑반찬을 꺼내 놓았다.
그때부터였다.
원삼일씨의 어머니는 당신 마음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와서 족발집에 앉아 숙희를 불러냈다. 숙희는 그런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할머니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야 했다. 할머니는 만주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6.25 사변을 겪으며 남편을 잃은 이야기들을 침을 꼴딱꼴딱 삼켜가며 엮어냈다. 4.19를 거쳐 5.16을 지나며 고생하다 다른 자식들은 보따리 행상으로 고등교육까지는 시켰으나 삼일이만 공부를 못 시켜서 한이 된다는, 끝도 없는 이야기를 엉킨 실타래 풀듯 풀어냈다.
어쩌면 그렇게도 역사적인 현장마다 몸소 겪으며 살아 왔는지 ...... 그런 날이면 숙희는 마음으로 안달을 했다. 어느 세월에 10.26을 거쳐 12.12로 넘어가 오늘까지 오려나. 숙희 생각에 할머니는 마치 역사를 안고 살아온 산 증인 같았다. 할머니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웃어주는 숙희의 마음은 개의치 않고 양수기처럼 침을 튀겼다. 그러나 숙희는 연신 시계만 들여다 보았다. 언제나 할머니는 10.26까지 이야기를 하고는 오늘은 간단하나마 이만 줄이겠다며 돌아갔다.
한번은 막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숙희네 부부가 교회의 성가대에서 경연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하러 나가는데 할머니가 오셨다. 숙희네는 할 수 없이
“할머니 우리가 약속이 있어서 나가야 되니까 텔레비 좀 보고 계시겠어요?”
하고 양해를 구했더니 할머니는
“염려말구 다녀와유. 내가 마침 잘 왔구먼. 내가 안 왔으면 집이 빈집 될 뻔 했구머언.”
하시면서 기역자 허리에 뒷짐을 지고 숙희네를 배웅했다.
그날 밤도 할머니는 만주적부터 시작하여 10.26까지 이야기를 하시고는 숙희네서 잤다. 이튿날 새벽 숙희가 일어나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전화를 했더니 충주의 큰 아들네 집에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할머니 언제 가셨어요?”
숙희는 짜증이 나서 조금 높은 톤으로 물었다.
“하이구 이 늙은 게 밥 한 끼니라두 폐를 안 끼칠려구 새벽같이 니왔쥬.”
그렇게 남의 집 생각을 해 주는 원씨의 어머니가 일주일에 두어번씩 들기름이나 고춧가루 따위를 싸들고 드나들었다. 숙희는 그때마다 무릎을 쳐 가며 엮어가는 만주시절의 이야기를 외면치 못했다. 그러다가도 간간이 이야기를 잘라서 하는 말은
“이제 그 놈은 사장님네가 끝까정 맡으셔야 해요. 내 그동안 심장이 벌렁거려 죽고 싶어도 그놈 때문에 눈을 감지 못했슈.”
숙희는 이제 전화벨 소리에도 놀라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에 대하여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한 솥 안의 밥을 같이 먹게 됐다며 제집 드나들듯 하는 할머니의 방문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그런 숙희와는 달리 영섭은 원씨가 고분고분하게 시키는 대로 일을 잘 한다며 그런대로 만족해 했다.
영섭은 원씨에게 처음에 일을 시킬 때 일부러 모래와 세멘트를 물로 섞은 시멘트몰탈을 지게에 지고 5층까지 오르내리는 단순 노동을 일주일간 시켰다. 그래도 원씨는 고된 줄 모르고 잘 해냈다. 오히려 틈만 나면 담배를 입에 물고 히죽히죽 웃기에 사람들은 약간 맛이 간다고들 했다. 하루는 신지경씨가
“야 임마, 넌 모이가 그렇게 좋아서 맨날 히죽거리냐?”
고 물었더니
“제가요 인간 쓰레기인줄 알았는데요. 내 새끼가 한 여자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어요.”
라고 웃더라나?
사람들은 그 소리에 감격을 했다.
영섭은 그날 밤 잠자리에서 숙희에게 ‘그렇잖아도 세상 풍상 다 겪은 인간들이 모여드는 노가다판에 전과자까지 끼어 들어 알차게 자리를 잡는다’ 며 한숨을 쉬었다.
원씨의 노력이 기특한지 영섭은 6개월이 지나자 아직도 생짜배기인 원씨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신지경씨는 10여년을 노동판에 따라다니며 쉰이 넘는 나이에도 맨날 기술자의 뒤만 챙겨주는 데모도인데, 원씨는 마치 마른 솜이 물을 빨아 당기듯 기술을 익혔다. 숙희는 저녁에 영섭이 들어오기만 하면 원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물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했었지만, 유독 원씨의 눈초리만은 지워지지가 않았다. 원씨의 눈은 딱히 어떤 것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마치 세상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듯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느라 용을 쓰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숙희는 혹시나 낮에 혼자 있을 때 자기 어머니처럼 느닷없이 방문을 하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원씨는 한번도 혼자서는 숙희네 집에 오지 않았다.
원씨는 이제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일을 하든 상가에서 일을 하든, 학교건물이든 아아치형 건물이든, 아니면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종교건물이라도 원씨는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 일들이 외부를 치장하는 붉은 벽돌이든 블록이든, 혹은 건물의 굴뚝을 쌓을 때에만 사용하는 내화성 점토로 만든 내화벽돌이든 간에 자기의 기술을 한껏 발휘했다. 영섭이 건물의 특성만 이야기를 해도 마음으로는 벌써 그 일이 어느 벽돌로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싸이즈는 4인치 짜리인지 6인지 짜리인지, 8인치 짜리로 일을 해야 하는지까지 계산을 하며, 건물의 크기와 규모에 따라 기공(기술자) 몇 명에 조공(뒷일) 몇 명이 함께 일을 해야 하는지 까지 계산을 했다.
영섭은 원씨를 대견해 하면서도 마음속의 팽팽한 긴장은 늦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발이 미치지 못하는 현장에는 원씨를 반장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원씨는 어느 현장에 가서도 회사측에서 원하는대로 혹은 영섭이 지시하는대로 손색없이 일을 잘 처리했다. 무엇보다 입심이 좋아서 각 공정간의 사사로운 이권다툼에도 지지를 않고 숙희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영섭은 공사현장이 여러군데 겹쳐서 바쁠 때에는 또 다른 반장인 이씨에게 몇 군데를 맡기고 자신이 몇 군데를 직접 지시하곤 했었다.
원씨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이태가 지나자 이젠 그 분할이 삼등분으로 나뉘어질 정도로 건물의 설계도도 한 눈에 읽어내고 기술이나 사람들을 관리하는 일에서도 매끄러운 솜씨를 보였다. 영섭은 이씨와 원씨에게 현장을 맡기도 입찰 보러다니는 시간을 더 할애하거나 집에 들어와 숙희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기도 했다.
“개 망나니이고 날고기같이 질긴 인간이지만 심성은 고운 놈이야. 지가 한 번 맘 먹고 하겠다면 하는 놈이드라구. 사람하나 만든다 생각하구 무조건 믿어주는 거야.”
원씨는 이렇게 영섭의 신임을 받으며 제 자리를 확보해 나갔다.
숙희는 그동안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고 받아주던 그야말로 애물단지인 원씨가 온다고 하자 자신도 모르게 지나간 일들이 자꾸만 떠 올랐다. 어쨌든 집에 사람이 온다니까 정리나 좀 해야지 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현관에 벗어 던진 운동화를 가지런히 모아놓고, 거실에 나뒹구는 신문을 대충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원씨가 오면 야단을 쳐야 하나, 아니면 속 못차린 남동생 달래듯 얼르고 달래야 하나를 고민했다. 숙희는 화장실 앞에 아이가 벗어놓은 양말을 세탁기 속으로 집어넣으며 ‘이번에도 딸네미 보고 싶어서 들어왔나?’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별이가 태어나서 한 달쯤 되었을 때의 일을 생각했다.
그날 숙희네가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사모님 저 원씬데요.”
“응 원씨 웬일이야?”
“애가 아픈데 우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어제부터 쬐끔씩 이상하다고 했는데...... ”
“병원엔 안 갔어?”
“애 엄마가 물 수건을 이마에 계속 얹어줬나 본디, 우째 그런지 애가 입을 못 벌려요.”
숙희가 시계를 보니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사모니 죄송한데요. 즈이 지금 차비두 없구...... ”
“어떡허지?, 가만 있어봐. 아냐 우리가 갈테니까 얼른 애 챙겨가지구 있어.”
숙희는 방금 잠이 든 영섭을 흔들어 깨웠다. 영섭은 두 말 않고 차를 몰았다. 그 즈음 영섭은 한 사람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하기도 하고 뿌듯해하기도 하며,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영섭은 부지런히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어느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들어서니 담당의사가 출타중이라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단다. 우선 해열이라도 시켜달라며 두 손을 비볐지만 간호원은 대리석같은 얼굴로 돌아섰다.
할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달렸다. 원씨의 눈은 촛점을 찾지 못한 채 연신 열 손가락을 조물락거리고 있다.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들자 이번에는 비어 있는 병상이 없단다. 핏발선 눈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원씨를 대신해서 영섭이 간호원에게 사정을 했다.
“아이가 열이 너무 심하니까 우선 급한대로 치료 좀 하고 병상이 날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겠습니까?”
검은 줄이 쳐진 모자를 쓴 수간호원이 다가오더니 아이를 접수대 위에 누이라고 했다. 원씨의 부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입술이 허옇게 말라 붙어 있었다. 간호원이 아이의 옷과 기저귀를 벗기니 배꼽부분이 바알갛게 부풀어 있다. 간호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이의 입을 벌리고 눈꺼풀을 치켜보며 체온을 재더니
“어쩌자구 이 지경까지 놔 뒀어요? 파상풍인 것 같아요. 바로 비어질 만한 병상이 없을 것 같으니까 빨리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치료를 받으세요. 아직 신생아인것 같은데 잘 못하면 병균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뇌를 손상시킬 수도 있어요.”
하고 말했다.
의사는 보이지 않고 간호원이 서둘러 소독을 했다. 입술이 말라 붙었던 아이는 실침을 쩍쩍 늘이며 간이 녹아드는 울음을 자지러지게 운다.
영섭은 급히 뛰어나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원씨는 접수대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왜 여기서는 치료를 안 해 주는거야, 의사 섀키들은 다 어디 갔어?”
고개를 숙인 채 눈만 치켜뜨고 소리를 지른다. 숙희는 얼른 원씨를 잡아끌었다.
“이럴 시간 없어. 한시라도 빨리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해.”
일행은 대전의 성모병원으로 달렸다. 아이는 입술이 바싹 마른채로 개구리처럼 파닥거리다 잠이 들었다. 원씨는 달리는 봉고버스 안에서도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 서고 있다. 영섭은 어금니를 물고 관자놀이에 힘을 주며 비상라이트를 켰다. 크락숀도 계속 눌렀다. 신호마저도 무시하고 마구 질주했다. 그렇게 달려도 원씨는 엉거주춤 일어선 채로 양손을 비비기만 한다. 원씨 부인은 아이를 자꾸만 품으로 당겨 안는다. 성모병원이 눈 앞에 보이자 차가 멈추기도 전에 원씨가 차의 문을 열었다. 우리 일행이 아이를 안고 급히 뛰어들자, 병상을 오가던 의사가 멍하니 쳐다 본다. 숙희가 외쳤다.
“선생님 빨리요. 애기가 위급하데요.”
의사가 다가와 아이의 배에 청진기를 대고 손가락으로 튕겨보기도 하더니, 간호원에게 몇 가지 전문용어로 지시를 한다.
아이의 기저귀를 벗기고 부푼 배꼽을 보더니 이번에는 조금 급하게 ‘수술준비’ 하고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듣자 원씨는 그대로 주저 앉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간호원들은 마치 대기중인 119 대원들같이 순발력 있게 움직인다. 아이를 칸막이 안으로 안고 들어가며 보호자들은 나가 있으라고 한다. 네 사람은 꼼짝도 않고 의사를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의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갓난 아기의 울음소리가 응급실의 흰 벽을 쩍쩍 할퀴었다. 원씨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시멘트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웅얼거린다.
“사모님 우리 별이 잘못되면 나는 못 살아요, 우리 별이 없으면 난 죽어요.”
그렇게 엄마 아빠의 애간장을 태우던 별이는 그 밤에 배꼽을 절개하여 이물질을 제거했다. 네 사람은 그날 밤을 꼬박 세웠다. 별이는 온 몸을 파득거리다 새벽녁에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벌써 네 살이 되어 뛰어 다닌다.
숙희가 굴비를 구우려고 후라이판을 꺼내며 ‘참 가지가지 많이두 겪었지’ 중얼거리는데 현관 밖에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벨이 울렸다. 원씨였다.
“사장님은유.”
“아직 안 들어왔어. 방금 전에 통화했는데 금새 온다 그랬어. 저녁은 어떡했어?”
“이제 먹어야쥬.”
“금방 올거니까 기다렸다가 같이 먹자.”
“죄송해요.”
“죄송이구 뭐구 그 밤에 정말 부산서부터 여기까지 택시타구 왔어?”
“그래서 내가 하루 얼마 버는데 여기서 거기까지 택시를 타구 가냐. 기차가 있으니까 밤차라두 타구 가겠다구 했드니 씨발놈아 뭐할놈아 지금 빨리 오라면 올 것이지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냐구 난리를 치는데 어떡해요 그럼.”
원씨가 앉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볼멘 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니 도대체 부산서 여기가 어디라구 택시를 타구 오래냐? 그렇게 오래는 사람이나 온 사람이나 둘이다 제 정신이 아니구먼 그래. 그렇게 오니까 이젠 잘해 줘?”
“그렇쥬 뭐.”
“별이 아빠 오늘 나하구 얘기 좀 하자. 도대체 한두 번두 아니구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그래서 말예요. 사장님하구 의논 좀 할라구 왔어요.”
“아니 별이 엄마두 그렇치, 지 입으로 용서해 주겠다구 전화로 그렇게 얘길해서 집엘 들어 갔으면 사람을 편히 쉬게 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지. 그렇게 계속 달달 복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유 나두 정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는 게 뭔지 정말...... 그나저나 하루 이틀 아니구 어딜 그렇게 다닌거야 도데체?”
거실을 어정거리던 원씨는 어딜 다녔냐는 숙희의 물음에 아무 소리도 않구 소파로 몸을 밀어 넣는다. 잠시 후, 주머니를 부시럭거리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뭐, 나같은 놈 오래는데 있어요? 특별히 갈 곳두 없구요. 밤이구 낮이구 배고프면 밥 사먹구 술 고프면 술 사먹구, 핸들 가는대루 바퀴 구루는대루 헤메구 다닌거쥬 뭐. 그러다 졸리면 차 세워놓구 아무데서나 쭈구리구 자구.”
“아이구 참 왜 그렇게 사냐? 남들은 애 낳구 알콩달콩 잘두 사는데 왜 원씨만 그렇게 마음을 못 잡구 그 고생을 하구 다녀?”
“그래서 내가 꽉 죽어 버릴려구 술을 진탕 먹구 디리 그냥 밟았어요. 제천을 지나 박달재고개를 들어 서는데 꾸불꾸불한 길에서 그대로 처박으면 되겠다 싶드라구요. 그런데 이게 밤이었든가 봐요. 앞에서 괴물같은 차들이 밀려 오는데 옳다 잘됐다 하구 냅다 그냥 박을라 그랬어요. 그런데 요 별이란 놈 얼굴이 갑자기 눈 앞에 아른거리는 거예요. 그러니 이게 나만 죽는다구 해결될 게 아니드라구요. 성수엄마 별이엄마 별이, 우리 넷이 다 죽어버리자구 할까 혼자 별 생각을 다 하면서 넋놓고 차를 몰았어요. 그런데 저 멀리서 빠알갛게 십자가가 보이드라구요. 이리저리 막히는 길을 차를 돌려가며 찾아 갔더니 새벽 예배시간이었든가 봐요. 사람들이 오락가락하드라구요. 그래 맨 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랬어요. 하나님! 당신이 진짜 계시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좀 가르쳐 주십시요. 두 여자를 다 데리고 살 수는 없구, 콱 죽어 버릴 수도 없구, 해결 좀 해 달라구요.”
“죽는다구 해결될 일 같으면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 하나두 없겠다. 그만 일에 집안에 가장이 돼 가지구 죽을 생각을 했어? 죽기를 결심한 마음이면 무슨 짓이든 못 할라구.”
“증말이지 우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답을 하면서 개구리 무늬 잠바를 벗어 옆으로 던지며 소파 속으로 더 깊숙히 몸을 민다.
“내가 별이 엄마한테 그랬거든. 모든걸 다 용서해 주겠다구 해서 들어 갔으면 사람을 하루구 이틀이구 편히 쉬게 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얄 거 아니냐구. 별이 아빠가 그러는데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을 일어나라구 발길루 차구, 빨리 안 일어난다구 귀를 잡아 당기구, 오밤중에 자다말구 일어나 성수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갖은 욕을 다 하며 지금 당장 보따리 싸서 이놈하구 애하구 보낼테니까 니가 책임지라구 그런다는데, 그러면 어떡하느냐구 그랬더니 ‘지가 그럼 내 속을 이렇게 뒤집어 놓구 들어와서 그런 우세두 안 당할 줄 알았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귀는 누가 잡아 당기냐? 그냥 살짝 잡았다 놓았구 지가 무슨 말을 좀 할라 그러면 별이아빠는 아무 소리 않구 밖에 나가서 소주를 사다 병째 마시구 방 안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다 때려 부순대. 눈에는 불을 켜 가지구 애 옷이구 어른 옷이구 죄다 내다 태우고 씩씩거리는 통에 저는 옆 집으로 도망을 다닌대요. 그러길레 내가 요번에 전화가 오거나 들어 오거나 하면 그러지 말라구 단단히 다짐을 받아 놓을테니까 별이엄마두 말 한 마디라두 부드럽게 잘 해 줘라 그랬지. 하여간 내가 한마디 하면 저는 열마디를 더 떠들어요. 하두 떠들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두 다 못 해요. 이건 뭐 지가 제일 경우 바르구 제일 똑똑하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어. 그러면 또 나가구 계속 그 타령만 할 거 아니냐. 별이엄마두 생각해 봐라. 한 번 나가면 마음 붙일 곳 없어서 며칠이구 돌아다니며 술이나 먹구 돈은 또 한 두푼 쓰느냐. 별이엄마 집에서 부업한다구 밤낮 북어 껍질 벗겨봐야 무슨 소용있느냐. 내가 별이엄마보다 더 큰 소리로 막 야단을 쳤어. 이제 들어 오면 잘 해 주라구. 그래야 하루빨리 집안이 안정되구 애두 제대루 키우지 애 꼴이 그게 뭐냐구. 그랬더니 다소곳이 예예 하면서 대답을 하대.”
“그러면 뭘해요. 열흘 가까이 밥두 제대루 못 먹구 계속해서 술만 마셨더니 내 속이 오죽하겠어요? 그래 내가 속이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그랬더니 그년하고 얼마나 그 짓을 많이 했길레 허리가 아프냐면서 손에 닿는대루 집어 던지니 내가 어떡해야 해요?”
“아이구!”
어이없어 하는 숙희와는 달리 원씨는 너무도 태연히 말을 잇는다.
“하여간 무서운 여자예요. 옷은 내가 왜 태웠는지 아세요? 서랍에 있는 옷을 다 꺼내서 가위로 싹뚝싹뚝 짤르면서 다 이렇게 죽이구 싶대요. 지난 여름에 나갔다 들어 왔을 때는 갑자기 칼루 찔르는데 죽는 줄 알았어요. 얇은 카시미롱 이불을 덥고 자다 일어나서 이불을 배에 둘둘 말은 채 텔레베를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느닷없이 배떼기를 찔르는 거예요. 내가 그때부터 방 안에 칼이나 가위 같은게 있으면 슬그머니 치운대니까요. 그때 내가 카시미롱 이불만 안 말구 있었으면 그냥 간거죠 뭐. 아유, 이젠 정말 정 떨어져서 못 살겠어요. 성수엄마는 저녁에 들어가면 씻으라면서 착착 포개서 개 논 난닝구 빤쓰를 갈아 입으라구 주는데, 별이엄마는 집에 가면 온 방에 북어 껍질에 또 뭐냐 북어 뼈에, 애는 또 머리에 흙테배기를 해 가지구 놀구 있구, 그러니 방엘 들어 갈래면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서방이라구 오면 쳐다구 안 보면서 서랍에서 빤쓰 끄내서 씻구 갈아 입으라 그러구 나 씻구 나면 애 씻기라 그러구. 그러니 딸네미를 하루 이틀두 아니구 애비가 씻기기 좋아요 어디? 씻기구 나서두 애 서랍에서 빤쓰 찾아 입혀라, 양말 찾아 신겨라...... , 양말이나 요렇게 서루 맞대서 한 켤레씩 맞춰 놓으면 될 걸 이건 그냥 한쪽은 이 구석에 한쪽은 저쪽 서랍에 쳐박혀 있으니 집에 가는 게 더 싫어요. 그냥 오밤중까지 일이나 하다 밤이면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게 차라리 편하지.”
“그래서 내가 그랬어. ‘별이엄마 남자는 말야 여자가 아무리 생활력이 강하구 돈을 많이 벌어두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여자를 좋아해. 하루에 두 끼를 먹을지언정 내 집에서 편히 쉬기를 원해. 저렇게 자꾸 밖으로 나돌게 하구 북어만 까구 있으면 어떡해? 북어 두드리는게 문제가 아니라 별이아빠 들어 올 시간되면 깨끗이 치워놓구 쉴 수 있게 해줘 봐.’ 그랬더니, 저는 한 푼이라두 얼른 벌어서 내 집이라두 장만할 욕심에 그러는데 별이아빠는 그걸 몰라 준다는 거야.”
“성수엄마한테 가면 말예요. 그렇게 마음이 편해요.”
원씨는 빠알갛게 타 들어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고백을 한다. 숙희는 성수엄마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성수엄마 얘기는 하지두 마. 사람들 얘기 들으니까 그 여자두 제 정신이 아니드라. 세상에 아무리 이혼하구 혼자 산다구 이 남자 저 남자 찍접대는 놈마다 따라가서 헬렐레 거린대드라. 애 아빠가 그러는데 함바 집에서 밥을 먹다 우스게소리로 데이트 한번 하자 그랬더니 볼 때마다 언제 갈 거냐구 조르더래드라. 그게 어디 제 정신 가진 사람이야? 그리구 별이아빠두 그렇지 그 여자두 이혼하구 애가 둘이나 있대든대 어쩔려구 그런 여자를 건드렸어? 꺼뜩하면 그 집에 가서 잔대메? 도데체가 생각두 없이들 살아요. 별이엄마 입장에서 생각해 봐. 물론 성격탓두 있겠지만 여러가지루 마음이 불안할 거 아냐? 그럴수록 별이아빠가 성실하게 해서 마음을 놓게끔 해야지. 자꾸 밖으로만 튀어 나가면 어쩌자는 거야?”
“나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생긴 게 이래요.”
“그건 그렇구 별이엄마는 왜 혼인신고를 못 하는거야? 지 신랑이 얼른 마음을 잡게 하려면 그거라두 얼른 해야지, 벌써 몇 해짼데 아직구 이러구 살어?”
“그 남자가 이혼을 안 해 주잖아요. 얼마 전에두 사진 들고 와서 이런 사람 못 봤냐며 찾아 다니드래요. 그 놈이 자꾸 찾으니까 주민등록두 엄마네 집으로 해 놨더니 그 동네에 가끔 나타나는 거예요.”
“거 잘 됐네. 별아엄마랑 별이아빠 맨날 이렇게 삐끄덕거리며 사느니 본남편한테 가면 되겠네. 애두 둘이나 놓구 왔대메? 세상에 독하기두 하지. 어떻게 제 뱃속으로 난 새끼를 둘이나 떼어 놓구 와서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사냐. 도데체 별이엄마는 어떻게 만났어? 별이아빠두 그렇치 총각이 돼 가지구 애가 둘이나 있는 여자랑 살림을 차렸냐? 난 원 이해가 안 가.”
원씨는 여전히 담배에만 집착을 하며 말을 이어 나간다.
“그게 말예요 사모님. 제가 이제까지 망나니로 살았잖아요. 열여덟 살부터 교도소를 몇 번씩 드나들며 살다 거기서 도장파는 기술을 배웠어요. 하루는 쭈구리구 앉아서 도장을 파다 생각해 보니까 남들은 여기저기 도장 찍으며 재미있게 살텐데 나는 이게 모하는 짓인가 싶드라구요. 그래두 우리 할마씨는 사흘도리로 면회를 오곤 했었는데, 나중엔 일년이 가두 어떤 놈 하나 찾아 오는 놈 없드라구요. 나중에 알구 보니까 우리 형님이 할마씨를 못 다니게 했드라구요. 또 한 번만 삼일이 한테 면회를 가면 그 자식이구 어머니구 다 안 보겠다구 으름장을 놓더래요. 그래 이젠 찾아 오는 인간두 없구 미치겠드라구요. 한 번은 어느 교회 목사래나 모래나 하는 사람이 쬐끄만 종이 쪽지를 주구 가는데 읽어 보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구 있습니까’ 라구 써 있는데 이게 지랄이드라구요. 그렇잖아두 심난해 죽겠는데 그게 사람을 고민하게 만들드라구요.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빨을 좀 까갖구 간수를 엮어서 갱생보호소엘 들어 갔어요. 거기서 육개월간 있었어요. 몇 년을 감옥에만 살다 갱생보호소엘 들어 가니까 살 것 같드라구요. 테레비두 볼 수 있지 담배두 필 수 있지, 가끔씩 외출해서 술두 한 잔씩 할 수 있지...... 한 번은 외출을 나와서 그 옆에 분식집엘 들어 갔는데 왠 쥐씨알만한 여자가 왔다갔다 하드라구요. 그때 내 생각에 저 정도는 말 몇 마디면 오늘 하루 밥거리는 되겠다 싶드라구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꼬셔서 그날 밤을 데리구 잤어요. 그리구는 가끔 전화로 연락을 했어요. 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마음이 울적하구 심난하드라구요. 그래 전화를 걸어서 지금 좀 오라구 했어요. 그랬더니 이 삼순이가 주제에 빼드라구요. 우리야 또 칼을 뺐으면 썪은 호박이라두 찔르는 기질이 있잖아요? 까짓 놈으 거 지금 안 오면 이걸루 끝이다 했지요. 그리구는 술을 실컷 먹구 들어 갈려구 하는데 문 앞에 뭐이가 시커멓게 서 있드라구요. 아! 이게 그 비에 온거예요. 지난 여름처럼 대단한 장마여서 길이 막히구 차가 끊어지구 했었는데 으트케 왔는지 하여간 보따리를 싸 가지구 왔드라구요. 그래 살은 거죠 뭐.”
“세상에...... 무슨 짐승들이냐?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게?”
“분식집이 즈이 언니네 집이란 소리만 하구 나 엮시 그렇게 살아 온 놈이 이것 저것 가릴 것 있나요 뭐?”
“그랬으면 얼른 호적을 정리해서 혼인 신고라두 하구 살았어야지 애는 뭐야 애는. 세상에 저렇게 예쁜 애를 애비도 없는 애로 만들었잖아. 이렇게 무책임한 부모들이 어디 있어?”
“그쪽에선 아직두 오라구 기다리구 있대요. 그러니 이혼을 해 주겠어요, 어디? 이 삼순이는 또 무슨 국회의원을 해 먹을 것두 아니구, 대통령을 나갈 것두 아니면서 호적은 안하면 어떻느냐며 되려 큰 소리를 쳐요. 그러면서 나한테 지 전 남편한테 쫓아가서 이혼 도장을 왜 못 받아 오느녜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그 짓거리까지 하구 다녀요?”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서 살 거야? 별이 아빠는 언제까지 이렇게 방황할 거구? 어떤 식으로든 빨리 정리를 해야지. 그쪽에서 기다리다 지쳐서 신고라두 하면 그냥 걸려 들어가는 거야. 간통이라구, 간토옹! 그쪽 남자두 어지간히 일편단심이네. 아 저 싫다구 집 나가서 다른 남자하구 애까지 낳구 사는 여자를 모가 이쁘다구 기다리냐 기다리길.”
“그동안 너무 못할 짓 많이 했다구 용서를 구하면서 기다린대요.”
“못할 짓이 뭐 친정 부모라두 죽였대? 그래서 애를 둘이나 떼어 놓구 나왔대?”
“남편이 의처증이 심했나 봐요. 요기서 조기만 갔다 와두 어느 놈 만났느냐구 달달 볶는대요. 이 삼순이가요 그쪽으로는 또 기차게 발달했드라구요. 그 놈이 아마 그 맛에 미쳐 빠져서 그렇게 어디 나가는 꼴을 못 봤나봐요. 하여간 일년에 한 두번 친정에만 갔다 와두 어뜬 놈하구 잤느냐 기분이 어땠냐 그러면서 두드려 패는데는 못 당하겠드래요. 애들 보구 살려구 해두 매가 무서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대요.”
“그랬으면 원씨같이 잘 생긴 연하의 총각을 만났으니 제 복이려니 하구 잘 하지 못하구 결국 전 남편한테 배워서 그렇게 달달 볶는구먼.”
“내가요, 별이 때문에 꼼짝 못 하는 줄 알구, 이 삼순이가 똥집이 흐믓해서 더 썰레벌을 까는데 요번에는 버릇을 단단히 고칠 거예요.”
“아니, 그리구 별이 엄마두 그렇지, 어쩌자구 애를 둘이나 떼어 놓구 와서 호적 정리두 안 된 상태에서 또 애를 낳냐아? 나는 옛날에 별이네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 별이 엄마 진짜 알토란 같은 여자구나 했어. 생활력두 강하구 말두 어쩌면 그렇게 조리있게 잘 하던지. 정말 별이 엄마가 애를 둘이나 떼어 놓구 왔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잘 웃구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독해요. 일두요 아침에 일단 집에서 나갔으면 비가 오거나 현장 사정상 일을 못 했드라두 그날 일당은 집에다 내 놔야돼요.”
“일을 안 했는데 어떻게 내 놔?”
“한 달에 얼마씩 주는 용돈에서 까는 거죠 뭐.”
원씨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창 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을 한다.
원래 건축업은 일반 직장 생활같지가 않아서 비가 오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앞 공정과 뒷 공정간의 연결이 잘 이루어져야만 순조롭게 일이 진행된다. 바로 앞 공정이 잘 못 되었을 경우, 예를 들자면 조적공사에 있어서 벽돌을 쌓기 전에 작업을 하는 문틀이 잘 못 맞추어졌다던가, 건물의 뼈대가 되는 골조가 잘 못 되었을 경우에는 그런 모든 문제들이 처리가 되어야만 벽돌을 쌓을 수가 있다. 또는 벽돌이 미쳐 준비가 안 되었다든지 시멘트나 모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마련되지 않았을 경우에도 일을 하러 현장으로 나갔다가도 다시 돌아 와야만 한다.
영섭이 맡아 하는 조적 공사에서는 종종 이런 일도 생긴다.
이문은 별로 없고 머리만 아픈 조무래기 공사는 안 하려고 꼬리를 빼도 그 계통의 인격유지상 외면할 수 없는 작은 주택을 일년에 한두 번쯤은 지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아무리 시답잖은 일일지라도 설계도대로 시공을 해야 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라도 건물의 주인이 찾아 와서 ‘요긴 요렇게 좀 고쳐 주세요, 이 부분만은 꼭 이렇게 쌓아 주세요’ 하는 통에 골치를 앓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대개 그런 요구는 평당 시공가와는 상관이 없이 막무가내이기 때문에 대책이 안 서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런 날은 건물의 주인이 직접 현장으로 와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사다 먹이기도 하고, 담배를 주머니마다 찔러 주기도 한다. 술을 마신 후에는 그런대로 잘 넘어가면 다행인데, 유독 입이 걸고 여과없이 말을 하는 신지경씨가 밑도끝도 없는 욕을 누군가에게 하게 되면 문제가 일어난다. 이유도 없이 목적도 없는 싸움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서로들 기분이 나쁘다고 한잔, 싸움을 풀어 주느라고 한잔이다. 실랑이가 좀 잠잠해지면 이번에는 기분이 좋다고 누이 한잔 매부 한잔이다.
그런 날이면 영섭은 두 반장에게 전화를 건다.
“내일 신지경씨는 장부에 이름 올리지 말어.” 아예 지시를 한다.
술 마신 다음날은 의례히 일을 나오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해 놓고도 감감 무소식이기 때문이다. 신지경씨는 술마신 이튿날이면 아침부터 몸을 푼다고 한잔, 그 다음날은 또 해장을 한다고 한잔, 그러자니 한달에 일을 많이 하면 보름이요, 적은 달은 닷새를 한 적도 있게 된다.
하루는 숙희가 영섭에게 물었다.
“신지경씨네는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가요?”
“그 형님네야 만고강산이지 부창부수인데 무슨 걱정이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아 시골에 사는 형님네서 장이야 담아다 주겠다. 봄이면 들로 산으로 다니며 나물 뜯어 먹구, 여름이면 물고기 잡아다 매운탕 끓여 먹구, 가을엔 또 산에 나는 버섯이 다 지네 반찬이래지, 겨울이면 개구리 잡아다 몸 보신하지, 마누라는 맨날같이 고스톱 판에서 부식비 벌어 오지, 그만하면 만고강산 아닌가?”
“...... ”
“그 형수는 고스톱 판에서 끝발이 붙었다 하면 일주일을 안 들어 오기두 한대.”
“애들 밥은 어떻하구요.”
“밥? 밥이 아니라 찌개며 반찬은 그 형님이 더 잘 하잖아.”
“당신은 남의 집안 사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그 아저씬 속두 좋으네.”
“좋으나마나 그럼 어쩔거야. 부부싸움을 해두 육박전으로 들어 가면 신씨 형님이 되려 읃어 맞는데.”
“차암 별 일이야. 당신은 무슨 남자가 남의 집 부부 싸움에 누가 이기구 지는 것까지두 그렇게 잘 알아요?”
“아! 지가 술이 취하면 찔찔 울면서 얘길 하니까 알지 낸들 아나?”
숙희가 이런 저런 생각에 마냥 젖어 드는데 원씨가 담배불을 비벼 끄며 말문을 연다.
“그 사람 말예요. 북어두요 얼마나 기를 쓰고 껍질을 까는지 한달이 오륙십만원씩은 벌어요.”
“세상에, 그러니 그렇게 저나 남이나 심신을 달달 복지.”
“북어 갖구 오는 할머니두요 이게 꽉 잡구 흔들어요. 이게 워낙 껍질을 많이 까니까 할머니가 가운데서 먹는 게 많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두 꼼짝두 못 하는 거죠 뭐.”
“하여간 별이 엄마는 누구든 제 손에 잡구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누만. 그런데 별이 아빠는 기술이 없냐, 돈을 못 버냐, 남보다 인물이 빠지냐,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잡혀 사는 거야? 나이두 여섯 살이나 아래겠다 아직두 어디가면 총각소리 들을텐데. 사실 호적에두 총각이네 뭐.”
“...... ”
숙희는 저도 모르게 속엣말을 털어 놓고 말았다. 사실 그랬다. 누군가가 조신하게 인내하면서 원씨를 인정해 주고, 바라보며 잘 다독거린다면 얼마든지 참신하게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더 없이 순수하고 우직하다가도 무언가 자기 마음에 마땅치 않거나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눈동자에 핏줄이 서고 근육마다에 힘을 주어 마치 육백만불의 사나이같이 변하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니, 참 걱정은 걱정이다.
원씨는 또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문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 말고 시계를 보더니
“좀 늦으시네요?” 하고 턱을 올리고 말머리를 돌린다.
“올 때 됐어. 금방 온다 그랬으니까.”
입에 물었던 담배를 손가락 끝으로 세워 들고는 공연스레 후후 입바람만 분다.
숙희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딸네미 키우느라 그렇게도 재미있어 하더니만...... ’
원씨는 한동안 삶의 절정에서 행복에 겨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난 스승의 날만 해도 저에게는 영섭이 스승이라며 영섭의 내의를 사 들고 왔다. 그날만 해도 식사를 하다 말고도 별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코멩멩이 소리로 ‘별아!, 별아!, 아빠뽀뽀 아빠뽀뽀’하는 모습에 영섭과 숙희도 함께 즐거워 했다.
“사모님 저 말예유 너무너무 행복해서 말예유 닭살이 다 올라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별이의 재롱에 원씨는 출퇴근 시간을 칼날같이 지키며 아이에게만 눈을 맞추고, 아이의 얘기로 하루를 보내고 벽돌을 쌓으면서도 벽돌 한장 한장에 아이의 얼굴을 그린다고 했다.
회식을 할 때에도 원씨는 절대로 술만은 마시지 않았으며 별이 준다고 딸 몫을 챙겨도 의례히 그러려니들 했다.
원씨는 오로지 아이에게만 빠져서 살았다. 아내의 말이나 행동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직 별이를 위해서만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렸다.
몇 해가 지나자 원씨는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함께 일하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과의 왕래에서는 채울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언젠가 원씨가 예고도 없이 숙희네 집에 온 적이 있다. 잠이 든 영섭대신 숙희가 말 상대를 해 주었다.
“사모님 말예유 난 말예유, 개 목걸이 같이 끈이 달려 있어서 별이 엄마가 조종하는 대루 쪼루루거리며 살구 있어요.”
“그게 행복한 거지 자상한 남편이구.”
“근대 말예유 뭔지 모르겠는데 자꾸 답답해유.”
“답답하긴 새끼 잘 크겠다, 전셋방 얻었겠다, 원씨 이제 좀 살만해 지니까 복에 겨워 이러는구나.”
“그게 아니구유, 하여간 나이 많은 여자랑 살아서 그런지. 이게 뭔가 잘 못 된거 같애유.”
“쓸데 없는 소리 하구 있네. 그런 소리 말구 부지런히 일해서 얼른 집두 장만해야지.”
“하여간 우리는 사는 게 다른 집하구 틀려요.”
숙희는 원씨의 하소연인지 응석인지를 반은 묵인하고 반은 달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한 가족같이 지내더라도 부부간의 문제에 대하여는 숙희로서도 어찌할 수 없이 조언만 할 뿐이었다.
숙희는 어느 가정이든 어느 부부든 문제가 없이 사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단지 평화롭던 일상 속으로 비바람이 몰아칠 때 서로가 상대방을 어느만큼 이해해 주고 얼마나 참아주며 어느 만큼 슬기롭게 난관을 극복해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사랑이 돈독해 지느냐 허술해 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숙희는 원씨네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원씨가 다녀가고 사흘쯤 지났을까. 영섭이 들어와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를 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사모님이세요? 저 별이 엄만데 사장님 들어 오셨어요?”
“응, 들어 왔어.”
“몇시에 들어 오셨어요?”
“요새야 뭐 바쁜 일 있나? 맨날 그 시간이지.”
“별이 아빠가 안 들어 와서요.”
“곧 들어 오겠지.”
“신씨 아저씨두 제 시간에 차를 내려 줬다는데 그 아저씨 집에서 여기까지 10분이면 오는 거리인데 어떻게 된 거죠?”
“무슨 볼 일이 생긴 거겠지 기다려 봐.”
수건을 든 채 숙희의 옆에 섰던 영섭이 인상을 찌푸리며 안방으로 들어 간다.
“아니, 사모님 이 사람은요 제 시간에 안 들어 오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지까짓 게 볼일은 무슨 볼 일, 이 인간이 또 어디로 샌 거야 도데체.”
숙희는 뭐라 할 말도 없고 그냥 끊기도 그래서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별이 엄마도 숙희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주춤하더니
“사장님 좀 바꿔 주세요.” 라며 영섭을 찾는다.
숙희가 전화기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영섭은 적당히 끊지 못하고 자기에게까지 넘기느냐며 마지못해 전화기를 받는다. 별이 엄마가 무얼 물었는지 관자놀이에 힘을 주며
“오늘 회식 안 했어요. 즈이들끼리 내려서 한 잔 하는지도 모르죠. 아 다들 들어 왔대요? 그럼 나두 모르겠는데요.”
“...... ”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담배라두 사러 갔겠죠.”
몇 마디를 더 오가더니 영섭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말을 눌렀다.
그날 이후 별이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영섭이 받든 숙희가 받든 게의치 않고 오늘은 누구누구가 일을 했느냐, 어느 현장에서 일을 했느냐 물었다. 그리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집에도 전화를 걸어서 별이 아빠가 어딜 갔는지, 갈 만한 곳은 어디인지, 그동안 같이 갔던 곳은 어디어디인지, 왜 없어졌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또 다시 숙희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도 별이 아빠가 있을 만한 곳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고, 별이 아빠를 죽일 놈 살릴 놈 욕을 하며 횡설수설 했다.
사흘만에 집에 들어 온 원씨는 술이 고주망테가 되어 별이가 보고 싶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별이 엄마는 원씨의 귀가가 10분만 늦어도 숙희네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구하고 일을 했냐, 차는 어디어디서 누구누구를 내려 줬냐, 현장에서는 무슨 얘기를 했느냐, 일하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 를 더 세세히 캐 물었다.
숙희는 원씨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삶의 순간순간을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 가는 것같아 마음이 아프다. 마치 물가에 내 놓은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오지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숙희 자신도 머리가 아프기는 매 한 가지이다.
재떨이에는 벌써 원씨가 피운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숙희는 말이 난 김에 할 말 좀 다 하고 궁금한 것도 물어 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원씨를 향해서 물었다.
“그리구 참 차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별이 엄마가 하두 떠드는 소리에 귀가 다 따갑드라.”
“죄송해요오.”
피우던 담배를 손가락 끝에 대고 공기돌 굴리듯 굴리며 예의 그 미안해요 죄송해요로 얼버무린다.
“무슨 벌금이 백만원이구 안 내면 징역을 가야 된다 그러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말예요 사모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른 침을 삼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말예요 사모님, 차를 끌구 다니다 콱 죽어 버릴라 그래두 새끼가 눈에 밟혀 못 죽겠지. 정말 속에서 불이 나드라구요. 남은 창자에서 전쟁이 일어나 죽겠는데 앞에 가는 차에 왠 쬐끄만 애들이 타가지구 비비적대며 알짱대는데 약올라서 환장하겠드라구요. 크락숀을 눌러두 비켜 주지두 않지, 추월을 하구 싶어두 밴뎅이 속만한 길에 왠 놈의 차가 그렇게 많이들 밀려 오는지, 그래 기회를 봐 가지구 적당히 앞 차의 꽁무니를 부대면서 디리 그냥 밟았어요. 그리구는 고속도로로 올라 가서 한참을 달리는데 싸이렌 차가 쫓아 오잖아요.”
“세상에, 게네들이 신고한 거겠지. 부딪친 데가 깨졌을 거 아냐?”
“아마 좀 나갔을 거예요.”
“게다가 술도 먹었을 거 아냐?”
“맨날 쩔어서 다녔죠 뭐.”
“술먹구 일부러 치대구 달아 났으니 이건 완전히 살인 행위였네.”
“근대 말예유 사모님, 이게 은근히 오기가 생기드라구요. 에라 모르겠다 하구 그냥 내뺐어요. 뒤에서는 계속 싸이렌을 울리며 쫓아오지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차들은 그냥 부대면서 내 쏘는데 한 마디로 스릴이 있드라구요.”
“세상에 제 정신이 아니었구먼.”
“죽기를 각오한 놈이 걸리는 게 있나요? 뒤에서 싸이렌 소리가 계속 나니까 앞에 가던 차들이 좌악 옆으로 비켜서는데 한 마디로 속이 후련하드라구요. 에라,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하구 그냥 달렸죠 뭐.”
“영화의 한 장면이었었겠네.”
“얼마를 갔는지 차는 몇 대를 긁었는지 신나게 달리는데 저 멀리 콘테이너 차가 도로를 가로막고 있드라구요. 차라리 잘 됐다 싶드라구요. 그냥 부딪쳐 화끈하게 부서져 죽으면 속이 후련하겠드라구요. 근대 말예유, 가까이 가니까 말예유, 차마 그대로 꽂을 수가 없드리구요. 아, 자꾸 별이 얼굴이 알짤거리니이 그래서 할 수 없이 차를 세웠죠. 그랬더니 서너 명의 경찰이 나를 향해서 총을 겨누고 섰고 두 놈이 총을 든 채로 양쪽에서 다가오드라구요. 한 놈은 내 귓구멍에다 총을 대고 또 한 놈이 뒷덜미를 낚아채며 끌어 내리더라구요. 그리구는 그대로 수갑을 채운 채 끌려가서는 거덜나게 읃어 맞았어요.”
“완전히 공공칠 시리즈구먼.”
“이 놈들이 실컷 패다 지쳤는지 담배를 피면서 나두 한 대 불을 붙여 주드라구요. 그 담배를 빠는데 말예요, 쳇증이 다 내려가는 거 같드라구요. 그때 내 생각에 이대로 있다가는 또 감방 신세를 면치 못할 거 같드라구요. 요번에 빵에 들어 가면 별이 보고 싶어서 아마 미칠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거 죽겠드라구요. 그래 마침 집 나갈 때 보험회사에서 대출을 받았던 돈이 주머니에 남았길레 이놈들한테 사정 얘기를 했어요.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지를 것도 아니고 도망다녀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이다. 다만 가정사로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술을 좀 먹구 운전을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라며 주머니에서 백만원다발 하나를 꺼내 놓았어요. 그리구 인간적으로 선처를 바란다구 사정을 했어요. 그랬더니 이놈들이 즈이들끼리 눈을 맞추며 하는 말이 ‘아무리 괴로워두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좋은 말로 벌점 좀 깎이구 약간의 벌금이 나갈거니가 그리 알라 그러면서 수갑을 풀어 주드라구요. 그리구는 나긋나긋하게 집 부근가지 태워다 줬어요. 그랬으면서 이놈들이 또 벌금딱지를 백만원이나 보낸 거예요.”
“세상에! 누구 말마따나 징역 안 간 것만두 다행이네. 아이구, 정말이지 별이 엄마가 떼떼거릴만두 하다.”
“근대 이놈들이 차를 줘야 말이죠.”
“벌금을 내야 차를 주겠지. 그리구 그 부댔던 차들은 다 어떻게 됐어?”
“내가 알아요? 백만원 속에 다 끼어 있는 거겠죠.”
숙희는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매 순간마다 처절하게 온 몸으로 부딪쳐 피흘리며 살아가는 사람, 습관처럼 본능처럼 사고 속에 묻혀 살아 가는 사람, 사고 속에 있을 때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솟는 사람, 저 사람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고의 계단을 거슬러 올라야 궁그러질까. 그러자니 자신은 또 얼마나 심신이 고달플까.
한동안 숙희는 원씨와 단 둘이 있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을 했던가. 부인에게마저 이해를 얻지 못하고 세상 속으로도 섞여들지 못한 채 늘 떠돌기만 하는 사람. 어머니의 분별없는 사랑은 대책 없는 행동을 자신있게 저지르도록 만들어 놓았고, 형제도 그를 외면하고, 세상은 깎은 듯 너무 사무적이고......
숙희는 자숫물 통에 담겨있는 행주를 흔들어 빨면서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도덕책에 쓰여진대로 철저히 살아 왔길레 원씨를 불편해 하는지...... 담배 연기로 도너츠 모양을 만드느라 입을 오무리는 원씨를 바라보며 저 사람은 지금 어디를 향해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새삼 눈물이 맺힌다.
첫댓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노가다 원씨는 이 사회의 밑바닥 삶이 다그렇듯이 산다는 일이 힘에 겨운 인생이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고 하루 세끼 밥걱정과 몸 뉘일 한칸 방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 뼈빠지게 노동과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그들이 우리 사회의 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은 과연 모범적이고 도덕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