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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비의 글
서양인들의 묘지는 저 멀리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네 가운데 혹은 교회당 뜰에 있습니다. 거기 가지런히 줄을 지어 서 있는 묘비에는 앞서 간 이에 대한 추모의 글이나 아쉬움의 인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묘지를 돌며 묘비들을 읽고 다니다 어떤 묘 앞에서 발길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 묘비의 글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글은 단 세 줄이었습니다."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두 번째 줄이 이어졌습니다."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이 글을 읽자 그는 '이게 그냥 재미로 쓴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세를 가다듬고 긴장된 마음으로 세 번째 줄을 읽었습니다."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죽음에 대한 준비만큼 엄숙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는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바로 '오늘'을 결코 장난처럼 살지 않는 것입니다.
- 이진우 / 기윤실 집행위원 -
▣ 서서히 죽어 가는 개구리
어떤 사람이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어 죽이는 방법을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서 고통 없이 죽어 가게 할 수 없을까?" 시험 삼아 한 마리를 뜨거운 물에 넣었더니 개구리는 개굴거리며 뛰쳐나왔다. 또 한 마리를 넣었더니 빠져 나오지 못했지만 무척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었다. 다음으로 그는 개구리를 적당히 차가운 물 속에 넣었다. 개구리는 아무 생각 없이 헤엄을 쳐댔다. 이것을 보며 그는 조금씩 불을 땠다. 물의 온도는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헤엄을 치던 개구리는 아무런 소동을 부리지 않고 뜨거운 물에서 죽어 갔다. 그 사람은 소리쳤다. "바로 이거야. 서서히 온도를 높여 가는 것!"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서서히 나이들어 죽어 가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하엘 천사톨스토이의 작품 [인간은 무엇을 사는가]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하엘이란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지상에서 구두직공이 되어 일을 했다. 미하엘은 일하면서 몇가지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인간에게 베풀어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어느 날 한 신사가 천사인 줄 모르는 이 구두직공에게 "한 일년동안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미하엘이 보니 그 신사 옆에 죽음의 천사가 있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1년"을 운위하는 것을 본 미하엘은 "인간에게 베풀어 있지 않은 것" 이 죽음의 날짜임을 알고 엷게 웃는다. 언제 호흡이 멎을지 모르는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구원과 영생이다."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없음이니라"(잠27:1).
▣ 필립 2세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이상한 신하 한 사람을 두었다고 한다. 그는 아침마다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대왕의 침실 앞에서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menber, that you must die!)."라고 한 마디 말만 하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죽음을 당해야 한다.
▣ 관속의 인물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기독교대회가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다. 이때, 대회장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장례식을 거행하고서 회의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또 "오늘 장례를 치를 분은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이 여러분들이 각자 한 사람씩 이 옆방에 가셔서 놓여있는 관속을 들여다 보시고 누구인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그래서 모든 교회 대표들은 그의 인도에 따라 행렬을 지어 옆방으로 안내를 받게 되었다. 옆방에 들어선 대의원들은 한 사람씩 거기에 놓여있는 관속을 들여다 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관속을 들여다 본 사람은 깜짝 놀라고는 이내 모두 엄숙해졌다. 그리고 모두 깊이 뉘우쳤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관속에 거울을 깔아 두었으므로 들여다 보는 사람마다 자기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된 까닭이었다. 곧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서 관속에 들어가 장사를 지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 죽을 준비
어느 신학교교수가 학생들에게 ‘내일 죽는다’라는 가정을 하고 유서를 써 보라고 했다. 변호사를 통해 재산 분배에 대해 써 놓는 그런 유서가 아니라, ‘자신이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중요하고 유일한 말이 무엇이냐’라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내 삶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나의 죽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 마음대로 살았던 많은 날들이 덧없이 느껴진다. 후회하고 회개해도 나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 남은 삶을 최대한 활용해서 알차게 사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일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불려 갔을 때 하나님이 나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불러 주신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앞으로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첫째,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겠다. 둘째, 육신의 움직임이 가능할 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해야겠다. 셋째,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필요 없는 것, 어쩌다 필요한 것 같아 보관하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겠다. 넷째, 세상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겠다. 다섯째, 죽을 때 웃으며 아름답게 죽을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겠다. 나는 아름다운 순교나 위대한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게 주님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남은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것만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 아마 내가 남길 유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요지일 것이다.
- 「예수 안경」/ 신정하
▣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 때 내란 음모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는 영하 50도가 되는 겨울날 형장에 끌려와 기둥에 묶였다. 사형 집행 시간을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딱 5분 남아 있었다. 28년을 살아왔지만 단 5분이 이렇게 천금 같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5분을 어떻게 쓸까 생각해 봤다. 형장에 함께 끌려온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는 데 2분, 오늘까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는 데 2분을 쓰기로 했다. 남은 1분은 이 시간까지 발붙이고 살던 땅과 자연을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데 2분이 흘렀다. 이제 삶을 정리하자니 문득 3분 뒤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찔했다. 다시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순간순간을 정말 값지게 쓰련만! 이윽고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그때였다. 형장이 떠들썩하더니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황제의 특사령(特赦令)을 받고 온 병사였다. 사형을 면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는 동안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명작을 남겼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때 사형으로 죽지 않은 것은, 아직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며, 그분의 어떠한 목적과 계획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들을 취하며 사는 것이다.
▣ 죽음에 이르는 병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이라고 하는 책은 이제는 고전입니다. 아마 대학시절에 모두가 한 번쯤은 읽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책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인간상 을 지적하는 이야기, 재미있는 설화가 있습니다.어떤 농부 한 사람이 아침 일찍이 맨발로, 양말도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도시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궂은일을 해서 그 날 따라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한 켤레의 양말을 사서 신고 또 구두를 사서 신었습니다. 그리고도 돈이 꽤 많이 남았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그는 술을 마셨습니다. 만취상태가 돼 가지고 비틀거리며 자기 집을 향하여 시골로 돌아오다가 길 한 가운데서 그는 취기가 너무 높아져서 만취된 상태로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아주 큰 대자로 벌떡 누워서 잠을 자는데 마침 마차 하나가 지나가다가 마차를 세워놓고 마차에 탄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아 길을 비켜. 만일에 비키지 않으면 그대로 네 다리 위로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다. 네 발 위로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취된 농부는 그때야 눈을 뜨고 정신을 좀 차리고 하는 말입니다. 자기 발을 보고 양말과 신을 신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의 발이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지나가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시오. 이것은 내 발이 아니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자기 발이 신발을 벗었을 때 자기 거라고 생각하고 술 취한 가운데 신발을 신어놓고 이것은 내 발이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마음대로 지나가라고 이 만취한 사람의 형편없는 소리, 우습게 들리지요. 바로 인간의 혼란스러운 모습이 이러하다는 겁니다.▣ 죽은 딸을 기념한 종소리 예산군 삽교면 신가리의 유병수씨는 일찍이 유학을 배워서 이름이 높았는데 얼마 전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그는 슬하에 딸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딸이 나이가 차서 같은 군에 있는 이씨 가문으로 출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딸이 4년 만에 남편을 잃자 다시 친정에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갔다. 그러던 중 딸이 병이 들어 몇 년 동안 부모가 열심히 간호했으나 결국 아버지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해 주세요" 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고 말았다. 딸이 죽은 후 유씨는 딸의 신앙을 생각하여 삽교예배당에 종을 기부하여 종소리로 자는 영혼들을 인도했다.
▣ 기독교인의 죽음의 의미
누군가가 죽음이란 자연에 대한 빚을 갚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은행에서 돈을 바꾸는 것이다. 지저분한 지폐를 실속 있는 황금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죽음이란 오랫동안 가질 수 없는 귀찮은 육체를 버리고 영원한 보물들, 자유, 승리, 지식, 환희를 얻는 것이다.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계 9:18)
▣ 할머니와 하나님
한 소녀가 자신의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들과 죽음을 멋지게 설명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어머니에게 그 소녀가 말한 것이다. "엄마, 엄마는 항상 제게 할머니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나님과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하셨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냐 하면 말이에요. 어느 날 하나님과 할머니가 아주 오랜 산책을 나갔어요.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는데 피곤해 보이는구나. 그냥 나와 함께 내 집으로 가서 거기서 지내렴.' 그래서 할머니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 집으로 가신 거예요." * 기도 : 거룩하신 하나님, 제 안에 주님 앞에서도 저를 주장하는 교만함이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과 다투고 시기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를 다스려주셔서 주님이 보이신 평화와 거룩함을 이루게 하소서.
▣ 하나님이 맡기신 보석
어떤 랍비가 안식일에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두 아이가 집에서 죽고 말았다. 아내는 아이들의 시체를 이층으로 옮긴 뒤 흰 천으로 덮어 주었다. 마침내 랍비가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귀중한 보석을 잘 보관해 달라고 맡기고 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주인이 나타나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했어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어렵지 않다는 듯이 '말할 것도 없이 맡은 보석은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되겠지.' 그때 아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실은 조금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셨던 귀중한 보석 두개를 찾아가지고 하늘로 돌아갔어요." 랍비는 아내의 말을 알아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한 사냥꾼 이야기
옛날에 사냥꾼이 있었는데, 사냥꾼이 독수리를 잡으려고 화살을 겨누면서 독수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수리는 자신이 죽을 줄도 모르고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독수리는 뱀을 잡으려고 노려보고 있었다. 사냥꾼이 뱀을 쳐다보았더니 뱀도 어딘가를 노려보았는데, 뱀은 꼼짝도 하지 않고 개구리를 노려보았다. 개구리도 마찬가지로 꿈쩍 않고 뭔가를 보고 있었는데, 개구리는 무당벌레를 잡으려고 노려보았다. 무당벌레도 꼼짝 않고 있었는데, 진딧물을 잡아먹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냥꾼은 그 먹이사슬을 보다가 슬그머니 화살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누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보는 것은 아닐까?'사냥꾼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죽음입니다. 인간은 죽음에 의해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의 대가로 인해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와같이 자신을 삼키려고 하는 죽음(사망)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살아갑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삶,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 개미와 무덤
바람에 날려간 풀씨가 어마어마하게 큰 무덤가에 떨어졌다. 아침이 되자 여기에 살고 있는 개미가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 왕릉은 만평도 넘어. 그리고 돌로 된 근엄한 대감도 있고 말도 있지." "그럼 그들이 저기 저 나무 위에서 노래하고 있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니?" 개미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살아 있지 않아. 그냥 장식으로 서 있는 거야." "그런데 뭐가 자랑거리가 되니? 나는 작고 힘이 약한 풀이지만 아무데나 떨어져도 뿌리를 내리고 살지. 이름을 갖지 못했지만 꽃을 피우기도 하고 풀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기도 하는 걸." 개미가 반박했다. "물론, 살아있음이 중요하지. 그러나 이 왕릉을 보고 느껴지는 거 없어? 네가 못 보아서 그렇지 이 무덤 속에 들어가면 왕관도 있고 큰 칼도 있어." "그건 진짜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야. 진짜는 왕관이나 칼이 아니라 위대한 영혼에 의해 정복되는 거야." 한참 후 개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이제야 알겠다. 여기서 구경꾼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나 주워먹고 살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뜻을 가꾸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들녁으로 나가야겠어."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울타리 밑에 핀 채송화처럼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의 주변에 향기를 전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 죽지 않는 법
옛날 한나라의 무제는 장생불사를 위하여 승로반에 찬 이슬을 받아 마셨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방 삼신산에 동남동녀 500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동방의 삼신산이란 우리나라의 금강산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강산이 중국의 산들보다 훨씬 영적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보냈지만 구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물론 먹고 불로장생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금강산에서 불로초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리석어 불로장생하려고는 하지만 영생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늙지 않는 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을 얻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지 않는 법을 아는 이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이사가는 날
이 세상에서의 수명이 다해 가고 있던 무디가 장차 그가 얻게 될 영광을 환상 중에 흘긋 보았다. 그러고는 기쁨에 넘쳐 외웠다. "하늘 문이 열러 나는 맞는구나! 이것이 죽음이라면 참으로 달콤한 것이로군. 여기에는 슬픔이라곤 없어!" 그의 침대 곁에 있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아니에요. 꿈을 꾸고 계신 거예요." "아니야, 나는 꿈꾸고 있는 게 아니야,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았단다. 내가 승리한거야. 나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있는 걸 보았어." 기독교인에게 있어 죽음이란 바로 '천한 육체' 또는 '낮은 몸'을 버리고 이사 가는 날을 의미한다. 죽음으로써 우리는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이다. 한 친구가 존 퀸시 아담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봐, 아담스! 오늘은 좀 어떤가?" 그러자 여든 살 된 아담스가 대답했다. "고맙네, 아담스는 잘 지내고 있다네, 단지 살고 있는 집이 점차 살기에 불편해지는 것말고는 그러나 나는 그 집이 아니니까 별 상관이 없지. 이제 곧 집을 나와야 할 것 같아. 어쨌든 아담스는 잘 지내고 있다네. 고맙네!"
* 참조: 고후5:8, 빌3:21, 고전15:12-16
▣ 정복자 살라딘의 죽음
1193년에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공포였던 대(大)술탄 살라딘이 죽었다. 그가 인간의 연약함과 세속적 명예의 허망함을 깨닫고서 그가 죽을 때 그의 장례식에서는 그 어떤 장중한 절차도 사용하지 말되 단 그의 셔츠를 기(旗)처럼 창 끝에 붙들어 매서 그의 시신보다 앞서 기처럼 들고 가게 했다. 그러고 그 앞에는 평범한 사제가 걸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라고 명령했다. "동양의 정복자 살라딘은 그가 현생에서 가졌던 모든 위대함과 부 가운데서 오직 그의 셔츠만을 갖고 갔다." 그는 약 16년간 큰 존경을 받으며 치세했던 사람이다.
* 참조: 왕하8:12, 느6:10, 삼하23:21
▣ 아이젠하워 임종
얼마 전 세상을 떠나간 '아이젠하워'전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임종의 순간 빌리 그래함 목사가 30분간 면회 시간을 마치고 나오려니까 아이젠하워가 빌리 그래함 목사의 손을 잡으며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제게는 확신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이 아이젠하워의 마지막 부탁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자기 주머니에서 성경을 꺼내놓고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무슨 업적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내 모든 지나간 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 그분을 믿는 그 순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 빌리그래함 목사의 인도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함께 기도가 끝났을 때, 아이젠하워가 마지막 말을 남겼는데, "빌리, 감사하오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소!"그렇게 구원 얻는 단 한 가지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미안하지만 틀림없이 지옥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 스펄전의 마지막 말
설교자 스펄전은 부인과 함께 여러가지 질병으로 고생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병석에 누워 있는 아내를 돌보면서 살아가는 스펄젼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부인을 먼저 천국에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이 아직 오십대 초반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이세상을 하직하며 위대한 설교자가 남긴 마지막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은 바로 하나님의 선을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 줍니다. 평생을 복음과 함께 살다 간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여보, 나는 좋으신 하나님과 함께 그토록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오"
▣ 죽음의 키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 앨리스 공주가 있었습니다. 그 공주에게는 네 살된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어린 아들이 당시에는 불치의 병이요 위험한 전염병으로 알려진 블랙 디프테리아라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공주의 주치의는 공주에게 절대로 아들 곁에 가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거기다 앨리스 공주의 체질은 유난히도 약했다고 합니다. 앨리스 공주는 할 수 없이 아들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넓은 방 한구석에 서서 멀찌감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을 간호하던 간호사가 침대 곁에 갔을 때 멀리 서 있는 엄마를 보며 간호사에게 어린 아들은 말했습니다.
“왜 우리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가까이 와서 입맞춰 주지 솥나요?” 이 나즈막한 목소리를 구석에 서서 듣던 엄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단숨에 달려가 “미안해, 엄마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한단다”라고 말하면서 어린 아들을 꼭 껴안았습니다. 의사의 경고도 아랑곳 없이 그녀는 깊은 모성애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결국 엄마 앨리스는 그 위험한 전염병에 걸려 수주가 지난 어느 날 아들과 함께 나란히 땅에 묻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어머니는 ‘죽음의 키스’를 통하여 어머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보이고 죽은 것입니다. 사랑은 꼭 귀한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앨리스의 죽음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면서 값을 치른 그 엄청나게 고귀한 사랑의 한 희미한 표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패기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한 대학생이 노교수를 찾아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때 노교수는 예상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 그럴 것 없네. 15분 정도면 충분하지. 자넨 죽을 준비가 되어 있나?” 학생은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도리어 반문했습니다. “미리 준비할 것 있나요? 15분 전에 준비하면 된다고 그러셨잖아요?” 학생이 뒤돌아 나가려고 하자 노교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그럼, 자네는 언제 죽을지 알고 있나?”
죽음에 임박해서는 15분 정도면 준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 그 죽음이 임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의 재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예비하고 있을 때에는 그에게 복이 있으려니와 그렇지 못하고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여 악하게 생활하는 종이라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알지 못하나, 항상 예비하고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기도: “주님,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서 칭찬받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죽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쓰나미 해일처럼 다가오는 죽음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경 일본 도호쿠(동북) 지역에서 발생한 강도 9.0의 대지진과 15미터의 쓰나미 해일로 인하여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사망(12,787명 사망, 실종 14991명, 부상 4661명, 4월8일 일본경찰청 발표자료 참고)을 당하고 말았다. 경제적 손실은 약 20조 엔 정도가 되고 정상적으로 복구하는 데만 반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원전 폭발사고로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그런데 쓰나미 해일로 죽은 사람들이 지난 3월 11일 지진이 일어나기 한 시간 전에 어쩌면 쓰나미 해일 때문에 자신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자신이 죽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미리 대피를 해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대지진과 더불어 15미터의 쓰나미 해일이 일어나면서 높은 산 쪽으로 피신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바다 속에 휩쓸려 원치 않는 죽음의 길을 가고 말았다. 이처럼 죽음은 예상치 못한 때에 쓰나미 해일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종말의식을 갖고,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내일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모시고 복음적인 믿음으로 사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리라고 본다.
▣ 죽음에 대하여..
이 지구상에서 우리의 입장이라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것입니다. 지금은 마치 우리가 주인공인 것처럼 큰소리치며 살고 있지만, 잠시 후면 모두 다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일어 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확실한 일은 우리 모두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죽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으며....
죽음은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을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 현실보다 더 확실한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시기를....
죽음은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닥칠 것을 엄숙히 선고한 다음,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언제 죽음을 맞이해도....
두렵지 않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고 사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 눈앞의 일에만 급급하여....
잠시 후면 자신에게 확실하게 일어날 현실을 무시하고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언제 맞이해도 당황하지 않고 죽음 이후에 맞이할 더 행복한 삶을 준비를 해놓고 삽니다. 그렇게 준비된 삶을 살자고....
이 편지를 보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16,17절 말씀)
/이슬비 전도편지
▣ 의인의 죽음
본문: 잠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려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환난에서 면제된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환난은 예외가 아님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그는 말씀하십니다. 여기 환난의 보편성이 있습니다. 주님은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꼭 같이 내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보편적인 환난으로 우리는 인간됨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의인과 악인의 삶의 차별성은 환난을 직면하는 태도의 차이에 있습니다. 잠언 기자는 악인은 환난에 엎드려 진다고 했습니다. 악인은 궁극적으로 환난의 패배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환난에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악인도 오기로 환난을 버틸 수는 있어도 환난의 폭우속에서 인내의 의미를 고백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인이 직면하는 최대의 환난은 죽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 기자는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의인의 죽음에서도 가치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가 붙들고 있는 가치야말로 바로 그를 의인되게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는 환난과 더불어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환난 속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모든 순교 사건들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공통성은 그들의 삶과 죽음의 가치를 의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의 확신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덧없는 인생들의 설왕설래의 폭풍우가 지나가면 우리는 진실의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 죽음을 부르는 혀
본문: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로마 제국 시대 최고의 재담가는 ‘마르쿠스 키케로’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웅변술 덕분에 로마 최초로 국부 칭호를 듣고 집정관의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명성이 높아지자 그는 더욱 웅변술에 전력해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와 쌍벽을 이룰 만큼 높은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키케로는 웅변술에 부합할 만큼의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말재주만 믿고 남의 험담을 서슴지 않았고 자화자찬하는 버릇이 날로 심해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말년에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장점이 최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약점이 최대의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실수는 거의 말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말을 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 묵상: 다른 사람으로 자기를 칭찬하게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죽음이후를 생각하라
글래드스턴 경은 19세기 영국 자유당의 위대한 지도자로 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에게 한 젊은이가 인생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총리님, 제 인생 계획에 도움을 주십시오.” “그래, 자네는 무슨 일을 하려는가?” “예, 저는 법률학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그 다음은?” “예, 변호사가 되고자 합니다.” “그 다음은?” “죽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러자 젊은이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했습니다.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자 글래드스턴 총리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젊은이, 자네는 어리석은 사람일세. 집에 돌아가서 인생을 더 철저히 생각해보게나.” 인생이 현세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내세는 현세를 인도하는 등대이며 깃발입니다. 내세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만이 현세를 올바로게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피영민 목사(강남중앙침례교회)
▣ 숭고한 죽음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페스트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도시는 그야말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의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생각다 못해 총회를 연 의사들은 한 명씩 일어나 발언했다.
"페스트가 온 나라에 퍼져 날마다 수백 명이 죽어가고 있으니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런데 도대체 페스트의 원인을 어떻게 규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든 의학 서적을 훑어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
"그렇다면 단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페스트에 걸려 죽은 환자를 해부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아니오, 그것은 너무 치명적입니다. 해부하는 의사 역시 분명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의사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으면 이 페스트는 온 나라, 아니 온 세계로 삽시간에 번질 것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때 한 의사가 벌떡 일어섰다.
"내가 조국과 동족을 위해 생명을 바치겠소. 나는 여러분 앞에서 인류애와 기독교의 이름으로 내일 동이 틀 때에 시체를 해부하고 관찰한 바를 기록으로 남길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
그는 즉시 회의실을 떠나 경건한 기도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새벽, 규온이란 이름의 그 의사는 전날 밤 페스트로 죽은 사람의 방에 들어가 시술하는 동안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진찰 사항을 기록한 종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질병을 감염시키지 못하도록 그 종이들을 식초병에 넣고는 그 방에서 나왔다. 그 후 열두 시간만에 그는 죽었다.
▣ 대신 죽음의 깊은 의미
언젠가 신문에서 철길 건널목 사고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철길에서 놀고 있던 두 어린이가 기차가 오는 것도 모르고 놀고 있었습니다. 건널목을 지나가던 한 청년이 위급한 상황을 인지하고 두 어린이를 철길 밖으로 밀쳐 내면서 자신은 열차에 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두 아이의 부모는 자식을 잃은 청년의 부모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위로하며 그 가정을 도우면서 더불어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아이 둘을 대신한 청년의 생명이 아이들의 부모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부모가 청년의 부모 앞에 설 때마다 힘들어 하자 청년의 어머니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아이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신 죽은 것은 우리 아들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대신 죽은 분도 계십니다”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해, 믿음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이 부모는 그날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부모는 ‘대신 죽음’에 대해 가슴 가득 그 의미를 새기면서 오늘도 주님 앞에서 아름다운 삶을 엮어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순절에 그 청년의 죽임이 생각났습니다. 아니 그 청년 어머니의 아름다운 신앙이 생각났습니다. 그분이 아들을 잃고도 평안함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대신 죽음’의 깊은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대신 죽음’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도 좀더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쁨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 뒷맛 좋은 삶 / 서임중
▣ 죽음이 끝이라면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아주 낡고 허름한 집에서 보냈다. 한번은 지인들이 애덤스를 찾아와 물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지내시다니요” 애덤스는 손으로 신체부위를 번갈아 가리키며 설명했다. “집의 지붕과 같은 머리카락은 빠지고 집의 벽과 같은 늑골도 허물어졌어요. 이제 겨우 지팡이에 의지해 살고 있답니다” 방문객들은 딱한 표정으로 애덤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요. 저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답니다. 그곳은 정말 좋은 곳이지요”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영생의 소망. 이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인생은 한없이 비참할 뿐이다.
▣ 죽음을 앞둔 사람의 전도
타이타닉호가 침몰한지 4년 후 한 젊은이가 어느 모임에서 이렇게 간증했다.
“저는 그때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파편을 붙잡고 표류하는 내 곁으로 존 하퍼씨가 표류해 왔습니다. 그는 내게 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했지요.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매우 갈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파도에 잠겼던 그가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묻더군요.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역시 동일한 대답을 했지요. ‘아니오’ 그러나 저는 존 하퍼 목사의 마지막 피전도자였습니다” 청년은 구출된 후 독실한 신자가 됐다. 그의 간증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영혼을 구원한 존 하퍼 목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참 진리는 죽음 앞에서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한다.
/임한창
▣ 죽음의 가치
평생을 고결한 성품을 유지하며 교육에 몸바친 스승이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맞았다. 크게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스승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슬퍼하지 말아라. 가치있는 죽음은 삶에 의미와 사랑을 부여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러나 저희는 선생님께서 언제나 살아계셔서 저희를 지켜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침통한 어조로 말하자 스승은 대답했다.
『참으로 살아있는 것은 죽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꽃들을 보아라. 플라스틱 꽃만이 죽는 법이 없다』
▣ 죽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
미국에 있는 한 성도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들이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지만 장성하면서 발길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지만, 그때마다 아들의 논리에 자신이 압도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진정 하나님이 사랑의 신이라면 왜 태어날 때부터 불구자가 있게 하는가?”, “정말 하나님이 정의의 신이라면 어떻게 이 땅에 불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는가”, “정녕 하나님이 전능의 신이라면 어찌 이 땅에 그토록 숱한 재난이 있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아들의 반론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분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장을 드렸다. “만약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 버린다면 아드님의 주장이 백 번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코 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후에 다른 삶이 있다면 아드님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한평생 영원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불의한 자로 인해 고통 받기에 영원을 사모할 수밖에 없다면, 재난을 당했기에 비로소 영원에 대해 눈뜨는 자가 되었다면, 그보다 더 복된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져서 영원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그야말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아드님에게 신앙을 권유하려 하시지 말고 머지않아 반드시 관 속에 시체로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십시오. 언젠가 아드님이 죽음이란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것임을 인식하게 될 때, 그는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신실하게 / 이재철
▣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자.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생에서는 태어난다고 한단다."
이 태아는 이렇게 항의할는지 모른다.
"싫어요. 난 여기가 좋아요. 먹을 것도 있지요. 따뜻하지요. 사랑받지요. 보호받지요. 너무 편하고 좋아요. 여기서 나가는건 싫어요."
그러나 태아는 자궁 속에서 예정된 시간을 끝내고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스런 두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스런 엄마의 품에 안기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참 좋구나.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곳보다 더 좋아. 이곳 생활이 옛날 생활보다 훨씬 좋아."
이렇게 해서 행복한 유년시절이 흘러가고 아이는 청년이 되어 보람차고 의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며 성인이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그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난 여기가 좋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앞에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이 그를 내려다 보고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복이 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원의 샘 / 신재국
▣ 다이너마이트의 황제 사망
한 거부가 신문을 읽다가 자신의 사망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에는 ‘다이너마이트의 황제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신문기사는 자신을 ‘죽음의 상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라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살상무기를 만들어 일약 거부가 됐다. 그는 이 무기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죽음의 상인’이었다” 그는 이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이 기사는 명백한 오보였다. 신문기자가 이 사람의 형의 죽음을 잘못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만약 내가 지금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며 인류에게 공포를 얀겨준 죄악을 참회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납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 사람들을 위한 상을 만들었다. 이 사람이 바로 ‘노벨상’을 만든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 신문의 오보가 결국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노벨상을 만들었다.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미국의 어린 소년 하나가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선고받은 그 날부터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의 내용을 어린 아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구절을 영어로 읽으면 꼭 다섯 글자입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꼽으면서 이 말씀을 가슴에 심었습니다. 특별히 네 번째 손가락을 꼽을 때는 아들의 손에 힘을 주어 쥐면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고 너의 목자가 되신다면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 없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너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거야. 우리가 그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너의 목자로 신뢰하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두 시간 후, 이 어린 소년은 눈을 감았습니다. 차디차게 식어가는 다들의 모습을 본 순간 어머니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은 죽어가면서 자기의 오른 손으로 왼손의 네 번째 손가락을 꼭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어린 소년은 하니님을 의지하고 그 영원한 집을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을 지라도 받을 수 있는 주의 도움이 있습니다. 그의 지팡이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실 것입니다.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새벽 사슴의 노래 / 이동원
▣ 사망의 줄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주인이 없는 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개를 무섭게 생긴 사내가 질질 끌고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중년의 사내는 그 개의 목에 굵은 철사 줄을 걸어놓았다. 그 개는 목에 통증이 느껴지기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그 사내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 중년의 사내는 힘이 없는 그 개를 끌고 매향동 다리 앞까지 왔다. 그리곤 그 개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 다리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그 사내는 그 철사 줄을 서서히 당겼다. 그 개는 눈을 허옇게 뜨고 살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지만 그 발들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그 개의 입가에서는 거품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 사내의 눈동자에서는 섬뜩한 살기가 번뜩였다. 빨리 그 개를 죽여서 다리 밑에서 맛있는 보신탕을 끓여 먹겠다는 못된 심보가 엿보였다. 나는 그 개가 너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개를 살려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사내의 매서운 눈빛과 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리 밑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개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제발,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동네 아저씨들이 지나가면서 그 사내를 심하게 야단쳤다. 그 매향동 다리는 동네사람들이 개천을 건너기 위하여 세운 것이지, 개를 잡아 죽이는 장소가 결코 아니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그 사내는 그 개를 죽이지 못한 대신에 어디론가 다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한 번 혼이 난 개는 그 사내에게 다시 끌려가지 않으려고 네 발로 억세게 버텼다. 그 사내는 있는 힘을 다해 그 개를 잡아끌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 마디씩 그 사내에게 욕을 하자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그 개의 목에 걸려있던 굵은 철사 줄을 빼내어 황급히 달아나고 말았다.
그 개는 구사일생으로 굵은 철사 줄에서 벗어나게 되자, 겁먹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쏜살같이 달아나고 말았다. 그야말로 죽음의 위기에서 그 개는 간신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 개는 꼬리를 밑으로 내리고, 그 사내가 걸어가는 쪽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개의 목에 걸려 있었던 그 굵은 철사 줄은 죽음의 올가미였다. 그 굵은 철사 줄을 벗지 못하는 한, 그 개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거반 다름이 없었던 상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인간들에게도 사망의 줄이 있다. 그것이 죄이다. 사단은 그 사망의 굵은 철사 줄을 인간들의 목에 걸고 악착같이 집요하게 잡아당긴다. 지옥에 떨어질 때까지 그 줄을 놓지 않고 잡아당기는 존재가 바로 악한 마귀이다. 그 사망의 줄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 분을 망각해선 안 된다.
/김학규
▣ 극작가 윌슨의 사망
얼마전 미국의 유명한 극작가 윌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남북전쟁 세대에서부터 과거를 잊은 신세대 흑인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20세기 흑인의 삶의 이모저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펜스’라는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이 외에도 6편의 연극이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할 만큼 탁월함을 인정받은 작가입니다. 이러한 윌슨은 독일 이민 가정 출신으로, 고교를 중퇴한 뒤 공공도서관에서 독학했다고 합니다. 짐꾼과 접시닦이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전전하다 1965년 중고 타자기를 구해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3년 뒤 극작가로 변신해 뉴욕 연극비평가협회상을 7차례나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꼭 모든 것이 갖춰진 여건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계속해서 도전하고, 부지런히 순간순간을 살아가십시오. 훗날 뒤돌아 보았을 때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소망과 열정을 가지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을 향한 열심과 능력을 부어주소서.
* 묵상: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하려고 시간 끌고 있는 일은 없는지 점검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사망 선고
어느 불치병 환자가 자원해서 실험 연구 대상자가 되었다. 사망 선고는 그에게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그는 어떤 위로의 말이나 비관적인 판정에도 동요되지 않고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파고들며 열심히 병마와 맞서 싸웠다. 그는 번거로운 절차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았다. 만일 어디서든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그는 그곳에 갈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찾아냈을 것이다. 검증되지 않았거나 사용된 적이 없는 약이 있다면, 그는 그 약을 구하기 위해 암거래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만약 내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진단을 받았다면, 아마 나도 그랬을 것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육체적인 건강이나 생명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심하게 동요한다. 그러나 영적인 건강이 위협을 받을 때는 - 만성적이고 영구적인 마음의 병에 걸렸을 때는 -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암이나 장염이나 감기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은 이미 발견되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주어진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치료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휴식」/ 마크 부캐넌
▣ 최후의 연주
본문 :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타이타닉이란 영화를 보면 마지막 즈음에 침몰하는 배 안에서 사람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찬송가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엄청난 혼란 속에서도 승객들을 위해 연주를 하며 장렬히 최후를 맞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은 감동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이 장면은 실제로도 존재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히틀리라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3시간 동안이나 흔들림 없이 연주를 했던 악단은 마지막 곡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하기까지 장장 3시간에 걸친 최후의 연주를 마친 뒤 모두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 수색작업에서 발견된 히틀리의 시체에는 바이올린이 몸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평온할 수 있다는 사람의 높은 존엄성을 증명해 준 이들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매년 편찬하는 영국 인명사전에도 다음과 같은 소개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히틀리와 함께 한 이들 음악인들은 재난 중에도 용감하고 자비로운 행동을 보여 승객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영웅적 자질을 보여준 상징이 됐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만이 아름다운 최후를 장식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조급해 하지 않고 당당히 그것을 받아들이며 당장 해야 할 일을 담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죽음조차 두려워 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 기도: 주님! 모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 묵상: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찬송가 608장, <통> 295장)
1.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성부의 집에 깰 때에 내 기쁨 한량없겠네
2. 후일에 장막 같은 몸 무너질 때는 모르나
정녕히 내가 알기는 주 예비하신 집 있네
3. 후일에 석양 가까와 서산에 해가 질 때에
주께서 쉬라 하실 때 영원한 안식 얻겠네
4. 그날을 늘 기다리고 내 등불 밝게 켰다가
주께서 문을 여실 때 이 영혼 들어가겠네
[후렴] 내 주 예수 뵈올 때 그 은혜 찬송하겠네
내 주 예수 뵈올 때 그 은혜 찬송하겠네 아-멘
▣ 죽음, 사망에 관한 성경 말씀
0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0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출10:17)
0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시89:48)
0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잠10:21)
0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22)
0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잠21:6)
0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전3:2,3)
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5:51)
0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0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골1:22)
0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1)
0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0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히11:5)
▣ 죽음, 사망에 관한 금언
0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한다.
0 창백한 죽음은 공평무사한 걸음을 걸어 가난한 자의 오두막집 문도 두드리고 왕들의 궁전 문도 두드린다.(호라티우스)
0 하나님이 부르실 때는 당신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동유럽 유대인 격언)
0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동유럽 유대인 격언)
0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 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프랑스 격언)
0 그는 죽지 않으면 선생노릇을 하고 있다.(그리이스 격언)
0 죽음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평등하게 만든다. 0 아무리 긴 날도 결국 지게 마련이다.
0 죽음의 사자가 올 때 모든 것이 멈춘다(중국 격언)
0 우리는 벌거숭이로 이 세상에 왔으니 벌거숭이로 이 세상을 떠나리라.(이솝 우화)
0 이별의 시간이 왔다. 우린 자기 길을 간다.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좋은 가는 하나님 만이 아신다.(소크라테스)
0 죽음은 지평선일 뿐, 지평선은 우리 시야의 한계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R.W. 레이몬드)
0 인간은 언제나 그의 인생이 곧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마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듯 미친 듯이 산다.(리챠드 박스터)
0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C.프로우먼)
0 죽음은 모든 것을 대등하게 한다.(클라우디안)
0 죽음은 주인과 종을 , 왕권과 법률을 대등하게 하며, 같지 않은 것을 같게 만든다.(W. 콜먼)
0 죽음은 선에도 악에도 평등한 운명이요, 공동의 휴식처이다.(에드먼드 스펜서)
0 죽음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동등하게 만든다.(존 헤이우드)
0 죽음의 공포 없이 죽는 것이 바람직한 죽음이다.(루시우스 아나이우스 세네카)
0 죽음의 공포가 죽음 그 자체보다도 더 나쁘다.(푸블리우스 시루스)
0 죽음을 바라는 자도 비참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더욱 비참하다. (J.W. 징크그레프)
0 죽음과 주사위는 모두에게 공평하다.(사무엘 푸트)
0 죽기를 원하지 않는 자는 살기를 원했다고 할 수 없다.(루시우스 아나이우스 세네카)
0 죽음은 영원한 잠이다.(J. 푸세)
0 죽음의 긴 잠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인생의 짧은 잠은 육체의 상처를 아물게 해준다.(쟝 파울 리히터)
0 죽은 것은 없다.(M.마이를 링크)
0 죽음, 그것은 인생의 도자요, 친구며, 우리를 피안으로 안전하게 건네주는 안내자이다.(F.F. 코우트스)
0 죽음이란, 노고와 고통으로부터의 휴식이다.(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0 죽음의 우리들 모두가 갚아야 하는 빚이다.(유리피데스)
0 훌륭히 죽는 것을 으뜸가는 덕성이다. 0 훌륭한 죽음은 전 생애의 명예가 된다.
0 그러나 단두대에 높이 서 있든, 싸움터의 앞장에 서 있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인류를 위해 죽는 것이다.(제임스 메튜 배리경)
0 고결하게 죽는 것이 목숨을 건지는 것보다 더 좋으련만(에스킬루스)
0 그대의 무익한 눈물을 멈추라. 그대의 울음은 헛되다. 언젠가 우리는 다시 천상에서 만날 것이니 나를 아주 잃은 것은 아니다.
0 죽음은, 나그네가 그 한계를 넘어서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0 죽음은 때로는 벌이요, 때로는 선물이며, 수많은 사람에게 은혜였었다.(루시우스 아나이우스 세네카)
0 나는 모든 사람에게 생의 종말을 지켜보라고 명한다.(솔론)
0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어둠을 새색시같이 반겨하고 두 팔로 꼭 껴안겠다.(월리엄 셰익스피어)
0 나는 나의 집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숙을 떠나듯이 인생을 하직한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0 돌아오니 서산에 해지려는데 북소리 둥둥 내 목숨 재촉하네. 황천 가는 길엔 술집도 없다는데 오늘밤은 뉘 집에서 쉬어서 가리.(성삼문)
0 모든 승리는 죽음이 패배에서 끝난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예배가 죽음이라는 승리로 끝나는가? 그것이 바로 알고 싶은 것이다.(유진 오닐)
0 불사신만이 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죽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D. M. 크레이크)
0 새는 죽음을 당하면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음을 당하면 어진 말을 남긴다. (증자)
0 슬픔의 고장을 떠나 엄숙한 어느 피안에서 친애하는 벗들이 다시 만나리라 함은 예로부터의 믿음이다.(죤 깁스 룩하트)
0 인간은 죽음을 숙고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또한 자기 종말의 어떤 의심의 표시를 보여주는 유일한 동물이다. (월리엄 어니스트 하킹)
0 이 모든 영혼의 소란의 투쟁의 횡포는, 양간의 흙을 뿌림으로써 평정되고 잠해질 것이다.(베르질리우스)
0 인간은 죽어도 슬픔은 죽지 않는다.
0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런 죽음은 그가 미리 아는 죽음이다.(박킬리데스)
0 죽음은 생명을 몰아낼 천 개의 문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중 하나를 찾으리라. (필립 매신저)
0 죽음을 피하기보다 죄를 삼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토마스 아 켐피스)
0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으라.(함마슐드)
0 죽음은 나에게 괴롭지 않다. 나의 고통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팔라다스)
0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라. 그는 휴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0 죽음에 만족하는 것이 죽음을 원하는 것보다 나을는지 모른다.(토마스 브라운 경)
0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산 인생을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0 죽는 모습은 죽는 것 자체보다 더 슬프다. (마르티알)
0 죽음은 항상 어떤 상황 아래에서도 비극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생 자체도 비극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데오도 루즈벨트)
0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0 나온다. 운다. 그것이 인생이며, 하품한다. 간다. 그것이 죽음이다.(송 드 샹세유)
0 만물이 서로 다른 것은 삶이요, 서로 같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서는 현명하고 어리석은 것과 귀하고 천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서로 다른 점이요, 죽어서는 썩어서 냄새나며 소멸되어 버리니 이것이 서로 같은 점이다.
0 명예스런 죽음은 불명예스런 생보다 나은 것이다.(소크라테스)
0 모든 것에는 구제책이 있으나 언젠가는 필연코 우리를 엎드리게 하는 죽음에만은 구제책이 없다.(사베드라 M. 드 세르반테스)
0 매일 우리에게 생명은 죽어가고, 죽음은 살아 있음을 알려 주는 소리가 있다. (토마스 후드)
0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남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의 죽음은 자기 자신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가장 훌륭한 죽음의 형태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죽음이다.(루시우스 세네카)
0 사는 법을 배우자 우리는 외롭게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G. 크래브)
0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 중에서 죽음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 중에서 삶보다 더한 것은 없다.(열자)
0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다.(제임스 보즈웰)
0 사망은 출생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비밀이다.(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0 살고 죽는 것을 아직 모르는 자는 이를 남에게 감격적으로 가르치지 못할 것이다. (리챠드 박스터)
0 삶에 대한 두려움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 비천하다.(에드워드 영)
0 삶은 죽음의 동반자요, 죽음은 삶의 시작이니 어느 것이 근본인지 누가 알까? 삶이란 기운의 모임이다. 기운이 모이면 태어나고, 기운이 모이면 태어나고, 기운이 흩어지면 죽는다. 이와 같이 죽음과 삶이 같은 짝임을 안다면 무엇은 근심하랴.(장자)
0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어늘 사람들은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지눌)
0 생은 과오일 뿐이고 죽음이 지식이다. (요한 쉴러)
0 생이란 한 조각 뜬구름의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그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기화)
0 아무도 일년을 더 못살 만큼 늙지는 알았으며, 아무도 오늘 죽을 수 없을 만큼 젊지도 않았다.(F.D 로하스) 0 우리는 단지 소작인에 불과하다. 조만간에 대지주는 계약기간이 만기되었음을 통보할 것이다.(죠셉 제퍼슨)
0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고, 그 끝은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마닐리우스)
0 죽는 것보다는 고통받는 것이 더 낫다. 이것이 범인의 인생관이다.
0 매 분마다 한 사람이 죽고 매 분마다 한 사람이 태어난다.
0 죽음은 영원한 궁정의 문을 여는 황금 열쇠이다.(죤 밀턴)
/한태완 목사 주제별 예화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