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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보랭의 성모발현
1. 보랭(Beauraing)의 상황
보랭은 프랑스 말을 사용하는 남쪽 베르기 왈륜(왈론) 지역의 인구 2천명 가량의 조그만 읍이었는데 디낭시에서 20km 가량 떨어져 있고 프랑스 국경에서는 8km정도 거리에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한때 아주 열심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1932년에 이르러서는 전체적으로 냉담상태에 있었으며 심지어 가톨릭을 증오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대부분 가난했으며 경제적 곤궁에 자포자기하고 있는 실정이었고 칼 맑스의 사상에 거의 반 수 이상이 매혹되어 있었으며 모든 선거에서 공공연히 교회를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이 승리하고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막을 내리기 직전인 1917년 러시아에서는 레닌의 주도 하에 일어난 '10월(러시아력) 혁명'에 의해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그리하여 11월 7일(러시아력 10월 25일) 러시아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체재로 세계 무대에 등장하였다.
5년 뒤인 1922년 12월에는 러시아 주변의 15개 공화국을 무력으로 묶어 공산당 일당 독재에 의한 강력한 중앙집권 연방인 소비에트 연방(Soviet Union)을 결성하였다.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연방국가인 "소련(Soviet Union)"이 세계 역사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어서 이 사회공산주의 이념은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러시아가 공산화되던 해인 1917년에 성모님은 포르투갈 파티마에 오셔서 세계의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렇게 경고하셨다.
"인류가 계속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다면 비오 11세 교황 때에 또 다른 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러시아는 자기 오류를 온 세상에 퍼뜨리고 전쟁을 유발하여 교회에 박해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고를 무시하고 "또 다른 더 무서운 전쟁", 곧 제2차 세계대전을 향해 질주해가던 세상을 위해 성모님은 다시금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인류에게 말씀을 건네셨다. 1932년 벨기에 보랭에서!
2. 발현의 장소
발현은 그리스도 교리회 수녀원에서 일어났다. 수녀원 앞으로 한길이 나 있다. 수녀원을 지나는 그 거리는 수녀원과 수녀원 마당 뒤로 달리고 있는 고가철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철길 둑을 마주 바라보면 수녀원은 오른 편에 있다. 수녀원과 수녀원 마당은 울타리로 둘러져 있다.
문 가까운 울타리 바로 안쪽에 정원이 있는데 그곳에 루르드성모 동굴이 있어서 철길 둑이 안보이게 되어 있고 수녀원과 학교를 포함하여 큰 건물이 철길 둑 앞으로 서있다.
3. 목격자들
보랭(Beauraing)은 벨기에 남부에 있는 가난하고 작은 규모의 지역이었다. 당시는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였으며 주민의 반 이상이 공산주의 사상에 현혹되어 신앙을 버리고 냉담 상태에 있었다.
성모님은 서른세 번에 걸쳐 보랭에 발현하셨으며 5명의 어린이들이 이 발현의 증인이 되었다. 그들은 두 명의 자매인 앙드레 드쟝브르(Andre Degeimbre, 당시 14세)와 질베르트 드쟝브르(Gilberte Degeimbre, 9세), 그리고 또 다른 형제자매인 페르난드 브와쟝(Fernande Voisin, 15세), 질베르트 브와쟝(Gilberte Voisin, 13세), 알베르 브와쟝(Albert Voisin, 11세)이다.
보랭의 다섯 목격자들은 두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세 아이는 봐쟁씨의 자녀들인데 다섯 자녀들중 가장 나이 많은 15세의 페르난드와 그리스도 교리수녀회 수녀님들이 가르치는 학교에 매일 나가며 자기 부모님들이 (가톨릭)교회에 들어오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13세의 질베르뜨와 다섯 목격자중 유일하게 남자아이인 11세의 알베르또 였다.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철도사무원이었으며 부모는 성당에 다니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수녀원 학교에서 교육받도록 허락을 했다.
두 아이는 디젬브르씨의 자녀들로써 14세의 안드레에와 가장 나이 어린 9살 반인 질베르뜨였다. 이들의 아버지가 1931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는 미망인이었다.
4. 발현사건
1932년 11월 29일 화요일 첫 발현
1932년 11월 29일 화요일 저녁 페르난드와 알베르뜨 봐쟁은 수업을 끝낸 질베르뜨 봐쟁을 데리려 수녀원학교로 가다가 도중에 디젬브르씨 집에 들려 안드레아와 작은 질베르뜨 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네 어린이는 장난을 하면서 수녀원 쪽으로 걷고 있었다. 나이 많은 페르난드와 안드레에는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갔으며 나이 어린 일베르뜨와 작은 질베르뜨는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 장난질을 치며 걸어갔다.
수녀원에 다달은 어린이들은 문 앞으로 가서 벨을 누르고 큰 질베르뜨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알베르뜨가 소리쳤다.
"얘들아, 저것 좀 봐, 복되신 동정녀가 저 다리 위에 걷고 있어."
나머지 세 아이들도 일제히 그 쪽을 쳐다보았다. "순백색의 긴 부인복을 입은 한 부인의 모습"이 수녀원 건너 철길 위에 보였다. 그 때 큰 질베르뜨가 수녀원 문 앞을 나왔다. 그리고선 아이들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해했다. 그러자 큰 질베르뜨도 그 모습을 보았다.
어린이들은 너무나 놀래어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다. 엉겁결에 달리던 작은 질베르뜨가 넘어지자 일으켜 주려고 모두 멈췄는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하얀 모습의 부인을 보았다.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 창백한 얼굴로 집에 돌아갔다.
어머니는 아무것고 아니라는 듯이 퉁명스럽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성모님을 뵐 만큼 착한 아이들이 못돼."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껄껄 웃고마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환상을 보았겠지 하고 말하자 어린이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일을 마친 엄마가 깊이 잠든 작은 질베르뜨 곁을 지나가다가 잠꼬대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것 봐 알베르뜨,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야!"
이때에 그 엄마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거짓말을 안할텐데 ...... !"
1932년 11월 30일 수요일 두번째 발현
다음날 저녁 네 어린이는 평상시처럼 질베르뜨를 마중하러 학교에 다시 갔다. 어린이들은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기네가 환상을 보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보았다.
종일 마음이 한 가지 생각으로 꽉찼다. "그 부인을 다시 보게 될까?" 그래서 그날은 벨을 누르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어린이가 또 한번 철길 둑 앞뒤로 걸어 다니시는 하얀 모습의 부인을 보았다. 어린이들은 쏜살같이 디젬브르 부인께로 달려갔다.
"우리는 보았어요. 그분은 틀림없이 성모님이예요. 그분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하고 외쳤다. 디젬브르 부인은 펄펄 뛰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다시는 수녀원에 가지 말라고 하였다.
1932년 12월 1일 목요일 발현
1932년 12월 1일 목요일 발현에 관한 이야기가 온 마을에 퍼졌다. 그래서 디젬브르 부인은 사건을 잘 조사하기 위해서 어린이들을 속여 놀라게 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몽둥이를 들고 네 어린이를 앞장 세우고 수녀원으로 갔다. 수녀원 정원으로 가까이 갔을 때 네 어린이는 또 성모님을 보았다. 이 때에는 성모님이 루르드성모동굴 가까운 정원에 계셨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성모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통 하얀 옷을 입으시고 계셨다. 머리에는 황금빛이 빛나는 왕관을 쓰셨고 마치 구름 위에 서계시는 것 같았으나 발은 볼 수 없었다. 성모님은 양 팔을 천천히 펴더니 곧 몸을 감추었다.
그러나 디젬브르부인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네 어린이들을 큰 질베르뜨에게 보내고 그 동안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장난질을 치는 사람이 숲속 덤불속에 숨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몸둥이로 이리저리 구석구석 뒤져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린이들이 큰 질베르뜨를 데리고 돌아오자 성모님은 아까처럼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작은 질베르뜨는 너무 감격하여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집으로 데려와야 했다.
어린이들이 수녀원 정원을 떠날때는 정원 울타리 바로 안 쪽 문 가까이에 자라고 있는 산사나무 얕은 가지 위에 계신 성모님을 보았다. 다음 번 발현시에도 모두 이 자리에 나타나셨던 것이다. 큰 질베르뜨가 작은 질베르뜨를 데리고 성모님을 뒤돌아 보며 집으로 돌아가자 나머지 세 어린이들은 성모님이 다시 그 산사나무의 얕은 가지 가까이 서 계신것을 보았다.
디젬브르 부인은 어린이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사실로 말미암아 큰 충격을 받고 의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지막 발현이 있을 때까지는 완전히 믿지 않았다.
봐쟁씨는 횃불을 들고 마당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속임수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람베르트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 뵙고 상의를 했다. 본당 신부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발현에 대해 질문해 왔기 때문에 신부님의 충고를 실천하기란 어려웠다.
1932년 12월 2일 금요일 발현
다음날(1932년 12월 2일 금요일) 테오필라 원장 수녀님은 다시는 성모님의 발현에 관해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또 저녁에 수녀원 정원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했지만 저녁이 되자 그 사실을 모르는 부모들은 네 어린이들을 큰 질베르뜨를 데려오도록 수녀원 학교로 보냈다
어린이들은 순명치 않을 수 없어서 수녀원 정원에 다시 갔었다. 그래서 다시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다. 이 때에는 전보다 더욱 선명히 보였다.
성모님은 18~20세 정도로 젊게 보였다. 성모님의 미소는 더욱 그 아름다움을 더 하였고 당신의 모습을 빛나게 했다. 성모님의 눈은 아름답게 푸른 빛깔이었다. 무겁게 주름이 잡혀 길게 흘러내린 하얀 옷을 입고 계셨다.
담청색 하늘빛 빛줄기가 왼쪽 어깨에서 옷단까지 옷 위로 비스듬히 덮여 있었다. 팔에는 로사리오(묵주)가 걸쳐 있었고 손은 기도하는 것처럼 합장하고 있었다.
알베르뜨가 "당신은 티없이 깨끗하시며 원죄없으신 성모님이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성모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알베르뜨는 다시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보랭의 성모님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하셨다.
"착한 사람이 되어라."
잠시후 성모님은 당신 팔을 펼치시고 마치 어린이들을 따뜻이 안아 주시듯 하셨다. 그리고 나서 사라지셨다.
이 말을 전해들은 람베르뜨 본당신부님은 어린이들이 생각해 낸 것이 그렇게 들린 것이라고 여겼다. 성모님이 캐캐묵은 이 얘기를 하리라고 단순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도 부모들은 아직도 어린이들을 믿을 수 없어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야단을 쳤다. 테오필라 원장 수녀님은 자녁때가 되면 수녀원 문을 잠그고 아무도 못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정원에 사나운 개 두마리를 풀어 놓았다.
1932년 12월 3일 토요일
1932년 12월 3일 토요일에 다섯 어린이들은 원장 수녀님의 말에 순종하여 수녀원 마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성모님을 뵐 수 없는 것이 몹시 서운했다.
그날 저녁 원장수녀는 "여기서 여러분은 시간만 낭비하는 거요.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요. 돌아들 가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이 즉시 대꾸했다. "저 여자야말로 철저한 사회주의자로구나. 우리들 만큼도 믿지 않으니 말이야."
1932년 12월 4일 일요일
어린이들이 전날 순명하여 수녀원에 오지 않았으므로 다음날은 원장 수녀가 마음이 좀 누그러져 다시 수녀원 정원안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다.
발현은 계속되었다. 전번의 몇몇 정원의 발현에서는 어린이들이 도착했을 때 성모님은 벌써 어린이들이 오기를 기다리신 것처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어린이들이 묵주기도를 바치기 시작한 후에야만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정원에 가자마자 로사리오 기도(묵주기도)를 바치게끔 되었다. 성모님이 발현할 때마다 마치 무릎을 꿇었던 자리로 끌리어 감을 느꼈다.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저녁에 와서 기도하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그 날 일을 마친 후 많은 사람들이 모여와 어린이들과 함께 기도했다. 그 사람들은 성모님의 발현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어린이들의 황홀한 표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매일 군중들은 불어났고 점점 더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으며 심지어 먼 시골에서도 찾아왔다.
여러번의 기회에 성모님은 성모무염시태(12월 8일)날 오라고 어린이들에게 말하였다. 그날은 특별히 지정한 날이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때에는 꼭 참석하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물론 (파티마의 태양의 기적과 비슷한) 큰 기적을 기대했었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왔던 사람들은 어떤 흥미로운 사실을 목격하게 됐다
1932년 12월 8일 목요일
12월 8일은 지정된 날이어서 평상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15,000명 가량이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발현 현장을 찾았을 뿐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였다. 그날 저녁 6시경 성모님은 그곳을 방문하셨다.
어린이들도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 6시 10분경에 왔다. 의사들과 심리학자들도 많이 참석했다. 정원은 찬란히 불밝혀졌다.
어린이들이 정원문에 도착하자마자 발현을 목격했다. 성모님은 아무런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다만 미소를 지으셨다. 성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다섯 명의 어린이들은 깊은 탈혼 상태에 빠졌다. 성모님은 빛보다 더욱 찬란한 빛을 내신다. 성모님을 보면서 작은 질베르뜨는 울기 시작했다. 매스트리오 박사는 왜 우느냐고 즉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성모님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다시 다른 질문을 했지만 대답을 얻지 못했다. 왜냐면 질베르뜨는 완전한 탈혼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다섯 어린이들은 각자가 각기 다른 의사들에게 돌려가며 여러가지 질문과 시험을 받았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꼬집기도 하고 살짝 때리기도 하며 바늘로 찔러보기도 했다. 또 어린이들의 눈을 불로 비춰 보기도 했다. 후엣의 루르깽 의사는 큰 질베르뜨의 왼 손 밑으로 성냥불을 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탈혼의 경지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들이 탈혼중의 어린이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험해 보고 있는 동안 군중들은 로사리오 기도(묵주기도)를 바쳤는데 마지막 단을 바치고 나자 성모님의 모습은 사라지셨다. 어린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성모님은 가셨어요."
1932년 12월 8일 목요일
12월 8일은 지정된 날이어서 평상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15,000명 가량이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발현 현장을 찾았을 뿐 아니라 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하였다. 그날 저녁 6시경 성모님은 그곳을 방문하셨다.
어린이들도 부모님을 모시고 저녁 6시 10분경에 왔다. 의사들과 심리학자들도 많이 참석했다. 정원은 찬란히 불밝혀졌다.
어린이들이 정원문에 도착하자마자 발현을 목격했다. 성모님은 아무런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다만 미소를 지으셨다. 성모님의 모습을 보고 있던 다섯 명의 어린이들은 깊은 탈혼 상태에 빠졌다. 성모님은 빛보다 더욱 찬란한 빛을 내신다. 성모님을 보면서 작은 질베르뜨는 울기 시작했다. 매스트리오 박사는 왜 우느냐고 즉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성모님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다시 다른 질문을 했지만 대답을 얻지 못했다. 왜냐면 질베르뜨는 완전한 탈혼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다섯 어린이들은 각자가 각기 다른 의사들에게 돌려가며 여러가지 질문과 시험을 받았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꼬집기도 하고 살짝 때리기도 하며 바늘로 찔러보기도 했다. 또 어린이들의 눈을 불로 비춰 보기도 했다. 후엣의 루르깽 의사는 큰 질베르뜨의 왼 손 밑으로 성냥불을 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탈혼의 경지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들이 탈혼중의 어린이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시험해 보고 있는 동안 군중들은 로사리오 기도(묵주기도)를 바쳤는데 마지막 단을 바치고 나자 성모님의 모습은 사라지셨다. 어린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성모님은 가셨어요."
12월 29일 목요일 복되신 동정녀는 전에 작별하던 자세로 당신의 두 팔을 펼치셨는데 그때에 빛줄기가 주위로 번쩍이는 당신의 황금 빛 심장을 보여주셨다.
이것은 천주의 모친의 티없으신 성심이었다. 이 성심은 보랭의 나머지 발현에서 모두 나타났다. 이날 이후부터 이듬해 1월 3일 발현까지 성모님은 매번 당신의 금빛 심장을 보여주시며 무언 중에 성심에 대한 신심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보랭의 사람들은 성모님을 "금으로 된 심장을 가지신 어머니"라고 부른다.
다음날인 12월 30일 금요일 성모님은
"기도하라, 기도하라, 많이 기도하여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다시 빛나는 심장을 보여 주셨다. 그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성모님은 세번째로 당신의 성심을 드러내셨다.
1933년 1월의 마지막 발현
1933년 1월 1일 일요일 성모님은 큰 질베르뜨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당신의 마지막 발현은 이틀 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1933년 1월 2일 월요일에 성모님은 "나는 매일 너희들 각자에게 따로따로 이야기해 주겠다." 고 하셨다.
1933년 1월 3일 화요일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일에는 더 수 많은 군중이 모여왔다.
성모님의 발현이 시작되자 네 어린이는 기쁨에 겨워 환성을 질렀다. 그러나 성모님을 볼 수 없었던 페르난드는 흐느껴 울었다.
성모님은 약속대로 어린이들 각자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안드레(앙드레)에게는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늘의 여왕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잘있어."
라고 말씀하셨다. 큰 질베르뜨에게는 위대한 약속을 하셨다.
"나는 죄인들을 회개시키겠다. 잘 있어!"
하고 말씀하셨다.
알베르뜨와 작은 질베르뜨 두 어린이들 에게는 단순히 "잘 있어" 라고 말씀하셨다.
발현이 끝났을 때 페르난드는 성모님을 못보았기 때문에 너무나 충격을 받고 슬퍼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뭐가 부딪히는 듯 요란한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나무에 둥그런 불덩이가 보였다. 그 다음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아들을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예"
"너는 나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라."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그 전처럼 작별의 표시로 팔을 벌리셨다. 그때에 성모님은 그전보다 더욱 찬란히 보이셨다. 그리고 페르난드에게 당신의 성심을 보여주시며 "잘있어" 하고 말씀하셨다. 페르난드는 이제는 다시 이 세상에서 성모님을 볼 수 없음을 깨닫고 크게 울었다.
그 후에 큰 질베르뜨와 작은 질베르뜨 그리고 알베르뜨는 성모님이 자기들에게 각각 서로간에게는 아무도 말해서는 안되는 비밀을 얘기 해 주셨다고 말했다.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당부와 함께 한 가지 비밀을 들었다. 그들은 결코 그것을 누설하지 않았다.
(발췌:'마리아(maria)', 통권 13호, 148호, 아베마리아출판사)
봐셍가는 신자 가정이었지만 디젬브르가는 그렇지 못했다. 아버지가 약간 막시즘에 물둘어 있었다. 벨기에는 근 1백 년 동안 이 두 진영으로 갈라져 있었다. 보렝(보랭)이 위치해 있으면서 중공업과 광업이 발달해 있던 플랑데르 지방이 특히 그랬다. 다음날, 아이들은 학교 친구들에게 어제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는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고 전날과 똑같은 시간에, 아이들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허공을 걷고 있는 부인의 발현을 또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것이 서른 세번에 걸친 발현의 시작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랭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일어난 논쟁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다음날인 1월 3일, 발현은 아이들에게 좀더 가까운 데서 있었다. 아이들과 부인 사이에서 대화가 오고갔다. 대번에 3만 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현장에 모여 들었으나, 발현을 목격한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은 의심과 미움을 받게 되었다. 부모들은 덩달아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해했다. 조롱하는 사람들도 생겨 났다. 그런가 하면 이때다 하며 음료수를 비롯해서 각종 성물을 고가로 팔아먹는 장사치들도 생겨 났다. 주임 신부, 수녀, 부모 등은 서로 아이들을 꾸짖기에 바빴다. 때로는 얼르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말을 취소하지 않았다. 발현은 언제나 아가위 나무 가까이 나타났다. 부인(성모님)은 새하얀 옷을 입었는데, 하얗다 못해 파랗게 보이기까지 했다.
"기도해라. 기도를 많이 해라. ...... 언제나 기도하며 ...... 나를 위해서 희생해라."
부인은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며 로사리오 기도(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일러 주었다. 이것은 20세기에 산업이 고도로 발달된 나라 한가운데서 무신론자와 회의론자, 그리고 호전적인 막시스트들이 적의를 품고 줄기차게 접근해 오고 있는 보랭의 어린 아이들에게 내려진 메시지였다.
... 한편 발현 사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치유사건과 회개가 연이었다. 1943년 5월, 나무르의 주교는 보랭의 성모 공경에 대해, 비록 보류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승인이 있으리라고 언급했다.
1946년 전쟁이 끝나자, 전쟁이 치열했던 당시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기도했던 장소에서 보랭의 성모 동상이 개막되었다. 그 후 1949년 7월, 나무르의 주교가 최종 승인을 내렸다.
본인은 1933년 보랭에 가서 아이들과 그 가족을 만나 보았습니다. 먼저 디젬브르가를 방문했습니다. 디젬브르 부인은 미망인이었습니다. 그 가정은 조그만 낙농장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먼저 인사를 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예"
부인은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감격해 있었습니다. 본인은 발현이 계속되는 동안, 그것이 이 가정에 커다란 불행이라고 했다는 부인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인은 잠시 미소를 띄우더니 마지못해, 그 말이 너무나 많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처음에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후 , 본인은 그곳 주임사제에게 양쪽 가정의 부모들이 모두 신자들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주임사제의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그것은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현재는 열심한 신자들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주임사제와 본인은 마을 길을 걸어 발현 현장과 질베르뜨 봐셍과 질베르뜨 디젬브르가 다니던 수녀원 학교로 갔습니다. 시내를 통과할 때는 사람들이 주임사제를 보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주임사제와 신자들 사이가 원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녀원에 이르러 본인은 먼저 원장수녀님을 만났습니다. 고행생활을 하는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대단히 차분한 수녀님이었습니다. 원장수녀님은 즉시 두 소녀를 소개하셨습니다. 한 아이는 열 한 살이었고 또 한 아이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아주 귀여웠습니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천진난만하게 보였습니다. 본인으로서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어떤 속임수나 교활함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들이 성모님을 봤니?"
"예, 주교님."
아이들의 대답에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아이들의 신념에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게 사실이겠지?"
"예, 주교님."
망설임과 주저함도 없이 아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주임사제와 본인은 마을을 가로질러 중산층에 속하는 봐셍가를 방문했습니다. 봐셍씨는 페인트 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부인을 만났습니다.
부인은 살이 찌고 양 볼이 장미빛이 도는 친절한 여인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말하는 부인은 아무런 숨김이 없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알베르뜨 봐셍을 만났는데, 열 여섯 살의 예쁘게 생긴 이 소녀는 발현을 목격한 장본인 중의 한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특이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감자 껍질을 벗기다가 부엌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순진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본인이 소녀에게 기적에 대한 팜플렛이나 책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습니다.
"예, 몇 가지 있었어요. 그렇지만 두꺼운 것들은 없어요. 읽을 시간이 없거든요."
그때 봐셍 씨가 돌아와 화가 난 듯 아이들이 실린 새 사진 몇 장을 내놓으면서, 발현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아이들을 바보같이 보이도록 찍었다고 투덜댔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초인종이 울리고, 봐셍 부인이 문으로 갔다가 급히 돌아와 말했습니다.
"어떤 부인이 너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러 왔구나."
알베르뜨 봐셍이 나가 그 여인을 만나 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에 기도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행동이 조심스럽고 만족스러운 중산층 모범 가정인 것 같았습니다. 그 집안의 살림살이에서 받은 인상은 훌륭했습니다.
(발췌:'기적 사건들', 쫄트 아라디 / 이동수 옮김, 성요셉출판사)
첫댓글 감사합니다.♥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