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의병,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국 기자 맥켄지는 정미의병 당시 경기 양평에서 제시된 사진의 의병들을 취재한 내용을 책에 실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ㅠ.ㅠ
제천은 1907년 늦가을까지 2천에서 3천의 인구를 가진 농촌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의병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 일부가 제천 맞은 편의 산들을 점령하였다.
…(중략)…일본군은 증원군을 증파하여 얼마간의 전투 후 재점령하였다.
그들은 그 때 제천을 지방 주민의 본보기로 보이기로 결정하여 전시에 방화하였다.
…(중략)…내가 제천에 도착한 것은 이른 가을 더운 날이었다.
…(중략)…나는 일찍이 이렇게 철저한 파괴를 본 적이 없었다.
…(중략)…제천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중략)…해질 무렵 심부름하는 아이가 그릇을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선생님 의병이 나타났습니다.”
순간 5~6명의 의병이 뜰로 들어섰다.
나이는 18세에서 26세 사이였고 그 중 얼굴이 준수하고 훤칠한 한 청년은 구식 군대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머지는 낡은 한복 차림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총을 들고 있었는데 하나도 성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 중 인솔자인 듯한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문 : 당신들은 언제 전투를 했습니까?
답 : 오늘 아침에 저 아랫마을에서 전투가 있었습니다.
문 :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답 : 이기기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싸우다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중략)…나는 솔직히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보다는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한국을 돌아본 결과 내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일본군은 양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비인도적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인은 비겁하지도 않고 자기 운명에 무심하지도 않다.
한국인들은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맥켄지, <한국의 독립 운동> -
맘이 아프네요
이분들 같은 희생으로 오늘날의 우리가 잇네요
글 하나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비겁하지도, 목숨에 무심하지도 않은 대한민국의 독립투사들 자랑스럽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죠.
아쉬운 것은 한국사에 도전하는 몇 몇을 빼고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역사얘기를 더 많이 알아가고자 공부하나 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독했습니다. ......알아야할 역사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을 한다는 그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큰 깨우침으로 다가
옵니다.
잘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알아야 할 우리의 과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마음에 담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보잘것 없는 군인이었지만 목숨 내놓은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의병이었다
우리는 그 의병들에게 말할수 없을정도의 의미를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겠다
잘 읽었습니다
감동이에요
잘 읽었습니다.
슬퍼요^^
나라를 위해 이렇게 몸바치신 분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멋진 선조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
숭고한 선열한 뜻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