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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중원땅 섬서성 서안에 가다.
고조선의 도읍지 평양.
한나라의 도읍지 함양.
고구려의 수도 장안성
당나라의 수도 장안성.
고려시대의 서경, 서도, 서경유수, 호경, 서경류수관.......
지금의 섬서성 서안에는 이 모든 지명이 공존 하고 있었다.
서안의 장안성에는 종루와 고루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서울에는 종각이 있을 뿐이다.
조선의 한양성에도 종각와 고루가 있었다.
이곳이 고루이고,
다음 사진이 종루이다. 저 뒤에 고루가 보인다.
아래 서안시 지도에 동대가, 서대가 사이에 고루가 표기 되어 있다.
위의 지도에서 짙은 청색선이 한수의 흐름이다.
지도에 한수라고 분명히 표기되어 있다.
그 한수와 양자강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한양이라는 도시이다.
지금의 무한이 바로 그 도시이다 원래 한양과 무창의 두 도시가 하나로 합쳐져 무한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라는 무한.....
그 한수에 안강이란 지명도 있다.
경주에 안강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여기에도 같은 지명이 있구나 하고 의아해 할것이다.
그러나 놀랄 일은 지금 부터이다. 지도에서 장안(서안)과 한수 사이에 商洛이라는 지명이 있다.
이 곳은 洛水의 상류라는 의미에서 上洛이라는 지명이 나왔는데 이 上洛이 商洛이되고 尙州가 되었다.
한반도의 지도에는 상주가 있을 뿐인데 이 곳의 섬서성 지도에는 상락이 있고 상주도 있으며, 낙남과 상남도 있다.
고려사 지리지 尙州牧을 살펴보자.
상주목尙州牧은 원래 사벌국沙伐國으로서 신라 점해왕이 빼았아서 주로 만들었고 법흥왕은 上州로 고치고
군주를 두었으며 진흥왕은 주를 없애고 상락上洛군으로 만들었다.
신문왕은 다시 주를 설치하였고 경덕왕은 상주로 고쳤다가 그 후에 안동도호부로 고쳤으며
성종 2년에 처음으로 전국에 12개 목을 설치하였을때 이 주는 그 중의 하나로 되었으며
14년에 전국에 12개주에 절도사를 두면서 귀덕군이라 불렀다.
이를 영남도嶺南道 에 소속시켰다.
현종 3년에 절도사를 없애고 다시 안동 대 도호부로 하였으며 5년에 상주안무사로 고쳤고
9년에 목으로 정하여 전국 9개의 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상락上洛, 또는 상산 商山이라고도 부르는데 낙동강이 있고 공검이라는 큰 제방이 있으며,
이 주에 소속된 군이 7개, 현이 17개 관할하에 지사부가 2개 있다.
(지사부는 경산부와 안동부인데 이에 소속된 군이 4개, 현이 25개이다.)
-주- 상주의 소속 군, 현이 53개 가 넘는다.
천년전 고려에는 10개의 도와 12개 주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상주에는 사벌국 , 개녕에 감문소국, 함창군에 고령 가야국, 고령군에 대가야국, 의성현에 소문국 등의
나라가 있었으니
한반도의 몇십배에 해당되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53 개의 군, 현이 있던 곳이 상주이다.
한반도의 경상북도에 5 개의 나라와 53 개의 군,현이 존재 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
대륙의 섬서성, 하남성, 산서성에 걸쳐 있던 상주를 고려사에 기록된 지명과 비교 분석하면서
대륙의 지도에서 53개의 군, 현을 확인해보자.
1. 문경聞慶군---신라의 관문冠文현(관현冠縣 또는 고사갈이성高思曷伊城이라고한다.)으로
경덕왕은 관산冠山으로 고쳐 고녕古寧군의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초에 문희聞喜군 으로 고쳤다. 공양왕 2년 가은加恩현을 이 군에 소속시켰다.
이 군에 길이 험한 요새처가 세곳이 있는데 초호(草岵)(현의 서쪽에 있다.),
伊火현(현의 서쪽에있다), 관갑천(串岬遷)(현의 남쪽에 있다.)이 그것이다.
-주-
문경聞慶은 관문冠文현이란 지명 그대로 임금의 소식에 귀 기울이며 기쁨을 누리고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경사가 났다는 의미로 도읍지를 바라보고 사는 고을이며,
나라님의 성덕에 감사 드리는 곳이다.
다음 지도 산서성 황하의 만곡지구에 문희聞喜 라는 도시가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 있는 우리 고대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으나 대륙에는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곳의 지형이 황하와 위수에 의해 깊은 계곡이 생겨난 험난한 지형 이다.
지도에 보면 황하가 지도의 좌측을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ㄴ자로 꺽기어 동쪽으로 흐른다,
이 만곡부분에 동관(동쪽 관문) 이란 지명이 있다.
문경새재라고 하듯 요새처가 있는 지형임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곳 관갑천이다.
장안성을 지나 흐르는 대동강의 하류가 궤진약수로 되어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다.
즉 대동강은 지금의 위수인데 위수가 관갑천에서 황하와 합쳐진다는 사실이다.
대동강이 황하에 꿰진다는곳이 궤진약수이다.
바로 황하가 ㄴ자로 꺽여지는 곳이다.
2.용궁군(龍宮)---신라의 축산인데 성종14년 룡주자사로 승격됨.
이군에 하풍진(河風津)이 있다.
-주-
이것이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인데 황하가 위수와 합하는 지역이 문경과 연해 있으며 황하의 연변이 란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문경이었던 문희시 옆에 황하가흐르고 그곳에 河津이란 도시가 있으며, 그 바로 밑에 용문이란 도시가 있다.
등용문이란 바로 이곳 황하가 폭포를 이루는 곳을 거슬러 올라 가야만 잉어가 용이 된다는 전설이 생긴 곳이다.
이곳이 용궁군이다.
3.개녕군開寧郡; 원래는 감문소국으로 신라가 탈취하여 진흥왕때 군주를 두어 청주靑州라고 하였고
문무왕때는 감문군으로 하였다가 경덕왕이 개녕군으로 고쳤다.
황하가 흐르는 하진河津시 바로 위쪽에 향녕鄕寧 이란 도시가 있다. 그리고 또 대녕大寧이란 도시도 있다.
낙수가 흐르는 곳에는 낙녕洛寧이란 도시도 있다.
4, 보령군報令郡; 신라의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은 삼년군으로 고쳤다.
이 군에 속리산이 있다.(신라때는 속리악이라했는데 중사(中祀)로 되어 있다.)
이 군에 속리산이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는 속리산 하나에 보은군, 문경시, 상주시, 괴산군이 걸쳐있다.
5, 함창咸昌군; 원래 고령가야국古寧伽倻國으로 신라가 빼앗아 고동람군古冬欖군(또는 古陵군)으로,
경덕왕때 또 古寧군으로 고쳤다.
광종15년(964년)에 咸寧군으로 , 현종 9년 본 상주목에 소속하고 함창군으로 바꾸었다. 명종 2년 감무를 두었다.
6. 영동군永同은 원래 신라의 길동吉同군인데 경덕왕이 영동군으로 고쳤다. 성종 14년 계주자사로 스격시켰다가
목종 8년에 자사를 폐지하였으며 현종 9년에 본 상주목에 소속 시켰다가 명종 2년에 감무를 두었고
6년에 현령으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다시 감무로 하였으며 얼마후 감무를 없앴다.
7. 해평군은 현종 9년에 상주목에 소속되었다가 인종 21년에 일선현에 이속되였다.
8. 청산현은 신라의 굴산현(돌산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은 기산耆山으로 고쳐서 삼년군의 관할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초에 청산으로 고치고 상주목에 속하게 하다.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어 상주의 주성부곡을 나누어서 청산현에 소속시켰다가 11년에는 도로 상주에 소속 시켰다.
9. 산양현은 원래 신라의 근품현인데 경덕왕은 가유로 고쳐서 예천군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초에 산양현으로 고쳤고 현종9년에 본 상주목에 소속시켰으며 후에 감무를 두었다가 명종 10년에 없앴다.
-주-
위의 섬서성 지도에 산양현이 상주 바로 아래 존재한다. 한반도에서는 옛날에 문경시 산양면이 있었다고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
대륙에서는 고려사의 기록대로 상주관내에 문희군이 있으며 산양현도 있다.
10. 화녕현化寧군은 원래 신라의 답달비군答達匕郡인데 경덕왕은 화녕군으로 고쳤다.
11. 공성현功城縣은 원래 신라의 대병 부곡大幷 部曲인데 고려초에 고쳐 현종 9년에 본목에 속하다.
12. 단밀현單(丹)密縣은 신라의 무동미지현武冬彌知縣(또는 갈동미지曷冬彌知)인데 경덕왕이 고쳐 문소聞韶군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13. 비옥현比屋縣은 원래 신라의 아화옥현阿火屋縣(병옥幷屋)인데 경덕왕이 고쳐서 문소군의 관할로 하다.
14. 안정현安定(貞)縣은 원래 신라의 아시혜현 (아흘혜)인데 경덕왕은 안현安賢으로 고쳐서 문소군의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에서 안정현으로 고치고 현종 9년 본목에 소속시키고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어 비옥현을 겸임케 하였다.
15. 중모현은 원래 신라의 도량현도량현인데 경덕왕은 도안으로 고쳐서 화녕군의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16. 호계현은 원래 신라의 호측현(혹은 배산성)인데 경덕왕이 호계라고 고쳐 고녕군의 관할로 만들고 현종 9년 본 목에 속하게 하다.
17. 어모현은 원래 신라의 금물현(음달)인데 경덕왕이 고쳐 개녕군 관할현으로 만들었고 현종 9년 본 목에 소속하다.
18. 다인현은 신라의 달기현인데 경덕왕이 고쳐 본 목에 속하고 고려에와서 후에 보주에 이속하다. 인양이라고도 부른다.
19. 청리현은 원래 신라의 음리화현인데 경덕왕은 청효현으로 고쳐 본 목에 소속하다.
20. 가은현은 원래 신라의 가해현인데 경덕왕은 가선으로 고쳐 고녕군 관할 현으로 만들다. 고려초 가은으로 고쳐 현종 9년 본 목에 소속시키고 공양왕 2 년 문경에 이속.
21. 일선현一善은 원래 신라의 일선군인데 경덕왕은 주로 승격 군주를 두었고 신문왕은 주를 폐지 하였으며 경덕왕은 숭선군嵩善군으로 고쳤다. 성종 14 년 선주자사善州刺史로 하였고 현종 9 년에 본 목에 소속되며 인종 21년 일선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가 후에 지 선주사로 승격되었다. 화의和義라고도 부르며 여기에는 금오산金烏山이 있다.
하남성 낙녕洛寧시 곁에 숭현嵩縣이 있다. 이곳에 熊耳山이 있는데 이것이 金烏山이다.
22. 군위현은 원래 신라의 노동멱현인데 경덕왕이 고쳐서 숭선군 관할 현으로 만들고 현종 9년 본 본 목에 소속하고 인종 21년 일선군에 소속되었으며 공양왕 2 년 감무를 두어 효령현을 겸임케 하였다.
23. 효령현孝靈은 원래 신라의 모혜현인데 경덕왕이 고쳐서 숭선군 관할 하의 현으로 만들다. 현종 9 년 본 목에 소속되었고 인종 21 년에 도로 일선현에 소속시켰다.
낙녕洛寧시옆에 영보靈寶시가 있다.
24. 부계현은 현종 9년에 본 목에 소속되었는데 후에 선주善州에 이속되었는바 부림缶林이라고도 부른다.
이상이 상주에 소속된 24개의 군, 현으로 이외에 29개의 군, 현이 소속된 경산부와 안동부가 또한 상주목에 소속되어 있다.
계속하여 경산부와 안동부의 소속현을 살펴보자.
위의 지도에 5개의 나라와 53개의 군, 현이 들어 갈 곳이 있는가?
게다가 그 군, 현의 크기는 한반도의 시, 군 의 40 배의 크기이다.
대륙의 상주만 하더라도 섬서성의 6 분지 1을 차지하는데 섬서성이 한반도 크기이니 상주는 한반도의 경상 남북도 만한 크기이다.
그리고 서안시 에는 려산과 화산이 있는데 麗山은 고려의 산이란 뜻이다.
華山에 대해서는 다음 글를 참고해 보자.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다
北據華山 南臨漢水
북거화산 남임한수
조선의 도읍지 한양성이 북으로 삼각산(일명 화산華山 이라 한다.)이 있고 남쪽에 한수에 임해있다고 하였으니,
현 대륙의 섬서성 한수의 북쪽에 있는 진령이 북한산군이며 그 진령의 끝에 화산이 솟아 있음을 지도에서
확인해 보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대륙의 섬서성지도가 일치하고 있다.
그러면 대륙의 지도에 한양이라고 표기되어있는지 찾아보자.
한수 안강이라고 쓰여진 곳에 한음과 자양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 곳이 한양인데 도시가 거대하다보니 두 도시로 갈라 놓았다. 합치면 한양이 되는것이다.
위의 기록에 삼각산을 일명 화산이라고 한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또 지도에 우리눈에 익은 지명들을 찾아보자.
태백산太白山 - 서안의 남산인 종남산의 최고봉 3767m이다.
함양咸陽 - 서안시 서북쪽에 있다. 진나라의 도읍지다.
예천禮泉 - 함양시 서북쪽으로 바짝 붙어 있다.
부평富平 - 서안 동북쪽에 있다.
한성韓城 - 부평 동북쪽 황하가 흐르는 곳에 있다.
연안延安 - 당나라 이씨라고 주장하는 연안 이씨의 본향이다.
연천延川 - 연안 동북에 있다.
정변靖邊, 定邊 - 만리장성이 지나가는 곳에 있다.
상주商州 - 洛水라는 강의 상류에 있다. 上洛이라고도 한다. 서안 동남쪽이다.
산양山陽 - 상주 남쪽이다.
진안鎭安 - 산양 서쪽이다.
진평鎭平 - 안강 남쪽이다.
평리平利 - 진평과 안강사이에 있다.
한수漢水 - 대륙의 중원땅. 섬서성에 흐르는 우리민족의 영원한 고향이다.
한반도에도 이러한 지명이 있다.
한반도에는 경상남도 함양과 함안이있다.
다음지도는 대륙과 한반도를 비교하기위하여 나타내었는데 대륙의 크기가 한반도의 40배로
저위의 섬서성이 그 크기가 한반도 만하며, 저 아래 한반도의 경기도는 그 크기가 섬서성의 상락현,
또는 안강현의 크기와 비슷하다.
섬서성은 유림현, 연안현, 서안현, 상락현, 한중현, 안강현의 총 6 개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반도에는
8 도가 그려져 있고 그것도 대부분 남북의 두 도로 나뉘어져 있는므로 그 크기를 비교 하는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경기도를 살펴보자.
한반도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조선의 수도는 한양이다.
한양은 고려의 남경유수관 양주로서
고려 성종 14년 전국을 10도로 나누고 12개주 절도사를 두면서 양주를 좌신책군이라 불르며 해주와 함께 좌, 우2보로 삼아서 관내도에 소속시켰다.
충렬왕 34년에 한양부로 고쳤는데 광릉廣陵이 라고도 부른다.
삼각산(신라의 負兒岳이다.), 한수(沙平나루를 말한다.), 楊津(신라때 北瀆이던 한산하를 中祀로 올렸다.)이 있다.
이 양진이 양쯔, 양자강이 되었다.
대륙의 양주땅에 양진이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
한반도의 양주에는 양진이 없다.
고려사지리지는 대륙에 고려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태조 23년(940)에서야 전국의 주, 부, 군, 현의 명칭을 고치고 성종이 다시 고치면서 드디어 전국을 10 개 도로 나누고 12 개 주에 절도사를 두었는데 그 10 도는 첫째 관내도, 둘째 중원도, 셋째 하남도, 넷째 강남도, 다섯째 영남도, 여섯째 영동도, 일곱째 산남도, 여덟째 해양도, 아홉째 삭방도, 열째 패서도이며
그 관할하에 주, 군의 총수가 5백 80여 개였다.
이때 우리 동국의 지리가 가장 성할 때이다.
현종 초에 절도사를 폐지하고 전국에 5 개 도호와 75 개 도에 안무사를 두었다가 얼마 후에 안무사를 없애고
4 개 도호와 8 개 목을 두었다.
그 후로부터 전국을 5 개도와 두 개의 계로 정하였으니
즉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 서해도와 동계, 북계였다.
전국에 총계 경 4 개, 목 8 개, 부 15 개, 군 129개, 현 335개, 진 29 개를 두었으며
그 경계선의 서북쪽은 당나라 이래로 압록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였다.
대개 서북쪽은 고구려 경계에 미치지 못 하였으나 동북쪽은 고구려때 보다 확장되었다.
총520개의 행정구역이 있었다.
그중에서 우선 경기도에 해당하는 양광도 에 소속된 군, 현이 40개이다.
천년전에 있었던 군, 현이 지금보다 많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려사지리지 남경유수관 양주에는 소속된 군이 3개, 현이 6개 있으며
관할하에 도호부가 1개, 지사군이 2개, 현령관이 1개가 있다.
1) 교하군 - 원래 고구려의 泉井口현(屈火군 또는 於乙買곳이라고도 한다.
宣城이라고도 부르며 烏島城(한수와 임진강 하류가 이꼿에서 만난다.)과 洛河渡이 현의 북쪽에 있다.)가 있다.
여기서 선성이라고 부르던 천정군이 통일 신라와 대진국 발해의 국경이었던 곳이다.
임진강 이북이 발해의 영토였다고 대진국 역사에서는 말하는데 한반도 지리에서는 그 국경을 그릴수가 없다.
-주- 아래의 지도를보면 한수가 단강丹江과 만나는곳에 단강구 丹江口시가 있다.
이 단강구가 천정구였던 교하이다.
잊어버렸던 우리 고대사의 역사 지명이 대륙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보라, 고려사의 설명이 얼마나 자세한가.
두 강(한수와 임진강이 만나는 곳을 교하라고 하고 이곳을 천정구
라고 하였는데
한수와 단강이 만나는곳을 단강구라고 한 대륙의 지명.....
과연 단강의 북쪽엔 낙하洛河도 흐르고 있다.
이 낙수가 동으로 흘러 가는데 그 곳에 낙양성이 있다.
한수와 양자강이 만나고 있다.
고려사에 양진(楊津)이란 지명이 나온다.
楊津이란 양주땅에 흐르는 강이란 뜻의 고려의 지명이다.
이 명칭이 양진, 양찐, 양쯔로, 지금은 양쯔강, 양자강으로 변천해 온 우리 고려의 강이다.
위의 호북성 한수가 흐르는 곳에 남양시와 수주시가 있다.
대륙에 우리 고려와 조선의 지명이 한수유역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2) 견주: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이다.
3) 포주: 고구려의 마홀군이다. 신라의 경덕왕이 견성군으로 고쳤다.
단련사를 두었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으며 청화(淸化) 라고도 한다.
4) 행주: 고구려의 개백현인데 신라 경덕왕은 우왕으로(왕봉이라고도 한다)
고치고 한양군 관할하의 현으로 하였다. 덕양이라고도 한다.
5) 봉성현: 고구려의 술미홀현. 교하군 관할이다.
서원현령으로 고쳤다.
6) 고봉현: 고구려의 달을성현으로 교하군 관할이다.
7) 심악현 옛날의 보신향이다.
8) 풍양현: 고구려의 골의노현인데 경덕왕은 황양으로고쳐
한양군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9) 사천 (沙川)현 ; 고구려의 내을매(內乙買)현(내이미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 견성군 관할하의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 본 양주에 소속되었다. 대륙의 사천성을 감아 돌아 흐르는 강이 양진(양쯔강)이다
10) 안남 도호부 수주 (安南 都護府 樹州 ) :
본래 고구려의 주부토(主夫吐)군으로 신라 경덕왕은 장제(長堤)군으로,
의종 4년(1150년)에 안남도호부로 고쳐고, 고종2년 (1215) 계양도호부로 고쳤으며,
충렬왕34년 길주(吉州)목으로 승격 시켰다가 부평(富平)부로 되었다.
소속 현이 6개나 된다.
(1) 금주( 衿州 )(衿은 금黔으로도 쓴다.)
본래 고구려의 잉벌노(仍伐奴)현으로 신라 경덕왕은 곡양(穀壤)으로
고쳐서 률진(栗津)군 관할 하에 현으로,고려초 금주로 고치고, 현종 9년에 수주에 소속되었다.
시흥(始興) (성종이 정한명칭) 이라고도 하며, 양화나루터 (楊花渡)가 있다.
- 금주( 黔州)와 금강 (黔江)-
사천성과 운남성과 귀주성를 양쯔강(楊津)이 흘러서 간다.
이 지역에서는 양쯔강의 이름을 금사강(金沙)이라 한다.
운남성을 흐를 때는 려강(麗江)이라 부르며, 중경시 남부 지방에선 금강(黔江)이 된다.
그래서 이 지역의 지배자 이었던 백제를 침략해 온 당나라 군사가 티벳에서 이 금강을 타고 공격해 온 것으로 역사는 기록 하고 있다.
귀주성에 귀양 가는 곳이란 뜻으로 생긴 도시의 이름, 귀양貴陽이 있다.
이 귀양을 중심으로 금동 黔東, 금남 黔南, 금서 黔西등의 도시가 있다.
이 귀주가 금주黔州가 아니라면 우리의 고대 도시 금주黔州를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2)동성현: 고구려의 동자홀현(당산현,또는 구사파의 라고도 한다.)으로신라 경덕왕은 동성현으로 만들어 장제군 관할로 만들었고, 고려공민왕때 통진감무를 두면서 그 소속현이 되었다.
(3)공암현; 고구려의 제차파의현으로 경덕왕이 률진군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충선왕 2년 양천현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4)김포현; 고구려의 금포현으로 경덕왕이 장제군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5)수안현 구구려의 수이홀을 술성으로 고쳐 장제군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12) 인주(仁州);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미추홀)인데 겨덕왕은 소성으로 고쳐서 률진군 관할하의 현을 만들었다.
현종 9년 수주(樹州)관할 소속이었고, 경원군이 되었으며 또 인주 지주사를 두었다. 공양왕 2년 경원부로
승격되었다. 자연도, 삼목도, 룡류도,등이 있으며 본 주에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개 있다.
(1)당성군; 본래 고구려의 당성군으로 경덕왕때 당은군으로,
고려때는 당성군으로 현종9년 수주(水州)에 소속되었다가 인주에 소속시켰다.
충렬왕 16년 홍다구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지 익주사로 승격되었으며, 도강녕도호부가 되었다가 익주목으로 되었는데
충선왕2년 전국의 목이 폐지되어서 남양(南陽)부가 되었다.
2)재양현; 옛날의 안양(安陽)현이다.
13)수주(水州); 고구려의 매홀현으로 경덕왕이 수성(水城)군으로 고쳤다.
고려태조가 남방을 정벌할때 이 군사람 김칠, 최승규등 2백여명이 귀순하여 협력한 공으로 수주로 승격되었으며,
원종12년 책량주둔 몽고병들이 대부도에 침략하여 약탈할때 폭동이 일어나 그것을 진압한 공로로 水原 도호부가 되었고
후에 수주목이되었다. 목이 폐지되어 수원부가 되었고, 공민왕11년 홍두적의 난때 제일먼저 항복한 이유로 수원군이 되었다. 한남(漢南) 또는수성(隋城)으로 부르는바 소속현이 7개이다.
위의 호북성 한수가 흐르는 곳에 남양시와 수주시가 있다.
대륙에 우리 고려와 조선의 지명이 한수유역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1)안산현; 고구려의 장항구현으로 장구군이 되었다가 안산군이 되었다.
(2)영신현; 오타, 혹은 영풍(永豊)이라고도 한다.
(3)룡성현; 고구려의 상홀현.
(4)정송현; 옛날 송산부락이다.
(5)진위현; 고구려의 부산현이다.
(6)양성현; 고구려의 사복홀로 적성으로 고쳐 백성군 관할 현이되었다.
(7)강화(江華)현; 고구려의 혈구군(갑비고차)으로 신라 경덕왕은 해구군으로 고쳤다. 고려초 강화로 고쳤다.
고종 19년 (1232년) 왕이 몽고의 침략군을 피하여이 곳으로 수도를 옮기자 군으로 승격 시키고 강도(江都)라고 불렀으며
37년(1250년)에 주위에 길이가 2천 9백 60여 간(間) 이 되는 중성을 쌓았고
원종 원년(1260년) 다시 송도를 수도로 하였다. 진강현, 하음현, 교동현등이 소속되어 있다.
아래 지도는 대륙의 강소성으로 상해시 가 있는 곳이다.
양자강이 바다로 들어가는곳 이곳이 장강구, 즉 해구군이다.
江口, 海口 어느것이든 이지역에 맞는 이름이다. 이곳에 江都시, 鎭江시, 江陰시가 있다.
한반도의 강화도에는 없는 고려사지리지의 기록에 있는 지명이 대륙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과연 누가 강화가 섬이라고 했는가? 단지 이 지역이 강이 거미줄같이 엮여 있는 강의 바다와 같은
곳이라 몽고의 기병들이 접근 할 수 없었던 곳이라서 고려 조정 에서는 전략적으로 이 곳에 임시수도로 정한 곳이 강도(강의 도시) 였던 것이다.
한수는 무한시에서 양자강과 합류하고 있다.
이 한수 유역에 건설된 도시가 한양漢陽이다.
그런데 이렇게 핵심적인 대륙의 중원땅을 감아 돌아 흐르는 한수를 삼국지를 비롯하여 대륙의 각종 사서에 대부분 언급을 회피 하고 있는 것 이 사실이다.
한수유역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안강安康현(섬서성 하단)이 있는데 경주가 고향인 사람이나 신라의 지리지를 한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여기에도 안강이 있나 싶을 것이다 .
그런데 이곳 안강현이나 절강성의 여수麗水현은 그 크기가 한반도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만큼이나 큰 데다가 그 지명의 역사가 천년이 넘는다.
한반도의 왜정시대 급조하여 만든 지명과는 아예 비교를 할 수 없다..
그 안강현에 두 도시가 있다.
바로 한음漢陰과 자양紫陽이라는 도시이다.
왜인들이 대륙을 주무를때 한양漢陽을 두곳으로 쪼개 놓았다.
바로 이곳 한음과 자양의 두 도시를 하나로 합하면 우리 조선의 도읍지 한양성이 된다.
또한, 이 한수가 양자강과 만나는 곳에는 무한武漢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 무한은 무창武昌과 한양漢陽 이라는 두 도시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위 지도를 보면 한수가 흘러 대륙의 중심을 적시고 드디어 양자강과 합쳐 지는 곳에 무한이 있고 그 무한 시가지에 한수 쪽의 큰 도로의 이름이 한양대로이고 양자강 쪽 건너편에 무창첨(역)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무창시에서 양자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면 구강시 맞은편에 있는 산의 이름이 한양봉漢陽峰이다.
그럼 한양을 시작으로 한수 유역을 따라 고려사 지리지에 나오는 우리의 옛 역사의 지명을 찾아보자.
양광도 楊廣道는 원래 고구려와 백제의 땅으로 (한수이북은 고구려, 이남은 백제의 땅이다,)
고려 성종14년 전국을 10개도로 나누고 양주, 광주 소속 주,현은 관내도에, 충주, 청주 소속 주,현은 충원도에, 공주, 운주 소속 주, 현은 하남도에 각각 속하게 하였다. 이를 통합하여 양광 충청주도, 양광도, 공민왕 5년에 충청도로 만들었다.
관내도는 고려의 도읍지 황도皇都 개경開京 개주開州 촉막군蜀莫郡을 중심으로 경기지역을 형성 하게 된다
-고려사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의 설명에 의하면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을 중심으로 양주 (한양)가 좌측에 있고 해주가 우측에서 보좌하고 있다고 지리적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지도에서 확인 해 보라.)
자 그럼 한수漢水 유역에서 한양漢陽을 찾았으면 광주廣州도 찾아보자.
힌트는 서경을 서안이라고 하였고 광주를 광안이라고 한 것이다.
- 광주목 廣州牧 -
광주목 廣州牧은 본래 백제시조 온조溫祚왕이 한漢나라 성제 홍가 3년 (기원전18년)에 나라를 창건하고 위례성에 수도를 정하였다가 13년에는 한산아래에 가서 목책을 세우고, 이곳에 위례성주민을 이주시켜 마침내 궁궐을 짖고 살았으며 이듬해에 이곳 광주로 도읍을 옮겨 남한산성 南漢山城 이라고 부르고 384년간 백제의 도읍지로 하다가, 근초고왕 25년(370년)에 이르러 수도를 남평양성 南平壤城 (한양성漢陽)으로 옮겼다.
이곳을 신라 문무왕이 접수하여 한산주漢山州, 남한산주南漢山州, 한주漢州라 하였다가 고려 태조가 광주廣州로 고쳤다.
대륙의 사천성의 지도이다.
사천성과 붙어 있는 섬서성 하단부에 한수가 흐르고 한수 남쪽의 대파산를 우리가 부르던 이름이 남한산南漢山이고 이곳을 한주漢州, 남한산주南漢山州로 부르며 성을 쌓아 남한산성南漢山城 이라 하던 백제 400년의 도읍지 광주廣州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 광주목에 군郡이4개, 현縣이3개가 소속되어 있다.
1)천녕川寧郡 ; 본래 고구려의 술천述川군으로 신라 경덕왕이 소천군으로 고쳤다.고려초에 천녕군으로 고쳐 광주목에 속하게 하였다. 진강 나루터 鎭江渡가 있다.
2)이천 利川군 ; 본래 고구려의 남천南川현으로 신라가 이를 병합하여 주州로 승격시켜 군주 軍主를 두었고,경덕왕은 황무黃武로 고쳐 한주 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고종44년 (1257년) 영창永昌이라 불렀고 공민왕4년 왕의 할머니 신씨의 고향이라고 남천군으로 승격시켰다.
-주- 대륙의 사천성은 이번(2008년 봄)에 대지진이 일어난 곳으로 4개의 큰 강으로 이루어져 사천四川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우리의 고대국가 백제의 400년 도읍지 한성(남한산성)이 있었고 그 한성의 속현이 첫째가 천녕川寧이고, 둘째가 이천利川이다. 천녕이란 강江의 안녕을 책임 진다는 것이고, 이천이란 강의 이로움을 얻는 것이라는 뜻이다.
사천四川에서 우리 옛 역사의 고대 지명을 확인 하여 보자.
사천성 대파산이 백제의 남한산이다. 이 대파산에 달천達川시와 술녕述寧시가 있다. 이곳이 천녕川寧군 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개현開縣시, 개강開江시가 있음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
이곳이 고려의 도읍지 개주開州 촉막蜀莫군 이었던 것이다. 지도를 클릭하여 사천성을 자세히 살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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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천성에 중경重慶시가 있다. 이 곳이 통일신라 의 9주 5소경의 하나인 중원경 中原京으로 충주목 忠州牧이다.
中京을 重慶으로 발음은 같고 글자만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우리 보고 속고 있으라고 하는 짓이다. 하지만 그 지역 발음으로 충칭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이 충주였던 것이다.
이곳 중경시에 이천 利川시와 남천 南川시가 있다.
자! 천녕과 이천, 남천을 찾았으니 다음은 광주를 찾아보자.
광주는 중경과 사천의 경계에 광안廣安, 그리고 또 광원廣元이란 도시가 있는데 이 곳이 광주 廣州였다.
그런데 기가 막힐일은 이곳이 광주廣州가 아니라고 홍콩 위쪽에 廣州를 옮겨 놓았다.
그 곳은 고려의 해양海陽현이며, 백제의 무진주武珍州로 광주光州가 있어야 할 곳이다.
3)죽주竹州; 고구려의 개차산군으로 개산군, 음평, 연창이라고도한다.
지도에보면 사천성과 섬서성 경계에 죽계, 죽산이란 지명이있다.
4)과주果州; 고구려의 률목군으로 률진군, 부안, 부림,부원이라고도한다. 관악산이 있다.
5)지평현; 고구려의 지현현.
6)룡구현; 구성현 또는 거서로도 불린다.
7)양근현; 고구려의 양근군으로 항양, 빈양,영화로 불렸다.
용문산이 있고, 용진나루가 있다
등의 주, 군, 현이 소속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