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유민(亡國遺民)의 슬픈 발자취 카자흐스탄을 가다
박 기 병 (전 강원민방 사장)
중견 언론인들의 친목모임인 관훈클럽 회원 50여명은 지난 10월 16일 4박 5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 해외문화유적 답사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카자흐스탄의 문화유적 답사는 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를 주제로 한 세미나와 고려인이 처음 강제 이주된 우슈토베라는 곳을 답사하는 일정이었다.
우리에게는 멀고 아득한 나라로만 생각되던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은 세계 9위의 넓은 영토(한반도 14배)에 1천 8백만의 인구가 사는 비옥한 땅에 무한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석유 매장량 세계 11위, 천연가스 14위, 우라늄, 구리, 아연, 은, 중석, 망강 등이 세계 10위 이내에 있는 지하자원 부국이다. 자동차로 종일 달려도 지평선이 계속되는 곳으로 광활한 대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0- 온갖 한(恨) 맺힌 고려인 초기 정착지
이번 답사에서 우선 관심을 끈 것은 1937년 9월 10일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연해주에서 번영하고 있던 약 18만 명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이주 전후의 생활상이었다. 우리 동포가 듣도 보도 못한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뿌리내린 역사는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슬픈 발자취였다. 소련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조치는 소수민족을 분산시키고 중앙아시아의 집단농장화를 추진할 심산도 있었지만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고려인들이 일본의 침략 앞잡이(스파이) 노릇을 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역사를 연구한 고려인 3세 강 게오르기 박사(알마티 국립대 교수)는 세미나 주제 발표를 통해 고려인들이 강제이주당할 당시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37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에 이주를 완료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고려인들은 창문이 없고 지붕이 구멍 나고 자동 브레이크조차 없는 화물차에 짐짝처럼 실려 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족이 여러 차량으로 흩어져 실려 왔기 때문에 이산가족이 많이 생겼고 수송 중에 전염병이 퍼져 아이들이 60% 이상 사망하는 등 아비규환의 지옥을 연상시키는 비참한 죽음의 행렬”이었고 이주도중 수천 명의 독립운동가와 지식인들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취조를 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고려인이 강제이주로 처음 하차한 우수토베 기차역이었다. 역 건물들은 많이 변했지만 연해주에서 우슈토베 역까지 연결된 6,500km에 이르는 철로는 그대로 깔려 있었다. 이곳에 내린 고려인들은 2km 쯤 떨어져 있는 교외에 있는 바슈토베 언덕으로 이동해서 겨울이면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견디면서 토굴을 파고 움막을 지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곳은 지금 사막에 가까운 황량한 들판이었지만 땅굴을 파고 산 흔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0-규모 웅장한 판필로바 28인 공원
지난 7월 26일 통일문화연구원과 조선일보. 남양주 현대병원이 카자흐스탄 알마티 주와 공동으로 추모공원 기공식을 갖고 추모비석을 세웠다. 현지에 가 보니 추모비에는 “동족여천(同族如天) 동포는 하늘과 같으니 서로 잘 섬기며 살자”는 뜻의 글자가 굵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에 앞서 한‧중앙아시아 친선협회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주도로 지난 2012년에 처음으로 세워진 정착지 표지석이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이곳은 원동(극동)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라고 씌어 진 글귀가 선명하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최초 정착지 바슈토베 언덕에는 이곳에서 별세한 초기 고려인의 공동묘지가 있다. 200여 개의 무덤이 모여 있는데 이런 곳이 다섯 군데 있다고 한다. 비석에 사진을 넣어 만든 무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묘비에는 생년월일과 사망 날짜가 적혀 있고, 이름은 대부분 러시아 글자로 되어 있었다. 머나먼 이역만리 타국에서 온갖 한(恨)을 간직한 채 눈을 감았을 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알마티에서 카자흐스탄 한글 한인일보의 발행인이며 재외동포편집인협호 김상욱 회장은 고려인들이 80년이 지난 지금 현재 약 10여만 명으로 전체 인구 1800만에 0.6%에 불과 하지만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각각 1명을 비롯, 언론인 의사 학자 변호사 기업인등 지배계층에 많이 진출해 있고 고려인이 정착해 살았던 8개 도시와 15개 마을 거리를 저명한 고려인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전한다.
마지막 일정으로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민속 등을 이해하기 위해 국립박물관과 민속전시관을 관람하고 판필로바 28인 공원을 둘러 봤다 이 공원은 제2차세계대전 때 독일 군 탱크 50대와 맞서 저항하다가 전사한 316보병사단 소속 군인 28인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생존 때의 모습을 동상으로 건립해 놓은 곳이다. 넓은광장에 건립해 놓은 동상도 웅장했다. 이 공원을 둘러보면서 문뜩 6.25전쟁당시 춘천방어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소양강변에 조성한 춘천대첨공원이 너무도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