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그리고 정남진, 정서진
이규섭(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정동진, ‘모래시계’ 영향 해돋이 관광명소
강원도 강릉 정동진(正東津)은 TV드라마 ‘모래시계’ 영향으로 국내 최고 해돋이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1995년 방송된 ‘모래시계’는 최고 시청률 64.7%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직장인들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일찍 귀가하여 ‘귀가시계’로 불렸다.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으로 다뤄 관심을 모았다.
정동진은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 동쪽이다. 정동진역은 바다와 가장 가깝다. 플랫폼에 서면 파도가 발목을 적실 듯 밀려온다. 운동권 학생으로 수배 중이던 윤혜린(고현정 분)은 플랫폼에서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열차를 기다린다. 서서히 들어오는 열차 보다 빨리 도착한 경찰은 그녀에게 수갑을 채운다. 플랫폼에는 해풍에 허리가 굽은 소나무가 끌려가는 혜린을 지켜본다. 훗날 그 소나무는 ‘고현정 소나무’라는 이름을 얻고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운 강릉 정동진역 플랫폼. 해풍에 허리 굽은 소나무는 드라마 ‘모래시계’ 방송 이후 ‘고현정 소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강릉시는 드라마 인기의 여세를 몰아 정동진 관광브랜드화에 발 벗고 나섰다. 1999년 대형 모래시계를 정동진 바닷가 모래톱에 12억 8천만 원을 들여 조성했다. 잇달아 시간박물관, 리조트, 레일바이크를 설치하는 등 관광객을 유치할 인프라를 구축했다. 해돋이 명소에 문화예술 콘텐츠를 더해 ‘정동진역 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해변을 달리는 레일바이크와 모든 좌석이 바다를 향해 있는 관광전용열차인 바다열차(정동진↔삼척)를 이용하는 관광객들도 늘었다.
정동진의 인기가 시들해질 기미가 보이자 강릉시는 2016년 강동면 정동~심곡 구간의 해안단구 탐방로인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을 조성해 인기몰이에 나섰다. 강릉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세계적인 관광지로 각광 받기를 기대한다.
#정남진, 장흥 알리는 브랜드로 자리잡아
정동진의 인기몰이에 자극받은 전남 장흥군은 정남진(正南津) 콘텐츠 개발에 나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장흥군이 정남진을 브랜드로 추진한 것은 2004년. 처음에는 정서진 위치 선정을 둘러싸고 주민들의 공방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다. 국립지리원의 해석에 따라 경도 126도 59분, 위도 34도 32분에 해당하는 관산읍 신동리 사금마을에 표지석을 세우려고 추진했다. 그러자 용산면 남포리 인근 주민들은 마을 이름 자체가 ‘남쪽 포구’로 정남쪽을 의미한다며 반발했다.
장흥군은 정남진 브랜드를 축제와 먹거리, 관광명소 등에 두루 활용하여 연착륙시키자 주민들은 대승적 차원에서 힘을 모았다. 올해 5회째를 맞은 ‘정남진 장흥 물축제’는 지난 2월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시상식에서 축제글로벌 명품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특유의 향기와 피톤치드로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장흥 물축제는 ‘물과 숲 그리고 휴(休)’를 주제로 매년 7월말에서 8월초에 탐진강과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열린다. 살수대첩 거리퍼레이드와 지상 최대의 물싸움, 맨손 물고기 잡기 등 방문객이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로 대한민국 여름 대표축제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는 아름드리 편백나무가 뿜어내는 특유의 향기와 피톤치드가 온 몸에 퍼져 상큼하다. 목재문화체험관, 편백 소금집, 편백 노천탕, 치유의 숲, 억불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말레길 등을 조성하여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정남진 전망대에 오르면 남해와 점점이 떠있는 아름다운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통일광장에는 대형 태극 문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부근에는 전국 최초로 해양낚시공원을 조성하여 어촌계에 위탁운영중이다. 바다 위 펜션에 숙박하며 낚시를 할 수 있다.
‘장흥 인구 보다 한우가 더 많다’는 장흥은 홍어삼합을 패러디한 ‘장흥삼합’을 내 놓았다. 정육점에서 착한 가격으로 한우를 구입한 뒤 전문식당에서 상차림 값을 내고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과 함께 돌 판에 굽는다. 깻잎장아찌나 묵은 김치로 싸먹으니 식감이 부드럽다. 장흥을 대표하는 명품음식 반열에 올랐다.
#정서진,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승패 가른다
정서진(正西津)은 지명 선점을 둘러싸고 인천광역시 서구와 충남 태안군 두 자치단체가 신경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인천시 서구는 2011년 3월 오류동 1539의 6 일대를 ‘정서진’으로 지정, 경인아라뱃길과 연계해 서해낙조 명소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인천시 서구는 아라뱃길과 연계하여 해넘이 관광명소로 추진하고 있다.
아라뱃길은 한강 하류에서 서해바다까지 이어진 18㎞의 물길로 2012년 개통된 국내 최초의 내륙운하다. 장흥군이 즐겁게 놀고 맛있게 먹고, 좋은 것을 사는 실속 있는 ‘정남진 장흥 토요 시장’을 열어 인기를 끌자 인천시 서구도 ‘정서진 농산물직거래장터’를 열었다. 지난 2월부터 11월까지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에서 장이 선다.
충남 태안군은 지난 2005년 만리포해수욕장에 정서진 표지석을 설치했고, 2011년 만리포 정서진 선포식을 가졌다. 태안군은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의미의 충북 중원(충주 일대)을 기점으로 했을 때 정서 방향은 태안이라는 주장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맑고 모래 질은 곱다. 대천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의 대표적 해수욕장이다. 태안군은 만리포해수욕장의 해넘이와 천리포수목원 등 광광 명소와 연계한 콘텐츠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어느 곳이 진짜 정서진인지 역사적, 지리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해넘이 명소에 걸맞는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는 쪽이 승자다.
정북진은 북한의 중강진으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나루 진(津)이 아니고 진압할 진(鎭)으로 나루 개념은 아니다. 지명은 압록강 중류지역이라는 의미다. 한 월간지가 2016년 6월 중국 접경 지역를 취재하면서 중국 쪽에서 바라본 강 건너 북한 중강진 지역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이었다고 소개했다. 15.7매
필자 : 이규섭 언론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