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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가 부 문 | 중( ), 고( o ) | 참 가 형 식 | 운문( ),산문(o) | |
신청 자 | 학교명 | 장성여자고등학교 1학년 3반 | ||
성명 | 강희진 | 연락처 | 010-2959-4218 | |
※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개인정보의 수집․이용)에 의거 아래의 동의서를 반드시 작성․동의(본인 자필로 하되, 만 14세 미만 아동의 경우 법정대리인의 동의)하여야만 참가가 가능합니다. 위와 같이 신청합니다. 2016년 8월 21일 신 청 자 강희진 (서명) ※ 개인정보보호법 제22조 5항에 근거, 만 14세 미만자 참여신청을 법정대리인으로서 동의합니다. (만14세 미만) 법정대리인 성명 : (서명) 강원여성문학인회장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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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정보제공 동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동의 등) 및 제24조의2(개인정보의 제공동의 등), 「개인정보 보호법」제15조(개인정보의 수집·이용), 제17조(개인정보의 제공)에 따라 본인의 개인정보를 강원도여성문학인회에서 수집·활용하는데 동의합니다. 2015년 8 월 21 일
성 명 : 강희진 (서명,날인) 법정대리인(만14세 미만) 성 명 : (서명,날인)
◦ 개인정보 수집목적 : 본인확인절차 및 수상자와 수상일 연락 ◦ 개인정보 수집항목 : 학교명, 학년·반, 성명, 휴대폰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 본 대회 종료 또는 사업목적이 달성된 이후 파기 ◦ 개인정보를 제공받는 대상 : 강원도여성문학인회 ※ 귀하께서는 개인정보 제공 및 활용에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드리며, 거부하실 경우 작품 접수가 불가능함을 알려드립니다. |
<여기서부터 작품 시작>
우리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
장성여고 1학년 3반
강희진
엄마는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존재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를 가장 먼저 찾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엄마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해 준다. 엄마는 내가 해결하지 못한 일도 해결방법도 척척 알려주고 내가 놓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잡아주기도 한다. 이처럼 나에게 있어서 엄마는 항상 크고 히어로 같은 존재이다 보니, 평소에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나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을 꾸던 꽃다운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엄마라는 역할로 인해 그때 그런 시절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 같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엄마의 어여뻤던 시절이 세월 속에 묻혀 버렸고, 나 또한 알아주지 못했으니 엄마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지금이 되어서야 느껴본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항상 어렵고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일 때 엄마는 가족을 위해 어린 나이 때부터 골뱅이도 팔아 보고, 메추리도 팔아보며 돈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셨다고 한다. 늦게 일하시는 부모님 대신 동생도 돌봐주고 가게일도 도와주면서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풍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지난 이야기들은 솔직히 나는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다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의 엄마가 된 후에도 우리 엄마는 예전처럼 늘 억척스럽게 사셨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이다. 엄마는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에 대한 감정을 먼저 알아봐주고 엄마가 우리에게 주는 아낌없는 사랑이 나의 마음은 물론, 나의 영혼까지 따뜻하게 해준다.
이렇게 항상 큰 울타리처럼 든든하고 커보였던 우리 엄마가 어느 순간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가끔씩 술도 마신다. 엄마는 종종 집에서 답답함이 느껴지시면 한 잔 하실 때도 있다. 그날도 엄마는 혼자서 술을 드시고 계셨다. 아마 삶의 답답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친구와 어울리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술을 많이 드셨었다. 술에 취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 때 아빠를 보면서 엄마는“돈가스 사 주세요. 돈가스가 먹고 싶어요.”라고 하며 서럽게 펑펑 우셨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때 엄마 옆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돈가스 하나 마음껏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때의 그 어려웠던 시절을 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혹은 살기 힘들고 어려웠지만 부모님의 든든한 울타리 아래에 있던 엄마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음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울타리 안에 살아왔지만, 지금의 엄마는 거꾸로 나에게 그 울타리를 지어주려고 하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속상함과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있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를 위해 노력해주었지만 나는 그 노력을 어쩌면 짓밟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내가 멋모르고 방황을 했던 시기는 부모님에게 씻겨지지 않는 상처와 같다는 걸 왜 지금이 되어서야 깨달았는지 나는 너무 후회하고 있다. 내가 부모님에게 준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어서 쉽게 아물지 않을 것 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지만 그 상처가 아물려면 아직도 길고 긴 여정의 시간이 남은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사람들은 항상 이야기한다.“나중에 돈 벌어서 부모님께 꼭 효도해야지.” 하지만 이 말을 실천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중에”라는 말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이야기하는 거지만 냉정하게 부모님이 그때 우리와 함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그렇다고 지금 돈을 벌어서 효도하라는 것 또한 아니다. 살다가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부모님이 조금은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내가 따뜻이 안아드리면 된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당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나에게 희생해 주셨던 것처럼, 나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열심히 살면 된다. 엄마가 나라는 꽃에 거름이 되어주었더라면 나는 그 꽃을 아름답게 피우면 된다. 이제는 엄마의 사람에 보답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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