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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애와 이웃 사랑을 통한 세상 밝히기- 박상재(아동문학가. 문학박사), 광주여성문학회 시누대18.
가족애와 이웃 사랑을 통한 세상 밝히기
-이성자의 문학세계
박상재(아동문학가. 문학박사)
1. 들어가는 말
이성자는 1949년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2년 아동문학평론 신인상에 동시 <시계와 밤과 아이>가 당선된 후, 1994년에는 계몽사 아동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었으며, 1996년에는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됨으로써 동시인으로서의 문학적 역량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한 때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몸담기도 했으나 글쓰기와 학업에 정진하여 현재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시 쓰기로 만족하지 않고, 동화쓰기에도 집착하여 제9회 눈높이아동문학상에 동화 <벚나무와 자전거>가 당선되어 동화작가로서도 겸업을 하게 된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너도 알 거야』1) , 동화집 『내 친구 용환이삼촌』2), 장편동화『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3)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아동문학가 이성자의 동시와 동화를 일괄한 후 그의 동시와 동화에 나타난 문학적 특징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 글의 기본 텍스트로는 앞에 소개한 3권의 책(『너도 알 거야』,『내 친구 용환이삼촌』,『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을 취하고자 한다.
2. 따뜻한 시선으로 짜낸 동심의 피륙
가. 담론이 담긴 시
이성자는 동화 작가로서보다 동시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가 문학의 둥지를 튼 곳이 동시나무이고, 그의 문학의 고향이 동시마을이기 때문이다. 이성자의 동시에는 할머니, 엄마, 아빠, 삼촌, 언니 같은 가족구성원이나 집배원이나 미화원 같은 이웃들이 많이 나온다. 그의 첫 동시집 『너도 알거야』에 나오는 가족 구성어를 살펴보면, ‘할머니’가 나오는 작품으로 <너도 알거야>, <동백꽃 이야기>, <잃어버린 이야기>, <등나무 의자>, <버스 정류장에서>, <해바라기>, <바람 부는 날> 등이 있고, ‘엄마’가 나오는 작품에는 <동백꽃 이야기>, <잃어버린 이야기>, <1998년 4월 24일>, <참 그렇구나>, <엄마가 늦는 날>, <겨울산> 등이 있다. 또 아빠가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잃어버린 이야기>, <1998년 4월 24일>이 있으며, 삼촌이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동백꽃 이야기>, <참 그렇구나>, <망월동에서>, <해바라기> 등이 있다. 거론된 작품의 제목을 보고 일괄할 수 있듯이 한 작품 속에 가족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가 가족을 공동체의 기본으로 삼으며, 문학의 고갱이로 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의 동시에는 담론을 담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그가 동화작가로 발을 내디딜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내세우는 준거가 된다. 이런 유의 작품들은 시 속에 스토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동화시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해 겨울 동백이 추위를 다 이겨 낼 무렵/삼촌은 갑자기 하얀 모습이 되어/ 영영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웬일인지 동백나무도 시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날마다 몇 숟갈씩 쌀뜨물을 밥으로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파리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건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백나무는/ 다시 파랗게 잎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동백꽃 이야기> 3~5연
작년 추석 때 성묘 갔다가 동백나무 한 그루 보듬고 온 삼촌이 갑자기 죽자 동백나무도 시든다. 할머니는 삼촌을 간호하듯 동백나무를 정성껏 간호한다. 마침내 동백꽃 한 송이가 피어나자 “이 자식아 어디 갔다 인제 왔”느냐며 삼촌을 기린다는 담론의 시이다. 빨간 동백꽃을 보며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늙은 어머니의 마음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망월동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노래한 시이다. 1980년 5월 광풍으로 휩쓴 ‘광주 민주화 운동’은 현대사에서 치유할 수 없는 역사의 상흔, 부정하고 싶은 역사의 질곡이다. 이성자는 역사의 현장에 있던 한 사람으로서 신군부의 무차별한 폭거에 쓰러져간 넋들의 한을 동심의 눈을 빌려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나도 알아요/ 우리 삼촌이 왜 여기 있는지/ 왜 사람들이 학을/ 넣어 두고 가는지//
5월 무등산에서 우는/ 뻐국새가 되었을까요// 학이 되어 날아가고 있을까요./
-<망월동에서> 3~5연
화자의 삼촌은 5‧18묘역에 잠들어 있다. 추모객들은 삼촌 앞에 꽃을 놓고 가거나 유리상자에 종이학을 넣고 가기도 한다. 시인은 화자의 입을 빌려 죽은 삼촌이 5월 무등산에 뻐꾸기가 되어 울고 있을지, 학이 되어 날아가고 있는지를 반문하고 있다.
<잃어버린 이야기>는 깨끗하지 못한 수돗물을 믿지 못하여 생수를 길어 온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물이 오염되지 않아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었던 옛날과 마음 놓고 수돗물을 먹지 못하는 오늘날의 상황을 대비하여 그리고 있다.
쏴 하고 쏟아지는 수돗물 속에/ 등 굽은 고기가 보이고/
둥둥 떠다니는 죽은 고기떼도 보입니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도 들려옵니다.
-<잃어버린 이야기> 끝 연
산업 발달에서 파생된 환경오염으로 날이 갈수록 수질이 나빠지고 독극물의 방류로 등이 굽은 기형 물고기들이 속출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처럼 시대적 화두와 담론이 깃든 시들을 선보이며 환경지킴이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성자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등나무 의자>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베란다로 밀려난 등나무 의자가 내레이터가 되어 할머니와 민이와의 애틋한 정을 들려주는 동화시이다. <1998년 4월 24일…>은 실직을 한 아빠 때문에 덩달아 힘이 빠진 가족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민이의 이야기를 일기체로 서술한 산문시이다. <참 그렇구나>는 물건을 사고 시장을 볼 때에도 ‘우리 동네 것을 사도록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통해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살아야 하는 까닭을 정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버스를 기다려도 태워 주지 않는 할머니를 위해 내가 갈 곳이 아닌 데에도 할머니와 함께 타려고 하는 <버스 정류장에서>는 이성자의 따뜻한 시선이 온기로 느껴지는 원초적 동심이 가득 담긴 시이다. 이밖에도 깡통을 의인화하여 이야기체로 구성한 <빈 깡통>에 이르면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구성에 유쾌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나. 자연친화적 천석고황
이성자의 동시에는 자연물을 소재로 삼거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들꽃을 의인화한 <들꽃나라>에서 ‘도깨비바늘’, ‘노란삿갓풀’, 분홍패랭이꽃‘ 같은 들꽃들의 생태적 특징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왜 한 구멍에 콩을 세 알씩 심어요?”/ 흙을 다독거리는 할머니께 물었다.
“한 알은 날짐승 주고/ 또 한 알은 들짐승 먹이고/ 남은 한 알은 너 주려고 그런단다.”
-<너도 알거야> 1연
자연과 더불어 욕심 없이 살아가는 할머니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이 시인은 할머니가 콩밭 군데군데 수수를 심는 이유를 참새는 수수 알갱이를 먹기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농사를 지으며 참새의 먹이까지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곧 자연과의 합일사상이요, 이러한 사상은 이성자가 추구하는 문학의 얼인 것이다.
이성자 시인의 천석고황의 정신은 벌레 같은 작은 생물들의 생태나 특징을 동심의 눈으로 재미있게 묘사한 동시들에 이르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심부름 가는 지네/ 신발을 신다가 그만/ 하루 해가 저물어 버렸대//
지네 숲에 놀러 간/ 개미는/ 신발을 찾지 못해/ 하루 해가 다 저물어 버렸대
-<지네와 개미> 1, 2연
이 밖에도 무당벌레의 생김새와 특징을 스무고개처럼 제시한 <무당벌레>, 꽃게와 소라가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꽃게는 ‘가위’, 소라는 ‘바위’를 내어 소라가 이겼다고 재치 있게 풀어낸 <꽃게와 소라>, 친구를 얕잡아 보고, 불쌍한 사람들을 업신여긴 벌로 어두운 땅속으로 눈도 발도 없이 기어 다닌다고 풍자한 <지렁이는> 등은 이성자 동시가 지향하는 자연친화적 소재의 준거가 된다.
햇살이 콕콕/ 나뭇가지를 쪼아댄다.// 햇살이 쪼은 자리마다/ 점점이/ 연둣빛으로/ 멍이 들었다//
보리밭에서부터 바람은/ 살살 일어나/ 이제 빈 가지마다/ 꽃불을 켜겠지//
멍든 자리마다/ 뾰조족 돋아나는/ 파름한 빛/ 봄빛을 켜겠지.
-<빈 가지마다> 전문
봄이 되어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가지를 ‘햇빛이 쪼아대서 멍이 들었다’고 한 표현은 참신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까지 볼 줄 알아야 한다. 랭보는 시인을 ‘발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물에 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의 눈을 가지고 새롭게 접근할 때 이와 같은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산뜻한 묘사력은 그의 시를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는 동심의 프리즘으로 조율된 눈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발견하여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3. 가족애와 이웃 사랑
가. 가족을 근간으로 한 생활 주변의 이야기
이성자의 동화는 생활주변의 이야기를 소재로 잔잔한 울림을 주는 생활동화가 대부분이다. 그는 가족 간의 따뜻한 정을 근간으로 삶의 애환과 정감을 노래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가 가족을 근간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작품의 주제로 다룬 까닭은 그가 초등학교 시절 다섯 번이나 전학을 다니며 낯 선 환경에서 외로움을 타는 생활을 체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혼의 증가와 각종 사고와 실직으로 인한 가족 해체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이미 오래이다. 이 성자의 첫 동화집『내 친구 용환이삼촌』은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담담히 그려낸 수채화 같은 동화집이다.
「할머니의 의자」는 연로하여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손자 명준이가 엮어내는 휴먼스토리이다. 할머니는 아파트 입구 전신주 아래에 납작돌을 주워다 놓고 앉아 명준이를 기다린다. 할머니는 감기를 앓아 건강이 좋지 않을 때에도, 명준이가 학교에서 늦게 올 때에도 명준이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명준이는 이상해진 할머니의 모습과 맞닥뜨린다.
“우리 손자가 와야 가지. 조금 있으면 우리 손자 온다니까.”
“할머니, 왜 그래? 나 여기 있잖아. 할머니 손자 정명준!”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동자가 희멀겋다. 왈칵 무섬증이 들었다. -중략-
할머니는 다음 날 아침에야 눈을 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짱한 얼굴로 일어났다.
-「할머니의 의자」,『내 친구 용환이삼촌』, 96~97쪽
주인공을 애지중지 하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매를 앓게 되면서 겪게 되는 집안 분위기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할머니가 치매 병원에 입원한 후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 명준이는 할머니가 앉던 의자에 앉아 할머니의 체온을 느껴본다. 이 작품의 주제 역시 가족간의 사랑이며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경로사상의 부양이다.
「빵굼터」는 아파트 상가에서 빵가게를 하는 도민이네 집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는 할머니들의 등나무 쉼터에 앵글을 맞춰가며 그린 생활동화이다. 직장을 그만 둔 도민이 아빠는 경만이네한테 세를 얻어 빵가게를 연다. 도민이 아빠는 도민이를 시켜 할머니들이 있는 쉼터에 빵과 음료수를 배달시켜 대접한다. 장사가 잘 되자 경만이 할머니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는 바람에 갈등을 겪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할머니들이 심술을 부리는 경만이 할머니를 따돌리는 바람에 외로움을 타게 된다. 운동회 총 연습 날 달리기를 하다 넘어진 도민이는 바지 뒤쪽이 터진 경만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도민이 어머니는 경만이 바지를 정성껏 꿰매준다. 경만이는 늘 화만 내는 어머니와 휠체어를 끌면서도 환하게 웃는 도민이 어머니를 비교한다.
‘치 도민이 자식. 13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도 나를 떳떳하게 데리고 가는 배짱 좀 봐. 가게에서 쫓겨나게 생겼는데도 뭐가 좋은 지 웃기만 하고.’
경만이는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내내 도민이 생각을 했어요. 같은 나이인데도 꼭 형같이 구는 도민이가 오늘은 왠지 싫지 않았거든요.
-「빵굼터」,『내 친구 용환이삼촌』, 69쪽
경만이의 설득과 주변의 눈치 때문에 할머니는 도민이네 빵굼터를 비워달라는 말을 철회한다. 갈등이 풀리면서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이 동화의 주제는 화합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 가꾸기이다. 이처럼 이성자의 동화에는 가족간의 화합과 사랑은 물론 이웃간의 상부상조와 선린을 내세운 작품들이 많다.
「엄마의 거울」은 교통사고로 엄마를 여읜 사춘기 소녀 민경이가 새엄마인 동명동 아줌마를 새엄마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탄탄한 구성과 함께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민경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사다 걸어준 거울을 보며 엄마의 추억을 찾아낸다. 새엄마는 민경이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엄마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나간다. 마침내 민경이가 소중히 여기는 ‘엄마의 거울’까지도 내다버리고 새 것으로 바꿔주는 바람에 집을 나가게 된다. 밤늦게까지 방황하던 민경이는 집으로 전화를 하고 아빠와 새엄마가 찾으러 온다.
“민경아, 아줌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난 너를 위해서 바꿨는데….”
아줌마의 얼굴이 많이 야윈 것 같았습니다. 순간, 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동안 아줌마에게 내가 너무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엄마, 죄송해요.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 나는 엉겹결에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말았습니다.
-「엄마의 거울」,『내 친구 용환이삼촌』, 89쪽
눈물짓는 새엄마의 품에 안기며 사랑을 느낀 민경이는 결국 아줌마를 엄마로 받아들이게 된다. ‘계모’라는 선입견은 동서양의 전래동화를 통해 학대나 구박을 일삼는 부정적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동화에는 그러한 새엄마의 고정 관념을 허물게 하는 따뜻한 정이 담겨 있다. 이 동화는 사춘기 소녀의 리얼한 심리묘사를 통해 새엄마와의 갈등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 성장동화이다.
「내 친구 김재영」에서 나(혜수)는 동생 같은 느낌이 드는 재영이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생아로 태어난 재영이는 외할머니와 이모, 이웃집 할머니 집을 오가며 자라다가 마침내 엄마를 찾아 제주도로 간다. 이런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탓에 냄새를 맡는 버릇이 생긴 재영이를 떠나보내며 아쉬워하는 화자의 마음과 재영이의 편지를 받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 동화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재영이를 통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찍어내고 있다.
「천사의 집」은 미장원을 운영하는 서른아홉 노처녀인 고모와 함께 장애우들이 사는 ‘천사의 집’을 방문한 내(명훈)가 느끼는 심정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나는 키가 작아 진혁이로부터 ‘도토리’라고 놀림을 당해 신체적 열등감을 가진 아이이다. 이러한 내가 장애우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기까지의 심경의 변화를 그렸다.
나는 거울 가까이 다가가서 내 얼굴이랑 가슴, 팔들을 만져 보았다. 짧은 다리도 만져 보았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키가 작다고 원망만 하던 내 다리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야!’/ 순간, 나를 비춰 준 거울이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천사의 집」,『내 친구 용환이삼촌』, 166~167쪽
화자인 나는 자신을 놀린 진혁이까지도 용서해주는 아량을 보인다. ‘천사의 집’ 장애우들의 생활을 본 후의 심경의 변화인 것이다. 마음의 키가 자라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 또한 성장동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나. 파격적인 인물 설정 구도
이성자 동화는 인물 설정의 구도가 파격적이다. 「내 친구 용환이삼촌」에는 나이가 한 살 아래인 조카가 동급생인 삼촌과 친구처럼 지내는데, 삼촌이 조카의 도움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한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3학년인 주인공(혜원)의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생활동화이다.
나는 키도 작고 나이도 한살 아래인 조카 용환이와 같은 반에 다닌다. 용환이는 막내할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 용환이는 삼촌답지 않게 조카인 나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한다. 막내할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는 바람에 용환이 삼촌네는 혜원이네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된다. 혜원이 아빠가 빚보증을 서주지 않자 막내할아버지는 섭섭하게 생각하며 이사를 가려한다. 그 때문에 서먹서먹하던 둘 사이는 철식이와의 싸움을 계기로 다시 친하게 된다. 학교에서 철식이가 혜원이를 놀리자 용환이가 혜원이 편이 되어 함께 싸움을 한 것이다. 얼마 후 막내할아버지 내외는 용환이만 남겨두고 혜원이네 집에서 이사를 한다.
“혜원아, 니가 용환이 숙제랑 잘 봐줘라, 응?”
막내할머니가 내 머리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중략-
입을 꼭 다물고 서 있던 용환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엄마, 걱정하지마. 혜원이랑 학교에 잘 다닐게.”-중략-
용환이는 잘 참아냈습니다. 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까요. 삼촌답게 아주 의젓했습니다.
-「내 친구 용환이삼촌」,『내 친구 용환이삼촌』 24~26쪽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면서 삼촌네와 사는 가정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또 단산으로 인한 출산율의 감소로 나이 어린 삼촌의 존재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성자 작가가 어린 시절이었을 때만 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요즘에 와서 늦둥이 출산 붐에 편승하여 조카보다 어린 삼촌의 등장도 옛날 이야기로서만이 아닌 실제 상황이 되었다. 허구의 매력은 평범을 뛰어넘는 이채로움에 있다. 평범한 가족 구조보다는 이채로운 가족 구조가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화자인 혜원이는 또래들에 비해 지진한 용환이삼촌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을 많이 겪는다. 또 혜원이 부모도 사업에 실패하고 조카 집에 들어와 사는 막내할아버지네 때문에 갈등도 많이 겪는다. 하지만 막내할아버지네가 이사를 하고, 철식이와 싸울 때 용환이 삼촌이 도와주면서 갈등도 풀리고, 종래는 삼촌으로 대접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언니의 스케치 북」은 신체적 발육 상태 때문에 언니와 동생의 역할이 뒤바뀐 자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동생인 민주는 3학년인데 언니는 이제 갓 입학생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오랫동안 입원을 했던 언니는 키도 동생보다 작고 몹시 허약하다. 그 때문에 언니를 학교에 데리고 다니며 동생처럼 돌봐주느라고 갈등을 겪기도 한다. 동생한테 그림을 배운 언니는 병원에 입원한 후 스케치북에 민주의 얼굴을 그린다. ‘내 동생’이란 제목을 붙인 후 잠들어 있는 언니의 얼굴을 보며 따뜻한 사랑을 느낀다.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언니가 눈을 뜨고는 나를 바라봅니다.
“민주야, 나 죽으면 좋겠지? 내가 널 너무 귀찮게 하니까. 그렇지?”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가끔씩 언니가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니의 스케치북」,『내 친구 용환이삼촌』, 123쪽
언니와 나의 역할이 뒤바뀐 것을 놀린 종진이도 문병을 와서 사과한다. 퇴원을 하고 건강해지면 많이 도와주겠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언니가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다. 이 작품 역시 부실한 언니와 정상적인 나를 등장시켜 역할전도에서 오는 가족간의 갈등과 해소 과정을 그리며 사랑과 우애의 필연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장편아동소설「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에는 5학년인데도 1학년처럼 키가 작은 정훈이가 등장한다. 이처럼 비정상적 캐릭터의 설정은 일탈에서 오는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다. 낯설게 하기에서 오는 새로움일 수도 있다. 천편일률에서 오는 평이함과 식상함의 틀을 깨고 새롭게 다가가려는 도전 정신으로 보여 진다.
다. 사투리의 구사의 문제점
이성자 동화의 공간적 배경은 주로 광주지방이 무대가 되고 있다. 대화체마다 구사하는 실감나는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대화체에서 사투리를 실감나게 구사하면 현장감을 드높이고 허구에 사실성을 주어 이야기의 흡인력을 높일 수 있다.
이성자 동화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는 인물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만 사투리를 쓸 뿐 다른 인물들은 사투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어서 죽어야제. 이런 꼴, 저런 꼴 안 보고 어서 죽어야제.”(내 친구 용환이삼촌)
“우리 막내가 서울에 가서 다시 취직을 한다는구먼. 다른 사람 주느니 차라리 도민이 아버지가 빵가게를 그대로 하면 더 좋겟지? 우리 손자 부탁도 있고 혀서.”(빵굼터)
“이걸 어쩐다냐? 나도 너희 외증조할머니처럼 오그라져서 죽을랑갑다.”(할머니의 의자)
“니 아빠가 엄마를 처음 집으로 데리고 온 날이었어. 몸이 약하게 보여 결혼을 반대했제. 그런데 시집오자마자 떡두꺼비 같은 널 낳은 겨. 할미는 널 보듬는 재미에 날마다 입이 벌어졌제.”(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
“애비야, 나는 집에서 죽을 겨. 병원에서 객사는 안 할 겨. 알았제?”(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
“저 정훈아, 주사맞아야 혀. 꾸욱 참고 주사 맞는 겨, 꼭…. 알았제?(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
이렇게 사투리들은 주로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만 구사되고 있다. 동일 지역,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라면 비슷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투리의 구사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일지역에 사는 한 가족의 경우라면 동일한 어투의 사투리를 구사해야 사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라. 자전거의 상징성
이성자 동화에는 자전거가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소품으로 자주 등장한다. 자전거는 역동성과 함께 전진이라는 상징성을 함유하고 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으면 전진하고 앞으로 나아갈 때 넘어지지 않는 항진성을 수반한다. 자전거는 정지 상태가 되면 쓰러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자전거 타기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자전거 타기는 이동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심심풀이로 하는 오락적 기능도 있고 따분함을 달래기 위한 일탈성도 갖추고 있다.
이성자 동화에서 주인공들이 자전거를 갖게 되는 계기는 동일하다. 아버지가 선물로 사주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있어 자전거는 어른들에게 있어 승용차만큼이나 비중이 있는 선물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한다는 것은 아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에서 정훈이 아빠가 정훈이에게 자전거를 사준 것은 또래에 비해 유난히 키가 작은 아들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담겨 있다. 또래들에게 ‘도토리’와 ‘난쟁이’로 불릴 만큼 키가 작은 아들에게 아빠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개척정신을 기르게 하기 위해 자전거를 선물한 것이다. 1학년인 그것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체격이 작은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는 일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그 무렵, 아빠는 정훈이에게 자전거를 사 주었습니다. 정훈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아빠와 엄마의 잔심부름을 도왔습니다.
-『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 40쪽
정훈이는 엄마의 아픔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전거 타는 일에만 신이 났던 아이이다. 정훈이는 자전거를 타고 병원에 다니며 성장호르몬을 주사 맞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세상 뜬 어머니를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전거 폐달을 밟는다. 이처럼 자전거는 놀이기구인 동시에 교통수단이며, 삶의 애환을 해소시켜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벚나무와 자전거」는 대교눈높이아동문학상을 받은 등단 작품이다. 민규네는 벚나무 아래 평상을 펴놓고 음식 장사를 한다. 아버지는 밤 벚꽃놀이 손님을 받으려고 벚나무에 가로등과 꽃전구를 걸어둔다. 꽃이 활짝 피자 손님들이 몰려들고 신이 난 아버지는 민규에게 새 자전거를 선물로 사준다.
자전거 위에 올라앉아 페달을 밟으면 자전거 바퀴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갑니다. 떨어진 꽃잎들이 사르르 일어나 은빛이 도는 바퀴를 따라오며 꽃보라를 일으킵니다.
-「언니의 스케치북」,『내 친구 용환이삼촌』, 29~30쪽
은빛 나는 자전거 바퀴살을 따라오며 꽃보라를 일으키는 벚꽃잎들의 모습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환상 효과는 시적 판타지를 유발해 낸다. 민규는 아버지가 벚나무에 못을 박아 달았던 가로등과 꽃전구 때문에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민규네 집에 회식을 왔던 담임선생님이 가로등과 꽃전구를 올려다보며 ‘철주를 세우고 등을 걸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4) 시간에 환경 문제를 공부하면서 나무도 정령이 있기 때문에 사람처럼 아픔을 느낀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민규는 아버지에게 등을 철주에 옮겨 달자고 부탁하지만, 아버지는 돈이 많이 든다며 거절을 한다. 고민하던 민규는 막대기로 벚나무에 걸린 가로등을 깨뜨린다. 민규의 과잉행동에 아버지는 벚나무에 박혀 있던 꽃전구와 가로등을 철주에 바꿔 달기로 결심한다.
내일이면 몸통에 박힌 대못을 빼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벚나무의 정령이 아빠와 내가 하는 말을 모두 들었을 테니까요. /오늘밤 벚나무는 한숨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세우겠지요? 온몸의 가지를 흔들어대며 꽃이란 꽃은 다 피워 낼 것입니다. 그러고는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연둣빛 고운 이파리를 피워 낼 준비를 서두를 것입니다.-중략-/ 나는 자전거를 타고 벚나무 주위를 몇 바퀴나 빙빙 돌았습니다. 그러다가 자전거 머리를 휙 돌려 재민이네 집을 향해 힘껏 페달을 밟았습니다.
-「벚나무와 자전거」,『내 친구 용환이삼촌』, 46~48쪽
민규가 자기 집에 음식을 먹으러 오기로 한 선생님이 가로등을 옮겨 단 벚나무를 보며 좋아할 것을 상상하며 신나게 자전거를 타는 삽화이다. 재민이는 민규의 자전거를 타보고 싶어 하는 같은 반 친구이다. 기쁜 마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전거를 타고 친구네 집을 향하는 에필로그는 시각적 효과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는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게 하는 소품 역할을 할 뿐 플롯 상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제목을 ‘벚나무와 자전거’로 내세운 것은 자전거가 동심을 표출하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자전거는 주인공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표출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정훈이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습니다. 햇빛은 햇살이의 고운 웃음 같이 정훈이의 온 몸을 감싸고돌다가, 다시 자전거 바퀴를 따라 빙빙 돌며 은빛 가루로 쏟아집니다.-중략- 정훈이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달음에 마을 입구 공터까지 달려옵니다. 습관처럼 공터를 한 바퀴 돈 다음, 팽나무 곁에 자전거를 세웁니다.
-『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 42~43쪽
햇빛이 자전거 바퀴를 따라 돌다가 은빛 가루로 쏟아진다고 한 표현 역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화의 문체는 이렇게 시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시적인 문체는 시적 판타지를 유발해낸다.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달리는 정훈이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어머니와의 사별, 키가 크지 않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정훈이가 스트레스를 푸는 길은 자전거 타기이다. 정훈이는 성장촉진제를 주사 맞으러 다닐 때 자전거를 이용한다. 자전거의 상징성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진취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다.
얼굴이 벌게진 정훈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석이네 대문을 나옵니다. 무슨 큰 실수라도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중략- 정훈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앞으로 달립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한참을 달리던 정훈이가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가쁜 숨을 고릅니다.
-『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지?』, 62쪽
마. 공동체 의식을 고양한 성장 동화
앞에서 언급한 장편『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성장 동화이다. 이웃에 사는 두 결손가정이 하나로 통합되는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이 책에 나오는 정훈이와 태석이는 담 하나를 이웃하고 살며 형제처럼 친하게 지낸다. 그러다 태석이가 불쑥 던진 “난쟁이 같은 자식”이라는 말 한마디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사이가 벌어진다. 정훈이와 태석이는 5학년 동급생이지만 정훈이는 키가 작고 태석이는 덩치가 크다. 정훈이가 키가 크지 않고 몸이 약한 것은 어렸을 때 심장 수술을 받은 데다 성장판이 손상되어서이다. 정훈이는 급성 간염에 걸린 엄마를 4년 전에 여의고, 아빠 할머니와 유치원에 다니는 선영이와 함께 살아간다.
어머니가 없는 정훈이네와 아버지가 없는 태석이네, 두 아이는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부모를 재혼시키려 한다. ‘난쟁이’라는 놀림을 받고 단짝으로 지내던 태석이와 말도 하지 않는 정훈이, 그 때문에 태석이를 잘 따르는 동생 선영이마저 미워하게 된다. 유치원 교사를 하는 태석이 엄마는 경운기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 태석이를 키운다. 태석이 엄마가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밖에서 돌아온 태석이와 마주치자 곁을 주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다. 이처럼 정훈이는 무안하거나 난감할 때, 마음이 상할 때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타기는 탈출구이자 현실도피이며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태석이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정훈이네 집에서 생활하게 되어 정훈이와 다시 친해진다. 어머니처럼 자신을 돌봐주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자 또 한번 슬픔에 잠기지만 태석이 어머니와 정훈이 아버지가 재혼을 하게 되면 둘은 형제가 된다. 표제어인『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는 키는 작지만 한 살이 더 많은 정훈이에게 태석이가 형이라고 부를 자신이 있느냐는 뜻이다. 이 작품은 가족사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애틋하게 살아가는, 나중에는 그 담까지 허물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두 집안의 가족사이자 성장 동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성장판을 다쳐 키가 자라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사는 정훈이를 중심으로 태석이와 선영이의 우애, 햇살이와의 우정이 씨줄이 되고, 한마음으로 어울려 돕고 살아가는 정훈아버지, 태석어머니, 용희아저씨, 상동할머니, 회장할머니, 박씨아저씨 등 용월리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의 모습이 날줄이 되어 따뜻하게 펼쳐지고 있다.
4. 나오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성자는 1990년대 초 동시로 등단한 후 가족과 이웃간의 인정과 자연 친화적 동시를 써오다가 2000년 이후부터는 동시와 동화를 병행하여 쓰고 있는 중견 아동문학가이다.
그는 사물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참신한 상상력을 가지고 시 쓰기에 정진하여 신선하고 주제가 뚜렷한 시를 창작해오고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생활 주변이나 자연에서 소재를 찾아 따스한 시선과 동심의 눈으로 관찰한 후 인정이 묻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단편 동화에는 일인칭 주관자 시점의 동화들이 대부분이다. 주인공인 내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다. 『내 친구 용환이삼촌』에 나오는 8편의 동화 중「빵굼터」를 제외한 7편이 모두 일인칭 주관자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성자 작가는 이러한 시점의 동화를 통해 가족간의 사랑, 이웃간의 정, 모둠살이에서의 더불어 돕고 살아가는 인정의 발현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첫 장편동화『형이라고 부를 자신 있니』역시 가족과 이웃의 사랑과 화합을 구가하고 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동화들이 생활 주변 이야기를 바탕으로 따뜻한 내용들이다.
필자는 차제에 이성자 작가에게 환상성을 추구하는 본격동화 창작에도 힘써주기를 주문하고 싶다. 그가 학문적으로 접근한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한국 현대 판타지 동화 연구>5)란 것은 차치하고라도 능력 있는 동시인이기도 한 그가 꽃피울 수 있는 장르는 생활동화보다는 한 차원 성숙한 본격동화 창작이라는 판단이 서기 때문이다. 그가 시 쓰기나 생활동화 창작에만 안주하지 않고 판타지 동화 창작6)에도 천착할 때 타고난 그의 능력은 한껏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한국 동화문학의 품격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첫댓글 비로소 이성자 교실의 카페다운 느낌이 드넹.ㅎㅎ
이성자두레박에 동화와 동시를 퍼 올려 마시면 행운이 찾아옵니다. -솟아솟아오르는 샘물에서-
진짜 교수님의 속마음에 한 발 더 다가간 느낌! 감사합니다. 열심히 써볼게요.
교수님, 지푸라기처럼 살아온 지나온 삶이, 교수님의 이력에 제 모습이 보입니다.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