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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8대명당 말명당 김극뉴 묘 풍수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에 유명하다는 묘소는 거의 다 답사를 하려고 하는데 나하고 운대가 안맞는 묘소도 더러 있게 된다. 이상스럽게 그 지역만 빼고 답사를 한다든가? 그곳을 가려는 날 꼭 집안에 일이 생기는 경우다. 순창에 있는 말명당으로 유명한 김극뉴 선생의 묘소가 그렇다. 사실 이곳은 광산김씨 양간공파인 내 조상의 묘소라고도 볼 수 있다. 비록 양간공파에서 바로 갈라졌지만 그래도 광김의 5대파 중에 같은 파이니 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매번 놓치더니 이번에 다른 지역으로 답사를 가는데 이곳을 들른다하여 조금 무리하게 합류하였다. 이곳은 조선8대명당으로 알려진 것처럼 멀리에서도 한눈에 묘역이 들어온다. 묘역에 올라보니 보국이 잘 감싸는 형세여서 기운이 모아지는 곳이다. 나는 특출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풍수하는 사람들 중 유난히 목소리 크고 자기 주장 강하신 분들 보면 조금은 무시하는 자세를 취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주장하는데 자기 혼자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어찌보면 사회를 이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잘 생각해 보면 딴지 거는 사람일 가능성도 높다. 특히 묘역에 올라서 그 큰 묘소를 두고 1미터가 더 내려와서 점혈을 했느니 좌우로 1미터를 옮겨야 한다는 둥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무시해주고 싶어진다. 재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기가 하는 용사에 자신있게 알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이곳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터로 회자되는데도 꼭 한두분이 딴지를 거는 곳이다. 그런데 그 딴지 거는 사람의 다른 글을 보면 거의 일반인들의 수준과는 다르게 남들은 좋다하는데 본인만 안좋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네가티브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글에 반론을 제기할 능력도 욕심도 없어서 그냥 내 생각만 주구장창 펼치지만 남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꼭 줏대없는 짓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튀어야만 누가 알아준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독자들도 스토리텔링이나 물형론에 너무 빠져들고 특히 언론에 나오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 현혹되어 그 말을 좆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다보면 악순환이 계속되기 마련이다.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풍수계에서 특출나게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 그 사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볼 때 부정적인 글이 난무하는 사람, 많은 사람들과 화합이 안되고 피튀기며 논쟁하는 사람, 언론에 나와 말도 안되는 말로 현혹시키는 사람 등은 잘 골라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이해서 득보다는 실이 많은 사람이니 주의해야 한다. 나는 학계에서 나오는 여러 의견들을 따져가며 법칙에 맞는 것은 내것으로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버리는 방향으로 해나가고 있다. 내 의견도 가끔은 피력하지만 피 튀겨가며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독자들께서는 저의 이런 의견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김극뉴(金克忸)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의백(義伯).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며, 아버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서 장수황씨(長水黃氏)이며, 처는 함양박씨(咸陽朴氏)이다. 김극뉴는 처음 음사로 청진전직이 되었다가 찰방이 되었고 1468년(세조 14) 춘장방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종부시정이 되었다. 그 후 의빈부경력이 되어 광릉군 이극배의 종사관으로 승진되어 남방의 기근을 구제하는 데 매우 공평하고 안정되게 하였다. 그 공로로 절충장군에 승진되어 오랫동안 판결사로 있다가 병조참의, 예조참의, 형조참의, 공조참의를 거쳤고 서추(西樞, 무반)도 겸했다가 사간원대사간에 이르렀다. 덕종 추종 시 대사간으로서 헌납 김일손 등과 함께 비례라고 역쟁하였으며, 연산군 때 김일손 등과 소릉(昭陵, 문종왕비 권씨(權氏)의 묘) 복위를 주장하였다. 묘소는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순창군 임계면 마흘리에 있다. <디지털논산문화대전에서 인용> 김극뉴 묘비(金克忸墓碑)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극뉴의 묘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극뉴의 묘는 조선 8대 명당이라 하며, 묘 주변은 원래 김극뉴의 처가인 함양 박씨(咸陽朴氏) 소유였다고 한다. 그런데 장인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면서 맨 위에 묘를 쓰고, 김극뉴 보다 17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묘를 그 아래에 썼으며, 부인 아래에 김극뉴의 묘를 썼다. 김극뉴 묘비는 김극뉴가 세상을 떠난 38년 후인 1534년(중종 29)에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강암의 방형 대석(臺石) 위에 비신(碑身)과 개석(蓋石)이 일체로 조각된 대리석 재질의 비이다. 조선 전기의 묘비 형태가 잘 나타나는 석조물로 본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32㎝, 너비 70㎝, 두께 14㎝이다. 비의 전면에 ‘통정대부 사간원 대사간 김공 지묘(通政大夫司諫院大司諫金公之墓), 숙부인 박씨 지묘(淑夫人朴氏之墓)’라고 해서로 썼다. 뒷면에는 세로로 18행 32자씩 새겼는데, 비문은 정헌대부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예문관 대제학 김안로(金安老)가 지었고, 글씨는 손자 김개(金鎧)가 해서로 썼다. 비를 세운 지 약 500년이 되고 비각이 없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박락이 심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음기(陰記)를 새긴 부분은 개석의 처마 근처 일부를 제외하고 하단부로 내려올수록 판독이 어렵다. 광산 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관리하며, 묘소 아래의 김극뉴를 모신 영사재(永思齋)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제사를 지낸다. 김극뉴 묘비는 조선 전기의 묘비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석조물로 조각 수법이 매우 우수하다. 또한 우리나라 예학의 대가이며 기호학파의 맥을 계승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고조할아버지 묘비라는 측면에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 금석문이다. <디지털순창문화대전에서 인용> |
문화재지정 | 비지정 |
문화재명칭 | 김극뉴 묘(金克忸墓) |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 |
관리자(연락처) | 광산김씨 |
▼ 조선8대명당으로 알려진 순창 말명당 김극뉴 선생 묘
▼ 도로쪽에서 바라본 김극뉴 선생 묘
▼ 김극뉴 선생 묘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재실...
▼ 조선8대명당으로 알려진 순창 말명당 김극뉴 선생 묘
▼ 김극뉴 선생 묘 전경...
▼ 김극뉴 선생 묘
▼ 김극뉴 선생 묘갈...
▼ 김극뉴 선생 묘비
▼ 김극뉴 선생 묘 청룡쪽 석물...
▼ 김극뉴 선생 묘 백호쪽 석물...
▼ 김극뉴 선생 묘 뒤쪽에 있는 장인 묘
▼ 김극뉴 선생 묘 후경... 우선수로 건좌손향, 을진파로 향법에도 맞는다.
▼ 김극뉴 선생 묘 후경...
▼ 김극뉴 선생 묘에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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