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올레-다케오코스(1)
일본다운 전통 깃든 고요한 길에서 3천년 된 녹나무 만나다
열흘이라는 기나긴 추석연휴를 맞이하여 일본 규슈올레 트레킹을 떠난다. 8개월 전부터 서둘러 항공권을 예약하려고 했으나
이미 매진된 상태라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쾌속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부산항국제여객선터미널 근처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서
새벽같이 일어나 후쿠오카행 배에 오른다. 쾌속선에 탑승한 200명 가까운 승객은 대부분 규슈로 가는 한국인 관광객이다.
우리를 태운 쾌속선은 바다를 헤치며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해외로 떠나는 여행이라 가벼운 긴장이 가슴에 밀려왔지만 금방 평정심을 되찾는다.
한참을 달리자 부산과 주변의 섬들은 점점 멀어지고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창밖을 내다보며 바다풍경을 감상하던 승객들도
어느새 등을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는다. 떠들썩했던 배안은 어느새 조용해졌다.
부산항을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났을까? 오른쪽으로 드넓은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섬이 나타난다.
승무원에게 물으니 대마도란다. 망망대해를 달리다가 섬을 만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대마도는 한동안 우리들의 다정한 벗이 된다.
우리를 태운 배는 대마도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1시간 이상 수평선만 바라보며 외롭게 달려간다.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지낸 후에야 멀리 작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내 규슈 본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를 태운 비틀호는 후쿠시마 국제항인 하카타항으로 미끄러지듯 달려 들어간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하카타항국제터미널 앞에서 하카타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패키지상품을 이용한 대부분의 관광객은 현지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빠져나가고
우리처럼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들만이 하카타역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탄다.
우리 일행은 세 가족 여섯 명으로, 규슈올레 세 개 코스를 오늘 오후부터 3일 동안 걸을 예정이다.
시내버스는 점차 고층건물이 즐비한 후쿠오카 중심가로 진입한다.
일본에 올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거리는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있다.
시내버스를 탄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아 하카타역에 도착했다.
열차를 이용해서 규슈지역을 여행하려면 반드시 하카타역을 이용해야 한다.
하카타버스터미널도 하카타역 바로 옆에 있어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이외의 지역을 여행하려고 해도
하카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니 역 근처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 우리는 규슈올레 다케오코스를 걸을 예정이라 특급 JR미도리호를 타고 다케오온천역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행선지와 숫자를 얘기하면 쉽게 승차권을 살 줄 알았는데, 역무원이 계속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손짓을 보니 왕복표를 살 것이냐를 묻는 것 같다. 일본어로 편도만 사겠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어서
영어로 “one side”라고 외치니 알아듣고 편도차표를 발행해준다.
일행 여섯 명 중 일본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목적지까지 매표도 하고, 촉박한 시간관계로 역 안에서 도시락까지 사서 열차에 오른다.
여섯 사람을 인솔해야 하는 나로서는 일본어도 모르고 규슈여행 경험도 없어 긴장을 했는데, 일단 열차까지 무사히 타고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석연휴기간이지만 일본은 평일이라 열차는 비교적 한산하다.
후쿠오카시내를 벗어나자 정겨운 농촌풍경이 펼쳐진다.
황금빛 들판이며 산자락에 기댄 일본식 주택들이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을 보는 것 같다.
하카타역에서 1시간 10분 쯤 달려 다케오온천역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도시에 있는 역이라서 역사 안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역사에서 배낭을 보관할 장소를 찾으니 잘 보이지 않는데, 일본어를 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다.
할 수없이 한자로 ‘物品保管所’를 써서 역무원에게 보여주니 우리를 데리고 물품보관소로 안내해준다.
두 나라 모두 같은 한자를 사용하니까 말은 통하지 않지만 의미는 전달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무거운 배낭을 물품보관함에 넣어놓고 규슈올레 걷기를 시작한다.
다케오온천역 후문을 나와 도로를 건너니 주택가가 이어진다.
넓은 골목 양쪽으로는 일본식 전통가옥들이 깔끔하다.
우리의 한옥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단층을 이루고 있는데, 일본가옥은 2층이 많다.
고가뿐만 아니라 최근에 지은 건축물까지 외형은 대부분 일본식 전통가옥 모습을 하고 있는 점도
양옥 중심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넓지 않은 마당이지만 올망졸망 가꿔진 정원들도 눈길을 끈다.
길안내는 제주올레와 똑같은 모양의 화살표와 간세, 리본이 맡아준다.
그래서 규슈올레를 걷다보면 제주올레를 걷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규슈올레는 제주올레 브랜드가 규슈로 수출되어 만들어졌다.
2012년 2월에 지금 걷고 있는 다케오코스를 포함하여 4개 코스가 처음 열린 후 2017년 10월 현재
19개 코스가 개통되었다. 규슈올레를 걷는 사람들도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이 더 많다고 한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넓은 도로 위 육교를 건너니 외곽을 감싸며 흐르는 다케오천이 나온다.
천변을 따라 걷는데 정면으로 다케오시를 상징하는 미후네야마(御船山)가 뾰족한 두 개의 봉우리를 한 채 우뚝 서 있다.
근처 대부분의 산이 부드러운 육산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 미후네야마만은 바위산이어서 군계일학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이 산은 다케오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어 다케오 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다케오천을 건너면 시라이와운동공원이다. 평일 낮 시간이라 노인들 몇 사람이 보일 뿐 운동공원은 한산한 편이다.
운동공원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다케오 시민들이 평소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 숲길은 잘 정비돼 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은 물길처럼 유현하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를 가진 곳이라 숲은 울창한 아열대림으로 뒤덮여 있다.
중간 중간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도 마련되어 있다.
건장한 남자 팔뚝 크기의 왕대나무숲을 지나기도 한다.
곧게 솟은 대나무들은 우리의 마음을 정갈하게 해준다.
다케오시내가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랐다. 다케오는 인구 5만 명의 조용한 소도시로 사가현에 속한다.
인구 1,300만 명의 규슈섬은 후쿠오카, 나가사키, 구마모토 등 7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가현은 후쿠오카와 나가사키 중간에 있는 현이다.
다케오 시내는 학교나 관공서 등 주요건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2층 정도의 일본식 전통가옥이
자리를 잡고 있어 일본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다시 숲길을 따라 걷다가 소박한 사찰을 만난다. 기묘지(貴明寺)라 불리는 절이다.
사찰에는 죽은 자를 모신 부도와 묘지도 있어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불이(不二)라 쓰인 소박한 일주문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서는데 6기의 작은 지장보살입상이 빨간 모자를 쓴 채 중생들을 맞이한다.
법당 기둥에는 한글로 “규슈올레를 걸으시는 분들은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는 글귀가 붙어 있고,
마루에는 보온물통과 찻잔이 놓여있다. 올레길을 걷는 한국인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절을 올릴 때마다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되새긴다.
기묘지를 나서는데 빨간 턱받이를 한 동자상들이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부모보다 먼저 이승을 떠난 아이들을 엄마의 마음으로 보살펴달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찰하면 산사를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일본 절은 마을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기묘지 역시 절 앞에 민가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사찰과 마을 사이에는 연꽃방죽이 있어 여름철이면 연꽃이 피어 고고한 아름다움이 펼쳐질 것 같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일본식 가옥들은 깔끔하고 정갈하다.
누렇게 익은 벼와 마을이 어울리니 풍요롭다. 뾰족하게 솟은 미후네야마가 마을을 감싸준다.
올레길은 마을 골목을 지나기도 하고 마을 앞 자동차도로를 건너기도 한다. 외국인이 시골마을 골목길을 걸으며
마을의 속살까지 바라보며 걷는 일은 관광버스로 유명관광지를 옮겨 다니는 일반적인 여행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마을을 지나 이케노우치호수 제방으로 올라선다.
갈림길마다 제주올레와 똑같은 표식기가 있어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호수제방에 올라서니 방금 지나왔던 마을의 기와지붕과 누렇게 익은 들판이 우리나라 농촌마을의 풍경을 보는 것아 정겹다.
이케노우치호수에는 호반의 낮은 산봉우리들이 산 그림자를 드리워 호수위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호수주변에는 벚나무가 많아 봄철이면 화사한 벚꽃이 호수를 아름답게 치장을 해준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며 호텔과 펜션들이 들어서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임을 한눈에 알 수 있겠다.
호수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오리보트들도 대기하고 있다.
이케노우치호수 위쪽에 사가현 현립 우주과학관이 위치하고 있다. 우주비행체험을 할 수 있는 우주과학관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우주과학관 바로 아래에서 A코스와 B코스가 나뉜다.
우리는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기에 시간절약을 위해 B코스를 선택한다.
A, B코스 갈림길을 막 지나서 산비탈로 오르려는데, 펜션 겸 카페가 눈에 띈다.
아무리 바쁘지만 야외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씩을 마시는 여유를 즐긴다. 이런 여유야말로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커피 한잔씩을 마시고나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편백나무 숲이 우거진 길은 가파른 오르막 계단길로 이어진다.
257개에 이르는 계단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보니 전망대에 도착한다.
2층 전망대에 올라서자 다케오시의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 형성된 다케오시는 오래된 온천마을이다.
아울러 다케오시는 400여 년 전부터 시작된 도자기 가마 90여개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도시다.
7층을 넘지 않은 건물들이 있긴 하지만 도시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2층 이하의 일본식 기와집이
주변의 자연과 어울려있어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도시외곽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이 풍요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조금 전 거닐었던 이케노우치호수와 우주과학관도 내려다보인다.
<규슈올레-다케오코스(2)> 로 계속
첫댓글 와운 선생 덕에 아주 편안하게, 그리고 매우 흥겹고 신나는 트래킹 여행을 했어요. 영상을 편집해서 나중에 같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늘 고마워요.^^
영상으로 편집을 하면 더 실감이 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