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젊은날, 동성로에서 30대1로 싸운 전설을 말한다.
모처럼 친구에게서 아주 멋진 트레킹 모임이 있으니 함께 가잔다.
친구의 말인 즉슨,
"야! 니가 가면 인기 짱이다. 물도 좋고 신바람 날끼다" 라는 공치사에 그 이름도 거창한 한반도 둘레길이란, 트레킹모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산행모임은 20여년 전에는 자주 다녔었다.
이산 저산 전국의 명산은 다 다녀 보았고, 산행 갈때마다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그 바람에 위장이 하루도 성할날이 없어 후회를 하면서도 즐거이 다니곤 했다.
덕분에 위장약도 많이 먹었고, 건강하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해치는 것 같아, 산행은 졸업하고, 친구들과 주말에 근교로 등산을 하는 걸로 대신 하였는데,
물좋다는 그말에 그간 잠자던 野性을 깨웠다,
" 등산은 좋은데, 등산가면 술 먹으라고 해서 걱정이네" 하니,
거기는 술 취하도록 먹이지도 않고 누가 술을 권하지도 않으니 걱정마란다. 그 强權에 못 이겨 답을 주고, 술을 아무리 많이 주고 권해도 안 먹으면 그만이고, 줘도 적게 먹으면 되지. 하는 위안속에 나의 의지를 믿고 트레킹에 함류 했다.
그런데,
意志란게 분위기를 이기지 못했다.
함께한 회원들의 즐거운 눈빛하며 감싸는 봄기운에 취해서 한 잔 술을 마시지 않고는 나의 존재를 느낄수 없어서, 한잔 두잔, 막걸리, 소주, 맥주, 가져온 담근 藥술까지,
회장님 한잔에 이쁜 총무님 한잔에, 입당주 한잔까지,
아이고 이거 참, 분위기에 취하고 술에 취해 그 다짐은 물거품이 되고, 주는데로 마셔 내 의지는 온데간데 없고 오직 나의 객기만 남았다.
온김에 즐거이 놀고 먹고 마시는게 이순간의 행복 아니겠는가? 뭐 인생 별거 있나? 하며 처음이지만 수년 다닌 것처럼 떠드니,
사회를 참 잘보는 어여쁜 총무께서 재미 있다며, 첫소감을 이야기 하란다.
아니면 노래라도 하란다.
사실 운동이라면 운동, 인사말이라도 말이라면 말, 싸움이라면 싸움, 뭐 그런데로 자신 있어도, 노래하나 만은 못 부른다. 못하는 정도를 넘어 음치중에 왕음치다. 정말 노래는 못 부른다.
여기서 아내의 말을 빌리면 "당신 노래 까지 잘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한다.의미는 모르겠지만 신은 공평하다고 생각 한다.
정답이다.
"노래 못하면 장가 못가요 간 장가도 다시 못가요"하며 뭐든 하란다.
김만원! 김만원! 김만원! 차안의 열기는 대통령 선거 유세 못 잖다.
재미난 얘기를 하란다.
그래서 떠오른 얘기가 1대30 이다.
물론 30명속의 내가 아닌, 내가 일이고 상대방의 숫자가 삼십이다.
또한 30명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고 밤 열두시가 넘은 동성로 밤거리에서 본 어림잡은 대략의 숫자다.
정말 싸웠다.
내용은 이렇다.
군대를 11월1일날 제대를 했다.
대학1, 2학년시절 교련강의 듣고 학점 이수했다고, 총35개월의 해군 복무기간중 4개월 혜택을 받아 만 31개월을 해군 행정하사로 영광스럽게 복무하고, 心身이 건강한 모범 청년으로 돌아왔다.
복무를 마치고 다시 태어났다는 자세로 대한민국의 훌륭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날이면 날마다 친구들이 술 먹잔다. 그리곤 먹고 놀았다.
그때는 술 먹자는데 안 가면 남자 아니랄까봐, 술 안먹으면 죽는줄 알고 무조건 술자리를 했다. 그날도 군대 친구3명과 당시 대구직활시의 중심부인 대구백화점 뒷 골목에서 막걸리에 파전으로 거나하게 열두시가 넘도록 마셨다.
당시의 대학생들은 만나면 막걸리에 파전,그것이 유행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부자선배 만나면 삼겹살 파티도 했었다.
우리끼리라 초저녁 부터 열두시가 넘도록 막걸리만 퍼 마시고 요샛말로 완전 취해서 지금 대구백화점과 중앙파출소 사이를 걸으면서 喜熙樂樂 어여쁜 대구 능금 아가씨를 어떻게 헌팅 할까 열을 내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패거리들이 중앙로 대로를 걸어 오고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얼핏 30여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보스인 듯 즉 대가리였다.
그는 오줌을 길에 내 갈기면서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고 오는지, 자크만 내렸는지 알수는 없다 어둠속에 세월이 흘러 기억이 가물 가물 하다.
난 속으로,
저 깡패새끼들 하면 피해서 가려고 하는데,
함께 걷던, 마음만 정의에 사로 잡혀 있던 공생원 친구가 "야 만원아 저자식들 가만두면 되겠어! 하며 나를 본다.
"괜찮다 동네 깡패들인데 괜히 건드려 놯다가 시끄럽다 그냥가자" 하는데,
다자고짜 오줌을 아스팔트에 갈기면서 오는 패거리중 대가리 한테 "야 이새끼들아 여기서 오줌을 누면 되나! 하면서 一喝을 한다.
그러니
그쪽 오줌누는 놈은 들은척도 안하고 계속 누고 있는데, 뒤따르던 똘마니들이 왁자지껄 욕설을 하면서 오줌 누지 말라고 한
친구한테 달려든다.
그러니 보스란자가 "야 야 가만 둬라. 내 오줌누거든 처리 해라" 하며 계속 누고 있다.
그사이 내 옆의 두 친구는 어쩔줄 몰라 하며 나를 앞으로 밀어버린다. 야 만원아 너가 처리해라 하면서,
앞 섯던 친구는 분위기에 억눌려 오히려 내 뒤로 숨어 버리고
나와 오줌눈 그놈의 보스와 일대일의 型局이 되 버렸다.
이쯤해서 취한김에 등 떠밀려서, 한마디를
" 야 이새끼야 뭐 잘 했다고 지랄이고" 라는 순간, 그놈의 주먹이 나의 얼굴에 날아 왔다
스치듯 맞으며 나도 주먹을 날리고, 발로 걷어 찾다.
그 순간 30여명의 패거리가 우르르 몰려와서 달려 드는데,
인정사정 볼것도 없고 이패거리들이 어느파 조폭인지 생각할 것도 없이 주먹으로는 치고, 발로는 차고, 머리로는 박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중앙로 數 많은 인파들에게 무료로 리얼한 1대30의 싸움 장면을 선사하고, 어느새 달려온 중앙파출소 경찰관들에게 모두다 잡혀 갔다.
나도 도망가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하고, 그쪽도 무슨 뒷배가 있었는지 모두가 파출소로 순순히 따라 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함께 술마시고 싸움 처음 걸었던 내 친구들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정말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파출소에 들어오니 현실이다.
후회가 막심이다.
평소 싸움에는 자신 있고 잘싸운다고 공포탄을 쏘는게 아닌데,하며,
법을 위반하고 싸워서가 아니라, 이 패거리들이 분명 대구의 동네깡패들 같은데, 약간의 겁이 났다. 오직 나 혼잔데, 어쩐다
도망을 가야하나!
미안하다고 빌어야 하나!
끝까지 가야하나!
군대 제대하고 공부하러 대구 갔던 아들이 싸움질이나 했다는 걸 알면 村에 계신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을 할까!
밀려오는 두려움, 죄책감, 못본 척, 안들은 척 못한 나의 꽤없는 의협심때문에, 괜히 군대친구들과 만났네, 하는 후회 등 등 등
제대 했다고 여자친구가 사준 차이나식 카라의 흰색 티셔츠가 피벅벅, 여친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궁색한 변명을 찾고 있던중,
파출소에 잡혀와 뒷쪽에 조용히 서있던 그놈, 나와 상대 했던 그 대가리가,
내게 다가와
" 야 우리 한판 더 붙으러 가자 "라고 한다.
돌마니들은 경찰관 한테 조사를 받으면서 우리둘이 밖으로 나오는 걸 못 보게 막아 버려
내가 " 좋다 자식아" 하며 호기를 부리며
파출소를 유유히 탈출했다.
휴유 크게 한숨을 쉬며, 이제 파출소를 나왔으니 전과자 될리 없고 부모님께 연락 갈 것 없어, 큰 시름 놓인 것 같아 다시 힘이 났다.
"어디로 가꼬? 이 자식아 "하니
신천 강변 으로 가잔다.
둘이서 친하게 파출소 앞에서 택시타고 약 20분간 거리인 수성교밑 신천 둔치에 갔다.
페어플레이 였다.
됐나! 됐다. 하며
서로 약2미터 거리에서 외친후 치고 박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후 서로 기진맥진 했을때
그 친구가 "야 그만하자" 란다.
내가 졌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분명 야 그만 됐다.란다. 항복의 표시였다.
은근히 바라던 바라, 그래도 "야 이새끼야 너 더 맞아야 되겠다 " 하니
"야 됐다. 됐다 우리 족보까자" 내 누구다. 한다. 야 알겠다 다음에 시내서 보자고 하며,
"알알다 알았어! 다음에 보자" 하고는 어서 여기를 빠져 나가고 픈데,
그 대가리가,
시내로 온나 내 한 잔푸께"라고 한다. 의리의 한판이었다.
"알겠다 다음에 보자 니 똘만이들 기다린다 파출소 빨리 가봐라" 하고 뒤도 안돌아 보고
얼른 택시타고 집으로 줄 행랑을 쳤다.
집에 와서 몰꼴을 보니 옷이 피벅벅이다.
지금의 아내가 사준 티셔쓰였는데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 소중한 차이나 티셔쓰 하며,
혹시 모를 그놈들의 보복 하며
맞아서 아픈곳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걱정에 그날 밤은 한숨도 못 잤다는 얘기와 함께 그 대가리 만나면 추억의 한잔을 하고 싶다는 말과 평소 즐겨입는 차이나 칼라가 그때를 잊지 못해서 라며, 끝을 맺었다.
일부는 재미 있어하고, 일부는 재미 있으라고 한 지어낸 애기지요? 한다.
또한,
이곳 저곳에서
정말 정말 경찰이 싸워도 되나? 하는 소근거림이 들린다. 경찰관이 되기전의 얘긴데도 말이다.
재미 없습니까?
이곳 저곳에서 아니 경찰도 거짓말하네! 라며 약간의 지루함이 포함된 야유도 쏫아진다.
믿거나 말거나
경찰을 못 믿으면 누굴 믿습니까?
믿어 주십시요.
다음달에도 더 재미난 얘기로 노래를 대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 짝 짝.
첫 등산의 날 일대삼십의 얘기속에 술에 취한체 대구에 도착하니, 또 다시 한잔 하잔다.
술도 좋고 산도 좋고 친구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