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 삼종사 묘역 (2019년 7월 28일)
2019년 7월 31일
몇 년 전인지 오래 전부터 대종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동학과 천도교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원하여 2019년 7월 24-30일 서간도와 북간도에 있는
대종교 유적을 찾아갔습니다.
한국의 심학(心學)을 연구하면서 한국 심학의 목적지를 찾아야만 하였습니다.
또한 항일투쟁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왜 대종교를 믿었고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였는지 까닭을 알아야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종교 역시 목적지의 하나로 삼고 연구하면서 현지 답사가 필요하였기에 다녀왔습니다.
삼종사 묘비에서 중요한 것을 알았는데
나철 선생의 묘비에는 신해(神骸)라고 썼고
김교헌 선생과 서일 선생 두 분의 묘비에는 단해(檀骸)라고 썼다는 것입니다.
조선 심학을 비롯하여 많은 학술들은 사람의 신령(神靈)이 마음의 핵심이라고 보았는데,
대종교에서는 단(檀)을 설정하였고 사람이 죽은 뒤에는 영혼이 단군의 단(檀)으로 귀결된다는 뜻을 믿었습니다.
대종교는 단(檀)을 믿었기 때문에 독립군이 되어 죽음을 불사하고 투쟁하였습니다.
영혼에 해당하는 단(檀)이 있고 백(魄)에 해당하는 해(骸)를 믿었습니다.
죽어서는 단(檀)은 단군과 함께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환웅이 내려오셨다는 백두산을 바라보는 방향에 장지(藏地)를 썼습니다.
그래서 일반처럼 유골을 묻은 묘(墓)가 아니고 단해를 보관하는 장(藏)이라고 하였습니다.
삼종사를 한 장지에 나란히 함께 모신 뜻은 환인, 환웅, 단군 삼신(三神)을 상징합니다.
나철 선생은 구월산에서 돌아가신 뒤에 서울로 운구하고 다시 북간도 여기에 모셨습니다.
이 분들은 여기 땅도 고조선의 영역이었고 목숨을 바쳐 활동하셨던 고향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해방된 뒤에도 굳이 대한민국으로 이장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분들이 믿었던
단군과 백두산 중심의 민족종교였습니다.
이 분들의 많은 이야기를 읽고 듣고 현장에 가서 상상하면서
가슴이 많이 답답하였고 울컥울컥하였습니다.
답사에 참여한 많은 분들도 느낀 마음은 마찬가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