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역사유적 답사는 김영하 선생이 쓴 수춘지에 나오는 춘천의 명소들을 답사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수춘지에 등장하는 춘천의 명소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많은 내용들이 등장하고 관심가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답사 계획을 잡으며 잘 알지 못하던 답사지 방문의 효율화를 위해 시간 나는대로 제가 알지 못하는 장소들에 대해 사전 답사를 통해 정보, 위치를 확인하려고 하였습니다.
첫번째 사전답사지는 혈동리 굴암입니다.
수춘지 번역문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인데
○ 굴암(窟岩) : 신동면 혈동(穴洞) 오봉리(五峰里)의 안산(案山)에 있다. 산꼭대기에 굴암이 있는데, 입구가 매우 비좁아 기어서 들어가면 그 안쪽은 시원하게 트여 백여 인을 수용할 수가 있고 가운데 석천(石泉)이 있다. 지금 신묘(辛卯:1951년)에 중공군의 재란(再亂) 때 읍 사람들이 여기로 많이 피하였으니 나 역시 거기에 섞여 있었다.
문헌을 보면 꽤 큰굴이 있었음을 유추 할 수 있고 한국전쟁때 김영하 선생도 그 굴에서 피난을 하였다는 내용과 혈동리의 지명이 굴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혹시 이굴이 혈동리 지명과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로 사전 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현재의 혈동리는 팔미리를 지나 춘천시 환경공원이 있는 혈동2리와 신동면 증4리 삼포마과 팔미천을 경계로 나뉘는 혈동1리로 광범위한 면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문헌에 나오는 혈동리와 오봉리라는 지명 중 오봉리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지명으로 일제강점기 지도에 나타나는데 현재의 혈동1리 중간지역으로 십여년전 골프장이 들어서며 몆가구의 농가가 이주한 지역입니다.
문헌을 통해 굴암의 위치를 유추하면 동그란 원안이 예상되는 위치 입니다.
수춘지에는 오봉리의 안산 꼭대기에 굴이 있다고 하였으니 검은 원안 350m로 표시된 봉우리 주변이 굴암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입니다.
사전에 전해들은 정보로는 덕만이 고개 아래의 레미콘 공장 가기전 오른쪽에 굴암이 있었다고 하니 유정폭포라는 이름이 있는 골프장 입구부터 레미콘 공장까지의 약 1km정도 거리에 있는 골짜기중 하나에 굴암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이 부분에만 크고 작은 여섯개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피난을 할정도의 굴이라면 아무래도 큰 골짜기 정상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레미콘 공장 바로전의 큰 계곡으로 올라가니 능선부에서부터 레미콘 공장에서 석산을 개발하였고 능선의 일부는 잘려나갔으며 정상에는 천지와도 같은 연못이 생겼습니다.
굴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고 다시 하산해 비교적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유정폭포가 있는 골프장 골짜기를 샅샅히 뒤졌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을로 내려가서 오래사셨다는 어르신을 찾았더니 이씨 어르신께서 83년을 혈동리에서 사셨다며 정확하게 굴의 위치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어르신의 말대로 다시 계곡부터 시작하여 두골짜기를 오르락 내리락 했지만 흔적을 찾지 못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가 이씨 어르신을 모시고 와서 굴암이 있는 계곡 입구를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산을 올랐을때 건너편 능선에서 쳐다보며 혹시라고 생각했던 곳이 바로 굴암이었습니다. 건너편 능선에서는 굴의 입구가 보이지 않아 지나친 곳이었는데 굴의 입구는 사진에도 나타나지 않듯이 좌측 옆으로 꺽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습니다.
굴의 입구는 문헌에 나오는 대로 기어서 들어가야 할만큼 좁고 낮았습니다.
처음 혈동리 마을 주민을 인터뷰 할때 주민중 한 분이 굴에서 정성을 드렸다고 하는데 그분은 돌아가시고 아들이 행촌리에 사신다는 것을 알려주었는데 인터뷰에 답을 해주신 주민은 그 장소를 보시지 못하였고 굴의 존재나 규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전언대로 굴에는 어느분이 상주하였던 흔적이 있어서 혈동리 주민이 정성을 드리던 장소가 굴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의 사진에서 처럼 굴 입구에 평평하게 터가 만들어져 있고 입구에는 돗자라라던가 술병, 몆개의 그릇 등이 있어서 오래기간 누군가 이곳을 이용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기어서 들어가니 과연 문헌대로 안에는 평평하고 넓은 장소가 나타났는데 높이도 머리가 닿지 않을정도로 높고 안에는 방을 꾸민듯 앞으로 돌을 쌓고 땅이 고르게 다져져 있었습니다.
바닥은 주변에서 가져온듯 보이는 고운 흙으로 평탄하고 고르게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장소는 좌우측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운데로는 물고랑이 만들어져 있어서 문헌에 나오는데로 석천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좌측에 그릇이 하나 보이고 가운데로 물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실제로 물은 흐르지 않고 우물의 형태로 두군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가즈런히 돌을 쌓아 자리를 만든 것이 보입니다.
맨 안쪽에 있는 우물입니다. 희한한 것은 물은 고여 있는데 흐리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와 아래로 약 3미터 정도의 거리에 우물이 두개가 있는데 두 우물 모두 물은 충분히 고여 있지만 흐르지는 않습니다.
휴대용 후랫시로 우믈을 비추고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맨위에 있는 우물입니다.
아래에 있는 우물인데 깊이는 거의 1미터에 이를만큼 깊고 물의 깊이도 20cm이상은 되는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 우물 역시 물이 들어오는 수로도 없고 빠지는 수로도 없습니다.
굴은 안쪽에서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 또다른 방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좌측으로 꺽어진 방의 맨 안쪽입니다. 굴입구에서 여기까지 약16~18미터 가량 됩니다.
두세군데 돌을 쌓아 편편하게 만들어 놓은 공간들이 있습니다.
안에서 본 굴의 입구입니다.
굴의 입구를 나와서 인증 사진도 한장찍고....
기억나는대로 굴암의 구조를 그려보았습니다.
입구는 기어서 들어갈 정도이지만 안쪽은 서서 다니는데 무리가 없었고 가운데는 높이가 5미터는 될 만큼 높습니다.
굴의 입구를 조금만 손보고 굴안쪽을 정리하면 한번에 이십여명이 들어가도 돌아보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굴입니다. 춘천은 다른지역에 비해 굴이 없는지역인데 동굴체험을 해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굴이 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보았습니다.
차량을 두고 20여분만 산을 오르면 굴에 다다를 수 있을 만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합니다. 직선거리로는 길에서 200여미터 밖에는 되지 않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입구에 차를 세울 공간이 없어서 제설자재 창고가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다른 능선을 이용해 굴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관심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하 선생의 뒤를 이을만한 이가 오동철 사무국장이 아닐까 싶네요.(아부는 아니고 칭찬^^)
김영하 선생이야말로 다시 재조명해 봐야 할 춘천인이 아닐까 싶군요.
차제에 6.25전쟁 당시 각 고을마다 굴암과 같은 피난처가 있었을 터인데 그걸 테마로 정해 조사해 보는 건
어떨지 제안해 봅니다.
회장님 밀씀처럼 각종 전란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이야기 들은 몆 곳의 피난처가 있는데 자세하게 찾아보면 더 많은 피난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병자호란과 연관된 '사자사', '호성암',은 스토리가 탄탄합니다.
이번 혈동리 굴암처럼 6.25와 연관된 피난처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