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람> 2020 봄호 신인추천 / 정서희 시인
국수 외 2편
정서희
저,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물이 젊은 엄마일지도 모르네
어떻게 오셨나요
메게이스*를 처방받을 수 있을까요
아카시아 이팝나무 꽃들이 휙휙 달리는 초여름
국수 한 대접 훌훌 말아 드시곤 한 덩이 더 담아내던 엄마
지금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물, 엄마가 우려낸 젊은 엄마일지도 모르네
열무 넣고 보리밥 슥슥 비벼 숟가락 부딪치며 먹던 때가 생각나나요
양은냄비 바닥에 깔린 밥마저 자식에게 물리시고 저만치 떨어져 앉으시더니
이젠 입맛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으신 어머니
오오
지금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물,
우리 엄마가 팔순 지나고 아흔이 되어 비로소
우려낸 현탁액인가요
*메게이스내복현탁액(Megace oral susp.) : 식욕을 증진시킴으로써 암환자 및 에이즈환자의 식욕부진 및 체중감소를 개선시켜주는 약
길
산복도로 내리막에서
차들이 헐레벌떡 뛰어오는데
허공을 향해 사지가 버둥질 대더니
길고양이 한 마리 널브러진다
위험물 적재 꼬리표 매단 화물차
이삿짐 가득 실은 트럭
육중한 몸으로 굴러오는데
초록 불 켜지면 어디로 가나
구급차 사이렌 이명처럼
내 몸이 불에 닿은 듯
맷돌 밑 조각처럼 납작해져
무어라 소리칠 틈도 없이
왕왕거리는 딱딱한 짐승들
기름기 핏기 다 빨아먹고
윤기 흐르는 산복도로
잽싸게 모퉁이 돈다
마침내 평평한 길이 된
길고양이.
모국어 굽는 삼포트*
주공 아파트 주차장 지나
초등학교 어린이 보호구역 비켜서서
메타세콰이어 근골 얽힌 옆자리
스물둘 캄보디아 여자 메싸는
오늘도 형틀에 매인 물고기를 잡는다
삼촌뻘 신랑은 또 어느 노름방에
열쇠처럼 매달려있으려나
종일 반죽 붓는 주전자 입술로 부른
따뜻한 붕어빵 세 개 천 원
동전 몇 닢 들고 찾아온 아이를 보자
이역만리 떨어진 동생 생각에
아이 귓불을 잡아당기곤 방긋
모국어를 굽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천막 안으로
돈 통을 후루루 몰아치는 겨울
식솔이 된 플라스틱 의자 끌어모으면
갈 시간이다
떨이처럼 담긴 삼포트 한 마리
메싸,
*삼포트 : 캄보디아 여성이 입는 전통 의상
<推薦辭> <신인추천 심사평>
휴머니스트의 육성
조창환
정서희의 시에는 정직하고 진실한 인간애가 바탕에 깔려 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 사랑과 공감의 목소리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조용한 힘이 있다. 세계를 향한 따뜻하고 순정한 시선이 꾸밈없는 인간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드물게 만나는 휴머니스트의 육성이라 할만하다. 정서희가 시적 대상을 바라보고 음미하고 공감하는 방식은 순수하고 곡진하다. 시가 단순히 언어적 기교에만 사로잡히지 않고 주제의식을 뚜렷이 부각시키는 튼튼한 골격을 지니고 있어서 읽는 이를 감동시킬만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 쓰는 기본이 탄탄하고, 시적 제재를 발견하고 묘사하고 전달하는 표현력도 갖추어져 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읊은 시 「국수」에는 늙고 병드신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과 동정의 시선이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 현실의 묘사와 과거의 기억, 외적인 관찰과 내적인 감정고백이 교차되어 안정된 시적 구조를 이루었다. 이주민 여성의 생활과 애환을 읊은 시 「모국어 굽는 삼포트」도 관찰과 묘사의 시선이 따뜻하고 인간적이어서 공감력을 지니고 있다. 대상에 대한 일정한 거리감을 지녀 지나친 센티멘털리즘에 빠지지 않으면서 인간에 대한 동정을 표현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응모한 시들에는 부분적으로 어색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눈에 띄어, 조금 더 수정하고 퇴고하는 작업에 신경 써야할 것 같다는 소감을 밝힌다. 꾸준히 정진하여 문학적 세련미를 보탠다면 우리 시단의 주목받는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문학과 사람의 신인 추천에 올리기로 한다.
예심_김광기(시인), 추천심사_조창환(시인, 아주대 명예교수)
신인추천 당선소감 / 정서희
어머니께 드릴 저녁 죽을 쑤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밥 대신 유동식만 드시는 어머니에게 시인이 되었다고 하자 전에 없던 함박웃음으로 화답하셨습니다.
제가 시를 처음 마주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국어선생님이 서정주 시인의 「무등을 보며」를 읽어주셨는데 그 시가 제 가슴에 화살처럼 박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시집을 빌려서 필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한 편씩 마음에 새기며 쓰다 보니 동쪽하늘이 희붐하게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시인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짧은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는 시의 위력에 포위를 당한 셈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시는 범접하기 어려운 높고 가파른 봉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늦깎이로 문학을 공부하면서 시와 다시 만났고 문학과 사람의 식구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새가 되어 하늘을 날 듯 붕붕 뛰었습니다.
이제 시는 가장 좋아하면서도 겁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류를 좇지 않는 담백하고 명징한 시, 기교가 아닌 구체적인 삶이 체화된 단단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격려해주며 밀어주신 어머니는 제 시의 원천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친구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부족한 작품을 문단에 올려주시는 조창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시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서희
1966년 충남 서산 출생, 본명 정선희
목원대학교 신학과, 경남대학교 국문학과 석사 졸업
창원대학교 국문학과 박사과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