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내 생애, 처음으로 난을 피웠다
일 년 동안 그를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고는
일주일에 한번 화분에 물을 준 게 전부인데
늦여름 어느 날 말간 꽃대 하나 올리더니
순하게 기품이 배어나는 작은 꽃이 네 송이나 피었다.
꽃이 핀 난분을 선물로 받아 본 적은 있지만
내 창가에서 직접 꽃대가 올라오고
난꽃이 피어나는 기막힌 사건을 보는 일은 처음이다.
몇 움큼의 산소와 굴절된 몇 가닥의 빛, 그리고 몇 모금의 물을
마신 게 전부인 그의 生에 이렇듯 향기로운 꽃이라니......
보일 듯 말 듯 은은한 난향이
집안 가득 흐르고 그 창가엔 이제 가을이 여물어 간다.
이 가을에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살면서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욕심이 과하지는 않았는지
작은 일에 연연하지는 않았는지
나를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다.
늘 그렇듯이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다.
그게 자의였든 타의였든
이제 여기쯤에서 잡다하게 엉킨 내 삶의 실타래들을 풀어내고 싶다.
물만 마시고도 맑은 꽃을 피워낸 창가의 난처럼
그저 고요해지고 싶다.
2014년 가을에 임애월
■□ 차례
1부 / 사막의 달
소금 - 17
사막의 달 - 18
장마 - 20
백령도의 밤 - 22
대마도에서 - 23
봄 - 24
羽化 - 25
梅花 - 26
봄밤 - 27
매향리에서 - 28
초여름 - 29
거미 1 - 30
거미 2 - 31
2부 / 촛불 - 잃어버린 것들을 위하여
촛불 - 35
새벽달 - 36
5월의 노래 - 37
下棺 - 38
어떤 혹성을 위하여 6 - 39
어떤 혹성을 위하여 7 - 40
祈雨祭 - 41
S요양원 실습일지 - 42
버드나무 - 44
자전거 이야기 - 45
매미의 辯 - 46
매향리 - 48
매향리의 노래 - 49
우중 연꽃 - 50
백제 소조 - 51
3부 / 잡초의 辯
선인장 - 55
잡초에 대하여 - 56
쇠비름 - 58
질경이의 노래 - 59
낮은배미 - 60
들국화 - 61
곶자왈 - 62
겨울나무 - 64
겨울나무 2 - 65
쑥꽃 - 66
정선 아라리 - 67
4부 / 안개
가을안개 속에서 - 71
태풍전일 - 72
태풍 - 74
폐가 - 75
가을숲에서 - 76
임진강을 지나며 - 77
빅브라더 - 78
안개 - 79
하회마을에 가면 - 80
가을강가에서 - 81
5부 / 억새꽃에 대하여
우리집 - 85
고사리 - 86
봄비 - 87
도체비꽃 - 88
장날 - 89
산딸기에 관하여 - 90
억새꽃에 대하여 - 91
어미오리 - 92
제주휘파람새 - 93
가파도 바람 - 94
어머니의 버선 - 96
죄인 - 97
가파도 - 98
6부 / 국화차를 마시며
국화차를 마시며 - 101
딱따구리 - 102
딱따구리 2 - 103
늦가을 소묘 - 104
새벽비 - 106
水鍾寺에서 - 108
서포루 - 109
健齒 이야기 - 110
대설주의보 - 112
폭설 3 - 113
겨울밤 - 114
새해 아침에 - 115
■ 작품해설∣류재엽 문학평론가 - 117
■ 출판사 서평
끊임없는 자아 탐구와 내적 성찰의 詩
시인은 항상 자신이 언어로 진술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아 사고하고 탐구하며 발견한다. 이것이 시인의 인식이다. 시인의 인식은 자아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상(事象)들이 시의 테마이다. 이러한 시적 테마들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 시인의 사명이 진실을 말하는 것임을 전제로 할 때, 진실은 인간 자체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시인의 진실은 인간적 체취에서 근원한다. 인간의 진실과 시의 진실은 언어를 통해 동일하여야 한다.
임애월 시인의 사막의 달을 읽으면서 필자는 시인의 진실과 일치된 시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껏 시인의 삶이 진실하였고, 끊임없이 자아를 찾고자 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 창작에 임하였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끝없는 열정, 그러면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열망을 위해 사막을 떠도는 여정, 다시 돌아와 고향바다와 어머니를 향한 처절한 그리움의 표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시인 임애월은 결론적으로 말해 시와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즘의 시인이다.
-류재엽(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