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시에서 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혼란의 상태를 만들고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수그러 들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곳으로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전염시키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인류가 언제부터 팬티와 브라자를 착용하기 시작 했는 지는 불분명 하지만 차후의 인류에게 마스크는 또 하나의 필수 착용품이 될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지금 매년 장마가 한창인 이맘때 뉴스에 빠지지 않는 양쯔강 홍수가 올해는 유난히 심한것 같다. 벌써 40여일째 쏟아지는 폭우가 양쯔강 상류인 사천성 성도와 중경시를 중심으로 네개의 큰 강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사천성을 물 바다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아 놓은 삼협댐이 위협을 받고 있다.
예부터 사천성을 흐르다가 무협, 구당협, 서릉협등 세개의 협곡을 통해 강물이 빠져 나와 넓은 평원을 이루며 양쯔강이 펑 하고 터져 만든 큰 호수가 바로 동정호이다. 이 동정호의 남쪽지방이 호남지방이 되고, 동정호의 북쪽 한수 유역, 무한에서 교하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 호북지방이 된다. 그리고 양쯔강 중상류인 사천성을 빠져 나오는 협곡은 그 흐름이 거세어 이 곳을 거슬러 중경시로 향하는 정크선 (화물을 실은 무역선)들의 통행이 무척 힘들었던 곳이다.
그 협곡을 빠져 나오면 펼쳐지는 드넓은 호남 호북평야는 그 유역이 예로 부터 얼마나 홍수가 심한지 아예 그 지역을 홍주라 불렀고 그 지역의 수많은 호수들을 홍호라고 불렀다.
역대 제왕들은 대륙을 통치할 때 언제나 치수가 큰 관건이었다. 양자강 상류 민강의 도강언이 그 치수의 상징이었고, 옛 순임금과 우임금이 치수의 책임자로 왕이 되었다.
지금부터 4300여년전, 동북아에 9년간이나 홍수가 계속 되자 단군 왕검께서 부루 태자를 보내어 회계산 에서 도산 회의를 소집하였고 순임금은 사공 우를 보내어 우리의 오행치수법인 금간옥첩을 받아 치수에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 하듯이 양쯔강은 우리 역사에 깊이 파고 들어와 있는데, 양쯔강의 본래 명칭이 양진이었고, 양진-양찐- 양쯔로 명칭이 바뀐 것으로, 우리의 고려사 지리지에는 양주 땅에 흐르는 강이 양진이며, 이 양진이 충주 땅을 흐를 때에는 양진연소가 있었고, 또 양진명소가 있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또한 이 강이 흘러 공주땅을 지나는 곳에는 웅진연소가 있었다고 기록 하였다. 또 이 곳에 명학소가 있었고, 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 났던 곳이라고 하였다. 양진연소(楊津衍所) 양쯔강이 넘쳐 흐르는 듯 홍수가 빈발한 지역. 衍: 넘쳐흐를 연 양진명소(楊津溟所) 溟: 아득하다, 바다 명을 써서 바다와 같이 넓고 깊고 어둡고 아득한 강을 말한다.
대륙의 중경시 부근에는 지금도 곳곳에 충주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충주와 청주를 충청도라고 부르는데 이곳 사천성이 옛 충청도였다.
지금도 사청성 성도를 청뚜, 중경을 충칭으로 발음한다. 그리고 이곳을 흐르는 강, 양쯔강이 우리 역사에는 양진으로 기록 되어 있다
섬서성은 붉은부분으로 청색선이 한수의 흐름으로 한수의 상류 부분 3분지 1정도가 지도상에 표시 되어 있고, 중 하류는 호북성에 속해있다. 호북성은 양자강 동정호의 북쪽지방이다. 동정호를 기준으로 호북성, 호남성이 나뉘어 있다. 한수의 북쪽에 있는 산은 북한산군으로 현재 명칭은 진령산맥으로 불리우고 있다. 그 산에는 태백산이 있고, 그 태백산 왼쪽으로 수양산도 있다. 그리고 불평, 진안이란 지명도 보인다. 그 곳이 한수의 북으로 북한산군이다. 어떻게 태백산과 한수를 한반도에 옮겨 놓고 한강이라고 부를까? 그러나 그 흐름이 정 반대로 흘러 간다. 대륙의 한수는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결국 양쯔강과 합류를 한다. 우리 고려사에는 그것에 대한 기록이 있다. 원래 고려의 양주는 백제의 한성으로 근초고왕 25년<370>-개로왕 20년<474>까지 105년간 도읍지 였으며, 고려시대에는 4경 중의 남경이 된다. 그 후에는 조선의 수도 한양이 되는 곳으로 양주의 관경 내에는 한수漢水와 양진楊津이 흐른다고 기록 되어 있다. 대륙의 황하와 양자강 사이에서 삼천리를 흐르는 한수. 그 강의 북쪽에 건설된 것이 한양인며 낙수의 북쪽에 낙양성이 있듯이 강의 북에 도시를 건설하면 陽, 강의 남쪽이면 명칭에 陰이 붙게 되고, 산에서 유래가 되는 경우에는 그 산의 남쪽에 도시를 건설하여 陽이 붙어서 山陽산양 이라고 부르고 , 산의 북쪽에 건설한 도시는 산음山陰이 된다.) 왜정시대 왜인들이 대륙의 역사를 왜곡할 때, 남경과 양주를 양자강 하구로 옮겨 놓았다. 또한 낙양성이 동경유수관 경주였는데 저희들 섬나라에 동경을 옮겨놓았다. 본래 양주는 고구려때는 북한산군北漢山郡 으로 불리웠고, 우리 조선의 도읍지 한양漢陽으로서 일제에 의해 대륙에서 한반도로 옮겨 붙인 이름은 경성이 되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다 北據華山 南臨漢水 조선의 도읍지 한양성이 북으로 삼각산(일명 화산華山 이라 한다.)이 있고 남쪽에 한수에 임해 있다고 하였으니, 현 대륙의 섬서성 한수의 북쪽에 있는 진령이 북한산군이며 그 진령의 끝에 화산이 솟아 있음을 지도에서 확인해 보라.
신증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우리 조선은 8도, 2경, 4부, 4도호부,
20목, 83군, 173현 등 300여 군, 현으로 기록 되어 있는데,
그 500년전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은 5도 양계, 4경, 8목, 15부, 129군,
335현으로 그 총수가 580여 개로 전 대륙에 걸쳐 있던 지명이다.
고려시대 600개의 군, 현이 영토가 확장 되었다는 조선에 와서 그 절반으로 수량이 줄어든 것은
조선의 역사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왜곡해서 기록한 왜정시대 왜국인들의 소행이다.
이 지명들을 한반도에서는 축소하고 또 줄여 보아도 그 절반도 옮겨 놓지 못하였다.
현재 대륙에 그 이름 그대로 존재하는 현들과 한반도에 옮겨진 군, 현의 크기는 수십 배의 차이가 난다.
우선 왜정시대 왜국인 들은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와는 달리 한반도에서는 "현" 이라는 명칭을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군, 현의 수를 절반 이하로 줄여 버렸다.
일본 열도에서 보면 일개 현이 한반도의 일개 도 처럼 여러 개의 도시를 함유하고 있다.
다음은 대륙과 한반도의 지명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몇 가지의 사례들 이다.
예1) 대륙의 섬서성에 안강安康이라는 지명이 있다.
경주에 소속된 군, 현 중의 하나 인데 묘하게 한수 유역의 한양이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해 있다.
그 크기가 한반도의 경상도 만한 곳이 바로 안강현이다.
예2) 한반도의 여수(麗水)시는 대륙의 절강성 여수麗水현을 이름만 옮겨 놓은 것인데, 대륙의 麗水는
그 크기가 한반도의경상남북도 보다 큰 곳 이다.
예3) 한반도에서 원주는 조그마한 군사 도시로 치악산이 유명하다. 이와 비교해서 대륙의 평량현 일대
에서 돈황 까지인 감숙성 전체가 옛 북원경 원주이니 그 크기가 한반도 전체의 두배 만한 크기로
옛 대륙에서의 고려의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세계적인 대 제국 원나라와 공존하여 그 강건함이 원이 멸망한 후에도대륙에 건재했던 나라가 바로 고려였다.
남경유수관 양주에 소속 되었던 군, 현들을 고려사 지리지를 통해서 살펴보자.
1) 교하 交河군 ; 원래 고구려의 천정구 泉井口현(굴화 屈火군 또는 어을매곶 於乙買串)인데 신라 경덕왕이
교하로 고쳤다.
현종 9년에 본 양주에 속하게 하였고 선성宣城이라고도 부른다. 오도 烏島성 (한수와 임진강 하류가
여기서 만난다.)과 낙하 나루터 洛河渡가 (이현의 북쪽에) 있다.
서울에서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역를 가서 보면 파주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교하군은 고구려의 천정구현으로 신라 경덕왕 때 교하군으로 개칭 되는데. 대륙에 있던 여러 지명을
한반도로 이설 하면서, 1914년 왜인들이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우선 교하군과 파평현을 합쳐 놓은 후에
1934년 4월1일에는 조선총독부 경기도령 제 4호에 따라 파주시 조례로서 교하읍으로 지정 하면서
그 이름이 희미하게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대륙에 있던 지명 교하군과 파평군을 파주를 만들어 군, 현 수를 줄이는 교묘함을 보여 준다.
서울 파주에는 물론 낙하라는 지명도 있다.
그냥 허무하게 이름만 덩그라니 붙어 있다. 파주에 가서 보면 낙하는 작은 동네 이름 처럼 희미하다......
대륙의 하도 낙서에 나오는 그 낙하를, 낙수의 북에 도시를 건설하여 낙양이란 이름이 생겼던 것을...
옛 천년전 고려사 지리지의 우리 선인들의 기록을 망각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지금 무심결에
그 곁을 지나고 있다.
-주- 아래의 지도를 보면 한수가 단강丹江과 만나는 곳에 단강구
丹江口시가 있다. 이 단강구가 천정구였던 교하이다.
잊어버렸던 우리 고대사의 역사 지명이 대륙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보라, 고려사의 설명이 얼마나 자세한가.
두 강(한수와 임진강이 만나는 곳을 교하라고 하고 이곳을 천정구 라고 하였는데 한수와 단강이 만나는
곳을 단강구라고 한 대륙의 지명.....
과연 단강의 북쪽엔 낙하洛河도 흐르고 있다.이 낙수가 동으로 흘러 가는데 그 곳에 낙양성이 있다.
한수와 양자강이 만나고 있다.
고려사에 양진(楊津)이란 지명이 나온다.
楊津이란 양주땅에 흐르는 강이란 뜻의 고려의 지명이다.
이 명칭이 양쯔강으로, 지금은 양자강으로 변천해 온 우리 고려의 강이다.
위의 호북성 한수가흐르는 곳에 남양시와 수주시가 있다.
대륙에 우리 고려와 조선의 지명이 한수 유역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2) 견주: 원래 고구려의 매성군(창화군이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래소군으로 고쳤다. 고려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 3) 포주: 고구려의 마홀군(명지라고도 한다.)인데 신라의 경덕왕이 견성군으로 고쳤다. 성종 14년에는 단련사를 두었다가 후에 감무를 두었으며 청화(淸化) 라고도 한다. 4) 행주: 고구려의 개백현인데 신라 경덕왕은 우왕(왕봉이라고도 한다)으로 고치고 한양군 관할하의 현으로 하였다. 덕양이라고도 한다. 5) 봉성현: 고구려의 술미홀현. 교하군 관할이다. 서원 현령으로 고쳤다. 6) 고봉현: 고구려의 달을성현으로 교하군 관할이다. 7) 심악현 옛날의 보신향이다. 8) 풍양현: 고구려의 골의노현인데 경덕왕은 황양으로고쳐 한양군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9) 사천 (沙川)현 ; 고구려의 내을매(內乙買)현(내이미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 견성군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 본 양주에 소속되었다. 대륙의 사천성을 감아 돌아 흐르는 강이 양진(양쯔강)이다 10) 안남 도호부 수주 (安南 都護府 樹州 ) : 본래 고구려의 주부토(主夫吐)군으로 신라 경덕왕은 장제(長堤)군으로, 의종 4년(1150년)에 안남도호부로 고쳐고, 고종 2년 (1215) 계양도호부로 고쳤으며, 충렬왕 34년 길주(吉州)목으로 승격 시켰다가 부평(富平)부로 되었다. 이 주에 소속 현이 6개가 있다. (1) 금주( 衿州 )(衿은 금黔으로도 쓴다.) 본래 고구려의 잉벌노(仍伐奴)현으로 신라 경덕왕은 곡양(穀壤)으로 고쳐서 률진(栗津)군 관할 하에 현으로,고려초 금주로 고치고, 현종 9년에 수주에 소속되었다. 시흥(始興)(성종이 정한명칭)이라고도 하며,양화나루터 (楊花渡)가 있다. - 금주( 黔州)와 금강 (黔江)- 사천성과 운남성과 귀주성를 양쯔강(楊津)이 흘러서 간다. 이 지역의 양쯔강의 이름은 금사강(金沙)이라 한다. 운남성을 흐를 때는 려강(麗江)이라 부르며 , 중경시 남부 지방에선 금강(黔江)이 된다. 그래서 이 지역의 지배자 이었던 백제를 침략해 온 당나라 군사가 이 금강을 통해서 백제를 공격한 것이다.
귀주성에 귀양보내는 곳이라고 귀양貴陽이라는 도시가있다. 이 귀양을 중심으로 黔東, 黔南, 黔西가 있다. 이 귀주가 黔州가 아니라면 우리의 고대 도시 黔州를 어디서 찾을수 있을까?
(2)동성현: 고구려의 동자홀현(당산현,또는 구사파의 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은 동성현으로 만들어 장제군 관할로 만들었고, 고려 공민왕때 통진 감무를 두면서 그 소속현이 되었다. (3)공암현; 고구려의 제차파의현으로 경덕왕이 률진군 관할 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충선왕 2년 양천현으로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4)김포현; 고구려의 금포현으로 경덕왕이 장제군 관할 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5)수안현 구구려의 수이홀을 술성으로 고쳐 장제군 관할현으로 만들었다. 12) 인주(仁州); 원래 고구려의 매소홀현(미추홀)인데 경덕왕은 소성으로 고쳐서 률진군 관할하의 현을 만들었다. 현종 9년 수주(樹州)관할 소속이었고, 경원군이 되었으며, 또 인주 지주사를 두었다. 공양왕 2년 경원부로 승격되었다. 자연도, 삼목도, 룡류도등이 있으며 본 주에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1개 있다. (1)당성군: 본래 고구려의 당성군으로 경덕왕때 당은군으로, 고려 때는 당성군으로 현종 9년 수주(水州)에 소속되었다가, 인주에 소속시켰다. 충렬왕 16년 홍다구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지 익주사로 승격 되었으며, 강녕도호부가 되었다가 익주목으로 되었는데 충선왕2년 전국의 목이 폐지되어서 남양(南陽)부가 되었다. (2)재양현; 옛날의 안양(安陽)현이다. 13)수주(水州); 고구려의 매홀현으로 경덕왕이 수성(水城)군으로 고쳤다. 고려 태조가 남방을 정벌할 때 이 군 사람 김 칠, 최승규등 2백여명이 귀순하여 협력한 공으로 수주로 승격되었으며, 원종 12년(1271년) 책량 주둔 몽고병들이 대부도에 침략하여 약탈할 때 폭동이 일어날 때 그것을 진압한 공로로 水原 도호부가 되었고 후에 수주목으로 승격이 되었다. 그 후 목이 폐지되어 수원부가 되었고, 공민왕 11년(1362년) 홍두적의 난 때 제일 먼저 항복한 이유로 수원군으로 강등 되었다. 한남(漢南) 또는 수성(隋城)으로 부르는 바 소속된 현이 7개 있다.
위의 호북성 한수가 흐르는 곳에 남양시와 수주시가 있다.
대륙에 우리 고려와 조선의 지명이 한수 유역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1)안산현; 고구려의 장항구현으로 장구군이 되었다가 안산군이 되었다. (2)영신현; 오타, 혹은 영풍(永豊)이라고도 한다. (3)룡성현;고구려의 상홀현. (4)정송현;옛날 송산부락이다. (5)진위현;고구려의 부산현이다. (6)양성현; 고구려의 사복홀로 적성으로 고쳐 백성군 관할 현이되었다. (7)강화(江華) 현; 고구려의 혈구군(갑비고차)으로 신라 경덕왕은 해구군으로 고쳤다. 고려초 강화로 고쳤다. 고종 19년 (1232년) 왕이 몽고의 침략군을 피하여 이 곳으로 수도를 옮기자 군으로 승격 시키고 강도(江都)라고 불렀으며, 37년(1250년)에 주위에 길이가 2천 9백 60여 간(間) 이 되는 중성을 쌓았고, 원종 원년(1260년) 다시 송도를 수도로 하였다. 진강현, 하음현, 교동현등이 소속되어 있다.
아래 지도는 대륙의 강소성으로 상해시 가 있는 곳이다.
양자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 이 곳이 장강구, 즉 해구군이다.
江口, 海口 어느것이든 이지역에 맞는 이름이다.
이곳에 江都시, 鎭江시, 江陰시가있다.
한반도의 강화도에는 없는 고려사지리지의 기록에 있는 지명이 대륙에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장이다.
과연 누가 강화가 섬이라고 했는가?
단지 이 지역이 강이 거미줄 같이 엮여 있는 강의 바다와 같은 곳이라 몽고의 기병들이 접근 할 수 없었던 곳이라 고려 조정 에서는 전략적으로 이 곳에 임시 수도로 정한 곳이 강도(강의 도시)였던 것이다.
- 광주목 廣州牧 -
광주목 廣州牧은 본래 백제시조 온조溫祚왕이 한漢나라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에 나라를 창건하고 위례성에 수도를 정하였다가 13년에는 한산 아래에 가서 목책을 세우고, 이 곳에 위례성 주민을 이주 시켜 마침내 궁궐을 짖고 살았으며 이듬해에 이곳으로 도읍을 옮겨 남한산성 南漢山城 이라고 부르고 384년간 백제의 도읍지로 하다가, 근초고왕 25년(370년)에 이르러 수도를 남평양성 南平壤城(한양성漢陽)으로 옮겼다.
이곳을 신라 문무왕이 접수하여 한산주漢山州, 남한산주南漢山州, 한주漢州라 하였다가, 고려태조가 광주廣州로 고쳤다.
대륙의 사천성의 지도이다.
사천성과 붙어 있는 섬서성 하단부에 한수가 흐르고, 한수 남쪽의 대파산를 우리가 부르던 이름이 남한산南漢山이고, 이곳을 한주漢州, 남한산주南漢山州로 부르며 성을 쌓아 남한산성南漢山城 이라 하던백제 400년의 도읍지 광주廣州가 있었던 곳이다. 이 곳 광주목에 군郡이 4개, 현縣이 3개가 소속 되어 있다.
1) 천녕 川寧郡 ; 본래 고구려의 술천述川군으로 신라 경덕왕이 소천군으로 고쳤다.
고려초에 천녕군으로 고쳐 광주목에 속하게 하였다. 진강 나루터 鎭江渡가 있다.
2) 이천 利川군 ; 본래 고구려의 남천 南川현으로 신라가 이를 병합하여 주州로 승격시켜 군주 軍主를 두었고,
경덕왕은 황무黃武로 고쳐 한주 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고종 44년(1257년) 영창 永昌이라 불렀고 공민왕 4년 왕의 할머니 신씨의 고향이라고 남천군으로 승격시켰다.
-주- 대륙의 사천성은 이번(2008년 봄)에 대지진이 일어난 곳으로 4개의 큰강으로 이루어져 사천四川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우리의 고대 국가 백제의 400년 도읍지 한성(남한산성)이 있었고, 그 한성의 속현이 첫째가 천녕川寧이고, 둘째가 이천利川이라, 천녕이란 강江의 안녕을 책임 진다는 것이고, 이천이란 강의 이로움을 얻는것이라, 이 곳사천四川에서 우리 옛 역사의 고대 지명을 확인 하여 보자.
우선 사천성 대파산이 우리 백제의 남한산이므로 대파산 주위에서 달천 達川시과 술녕 述寧 시가 있음을 보면 이지역이 천녕 川寧군 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개현開縣시 개강開江시가 있음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
이곳이 고려의 도읍지 개주開州 촉막蜀莫군 이었던 것이다. 지도를 클릭하여 사천성을 자세히 살펴보라 !
.우선 사천성에서 중경重慶시가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음을 알수있다
이곳이 통일신라 의 9주 5소경의 하나인 중원경 中原京으로 충주목 忠州牧이 되는 곳이다.
中京을 重慶으로 발음은 같고 글자만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우리에게 속고만 있으라고 하는 짓이다.
하지만 그 지역 발음으로 충칭으로 부르고 있다. 이 곳이 충주였던 것이다.
이곳 중경시에 이천 利川시와 남천 南川시가 있다.
자! 천녕과 이천, 남천을 찾았으니, 다음은 광주를 찾아 봅시다.
광주는 중경과 사천의 경계에 광안廣安, 그리고 또 광원廣元이란 도시가 있음을 보자.
이곳이 광주 廣州이다. 그런데 기가 막힐일은 이곳이 광주廣州가 아니라고 홍콩위에 廣州를 옮겨 놓았다.
그 곳은 사실은 고려의 해양 海陽현이고, 백제의 무진주 武珍州로 광주 光州가 있어야 할 곳이다.
3)죽주竹州; 고구려의 개차산군으로 개산군, 음평, 연창이라고도한다.
지도에 보면 사천성과 섬서성 경계에 죽계, 죽산이란 지명이있다.
4) 과주果州; 고구려의 률목군으로 률진군, 부안, 부림,부원이라고도한다. 관악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