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구립공원 대비 장산 안내판 점검 - ①
이모준공덕비 안내판 다시 세워도 ‘엉터리’
지난해 태풍으로 폭포사 입구에 위치한 이모준공덕비가 물가로 바짝 다가선 형태가 되었다. 바로 옆 계곡의 물줄기 방향이 공덕비 쪽으로 새로 형성된 까닭이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근처 계곡 보수공사를 해서 물난리는 겪지 않게 되었다.
지난 3일 새해 들어 첫 장산길에 공덕비를 지나다 지난해까지 오물로 더럽혀져 있던 공덕비 안내문이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혹 잘못된 안내판 내용이 바로잡아졌는지 기대하면서 살펴보다 이내 실망했다.
새롭게 부착한 이모준공덕비 안내판에도 ‘과객(과거 보는 사람)’과 ‘行旅人(행려인)’이라는 표현이 그대로다. 과객은 한글로, 행려인은 한자와 한글로 각각 표기해 이 점을 지적했는데도 글 한 자 틀리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식으로 표기하기보다 차라리 행려인도 한글로 쓰고 그 뜻을 괄호 안에 표기함이 바르다.
그리고 ‘과객’의 해석 역시 예전 안내판과 같다. 한문으로 된 비문이나 한글로 된 비문에도 ‘과객’은 등장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 과객일까? 과객은 科客(과거 보는 사람)만이 아니라 過客(나그네)란 뜻도 가지고 있다. 안내판에서는 ‘과객’이 ‘과거 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이치에 어긋난다. 당시 과거를 보려면 한양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 동남쪽 끝자락 달맞이 언덕 입구 섬밭마을에 과거를 보는 사람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또 과객들이 송덕비를 직접 짊어지고 와 세웠다고 적혀 있는데 이 역시 과거 보는 사람으로 해석한 과객과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혹여 ‘과객’이 ‘과거 보는 사람’이라 해도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 이모준 공은 조선 말기인 1878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돌아가셨다. 비석은 비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공이 생존해계실 때인 단기 4264년(1931년)에 세워졌다. 과거가 고종 31년인 갑오개혁(1894년) 때 없어진 사실에 비추어보면 ‘과객’이 ‘과거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리적으로나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는 ‘과거 보는 사람’을 언급한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안내판 내용을 바로잡아야 이공을 바르게 기리는 일이라 여겨진다.
제발 안내판을 세울 때 사실관계라도 확인해주길 바란다. 아니면 <해운대라이프>라도 참조하든지….
<비문 원문>
推己思人 公能先覺 力勤田疇 念及溝壑 賜食療飢 授衣釋凍 有子有孫 百祿是總
자신을 미루어 남을 생각하니 / 공은 능히 선각자이시다 / 힘써 농사일에 부지런하며 / 생각이 도랑에까지 미치었네 / 곡식 내어 주린 자를 먹여 주고 / 옷까지 주어 언 몸도 녹여 주었네 / 길이 자손들 번성하고 / 온갖 복록이 여기에 모여들리라.
장산 폭포사 옆 이모준공덕비 안내문이 새로 설치되었지만 잘못된 내용은 이전(오른쪽 위 사진)과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