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이 결여된 시대, 너무나도 인간다운 고독
이 소설은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여러 번 읽음으로써 비로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서사가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주인공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어 생각과 사실의 구분이 모호하다. 게다가 문단의 호흡이 굉장히 길고 빨라서 책을 읽다보면 숨이 가빠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도 받을 수 있다. 마치 원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처음 접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을 다시 받은 것 같았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 자신은 태어났다고 언급할 정도로, 이 소설을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할 정도로, 이 책엔 무수히 많은 고전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언급되고 많은 책과 저널이 소개된다. 그것만 따라 읽어도 한참 걸린다. 또 한탸가 압축된 종이 묶음을 꾸미는데 쓰는 그림들까지. 이 소설에는 작가가 가진 지식을 모두 쏟아부은 것 같다.
작중 화자인 한탸는 35년째 폐지 압축공으로 일하는 사람인데, 스스로 이 일을 '나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라고 명명함으로써 자신의 일에 대한 상당한 애정을 드러낸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거의 매 장의 시작을 '35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35년째 나는 폐지를 압축하고 있다.', '35년 동안 나는 폐지를 압축해왔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할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거의 유일무이한 일임을 강조하는데, 그의 유일한 소망은 은퇴하는 날 자신이 쓰던 압축기를 사들여 정원 한 켠에 놓고 그동안 모아놓은 책들로 '꾸러미'를 만드는 것이다. 옆에 5리터들이 맥주통을 놓고 마셔가면서 말이다.
한탸는 소장에게 끊임없이 구박받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책을 압축기에서 구해내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꾸며주며 자신의 직업(일)과 삶을 동일시한다. 기계화된 노동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노동자로서의 삶 말이다. 정작 산업화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과 부의 분배가 불균형한 것에 대한 반기로 사회주의가 대두되었지만 기존 목표로 삼았던 인간의 해방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인간성이 소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철학과 문학작품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감상에 젖게 되니 배척당하게 되고 폐지로 압축하게 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니 한탸가 철학 서적과 저널, 문학책을 구해내는 일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일인 것이다.
한탸가 날마다 만들어내는 '꾸러미'들은 특별하다. 핏물 밴 정육점 종이, 신문지 뭉치, 유효기간이 지난 연극 팸플릿, 아이스바 껍데기, 일정 정도 이상 팔리지 않는 재고 서적 등 천장에 난 통로로 무더기로 쏟아지는 폐지 더미 속에서 보물과도 같은 희귀한 책을 찾아내고 탐독한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폐지 꾸러미들을 특별하게 장식을 하는데, 때로는 마네의 '풀밭 위에서의 점심식사'로, 때로는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로 꾸러미에 그만의 아름다운 개성을 부여한다. 한탸는 폐지를 압축하는 것이 '일종의 암살이며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는 행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서 그들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본인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매일 지하 작업장에서 자신의 시끄러운 고독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폐지 더미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운 책들과 맥주와 그리고 은퇴 후의 소망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거대한 신형 압축기를 보고 인간이 소외되는 기계화된 노동에 반발심을 갖게 된다. 고대 현인들과 만나게 해주는 책을 손으로 직접 만지며 느끼지 않고 기계로 대체된 작업을 들여다보자니 책과 함께 소외되는 자신을 예상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 당원 청년들과 자신은 다른 세대였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였다. 거대한 신형 압축기와 비교해 볼품없이 작고 오래된 자신의 압축기처럼 자신도 그들과 비교해 한낱 멍청하고 생산성 낮은 미미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이로 인해 한탸의 지하 작업장의 존재가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요, 신성해야 할 폐지 압축의 장소가 도살장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한탸는 무너진다.
아래는 책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낀 장갑에 나는 모욕을 느꼈다.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는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바츨라프 광장의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들처럼, 책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올라고 스미노프 양조장의 가마솥만큼이나 거대한 가마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중략) 책 더미들이 여기서 몽땅 파괴되었다...(중략) 그 책들은 어느 누구의 눈이나 마음, 머리도 오염시키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중략) 떨어지는 책들이 내장을 드러내며 여기저기 펼쳐졌지만 책장을 들춰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중략) 실수로 그 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중략)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한탸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35년의 노력이,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 그의 하나뿐인 소망이 사라졌다. 그의 마지막 선택은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경이롭다. 차라리 자신의 작업장 지하실에 있던 생쥐가 인간적이라고 말하던 한탸. 그는 정작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하늘 너머엔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가 잊고 있었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 그래서 마지막을 맞을 때, 그때서야 이름도 모르던 집시여인의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 책과 함께 일치되며 인간성을 회복하자 떠오르는 잊었던 사랑. 우리도 학벌, 돈을 중요시하며 연민과 사랑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신의 종족을 지키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하늘을 보고 문학과 철학을 즐길 수 있는 자유를 꿈꾸는 것. 여기서 말하는 고독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인간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계화, 도구화되지 않기 위해 그들로부터 고독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첫댓글 고운 글에 오랫동안 취해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간애를 느끼는 산업화의 폭풍이 주는 그 아쉬움을 뒤안길에서 발견 할 수 있게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
"폐지 더미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운 책들과 맥주" , "고독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인간성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기계화, 도구화되지 않기 위해 그들로부터 고독을 지키려는 노력이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감성속에 다가 와 앉네요.
"인간답게"를 향해 오늘 신발끈을 다시 매어 봐야지 하며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