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리(모산마을)에서 춘양으로 빠져 나가는 길로 약 2km를 더 들어갔더니 길가(이곳을 예부터 ‘서당골’이라 불렀다 함)에 승용차들이 줄줄이 늘어서 주차되어 있었다. 나도 차를 멈추고 왼쪽 언덕바지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三芝齋인 듯싶어서 그곳으로 올라갔다.
삼지재로 가서 오늘의 주인공인 현승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얼마 후에 학포 종회 임원들이 도착하여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가파른 산 아래 수백 년 된 참나무가 품고 있는 三芝齋는 석벽 아래 역시 암반위에 ‘ㄷ’자형 한옥으로 아주 단출하게 지어진 精舍였다. 너무 오래 되어 건물이 퇴락하여 복원 개축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였다.
안내하는 石碑 앞으로 가서 비문을 읽어 보았다.
三芝齋는 주변에 있는 乾芝山 坤芝山 滿芝山 등 세 가지의 산 이름을 따서 이 精舍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學圃 선조님의 둘째 아드님이신 應台(1514~1571, 禮曹參議)선조가 ‘백초가등’에 자리를 잡아 거주(1565년경)하시던 중 칡넝쿨 속에 숨겨 있는 이 집을 발견하였고, 그 후에 학포 선조의 후손들이 이 집을 관리해 오다가, 학포선조의 후손들(7대손 景夏·錫夏·翊夏·紅夏·宅夏·復夏·泰夏 등)이 ‘三芝齋書契’를 조직하여 財政을 확보하고 자손들의 학문 수행과 영재 육성을 목표로 하여 운영해 왔다고 한다. 근대인 1921년에는 ‘月谷義塾’을 개설하여 도곡중앙초등학교를 '삼지재서계'의 자금으로 개교하기도 하였다.
한편, 여기에서 목판으로 <정암선생문집>과 족보를 간행한 적도 있다.
여기에서 인권변호사였던 홍남순씨도 공부하였으며, 또 71세에 進士試에 급제한 조선말 화순의 대표적 한학자인 晩羲 梁進永씨도 이 삼지재에서 강학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방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상자 속에 木版이 여러 장 있어서 우선 사진을 찍어 두었다. 무슨 목판이지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자세히 보니 거꾸로 쓰인 글씨들이 族譜를 찍었던 목판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방안에 문이 잠겨진 장식장 안에 ‘三芝齋韻’이라는 原韻 懸額과 次韻한 몇 편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었다.
11시가 넘어, 현승씨가 이곳을 ‘濟州梁氏 學圃公派 三芝齋 漢文學 硏究室’이라는 간판을 걸고 운영하겠다는 告由祭를 봉행하였다. 제를 간단히 마치고 참석한 인사들을 소개하였다. 화순문화원장(양씨외손)과 도곡면장(여성) 그리고 군 의원들이 소개되었다.
점심은 도곡 온천지구에 있는 ‘임금님 밥상’(15,000원)으로 가서 30여명이 먹고 나왔다. 모두 현승씨가 비용을 부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