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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입문
1. 이사야서의 세 부분
대부분의 성경 번역본에서 예언서들 가운데 첫 번째로 나오는 이사야서는 분량도 방대하고 신학적으로도 성경의 다른 책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신약성경에서 여러 중요한 부분에서 이사야서를 인용하고 있기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더불어 이사야서는, 여러 세대를 거쳐 서로 다른 저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형성되었으므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거의 모든 예언서가 여러 편집자의 손을 거쳤지만, 이사야서만큼 서로 다른 세 시대의 편집 작업이 확연히 드러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저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처음부터 명백했던 것은 아니다. 11세기 유다교의 이븐 에즈라나 17세기의 바룩 스피노자가 이 책이 한 사람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이는 극소수의 예외적인 견해였다. 일반적으로는 18세기 중반까지 유다교 전통에서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나 이사 1-66장 전체가 이사야라는 이름의 한 예언자가 쓴 것이라고 여겨졌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아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이사 1,1)라는 머리글이 글자 그대로 이 책 전체에 적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따른다면 이 책은 기원전 8세기 중반 이후부터 기원전 7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이사1,1에만 근거한 것은 아니다. 구약성경 안에서는 집회 48,24에서 “이사야는 위대한 영의 힘으로 마지막 때를 내다보고 시온에서 통곡하는 이들을 위로하였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2세기의 집회서 저자는 이사 40장 이후까지 모두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가 예언한 것으로 여겼음이 드러난다. 신약성경에서도 이사야서를 인용한 예들 가운데 마태 3,3의 이사 40,3 인용, 마태 8,17의 이사 53,4 인용, 루카 4,17의 이사 61,1인용 등에서 언제나 그것이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라고 밝힌다. 근대의 비평적 연구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이사야의 것일 수 없다고 보는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러한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 이상과 같은 구약과 신약의 언급은 그 구절들을 자구적으로 이해한 이들에게 이사야서의 저자가 단일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 이해는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도전을 받았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이 책의 앞부분에서는 주로 기원전 8세기를 배경으로 하여 아시리아의 위협에 대해 말하는 반면, 40장 이하에서는 뚜렷하게 바빌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뒷부분이 바빌론 유배 시대에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거부할 수 없게 되자, 이사야서의 저자가 한 사람일 수 없으며 1-39장과 40-66장은 서로 다른 시대에 작성되었다는 주장이 점차 확립되었다. 대개 40장을 중심으로 이사야서를 두 분으로 나누었던 이 시기의 비판적 연구는 주로 개신교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사 40-66장을 다시 두 부분으로 구분한 것은 B.둠Duhm이었다.(1892년) 그는 56장 이하의 본문이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의 것이라고 보았고, 그 저자를 제3이사야라 불렀다 .이리하여 19세기 말에는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서(1-39장), 제2이사야서(40-55장), 제3이사야서(56-66장)로 나누는 이론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자들의 이론을 교도권이 곧바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근대주의의 영향으로 신자들의 전통적인 신앙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하던 가톨릭교회는 20세기 초에 역사비평적인 성경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고, 그러한 배경 속에서 1908년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이사야서의 저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940년대 이후로는 대부분 기본적으로는 이사야서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며 그 각 부분이 서로 다른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우리말 『성경』에서도 이사야 예언서 제1부, 이사야 예언서 제2부, 이사야 예언서 제3부라는 제목을 표시해 놓아 이러한 구분이 거의 누구나 인정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물론 그 이후로 이론은 더 다듬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책의 세 부분을 마치 별개의 책들처럼 완전히 갈라놓고 서로 다른 세 시대에 할당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39장 안에도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나 작은 손질들이 있기 때문인데, 특별히 24-27장은 매우 늦은 시기에 쓰인 것이다. 더구나 40-55장과 56-66장의 저자는 어떤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여러 편집자에 의해서 각 부분 안에서도 몇 단계의 편집을 거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사야서의 부분들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제2이사야’, ‘제3이사야’라는 표현보다 ‘이사야서 제2부’, ‘제3부’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할 것이다. 한편 ‘제2이사야’, ‘제3이사야’라는 표현은 그 부분의 저자로 가정되는 인물을 지칭할 때에 사용할 것인데, 그 인물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성경 본문이 화자로 설정한 인물일 경우도 있다.
2. 세 부분의 차이
이사야서의 세 부분을 구분하는 기준은 역사적, 문학적, 신학적 동기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이다. 이사1,1의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1-39장에 해당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직접 등장하고, 그 배경은 구체적으로 기원전 736-734년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이나(이사 7,1-17참조)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 등(36-37장 참조) 아시리아의 위협이 크게 부각된다.
그런데 39장은 유다 임금 히즈키야가 바빌론의 사절단을 맞이한 후에 이사야를 통해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게 멸망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듣고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겠지”(39,8)라고 생각했다는 보도로 끝난다. 히즈키야 이후 유다 왕국의 역사, 곧 바빌론의 침략과 예루살렘 함락, 유배의 역사는 이사야서에 언급되지 않고, 40장 첫 절부터는 이미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오는 해방을 선포한다. 시대적 배경은 유배 끝 무렵이다. 39장과 40장 사이에 150년 이상의 시간적 공백이 있는 것이다. 또한 40장 이후에는 이사야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 본문들의 시대적 배경의 기원전 6세기임을 보여주는 가장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로는 44,28과 45,1에서 페르시아 임금인 키루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한 것을 들을 수 있으며 48,20에서도 “너희는 바빌론에서 나와라. 칼데아인들에게서 도망쳐라.”라고 말하는 데서 역사적 배경이 드러난다.
한편 56장 이후로는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있는 것을 전제하고 귀향 후의 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성전 재건은 본문의 배경이며, 도성도 다시 지어지고 있다. 앞부분에 비해 56-66장에서는 아시리아든 바빌론이든 외국 침략자들의 문제보다 유다 공동체의 내부의 문제들이 더 부각되고 있으며 이사야서 제2부에서 선포된 구원이 왜 지체되고 있는지를 묻는 이스라엘이 질문에 대해 “정의와 공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한다.
문체상으로 본다면 1-39장은 장중하고 절제가 있으며 간결하고, 40-55장은 더 많은 수사학적 기교를 사용하여 격정적이고 강렬한 문체를 보이며 반복과 열거를 즐겨 사용한다. 51,17의 “깨어라, 깨어라”와 같이 동사를 겹쳐서 사용하는 것도 이사야서 제2부의 특징이다. 56-66장의 문체는 40-55장과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 는 시적으로 제2이사야만 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신학적으로는, 앞부분에서는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고발까지 심판선고가 지배적인 반면, 40장 이후에서 심판은 이미 과거의 일로 나타난다. 40,1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라는 선포가 전환점이 되어, 이제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 강조된다. 그 밖의 특징으로 이사야서 제2부에서는 다른 신들이란 존재하지도 않으며 주님께서 유일한 하느님이심이 계속 강조되고, 이와 더불어 창조 신앙이 나타난다. 이 두 주제는 구약성경의 여러 책들 가운데 특히 이사야서 제2부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 또한 1-39장에서는 9장이나 11장 등에서 다윗 왕실의 임금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반면, 40-55장에서는 “주님의 종”이, 56-66장에서는 집단적인 개념인 “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이사야서의 세 부분에서는 서로 다른 인물들이 연속성을 가지면서 하느님 약속의 담지자가 된다.
3. 한 권의 책인 이사야서
위와 같은 내용을 근거로 이사야서를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사야서의 각 부분을 구체적인 배경 안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분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그러나 이사 1-39장, 40-55장, 56-66장을 완전히 서로 별개의 책인 것처럼 또는 본래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다가 나중에 편집자에 의해 결합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정확한 이해가 아니다. 1-39장 안에 후대에 삽입된 장들이 있다는 점은 잠시 접어두고라도, 이사야서 제2부의 경우를 본다면 40-55장은 1-39장과 떨어져서 존재한 적이 없다. 1-39장에 40-55장을 덧붙인 저자 또는 편집자는 기존의 책에 별개의 책인 자신의 다른 본문들을 단순히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1-39장에 대한 재해석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집 작업은 뒤에 덧붙여진 부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부분 전체의 이해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2이사야는 40-55장을 덧붙임으로써, 1-39장과 40-55장이라는 두 권의 책이 아니라 1-55장이라는 하나의 책을 편집한다. 마찬가지로 제3이사야는 56-66장을 덧붙임으로서 세 권의 책을 병렬시키는 것이 아니라, 1-66장이라는 하나의 책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자들은 세부적으로 들어가 이사야서 제2부와 제3부 안에서도 각각 또 다른 편집층들을 구분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후대의 편집자가 행하는 것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자신의 시대에도 변함없이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이 예언의 재해석이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이사 1,1)가 썼던 예언서를 물려받은 후대의 편집자들이 이사야서에 자신들의 흔적을 남겨놓은 것은, 그들이 단순한 학문적 동기에서, 또는 연대기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곧 예언자의 말을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남겨두기 위해서 과거의 예언을 수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언자의 말을 보존한 것은 그 말들이 그들의 시대에도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편집작업을 통해 예언자가 선포한 하느님의 말씀이 그들의 시대에 새롭게 울려 퍼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그 말씀은 한번 발설되고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만 매여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는 말씀이기에 모든 시대를 위해 의미를 가지며 그래서 끊임없는 재해석이 가능하고 또 요구된다. 그 말씀의 살아있는 생명력이 박제된 말씀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예언자가 그 말씀을 발설한 구체적인 상황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사람들 안에서 현실성을 지니고 늘 새롭게 해석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예언서 편집의 과정은 이를 위한 지속적인 재해석의 과정이다.
기억해야 할 점은, 처음 예언자가 말씀을 선포한 때부터 예언서가 완성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말씀을 읽고 이해하는 모든 과정이 성령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계시헌장 11항에서는 성경의 모든 부분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거룩한 책이며 교회는 그 전체를 정경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렇게 복합적인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이사야서’라는 예언서에서 기원전 8세기의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만을 진정한 하느님의 말씀, 영감받은 성경의 말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예언서 또는 그 각 부분의 친저성 문제는 그 경전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하느님의 말씀은 예언자 이사야라는 한 사람의 말에, 그리고 그의 말을 듣던 시대, 그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말씀은 꿈틀거리는 힘을 지니고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변천하며 흘러갈 때 그 말씀은 그대로 생명력을 보존한다. 말씀의 육화는 역사의 과거 한 시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과정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감도로 그 말씀을 계속 해석해 간 사람들을 통해, 그 말씀은 역사 안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표현해 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근래의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과 같은 편집 단계를 거쳐 완성된 이사야서라는 책의 단일성에 새롭게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19세기 이전에는 이사 1-66장이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한 책이라고 생각했다가 점차로 그러한 믿음이 무너지고 여러 저자를 생각하게 된 것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이었다면, 근래에 이르러서는 비록 여러 저자와 편집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해도 최종적으로 편집된 이사야서는 ‘단 하나의’ 책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연구는 아직까지 모색 단계에 있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19세기 이후의 이사야서 연구는 ‘저자의 단일성에서 책의 단일성으로’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이사야 예언서 제1부(이사 1-39장) 입문
1. 이사야 예언자와 시대적 배경
이사 1,1에는 이사야가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환시를 보았다고 되어 있으나, 6,1에서는 그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예언자 소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일치 때문에 6장의 소명설화는 그가 처음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던 때가 아니라 이미 예언자로 활동하던 그가 다시 어떤 특정한 소명을 받는 장면을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일단 그가 부르심을 받은 것이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라고 한다면 그것은 대략 기원전 740년의 일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면 그가 태어난 것은 아마도 기원전 760년경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출생 시기에 관한 언급은 이사야서에 나오지 않는다. 36-37장에서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을 전해주고, 그 이후로는 그에 대한 전기적 진술이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아 이사야는 대략 그 무렵까지, 곧 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예언자로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출생지나 가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그의 문체는 높은 교육수준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가 임금이나 고위 관리들과 어렵지 않게 접촉하며 많은 정치적 활동을 한 것이나, 신학적으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을 크게 중시하는 것을 보아 그는 예루살렘 출신의 귀족 계층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결혼을 했고 적어도 두 아들이 있었다.(이사 7,3 ; 8,3 참조)
이사야서의 본문이 시대 순으로 편집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후대의 편집자들이 1-39장 안에도 흔적을 남겼다는 점을 계속 염두에 두면서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이루어진 이사야의 활동을 대략 시대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임금들의 통치 연대는 확실치 않은 부분들이 적지 않지만, 아래에서는 『주석성경』에 실린 성경 연대표를 기준으로 한다.
요탐 시대(기원전 740년-735년)
우찌야가 통치하던 기원전 745년에 아시리아에서는 강력한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팽창정책은 우찌야 시대와 요탐 시대 초반에는 유다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유다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었고 정치적으로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이사야보다 조금 앞서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아모스가 고발했듯이, 남왕국 유다에서도 이러한 안정과 번영 속에서 사회 불의와 상류층의 사치가 만연하고 일반 백성들은 오히려 더 빈곤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 시대를 긍정적인 눈으로 보지 않았다. 이 시대의 예언들일 가능성이 있는 본문은 주로 이사야 2-3장과 5장, 9장과 10장 일부에 들어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사야서 안에서 어떤 본문도 요탐 시대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1에 따라 실제로 이사야가 요탐 시대에 활동을 했다면 이사야서 가운데 그 시대의 본문일 수 있는 것은 이 장들이라는 것뿐이다. 그가 요탐 시대에 활동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아하즈 시대(기원전 735-716년?)
위에서 지적한 대로 이사야서의 본문 중 일부를 요탐 시대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사야가 분명하게 정치적으로 전면에 나타나 활동한 것은 주로 아하즈 시대와 히즈키야 시대였다.
안정되었던 정국은 요탐 시대 말기부터 점차 불안해졌다. 아시리아의 티글랏 필에세르 3세가 지중해를 향해 시리아 쪽으로 점차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여, 북왕국 이스라엘도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에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쳐야 했던 아람 임금 르친과 북왕국 이스라엘 임금 페카는 함께 아시리아에 대항하려 하면서, 남왕국 유다를 반아시리아 동맹에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유다 임금 아하즈가 이에 동조하지 않자 르친과 페카는 유다를 공격하여 시리아-에프라임 전쟁이 일어났다. 특히 이사 7장이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에 유다 임금 아하즈는 반아시리아 동맹에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이사야는 이에 반대한다. 그가 주장한 것은 인간적인 수단을 써서 어떤 정책을 취하기 이전에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있지 못하리라”(이사 7,9)는 것이다.
그러나 아하즈는 이사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팔레스티나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던 아시리아는 아람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영토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이사야는 공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그 사이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페카가 암살되고 마지막 임금 호세아가 즉위했다. 그 후에 호세야가 다시 아시리아를 거슬러 일어나자 아시리아의 임금 살만에세르 5세가 사마리아를 공격했고 그의 후계자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를 완전히 멸망시켰다.(기원전 722년) 이후로 유다는 아시리아에 막대한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조공을 바치는 한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지는 않았으나 조공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었고, 종교적으로도 아시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히즈키야 시대(기원전 716-687년)
자료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 정확한 상황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히즈키야는 어린 나이에 집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716년 성년이 된 히즈키야는 종교개혁과 정치적 독립을 추구해야 했다. 기원전 705년에 산헤립이 아시리아의 왕위에 올랐을 때 히즈키야는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치기를 거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시리아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사야는 종교적인 면에서는 그를 지지했지만,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다른 약소국가들과 손을 잡고 특히 이집트의 도움에 의지하려 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시리아-에프라임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이사야는 그러한 정치적 동맹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중요한 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임을 역설했고, 아시리아는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주님의 막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임금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기원전 701년 산헤립은 팔레스티나를 공격했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아시리아에 저항하는 히즈키야의 시도를 단죄해 왔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보호해 주실 것임을 선포하며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명 아시리아의 위협은 컸다. 이미 유다 왕국 대부분의 지역이 황폐해졌고, 남은 것은 예루살렘뿐이었다.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에 대해서는 이사 36-37장에 실려 있다. 포위는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하고 아시리아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이렇게 된 정확한 역사적 과정은 알 수 없으나, 중요한 것은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이후로 성경에는 이사야의 생애나 활동에 대해 더 전하는 바가 없다. 그를 따른 제자들도 있고 그의 예언들을 전수한 이들도 있으나 그렇다고 많은 이들, 특히 정치 또는 종교 지도자들이 그의 말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1,1에서는 이사야가 므나쎄 시대까지 살았다고 말하지 않지만 외경에서는 이사야가 므나쎄 시대에 순교했다고 한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전승은 그가 끝까지 거부를 겪어야 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2. 이사 1-39장의 구조와 내용
이 책에서 이사야서 각 부분의 단락 구분은『성경』을 따르고 전체 구조에 대해서는『주석성경』의 이사야 입문을 따를 것이다. 다만 이사야 1장은 다음 본문들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따로 떼어놓지 않고 일단 2-12장과 함께 묶는다.
1-12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한 예언들
13-23장 이민족들에 대한 신탁들
24-27장 주로 묵시록의 성격을 띤 부분
28-33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약속과 위협을 담은 신탁들
34-35장 또 다른 묵시록적 단편들
36-39장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예레미야서와 에제키엘서 등 여러 예언서들에서 볼 수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방 민족들에 대한 불행선언-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 약속이라는 도식이 나타난다. 각 단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사 1-12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관한 예언들
12장의 감사 노래는 한 단락이 끝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시해 주며, 13장부터는 어조가 완전히 바뀐다. 1-12장에서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 특히 윤리적 타락을 고발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데, 대개 이 부분에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이사야 예언자 자신의 선포 내용이 비교적 많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심판을 예고하는 이 부분에도 2,1-5 ; 4,2-6 ; 8,23-9,6 ; 11,1-9과 같이 구원의 약속을 이야기하는 본문이 들어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두 본문은 군왕 메시아의 모습을 제시하는, 이사야서 제1부의 특징적인 본문들에 속한다.
이렇게 1-12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고와 구원의 예고가 계속 교차된다. 이러한 구조는,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아시리아를 당신 진노의 막대로 사용하여 예루살렘을 치실 것이지만, 아시리아가 스스로 오만하게 될 때에는 다시 그 아시리아를 끌어내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임을 말해준다. 이로부터 심판 선고는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모든 교만을 꺾으시는 하느님께서 남겨주신 이들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질 것임이 예고된다. 이 단락은 12장에 실린 구원된 이들의 감사 노래로 끝난다.
이사 13-23장, 이민족들에 대한 신탁들
13-23장 가운데 몇몇 본문은 이사야 자신의 것일 가능성도 있으나 이방 민족들에 대한 대부분의 신탁들, 특히 바빌론을 대상으로 하는 13-14장의 경우는 분명 유배 중 또는 유배 후에 작성된 것이다. 실제로 이 부분에서는 아시리아의 멸망 뿐 아니라 바빌론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귀향, 그리고 필리스티아, 모압, 다마스쿠스, 이집트 등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선포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흥망도 오직 주님의 결정에, 그분의 손에 달려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이사 14,24-27)
그런 의미에서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신탁은 하느님께서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이 본문들 안에서는 종종 다른 민족들, 특히 과거에 이스라엘을 억눌렀던 이집트와 아시리아까지도 언젠가는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특히 19,24-25) 이민족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섬기게 되리라는 것은 2장에서 예고되었고, 이사야서 제3부까지를 포함하는 이사야서 전체에서 다시 부각될 중요한 주제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그리고 온 세상에 대해서 심판을 선고하는 이사야가 그려 보이는 종말의 모습은 온 세상의 초토화가 아니라 모든 민족이 주님의 산으로 모여와 주님의 길을 배워 그 길을 따라 걸으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2,2-5)
이사 24-27장, 이른바 이사야의 묵시록
이 부분을 일컬어 이사야의 묵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리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이 장들은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 가운데에서도 거의 가장 늦은 시기에 첨가된 부분이고, 종말론적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묵시문학이라는 문학유형의 고유한 요소들이 많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13-23장의 이민족들에 대한 신탁과 비교한다면, 이 부분은 어떤 구체적인 민족에 대한 임박한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의 최종적이고 전체적인 심판을 이야기 한다. 신학적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13-23장에 실린 이민족들에 대한 신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심판이 하느님의 통치권의 표현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심판의 완성은 “만군의 주님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임금이 되시어”(이사 24,23)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이고, 그날에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25,6)고 선포된다.
이사 28-33장,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약속과 위협을 담은 신탁들
이사 34-35장, 또 다른 묵시록적 단편들
28-33장의 문학적 특징은 불행선언이다.(이사 28,1 ; 29,1.15 ; 30,1 ; 31,1 ; 33,1)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이집트와 동맹을 맺으려는 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시리아의 불행을 선언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장들 모두가 불행만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1-12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불행선언들 사이에 구원의 약속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28,23-29 ; 29,5-8.17-24 ; 30,18-26) 특히 33,17-24은 24장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시온에서 임금이 되실 때를 노래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의 임금님,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33,22)
여기에 이어지는 34-35장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민족들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35장은 주제로나 사용된 어휘로나 이사야서 제2부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본문이 작성된 시기도 기원전 8세기는 분명 아니다. 아마도 이 장은 이사야서의 첫 부분에 둘째 부분(40-55장)을 덧붙이면서 그 두 부분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사 36-39장,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
36-37장은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던 시기에 관한 설화적 자료로서, 히즈키야의 찬미가(이사 38,9-20)를 제외하고는 2열왕 18-20장과 거의 일치한다. 이 장들을 이해하는 열쇠는 “네가 무엇을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하단 말이냐?”(이사 36,4)라는 랍 사케의 질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대답은 바로 히즈키야의 믿음에 있다. 7-8장에서 하느님을 믿지 못했던 아하즈와 달리 히즈키야는 하느님을 신뢰했다. 히즈키야의 발병과 치유를 이야기하는 39장 역시 하느님께 충실했던 히즈키야가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3. 이사야서 제1부의 신학적 의미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이사야서가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무엇보다 분량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신학은 매우 일관된 편이기 때문에 하나를 풀고 나면 전체를 풀어갈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을 때 만났던 하느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 하느님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 곧 인간 임금이 사라져 가는 중에도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이사 6,3)이시며 사람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6,3)라고 기리는 분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קדושׁ ישׂראל)’이라는 호칭은 이사야서 제1부 뿐만 아니라 이사야서 전체에서 20회 이상 사용되고 이사야서 이외의 책들에서는 드물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사야서의 특징적인 신학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사야가 하느님을 뵙고는 자신이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뵈었으니 “나는 이제 망했다”(6,5)라고 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초월성, 절대성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지고하신 당신의 엄위로 인간의 역사를 끌어가신다. 하느님께서 역사를 심판하시며, 한 나라가 일어서고 무너지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결정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사야에게는 전쟁을 위해 다른 나라와 손을 잡는 것이 무의미하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공격한다 해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면 아하즈를 넘어뜨릴 수 없고(7장)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지켜주실 때에는 아시리아의 침공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36-37장) 그러나 하느님께서 유다를 벌하기 위해 아시리아를 도구로 쓰신다면 그런 아시리아에 맞서기 위해 유다가 이집트나 다른 나라의 도움을 청해도 소용이 없다. 어느 경우에나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절대적인 하느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다.(7,9 ;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있지 못하리라.”)
믿음
그렇지만 이 말은, 주 하느님께서 언제나 이스라엘의 편에 계시다고 믿고 안일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분명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강조한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신랑이 되시고 아버지가 되시며 이스라엘을 당신 포도밭처럼 돌보신다. 이사야에게는 하느님께서 다윗을 선택하고 시온을 선택하셨다는 믿음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하느님의 그러한 선택은 크고 어려운 응답을 요구한다. 당신 홀로 거룩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외의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하느님 아닌 자기 자신을 믿는 교만을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신다. 전쟁에서 군사력에 의지하고 아시리아나 이집트를 믿으려는 임금들의 시도도 마찬가지다. 정의와 공정을 열매 맺기 바라시지만 피 흘림과 울부짖음을 열매 맺는 이스라엘을 하느님은 그대로두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인간의 죄와 공존할 수 없고, 하느님의 절대성은 죄에 빠진 이스라엘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 노력 없이 구원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루살렘이 침략을 받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 앞에서 인간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고 원조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평온함을 유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결단을 촉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평온한 믿음은 이스라엘의 무조건적인 안전을 뜻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시리아를 막대로 삼아 유다를 치시는 하느님의 매를 맞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스라엘의 정화를 위한 심판
하느님의 진노와 심판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심판은 완전한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다. 유배 이전의 예언자인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는 흔히 심판을 선고한 예언자로 이해되고,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사야서 제1부에 들어 있는 구원을 알리는 예언들은 모두 이사야 자신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멸망을 예고했다 해도, 그가 선포한 심판은 영원한 끝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화를 위한 과정이었다. 이스라엘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눈을 멀게 하는 것 역시(이사 6,9-10) 남은 자들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지나가야 할 하나의 단계다.
여기서 더 나아가 후대에 작성된 이사야서 제2부와 제3부까지 전체를 읽고 나면 이사야의 선포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후대의 관점에서 보면, 심판을 통한 구원이라는 역사의 흐름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는 장차 이사야서가 어떻게 완성될 것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재의 심판이 장차 이스라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하느님께서 치시는 매를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최종 형태의 이사야서를 성경의 한 권으로 읽는 우리는 그가 처해있는 시점을 더 넓은 전망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사야의 예언에 첨가된 부분들은 그의 메시지를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이후의 역사 안에서 그의 메시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그분의 높은 길을 남김없이 깨달아서 예언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촉구한 것은 인간의 계획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당신의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는 거룩하신 그분,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이사야 예언서 제2부(40-55장) 입문
1. 시대적 배경
제2이사야라는 인물의 전기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가설 위에 세운 가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2이사야가 과연 한 사람인지도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저자가 기존의 이사야서를 확장시켰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단번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사 40-66장이 1-39장과 별개로 독립해서 존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곧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많은 이들은 40-48장과 49-55장을 구분하여 두 번의 편집 또는 서로 다른 저자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저자의 전기가 아니라 이 편집(들)이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이다. 본문이 명시적으로 키루스를 언급하고 있고 40장에서부터 이미 유배에서의 귀환이 임박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사야서 제2부는 유배의 끝 무렵인 기원전 550-539년에 형성되었다고 본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중요한 사건은 바빌론이 무너지고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등장한 것이다. 바빌론은 기원전 6세기 전반에 그 세력이 절정에 달했으나. 기원전 562년에 네부카드네자르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내정이 불안해져 7년 동안 임금이 네 명이나 교체되었다. 그 네 번째가 바빌론의 마지막 임금 나보니두스인데(기원전 555-539년 재위), 그는 종교적인 이유로 마르둑 신을 섬기던 집권층 사제들과 갈등을 빚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페르시아의 키루스가 바빌론에 침입하자 바빌론의 사제들은 그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해방자로 여기며 환영했다. 이로써 바빌론은 무너지고 페르시아가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정복 민족들을 다스리는 방식에 있어서 페르시아는 바빌론과 매우 달랐다. 이는 관용적인 성격을 지닌 편이었던 페르시아의 종교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넓은 영토와 여러 민족을 거느리기 위한 정치적 수단일 수도 있다. 어쨌든 키루스는 각 민족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바빌론이 파괴한 것을 다시 복구시키기도 했다. 바빌론 땅에 유배를 갔던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특히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도록 명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래서 이전에 바빌론에게 억압을 받았던 주변의 다른 민족들은 키루스에게 희망을 걸었고 그것은 제2이사야도 마찬가지였다.
2. 이사40-55장의 두 부분과 그 신학
이사 1-39장에 속한 본문이라고 해서 모두 기원전 8세기의 것은 아니듯이, 40-55장도 한 사람의 저자 또는 한 번의 편집에 의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제2이사야서의 경우 40-48장과 49-55장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점이 있어서 흔히 이 두 부분이 서로 다른 두 저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차이점의 예를 든다면 40-48장에서는 백성을 주로 ‘야곱’ 또는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반면, 49-55장에서는 ‘시온’ 또는 ‘예루살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하고, 40-48장에만 우상에 대한 논박이 나타나는 것 등이 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사 40,1)이라는 구절로 시작되고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이 책에서, 위와 같이 나눈 두 부분에서 위로의 내용을 구분할 수도 있다. 40-48장에서는 위로가 주로 귀환과 연결되는 데 비해, 49-55장에서는 주로 시온의 재건과 연결된다. 이와 더불어 전반부에서는 키루스, 후반부에서는 ‘주님의 종’이 나타난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키루스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44,24-45,8의 본문이 전반부의 중심이며, 주님의 종에 관한 가장 긴 본문인 52,13-53,12이 후반부의 중심이라고 보기도 한다.
40-48장 귀환의 선포
49-55장 시온의 재건
이러한 내용상의 차이점 외에, 이사야서 제2부의 전체적인 구조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가지의 머리글이 반복되어 큰 단락을 특징지었던 이사야서 제1부나 다른 예언서들과 달리, 이사야서 제2부는 50개가 넘는 작은 단락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사 40-48장, 귀환의 선포
전반부인 40-48장에서, 제2이사야가 귀환의 희망을 선포할 수 있었던 신학적 기초는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다. 이 부분의 내용은 역사를 이끌어 가는 분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알이나 다른 신들이 아닌 주님만을 섬기라는 일신숭배의 개념과는 구분되는, 다른 신들이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엄밀한 의미의 유일신 신앙은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지녔던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발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제2이사야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겪고 바빌론에서 이교인들의 화려한 경신례를 접하게 된 이스라엘은, 그들의 주님이 바빌론의 신에게 패배하셨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예언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유일한 하느님이심을 주장한다. 제2이사야가 창조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도 같은 노선에서다. 창조는 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태초부터 이어지는 그분의 다스리심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스리심은 태초의 한순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분, 역사와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것이 실제로는 더 중요하며, 창조에 대한 진술들은 그 믿음을 표현하는 한 형태였다. 이 점은 사제계에 속하는 창세 1장의 창조 설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제2이사야에게 다른 신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이사 44,6 ; “나 말고 다른 신은 없다.” 등) 이러한 맥락에서 페르시아의 임금 키루스의 등장 역시 마르둑 같은 이교 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며, 그분께서 이방인인 키루스를 당신 도구로 삼으시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선포한다.(45,1 ; “주님께서 당신의 기름부음 받은 이에게, 당신께서 오른손을 붙잡아 주신 키루스에게 말씀하시니....”).
이러한 해방은 제2의 이집트 탈출로 묘사된다. 과거에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하느님께서 해방시켜 주셨듯이, 역사의 주인이신 그 하느님은 지금 바빌론에 유배된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나와서(특히 52,11-12) 광야를 거쳐(43,16-21 ; 49,8-12) 당신께서 약속하신 땅에 이르게 하신다.(40,9-11 ; 49,14-21 ; 54,1-3.11-17) 새로운 이집트 탈출은 첫 번째의 이집트 탈출보다 더 장대할 것이고, 광야에 물이 흐르고 나무들이 자라나는 기적들이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41,17-20 ; 43,19-21 ; 48,21)
이사 49-55장, 시온의 재건과 주님의 종
49-55장의 본문 대부분은 예루살렘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40-48장보다 늦은 시기에 그 본문의 내용을 예루살렘에 적용시키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주님의 종’이다. 이사야서 제2부에는 ‘주님의 종의 노래’ 네 편이 들어있다. 각 노래의 시작과 끝을 어디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성경』에서는 42,1-9을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 49,1-7을 둘째 노래, 50,4-11을 셋째 노래, 52,13-53,12을 넷째 노래로 본다. 주님의 종의 노래들 가운데 첫째 노래는 42장에 들어있지만 거기에서 ‘종’은 일차적으로 키루스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구원에서 키루스의 역할을 강조하는 40-48장안에 들어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 본문들을 ‘주님의 종의 노래’로 분류한 것은 둠이다. 그가 이 본문들을 따로 구분한 것은, 이사야서 제2부의 다른 본문들에서 종은 보통 이스라엘을 지칭하는데(이사 41,8.9 ; 44,1.2.21 ; 45,4 ; 48,20등) 이 노래들에서는 종이 개인적인 면모를 보이며, 어떤 경우는 종과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이 대조되는 것을 볼 수 있어(49,5-6 등) 이 종을 이스라엘로 볼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님의 종의 노래들에 나오는 종은 이사야서 제2부의 다른 부분들에서 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스라엘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죄에 대해 죗값을 치렀고(40,2) 이제는 용서를 받게 되었는데(44,22)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 나오는 종은 무죄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겪는다(53,4-7.11) 또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권리를 돌보지 않으신다고 탄식하는데(40,27) 49,4에서 주님의 종은 주님께서 자신의 권리를 돌보아 주심을 믿는다. 그래서 많은 이가 둠의 주장과 같이 종의 노래에 나오는 종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어떤 개인을 가리킨다고 본다.
하지만 그 종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어떤 이들은 모세와 같이 먼 과거의 어떤 인물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처럼 가까운 과거에 있던 인물로 보며, 또 다른 이들은 제2이사야 자신, 여호야킨, 즈루빠벨 등 이 본문이 형성되던 시기의 인물로 본다. 또 다른 이들은 이 노래들이 어떤 구체적인 인물 안에서 완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라고 보고 미래의 인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 종을 이상적(메시아적) 임금, 새로운 모세로 나타날 미래의 예언자 등으로 본다. 신약성경에서는 주님의 종의 노래들에서 여러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킨 예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둠 이후에도, 이 본문들에 나타나는 종이 이사야서 제2부의 다른 본문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의 한 절만 살펴본다면 “나의 종”, “선택”, “붙들다”(42,1)등의 단어는 41,8-10에서 종인 이스라엘에게도 사용된 것들이어서, 주님의 종에 관한 여러 진술이 이스라엘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주님의 종의 노래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해석이 낯설지만, 유다교에서는 언제나 -지금도- 이 종을 이스라엘이라고 이해해 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스라엘에게 사명을 수행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49,5-6) 주님의 종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면, 이스라엘 가운데 충실한 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유배 중에 제2이사야가 선포했던 말씀을 받아들이고,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40,1)이라는 기쁜 소식을 믿지 못하던 이스라엘에게 빛이 되는 사명을 수행하고자 한 이들일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주님의 종이 겪은 고통은 제2이사야와 그의 후계자들이 겪은 고통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이러한 해석은 이사야서 전체의 통일성에 주목하는 최근의 해석들에서도 지지를 받는다. 여기서는 이사야서 제2부의 ‘종’과 이사야서 제3부의 ‘종들’ 사이의 연관을 고찰하면서, 충실한 이스라엘인 ‘종들’이 주님의 종을 뒤이어 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해석들은 모두 나름대로 본문 안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어떤 해석을 지지한다고 해서 다른 해석을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첫째 노래만 생각해 보아도, 42,1-9의 본문을 따로 떼어놓고 해석할 때와 41장에 이어지는 맥락에서 해석할 때, 이사야서 제2부 전체 안에서 해석할 때, 그리고 문맥을 넓혀 마지막으로 구약과 신약 전체 안에서 해석할 때 본문의 의미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주님의 종을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해석은 구약과 신약의 단일성을 존중하면서 구약이 신약에서 완성되고 성취되었다고 보는 전망 안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인데, 이사야서의 다른 본문들에서도 그렇듯이(예를 들어 7장의 임마누엘의 표징) 이 해석은 자주 주님의 종의 노래들을 인용하는 신약성경 자체 안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교부들이 예언서의 다른 부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시키는 경우들보다 더 강하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이 노래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고 보았으며, 이 노래들을 통해 그 수난과 죽음을 해석했다. 특히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에서 나타나듯이 그 죽음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고 그 모습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을 비참한 모습이었으나, 그를 바라보던 이들은 종의 죽음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한 죽음임을 깨닫는다.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는 고통이 순전한 부정적이고 무가치한 것이며 고통당하는 사람 자신의 죄의 결과가 또는 그가 받은 저주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시각이 나타나는데, 그러한 의미의 고통과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덧붙여 둘 것은, 신약성경에서도 주님의 종의 노래를 사도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적용시킨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신약성경은, 주님의 종이 누구라고 한마디로 단정 지어 대답할 수 없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준다.
이사야서 제3부(이사 56-66장) 입문
1. 시대적 배경
이름을 알 수 없기에 편의상 제3이사야라고 일컬어지는 한 인물을 가정한다면, 그는 에즈라나 느헤미야보다 조금 앞서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2이사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3이사야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내려고 하는 시도는 헛된 일이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사야서 제3부가 이사야서 제2부와 긴밀히 결합되어 있고, 편집자가 이를 통해 이사야서를 다시 한 번 재해석하고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사야서 제2부를 쓴 저자가 바빌론에서 팔레스티나로 돌아온 다음에 이사 56-66장을 썼다는 주장도 있고 56-66장이 여러 저자의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며, 소수의 의견이지만 어느 한 저자가 이 마지막 장들을 모두 썼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까지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으나 56-66장이 모두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 또는 한 번의 편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보통 그 안에서 적어도 두 개의 편집층을 구분하곤 한다. 그 경우 대개 60-62장이 먼저 형성되었다고 보고 여기에 그 이후의 편집이 더해졌다고 본다.
저자의 시대적 배경을 말할 수 없다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이사야서 제3부가 형성된 시기다. 이 장들은 바빌론 유배가 끝난 다음의 팔레스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아직 성전 재건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므로, 대부분의 본문들이 작성된 시기는 기원전 537년에서 520년 사이라고 비교적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의 상황은 기대와 달랐다. 제2이사야는 유배중인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재건을 선포하면서, 온 세상이 주님의 구원을 보게 되리라고 알리며 “떠나라, 떠나라, 거기에서 나와라(이사 52,11)”라고 팔레스티나 땅으로 돌아갈 것을 격려했다. 그런데 실제로 귀환은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그리 대단한 광경이 아니었고, 팔레스티나에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유다인 내부의 분열,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본토에 남아있던 이들 사이의 토지 소유 문제, 이방인들과의 관계 문제 등 쉽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사야서 제3부는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팔레스티나에 남아있던 유다인들, 그 사이에서 살고 있던 이방인들, 아직 팔레스티나 밖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다인들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들을 다룬다. 그들은 각각 나름대로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겪고 있었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이것이 제3이사야가 처한 상황이었다.
2. 전체적 내용과 신학
이사 56-66장의 구조는 한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짜임새를 찾아보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아직 일반적인 것으로 제시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대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56-59장 구원이 지체되는 이유
60-62장 예루살렘의 구원
63-64장 탄원
65-66장 새 하늘과 새 땅
56,1-8에서 다음 장들의 핵심 내용이 선포된다. 유배에서 돌아온 후 많은 어려움 속에서 구원의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주님의 능력을 의심한다. 구원은 왜 지체되는가? 이에 제3이사야는 다시 한 번 ‘구원이 가까이 왔다’(이사 56,1)고 선포하며, 그 구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 편에서 정의와 공정을 실천할 것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행복하여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56,2)
구원이 지체되는 것을 두고 하느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을 이룩할 능력이 없으시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에게 제3이사야는 다른 대답을 내어놓는다. “보라, 주님의 손이 짧아 구해내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서 그분의 얼굴을 가리어 그분께서 듣지 않으신 것이다.”(59,1-2) 이것이 제3이사야의 핵심 논지다. 그는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의 불의라고 주장한다. 그가 구체적인 정의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58장 등을 보라) 이와 관련하여, 구원을 위해 결정적인 요인은 혈연으로 이스라엘 백성에 속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정의의 실천임을 강조하게 되면서, 주님을 따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선포된다.(56장)
60-62장은 이사야서 제2부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는 구원된 예루살렘으로부터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빛이 비치게 되고 세상의 민족들이 주님을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 것임을 예고한다. 그 가운데 61,1-3은 대개 제3이사야가 자신의 예언자 소명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그는 자신의 사명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 구절은 한편으로는 주님의 종의 노래, 특히 42,1.3과 연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루카 4,18-19에서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서 하신 첫 설교에 인용되어 공생활 첫머리에서 그분의 사명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63-64장에서는 묵시문학적 요소도 나타나고 제3이사야의 다른 본문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크게 말하면 구원을 바라는 탄원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65-66장에서는 하느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며 모든 이가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다. 56장과 마찬가지로 65-66장에서도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구원에 참여할 수 잇다는 주제가 나오는데, 이것은 구원의 기준이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66,2) 데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구원을 받고 이민족이라고 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주님을 섬기는 “나의 종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65,13-15)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지만, 그 구원에 응답하는지 여부에 따라 이스라엘에게나 이방 민족에게나 심판과 구원의 두 가지 가능성이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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