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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길, 그 마땅찮은
이 홍사
계속 좋지 않은 소식만 들려온다.
곧 돌아가야 할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인데 귀에 껄끄럽고 걱정이 앞선다.
“이거 정말 나라가 거덜이 나는 거 아니야?”
유튜브를 보다가 중얼거린 홍랑의 말이다.
한국은행에서 올해 경제 전망치를 또 낮추어 발표했단다.
홍랑은 이곳, 양곤에서 유튜브를 보는 재미로 산다.
방송심의위원회에서 가짜뉴스로 단속한다는 우파의 유튜브다. 좌익인사들이 하는 유튜브도 없는 건 아니지만 절대로 보지 않는다. 홍랑이 생각하기에는 좌익 유튜브를 보면 말이나 논리,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게 똥구멍으로 하는 말이야? 입으로 뀌는 방귀야?”
홍랑은 여지없이 그런 욕설을 하게 된다. 이 정부를 두둔하다 보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일이다. 유튜브의 탓이 아니라 정책의 탓이다. 나라가 어디 모험이나 실험의 대상이야? 그렇더라도 가끔 뉴스나 좌파 유튜브를 훑어보는 건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도대체, 왜 그런데?
홍랑은 보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참!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그만해라!
그 말을 하고는 보다가 중간에 끊어버리고 다른 유튜브로 돌린다. 순전히 안티가 되기 위해서, 부정하기 위해서 잠깐 훑어보다가 중지시킨다. 그렇게 좌익 유튜브를 보다가 우파 유튜브를 보면 말이 앞뒤가 맞고 논리적이며 가슴이 다 시원하다.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어느 채널이 진실을 말하는지 단박에 알 수가 있다.
가짜뉴스를 단속한다면 어느 유튜브를 단속해야 할지 자명한 일인데 그걸 모르는 정부다. 정부를 폄훼하는 유튜브가 무조건 가짜가 되는 모양이다. 그게 방송심의위원회의 잣대다.
우파 유튜브 중에서 하나를 홍랑은 정기 구독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정기 구독자로 등록을 한 것이 아니지만 공짜로 매일 본다. 그 유튜브에는, 오전에 그날 나온 신문을 읽어주며 논평하는 코너가 있다. 신문은 한가지가 아니라 국내에서 조간으로 나오는 신문을 다 섭렵하고, 외신으로 넘어가 일본의 언론이나 미국의 데일리나, 뉴욕타임즈까지 볼 수가 있다. 그 외신들의 칼럼에 대한 논평까지 내는 유튜브다.
사십 년이 넘도록 기자 생활을 했다는 어느 경제신문의 주필이 일러주는 일종의 칼럼에 대한 칼럼인 셈인데, 정말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유튜브다. 그러므로 홍랑은 이 양곤에 앉아서도 세계의 신문을 실시간 두루 섭렵하는 셈이다.
이 이국땅 양곤에서 한국을 내다보는 유일한 창구가 바로 그 유튜브다. 그 유튜브는 하루에 두 번 뉴스를 내보는데 첫 번째는 오전 열 시, 그날의 신문을 탐색하는 시간이고 두 번째는 오후 여섯 시, 그날의 뉴스를 조명하는 시간이다.
한국의 시간으로 오전 열 시에 하니 여기서 점심을 먹으며 보면, 접속이 가능하다. 여기도 인터넷이 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인터넷도 좌익의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어서 메일이나 확인하는 매체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터넷이란 실시간 올라오는 인기 검색어를 따라서 들어가다 보면 전혀 엉뚱한 곳에 도달하게 된다. 주관적인 제어장치를 지니지 않고, 따라다니다 보면 정서만 훼손되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홍랑은 인터넷으로는 메일과 카페 외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
오전 열 시에 하는 그 유튜브 뉴스를 보면서 점심을 먹으면 밥을 먹는 시간이 지겹지 않다. 혼자서 먹으려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여기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 바로 밥을 먹는 일이다. 혼자서 꾸역꾸역 먹으니 그렇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이 문제를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홍랑은 자문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니 밥 먹는 시간이 오히려 즐겁고 기다려지는 일이 되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실시간 검색에 상위 건에 올라온 단어를 검색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이젠 시들해졌고 도무지 그런 건 궁금하지가 않다. 분명 따라 들어가 보면 좌익에 편향된 이야기다.
한국에선 여섯 시에 하는 그 유튜브의 뉴스를 스마트폰으로 보려면 저녁을 먹고 나서 좀 기다려야 된다. 스트리밍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 홈페이지에서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보려면 스트리밍하는 시간이 있기에 조금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서는 한국과 두 시간 반의 시차가 있는 관계로 저녁을 먹는 시간에 보면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진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여기서 가장 괴로운 건 혼자서 밥을 먹는 거다.
혼자서 밥을 먹으니 먹는 자체가 숙제처럼 여겨지는 일이다.
라면은 혼자 먹어도 괜찮은데,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혼자 먹으면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괜히 목이 메고, 사레가 들고, 느닷없이 큰기침해서 씹고 있던 밥알의 파편이 날아가던, 처참한 시간이었는데 이젠 그런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밥 먹는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유튜브를 미리 보고 싶지만, 꾹 참았다가 꼭 밥 먹는 시간에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튜브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생방송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토요일과 일요일은 뭔가 일정이 꽉 짜이지 않고 나사가 풀린 듯하다. 그렇게 주말을 지겹게 보내다가 월요일이 되면 그렇게 마음이 즐거울 수가 없다. 오늘은 유튜브를 볼 게 있겠구나. 어떤 뉴스가 올라와 있을까? 뉴스 논평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일이고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홍랑은 미얀마에 나오면 한국으로 들어가는 귀국일이 다가오면 괜히 초조해진다. 무슨 이유를 갖다 대더라도 들어가는 귀국일은 연기하고 싶은 것이다.
대략 한 달을 주기로 왔다가 갔다가 하는데, 이곳 미얀마에서는 황제 대접을 받기 때문인지 들어가는 날을 자꾸 늦추게 된다. 집안에 청소 담당 처녀와 취사담당 처녀, 둘이 있는데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부터 이 층을 홍랑 혼자서 쓴다. 청소하는 시간 이외에는 홍랑이 부르지 않으면, 처녀들이 절대로 불쑥불쑥 올라오는 법이 없다. 백이면 백, 단 하나도 불편한 게 없다.
한국에선 홍랑이 쓰레기통을 비우고 재떨이를 직접 비우고 헹구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먹는 행위에서 숟가락을 쥐는 것 외에는 손도 까딱하지 않는다. 먹고 입는 것은 두 처녀가 오직 홍랑 만을 위해서 종일 매달리고, 팬티와 메리야스, 속옷까지 다림질해서 다려놓고 매일 갈아입으며, 겨울이지만 매일 두 번 샤워한다. 불편한 게 전혀 없다. 단지 불편한 게 있다면 자꾸 다가오는 귀국일 세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에서 일 할 적과는 사뭇 다르다.
몽골에서는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있기가 싫었을까?
얼마나 있기가 싫었으면 그날 새벽 비행기로 들어가서 현장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그날 밤에 비행기로 돌아 나온 날도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다. 미얀마에서는 내 집이 있어서 그런지 항상 귀국을 연장하게 된다. 몽골은 타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타국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지배한다.
몽골에서는 칠 년이나 일했는데 가장 오래 체류한 시간이 보름 정도다. 그게 기록이다. 중장비 임대업을 하다가 벽돌에 눈을 돌려 그때는 중국에서 들여간 벽돌공장에 기계를 남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직접 설치하던 시절이라, 설치하고 테스트하느라 어쩔 수 없이 붙어 있었던 것인데, 봄이었고 눈바람이 날리는 황량한 사막에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니 그사이에 초록이 산천을 덮고 있었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이 그럴까?
그 외에는 대게 사나흘이었고 길면 일주일이었다. 딱 볼일만 보면 바로 돌아서 나왔었다. 호텔이나 현지의 아는 지인 집에 기숙하니 불편해서 그랬던가? 그렇지 않으면 보드카로 폭음을 하고 괜히 시비를 거는 현지인이 부대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점은 정말 마음에 든다. 꼭 마셔야 하는 자리가 생기면 맥주에 얼음을 넣어 희석해서 마시는 게 고작이다. 늘 진한 보드카 원액에 절어 있는 몽골사람들과 영 딴판이다.
여기서는 술 취한 사람을 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싸움을 하는 것도 잘 보지 못한다. 겨우 싸운다고 해봤자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말싸움으로 끝이 난다. 몽골사람들처럼 주먹으로 뒤통수를 치거나 술병을 휘두르는 일은 없다.
누구에게 미얀마에 있다고 하면 이 나라의 치안부터 묻는 친구들이 있다. 홍랑은 늘 말한다. 그 점에는 염려하지 말라고,
사실이지 몽골에서는 밤에 나가기가 겁이 났다. 꼭 매니저를 대동하고 다녔는데 여기선 아니다. 저녁이면 흥청대는 술집이 없이 다 일찍 문을 닫아버리니 나갈 곳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가끔 시내버스를 타거나 시내에 나가면 소매치기는 있다고 들었다.
몽골!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몽골을 생각하면 몸서리부터 쳐진다.
눈보라가 날리는 사막, 그 황량한 쓰레기 매립지에서 벽돌 기계를 자동화로 설치하는데 죽을 맛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끔찍하고 몸서리가 쳐진다.
가끔은 그렇게 고생해서 세운 벽돌공장이 성공리에 끝이 났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 물음에는 실소를 한다. 벽돌을 찍어서, 벽돌을 적재할 그 공장용지에 사무실이라고 사옥을 자그마하게 지은 게 고작이다.
한데 실패는 아니었다.
그렇게 대답하면, 무슨 소리인가? 반문하는 게 당연하다.
철로 옆에 쓰레기로 매립을 한 그 공장용지를 사고 공장을 짓고 벽돌의 강도에 대해서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신청서와 시험 성적서를 넣고 기다리고 있는데 철로를 건너는 고가다리가 생기고 공장용지 옆으로 사 차선 도로가 생긴 것이었다. 쓰레기 매립지가 졸지에 금싸라기로 변한 것이었다.
벽돌 생산은 끝내 허가를 받지 못했지만 성공이었다. 벽돌 기계는 뜯어서 모터는 모터대로 팔고 기타 잡자재와 물탱크, 지게차는 따로따로 팔았다.
아무튼, 몽골에서는 그렇게 있기가 싫었는데 여기서는 아니다.
왜 그럴까?
황제 대접을 받아서 그런가?
내가 감히 이런 대접을 받아서 되나?
진시황의 대접이 이랬을까? 아방궁의 제왕이다, 싶을 때가 있다. 오로지 홍랑 혼자서 먹는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두 처녀가 두 시간 정도 요리를 한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니 진수성찬이 아닐 수가 없다. 진수성찬이긴 한데 혼자서 먹으려니 고역이다. 그런데 유튜브라는 반찬, 반찬이 아니라 동반자가 생긴 것이다. 타국에서 훌륭하고 만만한 친구요, 동반자를 만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몽골은 왜 타국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시차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행기로 두 시간이니 항공료도 저렴하고, 사람들 생김새가 닮아서 그랬는가? 아니면 몽골어가 생각보다 쉬워서? 울란바트로가 손바닥만해서? 시내 길을 완벽하게 다 익혀서? 아무튼, 희한하게도 멀다고 생각이 되지는 않았는데 여기, 양곤은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날아오면서 하노이 상공을 지날 때쯤이면, 참 멀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여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비행을 마치고 내리면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공항에서 나오면 바로 후덥지근한 열기가 훅 끼쳐오고 야자수가 드문드문 보이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또 여기서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돌아갈 날이 며칠이나 남았는지 계산을 하게 된다. 홍랑 자신도 모르게 그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이 조금이라도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항공사로 연락을 해서 들어가는 날을 뒤로 연기시킨다.
오늘도 그랬다.
애초에는 다음 주 월요일에 귀국일로 잡혀있었으나 목요일로 연기시킨 것이다. 월요일 오전에 미팅이 있기 때문이다. 오전에 미팅을 잠깐하고 들어와서 준비해서 저녁 비행기를 타면 되는 일인데 사흘이나 연기시킨 것이다. 몽골 같았으면 그런 사소한 미팅은 무시하고 귀국을 했을 것인데 여기서는 아니다. 몽골에서 지인들이 가끔 전화가 온다. 한번 들어오라고 난리다. 마음을 푹 놓고 이해타산을 따질 일이 없으니 양이나 한 마리 잡아서, 몽골 전통요리인 ‘허륵’을 해서 푸짐하게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답만 했지, 한 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갈 시간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가고 싶지가 않았었다.
홍랑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여기 있으면 한국도 몽골과 마찬가지다. 들어가기 싫은 것이다.
여기서는 재정적으로 손해만 보고 있는데, 이 땅이 그렇게 좋은가?
자신에게 묻지만, 한국으로 들어가기가 싫은 게 사실이다.
들어가면 너무나 촘촘하게 설치된 정치뉴스의 그물에 신경이 거슬리는 건 당연하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정보망이 사람을 오히려 불편하게 한다. 여기서는 홍랑이 보고 싶은 정치판 뉴스만을 보지만 한국에 들어가면 잡탕으로 보고 신경질을 내며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주관적으로 선별해야 한다.
양극화된 한국국민의 정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중도라는 것이 없어졌다. 모든 것은 선과 악으로만 구분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착하고 너는 나쁘다. 너는 나쁘지? 나는 착해!, 이런 논리가 팽배해진 세상이 되어버렸다. 관여하지 않고 관조적인 시각으로 보고만 있어도 엄청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몽골에 있을 적에, 홍랑은 정치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상식대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진영의 양극화가 되었고 정책은 홍랑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범주를 역주행하고 있다. 상식이란 무엇인가? Common Sense! Common Knowledge! 보통 생각, 보통 사고나 지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보편적인 생각을 뛰어넘거나 역으로 흐른다. 시류의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류처럼 여겨지고 정치로 인해 나라나 국민이 실험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홍랑이, 국민 절대다수가 경멸한다는 소위, 수구꼴통 우파라서 그런 게 아니다. 엄청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청와대 앞에서는 좌익과 보수가 맞불 집회를 하고 어느 보수 인사가 린치를 당했단다.
나라의 경제나 안보가 어디까지 추락하려나?
정말이지 염려가 된다.
이곳의 이번 일은 어지간히 끝나간다. 사소한 수리공사였다.
단독주택은 다 짓고 이사를 들어왔는데 문제점이 돌출한 것이다. 이 정도의 저택이면 주차장이 있어야 한다는 골목 안에 사는 현지인의 조언이 있었다. 도면을 그렇게 검토하고 편의성을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못 했다. 홍랑이 생각해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 나라도 승용차가 점점 대중화되어 가고 있으니 이 집을 살 여력이 있는 가족이라면 당연히 차가 있을 것이다.
하여, 주차장을 넣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층 거실을 조금 줄이고 마당과 합쳐서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었다. 거실만 줄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대문의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대문의 위치를 바꾸자면 콘크리트 지주도 위치를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그건 옮길 수가 없으니 부숴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이라 보기보다 사소하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이 집도 처음에는 육 층짜리 연립으로 지으려고 했었다.
허가가 나오고 기초를 다 하고 공사를 하다가 생각이 바뀐 것이다. 먼저 지은 다른 지역의 연립이 분양실적이 저조한 것이다. 과연 지어서 팔리겠는가? 단독으로 하나를 지어서 쉽게 손을 털어버릴까? 고민하다가 단독주택을 짓기로 마음을 굳혔다. 육 층, 연립을 짓겠다고 기초를 한 뒤에 단독을 지었으니 기초는 엄청 튼튼한 셈이다. 누가 주인이 될지 모르지만 사는 사람은 복이 터진 것이다. 이렇게 기초를 튼실하게 지었으니.
집은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들어보고 눈치를 보니 이곳의 경기도 말이 아니란다. 이 나라는 중산층이 없는 나라다. 중산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가기가 엄청 어려운 나라다. 그렇게 올라가는 방법은 군인이 되는 길뿐이다. 군인이 되면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은행의 대출도 받을 수가 있고 아무도 모르는 정보를 이용하여 요지가 될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무슨 사업자든, 면허를 낼 수가 있는 곳이다. 군사정권에서 민간으로 이양되었으나 군인의 권위가 센 나라임은 분명하다.
이 나라 군인은 월급이 정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군인들이 직접 사업을 한다. 골프장도 하고 대형 토목공사도 하고 석유나 필요한 원자재수입도 군인들이 한다. 심지어 대형슈퍼마켓도 군에서 운영을 하는 곳이 있다. 거기에서 나오는 이득을 월급으로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허가를 내려면 군인이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다. 언젠가 매니저인 때쑤에게 물은 적이 있다. 칸을 키워서 뭘 만들고 싶냐고? 칸의 때쑤의 아들인데 지금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때쑤는 군인이나 스님으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이 나라에서 군인이나 승려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한 대답이다. 그 외에는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올라갈 방법이 없다. 그곳으로 오르는 사다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중산층을 겨냥하고 집을 지었는데 분양이 언제 끝이 날려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좀 일찍 들어가야 한다. 서둘러 들어가더라도 한국에 한 달도 있지 못하고 다시 나와야 한다. 다음에 나올 적에는 홍랑은 남의 여행에 가이드가 된다.
홍랑의 아내를 비롯하여 친하게 지내던 여편네들끼리 ‘미얀마계’를 모았다고 했다.
미얀마계? 그게 뭐야?
홍랑은 생소한 말이라 의아했다.
들어보니 순전히 미얀마를 여행하기 위해서 계를 모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몇 년에 걸쳐서. 기가 막혔다.
홍랑의 아내는 미얀마를 다녀간 적이 있다. 사업자를 내던 초기에 들어와서 보름 정도 머물다가 갔다. 미얀마는 외국인 투자자가 혼자서는 사업자를 낼 수가 없다. 두 명 이상이 동업으로 지분을 나누어서 내야 하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홍랑은 아내를 불러들였다. 사업자를 내야지만 한국에서 자금이 투입될 수가 있다. 그냥 달러를 바꾸어서 가지고 여행 가방에 담아서 나올 수가 없는 문제다. 그렇게 가지고 나오기에는 너무 큰돈이 투자되는 것이다. 한국의 외환은행에서 이쪽 은행으로 송금을 해야만 했다. 알아보니 건설업은 외국의 일반인이 사업자를 낼 수가 없었다. 건설업은 한국에 종합건설 사업자가 있는 자에, 한해서 지점형태로 내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공사로 냈다. 내외장 부분공사. 인테리어를 말하는 셈이다.
아내는 혼자서 날아왔다.
홍랑이 공항에 마중을 나가서 데리고 다니며 변호사가 준비한 서류에 사인만 하고 보름 정도 있다가 또 혼자서 나갔다. 홍랑은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는 게 고작이었다. 당시에 미얀마에서는 홍랑이 거처하는 확정된 숙소가 없었다. 호텔에 있다가 아는 지인의 집에 빈방이 생기면 거기서 기숙을 하곤 했다. 경비를 공동으로 부담하는 홈쉐어도 아니고 분명히 기숙이었고 기식이었다. 그런 것까지 합치면 홍랑이 미얀마에서 이사한 것만도 스무 번이 넘을 것이다.
홍랑은 당시에 아내를 미얀마의 지방 도시는 고사하고 양곤 시내도 다 여행을 시켜주지 못했다. 평생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바간은 물론이거니와 양곤 인근의 파고다도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일에는 눈을 돌린 사이가 없이 바빴던 시기였다. 홍랑은 사업자를 신청하고 땅을 사러 다니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 아내가 계를 모았다는 것이다. 일명 ‘미얀마계’ 순전히 미얀마를 여행하기 위해서 아는 여편네들끼리 모은 계인 모양이었는데 매달 얼마씩을 거두어서 적립을 시켰던 모양이다. 그게 몇 년이 지났지만 홍랑은 그런 사실을 몰랐고 돈이 어지간히 모인 모양이다.
이번에 나올 적에 홍랑의 아내는 홍랑에게 말했다.
“다음에 들어갈 적에 같이 갈 수 있도록 추진해보셔요.”
홍랑은 금액이 얼마나 모았느냐고 묻자 여행을 할 정도는 된다고 했다. 홍랑은 여기에 나와서 바쁜 일을 마쳐놓고 그 여행계획을 세웠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로 접어드니 미얀마뿐만이 아니라 동남아 여행객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이치. 거기다가 방학까지 겹치니 더한 것이다. 직항으로 오는 항공기는 가격을 알아보니 엄청 비쌌다. 성수기라 좌석도 없거니와 모았다는 금액으로 항공료를 내면 남는 금액은 얼마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베트남항공을 타고 하노이나 호찌민을 들렀다가 갈아타도 오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래야지만 그 돈으로 미얀마 여행을 할 수가 있는 일이다.
홍랑은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며칠을 고민했다. 항공권도 이 사이트에는 얼마고 다른 사이트는 또 가격이 달랐다. 여편네들 일정을 파악해보고 항공권과 한국에서 출발하는 날짜를 잡았다. 미얀마에서 둘러볼 곳을 정하고 시간과 돌아가는 날짜도 홍랑이 결정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고 항공권을 끊기 전에 홍랑은 또 아내에게 카톡을 해서 여편네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모두가 괜찮다는 연락을 받고 항공권을 예약했다.
돌아가는 비행기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잘못하면 호찌민 공항에서 열세 시간을 기다리고 갈아타야 하기에 아예 호찌민에서 하루 스톱오버하면서 메공델타를 둘러보고 밤 비행기로 들어가는 비행기로 예약을 했다. 그것도 동의를 구해야 했다.
경비는 최소화시키고 여행의 맛은 최대화시켜야 뒷말이 없을 것이다. 조금만 만족도가 낮으면 두고두고 씹힐 일이다. 그런 면에서는 남자들과는 다르다. 마음 같아서는 곗돈은 쓰지 말고 홍랑이 다 부담을 하고 싶지만, 그것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심리적 부담이 잔뜩 되는 건 사실이다.
대충 일정을 짜보니 열흘 정도의 여행일정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을 줄이려고 해도 줄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타고 다닐 차도 준비를 해야 한다.
계획을 짜면서 생각하니 네 명이 계를 모았다면 여행계획을 세우기가 좀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 명이라고 하니 승용차 한 대로 움직일 수가 없는 노릇이고 호텔 방도 두 개만 잡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비싸거나, 잘못하면 말이 많은 여편네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는 일이었다.
“이거? 정말 소득 없는 장사네!”
여행계획을 짜면서 지방으로 나가지 않고 양곤에 머무는 동안은 홍랑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도록 계획했다. 홍랑이 쓰는 마스터룸에 세 명이 자라고 하고 침대가 있는 작은 방에 두 명이 쓰라고 하고, 홍랑은 거실에 자다가 아래층의 화장실로 이용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경비를 최소화해야 했다.
경비가 아니더라도 양곤에서 호텔보다는 집이 편할 것이다. 경비문제는 제쳐두더라도 홍랑의 입장에서는 먹는 것도 그렇고 관리하기가 나을 것이다. 그러려면 베개와 이불이 충분한가? 체크를 하니 이불은 없어도 상관이 없지만, 요와 베개는 모자라는 것이다.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서 요와 베개를 사서 싣고 들어왔다.
그리고 여행계획을 날짜별로 대충 타이핑해서 아내의 카톡으로 날려주고 다른 여편네들에게 전달하라고 일렀다. 조금 불만이 있어도 딴죽을 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양곤 관광은 홍랑이 가이드가 되겠지만 지방은 미니버스를 전세를 내서 현지인 여성 가이드를 하나 붙여서 그냥 돌리고 홍랑은 그 사이에 볼일을 보고 들어갈 적에는 호찌민에서 같이 다녀야 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다음 나올 적에는 여편네들을 따라서 일찍 들어가야 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다음에는 현지 직원들 월급을 주러 나오는 셈이 된다.
달력을 보며 추산을 하니, 그때 들어가야지 설 대목을 준비할 수가 있다. 대목이 되면 중기 임대업체는 항상 바쁘다. 그런데 이번 대목은 부가세 확정신고와 겹치니 더 바쁠 것이다. 재정과 더불어 몸도 바쁜 대목이 될 것이다. 자재, 유대, 정비공장, 타이어가게, 용접사, 철판가게, 기사들 월급에 보너스, 부가세에 거래처 선물까지 엄청 바쁠 것이다.
오늘이 토요일이고 다음 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귀국길이 꿈만 같다. 오늘과 내일은 유튜브를 뉴스를 보지 못한다. 좀 지겹겠지만 다른 사이트에 유튜브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달력을 본다. 들어가야 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귀국? 정말 들어가기 싫다.
좀 더 미룰까?
일탈의 묘미를 맛보지 뭐!
아니다!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
여기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게 언제나 곤혹스럽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바로 출발을 하면 좋은데, 비행시간이 자정이 가까워 출발하는 직항 노선이니 저녁을 먹고 좀 자기도 어중간하고 짐을 꾸려놓고 마냥 기다리기도 어중간한 시간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서의 귀국길은 언제나 고달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에 들어가면 또 마음에 들지 않은 뉴스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겠지?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는데 홍랑은 그게 잘되지 않는다.
지소미아 파기는 그 효력을 정지시켰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든 꼴이 아닌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에, 설을 쇠고 나서라도 시간이 되면 일본여행을 가야지.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돈을 쓰러 가는 것이다.
돈을 쓰기 위해 일본을 간다?
어쩌다 이야기가 이렇게 되었지?
홍랑은 귀국길을 생각하다가 일본과의 문제를 떠올렸다.
일본여행을 하지 말자.
안 가요. 안 사요. 안 써요.
NO 일본을 외치는 그런 무리가 있다. 일본이 반도체 주요부품을 엄정하게 용도를 밝히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데 ‘안 사요’를 외치는 무리가 거칠게 항의를 하는 실정이다.
안 사겠다며? 안 팔겠다는데 안 사면 되지! 왜 항의를 해?
이게 무슨 모순이야? 동맹국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불리하니 또 동맹을 들먹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들어가서 들추어 보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거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삼십 년간 잘 먹고, 잘 살았다. 삼십 년이면 한 세대다. 누구 덕에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홍랑은 배고픔을 면하게 해준 그 세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희생된 세대들이 아니었다면 홍랑 자신도 이렇게 해외사업이라고 큰돈을 싸 들고 남의 나라에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나올 수가 있었겠는가? 그 세대가 없었다면 이 미얀마나 우리나라나 도토리 키재기가 아니었을까?
아니다.
장담하는데, 이 나라, 미얀마보다 못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렇다. 19세기까지 우리나라 백성 중에서 평생 쇠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작 이 할이란다. 시집을 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못 먹고 간다는 말도 있었다. 그 말에 반추하면 이 나라보다 당연히 못 하겠지? 최소한 이 미얀마사람들은 굶지는 않았으니까.
이 나라, 미얀마에 와서 우리나라 대통령 둘이나 울고 갔다.
육십 년대 후반에 경제개발을 꿈꾸며 온 대통령은 이렇게, 밀가루가 아닌 쌀로 하얀 국수를 해 먹는 나라가 있나? 넓은 농경지를 들러보며 쌀국수를 먹고, 풍부한 농업용수를 보고, 삼모작을 한다는 기후에 관해서 듣고, 무료로 식량 원조를 약속받고 감동해서 울며 돌아간 대통령이 있었고, 팔십 년대에는 경제협력을 보강하러 왔다가 아웅산 묘소에서 북괴의 소행으로 똑똑하고 한국의 미래를 살릴 인재들을 왕창 저승으로 보내고 혼자서 울며 돌아간 대통령이 있다.
이 새벽에 생각하니 그렇게 경제개발을 이룬 세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홍랑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진정으로 감사하다.
해봤어? 해봤냐구?
이 말을 즐겨 쓰던 왕회장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신화를 창조한 세계적인 인물이다. 농업 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도약시킨 작은 체구의 거대한 인물이다, 또, 황무지에 공장용지를 닦아놓고 바다를 건너가 일본놈에게 머리를 정중히 조아리고 신일본제철의 기술과 재정을 빌려와서 세계적인 철강 대국으로 만든 위인도 있다. 그 철강을 바탕으로 조선과 자동차 기술이 세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또 있다. 외국에만 의존하던 굴착기를 국산화시켜 홍랑에게 할부로 판 위인도 있다. 그분께는 정말 감사하다. 또 있다. 미국에 가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반도체에 미쳐, 정말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반도체를 개발해서 세계 제일의 반도체 국가로 만든 위인도 있다. 감사하다. 그런 사람들 배후에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위인이 있었다. 그쪽 면에서 따지고 보면 그런 것이다. 최소한 기업을 국민연금으로 강탈하는, 파렴치한 행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런 분에 비교하면, 고맙거나 감사한 마음 없이 그 바탕 위에 기생하여 운동권 출신으로 정권을 장악한 기생충의 무리는 야바위꾼처럼 여겨진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홍랑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기생충에 기생하는 야바위!
야바위꾼! 입만 가지고 국민을 선동하고 나서는 무리!
거기에 속고 있는 백성들!
“아 씨바! 내 입에 베이컨이 물려 있는데 대통령이 어느 놈인지 알 게 뭐야?”
차라리 이게 낫지.
배가 부르니 적당하고 안일한 관심을 가자고 이념의 대립 구도가 확고히 드러나고 있다. 누군가 선동한 것이고 부채질을 받은 것이 자명하다.
이념이란 무엇인가? 한 사회나 개인이 사상으로 추구하는 개념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반일감정을 부추기며 이념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부터 시작해서 일본으로 여행 안 가기, 더 나아가서 일본에서 수입한 승용차 펑크내고 오물 뿌리기 등, 홍랑이 보기에는 소인배의 짓거리를 골라서 하고 있다.
진짜 백성들은 무지한 국가다.
그렇게 부추기면 동요되는 국민이 희한하게도 이상하다. 그렇게 부추기는 의도가 표팔이를 하려고 하는 건데.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게 다음 총선에서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와서 그러는 건데, 그걸 국민은 모른다. 무지해서 그런가, 순진해서 그런가?
일제 치하가 거의 백 년 전의 일이다.
지금 다 죽고 없는데 친일파가 어디 있으며 토착 왜구가 무슨 말인가? 우리도 통일이 될 수가 있었다. 분명히 그랬다. 한국전에서 중국인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통일되었을 거다. 그것도 자유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가 있었을 건데. 백 년 전의 일은 물고 늘어지며 그 후에 일어난 전범에게는 왜 그렇게 관대한가?
전범인 북괴에게는, 북한이 아니라 분명히 북괴다. 그 북괴에게는 진정성이 어린 사과를 받아본 적이 있나? 여기서 말하는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국제사회 외교상, 통용이 가능한 언어인지 모르겠다.
그만하자.
더 하다간 또 홍랑 자신의 입이 더러워진다는 걸 알고 있다.
정말 들어가기 싫은 나라다.
이렇게 떨어져 있으니 심보가 편하고 좋다.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서 보고.
또.!
또, 못마땅한, 혹은 마땅찮은 귀국길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홍랑은 또 달력을 보며 남은 날짜를 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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