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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 https://www.youtube.com/watch?v=FVGSZqUuo34
시베리아 형무소에 가장 가혹한 형벌 하나가 있다.
그것은 일명 “벽돌 나르기” 노역이다.
일은 아주 단순하다. 한쪽에 쌓여있는 벽돌을 다른
쪽으로 옮기고 다음 날 옮겨놓은 벽돌을 다시금
제 자리에 되돌려 쌓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은
한번으로 끝내지 않고 끝없이 반복한다.
이 형벌은 지식인이나 양심수 등 사상범들에게
행해지는데 그들에게 그토록 가혹한 것은 힘겨운
노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 없는 일을 반복으로
오는 정신적 황폐에 있다.
육체적 고문이 아닌 정신적 고문인 것이다.
이 노역을 오래하면 거의 반미치광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형벌에 처한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중노동
이라도 좋으니 다른 노역을 시켜달라 간청한다고 한다.
30여년 전 내가 직장인일때,
오직 상을 위한 평가가 매년 되풀이 된적이 있었는데
건의하길 "이건 시베리아 사상범 형벌과 뭐가 다르냐"
"없애 달라"고 했다가 위로부터 엄청 욕얻어먹었는데
다행히 최고책임자가 그 평가를 없애 주었다.
당시 그 최고 책임자는 "김혁규" 도지사였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다가 이 무의미하고
지겨운 삶을 계속 살아야하나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출근하고 지쳐 돌아오는
지긋지긋하고 반복적인 삶을 왜 살아가야 할까?
정말 나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인가?
반복적인 삶에 힘든 일까지 더해지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건지 삶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이방인 "시지프스 신화"를 저술한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소설을 통해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권태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카미는 말했다
삶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이유는 부조리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삶이 무의미하다,부조리하다는 무슨 의미일까?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로 무의미와 부조리 개념을 설명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지프스는 교활하게 신들을 여러번
속인 죄로 큰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려야 하는 벌을 받는다.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는 다시 산비탈 아래로 떨어진다.
시지프스는 계속 바위를 올리고 떨어지면 또 올려야 한다
이 무의미한 행위를 영원히 계속해야 한다. 아무가치없는
행동을 반복해야하는 형벌을 받으면서 시지프스 마음에는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목적도 결과도 변화도 희망도
없었기 때문에 절망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상황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푸스만의 이야기인 걸까?
시지프스 이야기에서 평범한 사람의 직장생활이 떠오른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황금같은 주말이 지나면 월요병과함께
다시 출근하고 퇴근하기를 반복한다. 올해 매출 목표액을
100억으로 잡아 그것을 달성했다. 그러면 내년에는 목표가
150억으로 상향되어 다시 또 그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리고있다
회사생활내내 이런업무들은 영원히 계속될것같이 이어진다
직장인들은 이런환경속에서 끊임없이 회사다니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왜 회사를 다니냐면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다 나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서 하는 거야.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분명히
가치가 있을 거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가 이걸 왜하고 있지? 나는 도대체
누굴 위해서 이일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인들은 회사 업무에 무의미함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현재 20대 30대들은
이런 무의미함 속에서 회사와 나의삶에 선을 그으려하는
건지도 모른다. 비단 직장뿐일까?
우리 일상 생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육아 집안일 등등
우리 삶에서 내가 굳이 이걸 왜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우린
가끔 한다.
누구나 인생의 단기적 장기적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면 또 다른 목표가 우리 앞에 주어진다
마치 시지프스가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했듯이우리 삶도
이런 반복적인 행동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그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가치상실과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부조리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간은 계속해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내가 살고 있는이 세상에서는
의미가 찾아지지 않는 지점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부조리라고 카뮈는 말한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속에도 존재하는 평화주의자를
통해서 부조리가 설명될 수 있다.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백만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은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전쟁으로 1만명 우크라이나 군인과 4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군인들이 죽었다. 우크라이나 건물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러시아 국민들은 서양 국가들의 경제 제재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국민들은 인터넷 사용금지
해외이동불가 카드사용불가 등 여러 불편을겪고 있다.
여전히 호화로운 푸틴과 고통받는 국민들이 존재하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에서 평화주의자가 느끼는 건
부조리함이다. 아무리 평화라는 관점으로이 전쟁을
이해하려 노력해도 무기력과 무의미함만을 가득 느낀다
여기서 부조리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불합리하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다 세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다만
인간이 세상의 의미를 부여하고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까뮈는
인간은 끊임없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리 열심히해도 무의미함만 가득 느낄때 부조리한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게다가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우리 모두는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들일 뿐이다
인생은 그저 허무할 뿐인데 여기서 의미를 찾으려 하면
하면 할수록 부조리한 감정만 더 느낄 뿐이다
삶의 부조리함 아래에서 인간은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결국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목표와 가치를 찾고 거기서 삶의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부조리를 경험함에도꼭 살아있어야 될까?
삶이 무의미한데도 왜 살아야 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뮈는 말한다
살아야 할 뚜렷한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오늘 죽어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왜 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죽어야 할 이유를 딱히
찾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건 삶이 부조리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뮈는 자신의 소설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서 말했다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 자살은 인생에 패배했다는
것과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이 삶이 부조리임을 알면서도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은 본래 그렇게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우주에서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신이라는 존재 아래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우리 삶이 의미가 없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우리가 가치있다고
판단했던 것들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상의 온갖
것들이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렇게나 소중한 돈,명예는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상사가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돈이 좀 부족하고 이러한 것들이 내가 느꼈던
것보다 더 의미 없고, 먼지나 티끌만한 행동들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에만
더 집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설사 내가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것도 무의미함을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계속해서 자유를 얻게 된다. 결국 우리는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울수 있기 때문이다 부조리함을 느끼는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마치 새가
날기 위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지듯이삶이 무가치하다고
여길수록 더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움을 얻은 상태에서 카뮈는 반항이라는 키워드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강조했다.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되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했다
이게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에 대한 반항이다
카뮈의 저서인 반항하는 인간에서 반항하는 인간의 논리에
대해 설명한다. 불의에 또 다른 불의를 쓰지 않도록 정의에
봉사하고, 세상에 가득한 거짓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명료한
언어를 쓰며 인간의 고통에 맞서서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는데 있다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카미는 반항이라고 말했다. 반항하는
인간만이 진짜 의미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 부조리하다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무의미함을 알기에 의미를 찾지 못하더라도 거기에 다시
집착하지 않게 살아가는 선순환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의 자유가 사는 동안 계속 이어지게 되는 원리이다
카뮈의 삶은 어땠을까?
그 역시 부조리한 환경속에 살았지만 평생동안 삶의의미를
끝없이 추구했다 자신이 추구한 사상을 평생동안 실천했다
카뮈는 1911년 프랑스 식민지인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다
카미가 한 살도 되지 않을때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외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지독한가난 속에서 생계를위해
과외교사 시청직원 자동차 부품 판매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카뮈는 건강 문제로 평생 고생했다. 폐결핵으로
인해 축구선수 활동,철학 교수 일을 그만둬야 했고, 학교를
중퇴하기도 했다. 첫 번째 부인과 결혼 생활은 아내의
모르핀 중독과 외도로 얼마 못가 이혼으로 끝났다
그는 가난 병마 전쟁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지만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소년 시절을 지배했던
아름다운 태양은 내게서 모든 원한을 빼앗아갔다.
나는 궁핍한 생활을 했지만 동시에 어떤 쾌락을 누렸다
나는 스스로 무한한 힘을 느꼈다. 힘의 장애가 되는 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방해가 되는 것은 오히려 편견이나
어리석은 행동에 있었다.
카뮈는 1937년 안과 컷 1942년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연이어 출간한다. 이 작품들 속에서 카미는 인간은 모두
각자 집행일이 다른 사형수의 삶을 살고있고, 삶의 부조리를
꾀하는 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죽게 되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산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에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카뮈가 택했던 반항은 글쓰기였다
현실을 직시하고 전쟁 중에도 지식인으로써 할 일들을 했다
독립군 활동을 하면서도 글쓰기로 독일의 항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카뮈는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줬다. 굳이 어떠한 가치를
꼭 만들어야만 하는가? 꼭 삶이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더라도
삶의이유가 부족해도 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무의미하기에
세상에 덧없음을 느끼며 세상사 하찮게 여기며
좀더 자유롭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서 내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해 보고 그것을 하지 못하더라도
집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다 죽기에 말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이
인생에서그렇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다사다난한 삶이 더 자유로워질수 있다고 카뮈는 말한다
카뮈는 말한다
우리는 허무와 무의미한 부조리를 느끼게 되는순간
삶이 아무 의미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의미 없는 인생을 깨닫는 건 결론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일어나는 불행
역시 사소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삶에 다가오는 무력감의 끊임없이 반항하면서 평생을
살다보면 어느새 삶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모든 일에 가치나 의미가 무조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삶 그 자체이다.
살아있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카뮈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무리한다
신의 형벌로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하는시지프스의
인생을 부조리한 인간의 삶으로 연결했다
여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자살이 아니라
무의미한 삶을 똑바로 직시하며 끝까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인간 삶이라는 부조리한 이야기에서 반항은 죽는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삶이 곧 반항이다. 반항하는 한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