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떠한 책도 성서만큼 문명에 영향을 준 책은 없다. 다른 책들이 인간에 의해서 집필된 데 반해, 성서는 유일하게 하느님을 그 저자로 삼고 있다. 사실상 성서는 “책중의 책”이다.
믿음의 위탁물
가톨릭 교회는 그 모든 교도권을 그리스도로부터 전수되어 온 전통과 교의에서 이끌어 내고 있다. 이 전통은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신 근본적인 믿음의 진리가 내포되어있는 “성서”라는 기록된 형태 속에 보존되어 있다.
초대 교회 때,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성령의 힘을 입어 이 내용들을 글월로 옮겨 놓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자마자 곧(20년 이래라고 믿어진다.) 이 진리들을 영구적인 형태로 보존해 두어야겠다는 필요성이 인식되었다. 그러나 기록된 책이 “정전(正典)으로받아들여지기 전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사도들의 권위를 필요로 했다. 마르코복음서가 정전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마르코가 베드로의 동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루카는 그리스도를 직접 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책이 받아들여진 것은 성 바울로의 권위 때문이었다.
교회는 지금까지,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게시와, 그분에 관한 제자들의증언이 담겨져 있는 이 책들을 보호하고 지켜 왔다.
윤곽이 드러난 성서
초자연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다른 문헌이 성서다. 성서의 여러 책에 적절한 명칭을 붙인트렌트 공의회의 표현을 빌어, 교회는 “한분이신 하느님이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의 저자이시기때문에 성서의 모든 책을 교회가 받아들인다.”고 선언한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한층 더 명확하게 천명한다. “교회가 이 책들을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正經)으로 여기는 것은, 이 책들이 인간의 노력으로 집필되었지만 나중에 교회의 권위로 인정되었기 때문도, 오류가전혀 없는 계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고,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 이 책들의 저자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성서”, 바이블이란 낱말은 “책”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낱말 “비블리온(biblion)”에서유래한다. 복수 형태는 “따 비블리아(ta biblia)”, 이를테면 “책들”이다. 그리스어에서는 이 낱말이 중성(中性)이지만, 후에 “비블리아”라는 낱말이 “책”이라는 여성 단수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낱말은 바로 신ㆍ구약 성서 전체를 의미한다. 바이블이라는책이 바로 그것이다.
성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성서 학자들이라 하더라도 성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성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언어로, 그 당시의 관습과 관용어구에 따라 집필되었다. 성서를 해석하려면 성서를 기록한 언어를 이해해야할 뿐만 아니라, 성서의 낱말들이 기록되던 그 당시에 가졌든의미들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해석되어야 하며,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곧 성서의 공식적인 보호자가 되며 또 그르칠 수 없는 해석자가 된다.
성서의 정경(正經)
성서에는 길이가 서로 다른 72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그러나 애가를 예레미야서의 한 부분이 아니라 독립된 책으로 간주할 때는 73권이 된다). 이 책들이 모여 성서의 공식적인 목록, 또는 “까논”을 형성한다. 이중에서 45권은 그리스도 시대 이전에 기록되어 구약 성서라고불리고 있으며, 나머지 27권은 그리스도 이후에 기록되어 신약 성서라고 불리고 있다.
“떼스따멘뜨(=Testament)”라는 낱말의 의미
(역주;신약 성서를 “New testament”라고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떼스따멘뜨”라는 낱말은조약, 협정, 또는 계약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 성서(Old testament)”는 하느님이 처음에 성조들과, 그 다음에 모세를 통하여 유대 백성들과 맺으신 조약 또는 협정이다. 그 내용을 보면, 구세주가 약속되고, 율법이 선언되며, 그 율법을 통해서 구원이 온다는 것이다.
신약 성서는 하느님이 모든 사람과 맺으신 계약이나 협정으로서 이 계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성서 정경(正經)의 결정
신약 성서가 집필된 당시에는 역시 그리스도와 그 시대에 관한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전설들도 널리 퍼져 있었다. 따라서 초창기 교회 및 세기 동안에는 어떤 책들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성서냐, 아니냐에 대해서 다소 혼돈과 의혹도 있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떤책들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또 성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느냐를 제일 먼저 결정한 것은 기원 393년에 개최된 히뽀의 종교회의였다. 여기서 채택한 성서 목록은 모든 면에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성서 목록과 일치하고 있다. 그 후 여러 차례 공의회를 거쳐 이 결정이 확인되고, 마침내 1546년에 이르러서는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해 성서의 모든 전통적인 책들이공식적으로 성서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책들 속에는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가 모두 포함된다. 이 책들의 모든 내용이 한결같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믿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신앙 조항으로 되어 있다.
위경
히뽀의 종교회의가 비성서적이라고 판단해서 배척한 책들을 위경(僞經)이라고 한다. 이 책들이 주로 다루는 것은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그리스도 당시의 사건들이다. 역사적인 유용한정보를 많이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볼 때 다소 읽어 볼 수도 있을 만한 책들이다. 그러나 이단적인 경향을 지닌 몇가지 이야기도 있다.
위에서도 정의되었듯이, 가톨릭의 이 용어(Apocrypha)와 개신교측의 이 용어는 구분되어야만한다. 가톨릭측은 이를 “위경”이라고 하고 개신교측은 이를 “외경”이라고 한다. 개신교측이 이 용어를 사용할 때에는 가톨릭 성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개신교측에서 받아들이지않는 성서 7권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서 7권이란 토비트서(토빗기), 유딧서(유딧기), 지혜서,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서 상ㆍ하(마카베오기), 그리고 에스델서(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의일부 등을 말한다. 그러나 가톨릭측에서는 이 7권을 제2경전으로 분류하고 있다. 가톨릭측이말하는 위경이란, 구약의 12성조의 유훈(遺訓), 헤녹서, 유빌레움, 에집트인, 므나세의 기도,에즈라 3서, 마카베오 3서, 그리고 신약의 에피온인, 히브리인, 에집트인, 니고데모, 야고보,베드로 등의 복음서를 비롯해서 각종 사도행전, 거산(편지), 그리고 묵시록 등을 의미한다.
개신교측 성서 목록의 역사
가톨릭 성서와 개신교 성서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원인으로 생겨났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수세기 전에 유대인들은 무 무리로 나뉘어졌다. 즉 한 무리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티나에살면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한 무리는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 결과로 그리스어를 사용하게 된 많은 사람들이었다.
유대 성서 목록 기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몇 세기 동안, 팔레스티나의 유대인들은 이미 모음집으로 되어 있던 책에서 몇 권을 재검토해서 모세의 율법과 배치되고 또 하느님의 영감성(靈感性)이 의심스럽다 해서 삭제해 버렸다. 이 바리사이인들은 네 가지의 기준을 정해 놓고, 이 기준에합당한 책만 이 개정된 유대 성서 목록에 포함되도록 했다. 네 가지 기준이란 다음과 같다.
1) 모세 오경(토라 또는 율법)과 일치할 것.
2) 에즈라 시대 이전에 집필된 것이라야 할 것.
3) 히브리어로 집필된 것이라야 할 것.
4) 팔레스티나에서 집필된 것이라야 할 것.
유대인들이 삭제해 버린 성서 책들
이와 같은 임의적인 기준 때문에 아람어로 집필되었으리라고 믿어지는 유딧서와, 그리스어로집필된 지혜서 및 마카베오서 하권, 그리고 팔레스티나 이외의 장소라고 믿어지는 곳에서 아람어로 집필된 토비트서와 다니엘서의 일부 및 에스델서의 일부, 팔레스티나 이외의 장소에서집필된 바룩서, 그리고 에즈라 시대 이후에 집필된 집회서와 마카베오서 상권 등이 목록에서삭제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후 1시기가 흘러가면서 모든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이 개정된 목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교회는 알렉산드리아 목록을 인정한다.
최초부터 그리스도 교회는 그리스-로마 전통의 유대 목록, 또는 알렉산드리아 목록을 진정한 성서로 인정했다. 예수님 자신도 이 성서에서 인용하셨으며, 종교개혁이 있기 전까지는이 목록이 심각한 도전을 받지 않았다.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7권은 제2경전이라고도 부른다. 그런가하면 이 7권을 제외한구약 성서의 모든 책을 제1경전이라고 한다. 제1경전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들 모두가 받아들인 구약 성서의 책들, 이를 테면 “첫번째 목록에 의한 책들”이란 의미가 된다.제2경전, 이를테면 “두번째 목록의 책들”은 가톨릭측 목록에만 들어있는 이 7권의 책들이다.
루터는 구약 성서의 이 제2경전을 배척했다. 한때 루터도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유다서, 그리고 묵시록 등을 신약 성서에서 삭제했었으나 나중에 개신교측이 이것들을 다시 넣었다.오늘날에 와서는 가톨릭측과 개신교측이 동일한 신약 성서를 사용한다.
성서의 언어
성서의 책들은 원래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고 그리스어 등,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다. 아람어는 셈족 언어들의 한 지류로, 그리스도 당시에 팔레스티나에서 사용되던 언어였다.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언어도 이것이었다. 히브리어는 기나안에서 시작되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 의해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에서 최고조의 영광을 누리기까지 발전했던 셈족 언어였다. 따라서 히브리어는 아람어가 대신 쓰이기 시작한 3세기경까지 성지(聖地)의 언어로서그 역할을 다해 왔었다. 성서에 사용된 그리스 언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고전적인그리스어가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의 점령으로 알려지게 된 그 당시의 세계의 방언이다.
대부분의 구약 성서 책들은 히브리어로 집필되었지만, 마태오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 성서는모두 그리스어로 집필되었다. 지혜서와 마카베오서 하권도 그리스어로 집필되었다. 다니엘서,에즈라서, 예레미야서, 그리고 에스델서 등의 일부와 토비트서 및 유딧서 전체, 또 성 마태오복음서 등은 아람어로 집필되었다.
성서의 본문 구분
성서는 원래 지금처럼 장(章)과 절(節)로 나뉘어지지 않았었다. 성서 본문을 장(章)으로 처음 나눈 것은 13세기, 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스테펀 랭톤(Stephen Langton)이었다. 그 다음 1528년 산테스 파그니누스(Santes Pagninus)가 구약 성서의 모든 장을 절(節)로, 그리고1551년에 파리의 인쇄업자인 로베르 에띠엔느(Robert Etienne)가 신약 성서를 절로 나누었다.
구약 성서
지난날에는 성서를 역사서(창세기, 출애굽기, 열왕기, 마카베오서 등)와 율법서(레위기, 신명기 등), 그리고 예언서(미래를 예언하는), 기타 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유대식 성서 구분방법을 올바로 평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법이 될지도모른다. 성서의 처음 다섯 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은 유대인들의믿음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책들로 생각되었다. 이 책들을 히브리어로 토라(Torah)라고 했다. 토라라는 낱말은 “교육”이라는 의미로, 교훈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순명을 가르칠때 주는 교육 같은 것이다.
우리가 역사서라고 생각하는 많은 책들(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와 열왕기)이유대인들에게는“예언서”라고 생각되었다. 예언서라고 하면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설교를의미했다.이 책들은 유대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서 역사상의 사건들을 상세히 전해 주었다. 다시 말해서이 책들은 역사에서부터 출발한 설교였던 것이다. 이 책들을 통해서 우리는예언자처럼 보이나,아니 실제로 활동하는 예언자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장황한설교를 우리에게 남겨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설교란 바로 그들이 살았던 고된 삶의 한 부분을 말한다.중요한 왕들이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이 본받을 만한 표양을 별로 제공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중요하지 않은 왕들이 착한 사람이었다는이유로 남달리주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역사를 기록한다면 이렇게는 하지않을 것이다.사실상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것이 원래 역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은 종교적인사견(私見)을삽입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역사라고 생각함으로써 판단을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이 책들은 역사 그 이상의 것이다. 유대인들이 그들을 “옛날의” 예언자들이라고부른 것은 시대적으로 그들이 남보다 일찍 왔기 때문이 아니라 성서에 제일 먼저 연류되었기때문이다.
예언서, “소예언서”들은 예언자 자신이 집필했거나 제자가 집필했거나 관계없이 하느님의영감을 받은 설교들이다. 예언자라고 하면 자기가 살아 있는 시대에 하느님을 드러내는 사람을말한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관해서만 관심을 쏟는 사람이다. 간혹 그는 미래를 예언하기도한다. 미래라 하더라도 가까운 장래인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미래를 예언할 때 그는엄격하게 말해서 “예언자적이” 아닌 권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추가적인 권능이다. 그들을 처음부터 미래에 대한 예언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현혹되기쉽다.
“저작집”(著作集)이라고 하면 다른 책들을 모아 놓은 잡동사니 창고 같은 것이다. 역대기는역사서같이 생각하지만, 다면체(多面體)의 책과 같다. 이 책을 역사서라고 부르면 그 특징 중에서 많은 부분을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시편의 시나, 잠언 같은 지혜 문학의 시도 역시 이 부분에 포함된다. “묵시록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특수형태의 문학인다니엘서도, 전에는 예언서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지만, 여기에 포함되고 있다.
70인 역본이나 히브리어 성서 그리스어 번역본에 수록된 책들이, 그리스도 시대 이후에는유대인들이 배척하기도 했지만, “제2경전”이라고 불리고 있다. 개신교측이나 유대인들은 이 책들을 다니엘서 일부 및 에스델서 일부와 함께, 성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측에서는 교회 초창기부터 줄곧 이 책들을 소중히 간직해 오고 있다.
신약 성서
신약 성서라고 하면 마태오, 마르코, 루가 그리고 요한 등 “네 복음서”를 생각하게 된다.이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들(또는 “기쁜 소식들”)이다. 그러나 사도행전도 같은 유형의책이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복음서”로서, 초대 교회 안에서 계속된 그리스도의 역사(役事)를보여 주고 있다.
“네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생활을 별로 전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전기”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여튼 그분의 가르침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이 책들은 그분의 생활 사건들을 활용하고 있다. 우선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역시 루카의 저술이다.)은 그리스도의메시지와 사명과 위업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그리스도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측면에서만 그분을 보았다. 우리가 복음사가들이라고 부르는 이 네 사람들은 그들 특유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보았다.
“서간”(書簡)은 여러 종류의 편지들이다. 서간 중의 몇 가지는 “편집자에게 붙이는 편지”같은 것으로, 이 편지들이 전달된 교회만이 아니라 넓은 지역에 두루 전파되었으면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다른 편지들은 상당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필레몬서”(필레몬에게 보낸 서간)는 바울로가 어느 귀의자에게 붙힌 짧은 편지였다. 또 다른편지들은 문학 형식 같은 편지의 형태로 집필되었다. 야고보의 편지와 베드로의 편지들은 실제로 교리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성서의 마지막 책인 “묵시록”은 신약 성서 중에서도 유일하게 당시의 일반적인 양식으로집필된 것이다. 구약 성서의 다니엘서나 에제키엘서처럼, 이 책은 박해받는 백성들에게 현재의시련을 통해서 지난날의 하느님의 구원 행업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일종의 법전(法典) 같은 형식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은 또 하느님을 믿는 그들의 마음에 따라 앞으로 어떠한 구원 행업을 얻을 수 있는지도 엿보여 주고 있다.
성서의 영감성(靈感性)
성서의 원저자는 성령이시다. 물론 성령 자신이 성서책들을 집필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성령을 원저자라고 하는 것은 성령이 성서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들의 말로,또 당시의 방법과 양식으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기록하게 하셨고, 또 그들이 배운 것을 성실히 기록하도록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성서를 집필하는데 있어서 이와 같은 하느님과사람의 합동작업을 영감(감도)이라고 부른다. 이 영감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만이아니라 성서 전체에 해당된다.
성서의 영감성 정의
교황 레오 13세는 칙서 “쁘로뷔덴씨무스 데우스”[=Providentissimus Deus]주1)에서 영감이성서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이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그들이 글을 쓰도록 움직이시고 재촉하시며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선 하느님이명하신 것, 오직 그것들만을 올바로 이해했고, 그 다음에 그것들을 성실히 기록하기를원했고 끝으로 적절한 어휘와 그르침 없는 진실된 말로 그것들을 표현했던 것이다.”
주1) 프로비덴티시무스 데우스: 가장 선견지명이 있는 하느님(the Most Provident God)의 뜻. 1893년 교황 Leo X1가 성서의 연구에 관해서 내린 회칙(回勅)의 첫머리의 말이며 그 제목.
영감성에 대한 성서의 언급
교회가 성서의 영감성을 그르침이 없는 가르침으로 내세우는 것도 물론이지만, 우리는 이외에도 믿을 만한 역사적인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구약 성서의 많은 부분(이사 8,1;지혜 7,15)주2)이 간접적으로 이 영감성을 지적하며, 신약 성서에서는 성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베드로의 둘째 서간) 1장 20-21절주3)을 통해서 이 영감성을 말하고 있다.
전통이 성서의 영감성을 확인한다.
또 전통도 교회 초창기부터 성서가 영감을 받았다고 믿는 확고한 증거를 제공해주고 있다.교회의 교부들은 이 책들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 하느님이 성서의 저자이시다, 성스러운저자들은 하느님의 도구였다 등 여러 형태로 말하면서 영감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교회는 또 여러 가지 교회 문헌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이 영감성을 선언했다.
영감의 범위
1546년 4월 8일,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 모든 책들이 그 모든 부분과 함께, 가톨릭 교회안에서 줄곧 읽혀져 왔기 때문에”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正經)으로 여겨져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이 선언이 있은 후 몇 세기 동안, 가톨릭계 신학자들은 신앙과 도덕 문제만이 영감을 받았다고 인정해야 하느냐, 아니면 영감이 중요한 사안(事案)에 모두 적용되었느냐에 관한, 해석상의 두 가지 측면을 놓고 견해를 달리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해결되었다.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프로뷔덴띠씨무스 데우스”를 통하여,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성서가 모든 부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과, 표명된 하나의사건이 가장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사실, 이를테면“성서 전체가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성서의 역사
성서 원본 중에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성서를 기록한 재료가부식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면서, 그 원본들을파괴시키라고 명령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 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고대의번역본들은 몇 가지 남아 있다.
주2) 이사야 8,1: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커다란 서판을 가져다가, 거기에 보통 글씨로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를 위하여’라고 써라.”
지혜 7,15:하느님께서 내가 당신의 뜻에 따라 말하고 내가 받은 것들에 맞갖은 생각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빈다. 그분께서 바로 지혜의 인도자이시고 현인들의 지도자이시며
주3) 베드로의 둘째 서간 1,20-21: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어떠한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언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
성서 원본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필사본은 2세기에 히브리어로 집필된 이사야서의원본이다. 이 원본은 1947년 이래 예리고 근처 어느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단편은 영국 맨체스터의 죤 라이랜드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단편은 기원 2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수천 개의 다른 고대 필사본들이 발견되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완전하고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기원 4세기나 5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나이 사본(Codex Vaticanus),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 등 세 가지다. 바티칸 사본은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서의 초기 번역본
성서의 초기 번역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70인 역본과 불가타 역본이었다. 구약 성서의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 역본은 기원 전 250년경에 시작되어 기원 전 100년경에 완성되었다. 이 번역본은 에집트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에 그들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던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읽을 수 있었다. 머지 않아 이 70인 역본은팔레스티나에 두루 퍼져 나갔으며, 그리스도 당시와 1세기, 또는 그리스도교 시대가 거의 지나가도록 지중해 세계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졌다.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가르침을 펴면서 이 번역본을 사용했다.
기원 2세기 동안의 성서
교회 초기, 하느님을 예배하는 행사에서는 그리스어로 된 성서를 낭독했다. 그리스어에서라틴어로 옮기는 최초의 번역본이 필요했던 것은 서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번역본들이 수집되어 첫 번째 라틴어 성서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육 정도가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 번역본들은한결같지도 않고 또 정확하지도 못했다. 2세기경에는 많은 라틴어 번역본들이 생겨났는데,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읽혀진 것은 <Old Latin> 또는 <Itala> 번역본이었다.
성 예로니모와 불가타 번역본
<이딸라>[=Itala] 번역본에서 필경자(筆耕者)들이나 교정자들, 또는 번역자들에 따라여러 가지로 독법(讀法)이 생겨났기 때문에, 교황 다마소 1세는 성 예로니모로 하여금신약 성서를 교정해서 바로잡도록 위탁했다. 성 예로니모는 네 복음서를 놓고 교정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다음, 그는 속도를 빨리 해, 신약 성서의 나머지 책들도 교정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기원 383-4년경에 로마에서 완성되었다. 교황 다마소 1세가 세상을 떠난 후, 성 예로니모는 성지(聖地)주4)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34년을 묵으면서 성서 교정 작업에 정열을 쏟아 성서 해석학 작업에까지 이르렀다.
주4) 성지는 한자 표기에 따라 다르다. 예수님께서 생활하셨던 이스라엘 땅은 聖地라고 표기하고, 그 밖의 순교성지 등은 聖址라고 표기한다.(땅지 地와 터지 址로 구분한다.)
그러나 그의 필생의 대작업이라고 한다면, 제1경전에 의한 구약 성서 책들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15년 이상이나 걸리는 대업적이었다. 여기서 탄생된것이 불가타 번역본이었다. 이 불가타 번역본을 통해서, 성 예로니모는 1) 시편을 제외한 구약 성서의 제1경전에 의한 책들을 히브리어에서 번역했으며, 2) 제2경전인 토비트와유딧서를 아람어에서 번역했다. 또 성 예로니모는 3) Old Latin에서 번역된 제2경전인지혜서와 집회서, 바룩서, 그리고 마카베오 전후서 등을 교정했고, 4) 그리스어 번역본구약 성서에서 다니엘서의 제2경전 부분과 70인 번역본에서 에스델서의 제2경전 부분 등을5) 또 Old Latin에서 신약 성서를 교정했다.
불가타 번역본이 다른 번역본들보다 우월하다.
구약 성서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작업이 개인적인 활동이었던 만큼 커다란 장애가 뒤따랐다.그가 성서 본문을 바꾸어 놓았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사람들이 <Itala>, 또는 <Old Latin>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의 성공적인 활동이인정을 받고, 9세기에 이르러서는 성 예로니모의 번역본이 일반적으로 공인을 받게까지되었다. 이 번역본을 “불가타”라고 부르게 된 것은 교회에서 널리 채택하여 사용하게 되었기때문이다. “불가타”란 말은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고 있다.”거나 “백성들의 성서”란 의미가 된다.
교회가 불가타 번역본을 승인하다.
교회는 1546년 4월 8일,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서 불가타 번역본을 교회의 공식적인 번역본으로 정했다. 오늘날까지 불가타 번역본은 교회의 공식적인 번역본으로 남아 있고, 실제로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이 곧 70인 역본이나 다른 고대의 필사본들보다 불가타 번역본이 우선한다거나, 완전히 오류가 없다는 것을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교회는 처음부터 번역본의 어떤 한계성을 인정하고 그 교정 작업을명령해 놓았다. 1592년, 마침내 교황 글레멘스 8세 당시에 이 교정본이 출판되게 되었다.
성 예로니모에서 구텐베르그까지의 불가타
성 예로니모의 본문은 여러 시대를 통해서 많은 변천을 겪어야만 했다. 완전한 성서를 정리하면서, 불행하게도 필사자들은 Old Latin 본문이나 불가타 번역문 대신에 자신들의 독법을 더러 채택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은 이 두 가지 본문이 다 통용되고 있었기때문이다. 어떤 수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전 번역본의 구절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르며,또 불가타 번역본을 베껴 쓰면서 자신이 잘 알고 있던 옛 구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우(愚)를범했을지도 모른다. 몇몇 필사자들은 비판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다른 필사본, 즉 병행 구문의 본문과 전례에 사용되던 본문들을 혼용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들은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일시적으로 증가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학자들은 성 예로니모의 손에서 물려받은 본문에 가까운 본문을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타번역본이 서방 교회의 공식적인 번역본이 되기는 했어도, 교회는 다른 번역본이 생겨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세기에는 곱트 번역본(Coptic version)이 생겨났다. 또 4세기에는 고트족의주교인 울필라스(Ulfilas)가 고트어(語) 번역본을 만들어 냈고, 뒤를 이어 교회 초기 몇 세기동안에 시리아어 번역본, 아르메니아어 번역본, 그루지야어 번역본(Georgian version),아라비아어 번역본, 그리고 슬라브어 번역본 등 여러 가지 번역본들이 생겨났다.
구텐베르그와 처음으로 인쇄된 성서
15세기. 구텐베르그에 의해 실제적인 인쇄술의 발명과 그 발전 과정은 다른 어떠한발명보다도 더 세계를 현대화시키며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발명이 있기 전에는, 모든필사본과 책들을 손으로 베껴 써야만 했으며, 따라서 부호들만이 성서를 손에 넣을 수있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명으로 직업적인 필경사들의 지루한 작업이 하루아침에 끝나버리게되었다. 이 발명으로 말미암아 성서를 베껴 쓰는 데서 생겨나는 많은 인간적인 오류도제거되게 되었다.
1450년, 구텐베르그는 인쇄술을 발전시켜 그의 첫 작품을 인쇄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제일 먼저 인쇄한 책은 라틴어 불가타 번역본인 성서였다. 이 성서를 인쇄하고제본하는데 2년 정도가 소비되었다. 결국 불가타 번역본이 하나의 성서로 완성된 것은 1452년이었다. 첫 판에 인쇄된 수는 200권이 훨씬 넘었다.
인쇄된 성서
인쇄술의 발명으로, 성서는 판을 거듭해 – 처음 50년 동안 124판 – 출판되었는데 모두가톨릭 교회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1522년 루터의 신약 성서가 생겨났을 때에는 독일어로만14판이 출판되었다. 때를 같이해, 11가지의 이탈리아어 번역본과 10가지의 프랑스어 번역본,2가지의 보헤미아어 번역본, 그리고 플라망어 번역본과 러시아어 번역본들이 각각 한 가지씩나타나게 되었다.